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 26

따스한 연대

12월 3일에 윤석열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나라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14일에 국회에서 힘들게 탄핵이 의결되었지만, 헌재에서 탄핵 심판을 하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와중에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추락하여 17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나라에 망조가 든 건 아닌지, 2024년의 끝날이 심란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했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국가 폭력에 저항했다. 계엄 날 밤에는 국회를 지키고 군용차량을 막아세웠다. 이번에는 새로운 시위 문화가 등장했다. 촛불 대신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등장하여 흥겨운 음악과 함께 국민의 마음을 밝혔다. 축제 같은 시위였다. 참가하지 못한 시민은 음식과 보온용품을 지원하며 이들을 응원했다. 21일과 22일..

참살이의꿈 2024.12.31

저들에겐 총이 우리에겐 빛이 / 박노해

이 한겨울에 우리 다시 만나니슬프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눈물과 미소로 너를 바라본다 용기 내줘서 고마워살아있는 네가 눈부셔우린 꼭 이겨낼 거야 저들에겐 총이우리에겐 빛이 우리,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우리, 서로가 나라를 지키고될 때까지 우리 함께 할 거야 역사의 악인은 얼굴을 바꾸며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오지만우리는 지금 살아있는 빛으로승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으니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아이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어선령들이 우리를 가호하고 있어 저들에겐 탐욕이 우리에겐 영혼이저들에겐 총칼이 우리에겐 사랑이저들에겐 파멸이 우리에겐 희망이 우리 인생의 '별의 시간'에다치지 말고 지치지 말고빛으로 모이자, 될 때까지 모이자 - 저들에겐 총이 우리에겐 빛이 / 박노해  윤석열이 지난 12월 3일에 '아닌 밤..

시읽는기쁨 2024.12.16

소년이 온다

지난 10일에 스톡홀름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국내 정세가 급박하여 관심을 덜 받고 지나갔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장면은 감격이었다. 시상식 전후로 수상 소감과 강연도 있었다. 최근에 작가의 를 읽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이 작가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문체로 애절하게 그려졌다. 그래서 더 슬펐는지 모른다. 잔인한 폭력과 고통, 동시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국가 폭력은 쉬지 않고 반복되어 나타난다. 책에 나오는 대로 폭력에 노출된 인간은 방사능 피폭처럼 오랜 기간 인간성을 파괴한다. 광주는 수없이 되태어나고 인간을 살해한다. 작금에 윤석열에 의해 저질러진 비상계엄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에 나오는 인상적인..

읽고본느낌 2024.12.13

[펌]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

길위의단상 2024.11.29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한 달째 계속되는 가운데 어제는 서울대학교 교수 525명이 윤석열 정부 퇴진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전국 90여 대학에서 참여한 교수는 5천 명이 넘는다. 종교계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28일 천주교 사제 1466명이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냈다.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민심이 아우성을 외면할 수 없어 시국선언의 대열에 참여한다고 사제들은 밝혔다. 윤석열 정부로부터 민심이 떠난 것은 여론조사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 지지도가 고작 20%에 그친다. 10%대를 기록한 조사도 있었다. 이 정도면 심리적 탄핵 수준이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정부는 반성할 줄 모르고 고집을 부린다. 국..

길위의단상 2024.11.29

8월 / 김사인

긴 머리 가시내를 하나 뒤에 싣고 말이지야마하 150부다당 들이밟으며 쌍,탑동 바닷가나 한 바탕 내달렸으면 싶은 거지 용두암 포구쯤 잠깐 내려 저 퍼런 바다밑도 끝도 없이 철렁거리는 저 백치 같은 바다한테침이나 한번 카악 긁어 뱉어주고 말이지 다시 가시내를 싣고새로 난 해안도로 쪽으로부다당 부다다다당내리 꽂고 싶은 거지깡소주 나팔 불듯총알 같은 볕을 뚫고 말이지 쌍, - 8월 / 김사인  김사인 시인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다른 시여서 깜짝 놀랐다. 늘 조곤조곤 속삭이듯 말하고 얌전해 보이는 시인의 내면에 이런 불 같은 열정과 일탈이 숨어 있다니, 의외였지만 솔직히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나도 가끔씩 뭔가가 불끈 치솟아 오를 때가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궤도 이탈의 욕구 같은 것이다. '야마하 150'은 ..

시읽는기쁨 2024.08.25

봉우리 /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작은 봉우리 얘길 해줄까 봉우리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오르고 있었던 거야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얼마 남지 않았는데 잊어버려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봉우리에 올라서서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아무것도 아냐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그저 고갯마루였을 뿐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거기 부러진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나는 봤지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시읽는기쁨 2024.07.24

김남주 평전

"나는 시인이 아니라 전사(戰士)여!"김남주는 스스로 행동하는 전사가 되기를 택했고 그 길을 갔다. 총명했던 젊은이가 입신양명의 길을 마다하고 혁명의 대의를 따른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좇아가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지켜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하지만 하물며 자기희생이 따르는 험난한 여정임에랴. 책 어딘가에는 김남주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자유를 향하여 전 존재를 내던진 자, 사적 소유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버린 자, 개인적 욕망을 아예 포기한 자."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일고에 들어간 김남주는 고등학생때부터 영어와 독어 원서를 읽을 정도로 어학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고, 많은 독서를 통해 사회와 역사의식에도 일찌감치 눈을 떴다. 그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읽고본느낌 2024.05.24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13년 전인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대자보가 하나 붙었다. 제목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로 경영학과 3학년생이던 김예슬이 쓴 것이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대학생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거부 선언이 찬반 논란을 불러왔고, 숨 죽이고 있던 목소리가 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블로그에 대자보 전문을 옮겼고 공감을 표하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은 없었다. 호수에 생긴 파문은 이내 가라앉아 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지배하는 강고한 시스템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김예슬 씨가 선언을 하게 된 배경과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소책자인데 선언을 한 그해에 ..

읽고본느낌 2023.07.30

룩 업

'돈 룩 업(Don't Look Up)'이 지구 종말에 관한 영화라고 해서 봤다. 지구와 혜성이 충돌하는 상황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인류의 안위보다는 제 이익이 우선인 정치나 미디어계를 비판하는 영화다. 그러다 보니 혜성 충돌에 관한 사실적 묘사는 부족하다. 여러 군데 건너뛰면서 봤지만 인상적으로 들리는 말이 있었다. '돈 룩 업(Don't Look Up)'과 '룩 업(Look Up)'이다. 하늘에서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는 절체절명의 때지만 상반되는 두 목소리가 있다. "올려다보지 마!"와 "올려다봐!"다. "올려다보지 마"는 지구가 파멸하든 말든 자기의 기득권을 끝까지 지키려 한다. 너희들은 고개를 숙이고 앞에 놓인 길만 보라고 한다. 세월호에서 객실에 갇힌 학생들에게 ..

참살이의꿈 2022.01.13

수인

황석영 작가의 자전 기록이다. 1943년 출생에서부터 1998년 감옥에서 석방될 때까지 55년간의 삶을 담았다. 1권은 '경계를 넘다', 2권은 '불꽃 속으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구성이 특이하다. 감옥 생활 여섯 꼭지를 중심으로 사이사이에 과거 기록이 들어 있다. 순서를 거스른 의도적인 배치가 내용에 포인트를 준다. 시대순으로 재배열하면 이렇다. 유년(1947~1956) 방랑(1956~1966) 파병(1966~1969) 유신(1969~1976) 광주(1976~1985) 출행(1985~1986) 방북(1986~1989) 망명(1989~1993) 감옥(1993~1998) 제목에서 보듯 파란만장한 생애다. 대부분이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바쳐져 있다. 한 인간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

읽고본느낌 2018.08.23

영초언니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씨의 소설이다. 작가는 박정희 독재정권이 막바지에 이른 7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다. 반독재 민주화 학생운동을 하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200일 넘게 감옥살이도 했다. 당시 작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천영초 선배 이야기를 이 소설에 담았다. 소설 형식을 빌렸지만 실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르포르타주에 가깝다. 이 기록이 애틋한 것은 소설 주인공인 천영초는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겨우 의식을 되찾고 고국에 돌아와 요양중이라고 한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대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 영초언니만이겠는가, 운동의 앞장을 섰던 많은 이들이 고문의 후유증이나 가난으로 고통을 겪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에 그려진..

읽고본느낌 2018.08.11

서프러제트

100년 전 영국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인 '모드 와츠'는 남편과 함께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여성은 아직 참정권도 얻지 못했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였다. 모드는 우연히 거리에서 서프러제트의 시위 장면을 보고 차별적인 현실에 눈을 뜬다. 서프러제트인 동료 노동자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하면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에게 딸이 있다면 그 딸은 어떤 세상을 살까요?"라고 남편에게 하는 질문에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모드는 서프러제트의 일원이 되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폭력 시위에 나선다. 감옥에도 가고 단식투쟁도 한다. 그 결과 집에서도 쫓겨..

읽고본느낌 2016.09.10

선한 분노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사립 예술고등학교와 외국 대학에 다녔던 사람이 변했다. 자기계발서를 버렸고 혼자만 잘 산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성공하는 방법이 아니라 세상이 어째서 이토록 잘못되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때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가 계기가 되었다. 는 박성미 씨가 자본에 저항하는 불온한 사랑에 대해 쓴 책이다. 책은 사랑, 돈, 혁명의 3개 단원으로 되어 있다. 제일 긴 '돈'에서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의자놀이 게임과 폰지 사기와 같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자놀이 게임으로 끝없는 노동을 강요하고, 폰지 사기 게임으로 풍요롭다는 착각을 심는다. 사람들은 탐욕스런 경제 동..

읽고본느낌 2015.12.12

상어가 사람이라면

"만약 상어가 사람이라면 상어가 작은 물고기들에게 더 잘해줄까요?" K씨에게 주인집 여자의 딸아이가 물었다. 그는 "물론이지." 하고 대답했다. "상어가 사람이라면 작은 물고기들을 위해 바닷속에 거대한 우리를 짓도록 할 거야. 그 안에는 식물은 물론 동물까지 포함한 온갖 종류의 먹이를 넣어놓겠지. 상어들은 그 우리 안의 물이 항상 신선하게 유지되도록 할 것이고 온갖 위생 관리를 할 거야. 가령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지느러미를 다칠 경우 즉시 붕대를 감아주겠지. 잡아먹기 전에 때 이르게 죽어나가면 안 되니까 말이야. 작은 물고기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가끔씩 커다란 수중 축제가 열리기도 할 거야. 우울한 물고기보다는 기분 좋은 물고기가 맛이 있거든. 그 커다란 우리 안에는 물론 학교도 있겠지. 이 학..

참살이의꿈 2015.11.18

희망

은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신 뒤인 2011년에 나온 산문 선집이다. 선생이 어떤 분이시고 사상의 바탕은 무엇인지 이 책 한 권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선생의 인간적 면모가 진솔하게 드러난 글이 많다. 선생은 글을 쉽게 쓴다. 학자인 체하는 어려운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중학생만 되어도 이 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이 글을 쓰는 목적은 오직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잠자는 민중을 깨우기 위해서는 누구나 알 수 있게 쉽게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선생이 존경하는 노신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의 선생은 노신의 글을 읽으면서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에 감동했다고 한다. 단순히 지식을 상품으로 파는 것에 안주하는 교수나 문예인이 아니라, 고난받는 이웃과 함께하려는..

읽고본느낌 2014.03.19

인간의 대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생텍쥐페리는 조종사라는 개인적 체험을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산문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기능적이기만 한 조종사가 아니라 하늘을 날면서 내려다보는 넓은 세상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비행은 그에게 있어 인간 완성을 추구하는 초월적 모험이었다. 감칠맛이 나는 생텍쥐페리의 글은 인생에 대한 사색으로 우리를 이끈다. 나는 누구이고,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인간은 어떤 역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내야 할 책임이 있다. 안데스 산맥에서 추락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기요메를 통해 이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정확히 말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우에 대한 책임감은 전 인류를..

읽고본느낌 2014.03.07

거짓말 / 예브게니 옙투셴코

아이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네 허위를 진실인 양 말하는 것도 잘못이지 아이들에게 천국에 하느님이 계시고 이 세상이 잘 굴러간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야 아이들은 자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안다네. 아이들도 인간이거든 아이들에게 숱한 어려움에 대해 말해주게 앞으로 일어날 일만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분명히 보게 해 줘야 하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장애와 난관에 대해 말해주게 마주치게 될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말해주게 지옥 같은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려주게 행복의 대가를 아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은가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되네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되네 그냥 두면 반복되고 늘어나 나중에 우리 학생들은 우리가 용서했다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테니까 - 거짓말 /..

시읽는기쁨 2013.07.08

두 개의 문

2009. 01. 20 03:00 경찰 특공대 출동 명령 03:30 현장 도착 06:16 진압 크레인 설치 06:30 컨테이너 투입 06:50 망루 진입 07:06 화재 발생. 철거민 5명, 특공대원 1명 사망 2009. 02. 09 검찰, 철거민 7명 구속 기소, 15명 불구속 기소 2009. 10. 28 용산 1심 재판부, 망루 생존 철거민 전원 유죄 판결 2010. 11. 11 대법원, 망루 생존 철거민 7명에 원심(4~5년) 확정 판결 '두 개의 문'은 2009년 1월 20일에 일어났던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생존권을 호소하며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농성을 시작했던 철거민들은 갓 하루가 지나 불에 탄 시신으로 내려왔다. 살아남은 자들은 범법자가 되어 지금도 형을 살고 있다...

읽고본느낌 2012.07.17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아침 3시 23분 나의 귀한 손자 손녀들이 나를 자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 잠에서 깬다. 나의 귀한 손자 손녀들이 꿈속에서 내게 질문을 한다. 지구가 약탈당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지구가 위태로울 때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계절이 바뀌지 못할 때 포유동물, 파충류, 새들이 모두 죽어갈 때 할아버지는 정말 무엇을 했나요? 민주주의가 짓밟힐 때 할아버지는 거리에서 저항했나요? 이전에 알고 있었을 때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이라는 책을 보다가 이 시를 만나 뜨끔했다. 생각과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실천하지는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강이 죽어가고, 정의가 짓밟히고, 지구가 약탈당할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먼 훗날 내 사랑스런 손자 손녀들이 “그때 할아버지는 무엇을..

참살이의꿈 2011.10.13

장자[175]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는데도 그것을 따져 물을 줄 모른다. 有亡國戮民無已 不知問是也 - 徐无鬼 13 에 숨어 있는 정신 중 하나가 '저항'이다. 전국시대라는 당시 상황에서 장자가 느꼈을 아픔과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 지배 체제나 기득권층에 대한 불신과 저항으로 연결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장자의 저항은 세상을 개혁하려는 또 다른 시도가 아니라 체제에 협조하고 동참하지 않으려는 보다 적극적인 저항이었다. 백성과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학파와 이데올로기가 생겼지만 결국은 지배층에 이용 당하고 백성에게 고통만 더해주었다. 민중의 삶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들임을 장자는 간파했다. 장자는 월왕 구천(句踐)과 대부 종(種)의 예를 든다. 구천이 싸움에져서 회계산에 숨어 있을 때 ..

삶의나침반 2011.08.04

소금꽃나무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의 85호 크레인 높은 곳에 50대의 여성노동자가 있다. 김진숙 씨다. 올 1월 6일에 올라갔으니 200일이 넘었다. 그는 해고 노동자의 복직과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외치고 있다. 그동안 전국에서 세 차례나 희망버스가 다녀갔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방관자다.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그가 쓴 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울어본 것도 처음이다. 전에 그의 연설을 동영상으로 보며 울컥한 적은 있었지만 삶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책에는 그의 지난했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소위 공순이에서 버스 안내양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이 지내다가 1981년에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읽고본느낌 2011.08.01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1846년 7월에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을 반대하면서 세금 납부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들어간다. 세급 납부를 거부한 이유는 자신이 낸 돈이 노예를 사는데 쓰이거나, 사람을 죽이는 총을 만드는데 쓰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친척이 세금을 대납해서 그는 하루 만에 풀려났지만 이 일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이 사건에 관계된 그의 강연 내용을 후에 책으로 출판한 것이 유명한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다. '시민의 불복종'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톨스토이나 간디에 영향을 미치면서 정권의 폭력에 대한 저항 정신의 원류가 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소로우의 글을 읽어보고 싶은 이유는 현 정권의 폭력이 도를 지나친다는 느낌..

읽고본느낌 2009.07.08

눈 / 김수영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눈 / 김수영 예전부터 이 시에 나타난 눈의 이미지를 어떻게 읽을지 망설여졌다. 하얀 눈은 순수와 순결의 상징이지만 여기서는 꼭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좀 삐딱한 독해을 하고 싶다. 눈은 세상의 사물을 한 가지 색으로 덮어 버린다. 눈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풍경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세상의 진실은 아니다. 그래서 눈을 '순수로 위장된 거짓'..

시읽는기쁨 2009.06.30

묵념 5분 27초 / 황지우

- 묵념 5분 27초 / 황지우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많은 얘기를 한다. 침묵이 웅변보다 더 많은 걸 말할 때가 있다. 여기서 '5분 27초'는 광주항쟁에서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유혈 진압된 5월 27일을 의미한다. 우연히도 그날 즈음인 오늘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다. 광주의 죽음과 노무현의 죽음에는 공통된 원인자가 있다. 그 거대한 뿌리를 직시하고 분노해야 할 때다. 건망증 환자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다시 잊어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은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비석의 비문을 황지우 시인이 쓴다고 한다. 작은 비석에 들어가는 작은 문장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이 시처럼 아무 말이 없는 침묵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시읽는기쁨 2009.05.29

그 날이 오면 /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뛴다. 영국의 한 비평가는 이 시를 세계..

시읽는기쁨 2004.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