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51

저물 무렵 / 김시습

천 봉우리 만 골짜기 그 너머로 한 조각 구름 밑 새가 돌아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갈거나 바람 자니 솔 그림자 창에 어리고 향 스러져 스님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버리니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사이 남아 있으리 - 저물 무렵 / 김시습 萬壑千峰外 孤雲獨鳥還 此年居是寺 來歲向何山 風息松窓靜 香銷禪室閑 此生吾已斷 棲迹水雲間 - 晩意 / 金時習 새벽 안개가 낮이 되도록 자욱하다. 그저께 내린 첫눈의 자취가 남아 있는 뒷산도 안개 속에 잠겨 있다. 계절도 나이도 쓸쓸히 저물어간다. 저잣거리를 기웃거리지 말고 더 고독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책을 불사르고 방랑의 길에 오른 매월당을 생각한다.

시읽는기쁨 2018.11.26

나의 거처 / 김선향

너는 고산지대에 핀 말나리꽃의 줄기다 빈집 절구독에 고인 빗물에 비치는 낮달이다 붙박이별을 이정표 삼아 비탈길을 가는 나귀 걸음걸이다 너는 무명천에 물들인 쪽빛이다 노인정 앞 평상에 내려앉은 후박나무 잎사귀다 - 나의 거처 / 김선향 꽃과 잎을 주목하지 줄기를 살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말나리꽃의 '줄기'다, 라는 독백에서는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결연한 고독이 감지진다. 더구나 고산지대에 핀 말나리꽃의 줄기다. 다른 연이 주는 느낌도 비슷하다. 무욕(無欲) 하기에 당당하게 외로울 수 있다. 시인의 걸음에서는 묵향이 풍긴다. 제목은 '나'이지만 시에서는 '너'라고 한 것도 재미있다. '우리'의 거처는 마땅히 이래야 하리라는 은유 같다. 이런 집 한 채 짓고 살면 어떤 호화 저택이 부러우랴. 김선향 시인이..

시읽는기쁨 2018.08.02

불안의 책

오랜만에 묵직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기분은 많이 가라앉았다. 색깔로 치면 회색의 우울한 감정이었다. 고독, 허무, 몽상, 냉소, 권태, 무기력, 비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 책을 쓴 페르난두 페소아는 포르투갈 사람으로 신비에 싸인 인물이다. 18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났고 쓸쓸한 유년기를 보낸 뒤 번역 일을 하며 글을 썼다. 천성적으로 고독했으며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많은 글을 썼지만 생전에는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도 페소아가 사망한 지 47년 만인 1982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은 리스본에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소아르스의 고백록이라 할 수 있다. 소아르스는 곧 페소아 자신이다. 그가 살아간 공간은 사무실과 셋방과 리스본의 거리 뿐으로 좁았다. 사색하고..

읽고본느낌 2018.02.20

자발적 고독

'자발적 가난'이 조용한 흐름을 타고 있다. 서구에서부터 시작된 '심플 라이프(Simple Life)' 운동의 일환이다. 재물을 더 모으려 하지 않고, 실생활에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은 없애며, 간소한 삶을 지향한다. 요사이는 '자발적 고독'이라는 말도 간간이 들린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자면 자발적 고독 역시 자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자발적 가난과 무관하게 인간관계가 피곤해서 고독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자발적 고독은 부정적 의미의 고독과는 다르다. 대인기피증이나 노년에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외로움은 본인 의사와 별개로 스트레스를 주는 고독이다. 그러나 자발적 고독은 스스로가 선택한 삶의 태도다. 경쟁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나름의 투쟁이다...

참살이의꿈 2017.10.23

혼자 있고 싶은 병

혼자 있고 싶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혼자 있고 싶다. 나만큼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더 혼자 있고 싶어진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귀찮다. 한둘 정도 잠깐 만나는 일이야 괜찮지만 여럿이 모이면 너무 피곤하다. 나는 천성적으로 고독한 동굴인인가 보다. 혼자서 빈둥거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 산에 갈 때도 주로 혼자다. 이유는 없다. 혼자 걷는 게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이런 증상이 더 심해졌다. 심지어는 손주가 찾아와도 빨리 돌아갔으면 싶다. 물론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혼자 지낸다고 외로운 건 아니다. 혼자 있는 데 재미를 붙이면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게 된다. 선택한 고독은 쓸쓸하지 않다. 내적으로 충일한 고독이 있고, 즐거운 고독도 있다. 나는 고독의..

참살이의꿈 2017.07.19

죽어가는 자의 고독

죽음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건 병과 고통이다. 죽음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생명은 반드시 소멸한다. 누구도 예외가 없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죽음 전에 찾아오는 고통과 상실감이 죽음을 두렵게 한다. 정신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깨끗하고 품위 있게 가고 싶다. 은 고통보다는 고독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사실 고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죽어가는 자에게는 육체의 고통과 함께 정신적 고독도 상당히 심각하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하고 부담만 주고 있다고 느낀다면 참으로 외로울 것이다. 현대에 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수명의 증가, 격리 시설, 개인주의 등이 전 시대와 달리 고..

읽고본느낌 2016.11.23

혼자 노는 즐거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더 큰 즐거움은 혼자 놀 때 찾아온다. 옛사람이 말하는 독락(獨樂)의 즐거움이다. 늙어서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누구나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너무 관계에 매달리면 자신에게 소홀해진다. 밖으로 향하는 재미는 더 많은 자극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따르다가는 늘 숨이 찰 수밖에 없다. 주위의 친구보다는 내가 나의 벗이 되어야 한다. 오직 담담할 뿐이다. 노자가 말한 무미지미(無味之味)야 말로 참맛이다. 홀로 책을 읽고, 홀로 산길을 걷는다. 이보다 더한 충만이 없다. 풀, 나무, 구름, 바람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진정으로 고독한 자는 외롭지 않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게 편안하다. 마음이 분주하지 않다. 고독을 찬양하는 문화는 사라졌다. 스마트폰은..

참살이의꿈 2015.07.21

따스한 고독

거의 칩거 상태다 보니 사람 만나는 일이 한 달에 두어 번밖에 안 된다. 고립도 습관이 되니 편하다. 뭔가 부족을 느껴야 모임에도 나가고 할 텐데 지금에 만족하고 있으니 그냥 내 식대로 살고 있다. 삶의 길에 정답은 없다. 나를 기준으로 남을 재단하는 것은 오만이다. 남에게 평가를 받고 싶지 않듯, 나도 남을 평가하고 싶지 않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열심히 움직이면 되고, 나 같은 사람은 정적인 삶을 살면 된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바둑 모임도 즐겁고, 가끔 동기들끼리 당구를 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대화를 하게 되면 달라진다. 그들과 나 사이에 높은 장벽을 느낀다. 소통을 하려고 애쓴다고 소통이 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 ..

참살이의꿈 2014.10.11

고슴도치의 가시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그러자 그들은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가시가 서로를 찔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이와 같이 그들은 두 악(惡) 사이를 오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했다."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인데, 인간의 외로움과 공허함으로부터 생겨나는 사교의 욕구는 서로를 한 덩어리가 되게 한다. 그러나 너무 가까워지면 불쾌감과 반발심이 일어 다시 떨어진다.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이 인간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정중함과 예의다. 일종의 중용인 셈이다. ..

참살이의꿈 2013.11.12

백년 동안의 고독

장맛비를 벗삼아 읽었다. 은 콜롬비아 작가인 마르케스(G. G. Marquez)의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마콘도에서 살아가는 5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에 관한 이야기다. 선조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마콘도 마을을 건설했을 때는 에덴동산이 연상될 정도로 낙원이었다. 그러나 집시들이 찾아와 문명 세계의 신기한 물건을 보여주면서부터 마을은 변해 간다. 부화뇌동하는 주민들은 변화의 흐름에 저항할 능력이 없다. 현대적 행정 조직과 철도가 들어오고 미국인은 바나나 농장을 지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을은 몰락하고 부엔디아 가문의 맨 마지막 후예가 끝을 목도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맺는다. 마콘도는 콜롬비아에 있는 작은 마을이 아니라 현대화 과정을 밟아가는 모든 공..

읽고본느낌 2013.07.11

나무늘보

지금도 사람들은 말한다. 하는 일 없이 심심해 어떻게 지내느냐고. 그러면 허허, 웃을 수밖에 없다. 빈둥거리는 게 일이라고 변명한들 별로 믿지 않는 눈치다. 세상에서 말하는 일이 없이도 나는 충분히 재미나다. 사람들은 각자 닮은 동물의 속성이 있다. 나는 동물 중에서도 나무늘보에 가깝다. 나무늘보는 게으름의 대명사다. 하루에 18시간을 잔다고 한다. 나도 하루 10시간을 자니 사람 나무늘보과가 맞다. 나무늘보가 나뭇가지 하나면 만족하듯 나도 작은 방과 책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무늘보 선생의 유유자적을 닮자면 아직 멀었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나무늘보에 더 가까워진다. 얼마나 답답한지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앞 동네에 00 있재? 대구에 살고 있는데 가끔 고향에 오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더라. ..

참살이의꿈 2012.11.13

고독의 능력

친구와 등산을 하고 내려와 작은 마을을 지날 때였다. 어느 허름한 집 앞에서 노인이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자세로 보아 아마 하루 종일 그렇게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앞을 지나가도 별 반응이 없었다. 친구가 말했다. “늙어서 저렇게 될까봐 두려워.” 그러나 노인에게는 노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없을까. 쇠약하고, 일을 못하고, 외롭다는 게 저주일까.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꽃에 찾아드는 나비를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꼭 쓸쓸하기만 한 걸까. 저 노인은 혼자만의 여유와 고독을 즐기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과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바쁘고, 젊고, 새로운 것을 찬양한다. 또 그런 관점에서 인간이나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게으르고 낡은 것은 부덕이다. 외로움과 고독도..

참살이의꿈 2011.09.18

쓸쓸해서 머나먼 / 최승자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 쓸쓸해서 머나먼 / 최승자 최승자 시인의 근황이 조선일보에 실렸다. 놀랍게도 시인은 심신쇠약과 정신분열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시인은 가족도 없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여관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한다. 밥 대신 소주로 연명하며 죽음 직전 단계까지 간 시인을 외삼촌이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신문에 실린 퀭한 눈의 시인의 얼굴이 애처로웠다. 세상의..

시읽는기쁨 2010.12.08

독방살이

독방살이를 2년 동안 하고 있다. 옆에 조교가 있지만 서로 말이 별로 없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하루 내내 몇 마디밖에 못 할 때도 있다. 다른 사무실로 마실을 가는 일도 별로 없으니 늘 혼자다. 그나마 교실에 들어가서 떠들 일이 있으니 입에 곰팡이가 생기지는 않아 다행이다. 독방살이의 결과인지 사람을 만나면 말이 많아졌다. 나는 과묵한 편이고 주로 듣는 쪽이다. 예전에는 ‘크렘린’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런데 요사이는 나도 말을 많이 한다. 또 마음 속 생각도 잘 드러낸다. 아마 독방살이의 외로움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말에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가 보다. 어쩌다 말 할 기회가 찾아오면 얼씨구나, 하고 떠들게 된다. 말이 많아진 나를 보고 내가 놀라기도 한다. 열심히 지껄이고 있는데 상대방은 딴..

길위의단상 2010.10.08

겨울 빗속을 달리다

약속이 깨지고 헛물켠 날, 마침 겨울비가 내렸다. 이럴 때는 빗속 드라이브가 제격이지.... 외곽순환도로에 차를 올리고 액셀을 밟았다. 'Secret Garden'의 볼륨을 잔뜩 올렸다. 빗속을 달릴 때 습관 하나, 가능하면 와이퍼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기묘하게 굴절되어 형체를 잃는다. 마치 작은 잠수정을 타고 심해 속을 헤엄치는 것 같다. 그 깊은 고립이 좋다.... 외곽순환도로를 반 바퀴 돌아서 토평 강가에 섰다. 제 속의 온기를 못내 감춘 채, 강은 그렇게 거기에 있었다.

사진속일상 2010.02.10

가을날 /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 가을날 / R. M. Rilke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 이름을 가만히 속삭이는 것만으로도 시심(詩心)이 저절로 샘솟지 않는가. 릴케야말로 가장 시인다운 이름을 가진 시인이라고 생각된다. 그저 그가 좋았던 건 순전히 ..

시읽는기쁨 2009.11.05

한택식물원의 가을

답답했다. 가을이 고프고 꽃들이 보고팠다. 무리인 줄 알지만 남쪽으로 핸들을 돌려 한택식물원으로 달려갔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밤에는 악몽을 꾸었다. 찬 바람이 빈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한참동안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아득한 심연으로 나는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에도 날 잡아주는 손 없었다. 모두들 뒤돌아서서 외면했다. 가을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가슴으로 안을 수 없는 가을이었다. 가을 속을 걸으며 더욱 진해지는 외로움만 만났다. 시들어가는 가을꽃들이 울고 있었다. 그래도, 저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들을 위하여.... 이 찬란한 가을을 위하여 건배-

사진속일상 2009.10.27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은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시읽는기쁨 2009.09.15

혼자 있는 즐거움

이곳에 내려와 혼자 생활한지 일주일째입니다. 혼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우선 불편하지 않느냐고 걱정합니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상이 남자가 하기에 귀찮고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내 한 몸 살아가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사실 그다지 힘들지도 귀찮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주부가 하는 일과는 비교가 될 수가 없지요. 그것도 어쩌다가 하는 일이니까요. 사람들이 걱정해 주는 말에 그냥 괜찮다고 답해주지만 사실 내 마음은 얼마나 좋고 흡족한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좋은 마음을 드러내놓고 자랑할 수는 없지요. 내가 여기서 즐거운 이유는 일상적인 삶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출근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도 없고, 싫어도 해야만..

참살이의꿈 2006.08.10

외롭고 힘들 때

삶이 외롭고 힘들 때 찾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장소가 있나요? 어제 오후에는 서해안의 외진 곳, 신두리 사구(沙丘)를 찾아갔다. 신두리 사구는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보존된 유일한 모래 언덕이라고 하는데, 약 1만년여에 걸쳐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해안가를 따라 사람 키 높이 정도의 모래 언덕이 바다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사구 위에는 여러 종류의 키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는데 동식물이 관련된 생태적으로도 소중한 장소라고 한다. 저녁 무렵, 이 인적 드문 사구에서 바다를 마주보고 앉아 있으면 주변의 황량한 풍경과 어울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어떤 마음의 아픈 상처라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쓸쓸한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그리..

사진속일상 2004.04.30

조나단의 고독

조나단 곁을 모든 갈매기들이 떠나갔다. 아니 그 전에 별나게 행동할 때부터 조나단은 이미 외톨이가 되었다. 가족도, 가까웠던 동료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고독했다. 조나단이 관심을 가진 것은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얼마나 멋지게 비행을 하느냐였다. 어부들이 던지는 썩은 고기 냄새에 길들여진 다른 갈매기들에게 조나단의 행동은 미친 짓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하늘을 멋지게 날려고 하는 모험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팠고 외로웠다. 패배감과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행복을 위해서 평범한 갈매기로 만족하며 살아가려는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내적인 충동이 그를 높은 하늘로 내몰았다. 결국 그는 자유를 얻는다. 동료들의 몰이해와 비난 가운데 그는 혼자서 비..

읽고본느낌 2003.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