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56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대학생 때 다니던 교회 청년회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명씩 신앙의 선조들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다. 루터, 칼뱅, 웨슬리 등을 다루었는데 칼뱅에 대해서는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는 이미지가 그때 새겨졌고 오래 유지되었다. 뛰어난 개신교 이론가였던 칼뱅은 제네바를 신이 다스리는 도시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칼뱅이 저지른 오류에 대해서 그때는 알지 못했다. 분명 칼뱅의 선한 의도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쓴 자료만 제공받았을 것이다. 악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수긍했을 수도 있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칼뱅도 마찬가지다.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는 칼뱅의 종교적 독단에 반대하며 관용의 정신을..

읽고본느낌 2024.09.03

[펌] 도구적 영성

'영성'은 기독교와 함께 본격화했다. 예수가 떠난 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는 영적(spiritual) 삶을, 개인의 만족, 안락, 성공을 좇은 육적(fleshly) 삶과 대비했다. 자발적 가난, 사유 재산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새로운 세상의 갈구, 인류에 대한 헌신 등은 그들이 구현한 영적 삶의 모습들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부(마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고, 아예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부를 좇는 일을 죄악시했다기보다, 애초에 길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렇다. 물질적 풍요보다 영적 풍요를 중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의 체제를 외면하지 않고 산다면 부자가 될 방법이 있는가. 1500년 후 예수의 메시지는 도래할 세상(자본주의)에 커다란 걸림돌이 ..

참살이의꿈 2024.01.04

사람들은 왜 사이비에 빠질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인 '나는 신이다'가 연일 화제다. 종교를 내세운 집단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동시에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사악한 교주나 교리에 끌려 신도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도 자연스레 들게 된다. 먼저 이단과 사이비는 구별해야 한다. 이단은 경전을 정통 교단의 가르침과 다르게 해석하는 집단이다. 지금의 기독도교 초창기에는 이단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초기 기독교회는 유대교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스데반은 유대인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은 최초의 순교자였다. 개신교가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가톨릭계로부터 이단시되었다. 그러므로 이단이라는 표현보다는 비주류라고 불러야 ..

길위의단상 2023.03.19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길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

시읽는기쁨 2023.03.13

나는 신이다

MBC가 만들어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사이비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총 8부작으로 JMS를 비롯해 네 집단을 다루고 있다. - JMS, 신의 신부들 - 오대양, 32구의 변사체와 신 - 아가동산, 낙원을 찾아서 - 만민중앙교회, 만민의 신이 된 남자 이미 공개되었던 내용들이라 새로운 것은 없지만 공중파에서 담지 못한 수위가 높은 장면 때문에 사람들에게 준 충격이 큰 것 같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한 효과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아한 것은 범죄를 저지른 교주들이 처벌을 받았거나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도들이 따르고 떵떵거리며 산다는 점이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에 비해 뒤처리는 너무 약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단이냐 아니냐는 기존의 정통 교리..

읽고본느낌 2023.03.12

선한 능력으로 / 본회퍼

선한 힘들에 신실하고 조용히 둘러싸여 놀랍게 보호받고 위로받으며 나는 이날을 그대들과 더불어 살기를 위하고 그대들과 더불어 새로운 해를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 지나간 해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악한 날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른다. 아, 주님, 우리의 놀란 영혼에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구원을 주소서. 당신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가득찬 쓰디쓴 고난의 무거운 잔을 주신다면 당신의 선하고 사랑스런 손으로부터 그것을 두려움 없이 감사히 받겠나이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세상에 대한 기쁨과 그 태양의 찬란한 빛을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과거의 것을 기념하고자 하며 그때 우리의 삶은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어둠 속으로 가져다준 양초들이 오늘 따뜻하게 밝게 타도록 하소서. 가능하면..

시읽는기쁨 2023.01.08

더 원더

넷플릭스에서 영화 '더 원더(The Wonder)'를 봤다. 19세기 중반, 대기근 직후의 아일랜드가 무대다. 땅도 사람도 피폐해진 상태에서 시골의 외딴집에 살고 있는 애나라는 소녀가 넉 달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도 생존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지역 사회나 종교계도 호응한다. 간호사 엘리자베스는 현장으로 가서 실상을 조사하는 임무를 받는다. 엘리자베스에 의해 애나가 생존한 비밀이 밝혀지고 가족의 흑역사가 드러난다. 그러나 잘못된 길을 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애나를 살리기 위한해 엘리자베스의 고군분투 끝에 결국은 탈출을 감행하고 성공한다. 한 소녀를 살리면서 사기극이 마무리된다. '더 원더'는 종교색이 짙은 영화다. 기독교의..

읽고본느낌 2022.12.12

그리스도의 탄생

"인간 예수는 어떻게 그리스도가 될 수 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엔도 슈사쿠의 해석을 담은 책이다. 어이없는 스승의 죽음을 본 제자들은 황망한 가운데 스승을 배신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나약한 제자들이 어떻게 스승을 재인식하게 되고 삶이 변화되며 담대하게 되었는지를 성서를 기반으로 합리적으로 추론해 간다. 엔도 슈사쿠는 제자들의 변화를 예수의 사랑에서 찾는다. 자신을 배신했던 제자들을 미워하기는 커녕 십자가 상에서도 끝까지 사랑하려고 한 예수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지려 한 예수의 이미지가 생겨났다. 자책하면서 굴욕을 느끼던 제자들에게 새로운 예수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예수는 자신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과 다시 제자들 곁으로 올 것이라는 신념이 생겼다. 기독교의 핵심 교..

읽고본느낌 2022.11.23

어서 빛으로 일어나 / 이해인

주님 일어나십시오 돌무덤에 갇혀 있던 어둠을 밀어내고 어서 빛으로 일어나 우리에게 오십시오 죽음의 깊은 잠을 떨치고 일어나신 당신의 기침소리에 온 우주는 춤추기 시작하고 우리는 비로소 나태의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으로 온 인류를 일으켜 세우신 그리스도여 죄를 뉘우쳐 눈이 맑아진 기쁨으로 오늘은 부활하신 당신의 흰 옷자락을 붙들고 산을 넘고 싶습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끝내는 아름답게 피워 올린 자목련 빛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추어 둔 향기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4월의 꽃나무들처럼 기쁨을 쏟아내며 우리는 모두 부활하신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생명의 수액을 뿜어올리는 생명나무이고 싶습니다 어서 빛으로 일어나 우리에게 오십시오 - 어서 빛으로 일어나 / 이해인 그저께 ..

시읽는기쁨 2022.04.19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

막달라 마리아를 보는 시각이 신선한 기독교 영화다. 부제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다. 신약성서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을 지킨 여인으로 나온다.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또 여자들도 먼 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 마르코 15,40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모신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 마르코 15,47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의 몸에 발라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 마르코 16,1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는 예수..

읽고본느낌 2022.03.20

예수 없는 예수 교회

"신화화된 그리스도는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교리로 박제된 예수는 교회 쇼윈도에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지만 역사적 예수, 갈릴리 예수, 나사렛 예수는 없다." 이 책의 저자인 한완상 선생이 한국 교회를 질타하는 목소리다. 교회가 예수를 앞세우지만 정작 예수의 정신은 없다. '믿습니다'의 열정에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의 크리스천이 예수의 삶은 '따름'에 있어서는 자국민의 경멸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믿음과 은총만 강조하다 보니 질문과 성찰은 소홀히 하고 값싼 기복신앙만 난무한다. 저자는 이를 '신앙의 치매'라고까지 표현한다. 선생은 먼저 역사적 예수의 매력을 되찾자고 한다. 교리로 박제된 예수는 살아 있는 예수의 역동성을 외면한다. 구속 드라마 속의 예수는 구속사에서 배우 역할에 불과할 뿐이다..

읽고본느낌 2022.03.04

예수냐 바울이냐

"바울의 기독교 신학 안에 갈릴래아 청년 예수의 정신은 없다." 저자인 문동환 선생이 이 책에서 맺는 결론이다. 책의 '시작하는 말'의 서두 부분은 이렇다. "기독교는 2000년 동안 바울 신학을 추종해 왔다. 그리고 이것을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며 온 세계에 전파했다. 바울 신학은 예수를 유대 민족이 대망하던 메시아라고 주장함으로써 예수가 창출한 '생명문화공동체운동'을 곁길로 오도하였다. 그리고 다윗 왕조가 섬기는 일개 민족의 신을 유일신이라며 앞으로 올 메시아 왕국이 온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메시아 왕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자처했다. 어처구니없는 민족주의다." 는 예수와 바울을 비교하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밝힌다. 이 책은 바울이 예수의 정신을 왜곡했다고 보는 ..

읽고본느낌 2022.02.25

도올의 로마서 강해

내가 한때 회심을 하게 된 계기가 '로마서'였다. 수녀원의 조용한 방에서 로마서를 읽으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라는 구절이 나를 찔렀다. -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로마서 1,17). -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로마서 3,21) -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십니다(로마서 3,22).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로마서 3,24). -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로..

읽고본느낌 2022.02.22

다읽(15) - 예수는 없다

세 번째 다시 읽는 책이다. 20년 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으면서 직설적이고 시원한 글에 가슴 한 편의 응어리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번민만 있을 뿐 한 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 신앙의 정체기에 찾아온 단비 같은 선물이었다. 가 나오기 전의 어느 때였다. 이 책의 저자인 오강남 선생의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선생의 인기를 반영하듯 넓은 강의실은 청중으로 가득 찼다. 청중 중에는 선생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연 중에 그 사람들이 단체로 일어나 하나님과 성경을 모독하지 말라고 큰소리치던 기억이 난다. 또, 선생의 친구라면서 조영남 씨가 나와서 자신의 신앙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책의 제목이 도발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 자..

읽고본느낌 2022.02.16

온유에 대하여 / 마종기

온유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그 사람 빈집 안의 작은 불꽃이 오늘은 더욱 맑고 섬세하구나 겨울 아침에 무거운 사람들 모여서 온유의 강을 조용히 건너가느니 주위의 추운 나무들 눈보라 털어내고 눈부신 강의 숨결을 받아 마신다. 말과 숨결로 나를 방문한 온유여, 언 손을 여기 얹고 이마 내리노니 시끄러운 사람들의 도시를 지나 님이여 친구가 어깨 떨며 운다. 그 겸손하고 작은 물 내게 묻어와 떠돌던 날의 더운 몸을 씻어준다. 하루를 마감하는 내 저녁 속의 노을, 가없는 온유의 강이 큰 힘이라니! 나도 저런 색으로 강해지고 싶었다. 불타는 뜬구름도 하나 외롭지 않구나. - 온유溫柔에 대하여 / 마종기 '따뜻할 온(溫)'과 '부드러울 유(柔)', 온유(溫柔)는 참 아름다운 말이다. 사전에는 '성격이나 태도 따위가 온화..

시읽는기쁨 2022.02.15

콜로니아: 사악한 믿음의 마을

종교에 빠지는 인간의 심리에 관심이 많다. 한 번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이성이 마비되고 너무나 쉽게 맹신의 늪에 떨어진다. 사악한 종교 지도자는 이런 인간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취한다. 유사 이래 종교의 탈을 쓴 이런 집단은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인간의 마을을 파괴해 왔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현재진행형일지 모른다. '콜로니아: 사악한 믿음의 마을'은 최근에 넷플렉스에 올라온 다큐멘터리 드라마다. 1961년 칠레에 독일인들 수백 명이 이주해 와서 신앙 공동체(콜로니아 디그니다드)를 만든다. 우두머리는 파울 셰퍼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출신이다. 전후의 황폐한 시기에 기독교 리더로 등장해 활동하다가 소아 추행에 관련되어 추방 당하자 추종자를 이끌고 칠레에 정착한 것이다. 콜로니아 디그니다..

읽고본느낌 2021.10.18

다읽(12) -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수많은 세대의 허다한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받들어 왔지만, 그 예수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적다. 더구나 예수가 뜻한 바를 실천에 옮긴 사람은 더욱 적다. 예수의 말은 별의별 뜻으로 왜곡되어 아무 뜻도 없게까지 되었다. 예수의 이름은 범죄를 정당화하고 어린이들에게 겁을 주며 필부들에게 어리석은 영웅심을 불어넣는 데에 이용, 아니 악용되어 왔다. 예수는 자기가 뜻한 것보다 뜻하지 아니한 것으로 더 자주 찬양과 숭배를 받아 왔다. 무엇보다 큰 역설은 예수가 세상에 살면서 가장 강력히 반대하던 바에 속하는 바로 그런 것들이 종종 되살아나서는 온 세상에 널리 설교,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는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 기독교 교리라는 안개가 예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보..

읽고본느낌 2021.09.24

나는 예수입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예수전이다. 도올 선생은 마가복음에 기반한 있는 그대로의 예수 알기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네 복음서 중에서 그나마 마가복음이 예수의 원형을 제일 잘 간직하고 있다.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성립한 복음서이면서 다른 복음서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을 마가복음으로, 있는 그대로 읽자는 것이 도올 선생의 주장이다. 교회에 다닐 때 마가복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다른 복음서의 축쇄본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이야말로 오리지널한 예수의 모습이 담긴 복음서라는 사실을 이번에 새롭게 발견했다. 선생은 이전에 를 펴냈다. 와 상통하면서 서로 보완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다. 이 책도 곧 사서 읽어볼 예정이다. 도올의 예수는 갈릴리 지평에서 민중에게 하나님 나라를..

읽고본느낌 2020.10.13

금란교회의 추억

금란교회 하면 개신교 신자든 비신자든 한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등록된 교인 수가 14만 명이 되는 감리교회 중에서는 세계 최대의 교회다. 또, 워낙 유명세를 탄 김홍도 목사가 시무한 교회로 보수 반공 이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지난 2일에 김홍도 목사가 별세했는데, 전광훈을 길러낸 스승이었다는 보도가 지면에 실렸다. 나도 금란교회와 김홍도 목사와의 짧은 인연이 있으므로, 그분의 부고에 잠시 숙연해지며 거의 50년 전 옛일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나는 1970년대 초중반에 금란교회 신자였다. 1972년, 대학교 2학년생일 때 금란교회에 처음 나갔다. 같은 과 친구가 소개해 주면서 담임목사의 영적 능력이 굉장하다고 말했다. 그때는 김홍도 목사가 금란교회에 막 부임했을 때였다. 처음 교회를 나가..

길위의단상 2020.09.06

신의 진화

종교와 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해 왔는지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 책이다. 생물체가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듯이, 신 개념도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다. 신은 고정된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변화하는 개념임을 아브라함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이 책 는 미국의 저술가인 로버트 라이트가 썼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과학자답게 종교 역시 그런 틀로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방대한 내용이면서 종교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데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미신적인 신앙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원시인들은 두려움에서 신을 찾았을 것이다.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을 거쳐 고대 국가가 들어서면서 종교도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

읽고본느낌 2020.07.25

자방 격리

살짝 몸살기가 찾아왔다. 사흘 전에 물빛공원을 걸을 때 찬 바람이 불어서 좀 걱정이 되긴 했다. 콧물이 흘렀고, 몇 번 재채기도 나왔다. 그 뒤로 머리가 띵 하며 몸이 나른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환절기 연례행사를 치러야 하나 보다.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된 손주가 집에 와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자가 격리보다 더 센 자방(自房) 격리 중이다. 만에 하나 코로나19라면 큰일 날 일이니 문 닫고 방안에 갇혀 있다. 덩달아 치통까지 찾아와 요사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산다. 몸살기라도 사라져야 치과를 갈 텐데, 그저 진통제를 먹으며 버틸 수밖에 없다. 이런 시기에는 몸이 아프면 더더욱 안 된다.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은 기세가 상당히 수그러들었다. 한창때 수천 명씩 나오던 확진자 수가 지금은 백 단위로 줄..

길위의단상 2020.03.06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나온 지 14년이 되어선지 최근에 나온 작품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냉소적이면서도 싱싱한 야성의 냄새가 난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특이하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 교양 없이 막돼먹은 사람들이 주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세태를 고발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까발린다. 더러운 욕망의 카니발에 그들은 민낯을 드러내지만 우리는 가면을 쓰고 점잖은 척 할 뿐이다. 책 제목으로 삼은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성경의 장과 절을 흉내 낸 형식이 재미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의인 최순덕에게 내린 성령의 감화 감동 이야기라 이곳에 하나의 보탬과 빠짐없이 기록하나니'가 1장 1절이다. 최순덕은 열심 신자인 부모 밑에서 오..

읽고본느낌 2018.09.09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예수가 언제 어떻게 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바트 어만(Bart D. Ehrman) 교수의 저작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 질문과도 연관이 있다. 기독교는 예수가 곧 하느님이라는 교리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예수가 직접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갈릴래아의 가난한 예언자가 어떤 과정을 통해 신으로 변모하게 되었는지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예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저자는 예수를 '묵시론적 예언자'로 이해한다. 예수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는 묵시론적 열정이 퍼져 있었다. 사악한 시대를 끝낼 메시아가 오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예수 역시 악의 세력을 파괴하기 위해 하느님이 곧 개입하리라고 가르쳤다. 하..

읽고본느낌 2018.08.29

종교개혁 500주년

올해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 교회 앞에 게시하고 그릇된 제도에 대해 토론할 것을 제의했다. 루터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결국은 가톨릭에 대한 선전포고가 되고 개신교가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박문을 읽어 보면 루터가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가 와도 토론으로는 루터를 당해낼 수 없었을 것 같다. 가톨릭은 교회의 권위를 내세워 루터를 핍박할 수밖에 없었다. 반박문은 베드로 성당 건축에 관한 문제, 교황의 신적 권위, 면죄부의 해악 등을 지적한다. 다만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독교개혁'이라고 불러야 맞다. 젊었을 때 다녔던 교회 목사는 기독교를 종교라 부르는 것도 ..

길위의단상 2017.10.12

사일런스

엔도 슈샤쿠의 을 읽은 것이 20년쯤 전이다. 아직도 소설 속 두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기독교인을 판별하기 위해 성화를 밟게 하는 장면이다. 일본말로 '후미에(踏繪)'라고 한다. 기발하면서 잔인한 방법이다. 또 하나는, 배교하지 않는 기독교인을 해변에 세운 십자가에 묶고 밀물이 되면서 물에 잠겨 익사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고통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전율했다. 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사일런스'을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이 장면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가 먼저 궁금했다. 상상과는 일부 차이가 났지만 두 상황의 처절함을 전하는 데는 화면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원작을 감동을 지켜낸 좋은 영화였다. 영화의 무대는 17세기 초 천주교 탄압이 극에 달하던 때의 일본이다. 일본에 파견되어 전교하던..

읽고본느낌 2017.05.21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천주교 세례를 받았지만 천주교 신자냐고 물으면 확신이 없다. 성경에서 서술하는 하느님을 믿지 못한다. 미사 시간에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는 입이 다물어진다. 역시 글자 그대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우주에 존재하는 신성(神性)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내 안의 종교심도 부정할 수 없다. 전통적인 신앙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종교인이라는 말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어정쩡한 상태다. 그래서 사서 읽은 책이 다. 알랭 드 보통이 썼다. 저자는 무신론자다. 그렇다고 종교가 가진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제다. 종교의 관념과 실천 가운데 일부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읽고본느낌 2015.06.20

종교 단상

신앙에서 속물성은 초월성이 강조될수록 두드러진다.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가 진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근본주의일수록 속물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절대 권력이 부패하듯 절대 진리에 대한 맹신은 인간을 속물화하고 타락시킨다. 집단화되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기독교의 근본주의, 이슬람의 IS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극단은 극단과 통한다. 종교에서도 아예 세상을 버리거나, 아니면 세상에 더 집착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우상이 된다. 맘몬 숭배가 종교의식을 빌려 성행하는 세상이다.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믿음이 좋다'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경계를 하게 된다. 대단히 속물화되어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은 자신의 속물성에 면죄부를 주는 도구다. 한국 교회는 경제 성장과 쌍두..

참살이의꿈 2015.03.15

억울한 빌라도

빌라도만큼 억울한 사람도 없다. 기독교인들은 예배나 미사에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라며 신앙 고백을 한다. 전 세계 기독교인 숫자가 23억이니 주일날이면 적어도 수억 명이 예수의 고난이 빌라도 탓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이 빌라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를 구해주려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당시 유대교 성직자들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명목으로 예수를 붙잡아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겼다. 빌라도의 사형 판결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빌라도는 무력 투쟁이나 봉기를 하지 않은 예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예수는 로마 식민 통치의 위험인물이 아니었다. 빌라도는 예수가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는 것을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했..

길위의단상 2014.08.29

우리 시대 산상수훈 / 고정희

내 뒤를 따르고 싶거든 남의 발을 씻겨주라 씻겨주라, 예수 말씀하셨네 그러나 우리 사는 시대는 자기 자랑 시대, 남의 발 씻기는 이 따로 있으니 그대를 세상은 몸종이라 부르네 내 십자가를 지고 싶거든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하라, 예수 말씀하셨네 그러나 우리 사는 시대는 남북분단 시대, 그대를 세상은 빨갱이라 부르네 내 기적을 알고 싶거든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내밀고 오 리를 가라 하면 십 리까지 따라가라 따라가라, 예수 말씀하셨네 그러나 우리 사는 시대는 먹이사슬의 시대, 몸을 달라 하면 쓸개까지 주는 이 따로 있으니 그대를 세상은 창녀라 부르네 내 평화를 누리고 싶거든 땅에서 가난하라, 땅 위에 재물을 쌓지 마라, 주님 말씀하셨네 그러나 우리 사는 시대는 자본독점 시대, 오직 가난한 이 여기 있으니 그대..

시읽는기쁨 2013.09.09

마십시오

"당신이 다만 세상의 것들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하늘에 계신'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기주의 속에서 혼자 떨어져 살고 있다면 '우리'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매일 아들로 처신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분과 물질적인 성취를 혼동하고 있다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뜻을 고통스러울 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약도 없이, 집도 없이, 직장도 미래도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을 사람들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형제에 대한 한을 품고 있다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죄를 계속 지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

참살이의꿈 2013.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