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 30

양동마을 향나무

경주 양동마을 송첨 종택 마당에 있는 향나무다. 세조 5년(1459)에 집을 지을 때 함께 심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무는 500년이 넘었다. 우람한 줄기로 봐서는 그 정도의 연륜이 되어 보인다. 나무이 수세도 엄청 싱싱하고 멋지다. 이 종택에는 '서백당(書百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참을 인(忍)자를 매일 백 번씩 쓰며 살겠다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가풍이 장수하고 있는 향나무의 기품과도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나오면서도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명품 향나무다. 경북 기념물 제8호이며 높이가 7m, 동서 폭은 12m에 이른다.

천년의나무 2023.02.26

의릉 향나무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 뒤편에 있는 향나무다. 의릉(懿陵)은 옛 중앙정보부가 위치한 곳이라 일반인에게 개방이 늦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다른 능에 비해 이름이 생소하다. 경종(1688~1724)과 선의왕후(1705~1730)가 잠들어 있다. 연도를 보니 경종은 37살, 부인은 26살에 세상을 떠났으니 두 분 모두 단명한 셈이다. 의릉 주위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이 향나무는 능 뒤편 산책로 옆에 있다. 두 줄기가 V자 형으로 뻗었는데 지면의 큰 줄기 둘레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수령은 약 200년 정도다. 왼쪽 줄기에는 잎이 나지 않으니 고사한 것으로 보인다. 오래되어 노쇠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지팡이도 없고 꿋꿋이 버티는 모습이 대견한 향나무다.

천년의나무 2021.02.01

석수암 향나무

석수암(石水庵)은 안동시 안기동에 있는 작은 사찰인데 경내에 오래 된 향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향나무의 일종으로 옆으로 비스듬히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가지를 받쳐주는 쇠기둥의 도움이 필요하다. 의상대사가 이 절을 건립할 때 심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전설은 전설로 알아들어야 할 것 같다. 전설대로라면 나무의 수령은1,400년이 되어야 한다. 그에는 못 미치더라도 상당한 연륜을 보여주는 석수암 향나무다.

천년의나무 2020.09.27

양지리 향나무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는 11개다. 그중 하나가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32호의 이 향나무다. 옆에 거창 신씨 선조를 모신 묘소와 건물이 있는데, 이 향나무는 묘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양지리 향나무는 굵은 줄기가 여러 개의 가지로 균형 잡히게 갈라져서 단정한 모양을 하고 있다. 용틀임하는 향나무와는 모양새가 다르다. 입구 쪽에서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나비 같이 보인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품위 있고 늠름한 모습의 향나무다. 향나무는 마을 끝 막다른 곳에 있다. 나무를 보고 나가다가 해프닝이 있었다. 지나던 트럭이 도랑에 빠져서 나가는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견인차가 와서 트럭을 끌어낼 때까지 꼼짝없이 갇혔다. 덕분에 1시간 가까이 향나무 아래서 시..

천년의나무 2020.07.31

마장리 향나무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3리에 있는 향나무다. 마장리(馬場里)란 이름은 조선 연산군 때 이곳에서 말을 사육하고 군마 훈련을 시킨 데서 유래한다. 이 향나무는 조선 성종 때 공자 영정을 모신 성시영묘를 짓고 이를 기념하여 심었다고 전한다. 나무를 심은 뒤부터는 맑고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왔다는데,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서 마을 이름을 '샘골'로 불리기도 했다. 샘골 우물은 향나무 옆에 복원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향나무는 우람하면서 멋진 수형을 갖고 있다. 춤추듯 옆으로 뻗은 가지는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지만 나무에 역동성을 더한다. 향나무 수령은 약 500년이고,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3.4m다.

천년의나무 2020.05.01

능동 향나무

서울시 광진구 능동에 있는 향나무다. 능동(陵洞)은 능이 있던 마을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1904년에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비인 순명왕후 민씨가 세상을 뜨자 이곳에 묘를 만들고 유강원(裕康園)이라 했다. 지금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자리다. 뒤에 순종이 승하하자 금곡에 있는 유릉(裕陵)으로 옮겨가 합장했다. 유강원의 석물은 어린이대공원 안에 전시되어 있다. 수령이 450년인 이 향나무는 능과는 무관하게 오랜 세월 동네 주민들의 당산목 노릇을 해 왔다. 매년 2월과 10월 초하루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치제를 이곳에서 올린다고 한다. 향나무 주위는 정자마당으로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다. 향나무의 높이는 13m, 줄기 둘레는 2.2m다.

천년의나무 2020.01.14

보문사 향나무

석모도 보문사에 있는 향나무다. 대웅전 왼쪽 옆의 석실 앞에 있다. 나무가 있는 땅은 주변보다 2m 정도 높다. 땅을 깎아내면서 나무만 덩그러니 남은 듯하다. 수세가 왕성하여 잎이 온몸을 둘러싸고 있다. 수령은 700년 정도로 추산한다. 45도로 땅에서 나온 줄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용트림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철주로 받쳐주지 않는다면 가지 하나는 상했을 것이다. 이웃해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이 향나무는 보문사의 중요한 풍경을 이룬다. 이런 나무가 있으므로 절 역사는 깊이를 더한다.

천년의나무 2019.05.16

율봄식물원 향나무

집 인근에 아담한 율봄식물원이 있다. 식물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유치원 아이들이 현장 학습으로 많이 찾는다. 율봄식물원 안에 3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고난의 몸짓이라고 할까, 누적된 세월이 줄기에 그대로 보인다. 외피가 벗겨진 부분은 흰 속살이 드러났다. 몸체가 45도로 기울어져 있어 몸무게를 버티기에 힘겨워 보인다. 균형을 잡아줄 반대편 줄기는 부러졌다. 설명에 보면 수형이 '현애(懸崖)'라는데, 현애란 분재에서 줄기가 분 아래로 늘어져 있는 형태를 말한다. 현재의 모양은 그 정도로까지 휘어지지는 않았다.

천년의나무 2018.06.29

봉녕사 향나무

수원시 우만동에 위치한 봉녕사(奉寧寺)는 고려 희종 4년(1208)에 창건한 사찰이다. 비구니 사찰답게 단정하면서 청정한 기운이 감돈다. 시내 한복판이지만 부지도 넓어 시원하다. 봉녕사 대적광전 앞에 오래된 향나무가 있다. 수령이 800년으로 적혀 있다. 그렇다면 봉녕사와 역사를 같이 하는 나무다. 고목의 나이는 가늠하기가 어렵지만 향나무는 더하다. 그냥 사찰의 창건 시기와 맞추었는지 모르겠다. 단단한 향나무지만 줄기는 많이 상했다. 밑의 가지는 마치 춤추는 무용수의 팔처럼 리드미컬하게 휘어져 있다. 나무 높이는 9.4m, 줄기 둘레는 2.8m다.

천년의나무 2018.06.05

도동 향나무

울릉도에는 화산암 바위 틈에서 자라는 향나무가 많다. 통구미와 대풍감에 있는 향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도동항을 둘러싼 산비탈에도 오래된 향나무들이 보인다. 무려 2천 살이 넘는 향나무도 있다고 한다. 당연 우리나라 최고령 나무다. 그런데 어느 나무인지는 확인을 하지 못했다.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나무를 찍어 보았다.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경사진 비탈에서 위태롭게 자라고 있다. 키를 낮추어야 할 것 같은데 홀로 우뚝하다. 고고장향(孤孤長香)으로 불러도 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7.11.06

북한동 향나무

북한산 보리사 앞에 있는 향나무다. 주 등산로가 바로 옆에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나무다. 수령은 350년이고, 높이는 7m, 줄기 둘레는 2.3m다. 다른 향나무에 비해 키가 높이 자란 게 특징이다. 지금은 정비되어서 음식촌이 사라졌지만, 전에는 이곳에 마을도 있었던 것 같다. 지명은 경기도 고양시 북한동이다. 나무에 상처를 입히면 마을이 화를 입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젠 덩그마니 나무만 남았다.

천년의나무 2014.10.30

곤지암 향나무

경기도 광주시 실촌면 곤지암리의 행정 지명에 나오는 곤지암(昆池岩)에는 조선 선조 때 장군 신립(申砬, 1546~1592)에 얽힌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가 신립 장군은 병사를 이끌고 충주 탄금대에서 싸우다 패하고 강물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병사들이 장군의 시체를 이곳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양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는데 누구든 이 바위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밥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선비의 말도 바위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자, 선비는 말에서 내려 바위를 향해 "장군의 원통함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행인들을 불편하게 함은 온당치 못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뇌성벽력과 함께 벼락이 쳐..

천년의나무 2014.08.16

아침고요수목원 천년향

아침고요수목원을 대표하는 나무다. 원래는 안동에 있는 한 마을의 당산목이었으나, 마을이 수몰되면서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옮겨졌다. 향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이식 후에도 새 토양에 대한 적응이 빠르고 고사의 위험성이 적다고 한다. 수령이 1,000년 정도로 추정되어서 천년향이라고 이름 붙었다. 줄기는 노쇠했지만 전체적인 풍모는 단아하고 아름답다. 잘 가꾼 인공미이긴 하지만 사람도 저렇게 곱게 늙어가고 싶다.

천년의나무 2013.11.05

신륵사 향나무

여주 신륵사(神勒寺)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고려 말에 나옹선사가 머물면서부터 유명해졌다. 선사가 입적하면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고, 그뒤에 여러 건물들을 신축했다고 전한다.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지공, 나옹, 무학, 세 분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이다. 이 조사당 앞에 수령이 6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나옹선사의 제자였던 무학대사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 높이는 5m, 줄기 둘레는 1.3m인데 줄기가 많이 상해 보형재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잎을 보면 나무는 아직도 원기왕성하다. 다만 조경수처럼 너무 예쁘게 다듬어놓은 게 도리어 거슬린다. 드러나지 않을 듯 적당히 손질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2.10.07

과천동 향나무

이 옆으로 수도 없이 다녔지만, 골목길에숨어 있어서 있는 줄 몰랐다.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에 있는 향나무다. 수령은 500년이 넘었다. 기둥 줄기가 많이 상했어도 나무 상태는 건강하다. 아담하면서 예쁘게 생긴 나무다. 특히 줄기의 라인이 예술이다. 옛날에 이 나무는 마을 입구에 있었다 한다. 옆에는 우물도 있었을 것이다. 시골 풍경 하나가 그려진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와 현대식 건물에 둘러싸여 무척 답답하게 보인다. 아마 개인 사유지에 속해 있는 것 같다. 이 땅 주인은 누구도 소유 못 한 보물을 갖고 있는 셈이다. 나무의 높이는 8m, 줄기 둘레 3m다.

천년의나무 2012.03.10

간석동 향나무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이 향나무는 500년 전 어떤 장사가 우물에서 물을 떠먹고 말채찍을 꽂아 놓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 전해진다. 드문 말채찍 전설이다. 장사가 심어서 그런지 나무는 크고 당당하다. 전체적인 맵시도 균형이 잡혀 있다. 키는 17.5m, 줄기 둘레는 3,5m이다. 이 향나무는 조선 중기의 학자였던 최립(崔笠, 1539-1612)의 집 마당에 있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비 온 뒤'라는 시가 있다. 朝來風急雨몽몽 錦繡千林一半空 已作漫山秋色了 殘紅與泛碧溪中 - 雨後 / 崔笠 거센 바람 부는 아침 부슬비 내리더니 수놓은 비단 같던 수풀 절반을 비웠네 이미 온 산은 가을빛을 거두고서 남은 붉은 잎을 푸른 물에 띄우네

천년의나무 2011.12.21

올림픽공원 나홀로나무

올림픽공원에 작고 귀여운 나무가 하나 있다. 넓은 잔디밭에외롭게 서 있어 '나홀로나무', '왕따나무'로 불린다. 푸른 하늘, 초록색 잔디와 잘 어우러져 사진 찍는 사람들의 좋은 피사체 역할을 한다. 하늘의 구름만 잘 만나면 나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것 같다. 이 나무는 올림픽공원 9경 중 제 6경에 속한다. 아쉽게도 나무에는가까이 갈수 없다. 그러나 덕분에 시원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나무에 대한 정보는 아는 게 없지만,수종은 겉모양으로 보아 향나무로 추정된다. 아래 사진은 전에 찍었던 것이다. 2002. 9. 20 2005. 2. 13

천년의나무 2011.09.23

경류정 뚝향나무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진성이씨(眞城李氏) 종택이 있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난리 때에 공을 세운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가 맨 처음 세웠다고 한다. 종택 건물들 중에는 퇴계 이황이 이름을 짓고 쓴 경류정(慶流亭)이 유명한데 그 앞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뚝향나무가 있다. 퇴계 선생이 바로 진성이씨 문중이다. 뚝향나무는 향나무의 한 종류로 가지가 옆으로 퍼져 자란다. 옛날 고향 마을 우물가에도 이 나무가 있었다. 아마 물기 많은 둑에 많이 심었다고 ‘뚝’향나무가 아닌가 싶다. 경류정 뚝향나무는 나무의 유래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선 세종 때 이정(李楨)이 평안도 정주판관(定州判官)으로 있을 때 약산산성 쌓기를 마치고 귀향하면서 향나무를 가지고 와서 경류정 앞에 심었다..

천년의나무 2011.05.25

남한산성 향나무

남한산성 수어장대 옆에 청량당(淸凉堂)이라는 작은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 때 장군 이회(李晦)와 그 부인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다.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증축하게 된다. 이때 이회는 성 남동쪽의 가장 험한 구간을 맡았는데 기일 안에 완공을 하지 못하고 공사비도 과다하게 들어갔다. 이회는 감독을 부실하게 하고 공사비를 착복했다는 모함을 받고 서장대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서장대(西將臺)는 지금의 수어장대다. 공사비를 마련하러 나갔던 부인도 이 소식을 듣고는 한강을 건너오다가 투신 자살했다. 그러나 뒤에 이회의 죄없음이 밝혀지게 되는데 부부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고자 서장대 옆에 청량당이라는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이 청량당 앞에 수령이 400 년 가까이 된 향나무가 있다. 시기로 보아서 ..

천년의나무 2010.12.16

송곡사 향나무

충남 서산시 인지면에 서산 정씨의 시조인 정신보(鄭臣保)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곡사(松谷祠)가 있다. 정신보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13세기 중엽에 나라가 망하자 고려에 망명하여 이곳에 정착했다. 조선조에 그의 후손들은 송곡사라는 사원을 건립하고 정신보와 이 지역 출신 선비들을 배향했다. 송곡사 앞에 큰 향나무 한 쌍이 있는데 어린 시절에 이곳에서 학문을 배우던 유윤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유윤은 세종 2년(1420)에 사마시에 급제했으나 단종의 폐위를 보고 낙향했는데 나무의 수령은 약 550 년 정도 되었다. 이 정도 향나무라면 크기나 생김새에서 나라의 여느 향나무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송곡사라는 이름에서 보듯 이곳에는 예부터 소나무가 많았던 것 같다. 뒷산뿐만 아니라 사원 앞의 소나무 숲도 ..

천년의나무 2009.08.16

필경사 향나무

필경사(筆耕舍)는 심훈(1901-1936)이 말년에 기거하며 '상록수'를 집필한 곳이다. 본인 스스로 설계해서 이 집을 짓고 수 년간 살았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1932년에는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곳으로 내려온다. '필경(筆耕)'이라는 이름 그대로, 밭 갈고 농사 지으며 글을 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집은 원형 그대로보존되어 있는데 안에 들어가 보면 구조가 특이하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에 있다. 필경사 마당 한 켠에 심훈이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있다. 수령은 80 살 내외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향나무를 심은것은사철 푸르른 나무처럼변함 없이 민족정신을 지켜나가리라는 다짐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그날이 오면'이란 열정적인 시에는 조국 해방을 염원하는 그의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천년의나무 2009.07.25

배재학당 향나무

서울 종로구 정동에는 옛 배재학당 터가 있다. 감리교 소속이었던 아펜젤러(H. G. Appenzeller) 선교사가 1886 년에 세운 학교다.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 중등교육기관이다. 이듬해에는 배재와 이화학당 학생들을 위한 정동교회를 설립한다. 그래서 이곳은 신학문과 개신교의 시발지라고 할 수 있다. 학교는 1984 년에 강동구로이사를 갔는데 터에는 지금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옛 동관 건물만이 남아 있다. 이 건물 앞에 수령 500 년이 넘은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가 16 m에 이르는데 특이한 것은 아랫 부분에는 가지가 없이 위로만 쭉 뻗어 있다. 나무 줄기도 많이 상해서 대부분이 보형물로 채워져 있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말을 매어둔 나무..

천년의나무 2009.05.10

자운서원 향나무

율곡 선생의 자운서원(紫雲書院)에는 멋드러지게 생긴 향나무도 있다. 서원 본건물 앞에비스듬히 누워서 자라는 향나무 줄기의 곡선미가 빼어나다. 크거나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자태가 무척 아름답다. 이런 나무를 만나면 서원 자체보다 나무에 눈길을 빼앗기게 된다. 자운서원에서 향나무를 만나니 옛 선비들의 삶의 향기가 전해지는 것도 같다. 옛사람들은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지금과는 달랐지 않았나 싶다. 옛사람들의 책읽기는 참사람이 되는 길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물론 과거에 합격하기 위한 현실적인 목적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기 위한 방편이었다. 지금처럼 공부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옛 선비들은 지(知)와 행(行)의 일..

천년의나무 2009.03.12

서초동 향나무

지하철 서초역 사거리에 큰 향나무가 있다. 높이가 15.5 m에나이가 870 살이나 된 서울에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향나무다. 이 나무는 나이에 비해 줄기는 굵지 않은데 키가 커서 무척 날씬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향나무의 특징인 가지의 뒤틀림 현상도 별로 없이 곧게 자랐다. 신촌에 나가는 길에 이 나무를 보기 위해일부러 길을 돌아서 서초역에서 내렸다. 나무는 도로 한가운데 있어서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다. 이곳은 지금은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들어선 법원 단지이지만 전에는 비닐하우스촌이었다고 한다. 개발이 되면서 나무는 고립무원이 되었는데 그래도오래된 나무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배려가 있어 고맙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나무를 인간과 동일시하거나 신성시 하는 민족도 드물다고 한다. 나무를 시집 보낸다는 말도 있고..

천년의나무 2008.12.27

사직동 향나무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사직단 앞 거리에 이 향나무가 있다. 아마 전에는 여기까지 사직단 경내였을 것이다. 어디나 마찬가지였겠지만 도시가 개발되면서 사직단의 일부가 도로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향나무는 홀로 쓸쓸하게 서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대개 향나무를 경내로 옮기는 것이 보통인데 그러지 않은 걸 보면 나의 추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나무의 나이는 230 년 쯤 되었고, 키는 14 m, 줄기의 둘레는 1.8 m이다. 나무는 도시의 매연 탓에 무척 추레해 보이고 줄기는 온통 검게 변해 있다. 큰 키를 버틸 힘조차 없는 듯 철제 버팀목에 기댄 모습이 지팡이를 짚고 겨우 서 있는 할아버지 같이 허약하게 보인다. 도시속의 나무들은 인간의 보호를 받기는 하지만 다들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천년의나무 2008.12.18

마곡사 향나무

마곡사(麻谷寺)는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몸을 피해 다니다가 숨어지내기 위해 행자 시절을 보냈던 절이다. '백범일지'에는 그 과정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중이 되려면 제일 먼저 자기 마음을 낮추어야 한다고 하며,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금수나 곤충에게까지 자기 마음을 낮추지 않으면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고 하였다. 전날 밤 나를 찾아와 자기 상좌가 되어 달라고 할 때에는 지극히 공손하던 하은당부터 “얘, 원종아”를 기탄없이 부르고, “생긴 것이 미련스러워서 고명한 중은 되지 못하겠다. 얼굴이 어쩌면 저다지도 밉게 생겼을까? 어서 나가서 물도 긷고 나무도 쪼개거라.” 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망명객이 되어 사방을 떠돌아다니던 때에도 내게는 영웅심과 공..

천년의나무 2008.08.17

송광사 고향수

송광사(松廣寺)는 신라말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보조국사 지눌스님에 의해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크게 중창되었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송광사는 16국사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해 삼보사찰 가운데서도 승보종찰로 잘 알려져 있다. 현대의 큰스님만 해도 효봉, 취봉, 구산, 일각스님이 송광사에서 나셨다. 송광사 일주문을 지나면 바짝 마른 고목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오는데, 1200년에 보조국사가 송광사에 오셔서 직접 심은 나무라고 한다. 그 이름이 마른 향나무라는 뜻의 고향수(枯香樹)다. 그런데 보조국사가 돌아가시자 이 향나무도 따라 죽었고, 그때부터 스님들은 국사와 나무를 하나로 보고 무척 아꼈다고 한다. 그 까닭에 죽은 나무지만 800년..

천년의나무 2008.02.21

창덕궁 향나무

창덕궁 서편에 천연기념물 194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다. 궁궐이나 사찰에서는 이런 오래된 향나무를 볼 수 있는데, 강한 향기를 가지고 있는 향나무가 귀하게 취급 받은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실용적으로도 제례용으로 쓰이는 향을 충당하기도 했을것이다. 옆에 있는 선원전(璿源殿)이 역대 임금을 위한 제례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향나무는 수령이 750년으로 추정하며, 높이는 12m, 줄기 둘레는 6m에 이르는 우람한 나무다. 마침 옆을 지나던 외국인이 "Oh, my God!" 하며 감탄을 하며 다가왔다. 향나무 특유의 용트림 하듯 가지가 뒤틀린 모습 하며, 이 향나무의 우람하고 당당한 밑줄기는 그런 감탄사가 충분히 나올 만하다. 비록 무거워진 몸을 철제 기둥에 의지하고는 있지만 노거수의 위용 ..

천년의나무 2007.11.17

선농단 향나무

서울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先農壇)에는 천연기념물 240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다. 선농단은 조선조 때 농업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때 지내던 제사는 축제의 성격이 컸다고 한다. 경칩이 지난 다음 동대문 밖인 이곳에 왕이 와서 제사를 지내고 직접 쟁기를 잡고 농사짓는 모범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다. 행사 뒤에는 소를 잡고 가마솥에 곰탕을 끓였는데, 이 탕을 선농탕(先農湯)이라고 했으며 이것이 뒤에 설렁탕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설렁탕의 기원지이기도 하다. 나에게 이 장소가 각별한 것은 여기가 모교 캠퍼스였기 때문이다. 그때 선농단은 캠퍼스 안에 있어서 우리들의 휴식 동산이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도 하고 토론도 하던 장소였다. 또 그때는 카드놀이가..

천년의나무 2005.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