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911

1917

전쟁은 일으킨 놈이 있고 치러야 하는 놈이 있다. 전자는 소수의 권력자이고, 후자는 다수의 민중이다. 특히 어린이와 여자 같은 약자와 젊은 청년이 고통을 겪는 직접적인 피해자다. 전쟁을 일으킨 놈은 이겼건 졌건 상관없이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영화 '1917'은 특별한 느낌의 전쟁 영화다.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연합군으로 참여한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참호전을 벌이고 있다. 어느 날 독일군이 참호를 버리고 작전상 후퇴를 한다. 이때 영국군의 한 부대가 돌격 작전을 계획하는데 이는 독일군의 함정이었다. 이를 간파한 지휘소에서 작전 취소를 명령하려 하지만 연락이 안 된다.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모든 시설과 영국군의 통신 설비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

읽고본느낌 2020.04.08

나는 왜 불온한가

김규항 씨의 글은 늘 나를 부끄럽게 한다. 동시에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리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았음을 실감한다. 작가의 생각과 삶이 일치하는 모습도 좋다. 그런 기준이라면 나는 엄청난 속물이다. 작가의 짧고 명료한 문장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는 2005년에 나왔으니 벌써 15년이 되었다. 그가 진단한 암담한 사회는 - 민주화의 성과가 자본의 차지로 돌아가고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갈수록 희망의 빛이 사라지는 -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작가는 우리가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가 사는 세상의 얼개쯤은 알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는 수구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것, 세상은 민족이나 국가나 지역이 아니라 계급으..

읽고본느낌 2020.04.04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레마르크의 전쟁소설이다. 독일의 고등학생이었던 파울 보이머는 담임 선생의 권유로 반 친구들과 함께 자원입대한다. 10주 훈련을 마치고 곧바로 독일과 프랑스군이 참호전을 벌이고 있던 서부 전선에 배치된다. 애국심에 불타서 군인이 되었지만, 소년들이 감당하기에 전쟁터는 너무나 잔인하고 처절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친구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파울은 전쟁의 무의함과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몬 권력자들의 기만과 허위의식을 알아가며 분노한다. 는 전쟁을 참혹함을 고발하는 소설이다. 극한 상황에 내몰린 병사들은 인간성이 파괴되고 싸우는 기계가 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적을 죽여야 한다. 그런 지옥에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전우애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소설은 이념이나 이데..

읽고본느낌 2020.04.01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을 봤다. 소설을 안 읽은 탓인지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1994년에 나온 '작은 아씨들'을 추가로 봤다. 1994년 영화는 시대순으로 진행되어 이해하기가 쉬웠다. 왼쪽이 2019년 영화 포스터이고, 오른쪽이 1994년 포스터다. 2019년 '작은 아씨들'은 올해 아카데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여러 부문에서 경합을 벌였던 작품이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여성 감독의 작품이어선지 다정다감하면서 아기자기한 여자들의 세계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같은 소설을 소재로 한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35년 전에 나온 1994년 작품에서는 고전적인 분위기가 났고, 2019년 작품은 현대적이면서 다이내믹했다. 19세기 중반을 재현한 면에서는 ..

읽고본느낌 2020.03.26

'보리'라는 이름을 가진 개의 눈을 통해 인간과 인간 세상을 얘기하는 김훈 작가의 소설이다. 보리의 주인은 댐 건설로 집이 물에 잠기게 되어 고향을 떠나는 수몰민 가족이다. 어촌에 터를 잡았지만 고기잡이하던 가장이 죽자 다시 외지로 내쫓기듯 떠난다. 이 책의 부제는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다. 인간이나 개나 생명 가진 것이 살아가는 고단한 숙명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나는 개를 싫어한다. 밖에서 어쩌다 개를 만나면, 개 역시 그런 나를 아는지 유난히 나만 보면 경계하면서 캉캉 짖어댄다. 누가 자기에게 적대적인지 눈치 하나는 빠른 것 같다. 에 나오는 보리는 인간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웬만큼은 알아챈다. 보리에 비라면 오히려 인간의 개에 대한 몰이해가 깊다. 작가는 세상의 개를 대신해서 짖는다고 했다...

읽고본느낌 2020.03.18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달 초에 홍상수 감독이 '도망친 여자'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이 화려한 불꽃놀이를 펼쳐보인 뒤라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한국 감독이 연이어 유수의 세계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사실은 기쁜 일이다. 그래서 홍 감독의 2015년 작품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올레TV에서 찾아 감상했다.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단박에 느껴졌다. 영화를 만들 때는 이미 김민희 배우와 사랑에 빠졌던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남자 주인공의 직업도 영화감독이다. 두 사람은 대중의 비난이 거세 공개적인 행보를 못 하고 있다. 나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하여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뒤처리가 매끄러웠다면 소송까지 가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안 보였어도 되지 않았..

읽고본느낌 2020.03.13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행복이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고까지 말한다. 인생의 제일 목표가 행복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행복을 좇는 일이 오히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삶에는 행복 말고도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이다. 이 책 는 일반적인 행복보다는 삶의 의미를 더 강조한다. 지은이인 스미스(E. E. Smith) 박사는 긍정심리학자로 삶에는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의미야말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삶은 같지 않다. 행복에는 의미 없는 행복도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사는 데도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미가 있어야 깊이 있고 충만..

읽고본느낌 2020.03.07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를 비롯해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두 편은 전에 어딘가에서 읽어본 작품이다. 작가는 인간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시니컬하게 드러낸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가면을 벗기는 솜씨가 탁월하다. 작품의 분위기는 쓸쓸할 수밖에 없다. 건조하고 까칠한 세상을 작가는 차분하면서 냉정하게 그려낸다. "미소 없이 상냥하고 서늘하게 예의 바른 위선의 세계. 무서운 것도, 어색한 것도, 간절한 것도 '없어 보이는' 삶에 질기게 엮인 이 멋없는 생활들에 대하여." 책 뒷면에 적힌 이 문장이 작가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잘 말해준다. 우리는 상냥하게 악수를 하지만 손에는 칼을 품고 있다. 상처가 아물 날이 없이 또 다른 손을 맞잡으며 살아간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

읽고본느낌 2020.03.02

결혼 이야기

이번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호명된 영화다.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극본상 후보에 올랐으나, 변호사 역을 맡은 로라 던만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스칼렛 요한슨이 여우주연상을 받았어도 마땅한 영화다. '결혼 이야기'는 결혼보다는 이혼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연극 연출가와 배우인 찰리와 니콜은 여덟 살의 아들 헨리를 두고 있는 부부다. 작은 일에서 갈등을 겪다가 결국은 헤어지기로 한다. 처음에는 변호사를 쓰지 않고 대화로 마무리 지으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니콜이 이혼 전문 변호사를 만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난장판이 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미국의 이혼 사법 절차에 대한 고발인지 모른다. 둘은 이혼을 결심하고도 사이가 좋다. 왜 이혼하려는 건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흔히 ..

읽고본느낌 2020.02.26

흑산

김훈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1800년 전후 시기의 천주교 박해가 중심 이야기다. 당시의 부패한 정치와 피폐한 백성의 삶이 바탕에 깔려 있다. 무겁게 읽히는 책이다. 시대의 질곡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스려져 간 인간의 고통과 눈물이 김훈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그려져 있다. 이라는 제목만 보면 정약전이 주인공인 것 같은데, 이 책에는 뚜렷한 주인공이 없다. 정약전이 등장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정약전과 황사영을 중심으로 이들과 관계된 다수의 인물이 모두 주인공이다. 황사영의 부인인 정명련, 정약현 집 노비였던 김개동과 육손이, 마부 마노리, 아전 출신의 첩자 박차돌, 퇴물 상궁 길갈녀, 국밥집 주모 강사녀, 도망친 노비 아리 등의 이야기가 천주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일러두기에서 이 책은..

읽고본느낌 2020.02.23

클래식이 알고 싶다

피아니스트 안인모 씨는 팟캐스트 '클래식이 알고 싶다'를 통해 만나고 있다. 맑고 청아한 매력적인 목소리에 재치 있는 진행으로 한 번 들으면 쉽게 빠져든다. 음악 해설도 기존의 딱딱한 틀에서 벗어나 누구라도 클래식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같은 이름으로 안인모 씨가 쓴 는 낭만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 여섯 사람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대표곡을 듣다 보면 클래식의 세계에 흠뻑 잠긴다. 시대의 특징이 그랬는지 몰라도 음악 작품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 또한 낭만적이었고, 타고난 천재성이 빛을 발하도록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1) 완벽한 미완성, 방랑하는 봄 총각 슈베르트 2) 이별을 노래하는 피아노 시인 쇼팽 3) 사랑을 꿈꾸는 슈퍼스타 리스트 4)..

읽고본느낌 2020.02.18

천문: 하늘에 묻는다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듣고 세종과 장영실을 어떻게 그렸을까 궁금해졌다. 장영실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과학기술자인데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면서도 마지막에는 벌을 받고 궁궐에서 쫓겨났다. 단순히 임금의 가마를 잘못 만들었다는 이유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부분이 있다. 장영실은 관노 신분이면서 종3품 벼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독자적인 기술 입국을 꿈꿨던 세종의 명으로 혼천의, 자격루, 측우기 등 여러 과학기기를 제작했다. 세종의 신임이 두터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측된다. 그런데 이 영화 '천문'에서는 둘의 관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깝게 나온다. 왕과 신하의 신분을 떠난 벗이며 동지 같다. 장영실은 왕의 침실에서 같이 있기도 한다. 자신의 뜻을 몰라주는 신하들에 둘러싸인 세종은 외로움을 느끼고, ..

읽고본느낌 2020.02.10

내 사랑 백석

1938년, 청진동 시절이었다. 백석과 자야는 아침부터 독서에 골몰하느라 해저무는 줄도 몰랐다. 이때 자야의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약초(若草)극장에 영화 '클레오파트라'가 왔는데, 함께 가자고 졸랐다. 자야는 가고 싶었으나 백석이 안 갈 것 같아 친구에게 눈짓을 했다. 눈치 빠른 친구가, "백선생! '클레오파트라' 보러 같이 가자구요!" 라고 보챘다. 백석은 대답 없이 잠자코 있더니, 곧바로 자야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클레오파트라, 여기 있지 않소?" 에 나오는 일화다. 자야가 백석과의 사랑을 회상하며 쓴 이 책을 읽어보니 둘은 상상한 것보다 더 간절하고 열렬하게 사랑한 것 같다. 요사이 말로 하면 닭살 돋는 연인이었다. 백석과 자야가 처음 만난 건 1936년 함흥에서였다. 백석은 함흥에 있는..

읽고본느낌 2020.02.07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작가의 여행 산문집이다. 작가가 찍은 여행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글과 함께 사진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보다 사진 한 장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책 표지 뒷면에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 이렇다. 시를 쓰고 산문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술을 마시고 식물을 기르고 사랑을 한다. 저 'ㅅ'들과 함께 사는 혼자 사람. 이 책 를 읽으며 '자신을 지키는 삶'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나를 세상에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내 개성을 세상과 병립시키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과 불화하지 않으면서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독립적이되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내 색깔을 고이 간직하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같은 것들이다. 책 제목에..

읽고본느낌 2020.01.30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터미네이터 1편이 나온 게 1984년이니 어느덧 36년이 되었다. 1편 뒤에 시리즈로 다섯 편이 제작되었고, 나는 세 편 정도를 본 것 같다. 이번에 나온 '다크 페이트'는 여섯 번째 작품이다. 옛 작품은 본 지가 오래돼서 기억에 떠오르는 장면들이 어느 편에 나오는 건지 헷갈린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연기한 터미네이터가 차를 몰고 추격하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어느 집 지붕을 뚫고 거꾸로 처박혔다. 죽든지 아니면 큰 부상이라도 당할 줄 알았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옷의 먼지를 훌훌 털면서 집 밖으로 걸어나오는 장면이 있다. 터미네이터의 위력을 보여준 첫 장면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다. 경찰관 복장을 한 액체 로봇 터미네이터 T-1000도 처음 봤을 때 놀라웠다.형상기억합금을 설명하면서 수업 시간에 써..

읽고본느낌 2020.01.23

끌림

이병률 작가의 감성 충만한 여행기다. 여행지와 작가의 교감이 글과 사진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을 펼칠 때마다 카메라 하나 들고 혼자서 계획 없이 떠돌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낯선 도시 뒷골목에 허름한 숙소를 정하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싶다. 며칠 빈둥거려도 좋겠다. 이런 여행에 대한 로망 하나 나에게도 있다. '포카라에서 열흘'을 꿈꾼 게 십 년이 넘었지만 유효기간은 아직 남아 있다. 반으로 평가절하된 네팔 화폐도 여전히 내 지갑 속에서 제 땅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언젠가는 오겠지. 작가의 글 한 편을 옮긴다. 좋아해 낡은 옷을 싸들고 여행을 가서 그 옷을 마지막인 듯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해. 한 번만 더 입고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 계속 빨고 있는 나와 그 빨래가 마르는 것, 그리고..

읽고본느낌 2020.01.17

신의 한 수 : 귀수편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라서 관심이 컸다. 전작인 '신의 한 수 : 사활편'은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서 실망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개선되길 바랐다. 그런데 같은 스타일의 복수혈전이다. 바둑을 들러리로 세운 액션 활극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화끈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대로 볼 만할지 모르겠다. 겉으로 보면 바둑만큼 정적인 게임은 없다. 그러나 바둑 두는 사람의 심리 상태는 천변만화하며 요동친다. 평상심을 잃지말라고 하지만 승부가 걸리면 지키기 힘들다. 목숨이 걸린 내기바둑이라면 어떻겠는가. 이 영화의 주인공에게 바둑은 복수를 위한 도구다. 최고수가 되어 돌아온 귀수(권상우 분)는 상대를 하나하나 꺾으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누나를 성폭행하고 자살하게 만든 옛 바둑도장의 스승까지 정복하고 자살하게 만든..

읽고본느낌 2020.01.10

저 청소 일 하는데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젊은이들은 고민이 많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내 능력을 발휘할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고 고집하다가는 생계가 문제 된다. 제일 현실적인 방법은 아무 일자리나 구해서 우선 먹고사는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은 남는 시간에 취미 삼아 틈틈이 하면 된다.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온다. 인생은 길다. 조급하게 덤비지 말아야 한다. 를 쓴 김예지 씨가 좋은 본보기다. 작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입사 시험에서는 번번이 낙방했다. 그녀에게 일을 맡기는 데도 없었다. 생계를 위해 청소 일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대학을 졸업한 20대의 아가씨가 빌딩 청소 일을 하는 것은 세상의 편견..

읽고본느낌 2020.01.08

주전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 감독 작품이다. 작년 여름에 개봉했으나, 신년 특집으로 SBS TV에서 어제 저녁에 방송되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갈등의 최전선에 있는 이슈다. '주전장'은 양측을 대변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의 본질에 객관적으로 접근한다. 일본 우익의 주장은 보도를 통해 대체로 알고 있다. 그런데 보통의 일본 사람들은 위안부라는 말 자체를 대부분 모른다. 군국주의 시대의 부끄러운 역사를 은폐하고 숨기기 때문이다. 두 나라 국민의 갈등의 골이 깊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위안부를 바라보는 일본 우익의 주장이 이영훈 등이 쓴 라는 책에서 본 내용과 똑같아서 놀라웠다. 군복을 입고 일장기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에서 태극기 부..

읽고본느낌 2020.01.02

장수 지옥, 마지막 사진 한 장

의술이 발달하고 생활 환경이 개선되면서 평균 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여성의 평균 수명은 거의 90세에 가깝다. 일본은 2007년에 이미 노인 인구가 21%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2017년에 노인 인구 비율이 14.8%로 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일본이 겪는 문제를 우리 역시 뒤따르며 경험해야 한다. 노년과 죽음 문제를 다루는 책 두 권을 읽었다. 과 이다. 옛날에는 장수가 축복이었고 노인이 존경을 받았다. 노인이 드물었던 시대의 이야기다. 오래 사는 대가는 쇠약, 고통, 질병에 시달리며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동반한 채 몇 년씩 버텨야 한다. '죽지 못해 산다'라는 말이 결코 노인의 엄살이 아니다. 은 제목이 쇼킹하다. 마쓰바라 준코라는 일본 작가가 썼다..

읽고본느낌 2019.12.30

두 교황

2005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한 뒤 열린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 교황이 선출되었을 때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베네딕토 교황은 학자 출신의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어서 천주교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변화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종교도 마찬가지다. 교황은 종신제다. 그런데 베네딕토 교황은 도중에 사임했다. 인기가 없었는 데다 측근의 비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임은 굉장히 의외의 결단이었다. 베네딕토 교황의 유일하게 훌륭한 업적은 사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영화 '두 교황'은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 전후에서 시작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 선출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첫 화면에는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두 교황은 가치관이나 성격 등 ..

읽고본느낌 2019.12.26

레드 로자

올해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학살당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로자라고 하면 지성, 용기와 더불어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꽃으로 태웠던 여인으로 떠오른다. "혁명이 전부라고요! 다른 건 다 쓰레기예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이런 말들에 그녀의 생애가 들어 있다. 이 책 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일생을 만화로 그려냈다. 만든 이는 영국 만화가인 케이트 에번스다. 만화라고 해서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로자의 삶과 사상을 요약했지만 무게감이 있다. 중요한 부분에는 주석이 달려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에 태어나 1919년에 세상을 떠난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다.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이론가이면서 투사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에서 로자를 넘어설 사람은 없..

읽고본느낌 2019.12.20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을 벗어나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둘의 조합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어쨌든 새로운 시도는 상찬받을 만하다. 믿고 보는 고레에다 감독인데 이 영화는 솔직히 기대에 못 미쳤다. 동양과 서양의 어색한 동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되브)는 성공한 여배우인데 일밖에 모른다. "나쁜 엄마, 나쁜 친구가 되어도 괜찮아. 여배우로 명성을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해." 이런 멘트가 파비안느의 인생관을 말해준다. 당연히 딸과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엄마를 못마땅해하는 미국에서 사는 딸이 가족과 함께 엄마를 찾아온다. 엄마의 자서전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부딪치고 갈등을 겪은 뒤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읽고본느낌 2019.12.14

다가오는 말들

은유 작가의 산문집으로 작가의 색깔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글의 소재는 가족, 글쓰기 모임의 학인, 인터뷰를 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나눈 사연 중심으로 되어 있다. 글에는 세상과 인간을 보는 작가의 섬세하고 따스한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내가 은유 작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그분의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15년쯤 전일 것이다. 지금은 유명 작가가 되었지만 그때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주부로서 아이를 키우며 느낀 감상을 진솔하게 써서 많은 공감을 받았던 게 기억난다. 서태지 음악에 대한 얘기도 많았다. 그 뒤로 작가의 책은 나오는 대로 찾아 읽어 보았다. 영민하면서 문재(文才)랄까, 재기가 반짝이는 글이 좋았다. 역시 몇 줄만 읽어봐도 은유 작가의 글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반면에 약간은 ..

읽고본느낌 2019.12.10

벌새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다. 나의 올해의 영화로 꼽을 만하다. 1994년,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은희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영화다. 1994년은 성수대교 붕괴라는 참사가 있었던 해다. 김보라 감독의 연출력이 탄탄하고, 특히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진지하면서 따스한 시선이 좋다. '벌새'에서 주목할 캐릭터는 영지 샘이다. 은희를 진정을 다해 이해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학원의 한문 강사를 넘어 인생의 스승, 멘토라 부를 만하다. 은희는 영지 샘을 만났기에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영지 샘은 서울대를 휴학한 운동권 학생이다. 그녀의 행동과 말에서는 소녀에게 주는 격려와 충고 이상의 인생에 대한 통찰이 보인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평생 철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영지..

읽고본느낌 2019.12.0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SF 작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도서관에서 SF 분야의 책을 찾아보면 대부분이 외국 작가의 번역서다. SF는 과학과 인문학의 지식을 배경으로 우주적 상상력이 동반되어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진다. 우리에게도 멋진 SF 작가가 탄생할 정신적 토양은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은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 모음집이다. 작가는 1993년생이니 20대의 촉망 받는 젊은이다. 2017년에 '관내분실'로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았다. 책에는 여섯 편의 SF 단편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제일 흥미를 끈 소설은 '관내분실'이다. 미래의 도서관은 죽은 자의 마음을 업로딩한 데이터를 보관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찾아가서 망자를 만나며 추모한다. '마인드'와 접속하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살..

읽고본느낌 2019.11.27

7인의 신부

옛날 영화를 한 편 봤다. 1950년대에 제작한 '7인의 신부'다. 미국에서 뮤지컬 영화의 전성기에 나온 대표적인 영화다. 스토리는 아주 단순하다. 배경은 19세기 중반 애리조나주에 있는 어느 마을이다. 남자 7형제가 산골에서 농장을 하며 살아가는데 장남 아담은 마을에 내려왔다가 식당에서 일하던 밀러와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던 동생들도 마을 축제장에 갔다가 동네 아가씨들에게 반해 결혼을 꿈꾼다. 결국은 아가씨들을 납치해 오게 된다. 눈사태로 길이 끊기고 긴 겨울 동안 함께 지내면서 정이 들고 봄에 모두가 결혼하게 된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황당한 요소가 많다. 그러나 19세기라는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그리 무리한 설정도 아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보쌈'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남자들은 ..

읽고본느낌 2019.11.20

조커

점점 고착화되어 가는 계급사회에 대한 경고로 읽은 영화다. 우리만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 어디나 양극화 문제는 심각하다. 부는 소수에게 편중되고 다수는 점점 가난과 소외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계층 사이의 이동이 불가능하면 계급사회가 되는 것이다. 계급 차이는 갈등을 낳고 결국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아서는 루저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병든 노모를 모시고 힘들게 살아간다. 영화는 그가 사회로부터 멸시와 조롱, 폭력까지 당할 때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커의 살인을 정당화하거나 동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할 때 악마로 변하는 건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섬뜩하고 강렬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묵직하다. '조커'는 영화 '기생충'과 닮..

읽고본느낌 2019.11.19

어떻게 죽을 것인가

미국의 의사면서 저술가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가 쓴 책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다루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본인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대안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제도뿐만 아니라 환자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 또한 크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오래 사는 게 행복일까?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야 마다할 리 없겠지만 길어진 수명은 병원 신세를 지고 말년에는 요양원에 수용되어야 하는 게 문제다. 질병과 죽음 사이에 의학적 투쟁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 과연 생명만을 연장하는 치료가 인간의 존엄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 책은 여러 사례를 들며 반복해서 질문을 던진다. "앨리스 할머니는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병원 환자..

읽고본느낌 2019.11.10

피아니스트

이자벨 위페르를 만나고 싶어 찾아본 영화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 작품으로 2002년에 개봉된 뒤, 2016년에 재개봉된 영화다. 인간 내면의 욕망과 병적인 심리를 잘 그려낸 영화다. 짜임새도 좋고, 위페르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은 아니다. 사랑을 가장한 집착일 뿐이다. 에리카(이자벨 위페르 역)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와 에리카 본인의 변태적인 사랑 방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머니와 에리카는 가정환경에서 유래한 정신적 상처를 갖고 있다. 건전한 사랑의 방식을 배우지 못한 두 사람은 파괴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표출한다. 그것이 결국 주변 사람까지 황폐시킨다. 이 영화는 19금이다. 일부 성적인 표현은 수위가 높다. 인간은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 영화는 ..

읽고본느낌 201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