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펌]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

길위의단상 2024.11.29

[펌] 도구적 영성

'영성'은 기독교와 함께 본격화했다. 예수가 떠난 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는 영적(spiritual) 삶을, 개인의 만족, 안락, 성공을 좇은 육적(fleshly) 삶과 대비했다. 자발적 가난, 사유 재산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새로운 세상의 갈구, 인류에 대한 헌신 등은 그들이 구현한 영적 삶의 모습들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부(마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고, 아예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부를 좇는 일을 죄악시했다기보다, 애초에 길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렇다. 물질적 풍요보다 영적 풍요를 중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의 체제를 외면하지 않고 산다면 부자가 될 방법이 있는가. 1500년 후 예수의 메시지는 도래할 세상(자본주의)에 커다란 걸림돌이 ..

참살이의꿈 2024.01.04

[펌]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몇 달 전 조선일보에 실린 김훈 작가의 글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잘 죽는 법은 지금 잘 사는 도리밖에는 없다. 잘 살았다고 믿더라도 꼭 잘 죽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글 전문을 옮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김훈 망팔(望八)이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

참살이의꿈 2019.10.20

[펌] 청년 전쟁

이오덕 선생의 옛글 여느 구석엔 권정생 선생과 조우한 순간이 적혀 있다. ‘너무나도 훌륭한 젊은 동화작가를 발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결과적으로 권정생은 이오덕보다 몇 해를 더 살았다. 하지만 평생 온몸에 퍼진 결핵과 합병증으로 고생했다. 하루 30분도 앉아 일하기 어려운 날이 많았지만, 한결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누구보다 맑고 강렬하게 사유했다.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언젠가 그의 안동집에서 한담을 나누던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까 뱀이 방에 들어왔어요.” “마당의 잡초를 그냥 두시니까 뱀이란 놈이 방 안과 밖을 구분 못한 모양이군요. 그런데 독사면 어쩌시려고요.” “독사는 방에 안 들어와요.” “그런가요.” 다녀와 그쪽 전문가에게 물었더..

참살이의꿈 2015.08.14

[펌] 공광규 시인의 시 창작 이야기

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화예술입니다. 공자는 역대의 시를 모은 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중국의 옛 사람 원매는 시를 읽으면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 겁니까?” 그러나 이런 질문에 꼭 맞는 대답은 없습니다. 시는 뭐다! 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시를 쓰는 특별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 시인이 시를 써오며 공감하고 동의해온 몇 가지 공통점과 시인 개인이 오랫동안 시를 써오면서 굳어진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작업방식: 괴테는 64년간 ‘파우스트’에 매달림/ 발자크는 매일 밤 수도사 옷을 입고 촛불을 켜놓고 여섯 시간 이상 작업을 시작해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

길위의단상 2014.08.11

[펌] 도올의 교육입국론

혁신 교육감 시대를 위한 도올의 교육입국론 1. 총론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 진리 탐구를 위해 눈물겨운 여정을 감행하였던 신라의 구법승들이 유학 장도에서 읊었던 장쾌한 절구의 한 소절! 어찌 만 리의 파랑이 서해바다의 파랑일 뿐이리오? 그것은 기구한 우리 인생의 파랑이요, 기나긴 반만년 역사의 격랑이요,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억압과 자유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풍랑이리라! 공자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공자는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의 인간됨의 특징을 “..

길위의단상 2014.06.27

[펌] 아이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

친일과 반공의 역사를 미화한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들이 격렬한 반대 여론에 결국 채택을 철회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걸까. 왜 우리는 ‘친일’과 ‘반공’의 역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일본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 ‘공산주의를 반대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려는 걸까. 우리가 친일과 반공의 역사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그게 실은 민족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그리고 남한에서 소수의 지배세력이 대다수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 어떤 방식으로도 소수의 지배세력이 대다수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은 잘못이며, 그런 역사에 굴종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우리가 ..

길위의단상 2014.01.15

[펌] 전원생활 선배의 충고

첫째, 전원주택을투기의 대상으로 삼지마라! 전원생활이란?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윤기를 나게 하는 생활,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여유를 가져다주는 생활, 나와 나의 가족을 건강하게 만드는 생활. 곧 요즘 유행하고 있는 웰빙이다. 웰빙이란 ? 건강하고, 안락하고, 만족한 인생을 살자는 의미란다. 행복, 안녕, 복지 등의 삶의 질을 강조하는 용어로서, 물질적 가치나 명예를 얻기 위해 달려가는 삶보다는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삶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것이다. 이 용어는 어쩌면 전원생활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용어다. 그래서 나와 나의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또 유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커다란 행복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생활을..

참살이의꿈 2012.03.12

[펌] 당신들의 하나님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등 한국의 보수대형교회 목사들을 내세운 우파 성향의 기독교 정당 결성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반공·친미를 표방하고 있으며, 기독교 정당 결성을 위한 준비단계로 포럼을 주도한 청교도영성훈련원장 전광훈 목사의 발언을 보면 그 단체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종북좌파들과 반기독교 세력들에 의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조용기 목사와 김홍도 목사 등 원로들이 기독교를 표방해 정당을 준비하려는 이들에 대해 사전 정지작업을 해주면 내가 나서기로 했다." 교회국민운동본부가 배포한 포럼 홍보물에는 '종북좌파들의 국가 부정과 적화 통일, 수쿠크법과 이슬람의 비정상적 포교, 북한의 인권문제, 동..

길위의단상 2011.08.29

[펌] 이런 마을을 꿈꾼다

이런 마을을 꿈꾼다. 뒷산은 그렇게 높진 않지만 위엄이 있고, 개울이 흘러 저 멀리 강이 보이는, 서남향이라 햇볕이 오래 오래 머무는, 감나무에는 홍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온갖 새의 먹잇감이 되어주는 그런 마을. 사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여울목에는 구름 한 자락 떠 있는, 동네 가운데쯤 디딜방아가 다소곳한, 키 큰 시누대가 휘파람을 부는 그런 동네를 그려본다. 처마 낮은 집집마다, 그 주인 닮은 개들이 꼬리만 흔들 뿐, 짖지 않는 동네, 견성한 개들이 탁발 나온 스님들과 막걸리 잔을 돌리는 주막이 있는 동구 밖, 두 사람 이상만 모여도 서로의 눈망울 속에서 산새 소리, 바람 소리, 개울물 소리를 읽을 수 있는 동네. 따스한 햇볕을 닮아, 뜨내기가 마당에 어슬렁대도 누구 하나 큰소리치지 않는 수더분한..

참살이의꿈 2011.02.16

[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식품공학 코끼리를 도축한다. 도축한 코끼리를 통조림으로 만든 뒤 냉장고 안에 넣는다. 기계공학 큰 냉장고를 만들어 코끼리를 넣는다. 유전공학 암 수 코끼리를 하나씩 구하여 짝짓기를 시킨다. 그때 수정란을 추출하여 냉장고에 넣는다. 전자공학 ‘코끼리’를 low pass filter에 통과시킨다. 그러면 ‘고기리’가 나온다. ‘고기리’에 circular right shift 연산을 한다. 그러면 ‘리고기’가 된다. ‘리고기’와 ‘오XXX’를 logical or 게이트에 통과시킨다. 그러면 ‘오리고기’가 된다. 이제 오리고기를 냉장고에 넣는다. 마이크로공학 냉장고 안으로 삽입할 코끼리의 모든 정보를 작성하여 마이크로 칩으로 전송한다. 코끼리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마이크로 칩을 냉장고 안으로 집어넣는다. 컴퓨..

길위의단상 2010.09.16

[펌] 이제 됐어?

교육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정현 신부님이 그랬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중고생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가 갈수록 어렵더라고요. 걔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못 알아듣겠고 걔들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즘 아이들 어릴 때부터 생활하는 걸 보면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농부들은 농사는 정직한 거라고 말한다. 땀 흘려 수고한 만큼 결실을 얻는다는 뜻이다. 시기에 맞추어 꼭 해야 할 일들 가운데 하나라도 빠뜨리면 어김없이 농사를 망치게 된다. 교육이란 게 농사와 같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에, 열 살 무렵에, 열다섯 무렵에 꼭 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걸 하나라도 못하고 넘어가면 그 상흔은 일..

길위의단상 2010.07.08

[펌] 오늘이 인생이다

고등학교 시절, 수업만 들어오면 “내가 선생질이나 하며 썩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따위 한탄이나 늘어놓는 교사가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가장 학벌이 좋은 교사였지만 동시에 학생들에게서 가장 경멸받는 교사였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계집애 만나러 다니고 고고장 가고 하는 건 대학 가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지금 못해서 안달하는 새끼들이 있단 말이지.” 사람 같아야 상대를 하지, 다들 그가 무슨 소리를 하든 잠자코 있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한 녀석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때 하는 거하고 지금 하는 거하고 같습니까?” 수업은 중단되고 녀석은 교무실로 끌려가 종일 곤욕을 치러야 했지만 녀석의 말은 내게 남았다. 한국 부모들은 대개 아이의 인생을 준비기와 본격기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

길위의단상 2010.05.07

[펌] 우리에게 영혼이 남아 있는 걸까

은 놀이운동가 편해문씨가 인도와 네팔을 오가며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담은 사진집이다. 지난해에 이 책을 내고 나서 몇몇 사람의 항의 메일을 받았다. 책엔 그저 무표정하게 가만있는 아이들 사진이 꽤 들어 있는데 이게 무슨 놀이 사진이냐는 거였다. 그러나 내가 그런 사진들을 포함하여 책을 발간한 이유는 그 또한, 아니 우리 현실에선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놀이 사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놀이동산이니 놀이캠프니, 놀이도 상품화하다 보니 적어도 눈과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 정도는 지어야 노는 아이들이구나 싶다. 그러나 빠르고 센 놀이가 있듯 느리고 부드러운 놀이도 있다. 혼자, 혹은 동무와 함께 가만히 앉아 별다른 목적도 내용도 없이 느리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

길위의단상 2010.03.17

[펌] 독일에서 진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나

‘진보는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 보수는 뭐, 고장 난 것 고치는 사람인가?’ 정도였지요. 한국에 살던 서른네 살까지의 나였습니다. 처절한 입시의 지옥을 통과하여 대학이라는 곳을, 그것도 데모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미니스커트 위로 빨간 입술에 은빛 귀걸이 찰랑이며 노트 하나 살짝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여학생이 허름한 잠바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독재타도’를 외치던 전투적인 그녀들보다는 좋았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사사건건 사회의 비리를 들추며 이 사회를 쓰레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불편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냐? 저 사람은 열등감이 많아서 그런가?’라며 나름대로 체제에 순응하며 양처럼 순하게 살았..

길위의단상 2009.10.31

[펌] MB씨는 진정하다

MB씨는 진정하다 "나는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는데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나를 만나고 나가면 마치 무슨 지시를 받는 것처럼 비쳐지고 해 아쉽다." 우리의 MB씨께서 한나라당과의 불화와 불통에 관해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말과 사건을 날마다 접하게 된 지가 17개월째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이번에는 두드러지게 어처구니가 없다. 왜 그런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는데, 맡은 칼럼의 난을 채우기 위해 적어본다. MB씨는 진정하다. 미국 소고기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사탄의 장난이라고 보면서 지금까지 진정으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신영철 씨는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을 때 대통령의 그런 진성성을 바로 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재판에 개입할 생각을 했겠는가? MB씨는 진정하다. 재개발을 통해 ..

길위의단상 2009.07.13

[펌] 노무현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난 그 흔한 노빠도 아니고 좌빨도 아니다. 그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전쟁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30대 청춘이다. 김영삼보다 김대중이 좀 더 똑똑해 보여 찍었고 수구꼴통이란 닉네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나라당이 싫어서 김대중을 찍었고 이회창보다는 노무현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좀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해서 그에게 표를 줬을 뿐이다. 저번 대선에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애초부터 도덕성이 결여된 수준 이하의 후보에게 차마 표를 줄 수 없어 어쩔수 없이 정동영을 찍었던 그런 힘없는 백성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고 있노라면 막장드라마도 울고 갈 굵직굵직한 미니시리즈들이 씌여지고 있는 듯하다. 본시 막장드라마일수록 결과는 뻔한데 하루하루 놓치기 아까운 ..

길위의단상 2009.05.03

[펌] 한겨레 칼럼 셋

목표는 ‘생존’이다 / 김별아 얼마 전, 죽을 뻔했다. 말 그대로 유명을 달리해 황천으로 갈 뻔했다. 이러구러 지극히 평범한 오후였다. 동네에 볼일이 있어 실내복에 점퍼만 달랑 걸친 채로 털레털레 집을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막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빠르게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차,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어느새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옷깃을 스쳐 발밑에 뒹굴고 있었다. 쪼개진 나머지 반 토막은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의 보닛을 움푹 찌그러뜨렸고, 주위에서 “누구야? 사람이 죽을 뻔했잖아!” 하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베란다에서 얼음덩이를 던진 누군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왜, 어쩌다가 살상의 무기가 될 수도 있..

길위의단상 2009.02.11

[펌]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여러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진보란 행복해지는 것이라 대답하겠습니다. 그런데 극소수의 지배 계급과 대다수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회가 행복해진다는 것은 대다수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행복을 가지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을 통해서 주어지겠죠. 사회구조가 확 바뀌어야 하니까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얘기하려면 아주 기니까 그 중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

길위의단상 2008.09.11

[펌] 우리 안의 대운하

이명박 씨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은 광우병 소 문제가 불거지기 훨씬 전부터,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미 그를 ‘명바기’라 부르며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고 희화화했다. 아이들 몇을 붙들고 왜 그리 이명박이 싫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들의 표현은 다양했지만 ‘논리 이전의 혐오’라는 점에선 일치했다. 나는 아이들이 그들의 앞 세대는 가지지 못한 어떤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지금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은 93년생인데, 93년은 이른바 문민정부가 출발한 해다. 아이들은 민주화 이후에 나고 자란 첫 세대인 것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가 이른바 386들이다. 그들은 아이들과는 정반대의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군..

길위의단상 2008.06.09

[펌] 자본주의와 기독교

중세 교회는 봉건 지배체제의 일부였습니다. 교회는 엄청난 땅을 소유했고 평민들에게서 세금을 걷고 사법권의 상당 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느님이 준 권력인 국왕과 하느님의 대리인인 교회에 복종해야 한다” “현실은 죄로 물든 고통스러운 것이며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이지만, 이 설교에 따르면 모든 현실적 욕망(부도덕한 탐욕뿐 아니라 인간 해방의 욕망 같은 정당한 것까지 포함한)은 사악하고 부질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봉건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였습니다.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전체 인구의 95%가 넘는 사람들이 그런 신앙의 사슬에 묶여 수입의 8할 이상을 귀족과 교회에 바치며 평생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말입..

길위의단상 2007.11.13

[펌] 아버지 하느님 엄마 하느님

청년들은 겸연쩍게 제 고민을 털어놓는다. 교회가 잘못된 게 참 많은데 비판을 하자니 목회자나 교회에 순종하지 않는 게 신앙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대답한다. “다니는 곳이 교회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해보세요. 십자가 단 건물에 강대상 놓고 예배 본다고 교회는 아니니까요. 만일 교회가 아니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어요.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쓰게 웃으며 한 말 기억하지요?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마태 24) 바로 우리에게 한 말입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대개 ‘윤리적 타락’이라는 면에서 해석되곤 한다. 교회가 개혁되면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교회개혁 운동의 열정을 진심..

길위의단상 2007.10.07

[펌] 내가 본 한국 기독교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가톨릭만이 아니다. 개신교는 우리 민족의 선각자들에 의해 선택된 종교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개신교)의 역사를 아펜젤러나 언더우드와 같은 선교사들이 들어온 시점을 기준으로 볼 수는 없다. 기독교 경전인 성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유통되고, 읽혀왔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신라 시대 때 당나라에 온 경교가 유입됐다는 설까지 올라간다. 또 임진왜란 때는 가톨릭부대였던 소서행장 부대에 의해 가톨릭과 접촉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가톨릭이 전래된 시점은 1784년이다. 1783년 이승훈의 아버지 이동욱이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중국에 가게 되었을 때 이승훈으로 하여금 동행하게 했다. 그 때 이승훈은 당시 천주교 연구의 지도자격인 이벽으로부터 베이징의 신부를 만나 가톨릭의 내용을 배워오라..

길위의단상 2007.07.20

[펌] 떠남

“그리고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를 지나가다가 보니, 시몬과 시몬의 형제 안드레아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부들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내 뒤를 따르시오. 당신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즉시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그를 따랐다.” 성서에서 예수가 첫 제자를 구하는 장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장면이 예수의 신비능력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도 하지만 예수와 두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라고 적혀있진 않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앞의 여러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세례요한이 체포되고 예수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시몬(베드로)과 안드레아 형제는 예수가 고심 끝에 고른 첫 동지들이다. 갈릴리의 수많은 청년들 가운데 유력한 메시아 감으로 지목되던 예수..

참살이의꿈 2007.07.10

[펌] 내 하느님이 계시는 곳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나 성당에 간다. 성당에 가면 제대 위에 커다란 십자고상이 있고 벽에는 다양한 성화나 14처를 걸어 둔다. 그리고 안벽 감실에는 성체가 모셔져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평일에도 성당에 가면 저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미사가 거행되면 그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다. 참례자 모두 지난 주간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은총 속에 새롭게 거듭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매일의 삶을 지배하는 ‘아집과 탐욕’에 사로잡혀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낸다. 교회는 이를 일러 ‘악’이라고 부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일주일 가운데 6일을 악의 지배 아래 있다가 겨우 하루 성당에 나가 자신의 게으름과 나약함을 탓하며 다시는 그..

참살이의꿈 2007.04.22

[펌] 교사도 우울하다

25년 전 내가 첫 발령을 받을 때만 해도 동기 남학생들은 교직을 탐탁해 하지 않아 되도록 다른 데로 진출하려 했다. 그만큼 교직은 보수도 싸고 사회적 지위도 낮은 천직(賤職)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격 앞에서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경제상황이 위태로워지고 고용불안이 일반화되면서, 교직은 안정적이고 보수도 괜찮은 직업으로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더니 급기야 ‘철밥통’이라는 아주 조소어린 명예(?)까지 얻기에 이르렀다. 예전에 산업분류에 관한 수업을 하면서 교사를 서비스산업 종사자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참 당혹스러운 때가 있었다(지금은 정말 말 그대로 되고 말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말이 그렇듯이,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경제적 시각으로 표현하는 자본주의적 발상의 천박함을 ..

길위의단상 2007.03.22

[펌] 행복은 이미 충분하다

어떤 한 경계에서 가슴 시린 쓰라린 아픔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성공만을 바라고 바라는 대로 잘 되어지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겠지만, 사실 늘상 성공만 하고 바라는 바대로 이루기만 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내면의 뜰은 공허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실패 속에서 또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그 속에서 더 강인해 질 수 있을 것이고, 바라는 바가 좌절되어지는 그 속에서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지혜로움이 생겨나며, 세상을 얕보지 않을 수 있고 좀 더 겸손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가를 가르치는 분이라거나 몸 다스리는 법에 대해 강의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 분들 비슷한 공통점이 어렸을 때 죽고 싶을 만큼 몸이 너무 ..

길위의단상 2006.09.26

[펌] 우리들의 아파트

요즘 도심의 초고층 유리건물은 오피스 빌딩이 아닌 아파트로 넘어간 지 꽤 오래되었다. 공실률(空室率)이 늘어나면서 오피스 빌딩 공사는 침체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기업 활동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반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이 200조니 300조니 하다 보니 이들의 주머니를 노린 새로운 건물 유형이 등장하게 되었다. 초고층 아파트이다. 형식은 오피스텔이다 주상복합이다 해서 구실을 갖추었지만 실상은 아파트 투기를 대규모화해서 판돈을 키운 것뿐이다. 오피스텔처럼 오피스 기능을 함께 집어넣든지 주상복합처럼 저층부를 상업시설로 하면 주거전용 제한을 안 받기 때문에 아파트 건물을 높이, 심지어 60층까지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안 고치고도, 뇌물을 먹이지 않고서도 합법적으로 60층짜리 아파트를 지..

길위의단상 2006.03.03

[펌] 세 이야기

구속 수사 이후 (도종환) 그 해 유월, 여름 햇살처럼 여론도 따갑게 끓어오르던 날 나는 교무실에서 성적표를 쓰고 있다가 다섯 명의 건장한 경찰들에 의해 끌려가 구속되었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마룻장 날바닥에 앉아 밥을 먹었고, 변이 직접 내려다보이는 변기통 위에 앉아 하루 세 번 식기를 닦았으며, 사회적 이름을 빼앗긴 채 가슴에는 수인번호 376번이 달려 있었다. 검찰에 불려갈 때마다 거미줄에 날개를 묶인 곤충처럼 포승줄로 결박당하였다. 검찰 조사를 받는 시간보다 조사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하루 종일 결박당해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반말로 이름을 부르고 내 시집 제목을 거론하며 비웃어대고 내가 무슨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특정집단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몰아부칠 때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길위의단상 2005.10.20

[펌] 거미의 일기장

내가 사는 곳은 여섯 평가량 되는 방이다. 이곳에는 20여 마리의 거미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으며, 개미들의 나라가 3개국이 있다. 남쪽 모서리에 있는 개미 제국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이며, 북쪽 부엌 쪽으로 통하는 벽면에 있는 개미 제국은 최근에 건국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6개월가량 살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거미들과는 왕래를 하지 않는다. 발로 바닥을 딛고 다니는 우리와 달리 공중을 날아다니는 생명체들도 여럿이다. 여름에는 모기와 나방들이 수도 없이 날아 들어왔고, 요즘엔 파리들이 주로 날아다닌다. 우리는 서로 먹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덫을 놓기도 하지만, 먹지 않을 것을 죽이지는 않는다.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방문이 열리고, 암컷 사람 한 마리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나를 비롯한 우리 거미들..

참살이의꿈 2005.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