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6

독일의 과거 청산

지난 20일에 독일 법원이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만행에 협력한 97세 할머니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다. 이름가르트 푸르히너(Irmgard Fruchner)라는 할머니는 79년 전인 18세였을 때 나치 강제수용소 지휘관의 비서 겸 타자수로 일하면서 유대인 학살을 방관하고 조력한 혐의를 받았다. 당국의 끈질긴 추적 끝에 푸르히너는 작년에 체포되었고 이번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푸르히너는 처음에는 자신에게 적용된 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번 재판에서는 과거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사과하고 그 시절을 후회한다며 참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독일은 나치에 소극적으로 협력한 이들에게도 엄격한 잣대로 죄를 묻고 있다. 그때로부터 80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전범을 추적하며 죄상을 밝히고 있다. 푸르히너의 ..

길위의단상 2022.12.25

파친코

두 권으로 된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이민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인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예일대 역사학과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일을 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는 1910년부터 1989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재일교포 가족의 처절한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야기는 이런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선자라는 여인이 있다. 선자는 아무리 밟혀도 기어코 다시 일어나는 잡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여인이다. 무너지지 않는 꿋꿋한 정신력은 한민족을 닮았다.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녀는 일가의 중심이 되어 시대의 풍파를 견뎌낸다. 인생은 ..

읽고본느낌 2022.12.20

다읽(14) - 회상

얼마 전에 영화 '사일런스'를 5년 만에 다시 감명 깊게 봤다. 이 영화와 함께 원작 소설인 엔도 슈사쿠의 도 종교 분야에서는 최고의 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본질 및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토록 심도 있게 그린 작품도 드물다.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를 새롭게 느꼈다. 어쩌면 곁가지일지도 모르겠지만, 첫째는 일본인의 잔혹성이다. 실화를 소재로 한 과 '사일런스'는 17세기 초에 일본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이야기다. 붙잡힌 천주교인을 고문하고 죽이는 방법이 너무 악랄하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는 일본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 수준이다. 서양인 신부는 죽이는 게 아니라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줘서 끝내 배교하게 만든다. 후미에를 한 페레이라와 로드리게스는 실존 인물이다. 우리나라..

읽고본느낌 2022.02.06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M 중학교에 근무할 때였으니 1980년대 초반이었다. 일과가 끝나고 퇴근하는 길에는 그냥 집으로 가는 날이 드물었다. 학교 앞에 있는 동그랑땡 집에서 소주를 적당히 마신 뒤, 대개 입가심으로 한 잔 더 하자면서 호프집으로 가는 게 정해진 코스였다. 호프집 안주는 보통 노가리와 마른안주였다. 그날은 교감이 동행했고 역시 순서대로 이차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교감은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해서 M 중학교에 부임해 왔다. 교감과 함께 있으면 술자리의 화제는 자연히 일본 얘기가 많았다. 교감은 일본으로부터는 배울 게 많다는 걸 늘 강조하는 지일파였고, 일본에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그날은 일본 문화 얘기를 하다가 흥이 났는지 일본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일제 강점기 때 학교에서 배웠던 노래로 ..

길위의단상 2020.09.18

주전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 감독 작품이다. 작년 여름에 개봉했으나, 신년 특집으로 SBS TV에서 어제 저녁에 방송되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갈등의 최전선에 있는 이슈다. '주전장'은 양측을 대변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의 본질에 객관적으로 접근한다. 일본 우익의 주장은 보도를 통해 대체로 알고 있다. 그런데 보통의 일본 사람들은 위안부라는 말 자체를 대부분 모른다. 군국주의 시대의 부끄러운 역사를 은폐하고 숨기기 때문이다. 두 나라 국민의 갈등의 골이 깊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위안부를 바라보는 일본 우익의 주장이 이영훈 등이 쓴 라는 책에서 본 내용과 똑같아서 놀라웠다. 군복을 입고 일장기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에서 태극기 부..

읽고본느낌 2020.01.02

반일 종족주의

책 첫머리가 우리나라를 '거짓말의 나라'로 규정하고, 우리를 '거짓말하는 국민'으로 조소한다. 몇 가지 통계를 뽑아와 이런 단정을 하는 자체가 너무 건방지다. 읽어보면 책 전체가 이런 편견과 확증편향으로 일관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정직함을 증명할 수 있는 통계나 사례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만 골라 논지를 펼쳐나가는 것은 학자의 자세가 아니다. '종족주의'의 '종족'은 민족보다 저차원 개념이다. 샤머니즘을 신봉하고 이웃을 악의 종족으로 간주한다. 일부 극단적 주장에서 드러나는 종족주의를 조심해야 하지만, 우리의 정신문화 전체를 종족주의로 폄하하는 것은 동의하기 힘들다. 차라리 혐한 시위를 일삼는 일본 극우 단체가 종족주의의 표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일본 ..

읽고본느낌 2019.10.26

일본산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수출 규제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우리 정부도 맞대응하며 일본과 맺은 지소미아를 폐기했다. 처음 우려한 것과는 달리 우리 산업계에 미치는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부품 국산화 등 탈일본으로 가는 계기가 된 긍정적인 면도 있다. 지금은 양국 모두 숨 고르기를 하는 것 같다. 이번 사태에서 주목할 점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NO JAPAN' 캠페인이다. 일본 제품 불매와 일본 여행 안 하기 운동이 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과거 같으면 불이 붙었다가 금방 사그라지는데 이번은 달랐다. 일본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들의 혐한 소동도 반일 감정에 한몫을 하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읽고본느낌 2019.10.18

노래 / 김남주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지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노래 / 김남주 조국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에 인용해서 화제가 된 시다. '죽창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로 불려졌는데, 원래 제목은 '노래'다. 제목에 따라 시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죽창가'라고 하면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의분이 일어난다. 조국 민정수석은 SNS로 이번 사태의 진상이 무엇인지 법률학자답게 냉철하게..

시읽는기쁨 2019.07.23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소견

점잖게 말하면 '수출 규제'이고, 사실은 '경제 보복'이다. 위안부 합의 사항을 파기한 것과, 개인의 불법 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의 배상을 결정한 우리나라 대법원판결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역시 아베다운 행동이다. 첫째, 정치 문제를 무역으로 보복하는 일본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일본은 한국 반도체 제조에 꼭 필요한 소재의 수출 길을 막으려 한다. 자기들만 가지고 있는 핵심 기술이니 대체재도 마땅치 않다.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고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가하려는 치졸한 짓이다. 이렇게 하면 세계 자유무역의 질서는 깨진다. 상대국 정책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는 한국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이 명약관화하다. 껄끄러운 문재인..

길위의단상 2019.07.22

대한민국人 / 주영헌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원주민이라는 주민등록증도 있습니다. 봄철이면 중국발 황사를 다 함께 호흡합니다. 우리는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월드컵에는 붉은 옷을 입고 함께 큰 함성을 질렀습니다. 올림픽에는 "영미!"라고 같이 외쳤습니다. 당신과 나는 한국말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안녕'이라는 말까지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니까'라는 말도 이해하겠습니다. 주어와 동사와 단어, 그 낱낱의 의미는 이해하겠는데,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이 목청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하는 모습을 보니 감정의 격함은 알겠는데,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

시읽는기쁨 2019.07.16

부도덕 교육 강좌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가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 궐기를 촉구하며 할복자살한 때가 48년 전인 1970년이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사진과 함께 신문에 크게 보도된 기사를 보며 놀랐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가 외친 내용은 차치하고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죽음의 방식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극우 민족주의자인 그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다. 는 미시마 유키오가 쓴 산문집이다. 책 제목 그대로 사회 통념이나 도덕에 반기를 드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선생을 무시하라' '거짓말을 많이 하라' '약속을 지키지 마라' '청년이여, 나약해져라' '여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라' 등의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는데, 미시마 유키오다운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읽어 보면 제목처럼..

읽고본느낌 2018.07.07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제목만 보면 괴기물로 오해하기 쉬우나, 청소년의 청순한 사랑과 우정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췌장암에 걸려 1년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소녀와 동급생 남자 친구가 주인공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병에 걸린 같은 부위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네 안에서 살고 싶다'는 표현이면서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남자 주인공(이름이 하루키였다. 이 영화에서는 이름이 잘 불리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은 그저 '친한 친구'라고 부른다.)의 캐릭터가 특이하다. 하루키는 교실에서 급우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일종의 왕따 학생이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인 사쿠라는 동급생의 퀸카다. 자신의 병을 감추고 명랑하게 지낸다. 1년 뒤에 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저럴 수 있을까, 싶다..

읽고본느낌 2018.03.30

독일과 일본

해외에 몇 번 나가보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이다. 독일은 24년 전에 갔는데 한 달가량 머물렀다. 독일이 통일된 지 4년이 지난 뒤였다. 첫인상은 질서정연한 나라라는 것이었다. 거리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교통법규의 준수였다. 보행자가 지나가면 무조건 자동차는 정지하고, 스쿨버스가 서 있으면 아예 몇 미터 뒤에서 대기하는 광경은 너무 놀라웠다. 그런 사람 우선 문화가 부러웠다. 독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규칙을 잘 지키느냐고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다. 독일 사람이 착해서가 아니라 엄격한 법 집행의 결과라는 답을 들었다. 규칙을 어기면 필벌이 따른다. 그러면 원칙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 독일은 법가(法家)의 정신이 구현되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너무 원칙대로 돌아가면 사회..

참살이의꿈 2018.01.27

부산 & 대마도(3)

단체로 여행 갔을 때 아쉬운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의 부족이다. 떠들어대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건 영 질색이다. 그래서 자유 시간이 나면 억지로라도 일행에서 떨어져 행동한다. 다행히 이번 대마도 여행은 일정이 빡빡하지 않고 여유가 많았다. 지역이 좁으니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날은 아침 식사 후 한 시간, 점심 후 두 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동료들과 헤어져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특별히 갈 데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이국의 골목길을 발길 가는 대로 걷는다. 패키지 코스에서 벗어난 인적이 드문 곳이다. 보여주는 광경이 아닌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조그만 카페를 발견하고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창가에 앉았다.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

사진속일상 2017.09.16

부산 & 대마도(2)

여행을 갈 때 제일 신경 쓰이는 게 잠자리다. 집에서는 혼자 방을 쓰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대개 2인 1실이다. 잠자는 시간이나 습관이 다른 사람과 같은 방을 써야 한다. 더구나 나는 코를 골기 때문에 타인의 잠을 방해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 여러 신경을 쓰다 보면 깊은 잠을 자기 어렵다. 파트너는 잠을 늦게 드는 친구였다. 잠이 안 와 두세 시가 되어야 잠 든다고 했다. 같이 얘기하다가 잠자는 타이밍을 놓쳤는데 불을 꺼도 이 친구는 10분마다 한 번씩 헛기침을 하며 뒤척였다. 잠이 들었다가도 그 소리 때문에 금방 깨버렸다. 그래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아침 컨디션이 바닥인 상태로 여행을 시작했다. 부산터미널에서 대마도를 향해 9시에 출발했다...

사진속일상 2017.09.15

이런 노년도 가능하다

며칠 전 신문에 '일본의 100세 할머니 베스트셀러 저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요사이 일본에서는 100세를 전후한 할머니들이 낸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보도였다. 일본 출판계에서는 이런 책을 가리켜 '100세 전후'라는 뜻의 영어 'Around Hundred'를 줄여 '아라한' 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출간된 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93세의 할머니 작가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침없는 입담으로 풀어내 인기를 얻었다. 지금까지 1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그 외에도 많다. 지난해 9월 출판된 100세의 다카하시 사치에가 쓴 는 26만 부가 팔렸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대단한 말이 쓰여있지는 않지만 연륜의 무게로 공감을 얻는다고 한다..

참살이의꿈 2017.08.06

일본인의 친절

처음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제일 인상에 남은 게 일본인의 친절이었다. 일본인의 질서 의식과 청결, 남에 대한 배려와 친절에 대해서 수도 없이 들었지만, 막상 직접 접해보니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연극을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고 친절했다. 당연히 우리와 비교되는 바였다. 어떤 때는 너무 하다 싶기도 했다.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상황도 많았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울 것이지만 한국인인 나한테는 거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문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내리면 될 텐데 굳이 양보한다. 어찌 됐든 일본 민족은 경탄스럽다. 그런 습성이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일본에서 배운 대로 며칠 전에 산에 갔을 때 마주 오는 사람을 위해..

길위의단상 2015.08.13

조몬스기

조몬스기를 알게 된 건 7년 전쯤 야마오 산세이 선생의 책을 통해서였다. 일본의 남쪽 섬 야쿠시마에 수령 7,200년의 삼나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을 산 나무가 보고 싶어진 건 당연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트레커에서 야쿠시마 트레킹이 있어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조몬스기 순례 여정이었다. 해발 1,300m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왕복 21km, 10시간이 걸린 힘든 길이었다. 한 달에 35일이나 비가 온다는 야쿠시마에서 이날은 쨍쨍하게 맑았다. 날씨 덕을 톡톡히 보았다. 조몬스기 할아버지는 사진으로 보던 그대로 말없이 기다리고 계셨다. 바로 전까지는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막상 대면했을 때는 담담했다. 맑고 투명한 느낌이랄까, 올라오면서 만난 다른 삼나무 고목들과는 확연히 달..

천년의나무 2015.08.09

일본(4) - 사쿠라지마

가고시마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산이 사쿠라지마(櫻島)다. 사쿠라지마는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출 때 오른쪽 창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가고시마 하면 사쿠라지마가 연상될 정도로 그 순간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가고시마에 있는 내내 어디서나 사쿠라지마를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모아 보았다. 비행기에서(7/31/11:02) 가고시마항에서(7/31/15:20) 야쿠시마에서 돌아오는 배 위에서(8/3/14:50) 솔라리아 호텔에서(8/3/16:10) 솔라리아 호텔에서(8/3/19:05) 솔라리아 호텔에서(8/4/06:20) 솔라리아 호텔에서(8/4/07:10) 솔라리아 호텔에서(8/4/09/07) 시로야마 공원에서(8/4/11:20) 센간엔에서(8/4/12:40) 사쿠라지마로 가는 배 위..

사진속일상 2015.08.09

일본(3) - 가고시마

야쿠시마에서 가고시마로 들어와서 하루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홀로 '어슬렁족'이 되기로 했다. 일본에서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느낌이지만, 왠지 이 나라는 혼자 돌아다녀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비슷한 외모, 친절, 안전 등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우리가 묵었던 솔라리아 호텔. 가고시마중앙역 앞에 있어 교통이 편리했다. 앞에 보이는 동상은 쇄국정책이 시행되던 1865년에 막부에서 비밀리에 19명의 젊은 유학생들을 영국에 보낸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들이 배운 문물과 제도는 훗날 메이지 유신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시내에는 '유신의 길'도 있다. 가고시마중앙역 2층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1천 엔을 주고 'Welcome Cute'라 부르는 일일 교통이용권을 샀다. 이 티켓 한 장..

사진속일상 2015.08.08

일본(2) - 야쿠시마 일주

야쿠시마[屋久島]는 일본 규슈 남단에 있는 가고시마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가는 데 고속선으로 2시간 30분이 걸린다. 둘레는 132km로 일본에서 아홉 번째로 큰 섬이다. 중앙에 1,936m의 미야노우라 산이 있고,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1993년에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 수령 7,200년의 조몬스기가 있어 유명하다. 전날 조몬스기 트레킹을 했고, 오늘은 대절 버스로 섬 일주 투어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서쪽 세이부 임도가 비로 폐쇄되어 한 방향 일주는 불가능했다. 주유 버스는 미야노우라에 있는 숙소에서 9시 30분에 출발하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처음 도착한 곳은 나가타마에 해수욕장이다. 아침인데도 햇살이 매우 따갑다. 이곳은 바다거북 산란지 중 하나다. 람세..

사진속일상 2015.08.07

일본(1) - 조몬스기 트레킹

7월 31일 아침 5시 30분에 집을 출발하여 저녁 7시에 야쿠시마에 들어왔다. 인천공항에서 가고시마공항까지 비행기로 1시간 30분, 가고시마항에서 야쿠시마 안보항까지는 배로 2시간 30분이 걸렸다. 일본 여행은 처음인데 무척 가까운 나라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비슷했다. 그런데 땅에 내려보니 완전히 다른 문화의 나라였다. 일본의 첫인상은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회색 톤의 단조로운 주택 색깔이었다. 민숙에서 4시에 기상하다. 대절한 택시로 이라카와 등산로 입구로 이동하여 5시 20분에 트레킹을 시작하다.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새벽이다.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다. 길은 철길을 따라간다. 이 철길은 벌채한 야쿠시마 숲의 나무를 아래로 운송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철길만 8.2km를 걸어 ..

사진속일상 2015.08.06

시간의 숲

야마오 산세이의 책을 읽은 게 이 영화로까지 이어졌다. 은 야마오 산세이가 살았던 야쿠 섬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올봄에 개봉되었지만 뒤늦게 알게 되어 영화 자료실에서 찾아 감상했다. 배우 박용우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일본 남단에 있는 야쿠 섬으로 열흘간의 여행을 떠난다. 지친 심신을 달래고 7,200년 된 조몬삼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 배우 타카기 리나를 만나고 둘은 숲과 해변을 거닐며 자연이 주는 고요와 평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내면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위안을 받는다. 자연을 통한 심리 치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수천 년 된 나무들을 배경으로 인간 내면으로의 여행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두 사람의 대화보다 야쿠 섬 풍경과 숲, 조몬삼나무를 보는 게 더 흥미로..

읽고본느낌 2012.09.04

일본영화 두 편

괜찮은 일본영화 두 편을 보았다. 과 다. 개봉한 지 몇 해 지난 거라서 안방극장에서 본 게 아쉬웠다.그러나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 잔잔한 영화는 아무 방해 받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얼마 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옆자리의 여자가 휴대폰으로 쉼 없이 문자를 주고받는 바람에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은 일본의 중학교가 무대다. 반 아이들에 의해 담임교사의 어린 딸이 살해된다. 이 영화는 담임교사의 우아한(?) 복수를 줄기로 하는 스릴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면서 인간 본성과 용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본 학교의 교실 붕괴와 왕따 문제, 살인을 해도 처벌할 수 없는 미성년자보호법, 가정 문제, 아이들을 통해 표현..

읽고본느낌 2012.02.07

우리 의사 선생님

청진기로 진찰하던 때가 인간적인 의료 기술의 마지막 시대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은 바로 그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일본의 오지 농촌에서 주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일하는 '이노'라는 의사가 있다. 이노는 주민들의 속사정을 헤아리며 마음이 통하는 인술을 편다. 주민들에게는 명의에 더해 신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는 가짜 의사다. 영화에서는 무슨 이유로 의사 노릇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보여주지 않지만 하여튼 그는 의사 자격증이 없다. 어느날 이노가 사라지면서 그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 의사 선생님'은 잔잔하면서 따스한 영화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은 첨단의 의료 테크닉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와 믿음임을 보여준다. ..

읽고본느낌 2010.05.03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가족과 함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다. 며칠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큰 아이가 표를 끊어온 것이다. 오래 전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나이였으니까 20년 전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만화 영화가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었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코난의 다음 편 때문에 일요일이 무척 기다려졌었다. 지금은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전쟁을 치르고 난 뒤의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였는데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진 자연과 동심의 순수함과 문명 비판 등이 어우려져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만화 영화하면 나에게는 코난이 제일 먼저 연상된다.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닌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읽고본느낌 200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