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911

나, 다니엘 블레이크

현대 사회의 복지제도의 맹점을 고발하는 영화다. 무대는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영국이다.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탈락하고 소송까지 간다. 실업수당마저 만만치 않다. 그런 과정에서 규정과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공무원 때문에 특히 고통을 받는다. 이 영화는 법과 원칙, 매뉴얼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 잘 보여준다. 전 정권에서 법과 원칙을 그렇게 강조했지만 결국 약자에게만 가혹한 결과가 되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아무리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블레이크의 말이 의미하는 바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좌절하지..

읽고본느낌 2017.06.05

다윈의 정원

장대익 선생의 다윈 시리즈 중 한 권이다. 그런데 다른 책과 달리 논문식으로 무척 딱딱하다. 학술용어도 많이 나오고 내용도 진화학의 사전 지식이 없으면 어렵다. 젊었을 때와 달리 이런 책은 읽기가 만만찮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만 알아보는 식으로 대략 훑어보았다. 그렇지만 을 통해 현대 진화론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조망할 수 있다. 접해보지 못했던 신선한 내용이 여럿 있다. 책의 1부는 현대 진화생물학을 바탕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학술적으로 다루고, 2부는 진화학을 현실 문제에 적용하려고 시도한다. 진화학의 최신 이론을 소개하고 저자의 견해로 비판한다. 이 책의 부제가 '진화론이 꽃피운 새로운 지식과 사상들'이다. 인간에 대한 견해를 상기시켜주는 내용이 맨처음 나온다. 도킨스가 에서 밝힌 것으로,..

읽고본느낌 2017.05.28

사일런스

엔도 슈샤쿠의 을 읽은 것이 20년쯤 전이다. 아직도 소설 속 두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기독교인을 판별하기 위해 성화를 밟게 하는 장면이다. 일본말로 '후미에(踏繪)'라고 한다. 기발하면서 잔인한 방법이다. 또 하나는, 배교하지 않는 기독교인을 해변에 세운 십자가에 묶고 밀물이 되면서 물에 잠겨 익사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고통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전율했다. 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사일런스'을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이 장면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가 먼저 궁금했다. 상상과는 일부 차이가 났지만 두 상황의 처절함을 전하는 데는 화면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원작을 감동을 지켜낸 좋은 영화였다. 영화의 무대는 17세기 초 천주교 탄압이 극에 달하던 때의 일본이다. 일본에 파견되어 전교하던..

읽고본느낌 2017.05.21

그런 일

지난 정권에서 절필을 선언했던 안도현 시인이 다시 시를 쓰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반갑다. 그러나 절필 기간 중에도 산문집은 여러 권 나왔다. 이 책도 그 중 한 권인데 새로 쓴 글보다는 예전 것을 모은 게 많다. 신선한 맛이 떨어진다. 책을 내는 것도 좋지만 담긴 내용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젠 시인의 나이에 걸맞는 사유의 깊이를 보게 되길 바란다. 시인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기대다. 나로서는 를 쓸 시절의 작품이 참 좋았다. 전교조 운동으로 해직되고 어려운 시기를 보낸 뒤 시골 학교로 다시 복직된 때로 알고 있다.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너무 과작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눈길이 오래 머무는 한 줄의 문장이 있다. 에 실린 '시작 노트'의 일부다. "시인..

읽고본느낌 2017.05.13

끝없는 벌판

메콩 강에서 오리를 기르며 유랑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가출한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는 집을 불태운 뒤 어린 남매를 데리고 배 한 척에 몸을 맡긴다. 상처투성이인 그가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을 할 리가 없다. 남매는 벌거숭이인 채로 냉혹한 자연과 세상에 내던져진다. 책을 덮으니 가슴이 아리고 먹먹하다. 은 베트남 작가인 응웬욱뜨의 소설이다. 젊은 여성 작가인데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하고 깊다. 적의보다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앞선다. 작가는 문학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남매의 성장기를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베트남 소설은 처음 읽어 보지만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생명력이란 길 위의 질경이와 같다. 발바닥에 무..

읽고본느낌 2017.05.06

패신저스

우주선 '아발론' 호를 구경하는 재미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만하다. 외부 모양도 멋지고, 내부도 우리가 합리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거의 빛의 속도로 항성간 비행을 하는데, 영화에서는 새로운 개척지 행성으로 5천 명의 승객을 싣고 자동 항법으로 날아간다. 120년이나 걸리므로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동면 상태다. 수백, 수천 년이 걸리는 우주 비행에서 인간의 동면은 필수적이다. '패신저스'의 독특한 점은 기기 작동 오류로 승객 중 한 사람이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설정이다. 우주선이 운석과 충돌하면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동면 기계는 다시 작동할 수 없다. 새 행성으로 가는 데는 90년이나 남았다. 그는 무인도에 던져진 셈이 되었다. 외로움 속에서 1년을 버티던 짐은 여성 승객 한 명을..

읽고본느낌 2017.04.27

공터에서

김훈의 근작 소설이다. 작가의 문체에 끌려 이 책을 찾아 읽었다. 김훈은 가장 개성 있는 작가다. 짧고 건조한 문장이 매력이 있다. 감정이 배제된 서술은 시베리아의 찬바람 같다. 이즈음에 더욱 만나고 싶은 글이다. 이 소설에서도 김훈의 문체는 도드라진다. 반면에 내용은 밋밋한 편이다. 그것 역시 작가의 특징인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김훈의 문체는 스케일이 큰 경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비장미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에서 대규모 전투와 순장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는 마 씨 가족 두 세대의 역사를 담았다. 일본 강점기 시대, 해방, 6.25 전쟁, 월남전, 군부독재 등 파란만장했던 근대사 속에서 살았던 힘 없는 민초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

읽고본느낌 2017.04.23

컨택트

외계의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나에게는 이 궁금증이 SF를 찾는 이유다. 그래서 이 영화 '컨택트'도 먼저 제목부터 끌렸다. 원제는 'Arrival'인데 배급사에서 만든 'Contact'가 훨씬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느 날 지구 곳곳에 12개의 우주선이 찾아온다. 길이가 450m 정도로 렌즈 같이 생겼다. 그리고 외계인과의 접촉이 이루어진다.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는 우주인의 언어와 문자를 해독하는 작업을 한다. 그들의 문자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되어 있다. 원형의 무늬인데 우리처럼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 구조다. 사고 패턴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루이스는 우주인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선형으로 이..

읽고본느낌 2017.04.08

연금술사

뉴질랜드 여행 중에 읽은 책이다. 바쁜 일정에서 짬을 내기가 힘들었고, 일행이 트레킹을 떠날 때 혼자 숙소에 남아 빈둥거리며 책을 읽었다. 나에게는 무엇을 보고 경험하기보다 이런 여유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이 여행에서 나의 가장 큰 호사였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책에서 제일 인상적으로 다가온 구절이었다.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자기 아들을 현자에게 보냈다. 젊은이가 찾아간 현자의 주택은 화려했고, 여러 사람들로 북적였다. 겨우 현자를 만나 행복의 비결을 물었더니 현자는 저택을 구경하고 두 시간 뒤에 오라고 했다. 그리고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숟가락을 건네며, 돌아다니는 동안 찻숟가락의 ..

읽고본느낌 2017.03.16

에픽테토스의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삶의 기술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데는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리고 행복은 마음의 평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바세계를 살면서 어떻게 하면 평정한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종교와 철학의 기원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인류 역사를 볼 때 물질에 비해 마음의 진보는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대인이 고대인보다 더 행복하다는 증거는 없다. 삶의 객관적 여건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우리가 마음에 대해 아는 건 그다지 증가하지 않았다. 또한 지식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옛날 사람이 했던 질문을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로 던진다. 에픽테투스(Epictetus, 50년 무렵 ~ 120년 무렵)는 후기 스토아 철학자다. 그는 노예인 데다 다리까지 절었다. 다행히 관대한 주인을 만나 해방노예가 되었고, 로..

읽고본느낌 2017.01.30

그리스 인생 학교

종교 전문인 조현 기자의 그리스 여행기다. 종교와 신화, 철학 중심으로 그리스인들의 사색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생생한 분위기를 전하기 때문에 지은이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과거 유적과 철학자들의 삶을 통해 현재의 우리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성찰하게 한다. 여기에는 지은이의 해박한 지식이 한 몫 하고 있다. 에는 그리스 신화와 함께 철학자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에피쿠로스, 에픽테토스 등이 등장한다. 그들의 가르침을 현장에 직접 찾아가 되새겨본다면 훨씬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을 읽으면 나도 따라 하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언젠가는 그런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면 좋겠다. 지은이는 직장에서 얻은 한 달 간의 휴가를 이용해서 아토스 산에서 트로이까지 그리스와 터..

읽고본느낌 2017.01.20

명상록을 읽는 시간

이 책을 읽으니 나도 '나의 명상록'을 쓰고 싶어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를 누비면서 명상록을 썼다. 삶 역시 전쟁터와 마찬가지다. 누구의 삶이든 세상과의, 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뇌하는 기록이 곧 명상록이 아닐까. 누구를 의식함이 아닌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글이 '나의 명상록'이다. 유인창 선생이 쓴 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을 읽은 느낌을 적은 책이다. 의 한 구절을 주제로 삼고 선생의 생각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문체도 부드럽고 유연하다. 선생은 직업이 기자인데 내적 성찰의 깊이가 대단하다. 많이 감동을 받은 책이다. 철학자를 꿈꿨던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뜻과 달리 황제가 되어야 했다. '철인(哲人) 황제'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행복하거나 평온한..

읽고본느낌 2017.01.08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노년과 죽음 부분을 발췌한 선집이다. 몽테뉴 수상록은 대학생 때 문고판으로 읽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지금 기억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런데 수상록은 젊을 때보다는 흰머리 희끗희끗해질 때 읽어야 제맛이 나는 건 사실이다. 몽테뉴(1533~1592)는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선택된 교육을 받고 고등법관이 되었다. 그러나 공직에 대한 부담과 환멸로 37세의 나이에 사임하고 몽테뉴 성에 은둔하며 생의 후반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조용히 살면서 정신을 성숙하게 하고,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는 종교 전쟁이 한창인 때였고, 개인적으로도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접했다. 그런 점이 몽테뉴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

읽고본느낌 2017.01.04

아가씨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영화를 본다. 내 나잇대에서는 자주 보는 편에 속한다. 아예 영화에 관심이 없는 친구가 많다. 올해 본 영화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다. 한국 영화도 이렇게 발전했구나, 라고 가슴 뿌듯했다. 우선 영상미가 세련되고 아름답다. 스토리 전개도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다. 배우의 연기보다는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영화다. 돈과 성이라는 인간의 기본 욕망과 파멸을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냈다. 레즈비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인간 해방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가씨는 이모부에게, 하녀는 가짜 백작에게 철저히 구속된 상태였다. 욕망과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들은 남자로 대변되는 기득권 체제의 부속품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둘이 만남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읽고본느낌 2016.12.30

이양하 수필

우울한 대한민국에서 도피하고파 이양하 수필집을 꺼냈다. 선생의 수필은 진흙탕 현실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안분지족(安分知足)을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년 시절도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만난 '신록 예찬' '페이터의 산문'은 50년이 된 지금도 명료하다. 어려운 한자가 많이 나왔지만 고전적인 문체는 사람을 끌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나이나 분위기에 따라 같은 글이라도 느낌이 다르다. 고등학생 때 만난 선생의 수필에는 봄의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런 느낌을 맛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는 멀리서 들리는 소리였다면, 지금은 내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 같다. 그러나 선생의 수필도 지금의 내 우울한 마음을 온전히 위로해주지 못한다. 너무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이다. '페이터의 ..

읽고본느낌 2016.12.24

유방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군웅들이 할거하며 다투다가 한나라 고조가 등장하는 과정은 거대한 토너먼트 시합 같다. 마지막 결승에는 유방과 항우가 겨룬다. 약 2,200년 전 이 시기가 중국 역사에서 제일 드라마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영웅열전 중 한 권인 을 읽어보게 되었다. 초와 한의 쟁패에 대해서는 유방, 항우, 한신 등에 관한 단편적인 일화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전체적인 윤곽이 잡힌다. 각 인물의 특성도 어느 정도는 드러난다. 주인공은 유방이지만 사실 항우에 더 호감이 간다. 유방이 술수에 능하고 고단수라면, 항우는 우직 단순하다. 무식하면서 고집이 센 것이 병통이었다. 그것 때문에 늘 전투에 이기면서도 결국 유방에 패배했다. 지략 싸움에서 진 것이다. 유방에게는 장량, 소하 같은 ..

읽고본느낌 2016.12.16

일인용 책

신해욱 시인의 산문집이다. 신문 칼럼에 실렸던 글이라 700자 안팎으로 분량이 짧다. 정해진 규격에 맞춰진 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의 문체 자체가 간결하고 담백하다. 바삭바삭 건조한 느낌도 든다. 글의 소재는 대부분 시인의 일상에서 길러온 것들이다. 스쳐 지나갈 하찮은 일이 시인의 감수성을 통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보석으로 변한다. 글을 읽으며 우리는 너무 많은 소중한 것들을 그저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 곳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된다. 매사에 서툴고 느리고 둔하다. 그래서 싫기도 하고 안 싫기도 하다. 혼자 일하기와 혼자 놀기는 제법 한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두툼한 손을 부러워하고 겹눈의 세계를 궁금해한다. 그래서 시를 ..

읽고본느낌 2016.12.02

죽어가는 자의 고독

죽음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건 병과 고통이다. 죽음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생명은 반드시 소멸한다. 누구도 예외가 없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죽음 전에 찾아오는 고통과 상실감이 죽음을 두렵게 한다. 정신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깨끗하고 품위 있게 가고 싶다. 은 고통보다는 고독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사실 고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죽어가는 자에게는 육체의 고통과 함께 정신적 고독도 상당히 심각하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하고 부담만 주고 있다고 느낀다면 참으로 외로울 것이다. 현대에 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수명의 증가, 격리 시설, 개인주의 등이 전 시대와 달리 고..

읽고본느낌 2016.11.23

인간이 그리는 무늬

최진선 선생이 강의 형식으로 인문학을 설명하는 책이다. 제목인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인문(人文)'을 글자 그대로 옮긴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열풍을 선생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어느 사회나 초기 단계에서는 정치학과 법학이 중심 기능을 하고, 사회가 좀 발전하면 경제학, 사회학 등이 주도적인 기능을 한다. 사회가 좀 더 발전하면 철학이나 심리학 같은 인문학이 중심 학문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인문학 바람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진정한 정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성장하기 위한 열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은 인문학의 목적이 인문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접하고 '좋다'거나 '나쁘다'라는 판단을 한다면 인문 정신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판단..

읽고본느낌 2016.11.17

작은 집을 권하다

나에게 남은 바람이 있다면 조용한 터에 자그마한 집 하나 갖고 싶은 것이다.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피신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마음이 답답한 때는 그곳에 찾아가 며칠 푹 쉬었다 오고 싶다. 책을 한 보따리 들고 가서 오직 글자 속에 묻혀 지내고도 싶다. 다카무라 토모야 씨가 쓴 는 아주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여섯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 생각 같은 세컨드 하우스 개념이 아니라 실제 거주하는 집이다. 집 크기는 대체로 세 평 안팎이다. 극단적으로 작은 집이다. 작은 집은 작고 소박한 라이프 스티일을 지향한다. 세 평 짜리 집에 산다는 건 종교적인 신념에 가까운 의지가 없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스몰 하우스 운동'에 뛰어든 이들은 대부분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다. ..

읽고본느낌 2016.11.10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명료한 의식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은 게 내 바람이다. 죽기 직전까지 건강한 심신이 유지되면 더할 나위 없지만, 몸은 병들어도 정신만은 분별력을 지녔으면 좋겠다. 그래서 죽음이 찾아오는 과정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싶다. 이 책을 쓴 영국 작가인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가 바로 그러했다. 1949년생인 히친스는 식도암에 걸려 2011년에 세상을 떴다. 1년 반 정도 첨단 의료의 도움을 받으며 치료를 받았지만 인간의 운명은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는 죽음을 맞이하는 한 무신론자의 자기 고백이다. 원 제목은 다. 죽을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읽힌다. 히친스는 병에 걸려서도 뛰어난 문장력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

읽고본느낌 2016.10.28

기본수법사전

최근에 본 바둑책이다. 일본의 후지사와 슈코 기성이 썼는데 두 권으로 되어 있고 총 1천 페이지에 달한다. 다 보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상권은 공격과 수비의 급소를 다루고 있고, 하권은 포석, 공격, 사활, 종반의 수법을 담고 있다. 원저의 내용이 상당히 좋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바둑 모양에서 급소가 어디인지 아는 능력을 키우는 데 알맞은 책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급소를 무시한다면 '바둑의 진(眞)에서 눈을 돌리고, 바둑의 선(善)에 등을 대고, 바둑의 미(美)를 더럽히는 것이 된다'고까지 말한다. (오성출판사)의 단점은 번역이 엉망인 점이다. 바둑의 기초 용어도 모르는 사람이 번역한 것 같다. 아니면 자동번역기를 돌리고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출판한 것 같다. 우리나라 바둑계 현실이 이렇다...

읽고본느낌 2016.10.19

안녕, 나의 모든 하루

근래에 재미있는 동시를 발표해서 새롭게 보게 된 가수 김창완 씨가 펴낸 책이다. 김창완 씨는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많은 명곡과 노랫말을 탄생시킨 분이다. 그리고 라디오 진행자로, 배우로, 시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신다. 무척 다재다능하신 분이다. 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책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걸 일깨워준다. 주로 한강변을 자전거로 지나며 만난 풍경들 이야기가 많다. 멀리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수성이란 늘 지나는 길에서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글은 잔잔한 음악을 듣는 것 같다. 그 중에서 '벗어나기'라는 글이 있다. 가끔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읍시다. 일상의 무게, 욕망의 덫, 근심의 추를 잘라버리고 닻줄처럼 나..

읽고본느낌 2016.10.10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한 소설가 이상운 씨의 간병 기록이다. 80대 후반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고열로 시작해 섬망 증세를 보이며 병원 신세를 지는 환자가 되었다. 서울에 있던 아들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포항 고향집으로 내려온다. 돌아가시기까지 3년 반 동안 병든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통의 현장과 함께 한다. 요양원 대신 집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수년을 지킨 행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병원이나 요양원을 싫어한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가족을 서울에 남겨 두고 혼자 고향에서 아버지를 모신 것만으로도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지은이는 그 과정에서 삶과 노화와 질병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많은 배움과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한다..

읽고본느낌 2016.10.02

삶은 홀수다

김별아 작가의 산문집이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이라 시사성이 짙은 내용이 많다. 글마다 후기가 붙어 있는 게 특이하다. 현재 시점에서 본인의 느낌을 재정리했는데, 작가의 글에 대한 책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한 작가의 인간적 특징은 산문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의 일상이나 관심사, 가치관이 직설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소설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작가에 대한 내적 정보를 얻기 힘들다. 그러므로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문을 읽는 것이 필수다. 김별아 작가의 인간적 매력도 이 산문집을 통해 넉넉히 확인할 수 있다. 에서는 반짝이는 우리말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소설가라 어휘력이 풍부한 건 당연하겠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우리말이 문장을 더 빛나게 한다. 새로운 단어를 여럿 알게 되었다. 써..

읽고본느낌 2016.09.23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지은이인 이명현 선생은 전파천문학을 전공한 연세대 교수님이다. 이 책은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아주 쉽고 흥미롭게 우주를 소개하고 있다. 밤하늘을 사랑하는 선생의 열정이 글에 녹아 있다. 소개에 보면 선생은 어린 시절에 이미 별세계에 빠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외국의 천문잡지를 구독했고, 아마추어 천문가 모임의 주요 멤버였으며, 고등학교 때는 유리알을 직접 갈아 망원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동시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글도 꾸준히 썼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천문학도로 성장한 것이다. 선생은 칼 세이건을 존경한다는 데, 한국의 칼 세이건이 될 소질이 충분히 갖추어진 것 같다. 에 나오는 글을 봐도 그 실력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별에 꽂혔던 내 옛날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읽고본느낌 2016.09.17

서프러제트

100년 전 영국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인 '모드 와츠'는 남편과 함께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여성은 아직 참정권도 얻지 못했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였다. 모드는 우연히 거리에서 서프러제트의 시위 장면을 보고 차별적인 현실에 눈을 뜬다. 서프러제트인 동료 노동자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하면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에게 딸이 있다면 그 딸은 어떤 세상을 살까요?"라고 남편에게 하는 질문에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모드는 서프러제트의 일원이 되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폭력 시위에 나선다. 감옥에도 가고 단식투쟁도 한다. 그 결과 집에서도 쫓겨..

읽고본느낌 2016.09.10

춘추전국 이야기

공자(BC 551~479)는 춘추시대 후기에 살았다. 시대 구분을 보면 춘추시대는 주나라가 수도를 낙읍으로 옮긴 BC 770년에서 BC 403년까지, 전국시대는 BC 403년에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BC 221년까지다. 공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배경을 알아야겠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는 공원국 선생이 쓰고 있는데 전체 12권으로 계획되고 있다. 현재 9권까지 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번에 3권까지 읽었다. 춘추오패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1권이 제(齊) 환공, 2권이 진(晉) 문공, 3권이 초(楚) 장왕을 다루고 있다. 춘추시대 중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나라의 세력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제후국이라는 명분이 유지되고 있던 때가 춘추시대였다. 형식적이었다해도 주로부터 권위..

읽고본느낌 2016.09.04

스타트렉 비욘드

IMAX 3D로 보니까 훨씬 더 실감이 난다. 일반 화면으로 봤던 '스타트렉 다크니스'와 확실한 차이가 있다. '비욘드'를 더 좋게 본 이유는 화면 효과 때문임을 인정한다. 스토리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솔직히 아쉬운 점이 많다. 만화 같은 액션 장면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전투함이 아니라 탐사선이다. 그렇다면 미지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장면이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 외계인과 선악 대결의 결말이 뻔한 싸움을 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SF로도 충분히 족하다. 그래도 미소를 짓게 하는 유머와 창의적인 장면도 있다. 적의 벌떼 공격을 음악으로 물리치는 발상이 신선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호를 재건조하는 과정을 타임랩스로 보여주는 장면도 좋았다. 그중에서도 영화에서 ..

읽고본느낌 2016.08.28

양철북

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건 흥미롭다. 10대는 한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때이므로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 시절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면서 공감한다. 은 이산하 시인의 성장소설이다. 작가가 꿈인 고등학생 철북이 구도승인 법운스님과 전국을 순례하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배운다. 구체적인 가르침을 받는 게 아니라 함께 지내고 얘기하며 자연스레 눈을 떠간다. 소설에서 철북이 스님과 나누는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고등학생의 지적 수준은 이미 뛰어넘었다. 작가를 꿈꾸는 소년의 엄청난 독서량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늘 선문답 같은 말이 ..

읽고본느낌 201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