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49

나무처럼 / 오세영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우리도 그렇게살 일이다.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우리도 그렇게클 일이다.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듯우리도 그렇게살 일이다.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듯 - 나무처럼 / 오세영  기온이 뚝 떨어졌다. 눈을 뜨니 냉랭한 기운이 얼굴에 닿아 이불을 끌어올렸다. 가을을 제대로 즐기기 전에 겨울이 불시에 쳐들어 온 것 같다. 따끈한 믹스커피 한 잔을 감싸 쥐고 너와 내가 나눌 수 있는 온기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의 삶이란 게 너무 소란하고 번잡하다. 벌판..

시읽는기쁨 2024.11.06

장어로 보신하고 공원을 걷다

아내가 몸살(?)을 앓은 뒤끝이라 몸보신을 하러 장어집에 갔다. 큰 것과 중간 것, 두 마리를 시켜서 한껏 먹었다(8만 원). 오랜만의 장어 기름이 속에 부담이 되었는지 저녁에 같이 설사가 나와서 실소를 했다. 이래서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는가 보다. 봄에 들면서 식사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겨울은 입맛이 없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위에 부담이 돼서 소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식 소동(小食 小動)'의 생활이었다. 다행히 봄이 되면서 입맛이 돌아오고 위장도 괜찮아졌다. 덕분에 좀 더 활기차졌다. 식사 후 물빛공원을 찾아서 두 바퀴를 돌았다. 황사가 끼었지만 산책하기에는 무난한 낮이었다. 풍성하진 않아도 아담한 장미 터널이 있고, 물빛버즘도 공작 날개처럼 초록잎을 펼치고 있었다. 이즈음의 나..

사진속일상 2023.05.23

물빛버즘(211227)

네 앞을 지나가며 '겨울나무'를 나직이 읊조린다. 오늘은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 자리'라는 구절에 마음이 끌리는구나. '늘 한 자리'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는 자리가 아닌가. 비가 오면 비와 한 몸이 되고, 눈이 오면 눈과 한 몸이 되고, 바람이 불면 바람과 한 몸이 된다. 너의 몸짓은 오로지 순리(順理)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 같다. 공자가 말한 '태어나면서 아는 자[生而知之者]'가 바로 네가 아니던가.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천년의나무 2021.12.28

바림

나무의사 우종명 선생이 쓴 나무에 관한 에세이다. 그러나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묵직하다. 철학, 문학 등 다방면의 지식이 나무 이야기에 섞여 씨줄 날줄로 교차한다. 나무와 평생을 함께 살면서 얻은 깨달음이 녹아 있다. 나무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선생의 일가견을 글을 통해 접한다. 책은 5부로 되어 있다. 1부는 나무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오랜 시간이 낳은 선물일 것이다. 2부는 나무 예찬이다. 향기로운 나무, 뿌리 깊은 나무, 아름다운 나무, 죽지 않는 나무로 나누어져 있다. 3부는 나무의 본성과 생태적 특징을 다루었다. 생물학적 관찰에서 얻은 결과다. 4부는 나무가 우리에게 베푼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몽상, 걷기, 풍경, 치유로 되어 있다. 5부는..

읽고본느낌 2019.06.07

겨울 나무 / 이원수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오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지내 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는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 겨울 나무 / 이원수 겨울에는 산에 거의 가지 않지만, 가볍게 오르는 뒷산 길에서 가끔 이 동요를 읊조린다. 산꼭대기 가까운 비탈에 이 노래와 비슷한 이미지의 겨울 나무가 있다. 지금도 초등학생이 이 노래를 배우는지 모르지만 우리 때는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노래 분위기는 생기발랄한 아이들보다 차라리 지금의 나한테 더 맞는 것 같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이 구절만으로도 쉽게 감정 이입이 되며 나무를 쓰다듬게 된다.

시읽는기쁨 2019.01.25

꼭대기의 수줍음

능선에서 자라는 나무를 멀리서 보면 키가 잘 맞추어져 있다. 누구 하나 우뚝 서려 하지 않고 골고루 햇빛을 받으며 자라난다. 비슷한 현상으로 숲에 들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나무들이 제 영역을 지키는 걸 볼 수 있다.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각자의 영역을 적당하게 확보해서 공간을 골고루 나눠 쓰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꼭대기의 수줍음'이라 명명했다. 나무는 자기 절제를 할 줄 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공동체를 위해서나 제일 현명한 선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저 혼자만 잘살려고 싸우다가는 함께 파멸이라는 걸 나무는 안다. 인간 세상과 너무 비교된다. 나무를 시인이요, 철인(哲人)이라 불러 마땅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90%가 부자를 존경하지 않는..

참살이의꿈 2018.09.16

팽나무가 쓰러지셨다 / 이재무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哭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케키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들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 팽나무가 쓰러지셨다 / 이재무 장마가 시작된 어제였다. 수원 영통의 500년 느티나무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불과 한 달 전에 이 나무를 찾아갔었다. 우람하고 멋진 모습에 반했는데 무슨 변고..

시읽는기쁨 2018.06.27

산림청 선정 100 보호수

우리나라에는 14,000그루 가량의 보호수가 있다. 산림청에서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라는 주제로 그중 100그루를 골랐다. 전설이나 설화가 전해지는 대표적인 나무들이다. 오래 되었거나 아름답다기보다 사연 중심으로 선정했다. 그래도 많은 보호수 중에서 고른 참고할 만한 자료라고 하겠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그루는 다음과 같다. 01 은행나무 서울 도봉구 방학동 546 02 회화나무 서울 중구 정동길 21 03 측백나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13-175 04 느티나무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산177 05 향나무 서울 서초구 1748-7 06 은행나무 인천 강화군 교동면 무학리 542 07 느티나무 인천 강화군 교동면 교동서로 257번길 42-1 08 소나무 인천 강화군 선원면 강화동로 924 ..

길위의단상 2018.06.08

나무 철학

'내가 나무로부터 배운 것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나무를 소재로 책 한 권 가득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강판권 선생의 솜씨가 놀랍다. 나무에서 배우는 교훈을 내가 쓴다면 과연 몇 페이지나 나갈 수 있을까, 금방 생각이 막혀 버릴 것이다. 선생은 수학(樹學)이라는 새로운 학문 체계를 만드는 생태사학자다. 전공은 사학이었으나 40세가 되어서 나무와 인연을 맺었고, 그 뒤로 나무를 통해 세계사와 문화를 읽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무에 관한 열 권이 넘는 책을 냈다. 은 3부 28장으로 되어 있다. 제 1부: 순리에 맞게 변화하는 나이테의 철학, 단풍의 철학, 낙엽의 철학, 흔들림의 철학, 원만의 철학, 무심의 철학, 사랑의 철학, 독락의 철학, 위기의 철학, 역지사지의 철학 제 2부: 단순하고 절박..

읽고본느낌 2018.05.11

나목 / 신경림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밴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 나목 / 신경림 겨울나무는 영하 이삼십 도의 추위를 어떻게 견뎌낼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수액이 얼면 세포가 파괴될 텐데 얼지 않게 하는 어떤 작용이 있을 것이었다. 겨울이 되면 부동액 성분이 방출되는지도 모르고, 나무 내..

시읽는기쁨 2017.11.29

스마트폰으로 찍은 나무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 있다. 꽃, 동물, 건축, 풍경 등 18개 분야로 나누어 시상을 한다. 스마트폰 사진 하면 뭔가 부족할 것 같지만 입선작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해가 갈수록 화질이 좋아지고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기술력이 그만큼 진보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내 관심을 끄는 분야는 나무다. 나무를 잘 찍고 싶어 새 카메라를 사야 할까, 고민중이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찍은 나무 사진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좋은 사진이 안 나오는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나무를 보는 내 눈 탓이었다. 똑딱일지라도 스마트폰보다는 낫다. 어설픈 목수에게 아무리 좋은 연장을 쥐어준들 솜씨가 모자라는데 무얼 할까. 기계 욕심만 내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아이폰 사진 공모전에서 올해(2017) 나무 분야 ..

길위의단상 2017.09.10

세계의 나무

표지를 펼치면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 사진이 시선을 확 끈다. 이 책은 나무를 사랑하는 영국의 토머스 파켄엄이 세계에서 크고 아름답고 진귀한 나무 60그루를 골라 소개한 사진집이다. 나무를 설명하는 글이 현장 분위기와 나무에 대한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어 좋다. 틀에 박힌 식물 해석이 아니다. 나무를 나눌 때 종류가 아니라 '자이언트(Giants)' '난쟁이(Dwarfs)' '므두셀라(Methuselahs)' '꿈(Dreams)' '위기에 처한 나무(Trees in Peril)'로 단원 제목을 정한 것도 특이하다. 지은이는 출판사의 지원으로 4년 동안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나무 사진을 찍었다. 자태가 우아하고 개성이 강한 나무들이었다. 지은이의 열정도 그렇지만 마음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지원해..

읽고본느낌 2017.08.19

나무 기도 / 정일근

새해에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린 너무 빠르다, 세상은 달려갈수록 넓어지는 마당 가졌기에 발을 가진 사람의 역사는 하루도 편안히 기록되지 못했다 그냥 나무처럼 붙박혀 살고 싶다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고 어린 자식 기르며 말씀 빚어내고 빈가지로 바람을 연주하는 나무로 살고 싶다 사람들의 세상은 또 너무 입이 많다 입이 말을 만들고 말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는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적을 만들고 그리하여 입 속에서 전쟁이 나온다 말하지 않고도 시를 쓰는 나무의 은유처럼 온몸에 많은 잎을 달고도 진실로 침묵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침묵으로 웅변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삶은 베풀 때 완성되느니 그늘 주고 꽃 주고 열매 주는 나무처럼 추운 아궁이의 뜨거운 불이 되어주기도 하고 사람의 따뜻한 가구가 되는 나무처럼 가진 것..

시읽는기쁨 2017.01.01

서울 사는 나무

이 책을 읽으며 먼저 지은이에게 관심이 갔다. 나무와 관계된 이력이 2년밖에 안 되는데 이런 책을 쓴다는 게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다. 표지 뒷면에 적힌 장세이 씨 자신에 대한 소개가 재미있다.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남. 사주가 좋아 명리학을 공부한 할아버지의 총애를 듬뿍 받음. 딸만 넷인 집안의 아들 대용으로 취학 전까지 빡빡머리에 바지만 입음. 인생이 정해진 대로 흐른다는 걸 내내 의심하며 자람. 2001년 부산대학교 사범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졸업장을 안았으나 지긋지긋한 IMF 여파로 그해 응시하려던 분야의 임용고시가 열리지 않음. 반년 동안 한 교육학 공부, 말짱 헛것 됨. 인생의 뜻대로 안 된다는 걸 절감함. 2002년 방송국 PD가 된 언니 따라 엉겁결에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음. 언니..

읽고본느낌 2016.04.01

큰 꽃 / 이문재

꽃을 내려놓고 죽을 힘 다해 피워놓은 꽃들을 발치에 내려놓고 봄나무들은 짐짓 연초록이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는 맑은 노래가 있지만 꽃 지고 나면 봄나무들 제 이름까지 내려놓는다 산수유 진달래 철쭉 라일락 산벚... 꽃 내려놓은 나무들은 신록일 따름 푸른 숲일 따름 꽃이 피면 같이 웃어도 꽃이 지면 같이 울지 못한다 꽃이 지면 우리는 너를 잊는 것이다 꽃 떨군 봄나무들이 저마다 다시 꽃이라는 사실을 저마다 더 큰 꽃으로 피어나는 사태를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꽃은 지지 않는다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고 더 큰 꽃을 피워낸다 나무는 꽃이다 나무는 온몸으로 꽃이다 - 큰 꽃 / 이문재 지난가을 등산할 때 Y가 산길 따라 많이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보고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다. 눈에 익은 나무가 아..

시읽는기쁨 2015.12.18

다시, 나무를 보다

나무 관계 일을 하시는 분에게서 몇 달 전에 추천받은 책이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서점을 찾았다가 구입하게 되었다. 그분이 밑줄을 그으면서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럴 만한 책이란 걸 몇 장 넘기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는 나무를 통한 삶의 지혜와 통찰이 반짝이는 책이다. 저자인 신준환 선생은 국립수목원장을 지낸 분이다. 전문가시니 나무에 대한 박식함이야 논외로 쳐도 나무만이 아니라 생명과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깊이가 대단하시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 바탕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다. 단순히 나무에 관한 책이 아니라 깨달음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은 3부로 되어 있는데 지은이 생각의 중심은 1부인 '나무의 인생학'이다. 그중 한 부분은 이렇다. 큰 나무일수록 많이 흔들린다. 그리고 나무..

읽고본느낌 2015.08.19

일본(1) - 조몬스기 트레킹

7월 31일 아침 5시 30분에 집을 출발하여 저녁 7시에 야쿠시마에 들어왔다. 인천공항에서 가고시마공항까지 비행기로 1시간 30분, 가고시마항에서 야쿠시마 안보항까지는 배로 2시간 30분이 걸렸다. 일본 여행은 처음인데 무척 가까운 나라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비슷했다. 그런데 땅에 내려보니 완전히 다른 문화의 나라였다. 일본의 첫인상은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회색 톤의 단조로운 주택 색깔이었다. 민숙에서 4시에 기상하다. 대절한 택시로 이라카와 등산로 입구로 이동하여 5시 20분에 트레킹을 시작하다.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새벽이다.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다. 길은 철길을 따라간다. 이 철길은 벌채한 야쿠시마 숲의 나무를 아래로 운송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철길만 8.2km를 걸어 ..

사진속일상 2015.08.06

나무가 할 일 / 박노해

바람이 거셀수록 나무가 할 일은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 키가 커질수록 나무가 할 일은 가지를 떨궈내리는 것 거목이 돼갈수록 나무가 할 일은 제 안을 비워 영원을 품어가는 것 그리하여 나무가 할 일은 단단한 씨앗 속에 자신을 담아 푸른 산맥으로 돌아가는 것 - 나무가 할 일 / 박노해 '나무' 대신에 '나'를 대입하여 읽는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일도, 가지를 떨궈내리는 일도, 여전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인간이 나무처럼 성장한다는 건 적어도 나에게는 헛말이구나. '한 일'은 하나도 없고 '할 일'만 남아 있을 뿐, 그것도 아득한 약속으로만.....

시읽는기쁨 2015.06.22

선비가 사랑한 나무

나무 학자인 강판권 선생이 성리학의 기본 개념에 나무를 접목해 설명한 책이다. 성리학 개념에 어울리는 나무를 정하고, 관계되는 성리학자를 골랐다. 나무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신선한 시도다. 지은이는 16가지 유교 개념에 하나씩의 나무를 배당했다. 나무, 개념, 유학자가 한 묶음을 이룬다. 옛날 중고등 학생 시절 시험 볼 때 서로 관계되는 것끼리 줄을 그어 연결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들을 섞어 놓는다면 과연 얼마나 의미가 통하게 연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나무 자체의 특징보다는 책 제목대로 선비가 사랑한 나무 정도가 맞을 것 같다. 성리학자들은 나무를 개인적인 학문과 성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근사(近思)의 공부 중 하나가 나무였다. 그것은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하늘을 향해 살아가는 모양에서 ..

읽고본느낌 2015.02.27

상처

산길을 걷다가 소나무에 새겨진 상처를 보았다. 오래된 나무에는 거의 전부 이런 상처가 나 있었다.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홈을 파서 송진이 쉽게 흘러내리도록 한 흔적이다. 자원이 부족했던 일제 강점기 때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 산의 소나무들이 이런 피해를 보았다. 수십 년이 흘렀어도 소나무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마음에 남겨진 상처는 평생을 가면서 괴롭힌다. 심리 치유를 하는 것은 저 소나무처럼 보형재를 발라 더는 썩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 정도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아픔이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사진속일상 2014.06.23

고목 / 김남주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성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년 쉽게 살고 싶지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 주고 싶다 - 고목 / 김남주 지구에서 수백 년을, 심지어는 천 년을 넘게 살아내는 생명체는 나무밖에 없다. 일본 야쿠시마에는 오천 년이 넘은 삼나무도 있다고 한다. '세인트' 급 반열에 올려도 무방할 것 같다. 동네 어귀에 있는 정자나무 곁에만 가도 나무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압도된다. 세상의 신고를 다 견뎌내며 버텨온 수백 년의 세월이 무겁다. 경건하고 겸허해진다. 시의 한 구절을 자꾸 되뇌게 된다.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년 / 쉽게 살고 싶지 않다 저 나무처럼'

시읽는기쁨 2014.01.16

그리운 나무 / 정희성

사람은 지가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그 사람 가까이 가서 서성대기도 하지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을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 그리운 나무 / 정희성 누군가가 우주를 '색(色)과 욕(欲)'으로 정의한 걸 본 적 있다. '욕(欲)'이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면, '그리움'으로 바꿔 불러도 좋겠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 모든 존재는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나무가 인간을 본다면 얼마나 수선스럽게 보일까? 한 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쉼 없이 돌아..

시읽는기쁨 2013.06.14

나무 / 곽재구

숲속에는 내가 잘 아는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나무를 만나러 날마다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제일 키 큰 나무와 제일 키 작은 나무에게 나는 차례로 인사를 합니다 먼 훗날 당신도 이 숲길로 오겠지요 내가 동무 삼은 나무들을 보며 그때 당신은 말할 겁니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언어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 나무 / 곽재구 나무는 사람처럼 분주하거나 소란스럽지 않다. 사람의 동네에서 나무들의 동네에 들어서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나무 사이를 걸으면 절로 나무를 닮게 된다. 숲길은 마음의 길로 이어진다. 그 옛날 당신이 걸었던 숲길을 찾는다. 그리고 처음처럼 속삭인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언어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시읽는기쁨 2012.12.04

시간의 숲

야마오 산세이의 책을 읽은 게 이 영화로까지 이어졌다. 은 야마오 산세이가 살았던 야쿠 섬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올봄에 개봉되었지만 뒤늦게 알게 되어 영화 자료실에서 찾아 감상했다. 배우 박용우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일본 남단에 있는 야쿠 섬으로 열흘간의 여행을 떠난다. 지친 심신을 달래고 7,200년 된 조몬삼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 배우 타카기 리나를 만나고 둘은 숲과 해변을 거닐며 자연이 주는 고요와 평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내면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위안을 받는다. 자연을 통한 심리 치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수천 년 된 나무들을 배경으로 인간 내면으로의 여행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두 사람의 대화보다 야쿠 섬 풍경과 숲, 조몬삼나무를 보는 게 더 흥미로..

읽고본느낌 201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