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911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

이상석 선생님의 교단일기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으면 자책이 많이 된다. 선생으로서의 내 행적이 너무 후회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차이는 사랑과 열정의 부족이다. 30년 넘게 선생 시늉을 하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껴안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좋은 선생의 조건은 아이들과의 소통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을 전하는 건 그 뒤의 일이다. 선생과 학생 사이에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교단에 설 때 아이들과의 사이에 늘 벽을 느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벽이었다. 그 벽을 깨뜨리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항력이었고 경력이 쌓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교육의 '교'자도 모른 채 선생 흉내를 낸 건 아닌가 싶다. 교사가 되자면 우선 ..

읽고본느낌 2016.08.17

곡성

영화 '곡성'을 본 지는 꽤 되었다.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게 목적이었는지 섬뜩한 장면들이 뒤엉켜 그때는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비슷하다. 거북한 장면을 배격하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헤아려보려 해도 잘 잡히지 않는다. 두 대사가 기억에 남아 있다. 하나는 다그치는 아빠에게 효진이 한 말이다. "뭣이 중헌디?" 이 절규는 당시 상황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헛다리를 짚으며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분노인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무당으로 나오는 황정민의 말이다. 왜 내 딸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나느냐는 곽도원의 질문에, 희생자가 되는 건 고기가 미끼를 무는 것과 같다는 대답이다. 악의 세력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가 걸리기를 기다..

읽고본느낌 2016.08.12

피로사회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선생이 쓴 우리 시대를 진단하는 철학 에세이다. 100페이지가 안 되는 소책자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서양 문화의 비판서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선생은 우리 시대를 성과사회로 규정한다. 과거의 규율사회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규율사회는 이미 사라졌다. 대신 피트니스 클럽, 외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새로운 사회가 등장했다. 이 사회의 주민은 더 이상 '복종적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인이다. 그런데 성과사회는 긍정성 과잉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

읽고본느낌 2016.08.04

에필로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이 타계한지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서 무척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과학자들 중에서 세이건만큼 대중들의 환호를 받았던 사람도 없었다. 그의 저서 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판매된 과학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TV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과학 다큐멘터리가 공전의 인기를 누린 건 처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의 신비를 접하고 꿈을 키웠다. 이 모든 것이 칼 세이건 개인의 능력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만큼 다방면에서 자질이 뛰어난 과학자였다. 나도 를 비롯해 등 여러 그가 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의 임펙트가 워낙 강해 뒤에 나온 책들이 시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

읽고본느낌 2016.07.29

채식주의자

유명 문학상을 받은 작품과 독자가 받는 감동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럴 때는 전문가는 역시 보는 눈이 다르구나, 하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올봄에 한강은 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 영미권에서는 꽤 권위 있는 상인 것 같다. 한국 작가가 세계적인 상을 받은 소식은 모두를 기쁘게 했다. 경제나 스포츠 분야에서의 성취에 비해 문학이나 사상 같은 정신적인 면에서는 많이 뒤처져 있었다. 수상을 반기는 건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는 수상 소식을 들은 뒤에 책을 사서 읽어 보았다. 그런데 느낌을 글로 옮기려니 굉장히 막막했다.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소설이 품고 있는 함의를 읽어내기가 내 수준으로는 어려웠다. 큰 상을 받은 작품을 내 멋대로 ..

읽고본느낌 2016.07.21

동적평형

일본의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가 쓴 책이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일을 소재로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생물학 에세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내용 중에서는 생명을 정의한 부분이 제일 흥미로웠다. 그 중심 개념이 책 제목으로 쓰인 '동적평형(動的平衡, Dynamic Equilibrium)'이다. 생명을 기계론적 사고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생명은 결코 부분의 총화가 아니다. 생명의 구성 요소를 모아서 합성한들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한다. 바로 에너지와 정보의 출입이다. 모든 생명 현상은 에너지와 정보가 어우러져 만드는 효과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생명은 단순히 자기복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넘어 '가변적이고 영속적인 시스템'이다. 생명은 흘러가는 강물 같은 흐름 가운..

읽고본느낌 2016.07.13

엑시덴탈 유니버스

지은이인 앨런 라이트먼의 경력이 특이하다.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론물리학자면서 소설가이다. 매사추세츠공대에서는 과학과 인문학에서 이중으로 강의를 맡기도 했다. 통섭적 인간의 대표라 할 만하다. 이 책 는 과학과 인문학의 색깔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과학 지식을 기초에 깔면서 예술과 문학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본다. 우리가 우주를 대하는 일곱 가지 관점을 정리했다. 1. 우연의 우주[The Accidental Universe] 2. 대칭적 우주[The Symmmetrical Universe] 3. 영적 우주[The Spiritual Universe] 4. 거대한 우주[The Gargantuan Universe] 5. 덧없는 우주[The Temporary Universe] 6. 법칙의 우주[The L..

읽고본느낌 2016.07.04

좌파논어

제목이 재미있어 읽어 본 책이다. 지은이인 주대환 씨는 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민노당원으로 정치 일선에도 나선 분이다. 그는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무너지지 않는 용기와 희망을 에서 찾았다고 고백한다. 책은 독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전해지는 메시지가 다르다. 특히 고전은 더 그렇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저자의 의도도 중요하겠지만 각 개인의 요청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고전으로 남을 수 없다. 고식적인 자구 해석에서 탈피해야 고전을 읽는 맛이 살아난다. 그런 점에서 도 신선한 시각에서 를 읽은 결과물이다. 지은이가 를 읽는 키워드는 '연대'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자당을 만들었다. '군자'도 공자당원이 되기 위한 자격 기준으로 읽는다. 동지들과 잘 지내..

읽고본느낌 2016.06.21

행복의 기원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가 진화론의 관점에서 행복의 정체를 밝힌 책이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반대로 살기 위해서 행복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는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행복감도 그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책 은 행복에 덧씌워진 관념을 냉철하게 발가벗긴다. 행복은 '비움', '느림', '감사'라는 공허한 지침에 반기를 든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인간은 '왜' 행복을 느끼는가를 묻는 책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

읽고본느낌 2016.06.12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1,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대략 의미만 파악하기 위해 훑어보는 데만도 닷새가 걸렸다. 굳이 정독할 필요까지는 없다. 책의 많은 부분이 다양한 통계와 그래프로 되어 있다. 전체의 요지만 이해하면 족하다. 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인류와 역사에 대한 희망적인 보고서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내면에는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고 있다. 초기의 야만과 폭력의 세계로부터 인류는 점차 개명되어 천사의 힘이 악마를 누르는 데까지 발전했다. 전 세계적인 폭력과 전쟁의 감소 현상을 통계로 보여주면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아름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루소를 비롯한 자연주의자의 관점이 대표적이다. 문명이 등장하기 전의 인류는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상상한다. 그것..

읽고본느낌 2016.06.06

마왕 신해철

이태 전에 가수 신해철 씨가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신해철 씨가 누구인지 잘 몰랐다. 어쩌다 가요무대만 보는 수준의 음악 소양이라 록 쪽은 완전한 문외한이다. 사고 이후 나오는 보도를 보고서 신해철 씨가 대단한 분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마왕'이라는 별칭이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은 그의 유고집이다. 생전에는 그의 음악 한 곡 들어보지 못했지만 글을 통해서나마 신해철을 만나게 되었다. 책의 유익한 점이 이런 것이다. 만날 수 없는 사람과도 서로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다. 물론 일방적이긴 하지만. 신해철 씨는 음악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재질이 뛰어난 분 같다. 글에서는 천재의 자질이 읽힌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보다는 몇 단계 위에..

읽고본느낌 2016.05.31

개인주의자 선언

지은이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우리 사회의 진단에서부터 어떤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자주 고개를 끄덕였다. 지은이는 현직 판사로 자신을 개인주의자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개인주의자는 성숙한 인격체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못하면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에 빠지기 쉽다.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에서 합리적인 개인주의로 변해야 행복한 개인이 많아진다고 믿는다. 개인주의자는 타인의 자유를 존중한다.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동참한다.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의 지배를 받아 왔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 '민족'이라는 말은 넘쳐나지만 '개인'이라는 말은 아직 희귀하다. 국가별 행복도의 차이는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의 차이다. 서열화되고..

읽고본느낌 2016.05.26

애쓴 사랑

이런 삶을 만나면 부끄럽다. 나는 한 번도 치열하게 살아보지 못했다. 황시백 선생은 세상과 불화하면서 먼 꿈을 꾼 사람이다. 바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올곧게 나아갔다. 선생은 전교조 해직교사로 교육 민주화 운동에 온몸을 불살랐다. 이런 분들이 나중에는 몸이 상해 일찍 세상을 뜨는 경우를 자주 본다. 선생도 그랬다. 선생은 교사였고, 농사꾼이었고, 목수였다. 몸을 낮춰 세상을 사랑했다. 이 책에는 교육보다 농사짓는 얘기가 더 많이 나온다. 선생은 도시를 떠나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아가는 사잇골 농촌 공동체를 꿈꿨다. 집안이 가난했던 선생은 젊었을 때 고생을 심하게 했다. 피를 팔아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지낼 때도 아픈 마음을 보듬어 안을 수 있었나 보다. 교직을 떠나서 농사를 택한 것..

읽고본느낌 2016.05.19

빅 퀘스천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과 교수인 김대식 선생이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과학자로서의 답을 한 책이다. '빅 퀘스천(Big Question)'이라는 제목이 어울린다. 뇌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선생은 뇌과학과 뇌공학,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책은 '존재는 왜 존재하는가' 등 31가지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각 항목이 심오한 철학적 주제로 하나만으로도 책 수십 권 분량이 필요할 것이다. 지은이는 역사, 신화, 문학, 예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간결하고 흥미롭게 이 난해한 주제를 다룬다. 바탕에는 과학적 관점이 깔려 있다. 이런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과학자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은 해답을 준다기보다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읽고본느낌 2016.05.14

부제가 '죽음을 통해서 더 환한 삶에 이르는 이야기'다. 능행 스님이 썼다. 스님은 불교계 최초로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설립하고 20년 넘게 죽음과 함께 하는 생활을 했다. 이 책은 스님이 직접 죽음의 현장에서 부딪치고 성찰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음을 말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먼 미래에 닥칠 일이라고 여긴다. 불길하다고 느껴서인지 죽음을 입에 올리기를 꺼린다. '4'가 '죽을 사' 자와 발음이 같다고 기피하는 것만 봐도 안다. 그러나 준비 안 된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당황하게 되고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자기 죽음에 대해 직시하며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목격한 스님은 말한다. 잘 살면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

읽고본느낌 2016.05.08

크로닉

인간이 감내해야 할 생로병사의 굴레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중년 남자인 데이비드는 말기 환자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돌보미다. 환자와 가족 이상으로 일체가 되어 고통을 함께한다. 환자를 자기 아내나 형으로 지칭할 정도다. 데이비드 같은 호스피스와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영화에는 설명이 안 나오지만 데이비드가 돌보미의 삶을 사는 데는 아픈 과거가 있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가정은 붕괴되었다. 스스로 아들을 안락사시킨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죽음에 동행자가 되려는 봉사는 그런 죄책감에서 나오지 않았나 추측된다. 데이비드는 세 번째 환자에게도 안락사 시술을 한다. 그것이 결국 영화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과 연결된다. 병들고 죽는 건 인간의 숙명이다. 많은 사람이 죽음에 ..

읽고본느낌 2016.05.02

소금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구조를 드러내 보이겠다고 했지만, 이야기 전개가 부자연스러워 효과가 반감된다.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 소설 은 우리 시대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 자본주의는 빨대와 깔대기의 거대한 네트워크란 작가의 말에 동의하지만 아버지만 희생자라고 할 수도 없다. 피해자는 아버지를 포함한 체제 속의 모든 구성원들이다. 소설은 아버지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선명우는 열심히 일해서 회사의 상무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가정에서 그의 자리는 없다. 아내와 세 딸의 화려한 소비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돈 버는 로봇일 뿐이다. 별나긴 하지만 우리 시대 아버지의 표상으로 봐도 무난하다. 어느 날 선명우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

읽고본느낌 2016.04.27

지금 여기, 산티아고

후배가 지금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 하순에 출국했으니 20일 넘게 걷고 있는 중이다. 카톡으로 보내오는 사연을 보면 하루에 40km 넘게 걷는 날도 있다니 굉장히 강행군을 하는 모양이다. 체력이 좋으니 다른 사람보다 일주일 정도는 빨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할 것 같다. 내가 산티아고를 안 건 10년 전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마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 때문에 걷기 열풍이 해외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산티아고는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영적인 순례 여정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지금도 찾는 사람이 이어지고 있다. 퇴직하면 나도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직장을 떠난 지도 어느덧 5년 차가 되었..

읽고본느낌 2016.04.18

마지막 3분

스티븐 와인버그가 쓴 은 빅뱅 이후 3분 동안에 우주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준 책이다. 그 시기에 우주를 구성하는 수소와 헬륨 핵이 만들어졌으므로 우주의 기본 틀은 이때 완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 우주의 시작에 관한 책이라면, 폴 데이비스가 쓴 은 우주의 마지막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은 우주의 시작과 끝에 관한 의문과 연관되어 있다. 놀랍게도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에 바탕을 둔 현대 과학은 이런 호기심에 일정 부분 대답을 해 주고 있다. 물론 변수가 많아 불확실하지만 여러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우주가 점점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우주의 '열 죽음'이라는 암울한 종말로 귀결된다. 모든 별의 불은 꺼지고 우주의 온도는 절..

읽고본느낌 2016.04.11

서울 사는 나무

이 책을 읽으며 먼저 지은이에게 관심이 갔다. 나무와 관계된 이력이 2년밖에 안 되는데 이런 책을 쓴다는 게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다. 표지 뒷면에 적힌 장세이 씨 자신에 대한 소개가 재미있다.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남. 사주가 좋아 명리학을 공부한 할아버지의 총애를 듬뿍 받음. 딸만 넷인 집안의 아들 대용으로 취학 전까지 빡빡머리에 바지만 입음. 인생이 정해진 대로 흐른다는 걸 내내 의심하며 자람. 2001년 부산대학교 사범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졸업장을 안았으나 지긋지긋한 IMF 여파로 그해 응시하려던 분야의 임용고시가 열리지 않음. 반년 동안 한 교육학 공부, 말짱 헛것 됨. 인생의 뜻대로 안 된다는 걸 절감함. 2002년 방송국 PD가 된 언니 따라 엉겁결에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음. 언니..

읽고본느낌 2016.04.01

마쿠라노소시

11세기 초에 일본의 궁녀였던 세이쇼나곤이 쓴 수필집이다. 세상과 자연을 보는 여성의 감성이 고운 문체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천 년의 격차가 있지만 현대적 감각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책 제목에서 '마쿠라(枕)'는 베개를, '소시(草子)'는 묶은 책을 뜻한다. 즉, 마쿠라노소시는 '베갯머리 책'으로 여성의 사적인 감상록이라는 의미가 짙다. 그렇더라도 책을 읽으며 일본 문학의 전통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에는 302편의 글이 있다는데 내가 읽은 것은 37편만 발췌한 축약본인 게 아쉬웠다.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는 완역본이 없는 것 같다. 글은 궁중생활이 중심이 되어 있으나 자연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남녀관계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당시 일본인의 풍습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천 년 전..

읽고본느낌 2016.03.26

본래 그 자리

내 생각이란 게 있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선인이 말했듯, 지금 내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것은 전 세대 사람들이 했던 사유의 잔해에 불과하다. 나만의 생각은 없다. 맹난자 선생의 를 읽다가 든 생각이다.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있다. 생과 사, 영혼, 존재의 의미 등에 대한 물음이 그것이다. 진리를 깨치기 위해 수도자는 일생을 바쳐 정진한다. 이 질문에 바탕하지 않은 철학이나 예술은 없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는 이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지은이의 지적 탐구 과정을 보여준다. 책에는 동서고금의 철학자, 사상가, 예술가, 종교인들이 등장해서 그들의 삶과 생각을 보여준다. 백과사전식 나열이 아니라 지은이의 의도에 따른 흐름이 있어 중..

읽고본느낌 2016.03.16

나의 생명 수업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지은이의 마음이 따스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성호 선생이 20여 년간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줄기에서 만난 자연의 벗들과 만나고 대화한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뒷산이라고 표현한 학교 가까이 있는 산이 제일 많이 등장한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생명체가 주인공들이다. 선생의 관심은 다양하다. 풀과 나무 같은 식물에서 어류, 조류, 포유류 등 범위가 넓다. 버섯이나 오색딱따구리처럼 수개월 넘게 매달리기도 한다. 대상이 무엇이든 생명을 대하는 지은이의 따스한 마음이 감동을 준다. 무엇을 보느냐보다 중요한 건 얼마큼 사랑하느냐다. 집 앞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거기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 닭의장풀에 대해 ..

읽고본느낌 2016.03.07

소설가의 일

김연수 작가의 소설 작법이다. 딱딱한 교재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수필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소설 쓰기만이 아니라 인생론이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건 삶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쓰기에 관한 책이라는 걸 모른 채 읽었다. 서가에서 훑어볼 때는 소설가의 일상에 대한 산문이라고 생각했다. 소설가의 일상이 소설 쓰는 일일 테니 소설 작법에 관한 내용이어도 속은 것은 아니다. 이과 전공으로서 문학 원론에 관한 내용이 색다르고 흥미로웠다. 책 내용 중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쓴다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은이는 '감각으로 쓰고 생각하며 교정한다'고 말한다. 쓰기보다는 고치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구성을 완벽하게 결정해 놓고 소설 쓰기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 한 번..

읽고본느낌 2016.02.28

광기와 우연의 역사

책을 한참 읽다 보면 낯익은 느낌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전에 읽었던 책임을 늦게서야 알아챈다. 옛날에 읽었던 책이란 걸 알면 왠지 싱거워져서 덮기도 한다. 이 책도 그러했지만 워낙 재미가 있어서 놓을 수가 없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필력 때문이다. 1881년에 태어난 츠바이크는 뛰어난 문장과 재미있는 내용으로 명성을 떨친 작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통합된 유럽이 만들어지리라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히틀러가 등장하자 영국으로 망명하고 다시 브라질로 이주한다. 결국 나중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절망에 빠져 1942년에 아내와 함께 자살한다. 츠바이크는 진보적 사고와 휴머니즘적 이상을 지녔던 작가였다. 1927년에 나온 는 세계사의 극적인 순간 열두 장면을 선정해서 마치 영화를 보듯 재현해 놓았다. 제목..

읽고본느낌 2016.02.22

사는 게 뭐라고

지난달에 를 읽고 감동해서 다시 찾아 읽은 같은 작가의 책이다. 지은이가 60대에 쓴 일기 형식의 산문집으로 사노 요코 씨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일본인답지 않게 사고의 스케일이 크고 솔직 담백한 점이 좋다. 이 책에는 한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항암 치료를 받고 집에서 쉴 때 지은이는 욘사마의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다. 한쪽으로 누워 얼마나 열심히 봤는지 턱이 어긋나기도 했다. 친구와 남이섬에 찾아오기도 한 한류 팬이었다. 일본 아줌마가 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지 궁금했는데 사노 요코 씨를 보며 약간이나마 이해가 된다. 지은이는 한류 열풍의 원인을 '허구의 화사함'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일 TV를 틀어놓고 사는 작가는 드물 것이다. 대개는 TV나 오락 프로를 멀리하려..

읽고본느낌 2016.02.17

디 마이너스

1990년대 후반의 대학 생활을 그린 손아람의 장편소설이다. 90년대 학번은 대학에서 마지막 운동권 세대라 할 수 있다. 전대협과 한총련으로 이어진 학생 운동 그룹은 NL과 PD 계열로 나누어지고 후반에는 연대회의와 전학협이 주도했다. 이 소설 는 연대회의에서 활동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상과 갈등, 사랑, 대학 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다.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서 점차 힘이 떨어지는 게 아쉽다. 내 대학 시절과 비교하면 학생들의 의식에서 굉장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90년대는 제도적으로는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그래서 투쟁의 내용도 우리와는 달랐다. 정치적 이슈보다는 경제 불평등의 개선에 비중이 커졌다. 학생 운동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 뒤로 대학은 자본의 논리에..

읽고본느낌 2016.02.10

죽는 게 뭐라고

죽음을 앞두고 어쩌면 이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초연한 삶의 자세가 경이롭다. "나는 처음에 암에 걸렸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암 선고를 받고도 태연자약했다. 암은 좋은 병이라며, 자신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의 목숨이 우주보다도 귀하다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 는 일본 작가인 사노 요코(佐野洋子) 씨가 암과 동행하며 쓴 에세이집이다. 지은이는 유방암이 온몸으로 전이되어 2010년, 72세에 세상을 떠났다. 책의 원제목은 다.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기에 죽음도 미련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모른다. 사랑을 모조리 쏟아부었다면 오히려 생과 사에 초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산 사람만이 잘 죽을 권리를 가진다. 목숨에 집착하는 걸 생명의 본성이라고 단정..

읽고본느낌 2016.02.02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돈과 경제에 관한 기존 관념을 바꿔주는 책이다. 증식하는 돈이 아니라 썩는 돈, 썩는 경제에 대해 말한다. 일본 가쓰야마에서 '다루마리'라는 작은 빵집을 하는 와타나베 이타루 씨가 실천하고 있는 새로운 경제 이야기다. 지은이는 회사에 다니면서 이윤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회의를 갖게 된다. 기쁘게 노동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직장은 없었다. 진정한 노동의 의미를 찾던 중 빵집을 열어 자립할 결심을 한다. 천연균을 사용해 발효시키는 전통 방식으로 빵을 만드는 방법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도전 끝에 지은이는 자신이 원하던 삶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를 보며 인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지은이의 열정과 용기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

읽고본느낌 2016.01.27

유스

젊었을 때는 젊다는 걸 잘 모른다. 젊음(Youth)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려는 걸까, 쇠락한 노년의 모습과 발랄한 젊음을 불편할 정도로 집요하게 대비시킨다. 그러면서도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여러 단편적인 장면들이 교직 되며 영화를 이끌어가는데 어떻게 느끼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쓸쓸한 영화다. 돈 많은 사람들이 요양 겸 휴식을 위해 찾는 풍광 좋은 스위스의 고급 호텔에 80대의 두 친구가 묵고 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작곡가며 지휘자로 현역에서 은퇴해서 욕심 없이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바쁘다. 아마 이 둘은 서로 다른 노년의 삶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한쪽은 완전히 ..

읽고본느낌 201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