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69

집 / 맹문재

자정인데 작은방에 있는 아내가 급히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갔는데 거미를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거미는 목욕탕 굴뚝같이 높은 방구석에 제법 집다운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나는 거미를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뜻밖의 대답에 놀란 아내는 왜 잡을 수 없느냐고 항변했다 토끼풀꽃 같은 집을 지은 거미에게 원망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거미한테 원망 듣는 것은 무섭고 마누라한테 원망 듣는 것은 안 무섭느냐고 아내가 따졌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나는 아내의 방을 나왔다 자정이 넘어 잡을 수가 없네요 - 집 / 맹문재 한국인의 유별난 가족주의는 사회 문제의 원인을 진단할때 늘 감초처럼 끼어든다. 가족 사이의 끈끈한 정, 정서적 교류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밖에 모르는 가족 이기주의는 ..

시읽는기쁨 2007.08.03

우후죽순

사무실 앞에 오죽(烏竹)이 자라고 있는데 지난 겨울을 지나며잎이 누렇게 되면서 말라 죽었다. 작년 12 월의 추위 탓인 듯 한데 이렇게 대나무가 피해를 본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죽은 대나무를 잘라내었더니 곧 죽순이 나왔다. 하루만에도 눈에 띄게 쑥쑥 자라는 죽순은 내 눈에는 경이로웠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기상 조건 탓이겠지만 크면서 주위에서 대나무를 보지 못했다. 고향 집 뒤에 있던 조릿대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니 죽순이 자라는 것을 계속해서 관찰해 본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뒤로 대나무에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달이 지난 어느 날 앞 화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죽순이 어느덧 초록색 잎은 단 대나무로 변해 그 키가 무려 2 층 창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대나..

사진속일상 2006.06.12

생명 - 그 아름다움

어제 오후에는 중림동 가톨릭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김선규 기자의 사진전을 보았다. 사진전의 타이틀은 '생명 - 그 아름다움'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생명들을 따스한 시각으로 포착한 작품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좋은 작품이란 이렇게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같이 공감하게 만든다. 특히 각 사진마다 제목과 함께 설명이 적혀 있어 좋았다. 그 글에서 또한 작가의 생명 사랑이 진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전시된 몇 작품을 여기에 옮겨본다[www. ufokim.com]. ″김형 팔뚝만한 잉어가 하늘로 뛰어올라″ 지루한 장맛비가 그친 금요일 아침 중계동에 사는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간밤에 사납게 퍼붓던 비로 인해 중랑천 물은 무서운 기세로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2시간의 기다림. 마침내 팔뚝만한 잉어가 수중보..

읽고본느낌 2006.02.03

도로 위의 청개구리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앞 유리창에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네 다리를 유리에 바짝 붙이고 납작 엎드려 있는 모양이 너무 애처로웠다. 순간 이놈을 어떻게 살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를 늦춰서 빨리 갓길로 가야 되는데 고속도로상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을수도 없고 어떡 할까 망설이는 동안에 개구리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아마 도로에 떨어져 뒤에 오는 차들 바퀴에 깔려버렸을 상상을 하니 마음이 무척 아팠다. 빨리 결단을 못내리고 우물쭈물하다가 한 생명을 애꿎게 죽여버린 것 같아 아직껏 자책이 된다. 그런데 이 청개구리가 어떻게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나타난 것일까? 추측컨대 터에서 시원한 그늘을 찾느라 차 밑으로 들어왔..

길위의단상 2005.08.01

[펌] 돌밭에서 줄기세포를 생각하다

차일피일하다간 모종 심을 시기를 놓칠 것 같아서 재래시장에서 고구마와 고추 모종을 구했다. 마사토의 표면을 띠고 있었으나 밭에 손을 대는 순간, 땅 속에는 엄청난 돌이 박혀 있었다. 각오한 일이지만, 벌써 땡볕에 사흘째 엎드려 돌을 골라내도 끝이 안 보인다. 큰 돌은 작은 돌들을 뿌리처럼 거느리고 있었다. 이런 돌밭에서 곡괭이질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호미로 먼저 잔돌을 골라낸 뒤, 곡괭이질을 해야 큰 돌이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을 캐면서 최근 유례없는 감탄과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국보급 과학자’ 황우석 교수 생각이 났다. 왜 그가 떠올랐을까. 내색을 자제했지만 영 심기가 불편했나 보다. 혹은 그쪽 세계와 돌을 골라내고 고구마와 고추를 심으려는 내 돌밭의 현실과의 현격한 차이 때문이었을 것..

길위의단상 2005.06.11

백색 마녀의 저주

백색 마녀는 천사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보통의 마녀는 검은 옷에 무시무시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어린아이도 좋아할 정도로 밝은 외모의 마녀입니다. 그녀는 풍요와 행복의 미래를 약속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갑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술에 빠져듭니다. 사람들은 마녀를 따라가는 자신의 발걸음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매 순간 제공되는 달콤한 유혹에 넋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마녀의 무서운 저주가 숨어 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들려준 ‘백색 마녀의 저주’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백색 마녀란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친구가 설명했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마녀의 주술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일부는 주술의 효력이 미치지..

참살이의꿈 2005.02.03

소의 전설

'작은 것이 아름답다' 1월호에서 옛 생각이 나게 하는 글 한 편을 만났다. 상주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오덕훈 님이 소에 관하여 쓴 '소의 전설'이라는 글이다. 40대 이상으로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에 얽힌 추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농기계가 보급되지 전의 농촌에서는 힘든 일에는 반드시 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지간한 집이라면 집집마다 일소가 있었고, 가족처럼 대접받았다. 우리 집에서는 덩치가 큰 황소를 길렀다. 많은 논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성질도 사나워 그 소를 부릴 수 있는사람은 우리 집 일을 주로 도와주던 손씨라는 사람 외에는 없었다. 그때는 온순한 암소를 기르는 집이 무척 부러웠다. 우리 소를 몰고 소띳기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한 번도 주어지지..

길위의단상 2005.01.13

[펌] 저 황금빛 들녘의 비애

경남 밀양의 가을 들녘을 걸으며 눈이 시리다 못해 충혈이 되도록 안부를 묻는다. 청명한 가을 햇살과 찬 서리를 맞아 속살부터 단맛이 차오르는 얼음골 사과의 표정으로, 그리고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사자평 억새꽃의 이름으로 그대의 안부를 묻고 또 묻는다. 예사롭지 않은 세상, 그대는 정녕 이 가을에 행복하신가. 220일을 넘도록 걷고 걸으며 둘러보아도 세상은 온통 수상하고 수상할 뿐이다. 황금빛 출렁이는 저 들녘의 풍요는 어느새 풍요가 아니라 처절한 결핍이 되었다. 추수의 '감사'가 아니라 농산물 수입개방 문제 등으로 인해 생존권 사수의 '결사'가 되었다. 이따금 참새들이 날아와 벼이삭을 쪼더라도 화를 내는 척하지만 어느새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허수아비들의 여유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농자천하지대본'의 ..

참살이의꿈 2004.10.26

생명

작년 가을에 이웃에서 꽃잔디 몇 줄기를 꺾어다 집 주위에 심었다. 그 당시 상황이 무척 힘들었을 때라서 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도 못했는데 겨울이 되니 새까맣게 말라 버려서 죽었는가 보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봄이 되니 어느 날 갑자기 한 무더기의 꽃을 피어 올렸다. 이걸 보니 작은 풀꽃에 불과할지라도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꽃을 보면 희망을 떠올린다. 또 고맙고 미안하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나 작은 풀꽃에 들어있는 이런 생명력을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그것은 인간 속에도 내재하는 생명력과도 동일하며 서로 통하고 있다고 본다. 이 우주는 생명의 바다이다. 어느 책에서 한 스님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태백산 깊은 암자에서 수행하시던 분인데, 늘 새들이..

사진속일상 200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