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제대로 된 혁명 / 로렌스

샌. 2010. 2. 5. 15:55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지나치게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이 미워서 혁명을 해서는 안된다

그저 그들의 눈에 침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을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을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쪽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건 얼마나 재미있는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작은 귀족이 되는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들을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우리가 이제껏 너무 많이 해온 게 아닌가

노동을 폐지하자,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노동을 그렇게 하자! 재미을 위한 혁명을 하자!

 

- 제대로 된 혁명(A Sane Revolution)/ D. H. Lawrence

 

혁명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하지만 그래도 혁명을 꿈꾸는 건 즐거운 일이다. 세상의 혁명이 벅차거든 나 자신만의 혁명이라도 꿈꿔 보자. 딱딱하게 박제된 혁명이 아니라 말랑말랑하게 살아있는 혁명을 꿈꾸자. 저 거룩하고 엄숙한 위엄대신에 웃고 즐거운,재미있는 혁명을 꿈꾸자. 돈을 재미있게 비웃고, 관습으로 해 온 일에다가도 재미있게 뒷발질을 하자.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혁명을 하자.

 

D. H. 로렌스는 '체털레이 부인의 사랑'을 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전통적인 도덕이나 관습에 갇히지 않았으며 대단히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렇게 춤추는 혁명을 꿈꿀 수 있었을 것이다. 로렌스가 활동하던 1900년대 초반의 시대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그가 당시에 전개된 사태의 본질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그 유토피아의 독재자이다.' -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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