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27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독서란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일상에서는 절대 접촉하지 못할 사람을 책에서는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사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내 질문에 저자는 책의 어디선가에서 꼭 답을 해 준다. 물론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를 쓴 전범선 씨는 특이한 이력과 함께 별난 삶을 산다. 학력은 상위 0.1%라고 할 정도로 화려하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을 거쳐 컬럼비아 로스쿨까지 합격했다. 엘리트 계급에 진입하고도 남을 스펙이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밴드를 만들어 기타를 잡고 노래를 한다. 그뿐이 아니다. 폐점 위기에 몰린 인문학 서점을 인수해서 살리고, 해방촌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동물 보호와 기후 위기를 막는 운동에 앞장선다. '휘뚜루마뚜루 자유롭게 산다는 것..

읽고본느낌 2024.10.16

세 여자

재미있으면서 유익한 소설이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과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를 세 여자(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남성 중심의 운동사에만 익숙한 우리 눈에 이런 여성 선구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비슷한 또래의 세 여자는 20대 초반에 만나 운명적으로 얽힌다. 셋 중에서도 제일 주도적인 인물은 허정숙이다. 허정숙은 중국 상하이 유학중에 박헌영, 주세죽, 임원근, 김단야 등과 만나 사회주의연구소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사상에 몰입한다. 그녀는 부유한 집안 덕분에 일본, 중국, 미국, 모스크바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인텔리였다. 또한 임원근을 비롯해 네 번이나 결혼하면서 자유연애를 실천한 여성이기도 했다. 그녀가 활동하던  20..

읽고본느낌 2024.08.03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 신경림

떠나온 지 마흔해가 넘었어도나는 지금도 산비알 무허가촌에 산다수돗물을 받으러 새벽 비탈길을 종종걸음치는가난한 아내와 부엌도 따로 없는 사글셋방에서 산다문을 열면 봉당이자 바로 골목길이고간밤에 취객들이 토해놓은 오물들로 신발이 더럽다등교하는 학생들과 얼려 공중화장실 앞에 서서발을 동동 구르다가 잠에서 깬다지금도 꿈속에서는 벼랑에 달린 달개방에 산다연탄불에 구운 노가리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골목 끝 잔술집 여주인은 한쪽 눈이 멀었다삼분의 일은 검열로 찢겨나간 외국잡지에서체 게바라와 마오를 발견하고 들떠서떠들다 보면 그것도 꿈이다지금도 밤늦도록 술주정 소리가 끊이지 않는어수선한 달동네에 산다전기도 안 들어와 흐린 촛불 밑에서동네 봉제공장에서 얻어온 옷가지에 단추를 다는가난한 아내의 기침 소리 속에 산다도시락을..

시읽는기쁨 2024.05.25

김남주 평전

"나는 시인이 아니라 전사(戰士)여!"김남주는 스스로 행동하는 전사가 되기를 택했고 그 길을 갔다. 총명했던 젊은이가 입신양명의 길을 마다하고 혁명의 대의를 따른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좇아가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지켜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하지만 하물며 자기희생이 따르는 험난한 여정임에랴. 책 어딘가에는 김남주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자유를 향하여 전 존재를 내던진 자, 사적 소유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버린 자, 개인적 욕망을 아예 포기한 자."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일고에 들어간 김남주는 고등학생때부터 영어와 독어 원서를 읽을 정도로 어학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고, 많은 독서를 통해 사회와 역사의식에도 일찌감치 눈을 떴다. 그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읽고본느낌 2024.05.24

산업사회와 그 미래

지난달에 '유나바머(UNABOMBER)'가 미국 교도소에서 81세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테어도르 카진스키(T. J. Kaczynski)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우편물 폭탄 테러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오래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보도가 되며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기억이 난다. 유나버머[UNABOMBER = University + Airline + Bomber]란 그가 주로 대학과 항공사에 소포로 포장된 폭탄을 보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여섯 차례에 걸친 폭탄 테로로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 유나바머는 IQ 167의 천재였다. 16세에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가서 수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가 되었다. 어떤 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20대 후반에 그는 갑자기 교..

읽고본느낌 2023.07.01

위기의 민주주의

2019년에 제작된 브라질 정치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넷플릭스에 올려져 있다. 2002년에 룰라가 군사 독재를 물아내고 브라질의 대통령이 된 때로부터, 룰라의 후계자였던 지우미가 탄핵되고 부패 스캔들로 룰라가 구속된 2018년의 상황까지를 다룬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겹쳐보이면서 먼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았다. 브라질은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룰라가 세 번째로 당선되었지만 극우인 보우소나루와는 1.8% 차이였다. 보우소나루의 극력 지지층에서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최근에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식이면 룰라가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파 기득권층이 다시 어떤 음모를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치 구조상 안정을 찾기는 쉽지..

읽고본느낌 2023.03.23

다읽(17) - 동물농장

학창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동물들의 삽화가 들어간 책이었다. 완전한 번역본이었다기보다 다이제스트 판이었는지 모른다. 주인에게 반란을 일으킨 동물들의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지 않았나 싶다. 50여 년이 넘어 다시 읽어보니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냉소적인 정치 풍자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반골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사회주의자로서 러시아 혁명에 기대를 걸었으나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저지른 만행에 환멸을 느꼈다. 마르크스가 역사의 필연으로 예견한 노동자와 인민의 낙원은 한 사람의 권력 야욕 앞에서 무참하게 스러졌다. 그는 부패하는 혁명의 과정을 똑바로 목격했다. 을 통해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혁명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 필..

읽고본느낌 2023.02.19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새롭게 떠오르는 일본의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가 쓴 책이다.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으로 책 읽기의 혁명성을 고찰하는 내용이다.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사사키 아타루라고 한다. 그는 1973년생으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은 서가에서 강렬한 제목에 끌려 꺼내 보았다. 제목은 어느 서양 시인의 시에서 따온 문구라고 한다. 책 내용과 상응하는 좋은 제목인 것 같다. 책은 전체적으로 니체 톤의 목소리가 울린다. 우리 시대를 두고 문학이나 예술이 끝났다고 쉽게 말하지만 지은이는 강하게 반박한다. 문학은 반정보며 변혁이다. 지은이가 정의하는 문학은 범위가 상당히 넓다. 어쨌든 문학이 살아남아야 혁명이 살아남고 인류가 살아남는다. 우리는 혁명으로 왔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읽고본느낌 2022.12.04

꼬막 / 박노해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南道의 살림 성사聖事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한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 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읎어서 바다와..

시읽는기쁨 2021.02.04

나라 없는 나라

전봉준과 대원군의 밀회로 소설은 시작한다. 둘의 속은 달라도 상대가 가지고 있는 명분이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에서부터 전봉준이 체포되던 마지막까지를 다룬다. 이광재 작가가 썼고, 혼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19세기 후반부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불만과 요구가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동시에 외세는 호시탐탐 조선반도를 노리고 있었다. 나라의 중심을 잡을 힘 있는 세력은 없었다. 도리어 일본이나 청나라에 의존함으로써 한 줌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전봉준과 대원군이 암묵적으로 손을 잡은 것은 외세를 몰아내야 한다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1894년 3월에 고부 백산에서 1차로 봉기할 때 동학농민군은 네 가지 강령을 만들었다. ..

읽고본느낌 2021.01.29

레드 로자

올해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학살당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로자라고 하면 지성, 용기와 더불어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꽃으로 태웠던 여인으로 떠오른다. "혁명이 전부라고요! 다른 건 다 쓰레기예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이런 말들에 그녀의 생애가 들어 있다. 이 책 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일생을 만화로 그려냈다. 만든 이는 영국 만화가인 케이트 에번스다. 만화라고 해서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로자의 삶과 사상을 요약했지만 무게감이 있다. 중요한 부분에는 주석이 달려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에 태어나 1919년에 세상을 떠난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다.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이론가이면서 투사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에서 로자를 넘어설 사람은 없..

읽고본느낌 2019.12.20

기도 / 김수영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살쾡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정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 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

시읽는기쁨 2016.12.21

2016. 12. 9.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여섯 차례에 걸쳐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매운 시민의 외침이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남아있지만, 대통령 퇴진이라는 시민의 요구를 결코 무시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2016년 12월 9일, 이날은 역사에 시민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순실에 의한 국정 농단에 분개했지만, 촛불을 통해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 1조의 생생한 교육장이었다. 어떤 어둠의 세력도 빛을 이길 수는 없다. 수백만 명이 모였지만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폭력 사태와 계엄령 선포라는 대혼란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은 분노를 표현하되 마치..

길위의단상 2016.12.12

슐레지엔의 직조공 / 하이네

침침한 눈에는 눈물도 마르고 베틀에 앉아 이빨을 간다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 세 겹의 저주를 거기에 짜 넣는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첫 번째 저주는 신에게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우리는 기도했건만 희망도 기대도 물거품이 되었다 하늘은 우리를 조롱하고 우롱하고 바보 취급을 했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두 번째 저주는 부자인 왕에게 우리들의 비참을 덜어주기는 커녕 마지막 한 푼마저 빼앗아 먹고 그는 우리들을 개처럼 쏘아 죽이라 했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세 번째 저주는 그릇된 조국에게 오욕과 치욕만이 번창하고 꽃이란 꽃은 피기가 무섭게 꺾이고 부패와 타락 속에서 구더기가 살판을 만나는 곳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북이 날고 베틀이 덜거덩거리고 우리는 밤낮으로 부지런히 짠다 낡은 독일이여 우..

시읽는기쁨 2016.12.01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서른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한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처진 육신에 또 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

시읽는기쁨 2016.05.17

선한 분노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사립 예술고등학교와 외국 대학에 다녔던 사람이 변했다. 자기계발서를 버렸고 혼자만 잘 산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성공하는 방법이 아니라 세상이 어째서 이토록 잘못되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때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가 계기가 되었다. 는 박성미 씨가 자본에 저항하는 불온한 사랑에 대해 쓴 책이다. 책은 사랑, 돈, 혁명의 3개 단원으로 되어 있다. 제일 긴 '돈'에서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의자놀이 게임과 폰지 사기와 같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자놀이 게임으로 끝없는 노동을 강요하고, 폰지 사기 게임으로 풍요롭다는 착각을 심는다. 사람들은 탐욕스런 경제 동..

읽고본느낌 2015.12.12

[펌] 청년 전쟁

이오덕 선생의 옛글 여느 구석엔 권정생 선생과 조우한 순간이 적혀 있다. ‘너무나도 훌륭한 젊은 동화작가를 발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결과적으로 권정생은 이오덕보다 몇 해를 더 살았다. 하지만 평생 온몸에 퍼진 결핵과 합병증으로 고생했다. 하루 30분도 앉아 일하기 어려운 날이 많았지만, 한결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누구보다 맑고 강렬하게 사유했다.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언젠가 그의 안동집에서 한담을 나누던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까 뱀이 방에 들어왔어요.” “마당의 잡초를 그냥 두시니까 뱀이란 놈이 방 안과 밖을 구분 못한 모양이군요. 그런데 독사면 어쩌시려고요.” “독사는 방에 안 들어와요.” “그런가요.” 다녀와 그쪽 전문가에게 물었더..

참살이의꿈 2015.08.14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 박두진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그 붉은 선혈로 나부끼는 우리들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절규를 멈춘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 피불로 외쳐 뿜는 우리들의 피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불길이여! 우리들의 대열이여! 그 피에 젖은 주검을 밟고 넘는 불의 노도, 불의 태풍, 혁명에의 전진이여! 우리들 아직도 스스로도 못막는 우리들의 피대열을 흩을 수가 없다. 혁명에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민족, 내가 사는 조국이여 우리들의 젊음들 불이여! 피여! 그 오오래 우리에게 썩어내린 악으로 불순으로 죄악으로 숨어내린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의 썩은 것을 씻쳐 내는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에 맑은 것을 솟쳐 내는 아, 피를 피로 씻고 불을 불로 사뤄 젊음이여! 정한 ..

시읽는기쁨 2015.04.20

녹두장군 전봉준

올해가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두 갑자가 지난 120년이 되는 해다. 1894년 1월에 전봉준 장군 주도로 고부 봉기가 일어났고, 4월에 전주성을 점령하고 곳곳에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11월 우금재 전투에서 패배하며 혁명은 좌절되었고, 12월에 전봉준 등 농민군 주도자가 체포되고 이듬해 3월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책 은 역사학자 이이화 씨가 쓴 전봉준 전기다. 시대에 반항한 패배자여서인지 전봉준에 대한 사료는 재판 기록 외에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는 출생지나 가족 관계도 불분명하며 사후에 그의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역적으로 몰려 죽었기에 자료가 소멸된 것이다. 이이화 씨는 현장을 답사하며 민중의 입을 통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서 전기를 썼다. 전봉준..

읽고본느낌 2014.12.05

아리랑

님 웨일즈가 쓴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1905~1938, 본명 張志樂)의 일대기다.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김산은 삼일운동의 영향을 받고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갔다. 상하이에서 항일 급진주의 그룹과 접촉하며 무정부주의자가 되었고, 1921년경에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평화적인 독립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무장 독립 투쟁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원이 되어 1927년의 광동 봉기에 참여하는 등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두 차례나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김산은 1938년에 트로츠키 분파주의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김산의 생애는 1937년에 옌안에 잠입해서 김산과 면담을 한 님 웨일즈에 의해 알려졌다. 이 책을 읽으며 일제 강점기 때 조국 해방을 위해..

읽고본느낌 2014.04.02

설국열차

빙하기로 멸망한 지구 위에서 인류의 마지막 생존터인 설국열차가 17년째 달리고 있다. 질주가 멈추면 파멸에 이르는 비유가 현대 사회의 모습과 아주 닮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현재 스스로를 파괴하는 중이라는 지젝의 지적대로 종말을 향한 폭주로 설국열차의 이미지가 딱 맞는다. 계급에 따라 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질서와 균형을 강조하는 열차 안은 인간 세상의 작동 시스템과 유사하다. 꼬리칸에 탄 사람들은 체제 전복을 꿈꾼다. 결국 커티스를 중심으로 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앞칸을 차례차례 점령해 나간다. 메시지가 강한 영화다. 나로서는 서구문명의 몰락과 새로운 인류 사회의 탄생이라는 희망으로 읽힌다. 마지막 장면에서 동양 소녀와 흑인 소년으로부터 인류의 새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 15세기부터 역사를 주..

읽고본느낌 2013.08.24

나는 누구인가?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가 장발장의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독백이다. 그는 자베르 경감을 피해 신분 세탁을 하고 시장이 되어 살아간다. 그러다가 다른 데서 장발장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진짜 장발장이라고 고백하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모든 것을 잃는다. 숨기면 시장직을 유지하며 잘 살 수는 있으나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된다. 양심의 갈등으로 번민할 때 그가 스스로 묻는 말이 이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는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자아 인식에 눈뜰 때 던지는 질문이다. 사춘기 열병의 원인도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고뇌해야 할 화두를 받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으로 주..

참살이의꿈 2013.04.09

함석헌 읽기(2) - 인간혁명

'혁명'이라는 말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2권은 함석헌 선생의 혁명에 관한 글을 묶었다. 그러나 선생은 힘에 의한 혁명을 주장하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인간 혁명'이다. 폭력에 의한 혁명은 또 다른 혁명을 낳을 뿐이다. 인간이 변하는 혁명이라야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나갈 길은 비폭력혁명의 길이다. 이것이 일반 혁명가들과는 다른 선생의 독특한 점이다. 선생은 혁명의 근거를 생명의 본성에서 찾는다. 생명은 변화하고 자라는 것이다. 나무는 연륜을 지어야 하고, 뱀은 허물을 벗어야 한다. 끊임없이 탈바꿈함으로써 생명은 진화한다. 또,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의 지배자는 보수주의와 반동주의로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역사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악에 대한 투쟁이 곧 혁명이다. 현대문명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읽고본느낌 2013.01.07

로얄 어페어

18세기 후반 덴마크,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는 정략결혼으로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왕에게 시집간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크리스티안은 첫날밤부터 왕비를 실망시킨다. 왕의 주치의로 들어온 독일인 요한은 계몽사상에 영향을 입은 점에서 왕비와 잘 통하게 된다. 왕의 신임 아래 실권을 장악한 요한은 개혁 정책을 밀고 나가지만 기득권층의 저항을 받는다. 그는 왕비와의 불륜 스캔들로 체포되어 처형된다. 왕비는 유배되고 곧 병사한다. 개혁은 좌절되고 덴마크는 다시 중세의 어둠에 빠진다. 영화 '로얄 어페어[A Royal Affair]'는 왕비와 요한의 사랑, 그리고 개혁과 실패라는 두 개의 줄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예는 찾아볼 수..

읽고본느낌 2013.01.04

[펌] 도올의 혁세격문

혁세격문(革世檄文) 지금 조선의 들판이 혁명의 불길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지금 조선의 먼동은 "다시 개벽"의 눈부신 햇살을 발하고 있다. 자고 있는 자들이여, 모두 깨어나라! 새 시대, 새 정치의 함성이 그대를 부른다. 깨어난 4천만의 유권자들이여, 남녀노소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투표장으로 가라! 19일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혁명의 물결이 이 아사달 신시를 휘덮으리라! 조선의 깨인 자들이여! 남김없이 혁명의 대오에 어깨를 엮어라! 환인 하느님께서는 이 신시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거룩한 건국 치세이념을 내리셨다. 그런데 지금 어떠한가? 지금 우리는 홍익(弘益)이 아닌, 홍해(弘害), 홍살(弘殺)의 정치를 자행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해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광분하고 있는 것이다..

길위의단상 2012.12.17

제대로 된 혁명 / 로렌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지나치게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이 미워서 혁명을 해서는 안된다 그저 그들의 눈에 침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을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을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쪽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건 얼마나 재미있는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작은 귀족이 되는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들을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우리가 이제껏 너무 많이 해온 게 아닌가 노동을 폐지하자,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

시읽는기쁨 2010.02.05

한 사람의 혁명

‘한 사람의 혁명’(One-Man Revolution)은 미국의 평화운동가이며 기독교 아나키스트인 애먼 헤나시(1893-1970)가 제창한 개념이다.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오늘 당장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세상이나 다른 사람 핑계를 댈 필요도 없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우선 자기 자신이 변하는 것이고, 그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이것이 ‘한 사람의 혁명’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내용이다. 애먼 헤나시는 한 마디로 용기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그대로 실천했다. 불의에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그의 아나키스트 철학을 실천하며 살다 죽었다. 젊었을 때 그는 징병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동참을 권유하다가 교도소..

참살이의꿈 2008.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