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14

2024 설날

올해 설날은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단출하게 보냈다. 도로 정체가 풀린 뒤인 까치 설날 저녁에 내려갔더니 막힘 없이 갈 수 있었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명절이랄 것도 없이 간단했다. 성묘 가는 길... 어머니는 과거를 추억하며 많이 서운해 하셨다. 나도 기억하는 그 시절 동네 골목에는 설빔을 차려입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집에는 연신 세배하러 오는 손님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은 설날이 되어도 적막강산이다. 마을에는 아예 아이들이 없다. 새해 인사도 다니지 않는다.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사라지고 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가족 친척도 적다. 그저 제 식구들끼리 어울리다 간다. 우리 동네만 아니라 작금의 보편적인 현상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새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잖은가. 어쨌든 한 시대가 저무..

사진속일상 2024.02.12

떡국 한 그릇 / 박남준

섣달 그믐 어머니의 한숨처럼 눈발은 그치지 않고 대목장이 섰다는 면소재지로 어머니는 돈 몇 푼 쥐어 들고 집을 나서셨다 사고 싶은 것이야 많았겠지요, 가슴 아팠겠지요 섣달 그믐 대목장날 푸줏간도 큰 상점도 먼발치로 구경하고 사과며 동태 둬 마리 대목장을 봐오시네 집에 다들 있는 것인디 돈 들일 것 있느냐고 못난 아들 눈치보며 두부전, 명태전을 부치신다 큰형이 내려오면 맛보이신다고 땅 속에 묻어 뒀던 감을 내어 오시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형님의 방에는 뜨근뜨근 불이 지펴지고 이불 호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 오것제 토방 앞 처마 끝에 불을 걸어 밝히시고 오는 잠 쫓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 귀 세..

시읽는기쁨 2023.01.24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집 바로 앞 소나무에 까치 부부가 찾아와서 둥지를 만들고 있다. 까치집을 짓기 시작한 지는 한 달이 넘었다. 아침에 잠을 깨면 까치가 우짖는 소리가 제일 먼저 반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까치를 길조로 여기고 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바로 집 앞에 -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 까치가 찾아왔으니 올해는 길한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2023년 계묘(癸卯)년 설날이다. 이번 설은 어머니가 오셔서 함께 지내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 고향에 내려가서 모시고 올라왔다. 어머니는 목감기가 드셔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다. 이래저래 설날 같지 않은 설날이다. 어릴 적 추억 속 설날은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설날 전인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이라고 부른..

사진속일상 2023.01.22

한 장의 사진(28)

귀향(歸鄕)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고, 귀성(歸省)은 '부모를 뵙기 위하여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다. 귀성에는 '살필 성(省)'이 들어 있듯이 물리적인 거리 이동만 아니라 부모를 뵙는다는 뜻이 있다. 사람들이 설날이나 추석에 고향을 찾는 행동에는 귀성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오늘이 설날인데 귀성을 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성인이 된 뒤로 50년이 흘렀는데 설 명절은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추석은 몇 차례 못 내려간 적이 있지만, 설날 당일에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는 일은 철칙처럼 지켰다. 그런데 올해부터 달라졌다. 이젠 교통 정체를 견디며 이동하기도 힘들고, 형제가 명절에 모인다 한들 서먹하니 따스한 귀성의 의미가 별로 없다. 얼마 전에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께 ..

길위의단상 2022.02.01

설날 아침 / 남호섭

설날인데 앞집 할아버지 화났다. 아들이 주고 간 용돈 그새 어디 둔지 몰라 찾고 있는 할머니한테도 화나고 또 까먹고 간 손자 장난감에도 화나고 고속도로 꽉 막혔다는 뉴스에도 화나고 새배 마치자마자 텅 빈 집 안, 할아버지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다. - 설날 아침 / 남호섭 명절 후유증은 고향에 남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예외가 아니다. 도로가 막힌다고 경쟁하듯 박차고 떠나면 텅 빈자리가 심연처럼 깊고 크다. 화가 나서 심술을 부리는 사람이 앞집 할아버지만이겠는가. 뭐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할아버지 심사가 불편한 게 틀림 없다. 명절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회오리바람 같은 건지 모른다. 한 바탕 휘저어놓고는 나 몰라라 슬그머니 사라진다. 덕분에 우리의 허약한 바탕을 깨닫게 되는 이점도 있지만....

시읽는기쁨 2021.02.14

설날과 세배

코로나로 이번 설은 형제들과 따로따로 지내기로 했다. 설날에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아침에 첫째가 찾아와서 셋이 오붓하게 보내는 설날 아침이다. 오가는 고속도로의 정체 걱정도 없고, 다른 신경 쓸 일도 없다. 사람들과 접촉 없이 지내는 조용한 명절이 좋긴 하나 마음 한편이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설날은 아이들의 잔칫날이었다. 설날 준비로 며칠 전부터 집안은 부산했고, 섣달 그믐날 저녁은 왁자지껄한 명절의 전야제였다. 잠을 안 자려고 버텼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은 없었다. 설날에 일어나면 먼저 차례를 지냈다. 좁은 방에서 열 명 남짓이 차례상 앞에 모이면 바싹 붙어있어야 했다. 절을 하면 아버지 엉덩이가 바로 얼굴에 닿을 정도였다. 그게 우스워 킥킥거리다가 항상 주의..

길위의단상 2021.02.12

설날 세 장면

# 1 귀성길에 저녁을 먹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된장찌개를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한 가족이 앉았다. 40대 부부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들 둘이었는데 전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명절 전 휴게소 분위기가 대체로 그렇다. 설빔을 차려입고 환한 미소를 띠고 기차에 오르는 TV에 나오는 명절 풍경을 나는 믿지 않는다. 이 가족은 그중에서도 유별나서 눈길이 갔다. 두 아들은 휴대폰만 붙잡고 있고, 부부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딴 데만 쳐다보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자 각자 제 몫을 가져와서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다. 각자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남편한테서는 서운하면서 뭔가 미안해하는 기색도 보였다. 저 나이였을 때 우리 가족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아이들은 억지로 따라나서고, 아내..

길위의단상 2020.01.27

2019 설날

내려가는 길은 심란했다. 지난가을부터 몇 차례 회오리바람이 지나갔다. 고향 가는 길이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적도 없었다. 설 차례를 지내고 올라오는 길은 다소 안심이 되었다. 동생도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했다. 일단은 일단락된 듯 보인다. 정성 들여 차린 설음식을 나는 거의 먹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속병이 다시 심하게 나타났다. 지난가을 이래로 반복되는 증상이다.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직격탄으로 받는 부분이 위와 장이다. 무심한 듯 감추려 해도 위장은 너무 솔직해 탈이다. 좀 둔하면 좋으련만.... "나는 괜찮다. 잘 지낸다." 겉으로는 미소를 짓지만, 부모의 속마음을 자식이 얼마나 헤아릴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게 제일 큰 효가 아니겠는가. 다른 무엇보다도. 설날 아침에 증손자와 장난..

사진속일상 2019.02.06

2016 설날

전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나 시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나 시를 보기 어렵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 세대가 '고향'이 주는 정감을 전처럼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유목민적 삶을 사는 현대인은 삶의 뿌리를 상실했다. 고향의 의미가 변질되었다면 명절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느끼듯 예전의 그 명절이 아니다. 마치 의무방어전을 치르듯 설날이 지나갔다. 그래도 뜸하게 만나는 형제, 친척에게 애틋한 마음이 어찌 없으랴. 그래도 우리 가족에게 올 설은 특별했다. 둘째네가 손주를 데리고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막냇동생도 내려와 14년 만에 삼 형제가 함께 모였다. 조카네까지 오랜만에 집안이 북적였다. 어머니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너무 길었던 기다림이었다.

사진속일상 2016.02.09

2012 설날

아이들이 떠난 올 설은 단촐했다. 어머니를 포함해 넷이서 차례를 지냈다. 설 전날 오전에 일찌감치 차례 준비를 마치고 오후에는 햇빛바라기를 하며 마당에서 강아지와 놀았다. 떡국을 먹다가 아내는 눈물바람을 했다. 귀하게 키워서 남의 집에 주었다고 어머니도 한 소리 거들었다. 공주 대접 받고 있을 텐데 뭘 그러느냐, 했지만 내 마음도 한 쪽이 슬펐다. 광주에 돌아오니 딸과 사위가 세배를 왔다. 고향에서는 자식이 되었다가, 내 집에서는 부모가 된다. 통영에 다녀온 둘째는 싱싱한 해산물을 사 가지고 왔다.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대구가 엄청 컸다. 자식들은 떠나갔고 다시 둘이 남았다. 집은 잠시 적막에 잠긴다. 쓸쓸한 듯, 흐뭇한 듯, 집안에 묘한 기운이 감돈다. 이 또한 삶이 노년에 주는 새로운 맛이고 선물이 ..

사진속일상 2012.01.24

신묘년 설날

세상 살면서 그 무엇보다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다. 인생이 곧 고해요 번뇌라지만 그래도 단 하나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마음의 평화다. 설날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둘째는 이번 설이 함께 하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고향이나 명절이 예전 같지 않음은 고향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변한 것인가. 고향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늘 나를 아프게 한다. 망향이 진할수록 허전함과 상실감도 크다. 그곳을 찾아가지만 그곳에 고향은 없다. 고향을 잃은 나그네는 쓸쓸하고 외롭다. 모든 것이 변해간다. 명절도 마찬가지다. 농촌이더라도 이웃과 함께 하는 명절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온 가족이 다 모여 화기애애 오순도순한 명절도 아니다. 어느 집은 여전히 홀로이고, 어느 집은 차례..

사진속일상 2011.02.04

눈 덮인 죽령 옛길을 걷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사라졌던 죽령 옛길이 열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년전에 들었는데, 이번에 설을 쇠러 고향에 내려간 길에 그 길을 따라 걸어 보았다. 길은 희방사역에서부터 죽령 꼭대기(689 m)까지 소백산의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총 길이는 약 3 km 정도로 한 시간이면 넉넉히 오를 수 있다.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죽령은 영남과 기호지방을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달라왕(阿達羅王) 5 년(158 년) 3 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는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아달라왕 5 년에 죽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갯마루에 죽죽을 게사하는 사당[竹竹祀]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죽령은 개척년대가 사서에 분명히 전하는 유..

사진속일상 2009.01.29

사람이 이리 기리워서 우에 사노

설날이 점점 쓸쓸해진다. 고향을 찾는 형제도 둘 뿐인데, 그나마 아이들이 커버리니 동생네는 두 부부만 참석했다. 그래서 올 설은 넷이서 차례를 지냈다. 더구나 올해는 여동생도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그런 걸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까. 자꾸 술을 찾으신다. 형제들이 우애있게 지내는 것보다 더한 효도는 없는 것 같다. 저녁에 이종사촌네가 북적거리며 찾아왔지만 반갑지가 않다. 사람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노는 것도 피곤하고 헛헛하다. 사람이 야속하기도 하고, 그만큼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사람보다는 먼 산으로 들판으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드디어 고향에 계신 외할머니 연세가 100 세가 되셨다. 출생년도가 1909년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꼭 100 세가 되신다. 백수(百壽)를 한다..

사진속일상 2008.02.08

정해년 설날

정해년(丁亥年)이 밝았다. 이런저런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올해가 몇 백 년만에 찾아온다는 '황금 돼지' 해라고 한다. 그래서 양력 신정 때부터 누런 황금 돼지 열풍이 불기도 했다. 올 설날은 포근한 겨울 여파로 봄날처럼 따스했다. 명절 지내기는 좋지만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데 큰 일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들을 수있었다. 그것이 기우만은 아닌 것이, 이겨울의 안온함이 다가올 여름의 걱정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휴가 사흘밖에 되지 않아 고향에 다녀오는 길을 걱정했지만 예상 외로 쉽게다녀왔다. 아마 이러저리 잘 뚫린 도로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차량 대수가 적었던 옛날의 귀향길 고생에 비하면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마냥 즐거워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사진속일상 2007.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