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911

시의 문장들

책머리에 나오는 '왜 시를 읽느냐 묻는다면'이라는 글이 인상 깊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답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시를 읽는 것은 사는 데 도움이 되고 쓸모도 있다고 말한다. 시는 당신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왜냐하면 시는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언어의 반전을 통해 기존의 세계를 뒤집는 것, 그리하여 세계의 틈을 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 그것이 시의 힘이다. 시를 읽는 것은 멈춰서 돌아보는 것이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듯이 시 한 편을 읽으며 마음을 빗는 것이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나면 다시 먼 길을 갈 힘이 난다. 남들이 좋다는 이 길 저 길 기웃거리지 않고 시를 등불 삼아 오롯이 내 갈 길을 갈 배짱이..

읽고본느낌 2018.07.31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한겨레신문 강윤중 기자가 사진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재조명한 책이다. 신문 연재물을 책으로 엮어낸 것 같다. 책에는 광부, 난민, 이슬람교인, 말기 암 환자, 철거민,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쪽방촌 노인 등과 함께 생활하며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에서는 소외된 이웃을 대하는 지은이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사진보다는 글이 더 와 닿는다. 아마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조심스럽고 망설인 탓이 아닌가 싶다. 공감과 이해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 뒤에 사진과 글이 나오는 게 순서다. 우리는 세상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 색안경은 대체로 이 사회가 만들어준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임의로 만든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현상을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한다. 타인이나 세상을 보는 관점이 오해와 편견투성이다...

읽고본느낌 2018.07.24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장마처럼 눅눅하고 우울한 기분이 이어지는 날들이다. 도서관 서가의 책을 훑어보다가 제목에 끌려서 꺼낸 책이다.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접하면서 위안을 받는 어찌할 수 없는 동물이다. 그런 연민이나 안도감이라도 없다면 세상을 살아내기가 훨씬 더 뻑뻑할 것이리라. 는 카툰 작가인 박광수 씨가 그리고 썼다. 짧은 글에 그림이 어우러져 있어 책장이 쉽게 넘어갈 듯하지만 문득 멈추어야 되는 순간이 잦다. 그래 맞아,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 라는 독백이 절로 나온다. 지은이가 자주 지적하는 대로 삶은 버텨내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볼 때는 즐겁고 재미나게 사는 것 같지만, 자신은 '버티기'가 삶의 기조였다고 한다. 그런 산을 무수히 넘어서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읽고본느낌 2018.07.13

부도덕 교육 강좌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가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 궐기를 촉구하며 할복자살한 때가 48년 전인 1970년이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사진과 함께 신문에 크게 보도된 기사를 보며 놀랐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가 외친 내용은 차치하고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죽음의 방식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극우 민족주의자인 그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다. 는 미시마 유키오가 쓴 산문집이다. 책 제목 그대로 사회 통념이나 도덕에 반기를 드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선생을 무시하라' '거짓말을 많이 하라' '약속을 지키지 마라' '청년이여, 나약해져라' '여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라' 등의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는데, 미시마 유키오다운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읽어 보면 제목처럼..

읽고본느낌 2018.07.07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진 글을 쓴다는 것은 칭송받을 만하다. 서너 문장만 읽어도 누구의 글인지 알 수 있다면, 그 작가는 자기 '류(類)'를 가진 것이다. 대표적인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는 김훈이 있다.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마취에 걸린 듯 몽환적인 기분이 든다. 몸이 땅에서 몇 cm쯤 떠오르는 것 같다. 센티멘탈하면서 비현실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독특하면 호오의 구별이 갈린다. 나는 하루키 스타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 도 힘들게 읽었다. 는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글이 쓰인지는 30년도 더 되었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 책은 삽화가 반은 차지해서 그나마 수월하게 넘어간다. 이 책에는 '소확행'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나온다. 요즈음 이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하루키에게서 유..

읽고본느낌 2018.07.01

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

최근에 지인이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고 왔다.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km를 40일 동안 걸은 대장정이었다. 산티아고 길은 10년 전만 해도 내 버킷 리스트 순위 3번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지인이 다녀온 얘기를 들으니 불씨가 다시 살아난다. 는 내 바람과 같은 제목의 책으로, 일본 여성 오노 미유키가 산티아고를 걸은 이야기다. 그녀는 공황장애를 앓을 정도로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산티아고 길을 찾았다. 부제가 '먹고 마시며 걷는 36일간의 자유'다. 평범한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카미노 데 산티아고만의 매력을 그녀는 일곱 가지로 정리한다. - 숙박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 밥이 맛있고 저렴하다. - 전 세계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관을 접할 수 있다. ..

읽고본느낌 2018.06.26

그날, 바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객관적인 자료를 통한 과학적 분석이 돋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월호 침몰은 왼쪽 앵커 때문에 일어났다. 무슨 이유에선지 출항한 뒤부터 왼쪽 앵커가 아래로 늘어졌고, 수심이 얕은 곳을 지날 때 앵커가 땅과 충돌하며 항로가 변했다. 이런 현상은 여러 차례 일어나며 누적되다가 사고 지점에서 결정적인 충격을 받았다. 영화를 만든 사고 조사팀은 사고 시간과 항로 기록 데이터가 수정되고 조작되었음을 밝힌다. 은폐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도는 가짜다. 실제 항로는 남서 방향, 병풍도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곳은 수심이 얕아 앵커가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굳이 이 사실을 감추려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

읽고본느낌 2018.06.17

지금 만나러 갑니다

본 지 두 달이 넘은 영화다. 그때의 느낌을 되살리기에는 시간이 꽤 흘렀다. 눈물을 훔치고 자주 미소를 지었는데, 감상을 바로 기록하지 않으면 놓치는 게 많다.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이 영화를 봤다. 보면서 참 일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의 원작이 일본 소설이다. 일본에서도 영화로 만들었다 한다. 같은 원작의 두 영화를 비교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죽은 아내가 다시 돌아온다는 상황 설정이 거북했는데 이내 둘의 사랑 이야기에 빠져든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운명적이고 간절한 사랑을 보여준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던 둘의 관계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결심으로 완성된다. 자신의 이른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그녀는 동화 같은 사랑을 택한다. 여자 주인공인 손예진은 무척 아름답고 배역에 잘 어울린..

읽고본느낌 2018.06.04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는 의료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캐나다 캘거리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40대 때 경험한 심장마비와 암이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질병 경험을 나눔으로써 질병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질병은 무작위로 찾아오지만 '잘 아프기'는 개인의 책임일 수 있다. 지은이는 고환암에 걸렸다. 수차례의 화학요법 치료를 받으며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나는 심각한 질병을 앓은 경험은 없지만, 환자의 고통과 고충에 공감하며 읽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고, 죽기 전에 크건 작건 질병의 기간을 통과의례로 거쳐야 한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몸이 '의학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표현은 재미있다. 환자가 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온갖..

읽고본느낌 2018.05.27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출판사에서 교정과 교열 일을 보고 있는 김정선 씨의 바른 글쓰기를 위한 안내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어색한 표현들을 예시를 통해 보여주고,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고쳐준다.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내가 글 쓰는 원칙은 '쉽고 솔직하게'이다. 꾸밈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진솔한 마음이 담기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내용만 아니라 표현도 자연스럽고 문법에 맞으면 더 좋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니 스스로 터득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을 읽어보니 그동안 무심코 남발한 쓸데없는 단어가 많았다는 걸 알겠다. 그걸 없애니 문장이 한결 깔끔해진다. 앞으로 신경을 많이 써야겠다. '적' 예> 사회적 현상 → 사회 현상 '의..

읽고본느낌 2018.05.22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안성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장석주 작가의 행복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 소박한 삶을 살자는 흐름은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화려한 소비 중심의 현대 문명에 대한 반감이자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자연스러운 운동이다. 작고 단순함에서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명이 주는 안락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며 불편하더라고 적게 소비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사는 것, 그게 내 방식의 삶이다. 하루의 보람은 사과 한 알 먹는 거, 세 시간 이상 햇볕을 쬐며 걷는 거, 8시간 정도 읽고 쓰는 거, 심심함 속에 머무는 거 따위다. 그리고 이타적 생각을 하며 살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 되기를 실천해야 삶이 온전해진다." 작가는 시골에 살며 그런 삶을 실천한..

읽고본느낌 2018.05.16

나무 철학

'내가 나무로부터 배운 것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나무를 소재로 책 한 권 가득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강판권 선생의 솜씨가 놀랍다. 나무에서 배우는 교훈을 내가 쓴다면 과연 몇 페이지나 나갈 수 있을까, 금방 생각이 막혀 버릴 것이다. 선생은 수학(樹學)이라는 새로운 학문 체계를 만드는 생태사학자다. 전공은 사학이었으나 40세가 되어서 나무와 인연을 맺었고, 그 뒤로 나무를 통해 세계사와 문화를 읽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무에 관한 열 권이 넘는 책을 냈다. 은 3부 28장으로 되어 있다. 제 1부: 순리에 맞게 변화하는 나이테의 철학, 단풍의 철학, 낙엽의 철학, 흔들림의 철학, 원만의 철학, 무심의 철학, 사랑의 철학, 독락의 철학, 위기의 철학, 역지사지의 철학 제 2부: 단순하고 절박..

읽고본느낌 2018.05.11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봄밤' 등 7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책 제목처럼 주정뱅이가 등장하는 작품이 여럿이다. 작가 자신도 대단한 애주가인 듯하다. 또한 우리는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일정 부분 주정뱅이와 닮았다. 에서 '안녕'이란 주정뱅이에게 건네는 따스한 인사말 같다. 이 책에 모인 작품들은 공통되는 색깔이 있다. 인생의 고통과 비극을 드러낸 상처가 아프게 드러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살면서 맺어야 하는 인간과의 관계는 생채기를 남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 자체가 고(苦)의 원인이다. 견뎌내는 사람도 있지만 삶의 무게가 버거워 지쳐 쓰러지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인간 때문에 병든다. 에는 인간에 대한 슬픈 연민이 깔려 있다. 일곱 편 중에서 제일 관심을 끄는 ..

읽고본느낌 2018.05.05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작가의 '가족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그러나 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 가족의 실제 삶을 정감있게 보여주는 글 모음이다. 2011년부터 월간지에 연재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슬며시 미소를 띄게 되다가도 찡해지는 순간이 많다.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삶의 애환이 맛깔스런 문장에 잘 표현되어 있다.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주며 살아가는 마음씨가 곱다. 글 한 편 한 편이 예쁜 삽화 같다. 책의 처음에 적힌 한 문장이 오래 눈길이 간다. "누운 자리는 좁았고,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이 있었다." 글 하나를 옮긴다. 이 책 제목으로 인용된 내용이 들어 있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까지도 책 제목을 착각했다. '여든'이 아니고 '여름'이라니, 나도 여덟 살 꼬맹이에 다름 아니다. 여름이 되면 올해 여..

읽고본느낌 2018.04.30

리틀 포레스트

맑고 따뜻한 영화다. 도시 생활에 지친 젊은이가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치유와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혜원은 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뒤 고향의 빈집에 내려온다. 아르바이트로 버티던 서울 생활은 삭막했고, 남자 친구와는 삐걱거렸다. 시골집은 고등학생 때까지 엄마와 살았지만, 엄마는 혜원이 대학에 들어가자 본인의 삶을 찾아 떠나갔다. 고향 마을에는 옛 친구들이 있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자연이 있다. 혜원은 눈동냥 했던 엄마의 요리를 따라 하며 엄마와의 추억과 함께하면서 행복을 찾는다. 이런 자연주의 삶을 뜬구름 잡는다거나 도피적이라는 등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물신주의에 투쟁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자연주의 삶이다. 재벌의 갑질을 비난하지만 내일이면 대한항공을..

읽고본느낌 2018.04.23

둔황의 사랑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다 읽지 못했는지 모른다. 내용이 어렵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 같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보고 옛날이 어슴푸레 떠올라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역시 명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이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탐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알 것 같다.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주간 잡지의 기자로 일하며 가난하게 살아간다. 단칸방에서 동거하는 여자가 있지만 헤어지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 현실은 누추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꿈꾸는 세상은 따로 있다. 서역의 사자를 찾고, 공후를 불었다는 노인을 만나려 한다. '천세불변(千世不變)'이라고 비단 조각에 적힌 '누란의 소녀' 미이라도 주인공의 관심을 끈다. 우리는 찰나의 존재들이다. 사랑이 영원으로 이어지길..

읽고본느낌 2018.04.13

차남들의 세계사

"작가는 고통받는 사람들에 관해 쓸 의무가 있다." 이기호 작가가 한 말로 기억한다. 작가의 글에는 세상의 고통과 인간에 대한 연민, 그리고 세상살이의 애틋함이 녹아 있다. 이 소설 도 그런 범주에 들어간다. 는 대머리 독재자가 등장한 1980년대가 배경이다. 1982년에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을 일으킨 문부식과 김은숙은 지학순 주교가 있던 원주로 피신한 뒤 자수했지만, 수사 당국은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선다. 이때 택시 운전사였던 나복만은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이 사건에 엮이게 된다. 교통사고로 경찰서를 찾게 되었는데, 실수로 그의 이름이 사건 관련자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몇 가지 우연이 겹치면서 독재 시대 때 흔했던 용공 조작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소설은 미친 시대에 한 인..

읽고본느낌 2018.04.06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제목만 보면 괴기물로 오해하기 쉬우나, 청소년의 청순한 사랑과 우정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췌장암에 걸려 1년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소녀와 동급생 남자 친구가 주인공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병에 걸린 같은 부위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네 안에서 살고 싶다'는 표현이면서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남자 주인공(이름이 하루키였다. 이 영화에서는 이름이 잘 불리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은 그저 '친한 친구'라고 부른다.)의 캐릭터가 특이하다. 하루키는 교실에서 급우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일종의 왕따 학생이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인 사쿠라는 동급생의 퀸카다. 자신의 병을 감추고 명랑하게 지낸다. 1년 뒤에 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저럴 수 있을까, 싶다..

읽고본느낌 2018.03.30

외롭지 않은 말

이탈리아 여행에 갖고 가서 읽은 책이다. 여행 중에는 바쁘고 피곤해서 책을 볼 짬이 나지 않았고,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주로 읽었다. 대부분 곤히 잠 자는데 독서등을 켜고 있으려니 눈치가 보이긴 했다. 이 책은 우리 일상에서 쓰이는 속어나 은어를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내용을 담고 있다. 말의 겉뜻과 속뜻, 주석과 용례를 달았다. 사전처럼 딱딱하지 않고 유머러스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권혁웅 시인이 썼다. 에는 77개의 말이 실려 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교회 오빠, 귀요미, 그림 좋은데?,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넘사벽, 늙으면 죽어야지, 다리 밑에서 주웠어, 루저, 먹방, 밀당, 빵꾸똥꾸, 사랑하니까 헤어지자, 삼삼한데?, 식당 이모, 심쿵, 썸, 아몰랑, 언제 밥 한번..

읽고본느낌 2018.03.25

휘게 라이프

덴마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다. 모든 행복도 조사에서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그 중심에 '휘게(hygge)'가 있다. 덴마크어인 휘게는 어떤 특정한 단어로 번역하기 어렵다. 휘게는 설명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으로, 정취나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옷을 입고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것, 좋아하는 차를 마시면서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 여름휴가 기간에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는 것 같은 것이 휘게다. '휘게 라이프'는 덴마크인이 가장 사랑하는 삶의 모습이다. 휘게 라이프는 간소한 것, 느린 것과 관련이 있다.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자극적인 것보다는 은은한 분위기를 즐기는 삶이다. 단순하고 느린 삶이다. 여기서 ..

읽고본느낌 2018.03.07

로마 제국 쇠망사

기번의 를 읽어보려 했으나 열 권이 넘는 대작이어서 두 손을 들었다. 대신 북프렌즈에서 나온 다이제스트 본인 이 책을 골랐다. 로마의 역사를 압축해서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깊이를 기대하진 못하지만 빠르게 개관하는 데는 이런 책이 장점이 있다.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는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다. 어디를 펼쳐도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카이사르가 등장하는 BC 100년 전후의 기간일 것이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가 꾸미는 무대는 언제 읽어봐도 흥미진진하다. 그 뒤의 황제 시대에는 참으로 별난 인간들이 권력을 잡는다. 잠깐의 황금시대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혼란기였다. 로마 제국 쇠망의 원인은 밖보다 안에서 찾는 게 맞을 것 같다. ..

읽고본느낌 2018.03.03

불안의 책

오랜만에 묵직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기분은 많이 가라앉았다. 색깔로 치면 회색의 우울한 감정이었다. 고독, 허무, 몽상, 냉소, 권태, 무기력, 비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 책을 쓴 페르난두 페소아는 포르투갈 사람으로 신비에 싸인 인물이다. 18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났고 쓸쓸한 유년기를 보낸 뒤 번역 일을 하며 글을 썼다. 천성적으로 고독했으며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많은 글을 썼지만 생전에는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도 페소아가 사망한 지 47년 만인 1982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은 리스본에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소아르스의 고백록이라 할 수 있다. 소아르스는 곧 페소아 자신이다. 그가 살아간 공간은 사무실과 셋방과 리스본의 거리 뿐으로 좁았다. 사색하고..

읽고본느낌 2018.02.20

이세돌의 일주일

5,000년 바둑 역사에서 제일 충격적인 사건이 재작년에 있었던 인간과 알파고의 대결이었다. 결과는 인간 대표로 나선 이세돌 구단이 1:4로 졌다. 일부 컴퓨터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예상 못한 쇼킹한 사건이었다. 바둑은 직관과 창의력이 중요하다. 컴퓨터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누구나 믿었다. 컴퓨터가 아무리 빠른 계산력을 갖추어도 인간을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 이유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인간을 뛰어넘는 감각적인 수에서도 컴퓨터가 앞섰다. 바둑은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석이나 포석, 반면 운영에서 고정관념이 깨지고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요사이 프로기사 대국을 보면 알파고의 수를 흉내 내기 바쁘다. 작년에는 더 진화한 알파고가 세계 1위..

읽고본느낌 2018.02.11

노인과 바다

젊었을 때 읽었던 느낌은 어슴푸레하다. 고기와의 사투 장면만 남아 있는 걸 보니 그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체념이랄까, 자연과 인생을 대하는 노인의 마음이 각별히 다가온다. 산티아고 노인에게 자연은 정복 대상이 아니라 친구며 형제다. 삶의 터전인 바다도 여성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며칠 동안 청새치와 밀고 당기는 싸움을 벌이지만 바탕에는 생명에 대한 연민이 깔려 있다. 배로 찾아온 휘파람새나 거북을 대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삶의 현장으로서의 바다는 사납고 거칠지만 삶을 대하는 마음은 따스하다. 고기를 잡으러 홀로 바다로 나간 노인은 고독하다. 고독을 벗 삼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큰 청새치를 잡았지만 귀항 도중에 상어의 습격으로 뼈만 남긴 채 빈손으로..

읽고본느낌 2018.02.06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마침내 나는 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 1786년 11월 1일의 기행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괴테는 로마에 입성한 날을 제2의 탄생일이라고 불렀다. 괴테가 로마에 머무른 기간은 1, 2차 합치면 1년이 좀 넘는다. 그러면서도 진정으로 로마를 알려면 적어도 몇 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의 중심에는 로마가 있었다. 괴테는 37세 되던 1786년 9월에 독일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리고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한다. 문필가답게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이다. 이 책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다. 에서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부단히 탐구하며 성장해 나가려고 애쓰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괴테의 관심 대상은 제한이..

읽고본느낌 2018.01.31

손자병법

중국 사상은 크게 두 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손자와 법가로 대표되는 실리 중심의 사상과, 유가와 묵가로 대표되는 도덕과 윤리 우선의 사상이다. 우리가 명분과 이념을 중시하는 후자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 중국인의 의식과 사유는 전자가 지배하고 있다. 그 사상의 원류가 손자라 할 수 있다. 임건순 선생이 쓴 에서는 손자를 단순한 병법 연구가가 아니라 중국의 중요한 사상가이자 철학자로 보고 있다. 손자를 모르고서는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손자는 근원적 원리에 대한 통찰과 함께 노자, 한비자, 상앙 등 다른 사상가에게 영향을 준 사상사의 거목이었다. 많은 해설서가 이 책을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로 소비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손자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사고와 지성, 혜안을..

읽고본느낌 2018.01.26

다시 태어나도 우리

라다크를 무대로 하는 다큐멘터리 두 편을 최근에 보았다. 하나는 KBS에서 방송된 '순례' 1편인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이었고, 두번째가 이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였다.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은 라다크에 살고 있던 한 소녀가 승려로 출가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영상미가 특히 아름다웠다. 이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역시 린포체로 지명 받은 앙뚜라는 소년이 승려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앙뚜의 곁을 변함없이 지켜주는 사람은 스승인 우르갼이다.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넘어선 깊은 인간애를 나눈다. 세속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사랑의 교감이다. 주인공은 앙뚜지만 더 끌리는 건 우르갼이다. 히말라야를 닮은 순수하고..

읽고본느낌 2018.01.21

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지은이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와 명상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들으며 마음공부에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공감하고, 자신의 고민을 잊고, 안도감을 느낀다. 글쓰기를 통해 삶을 버텨낼 힘을 얻고, 경험한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며, 자기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 책 는 단순한 글쓰기의 테크닉을 말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수행의 한 과정이고 치유의 수단이다. 지은이가 1주일에 걸쳐 진행하는 '삶과 언어 수련회'의 대부분이 '좌선, 걷기, 쓰기'에 할애되어 있다. 한 단어는 곧 한 걸음과 같다. 만 아니라 전작인 도 제목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지은이는 쉬운 글쓰기를 강조한다. 연습의 하나로 카페에서 30분간 주변 광경을 묘사하는 ..

읽고본느낌 2018.01.16

고대 로마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인 BC 2세기 초의 어느 날, 로마에 있는 조폐국에서 세스테르티우스 동전이 만들어진다. 이 동전은 군 수송부대에 의해 브리타니아의 최전방 요새로 전달되고, 거기서부터 주인을 바꾸며 로마제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알베르토 안젤라의 는 수년간에 걸쳐 동전의 여정을 따라가며 로마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은이의 전작인 은 시공간이 제한되어 있었던 반면 이 책은 로마제국 전체를 관통하면서 동전의 주인이 되는 군인, 상인, 매춘부, 노예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게르마니아와의 전투, 전차 경주, 지중해 항해, 알렉산드리아 거리, 병원, 식당, 광산 등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 실감이 난다. 상상만으로 쓴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 자료에 기반..

읽고본느낌 2018.01.11

갑신년의 세 친구

전체적으로 역사에 무지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19세기와 한일합방이 되는 20세기 초까지는 더욱 모른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배운 역사 교과서에서도 그리 비중 있게 다루어진 것 같지 않다. 우리의 어두운 부분이라 그냥 대충 넘어간 게 아닌가 싶다. 사실은 정확히 교육을 시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저 매국노 몇 명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역사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구한말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자주 나온다. 정신을 똑바로 차릴 때다. 그런 점에서 그때의 상황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는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를 중심으로 당시의 급박했던 시대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안소영 작가가 썼다. 1884년 12월 4일에 일어난 갑신정변은..

읽고본느낌 2018.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