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17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나갈 한국 대표를 뽑는 본선이 어제 있었는데 81세의 최순화 씨가 베스트 드레스상을 받았다. 올 가을에 열리는 세계 대회에 나갈 대표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미스 유니버스에 도전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1943년생인 최순화 씨는 간병인으로 일하다가 어느 환자의 권유로 모델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 74세 때였다.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하는 나이 제한이 없어지면서 최 씨의 목표는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 32명이 겨루는 본선까지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한국 대표가 되지는 못했다. 만약 세계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면 지구촌의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특별한 ..

참살이의꿈 2024.10.01

공짜 / 박호현

선생님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공기 마시는 것 공짜 말하는 것 공짜 꽃향기 맡는 것 공짜 하늘 보는 것 공짜 나이드는 것 공짜 바람소리 듣는 것 공짜 미소 짓는 것 공짜 꿈도 공짜 개미 보는 것 공짜 - 공짜 / 박호현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쓴 동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더니 열 살도 안 된 아이의 글이 큰 깨우침을 준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은 전부 공짜가 아닌가. 나도 공짜 목록을 적어보며 불평하는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 어느 노래 가사에도 이런 게 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이 세상에 빈 손으로 온 놈이 이만큼 가졌으면 부자가 아닌가.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에 결핍을 느낄 ..

시읽는기쁨 2023.08.21

18세와 81세

고등학교 동창 카페방에 누군가 재미있는 글 하나를 올렸다. 제목이 '18세와 81세'인데 읽다 보니 웃음이 나면서 씁쓰레하다. 나도 81세가 눈앞에 와 있다. 사랑에 빠지는 18세 욕탕에 빠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다리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이 안 멈추는 18세 심장질환이 안 멈추는 81세 사랑에 숨 막히는 18세 떡 먹다 숨 막히는 81세 학교 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 당뇨 걱정하는 81세 아무것도 철 모르는 18세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 찾아 나서는 81세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남자가 81세다. 그렇다면 한국 남성은 81세가 되면 반 정도만 생존한다는 얘기다. 지금은 같이 희희낙락하는 친구들이지만 곧 반..

길위의단상 2023.04.29

나이 / 이븐 하짐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지. 세월 속에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보고 난 뒤 내 이마의 주름살들을 보고 난 뒤. 난 그에게 대답했지. 내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사실 난 아무곳도 세지 않으니까. 게다가 내가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는. 그가 나에게 말했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설명해 주세요. 그래서 난 말했지. 어느 날 불시에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에게 입을 맞추었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입맞춤을. 나의 날들이 너무도 많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만을 세지. 왜냐하면 그 순간이 정말로 나의 모든 삶이었으니까. - 나이 / 이븐 하짐 괴테가 그랬던가.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진정으로 행복했던 시간은 하루가 채 안 된다고. 우리가 볼 때 세상의 복이란 복은 혼자 독차지한 것 같은 괴테인데, 인간에게 ..

시읽는기쁨 2020.01.15

그거 안 먹으면 / 정양

아침저녁 한 웅큼씩 약을 먹는다 약 먹는 걸 더러 잊는다고 했더니 의사선생은 벌컥 화를 내면서 그게 목숨 걸린 일이란다 꼬박꼬박 챙기며 깜박 잊으며 약에 걸린 목숨이 하릴없이 늙는다 약 먹는 일 말고도 꾸역꾸역 마지못해 하고 사는 게 깜박 잊고 사는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쭈글거리는 내 몰골이 안돼 보였던지 제자 하나가 날더러 제발 나이 좀 먹지 말라는데 그거 안 먹으면 깜박 죽는다는 걸 녀석도 깜박 잊었나보다 - 그거 안 먹으면 / 정양 요즘 들어 깜박하는 일이 잦다고 친구가 말했다. 시내에 나간 게 어제인지 그저께인지 헷갈린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젊을 때 영민했던 친구도 나이를 먹으면서 이렇게 변해간다. 우리말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먹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

시읽는기쁨 2020.01.09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것

해가 바뀌면서 누구나 똑같이 한 살이 보태진다. 찰나의 어긋남도 없다. 세상에서 제일 공평하다.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한숨 쉬며 억울해 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을 충실히 못 살고 있다는 반증밖에 안 되는 짓이다. 강남에 사는 누구는 아파트값이 껑충 뛰었고, 지방에 사는 아무개는 도리어 값이 내려갔다. 같은 서울에서도 편차가 크다. 배가 아픈 게 인지상정이다. 만약 나이 먹는 것이 이와 같다면 어찌 되겠는가.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은 한 살이 늘어나는데, 깡촌에 산다고 열 살이나 더 먹는다면 억울하고 분통 터질 일이 아니겠는가. 세상사 중에서 흐르는 세월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똑같이 나이 들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러나 미래에는 ..

길위의단상 2020.01.05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

얼마 전에 갤럽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발표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60세로 세계 평균인 55세에 비해 높았다. 몇 나라별 평균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70세 한국 60세 영국 56세 미국 52세 독일 50세 일본 47세 중국 44세 대체로 유럽 국가가 높고 아시아 국가는 낮았는데, 한국은 예외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일본과 중국은 밑에 처져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40대 중반에 벌써 늙었다고 생각하는 건 의외다. 늙었다고 느끼는 나이도 몇 개의 단계가 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으면 누구나 늙어가는 걸 느낀다. 그러나 그때는 의욕이 팔팔할 때다. 늙어가는 과정이지 늙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늙어간다는 ..

길위의단상 2019.06.03

인구로 본 남은 수명

어제는 '노인의 날'이었다. 나라에서는 100세가 된 노인에게 청려장을 증정하며 기념식을 열었다. 올해 100세가 된 노인이 1,343명(남 235, 여 1,108)이다. 고령사회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100세 이상은 18,505명이나 된다. 통계청에 들어가서 우리나라 연령별 인구 분포를 찾아보았다. 2018년 8월 기준인 최신 자료다. 5세 단위의 노인 수는 이렇다. 65세 -- 525,134명 70세 -- 442,372명 75세 -- 363,389명 80세 -- 246,302명 85세 -- 129,958명 90세 -- 52,061명 95세 -- 16,933명 100세 -- 1,343명 이것으로 남은 수명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오차가 있겠지만 표본이 많으니 무시해도 괜찮을 듯하다. 현재..

길위의단상 2018.10.03

송년회 / 황인숙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는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 (아마도) - 송년회 / 황인숙 다가올 날들을 기준으로 하면 지금이 가장 젊다. 간명한 이치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나이 많이 먹었다는 타령을 한다. 지나온 과거를 껴입고 살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지금 젊지도 늙지도 않았다. 그저 현 상태로 존재할 뿐이다. 쉼 없이 변하는 중의 한 찰나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나이를 초월해서 삶을 ..

시읽는기쁨 2018.01.08

마흔 / 최승자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지 이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 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아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 마흔 / 최승자 내 서른은 어땠고, 마흔은 어땠을까? 너무 멀리 왔다. 시인의 절망까지는 아니었어도 돌아보니 그저 신기루였을 뿐. 악착같이 매달린 걸 수록 그랬다. 내 앞에 보이는 게 허깨비인 줄 알지만, 그래도 향하여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생. 갈증을 달래주는 한 줌의 물에 취하여, 믿는 도끼에 발등을..

시읽는기쁨 2015.02.23

무서운 나이 / 이재무

천둥 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다 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 내 몸에 번개 꽂혀 올까봐 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 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 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 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 그까짓 것 이제 두렵지 않다 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 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 - 무서운 나이 / 이재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천둥 번개에 놀란 아이들이 마리아의 방으로 뛰어들어오자 마리아는 'My Favorite Things'를 불러주며 안심시켜준다. 아이들과의 서먹한 관계가 이 일을 계기로 친밀하게 변한다.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재미있었던 장면이었다. 나이..

시읽는기쁨 2014.12.20

한 갑자가 지나다

한 갑자가 돌았다. 60년 전 계사년(癸巳年)에 태어났는데 다시 계사년이 찾아왔다. 12와 60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간과 관계된 숫자다. 해를 나타내는 12개의 지(支)가 있고, 일 년은 12달로 나눈다. 밤낮도 12시간으로 되어 있다. 또, 시간이나 분은 60등분을 한다. 이런 것이 순환 구조를 이루면서 60년이라는 큰 수레바퀴를 만든다. 60년 인생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건 사실이다. 축하 인사도 없고 회갑 잔치도 사라졌다. 수명이 늘다 보니 예전 60이 지금은 80 언저리쯤 될 것 같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도 옛말이 되었다. 이젠 대부분이 고희(古稀)를 넘기고, 100세 넘은 분을 만나는 것도 드물지 않다. 회갑을 언급하는 자체가 쑥스럽다. 그래도 60은 인생의 한 매듭으로 충분히 의미..

길위의단상 2013.02.12

논어[14]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때 목표가 섰고, 마흔에 어리둥절하지 않았고, 쉰에 하늘의 뜻을 알았고, 예순에는 듣는 대로 훤했고, 일흔이 되어서는 하고픈 대로 해도 엇나가는 일이 없었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 爲政 4 공자의 자기평가서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끝에서 이만한 자부심을 가질 인물이 다른 누가 있을까 싶다. 오래전부터 공자의 이 고백을 접할 때마다 같은 인간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자의 발 끄트머리도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차라리 '~ 되고 싶다'는 희망 사항이었다면 열등감이 덜 했을지 모른다. 나를 돌아보면, 40은 불혹(不惑)이 아니라 혹(惑)의 시..

삶의나침반 2013.01.25

억울하다

새해를 맞아 받은 휴대폰의 문자 메세지 중에서 제일 특이했던 것은 초등학교 동기인 J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이 '경인년 새해가 밝아오네 벌써 또 한 살 더 먹는다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도 드네'였다. 의례적인 기원이나 축하의 인사말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나온 '억울'이란 말이자꾸 신경이 쓰였다.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신년의 인사말로 쓰기에는생경하게 느껴졌다. J는 동기들 중 가장 성공한 친구다. 증권회사에 다니며 고위직에도 올랐고 주식으로 돈을 모아 강남에 빌딩도 가지고 있는 부자다. 몇 해 전에 퇴직했는데 모두가 부러워 할 정도로 삶의 여유를 즐기며 산다. 자식들도 잘 컸고 건강도 우리들 중에서는 가장 나을 정도로 관리를 잘 하고 있다.친구의 입장에서 보면 행복하다고 해야 누구나 납득할 것이다...

길위의단상 2010.01.02

지금 내 나이는

자주 들리는 카페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한 살부터 백 살까지 나이의 특징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내용이다. 이대로라면 오래 살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인생의 과제를 다하고 그냥 노는 나이가 될 때까지...., 그때까지 건강하게, 그럴 수만 있다면.... 1세 -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 2세 - 직립보행을 시작하는 나이 3세 -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이 4세 - 떡잎부터 다른 나이 5세 - 유치원 선생님을 신봉하는 나이 6세 - 만화 주제곡에 열광하는 나이 7세 - 아무데서나 춤을 춰도 귀여운 나이 8세 - 편지를 쓸 수 있는 나이 9세 -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나이 10세 - 관찰일기를 쓰는 나이 11세 - 할아버지에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선물하는 나이 ..

길위의단상 2009.09.03

나이로 본 우리 인생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나이별로 특징을 정리해 놓은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1 살 - 누구나 비슷하게 생겼다. 2 살 - 될 놈은 약간 이상한 기색을 보인다. 9 살 - 파워레인저 장난감에 싫증을 낸다. 18 살 - 유행가에 자주 등장한다. 23 살 - 주말이 갑자기 의미가 있어지기 시작한다. 31 살 - 아직 29 살이라고 우길 수 있다. 32 살 - 군대에 지원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37 살 - 가족을 위해 캠코더를 산다. 38 살 - 병으로 죽으면 엄청 약오른다. 47 살 - 대학을 졸업하고 몇년이 지났는지는 계산을 해야 할 수 있다. 48 살 - 통계적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번다. 49 살 - 아홉수라는 말이 절실히 느껴진다. 51 살 - 태어난지 반세기를 넘어선다. 52 살 - 카드 한 벌과 수가 ..

길위의단상 2009.05.20

철이 덜 든 50대

사무실 책상 위에 있는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을 보고 지나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이 화면이 마음에 드세요?" "의외입니다." "아니, 당신한테 이런 면이 있다니."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이답게 놀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가냘픈 소녀가 빨간 우산을 쓰고 있는 바탕화면이 영 내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이 화면은 여러 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고른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속에는 소녀적인 취향이 숨어있음에 틀림없다. 여리고 감성적인 여성성 또한 나를 이루는 한 구성 요소인 것이다. 나 자신도 내 속에 들어있는 나를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리고 재미있어 하며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요."

사진속일상 200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