지북유 13

장자[150]

성인은 물질에 거처하지만 물질을 해치지 않는다. 물질을 상하지 않는 자는 물질도 그를 상하지 않는다. 오직 상하는 일이 없는 자만이 능히 남과 더불어 서로 보내고 맞이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산과 숲, 언덕과 논밭은 나를 기쁘게 해 주지만 그러나 즐거움이 끝나기도 전에 슬픔이 잇는다. 나는 슬픔과 즐거움이 와도 막을 수 없고 가도 멈추게 할 수 없구나!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을 위한 여인숙에 불과하구나! 聖人處物不傷物 不傷物者 物不能傷也 唯無所傷者 爲能與人相將迎 山林與皐壤與 使我欣欣然而樂與 樂未畢也 哀又繼之 哀樂之來 吾不能御 其去不能止 悲夫 世人直爲物逆旅耳 - 知北遊 13 장자의 물(物)은 나 이외의 외적 대상 전체를 가리킨다. 인간의 감관과 사유의 대상이 되는 현상계의 일체 사물이나 사건들이다. ..

삶의나침반 2011.01.02

장자[149]

초나라 대사마에겐 허리띠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여든이 되도록 조그만 실수도 없었다. 대사마가 말했다. "그대는 정교하구려! 도가 있겠지?" 공인이 말했다. "신에게는 지키는 것이 있습니다. 신은 나이 스물에 요대 만들기를 좋아하여 다른 것은 무시하고 요대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쓸모 있게 한 것은 쓸모없는 것을 빌려서 그 쓸모를 크게 한 것인데 하물며 쓸모없는 것도 없는 경지는 어떻겠습니까? 그런 경지면 무엇이든 쓸모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大馬之추鉤者 年八十矣 而不失豪芒 大馬曰 子巧與有道與 曰臣有守也 臣之年二十 而好추鉤 於物無視也 非鉤無察也 是用之者 假不用者也 以長得其用 而況乎無不用者乎 物孰不資焉 - 知北遊 12 이번에는 허리띠 만드는 장인이 등장한다. 그는 여든이 되도록 ..

삶의나침반 2010.12.28

장자[148]

광요가 무유에게 물어 말했다. "무유! 그대는 있는 것이오, 있지 않은 것이오?" 광요는 질문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모양이 심원한 듯! 공허한 듯! 종일 들여다보아도 볼 수 없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다. 광요가 말했다. "무유는 지극하구나! 누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나는 무를 가진 경지는 알았으나 무도 없는 경지는 이루지 못했다. 유가 없는 경지를 겨우 이룬 내가 어떻게 무도 없는 경지에 이르겠는가?" 光曜問乎無有曰 夫子有乎其無有乎 光曜不得問 而孰視其狀貌 요然空然 終日視之而不見 聽之而不聞 搏之而不得也 光曜曰 至矣 其孰能至此乎 予能有無矣 而未能無無也 及爲無有矣 何從至此哉 - 知北遊 11 우리는 상대적 개념으로 사물이나 말의 의미를 파..

삶의나침반 2010.12.19

장자[147]

도는 귀로 들을 수 없다. 들었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눈으로 볼 수 없다. 보았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입으로 말할 수 없다. 말했다면 도가 아니다. 형체를 지각할 수는 있지만 그 형상(形狀)은 형상(形相)이 아니다. 그러므로 도를 이름 붙이는 것은 합당치 않다. 道不可聞 聞而非也 道不可見 見而非也 道不可言 言而非也 知形 形之不形乎 道不當名 - 知北遊 10 도덕경의 '道可道非常道'를 떠올리게 한다. 도는 귀로 들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입으로 말할 수도, 마음으로 알 수도 없다. 인간의 감각이나 인지작용을 초월해 있다. 도를 말하는 순간 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도는 물을 수도 없다. 만약 누군가가 도를 물었을 때 무언가 대답한다면 그는 도를 모르는 자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삶의나침반 2010.12.12

장자[146]

모든 사물은 사물을 무리 지어 차별하는 경계가 없는 것이니 사물에 경계가 있다면 언어로 일컬어진 사물의 경계일 뿐이다. 경계 없는 것(물질)을 언어로 경계 지은 것이므로 그 경계는 사물의 경계가 아니다. 차고 비고, 덜고 더한다고 말하지만 저들이 차고 빈다고 말한 것은 실은 차고 빈 것이 아니며, 저들이 덜고 더한다고 말한 것은 실은 덜고 더한 것이 아니며, 저들이 본(本)이요 말(末)이라고 말한 것은 실은 본말이 아니며, 저들이 쌓이고 흩어짐이라 말한 것은 실은 쌓이고 흩어진 것이 아니다. 物物者 與物無際 而物有際者 所謂物際者也 不際之際 際之不際者也 謂盈虛衰殺 彼謂盈虛 非盈虛 彼謂衰殺 非衰殺 彼謂本末 非本末 彼謂積散 非積散 - 知北遊 9 며칠전 나사(NASA)에서 새로운 생명체의 발견을 발표했다. 생명..

삶의나침반 2010.12.05

장자[145]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이른 바 도는 어디에 있소?" 장자가 답했다. "없는 곳이 없소." 동곽자가 말했다. "요약해 주시면 좋겠소." 장자가 말했다. "도는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있소." 동곽자가 말했다. "어찌 그처럼 낮은 곳에 있단 말이오?" 장자가 말했다. "도는 돌피와 참피에 있소." 동곽자가 말했다. "어찌 더욱 낮아지는 것이오?" 장자가 말했다. "도는 기와와 벽돌에도 있소." 동곽자가 말했다. "어찌 더욱 심해지시오?" 장자가 말했다. "도는 똥과 오줌에도 있소." 동곽자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東郭子問於莊子曰 所謂道惡乎在 莊子曰 無所不在 東郭子曰 期而後可 莊子曰 在루蟻 曰 何其何邪 曰 在제稗 曰 何愈其何邪 曰 在瓦벽 曰 何愈甚邪 曰 在屎尿 東郭子 不應 - 知北遊 8 한 스님이 운문..

삶의나침반 2010.11.27

장자[144]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살아 있는 것은 날랜 백마가 문틈을 지나는 것처럼 홀연히 끝난다. 물이 흘러 갑자기 불어나듯 나타났다가 구름이 흩어지듯 소리 없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러한 변화를 삶이라고도 하고 또는 죽음이라고도 한다. 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 注然勃然 莫不出焉 油然?然 莫不入焉 已化而生 又化而死 - 知北遊 7 인생은 짧고 덧없다. 우리는 잠깐 이승에 나왔다 사라지는 무상한 존재들이다. 장자는 그것을 백마가 문틈을 지나는 짧은 시간에비유했다. 그 짧은 시간도 대부분이 힘겹고 고통스럽다.수고하며 이룬 모든 성과는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이승에서 헛되지 않은 일이란 없다. 그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의 실존적 한계다. 인생의 허무를 받아들여라.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담담해진다. 인생에 ..

삶의나침반 2010.11.18

장자[143]

순임금이 그의 스승인 승에게 물었다. "도를 터득하여 소유할 수 있을까요?" 승이 답했다. "네 몸도 네 소유가 아니거늘 어찌 네가 도를 소유할 수 있겠는가?" 순임금이 물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소유란 말입니까?" 승이 답했다. "이것은 천지가 너에게 맡겨놓은 형체다. 생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음양의 화합이다. 본성과 운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순리다. 자손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허물이다. 그러므로 가도 갈 곳을 모르고 처해도 머물 곳을 모르고 먹어도 맛있는 것을 모른다. 천지는 성대히 발양하는 기(氣)이니 어찌 체득하고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舜問乎丞曰 道可得而有乎 曰 汝身非汝有也 汝何得有夫道 舜曰 吾身非吾有也 孰有之哉 曰 是天地..

삶의나침반 2010.11.08

장자[142]

너는 갓 난 송아지처럼 순진무구한 눈으로 보고 옛 법을 구하지 말라! 汝瞳焉如身出之犢 而無求其故 - 知北遊 5 처음 장자를 읽었을 때 이 구절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책상 위에 붙여놓고 암송을 했다. 장자 33장에서 말하려는 것이 이 글 속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갓 태어난 송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것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은 순진무구한 마음이 필요하다. 노자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강조하고, 예수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도 마찬가지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그 시대와 지역의 패러다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 시대에는 유교의 틀로 세상을 인식했고 지금은 자본주..

삶의나침반 2010.10.30

장자[141]

천지는 위대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나 말이 없고 사시는 밝은 법을 가지고 있으나 강론하지 않으며 만물은 생성의 이치를 가지고 있으나 유세하지 않는다. 성인은 이와 같은 천지의 아름다움에 근거하여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는 것이다. 天地有大美而不言 四時有明法而不議 萬物有成理而不說 聖人者原天地之美 而達萬物之理 - 知北遊 4 오랜만에 강원도로 나가 별을 보았다. 들녘은 만추로 익어가고 산야는 단풍으로 울긋불긋했다.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하고 만물은 변화를 거듭한다. 천지가 아름다운 것은 말 없이 이 모든 걸 행하기 때문이다. 무위(無爲)의 본(本)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미(自然美)란 인간의 손이 닿기 이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말도 많고 시끄럽다. 자연은 침묵하지만 인간은 소란하다. 인위적 아름다움은 자..

삶의나침반 2010.10.17

장자[140]

사람이 태어남은 기(氣)가 모인 것이다. 모이면 태어나고 흩어지면 죽게 된다. 만약 사생(死生)이 이사 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또 무엇을 걱정하랴?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지만 이것이 신기하면 아름답다 하고 냄새나고 썩으면 밉다 한다. 그러나 썩은 것은 다시 신기해지고 신기한 것은 다시 썩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하란 통틀어 하나의 기일 뿐이니 성인도 반드시 하나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人之生氣之聚也 聚則爲生 散則爲死 若死生爲徒 吾又何患 故萬物一也 是其所美者爲神奇 其所惡者爲臭腐 臭腐復化爲神奇 神奇復化爲臭腐 故曰 通天下一氣耳 聖人故歸一 - 知北遊 3 인체는 기(氣)로 되어 있고, 생사란 기의 이합집산으로 보는 것이 동양의 사고방식인 것 같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생멸을 ..

삶의나침반 2010.10.10

장자[139]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를 행함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니 덜고 또 덜어 다스림이 없는 데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스림이 없음은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故曰 爲道者日損 損之又損之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也 - 知北遊 2 이 부분은 노자 도덕경에도 나온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배움의 길은 날로 쌓아가는 것이며 도의 길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의 경지에 이른다. 무위는 못함이 없는 함이다. 모든 종교나 지혜가 가르치는 바는비움과 무욕이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 겨울로 변하듯 완성은 결국 비움과 덜어냄이다. '배움의 길'에서 '도의 길'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학(學)과 도(道)가 대비되어 있는데, 학(學)이란 나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

삶의나침반 2010.10.03

장자[138]

'지혜'가 북쪽으로 원수의 상류에서 노닐다가 은분의 언덕에 올랐다. 여기서 우연히 '무위위'를 만났다. 지혜가 무위위에게 말했다. "나는 자네에게 물을 것이 있네. 어떻게 생각하고 꾀하면 도를 알 수 있는가? 어디에 처하고 무엇을 하면 도에 거처할 수 있는가? 누구를 따르고 누구에게 인도를 받으면 도를 얻을 수 있는가?" 세 가지 질문에 무위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답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답을 몰랐던 것이다. 知北遊於元水之上 登隱분之丘 而適遭無爲謂焉 知謂無爲謂曰 予欲有問乎若 何思何慮則知道 何處何服則安道 何從何道 則得道 三問而無爲謂不答也 非不答不知答也 - 知北遊 1 이야기는 계속된다. 지혜는 답을 얻지 못하자 '광굴'을 찾아갔다. 그리고 같은 말로 광굴에게 물었다. 광굴은 말을 하려는 중간에 말하..

삶의나침반 2010.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