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35

노인의 예절

노인을 대하는 예절이 아니라 노인'의' 예절이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날에는 60을 넘기면 잔치를 열었고 70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젊은이는 많고 노인은 적었으니 노인은 집안이나 공동체에서 존경과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시대가 역전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2025년이면 65세 이상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간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이 1천만 명을 넘어서는 것이다. 노인이 넘쳐나면 존경과 대우는커녕 자칫하면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더구나 노인은 생산성이 없어서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적다. 과거에는 지혜와 경륜으로 한몫했지만 이제는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여서 노인이 자리 잡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면 젊은이에게 ..

참살이의꿈 2023.06.10

소음과민증후군

나는 소리에 예민하다. 주변이 소란한 걸 견디지 못한다. 시끌벅적한 자리에는 아예 나가질 않는다. 데시벨이 높지 않더라도 신경이 쓰이는 특정 소리에 사로잡히면 안절부절못한다. 가장 괴로운 것이 한밤중의 층간소음이다. 윗집에는 야행성 가족이 산다. 밤 11시에서 2시까지가 제일 분주하다. 문을 쾅 닫는 소리부터 달그락거리는 소리까지 다양한 생활 소음이 들린다. 잠이 깨인 날이면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쓰여서 올빼미 가족이 잠잠해질 때까지 애를 태워야 한다. 같은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만 아내는 덤덤한 편이다. "오늘은 좀 심하네"라고 반응하는 정도다. 내가 유별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윗집 탓만 할 수도 없다. 희한한 것은 아내는 아날로그시계에서 생기는 초침 소리에 힘들어한다. 고향에 내려가서 잠을 ..

길위의단상 2022.12.11

사람 사는 곳인데

위층은 내 전화번호부에 '올빼미'로 명명되어 있다. 밤늦게서야 바빠지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가장이 늦게 퇴근하는 것인지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분주하다. 문제는 이 시간대가 내 잠자는 시간과 겹친다는 데 있다. 주로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에 깨어나면 조용해질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층간 소음 스트레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 아파트에 입주한 1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불편함을 전달하고 직접 만나서 호소도 했다. 그러나 생활 패턴이 쉽게 바뀔 수 없는 일이었다. 완벽한 해결책은 이사를 가야 했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에 상태가 심해졌다. 어젯밤에는 참고 참다가 밤 12시가 넘어 문자를 넣었다. 작년인가 직접 만났을 때 전화번호를 알으켜주면..

길위의단상 2022.06.04

버릇 / 박성우

눈깔사탕 빨아먹다 흘릴 때면 주위부터 두리번거렸습니다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없으면 혀끝으로 대충 닦아 입 속에 다시 넣었구요 그 촌뜨기인 제가 출세하여 호텔 커피숍에서 첨으로 선을 봤더랬습니다 제목도 야릇한 첼로 음악을 신청할 줄 아는 우아한 숙녀와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만 손등에 커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손이 무지하게 떨렸거든요 그녀가 얼른 내민 냅킨이 코앞까지 왔지만서도 그보다 빠른 것은 제 혓바닥이었습니다 - 버릇 / 박성우 위층에 사는 올빼미 덕분에 깜짝 놀라며 잠이 깼다. 자정이 갓 넘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되면 잠잠해지는 2시까지는 쉬이 잠들지 못한다. 라디오를 틀었더니 진행자가 이 시를 소개해 주었다. 그래, 이런 재미있는 시를 만났으니 오늘밤은 올빼미도 용서해주마. 궁금한 건 첼로 아가씨..

시읽는기쁨 2022.03.31

귓꺼풀도 있었으면

하느님이 인체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드셨지만 하나 아쉬운 게 있다. 눈꺼풀을 만드실 때 귓꺼풀은 왜 안 만드셨을까? 눈과 귀는 인간의 대표적인 감각 기관이다. 전방의 경계 초소와 같다. 둘 중 하나만 없었어도 약육강식의 험한 자연환경에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경계병도 쉬어야 할 때가 있다. 하느님은 눈을 위해 눈꺼풀을 만드셨지만, 귀는 소홀히 하셨다. 몸은 잠들어도 귀는 잠들 수 없다. 현대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은 피곤하다. 그중에서도 주범은 소음 공해가 아닐까. 도시인은 24시간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과도한 소음에 노출되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진다. 일에 집중할 수 없다. 하느님은 선견지명이 그리 없으셨나. 이럴 때 귓꺼풀이 있어서 마치..

길위의단상 2021.08.24

물빛공원으로 쫓겨나다

아침부터 30도에 육박하는 더위다. 장마 뒤끝이라 습도가 높아 체감 기온은 훨씬 더 높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베트남 사람조차 한국의 더위를 견디기 힘들다 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우리 동의 한 집이 이 여름에 수리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 동의서를 받아갔는데 간간이 들리던 공사 소음이 어제부터 심해졌다. 오늘은 일찍부터 벽을 울리는 드릴 소리 때문에 집에 있지를 못하겠다.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은 재가학습을 할 텐데 다른 집은 어떻게 견디는지 모르겠다. 할 수 없이 가까운 물빛공원으로 아내와 피난을 갔다. 여름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다. 그러나 햇살이 따가우니 공원 둘레길에서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신경이 쓰이지 않으니 좋은 점도 있다. 물빛공원의 상징물은 이 꽃돌고래다. 저수지와 돌고래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하..

사진속일상 2021.07.16

쥐 / 요사노 아키코

나의 집 천장에 쥐가 사느니라. 빠작빠작 소리남은 끌 잡고 상을 새기는 사람 밤에도 자지 않음과 같으니라. 또 그의 아내와 춤을 추면서 빙 돌아가는 울림은 경마가 달리는 모습. 내 글 쓰는 종이 위에 천장 위 모래며 먼지들 펄펄 날려옴도 그들이 어찌 알 것인가? 그러나 나는 생각하느니 나는 쥐들과 함께 살고 있노라. 그들에게 먹을 것이 있으랴. 천장에 구멍이라도 뚫어서 때때로 나를 엿보라. - 쥐 / 요사노 아키코 이웃간에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가끔 뉴스에 나온다. 며칠 전에는 윗집 현관문에 인분을 뿌린 사건이 있었다. 댓글에는 누리꾼의 설왕설래가 무성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층간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행히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한 중재로 윗집 사람을 만나고 나서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층간..

시읽는기쁨 2020.12.03

개구리와 소년

연못가에서 놀던 소년들이 물속에 많은 개구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많은 개구리가 돌에 맞아 죽은 뒤, 용감한 개구리 한 마리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며 소년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그 잔인한 장난은 그만둬라! 너희는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우린 돌에 맞아 죽는단 말이야!" 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지불식간에 하는 행동이 타자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요사이 이 이야기가 실감나게 들린다. 내가 개구리의 심정이 된 것 같아서다. 층간소음 스트레스는 내 생활과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 무려 10년 가까이 된다. 심할 때는 뭔가 조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좀 덜해지면 참고 지내보자고 하며 살아왔다.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제삼자나 관리사무소를 통해 당부해도 별 소..

참살이의꿈 2020.07.09

물 끓이기 / 정양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국수나 삶으려고 물을 끓인다. 끓어오를 일 너무 많아서 끓어오르는 놈만 미친놈 되는 세상에 열받은 냄비 속 맹물은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혈식(血食)을 일삼는 작고 천한 모기가 호랑이보다 구렁이보다 더 기가 막히고 열받게 한다던 다산 선생 오물수거비 받으러 오는 말단에게 신경질부리며 부끄럽던 김수영 시인 그들이 남기고 간 세상은 아직도 끓어오르는 놈만 미쳐 보인다. 열받는 사람만 쑥스럽다. 흙탕물 튀기고 간 택시 때문에 문을 쾅쾅 여닫는 아내 때문에 '솔'을 팔지 않는 담뱃가게 때문에 모기나 미친개나 호랑이 때문에 저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 배고픈 한밤중을 한참이나 잊어 버리..

시읽는기쁨 2020.07.02

위층 아래층 / 한현정

위층에 코끼리가 이사를 왔다 걸을 때마다 쿵쿵 천정이 울린다 아래층에는 토끼 아줌마가 산다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깡충깡충 뛰어 올라온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들이 산다 발소리가 날까 봐 살금살금 뒤꿈치를 들고 걷는다 - 위층 아래층 / 한현정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끔 아래층에서 항의를 받았다. "네, 조심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뭘, 그 정도를 가지고"라며 마땅찮아 했다. 이제 늙어서 둘만 남게 된 지금은 가끔 위층에 연락한다. "잠을 못 자요. 조용히 좀 해 주세요." 공손한 대답과 달리 위층의 속마음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가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남에게는 역지사지를 요구하지만, 내가 역지사지하는 데는 인색..

시읽는기쁨 2020.04.17

산다는 건 힘들어

가끔 아내와 막걸릿잔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눈다. 신변에서 일어난 일부터 이웃과 자식 등 사람에 관한 얘기가 주된 화제다. 그러다가 공통으로 맺어지는 결론이 있다. "산다는 건 힘들어!" 모르는 사람은 날 보고 팔자 편하게 산다고 할지 모른다. 자식은 모두 출가시켰고, 연금을 받으니 돈 벌 걱정 없고, 무슨 염려 있겠느냐는 것이다. 블로그만 보면 신선 같이 사는 줄 안다. 그러나 사람 살아가는 양태는 비슷하다.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 등 근심 걱정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층간소음은 요사이 내 일상을 괴롭히는 문제 중 하나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다. 이웃을 미워하는 내 모습이 두렵다. 어제 아내는 위층을 다시 방문했다. 그쪽에서는..

참살이의꿈 2020.02.12

팔당 드라이브

집 가까이에 팔당호를 따라 난 342번 지방도가 있다. 분원리, 귀여리, 검천리, 수청리를 지나는데 드라이브하기 좋은 길이다. 특히 봄에는 벚꽃길로 유명하다. 아내와 이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몸이 좋지 않은 아내는 근 열흘 만의 외출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더욱 풀려 낮 기온이 14도까지 올랐다. 얼마나 따스한지 반팔 상의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중간에 물안개공원에 들러 한 시간 정도 산책했다. 원래 걸을 계획이 없었는데 간질간질한 햇살의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다. 공원의 나무들은 벌써 봄물이 오르고 있었다. 살아가는데 제일 큰 스트레스가 윗집 올빼미 가족의 층간소음이다. 방학이 되어선지 겨울이 되면 그 강도가 서너 배는 세진다. 오늘은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

사진속일상 2020.02.11

너무 예민해

나는 소리에 예민해서 탈이다. 다른 데는 둔한 편인데 유독 소음에는 까다롭다. 그래서 사는 데 피곤하다. 도시에 살면서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디를 가나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소음 공해라는 말도 있다. 소음에 오래 노출되면 대개 무감각해지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나 같은 경우는 반대로 점점 예민해진다. 소음에 대한 면역이 약하다. (시골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조용한 곳을 찾아 시골살이할 때 옆집 개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많았다. 시골 마을의 개 짖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바깥에서 여러 명이 만나는 모임이 꺼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왁자지껄한 분위기 때문이다. 술이라도 몇 순배 돌면 각자 목소리가 커지고 시장 바닥처럼 변한다. 대화의 소재가 무엇이든 이 정도 되면 골치가 지끈거린다. 언제 ..

길위의단상 2019.09.22

둔해지면 좋겠다

첫째, 위와 장이 둔해지면 좋겠다. 나는 위와 장이 너무 예민하다. 우선, 찬 것과는 상극이다. 냉 음료는 아예 못 마신다. 한여름에도 냉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바로 배탈이 난다. 먹는 것만 아니라 복부에 냉기만 닿아도 반응이 온다. 에어컨을 켤 때는 배를 담요로 감싸야 한다. 이런 위장이니 정신적 스트레스에 약할 수밖에 없다.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 병원에서는 과민성 대장 증상이란다. 젊을 때부터 나를 괴롭힌 병이다. 사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위와 장도 좀 둔해지면 좋겠다. 둘째, 소음에 둔해지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리에 민감해진다.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하지만 퇴직하고 난 뒤부터 더 심해졌다. 조용히 ..

참살이의꿈 2019.02.10

쇼팽의 야상곡

클래식을 다시 듣게 된 건 순전히 윗집 덕분이다. 이음치음(以音治音)이라고 할까, 한밤중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잊기 위해서 음악을 더 크게 튼다. 처음에는 교향곡 같은 데시벨 높은 음악에 의지하지만, 천장의 소음이 잔잔해지면 잔잔한 피아노곡으로 바꾼다. 그러다가 슬며시 잠이 드는 날은 대성공이다. 그중에서 제일 자주 듣는 곡이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이다. 녹턴이라고 부르는 야상곡은 피아노 소품인데 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이다. 수면제 역할로 이만한 게 없다. 쇼팽의 야상곡 전곡은 1시간 30분 가량 되는데, 대개 30분 정도만 듣고 있으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쇼팽은 예민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예술가들한테는 늘 여자들이 따라 다니는데 쇼팽은 수동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길위의단상 2018.06.24

심야 바둑

윗집에서는 밤 12시 전후 두세 시간 동안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그때는 잠도 못 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고작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소동이 잦아지길 기다릴 뿐이다. 직접 고충을 전하고, 관리사무소에 중재도 요청했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적응해 살자면 내가 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아예 새벽 1시 이후로 늦추어졌다. 자다가 깨게 되면 더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윗집이 잠잠해져야 나도 침대에 들어간다. 요사이 내가 쓰는 방법은 바둑 두기다. 소음 스트레스를 잊는데 바둑이 최고라는 걸 발견했다. 바둑에 집중하다 보면 웬만한 소음은 비껴간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마인드 컨트롤은 내 인격으로는 감당이..

길위의단상 2018.02.08

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지은이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와 명상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들으며 마음공부에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공감하고, 자신의 고민을 잊고, 안도감을 느낀다. 글쓰기를 통해 삶을 버텨낼 힘을 얻고, 경험한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며, 자기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 책 는 단순한 글쓰기의 테크닉을 말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수행의 한 과정이고 치유의 수단이다. 지은이가 1주일에 걸쳐 진행하는 '삶과 언어 수련회'의 대부분이 '좌선, 걷기, 쓰기'에 할애되어 있다. 한 단어는 곧 한 걸음과 같다. 만 아니라 전작인 도 제목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지은이는 쉬운 글쓰기를 강조한다. 연습의 하나로 카페에서 30분간 주변 광경을 묘사하는 ..

읽고본느낌 2018.01.16

층간 내리사랑

KBS TV에 나오는 공익광고 중에서 요사이 공감을 하며 본 게 '층간 내리사랑'이라는 광고다. 아파트 위층에 사는 사람이 아래층에 사는 사람을 배려하는 내리사랑을 보이자는 내용이다. "집에서는 왜 까치발로 걸어요?" "아랫집에 아기 재우는 초보 아빠가 있으니까요." "사진 거는 걸 왜 내일까지 미루세요?" "시험 앞둔 수험생이 있으니까요." "오디션이 코앞인데 왜 기타는 안 치세요?" "내일 면접인 아랫집 청년이 자고 있으니까요." "층간 내리사랑, 이웃간의 새로운 사랑법입니다"라는 멘트로 광고는 마무리 된다.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는 따뜻한 광고다. 아파트공화국에서 층간 소음 문제는 심각하다. 내 집인데 아이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기를 바란다면, 다른 편에서는 타인의 소음으로 고통받는 일이 없기를..

길위의단상 2017.11.27

소음 노이로제

선생을 하면서 교실에서 제일 많이 한 소리가 "조용히 해!"였을 것이다. 어떤 경우는 수업을 시작하고 질서를 잡는데 10분 넘게 걸리기도 했다. 교사에게 수업을 방해하는 소곤대는 소리나 잡담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아예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을 달래고 꾸짖는 데 에너지의 과반이 들어간다. 그래선지 사람의 소음은 나한테 엄청난 노이로제를 유발한다. 직업병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선생을 했다고 다 그런 건 아니니 일차적으로는 내 성격 탓인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만성이 되어 시끄러운 환경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 반대다. 소음 노이로제는 퇴직을 하고 나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많으니 절간 같은 분위기에 길이 들었다. 어쩌다 시끄러운 환경에 노출되면 짜증부터 난다. 손..

길위의단상 2017.08.21

위층 아이들 / 이중현

쿵쿵쿵 저건 형 뛰는 소리 콩콩콩 이건 동생 뛰는 소리 아빠, 위층에 전화해요 천장 무너지겠어요 그냥 둬라 너도 어릴 때 저랬거든 이제 그 빚 갚는 거다 - 위층 아이들 / 이중현 손주 둘이 모이면 통제 불능이 된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날이면 이 방 저 방으로 쿵쿵 콩콩이다. 며칠 전에는 아래층에서 조용히 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하나는 제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까지도 위층 아이들 때문에 여러 차례 인터폰을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훨씬 덜해졌다. 이젠 반대로 내가 받을 차례가 되었다. 사는 게 빚을 갚는 일이다. 부모한테 잘못한 건 자식을 통해 갚는다. 사는 건 빚을 지는 일이다. 지금도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에게는 빚을 지고 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

시읽는기쁨 2017.04.09

천장에 쥐가 산다

어린 시절 시골 초가집에 살 때 부모님은 천장에 사는 쥐와 자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쥐들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운동회를 하는지 천둥소리가 나기도 했다. 정 참다 안 되면 아버지는 "이누무 쥐새끼들!" 하며 빗자루 끝으로 애꿎은 천장만 때렸다. 그런다고 쥐가 사람 마음을 헤아려줄 리는 없으니 결국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쥐약을 놓기도 하고 고양이를 기르기도 했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안 되었다. 쥐약을 먹고 쥐가 죽으면 천장에서 썩는 게 아닌가, 그것이 어린 마음에 걸렸다.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보다 사실 그게 더 두려웠다. 어머니한테 물으니 쥐가 쥐약을 먹으면 목이 말라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초가집에서 살았던 시절에..

길위의단상 2014.05.22

고마운 천적

윗집 때문에 생활 패턴이 변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던 것이 자정 이후로 늦춰졌고, TV를 보는 시간도 늘었다.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이다. 어린아이 둘이 있는 윗집은 밤 10시가 넘으면 소란이 시작된다. 그 시간이 되어야 가족이 다 모이는 것 같다. 짧으면 한 시간 정도지만, 길면 1시까지도 이어진다. 잠이 들었다가도 쿵쾅대는 소리 때문에 깬다. 다시 잠들기 위해서는 소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신경이 쓰이면 책을 읽어도 집중이 안 되고 아무것도 못 한다. 소음에는 마인드 컨트롤도 안 통한다. 그래서 TV를 크게 틀어놓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너무 심할 때는 인터폰으로 연락하지만 자주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서로에게 스트레스다. 말을 해봤자 감정만 상하지 별 효과도 없다. 어린아이 발목에 족쇄를..

참살이의꿈 2013.11.18

들리는 소리 / 원재길

1 바로 아래층에서 전기 재봉틀 건물 들어 올리며 옷 짓는 소리 목공소 전기톱 통나무 써는 소리 카센터 자동으로 볼트 박는 소리 굉음에 하늘 돌아보니 불빛 번득이며 먹구름 밑 낮게 나는 헬리콥터 어서 지나가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시동 걸려 골목에 버티고 선 트럭 2 너는 모든 침묵을 소음의 자식이라 여겨라 모든 소음은 침묵의 아비로다 사람의 모든 색色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 애써라 너는 사람이며 색은 소리이다 너 자신도 색임을 이해하여 소리인 사람과 섞여 살아라 그 소리에 옷 얻어 입고 가구 받아 들이고 바쁜 날 천리마 얻어 타고 두 눈은 멀리 가는 빛 얻어 번쩍일 때 너는 언제까지나 너답게 살아라 사람이 내는 모든 소리를 사람으로 대접하라 - 들리는 소리 / 원재길 중학교 2학년 때 공부에 전념하라고 아..

시읽는기쁨 2013.10.01

소리에 둔해지기

우리 나이가 되면 몸의 기능이 저하되는 걸 실감한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나 예외가 있다. 청력만은 젊었을 때와 전혀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예민해지는 것 같다. 어디서 들은 얘긴데, 늙어서도 계속 자라는 것이 귀라고 한다. 그래서 귀가 큰 사람이 장수한다는 말도 생겼는가 보다. 귀는 외형뿐만 아니라 성능에서도 제일 오래 버티는 기관인지 모른다. 100세 넘게 사셨던 외할머니도 마지막 몇 년을 빼고는 청력만은 정상이셨다. 옆에서 소곤소곤하는 얘기도 들으시고는 참견을 하셨다. 그게 싫었던 어머니는 어떻게 젊은 사람보다 귀가 더 밝느냐고 혀를 찼다. 귀 때문에 외할머니는 지청구를 많이 들으셨다. 늙어서는 못 들은 척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귀가 밝다는 건 축복이기보다는 성가신 일이다. 상하좌우로 다..

길위의단상 2013.09.26

즐거운 소음 / 고영민

아래층에서 못을 박는지 건물 전체가 울린다. 그 거대한 건물에 틈 하나를 만들기 위해 건물 모두가 제 자리를 내준다. 그 틈, 못에 거울 하나가 내걸린다면 봐라,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양보하면 사람 하나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저 한밤중의 소음을 나는 웃으면서 참는다. - 즐거운 소음 / 고영민 심야에 세탁기 돌리는 소음으로 이웃 간에 칼부림이 나고 한 사람이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를 어제 들었다. 얼마 전에는 현직 부장판사가 아파트 위층에 사는 주민과 층간소음 문제로 다툰 후 지하 주차장에 있는 이 주민의 차량 열쇠 구멍에 접착제를 넣고 타이어를 펑크냈다가 입건되기도 했다. 합의를 했지만 결국은 옷을 벗었다는 후문이다. 부장판사까지 이럴 정도니 공동주택의 층간소음 문제가 보통이 아니다. 왜 그렇게..

시읽는기쁨 2013.07.14

이순

공자님은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 했다. 말 그대로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어떤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칭찬이나 비난이 똑같이 들린다. 시비를 가리려는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말도 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공자는 천하를 유랑하며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었다. 숱한 곤경을 당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60대는 그분이 한창 주유천하 하던 시기다. 68세 때 고향 곡부에 돌아와 교육 사업에 전념한다.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게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귀가 순해졌다는 게 그런 뜻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공자님의 이순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다. 내 나이도 예순이다. 그러나 나는 귀가 순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예민해지니 어찌 된 일인가. 천..

참살이의꿈 2012.08.20

화려한 공상

잠자리에 들어서 억지로 공상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웃 덕택이다. 한밤중의 소음을 견디기 위해서는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책을 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공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게 더 낫다. 공상은 화려하고 자극적일수록 좋다. 요사이는 호화유람선으로 세계 일주를 하는 상상을 한다. 어떤 행운이 찾아와 가장 크고 화려한 선실이 공으로 주어졌다. 야외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거실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세계의 일품요리가 끼니마다 제공된다. 예쁜 아가씨의 룸서비스를 받으며 어느 왕에 부럽지 않은 여행을 한다. 유람선이 항구에 정박하면 특별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모습을 그린다. 이런 상상은 마취제로 작용해 위층 소음을 잠시 잊는다...

길위의단상 2012.02.26

소음 수행

'소음 수행'이라 부르기로 한다. 아파트 이웃을 잘 만난 덕분이다. 층간소음을 경험한 사람은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 것이다. 뾰족한 해결 방안도 없이 그저 견뎌내야 한다. 소음을 이젠 마음 다스리는 기회로 삼기로 한다. 수행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명상하려고공동묘지를 찾기도 한다. 극한 환경을 일부러 찾아 나선다.층간소음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어떤 소음이나 방해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훈련의 기회이다. 선원이나 수도원에서만 수행하는 게 아니다. 생활의 모든 장소가 수행 도량이다. 화가 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내 마음을 살핀다. 소음 방향으로 쏠리는 마음을 피해 호흡에 집중한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내 마음을 바꾸는 방법밖에는 없다. 원망과 짜증을 부려봐야스트레스를 ..

참살이의꿈 2012.01.29

조용히 살고 싶어라

집 앞에 태권도 학원이 생겼다. 덕분에 시끄러운 소음을 견뎌야 한다. 초기여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 기합 소리가 요란하다. 위층에서는 쿵쿵거리고 밖에서는 아이들 함성이 신경을 자극한다. 집에 주로 있다 보니 소음에 더 예민해졌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마음은 더 시끄러워진다. 이곳 아파트 단지는 젊은 가구가 대부분이다. 우리 윗집, 아랫집, 옆집에는 전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놀이터에도 언제나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전에 서울에 살 때는 양로원이라 할 정도로 아이들 보기가 어려웠다. 엘리베이터에 타도 항상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이쁘게 보면 활기차서 좋고, 밉게 보면 너무 소란하다. 처음 이사 와서는 위층에서 아이들..

길위의단상 2011.10.07

소음에서 벗어나는 법

한 늙은 학자가 요양을 하기 위해 작은 시골마을로 이사를 왔다. 노인은 주위가 고요한 이 마을이 썩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마을 아이들이 집 주위에서 큰 소리로 떠들며 놀기 시작했다. 노인은 아이들 소리 때문에 낮잠조차 편안히 잘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나가서 조용히 하라고 타일러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이 동네 아이들을 집에 초대했다. 노인은 용돈을 가지고 나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내 앞에서 고함을 질러주지 않겠니? 소리가 큰 아이에게는 더 많은 용돈을 주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댔다. 노인은 약속한대로 소리의 크기에 따라 아이들에게 용돈을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3주가 지나가는 동안 아이들은 고함을 지르고 용돈을 받는 것이 습관이..

길위의단상 2011.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