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무 / 곽재구

샌. 2012. 12. 4. 10:27

숲속에는

내가 잘 아는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나무를 만나러

날마다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제일 키 큰 나무와

제일 키 작은 나무에게

나는 차례로 인사를 합니다

먼 훗날 당신도

이 숲길로 오겠지요

내가 동무 삼은 나무들을 보며

그때 당신은 말할 겁니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언어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 나무 / 곽재구

 

 

나무는 사람처럼 분주하거나 소란스럽지 않다. 사람의 동네에서 나무들의 동네에 들어서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나무 사이를 걸으면 절로 나무를 닮게 된다. 숲길은 마음의 길로 이어진다. 그 옛날 당신이 걸었던 숲길을 찾는다. 그리고 처음처럼 속삭인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언어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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