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등산을 하고 내려와 작은 마을을 지날 때였다. 어느 허름한 집 앞에서 노인이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자세로 보아 아마 하루 종일 그렇게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앞을 지나가도 별 반응이 없었다. 친구가 말했다. “늙어서 저렇게 될까봐 두려워.” 그러나 노인에게는 노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없을까. 쇠약하고, 일을 못하고, 외롭다는 게 저주일까.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꽃에 찾아드는 나비를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꼭 쓸쓸하기만 한 걸까. 저 노인은 혼자만의 여유와 고독을 즐기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과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바쁘고, 젊고, 새로운 것을 찬양한다. 또 그런 관점에서 인간이나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게으르고 낡은 것은 부덕이다. 외로움과 고독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는 노인을 보면 연민을 느낀다. 현대인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조직이나 관계망 속에 있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인간에게는 소속의 욕구가 있지만 고독의 욕구도 존재한다. 둘은 새의 두 날개처럼 균형이 맞아야 올바로 날 수 있다.
은퇴를 하고 보니 점점 중요해지는 게 고독의 능력이다. 고독의 욕구를 무시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독은 외로움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외로움이 소외에 따른 고통이라면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함이다. 고독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능력이며 재미다. 그러나 내면이 가난한 사람에게 고독은 외로움과 동의어다. 그런 사람은 은퇴 뒤에도 일과 활동을 통해 고독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활동의 즐거움 뒤에는 늘 허전함이 찾아온다. 불행하게도 외면에 집중할수록 내면의 외로움은 더욱 짙어진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나는 과연 고독의 능력이 있는가? 글쎄다. 혼자서 잘 논다고 고독을 즐기는 능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고독에는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하지 않고서는 고독을 향유할 수 없다. 고독을 즐길 줄 안 사람으로 소로우가 있었다. 나 역시 그의 이 말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도 같이 있으면 곧 싫증이 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나는 고독만큼이나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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