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50

휴대폰을 끄다

휴대폰을 끈 지 20일이 되었다. 휴대폰이 먹통이 되니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족 말고는 집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단절되는 게 너무 쉽다. 현대의 은둔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 버튼 하나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원래부터 휴대폰은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아닌 구식 폴더폰을 쓰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자주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더구나 사람들과의 교류 폭도 좁으니 하루에 고작 전화 한두 통화나 가끔 문자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해서 아쉬울 건 없다. 오히려 조용해서 좋다. 울리는 벨 소리의 과반은 쓸데없는 데서 오는 거라 짜증만 일으켰다. 문자도 마찬가지였다. 필요한 건 열에 한둘이었다. 모임이나 지인들에게서 오는 연..

참살이의꿈 2014.02.02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이문재 시인의 산문집이다. 제목이 특이해서 서가에서 뽑게 되었다. 바쁜 것이 게으르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바쁘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살펴볼 겨를이 없다. 바쁜 세상에 맞추어 대부분 그렇게 산다. 바빠서 나를 돌아보고, 둘러보고, 내다볼 수가 없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 비슷한 무엇이 정신없이 사는 것이다.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지 못한다. 그런 뜻에서 나는 게으른 것이고, 이런 게으름은 부도덕하고 반인간적이다. 에 나오는 글은 산업 자본주의 문명의 반인간성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시인의 생태론과 자연주의에 대한 신념은 거의 신앙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행하지 못하는 반성도 곳곳에 보인다. 글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 시인의 담백한 마..

읽고본느낌 2014.01.13

설국열차

빙하기로 멸망한 지구 위에서 인류의 마지막 생존터인 설국열차가 17년째 달리고 있다. 질주가 멈추면 파멸에 이르는 비유가 현대 사회의 모습과 아주 닮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현재 스스로를 파괴하는 중이라는 지젝의 지적대로 종말을 향한 폭주로 설국열차의 이미지가 딱 맞는다. 계급에 따라 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질서와 균형을 강조하는 열차 안은 인간 세상의 작동 시스템과 유사하다. 꼬리칸에 탄 사람들은 체제 전복을 꿈꾼다. 결국 커티스를 중심으로 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앞칸을 차례차례 점령해 나간다. 메시지가 강한 영화다. 나로서는 서구문명의 몰락과 새로운 인류 사회의 탄생이라는 희망으로 읽힌다. 마지막 장면에서 동양 소녀와 흑인 소년으로부터 인류의 새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 15세기부터 역사를 주..

읽고본느낌 2013.08.24

축생의 시대

제 자신과 제 새끼만 아는 시대다. 인간이 축생(畜生)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축생만도 못하다. 짐승은 제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내보낼 줄 안다. 그러나 인간 축생은 죽을 때까지 품안에 가두려 한다. IMF 쇼크 이후 한국 사회가 변했다고 한다. 위기가 결국 생존에만 집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 먹을 양식은 갖고 태어난다는 믿음에서 내가 다 챙겨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바뀌었다. 깊이가 없는 민족은 고통을 배움의 기회로 삼지 못한다. 사회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파이 조각만 더 많이 차지하려고 다툰다.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새끼 사랑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가정이라는 울타리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제 새끼만 쳐다보느라 눈이 멀어 버린다면 배 부른 돼지에 다름 아니다...

참살이의꿈 2013.08.03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내가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가 제시한 개념에서 도움받은 바가 크다. 일리치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잘못된 것들을 깨부수는 사상가였다. 대표적인 게 학교, 의료체제, 교회, 경제 성장에 대한 신화 등으로 그는 우리 시대의 주류 사상과 충돌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일루치는 늘 기존 이데올로기와 불화했다. 그는 형식적인 모든 의례를 거부한 사람이었다. 신부였지만 점점 정치적이 되어가는 교회의 정책에 반대하며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사제직을 떠나게 된다. 신부에서 전사로 변한 것이다. 일루치는 인간이 현대의 고도 관리 시스템에서 병들어가는 현상을 늘 경계했다. 일리치 사상을 대표하는 세 단어가 '가난의 근대화' '근원적 독점' '반생산성'이..

읽고본느낌 2013.07.18

갑과 을

아내는 스마트폰이지만, 나는 아직 구식폰을 쓰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위치가 역전되는 게 자꾸 생긴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어느 선생님이 '사람 인'[人]자를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 게 생각난다. 지금은, 아내는 길고, 나는 짧다. ...................... 옛날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이젠 만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았는데 나는 마치 구석기 시대에서 온 원시인 같다. 모임에 나가보면 다들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놓고 쳐다보기 바쁘다. 뭘 그렇게 하는 건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 순댓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젊은이 둘이 들어왔다. 둘은 마주 앉긴 했으나 폰만 만지작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이 얼굴을 쳐다본 건 메뉴를 고를..

길위의단상 2013.06.02

잃어버린 것들 / 박노해

노래방이 생기고 나서 사람들은 방문을 벗어나면 노래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내비게이션이 나오고 나서 택시 기사들마저 모니터를 벗어나면 길눈이 어두워져 버렸다 컴퓨터가 나오고 나서 아이들은 귀 기울여 듣고 기억하고 가만히 얼굴을 마주 보는 법을 잃어버렸다 자동차 바퀴에 내 두 발로 걷는 능력을 내주고 대학 자격증에 스스로 배우는 능력을 내주고 의료 시스템에 내 몸 안의 치유 능력을 내주고 국가 권력에 내 삶의 자율 권력을 내주고 하나뿐인 삶으로 내몰리면서 나는 삶을 잃어버렸다 - 잃어버린 것들 / 박노해 천지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자공이 남쪽으로 초나라에서 유세를 마치고 진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한음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한 장부가 밭두렁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물길을 내고 우물에 들어가..

시읽는기쁨 2013.04.27

온 삶을 먹다

웬델 베리(Wendell Berry, 1934~ )는 미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로 생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다. 는 농업과 먹을거리에 관한 그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 시대에 대한 경고와 함께 인류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안적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그런 실험적 삶을 살고 있다. 웬델 베리가 보는 위기의 시작은 인간이 땅을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보았을 때부터였다. 농민이 사라지고 농기업가가 등장하면서 우리의 삶은 근원적으로 뒤틀린 것이다. 그는 1950년대에 트랙터를 몰며 앞에서 일하는 노새의 느린 걸음을 보고 속을 태웠던 때를 안타깝게 기억한다. 기계와 생명의 경쟁에서 승자는 분명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일손을 줄이는 기계와 무한..

읽고본느낌 2012.06.01

낭만아파트

우리나라 근현대 문화사를 말할 때 아파트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아파트는우리의생활 양식과 의식을 지배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전체 세대의 반 이상이 이미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가 좁은 땅에서 주거 문화를 개선하는데 효과적인 측면도 있지만, 한국에서 아파트는 투기와 욕망, 물신숭배의 상징이 되고 있다. 어떤 소설가는 아파트를 '사람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넷'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파트가 주는 편리함과 안락을 무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아파트는 돈이 된다는 데 있다. 또한 아파트 위치와 평수는 특권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개발 시대의 효용이 다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아파트의 매력이 쉽게 사라..

읽고본느낌 2012.04.09

제비 / 최종진

집으로 들어오는 전깃줄 하나 날갯죽지 맞대고 촘촘히 앉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이른 아침부터 시부렁거렸지 저새끼좆나게늦잠자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니기미씨팔니기미씨팔 하는 것 같기도 해서 야야, 오늘은 일요일이야 늦잠 좀 자면 안되겠나 사정도 해쌌는데 그 사이 세월이 얼마나 흘렀다고 흐릿한 눈 비비고 보고 닦고 봐도 텅 빈 전깃줄엔 눈물만 그렁그렁 달려 있어 니 어디 갔노, 안 보이네 어이, 씨팔 제발 다시 돌아와 그때처럼 니기미씨팔니기미씨팔 욕 한번 신나게 해주면 안 되겠나 - 제비 / 최종진 그 많던 제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 제비는 새가 아니라 식구였다. 제비는 꼭 사람 사는 집에다 자기들 집을 지었다. 어느 해는 하필 밥 먹는 자리위에 제비집을 만들어 놓고는 우리들 저녁 먹는 모..

시읽는기쁨 2009.09.19

마지막 뉴스 / 서정홍

시청자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지금 막 들어온 긴급 뉴스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차마 고향을 버리지 못하고 농사짓고 살아가던 몇 안 남은 늙은 농민들이, 농사일 힘에 버거워 자기 먹을 농사만 짓기로 결의하고 파업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수입 농산물을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마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한국 농민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인도, 칠레, 세계 모든 농민들이 파업에 동참하는 바람에 마구 들어오던 수입 농산물마저 완전히 끊겨 버렸습니다. 지금 전 세계, 모든 도시는 거의 먹고살기 위한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대도시 큰 상점뿐만..

시읽는기쁨 2009.04.23

사무원 /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

시읽는기쁨 2009.03.30

다른 생각

화학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농부들에게 비료를 주러 왔다. 농부들은 그 비료를 밭에 뿌렸다. 그리고 매우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그 부족에서 가장 지혜로운, 나이 들고 눈이 먼 추장을 찾아가 말했다. "우리는 작년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을 생산했어요." 추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이들아, 매우 좋은 일이다. 내년에는 절반 크기의 밭에만 농사를 지어라."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그곳에 도착한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이 사소한 일 때문에 애쓰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보잘것 없는 도구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미국인들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 우리가 이들을 구해..

참살이의꿈 2007.07.29

성공시대 / 문정희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 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언제든 부르면 달려오는 자장면 오른발만 살짝 얹으면 굴러가는 자동차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기만 하면 나 어디든 갈 수 있네 나 성공하고 말았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시 대신 진주목걸이 하나만 사서 걸면 오케이 내 가슴에 피었다 지는 노을과 신록 아침 햇살보다 맑은 눈물 도둑고양이처럼 기어오르던 고독 다 귀찮아 시 파산 선고 행복 벤처 시작할까 그리고 저 캄캄한 도시 속으로 폭탄같이 강렬한 차 하나 몰고 미친 듯이 질주하기만 하면 - 성공시대 / 문정희 부자 나라 신민들은 다 행복하여라! 그들의 인사는 "부자 되세요!"이고, 그들의 종교는 맘몬, 행동강령은 경쟁과 거침없는 ..

시읽는기쁨 2007.03.15

레밍의 질주

대학교 때 최기철 교수님의 생물학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 민물고기 연구의 일인자셨던 선생님은 편안한 외모처럼 강의도 구수하게 하셨는데 여러 생물들의 특이한 행태에 대해 많은 예를 들어주셨다. 본 강의보다 그런 예들이 더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 '레밍'이라는 쥐 얘기는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레밍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고 있는 들쥐 종류인데 레밍의 특이한 행동이 생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레밍은 서식 환경이 좋아져 개체수가 어느 한계 이상 늘어나면집단적으로 이동을 시작하고 결국은 바닷가 절벽에 이르러 모두가 집단 자살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호수고 산이고 거칠 것이 없이 무조건 전진만 하다가 마지막에는 바다에 이르러 최후를 맞는다. 이런 행동이 후손들을 살리기 위한 레밍의 이타적 ..

길위의단상 2007.01.15

문명 불평등의 기원

근대과학과 산업혁명은 왜 유럽에서 시작되었을까?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했는데, 반대로 인디언들이 유럽을 정복할 수는 없었을까?같은 지구상에서 한 쪽은 문명이 번성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왜 아직도 수렵채집의 원시사회에 머물러 있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명쾌한해답을 말해 주는 책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다. 빙하기가 끝난 뒤부터 13000여년 간의 인류문명사이며,대륙마다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이 다르게 전개된 이유를 밝힌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머리 속이 말끔이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자의 결론은 한 마디로 각 대륙 사람들이 경험한 역사가 달라진 것은 지리적,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사회에 미치는 지리적 결정론이다. 인종의 차이, 또는 타고난 ..

읽고본느낌 2007.01.04

한 장의 사진(5)

오늘 신문 1 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눈을 붙잡는다. 중국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칭짱(靑藏)철로가 난공사 끝에 드디어 개통되어 운행을 시작했는데, 고원지대를 지나가는 기차를 티베트 아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진이다. 티베트고원을 통과하는 이 철길은해발 4천 미터 이상인 지대를 지나는 곳만도 거의 1천 km가 된다는데 '천로(天路)'라고 부를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철로라고 한다. 이 열차 개통에 대해 티베트 망명정부측에서는 문화적 대학살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낙후된 티베트를 개발하고 문명의 혜택을 전하는 전령사 역할을 할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중국은 1950 년에 티베트를 침략하고 점령했다.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피신하여 망명정부를 세웠고,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억압정책..

길위의단상 2006.07.03

기심(機心)

작년과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제 주변에 몇 가지의 기계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휴대폰을 장만해서 이젠 늘 이놈이 옆에 따라 다닙니다. 심심해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슨 소식이 없나 자주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놈에게 콜라를 엎어버려서 먹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걸 수리하느라 원주를 하루 내내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편리함이 좋긴 하지만 그것에 마음 앗김이 보통이 아닙니다. 또 묵직한 카메라 가방이 있습니다. 거금을 들여 산 카메라를 묵히기도 그렇고 어디에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닙니다. 놓고 가면 아쉽고 또 누가 들고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가지고 다니면 별로 쓰지도 않으면서 무겁기만 하고, 어떨 때는 애물단지가 딴게 아닙니다. 이래서 또 하나 제 마음을 앗아가는..

참살이의꿈 2005.08.01

너무 많은 것들 / 긴스버그

너무 많은 공장들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맥주 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철학 너무 많은 주장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공간 너무나 부족한 나무 너무 많은 경찰 너무 많은 컴퓨터 너무 많은 가전제품 너무 많은 돼지고기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 아래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담배 연기 너무 많은 종교 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양복 너무 많은 서류 너무 많은 잡지 지하철에 탄 너무 많은 피곤한 얼굴들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나 부족한 잣나무 너무 많은 살인 너무 많은 학생 폭력 너무 많은 돈 너무 많은 가난 너무 많은 금속 물질 너무 많은 비만 너무 많은 헛소리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침묵 - 너무 많은 것들 / 알렌 긴스버그 현대 문명이 번성한 20세기는 동시에 파괴와 자학의 세기이기도 했다. 지..

시읽는기쁨 2005.05.18

바퀴벌레는 진화중 / 김기택

믿을 수 없다, 저것들도 먼지와 수분으로 된 사람 같은 생물이란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시멘트와 살충제 속에서만 살면서도 저렇게 비대해질 수 있단 말인가. 살덩이를 녹이는 살충제를 어떻게 가는 혈관으로 흘려보내며 딱딱하고 거친 시멘트를 똥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입을 벌릴 수밖엔 없다, 쇳덩이의 근육에서나 보이는 저 고감도의 민첩성과 기동력 앞에서는. 사람들이 최초로 시멘트를 만들고 집을 짓고 살기 전, 많은 벌레들을 씨까지 일시에 죽이는 독약을 만들어 뿌리기 전, 저것들은 어디에 살고 있었을까. 흙과 나무, 내와 강, 그 어디에 숨어서 흙이 시멘트가 되고 다시 집이 되기를, 물이 살충제가 되고 다시 먹이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빙하기, 그 세월의 두꺼운 얼음 속 어디에 수만 년 썩지 않을..

시읽는기쁨 200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