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50

괴물 부모의 탄생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는 소풍이나 체험 학습을 꺼려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작은 사고만 나도 고소를 당하고, 심지어는 자기 아이에게 독방을 달라고 요구하는 극성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작년에는 학부모의 항의와 민원으로 고통을 받던 교사가 자살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문제가 되었다. 지나치게 제 자식만 챙기면서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를 일본에서는 '괴물 부모'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은 우리보다 먼저 이런 병증을 겪고 있는 일본과 홍콩 사례를 중심으로 괴물 부모가 생겨난 원인과 내재한 심리,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담임이 말하는 괴물 부모의 악행을 보면 기가 차는 사례가 많다. 소풍을 갔다왔는데 제 딸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다시 소풍을 가라고 요구한다든지, 담임의 액세서리나 아이폰을 본 아..

읽고본느낌 2024.04.19

괴물

열흘 전에 개봉한 따끈따끈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따스한 인간애를 다루지만 대체적으로 밍밍한데, 이 영화는 관객을 살짝 긴장시키면서 우리 사회 및 인간의 내면을 잘 담아낸 수작이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중 최고라고 할 만하다. '괴물'은 학교 폭력을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학교 폭력이나 인간 심성의 사악함을 고발하는 영화는 아니다. 같은 사안이더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진실과 허위, 선과 악을 칼로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영화는 3막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어머니인 사오리, 교사인 호리, 사건의 중심에 있는 두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실이 교차한다. 영화의 중심은 미나토와 요리, 두 아이가 ..

읽고본느낌 2023.12.10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냐고

B 고등학교에 있을 때였다. 교실 붕괴 등의 용어가 등장하며 현장이 시끄러울 때였다. 학생들 통제가 안 되고 수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대놓고 교사에게 달려드는 아이도 나타났다.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자발적인 교사회의가 열렸다. 현실을 폭로하는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들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뾰족한 답이 나올 수 없었다. 두어 시간의 난상토론이 끝나고 고작 내린 결론이 교사끼리의 정보 공유나 벌점제 등 사소한 것이었다. 다들 교사들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회의가 끝나고 흩어지며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냐고!" 20년 전 일이었다. 며칠 전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경력 2년차..

길위의단상 2023.07.23

위기의 한국 교육

일전에 지인으로부터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인의 딸이 초등학교 교사여서 학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모양이다. 교실 붕괴라는 말은 내가 현장에 있을 때부터 쓰였지만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차마 교육이란 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우선 아이들이 통제가 안 된다. 수업 중에 제멋대로 돌아다녀도 제어할 수단이 없다. 요사이는 벌을 준다고 교실 뒤나 복도에 세워놓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항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아이의 다리를 아프게 하고 학습권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해도 수긍하지 않을뿐더러 심하면 아동 학대로 고소당하기도 한다. 내 아이만 귀한 줄 아는 학부모의 행태는 보도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단체여행을 가는 아이 뒤를 따라와 제 아이의 잠..

길위의단상 2023.06.20

가슴에 박힌 가시들

학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인 모양이다. 드라마가 일부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소환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복수극에 통쾌해하는 것 같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60년대는 학교 폭력이나 왕따가 거의 없었다. 힘깨나 쓰는 치들은 저희들끼리 놀았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학폭이나 왕따라는 못된 문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학폭과 함께 교폭(교사 폭력)에 대한 비난 글도 많이 올라온다. 그 시절에 교사한테서 억울한 체벌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중에는 교사 실명을 공개하며 적의를 드러내는 글도 있다. 지금 기준으로 하면 당시의 교사들은 상당수가 처벌 대상이 되고 감옥에 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매가 아닌 교사의 감정을 못 이긴 채 어린..

참살이의꿈 2023.03.21

어제 꾼 꿈

어젯밤에는 평상시와 다른 꿈을 꿨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핵전쟁을 위협해서인지 꿈에 핵전쟁이 벌어지고 세상의 종말이 오는 광경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과 통신이 끊어지고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파트에 갇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는 전략폭격기들이 거대한 몸집을 끌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근방에서는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공기가 몰려온다는 소문에 창문을 꼭 닫는 방법 외에는 대처할 수가 없었다. 공포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다가 꿈이 끝났다. 이어서 꾼 꿈은 앞의 것과 반대였다. 화창한 봄날 온갖 꽃이 만발한 어느 전원 가운데였다. 탐조를 온 외국인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필드스코프를 건네며 산 꼭대기에 있는 새들을 보라고 했다. 둥..

길위의단상 2022.05.05

한 장의 사진(30)

3월은 새 학년이 시작하는 때다. 학생이나 선생 모두 새로운 만남 앞에서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시기다. 학년이 바뀌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본다. 선생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 생활을 하면서 일 년 중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가 나에게는 3월이었다. 아이들은 봄 방학을 마치고 3월에 개학을 하면 새 반이 편성되고 담임을 배정받는다. 아이들에게는 누가 담임이 될지 제일 관심사일 것이다. 지금 손주를 봐도 어떤 선생님이 담임이 되면 좋겠다고 재잘대는 걸 본다. 요사이는 어떤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3월 첫날 전체 조회가 열린 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이 담임을 발표했다. 이 사진은 40여 년 전인 1979년 - 아니면 1980년일지도 - Y여중에 근무할 때 운동장에 전체 학생이 모인 가운..

길위의단상 2022.03.06

한 장의 사진(27)

40년 전쯤 여름방학 때 반 아이들을 데리고 도담삼봉으로 캠핑을 갔을 때의 사진이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 시절로 학교에도 교복 자율화 등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군사 정권은 교과목 외에 학생들의 야외 활동을 장려했다. 그때 내가 근무했던 중학교의 G 교장 선생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분은 내가 만난 교장 중 가장 특이하고 개성이 있었다. 고시 출신으로 문교부에서 행정 관료로 지내다가 중학교 교장으로 발령받았는데, 상관과 의견 충돌로 좌천되어 내려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만큼 고집 세고 자기 소신이 강했다. 학교 점검차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하는 일이 있다. 학교에서는 대청소를 하며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게 보통이다. 수업 참관도 하기 때문에 학생이나 교사나 귀찮고 긴장이 된다. 맨손 수업..

길위의단상 2021.07.21

청소를 끝마치고 / 강소천

책상 걸상을 죽 뒤로 밀어 놓고 먼지털이로 구석구석 먼지를 떨고 비로 박박 마루를 쓸고 물로 좍좍 걸레질을 하고 책상 걸상을 제자리에 나란히 해 놓고 맑은 물을 길어다가 교탁과 교단을 다시 닦는다. 비뚜러 놓인 교탁을 바로 잡다가 나는 문득 선생님이 되어 보고 싶었다. "강웅구, 수고했소. 오늘 청소는 만점이요. 인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언제 와 계셨는지 교실 문 앞에 담임 선생님이 서 계셨다. 나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다가 "선생님 청소를 다 했습니다." 선생님도 빙그레 웃으시며 "강웅구, 수고했소. 오늘 청소는 만점이요. 인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그리고 선생님은 교사실로 가신다. 복도를 쓸던 동무들과 유리를 닦던 동무들이 한꺼번에 "와아" 하고 웃어 버렸다. 교사실로 가시던 선생님도 뒤돌..

시읽는기쁨 2021.05.27

50년 전

* SNS의 고등학교 동창방에 대학 원서 쓰던 때의 얘기가 여럿 올라오고 있다. 나도 거기에 한 마디를 보탠다. 대학 원서 마감 사흘 전에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지원 대학을 결정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둘 사이에서 고민했다. 하나는 서강대 공대였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 사대였다. 당시에 이과생들에게 제일 인기 있던 학과는 공대 전자공학과였다. 나는 서울대 공대 갈 실력은 안 되고 차선책으로 서강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 실력으로 서강대 공대 전자공학과는 넉넉히 들어갈 수 있었다. 반면에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생일 때부터 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생활기록부의 학부모 희망사항란에는 초, 중, 고 모두 초지일관 '교사'라고 적혀 있다. 나 역시 교직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니었다. ..

길위의단상 2021.05.08

시인의 사랑

어제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틀째 이어진다. 미열도 있다. 그저께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 서울에 다녀온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소주 한 병이 좀 과했던 게 아닌가도 여겨진다. 때가 때인지라 혹 코로나가 아닌가 은근슬쩍 걱정도 된다. 침대에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슈만의 연가곡인 '시인의 사랑'이 흘러나온다. 문득 50여 년 전의 고등학생 시절로 되돌아간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은 성악가였는데 특이한 면이 있었다. 외모는 레슬러처럼 우락부락했고, 성격이 시원시원하면서도 괴팍한 면이 있었다. 좋게 보면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했다. 목소리가 엄청 컸는데 한 번 화를 내면 천둥 백 개가 몰아치는 듯 했다. 이 음악 선생님이 음반을 냈는데 타이틀이 바로 '시인의 사랑'이었다. 슈만은 어렵게 클..

길위의단상 2021.04.19

3월 2일

등교하는 아이들을 오랜만에 본다. 오늘이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마스크를 쓴 채 느릿느릿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에는 주로 재가 학습을 했으니 교실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일이 낯설지 모른다. 3월 2일이 스트레스인 건 교사였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설레임보다 또 어떻게 일 년을 티격태격하며 보낼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부담이었다. 나의 3월 2일은 늘 그렇게 납덩이처럼 무거운 심정으로 시작했다. "그래, 다섯 달만 버티면 방학이야."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30년 넘게 교직에 있었지만 내 체질에는 맞지 않았다. 가르치는 일이 늘 사람과 접촉해야 해서 나 같이 사람과 부딪치는 게 서툰 입장에서는 가혹한 직업..

길위의단상 2021.03.02

한 장의 사진(26)

학교에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남은 술과 안주를 미리 숙직실에 챙겨 두었다. 내가 숙직하는 날이었고, 술꾼들은 자연스레 숙직실로 모였다. 그때는 남교사가 돌아가며 학교를 지키는 숙직을 했다. 여교사가 많은 학교에서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씩 차례가 돌아왔다.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야간 순찰은 학교에서 고용한 아저씨가 돌기 때문에 전화나 받고 자리만 지키는 정도였다. 결혼한 사람은 불편하게 여겼지만, 총각은 오히려 숙직을 좋아했다. 집에 갔다 왔다 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자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숙직을 하면 술판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했다. 밖에서 한잔 걸치고는 술을 사 가지고 숙직실로 쳐들어가기도 했다. 취해서 흥이 나면 교무실에 들어가 앰프함을 열고 회의할 때 사용하는 마이크로 노래자랑도 했다. 원조..

길위의단상 2020.11.10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 것

교육 현장에 있을 때 자괴감이 컸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임을 안 맡거나 보충수업을 거부하는 등 나는 고작 소극적 저항만 할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아이들을 신나게 가르쳐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제도권 교육에 실망한 일부 학부모는 대안학교를 택하기도 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눈을 감고 실상을 외면한다.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현실을 수용하고 체념한다. 잘못된 길이란 걸 알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사실은 비극이다. 세계에는 우리와 다른 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많다. 유럽의 교육 제도, 그중에서도 독일의 교육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률 1위의 지옥 나라가 ..

길위의단상 2020.10.28

해 뜨는 집

고등학교에 다닐 때 토요일 4교시는 HR이었다. HR은 'Home Room'의 약자로 글자 뜻과는 상관없이 학급 회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면서 회의 절차는 따랐으나 거의 형식적이었다. 회의 내용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아이가 없었다. 발언도 거의 농담 따먹기 식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회의를 시작하는 것만 보다가 교무실로 내려가셨다. 그러면 반장은 적당히 회의를 마무리하고 칠판에 'Home Room' 대신 큼지막하게 'Happy Recreation'이라 바꿔 적곤 했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2학년 때 반장이었던 Y는 오락부장을 겸했는데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자는 주의였으므로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었다. 'Home Room'에서 'Happy Recreation'으로..

길위의단상 2020.06.23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제목에 끌려서 읽은 책이다. 교직에 있었을 때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교실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 수업 시작 종소리가 저승사자의 호출 소리로 들릴 때가 많았다. 만족한 수업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수업 붕괴나 학교 폭력은 이제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학교가 교육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현장의 최일선에 서 있는 사람이 교사다. 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실태를 실사례 중심으로 고발하고 있다. 내가 교직을 힘들어했던 이유는 학교에서 교육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입시 시스템의 한 부속품일 뿐이었다. 선생으로서 열심히 한다는 게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 건지 뻔히 보였다. 바쁘게 일하고 열심히 노력할수록 역설적으로 반교육적인 행태로 연결되었다..

읽고본느낌 2017.12.08

석유장수 / 심호택

6학년 때 추운 밤 과외공부 하는데 교실 뒤켠에서 무슨 소리 들립니다. 석유장수 기름 따르는 소리 비슷합니다.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하시며 누구여? 변소 가기 겁난 친구 일 보자고 대둣병에 집어넣은 것이 그만 통통해져 빠지지를 않습니다. 큰일입니다. 다가오신 선생님께 엉거주춤 알밤 두어 대 얻어터지니 그제서야 비로소 빠졌습니다. - 석유장수 / 심호택 빙그레 미소 짓다가 이내 옛날 추억 속에 잠긴다.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그때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봐야 했다. 입시 경쟁이 지금보다 더했다. 중학교가 둘밖에 없던 작은 읍에도 학교가 성적으로 나누어졌다. 공부 잘 하는 아이가 가는 A 중학교, 그리고 미달이 되기도 하는 B 중학교가 있었다. 똥통이라 불린 B 중학교는 장학금이 있어서 공부는 ..

시읽는기쁨 2017.08.31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

이상석 선생님의 교단일기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으면 자책이 많이 된다. 선생으로서의 내 행적이 너무 후회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차이는 사랑과 열정의 부족이다. 30년 넘게 선생 시늉을 하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껴안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좋은 선생의 조건은 아이들과의 소통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을 전하는 건 그 뒤의 일이다. 선생과 학생 사이에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교단에 설 때 아이들과의 사이에 늘 벽을 느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벽이었다. 그 벽을 깨뜨리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항력이었고 경력이 쌓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교육의 '교'자도 모른 채 선생 흉내를 낸 건 아닌가 싶다. 교사가 되자면 우선 ..

읽고본느낌 2016.08.17

낯선 모교

고향에 내려간 길에 모교에 들렀다. 헤아려보니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느덧 52년이 흘렀다. 가늠하기 힘든 까마득한 세월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로 어제 일 같기도 하다. 나이 들고 옛 자리를 찾아보는 일은 어디든 착잡하기만 하다. 옛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나무로 된 검은색 옛 교사는 진즉에 사라졌다. 운동장 귀퉁이에 서 있던 큰 느티나무도 운동장이 확장되며 오래전에 베어졌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현재와 연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교인데 너무 낯설다. 대신 학교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모던해졌다. 시설 투자가 많이 되는 것 같다. 작년에는 강당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전체 학생수는 66명이다. 한 학년에 겨우 한 학급씩 유지되고 있다. 그것도 면내에 있었던 세 학교가..

사진속일상 2016.07.15

잠실동 사람들

서울 강남 엄마들의 극성스런 교육열을 다룬 정아은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재건축된 잠실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상류층 주부들의 욕망을 펼쳐 보인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초등학생 학부모로 오직 일류 대학을 목표로 아이들을 닦달한다.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아이들은 소모품일 뿐이다. 자아 반성이 없는 엄마의 탐욕 아래 아이들은 병들어간다. 부유한 잠실동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도 등장한다. 몸을 팔며 학비를 벌어야 하는 대학생 서영, 가짜 경력을 내세워 과외 교사를 하는 김승필, 학습지 교사나 가사 도우미들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소설에는 악한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각자의 생활 양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일상이 문제다..

읽고본느낌 2015.06.11

한 장의 사진(19)

1974년에 초등학교에서 한 주, 고등학교에서 세 주동안 교생 실습을 했다. 우리는 다른 대학과 달리 초등학교 실습도 나간 게 특이했다. 실제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초등학교 아이들과 같이 지낸 것이었다. 고작 엿새만 있었는데도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굳이 초등학교 경험을 시킨 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무엇인지 느껴보라는 의미 같았다. 사대생 전부가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부속학교로만 실습을 나갔으니 한 학급에 열대여섯 명씩 배정되었다. 그러니 교생 실습이라기보다는 교육 현장 참관이라는 말이 옳았다. 실제 수업도 몇 번 하지 않았다. 담임을 대신하는 조종례도 돌아가며 하다 보니 고작 한두 번이었다. 얼렁뚱땅 보내도 아무 지장 없었다. 솔직히 교생 실습이라기보다는 놀러 다닌 기분이었다. 실습을 하..

길위의단상 2014.10.16

동물의 왕국

옆자리 동료는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아이들을 짐승에 비유하는 말을 자주 했다. 수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런 우스갯소리로 푼 것이다. 동료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기에 아무도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병상련으로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말도 너무 자주 들으면 식상하는 법인데, 한번은 이렇게 대꾸해 준 적이 있었다. "세상이 동물로 우글거리니 아이들도 동물이 되는 거야." 아이들의 심성이 고약해져가는 걸 아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세상이 썩었는데 아이들이 순수하기를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교육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정의 건강이 특히 중요하다. 가정이 병들면 아이의 마음도 병들게 된다. 교사라면 문제 학생 뒤에 문제 가정이 있다..

참살이의꿈 2014.08.24

깨알 같은 잘못 / 이창숙

졸업이구나, 너희들과 헤어지게 되어 아쉽다. 선생님, 그동안 우리들이 속 썩여서 미안해요. 너희들이 속은 무슨 속을 썩여. 그냥 말 좀 안 듣고, 숙제 안 해 오고, 귀청 떨어지게 떠들고, 쌈박질 좀 하고, 수업 시간에 뛰쳐나가고, 음, 와장창 유리창 깨고, 다른 선생님한테 걸려서 귀 잡혀 들어오고, 꼬박꼬박 대들고, 봄날 병아리들처럼 비실비실 졸고, 욕 좀 하고, 몰래 침 뱉고, 무릎 까져서 피 질질 흘리고, 음음, 높은 곳에서 떨어져 간 떨어지게 하고, 입 아프게 설명해도 단체로 멍 때리고, 저번에는 참, 다섯 분이 한꺼번에 땡땡이도 치셨지? 아무튼, 그런 일들밖에 없었는걸 뭐. 그러네요. 헤헤헤헤 히히히히 - 깨알 같은 잘못 / 이창숙 동시의 대상이 아이들이다 보니 학교 소재가 많다. 어떻게 하면 ..

시읽는기쁨 2014.07.10

화학 선생님 / 정양

중간고사 화학 시험은 문항 50개가 전부 OX 문제였다 선생님은 답안지를 들고 와서 수업시간에 번호순으로 채점 결과를 발표하셨다 기다리지도 않은 내 차례가 됐을 때 "아니 이 녀석은 전부 X를 쳤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 그러시고는 다음 차례 점수를 매기셨다 모두들 선생님의 장난말인 줄로만 여겼는데 며칠 뒤에 나온 내 성적표에는 화학 과목이 정말로 100점으로 적혀 그 점수가 영 믿기지 않았지만 백발 성성한 지금도 이 세상에는 그른 일들이 옳은 일보다 많다는 걸 나는 믿지 않을 수가 없다 - 화학 선생님 / 정양 큰 비극 가운데서도 중고등학교는 지금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이 시를 보니 중학생이었을 때 농..

시읽는기쁨 2014.04.25

난 별 본 적 없다 / 학생 작품

회색 숲 속 칙칙이 둘러싼 덤불 따라 걸었다. 터덜대는 발자국 하나 찍힐 때마다 뿌옇게 모래먼지가 너덜거렸다. 이제 간신히 열 여서 일곱. 고개 들어봐도 보이는 건 불 꺼진 하늘이다. 까만 밤하늘은 본 적 없다. 파란 갓등에 불 꺼진 듯 그런 하늘만 봤다. 내가 아는 하늘은 분명 낮에는 퍼렇고 밤에는 까만 하늘이다. 어른들은 늦게 들어가는 우리들 불쌍하고 걱정되니 가는 길에 불 켜둔다 했다. 그 졸렬한 불빛에 하늘이 미간 찌푸리고 구역질할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 돌리는 것, 내가 집 가는 길에 분명히 봤다. 나는 이제 겨우 열 여서 일곱이지만 그래도 하늘에 별 있고 달 있는 건 안다. 원래 밤하늘이 시커멓고 거기에 바늘로 구멍 숭숭 뚫은 것처럼 별 있어야 한단 것도 안다. 어른들은 우리더러 책상 앞에 앉..

시읽는기쁨 2013.07.03

잠적

B 선배가 잠적했다. 두 달 전 학교에 명퇴 신청서를 낸 뒤부터 연락 두절이다. 풍문으로 들리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수업 시간에 학생과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욕설을 한 모양이다. 모욕을 당했다며 학생의 부모가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학교로 공문이 내려와서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많이 시달린 것 같다. 자랑할 일이 아니라 주변 사람도 쉬쉬하니 저간의 상세한 사정을 모르지만, 선배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많이 자책도 할 것이다. 수학을 전공한 선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무척 열성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항상 문제를 풀며 교재 연구를 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젊은 선생들 두세 배는 노력했다. 같이 근무했을 때 보면 ..

길위의단상 2012.08.19

군대와 학교

친구들과 군대 얘기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입대하게 되는 악몽을 공통으로 꾼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붙잡아가려는 당국과 도망가려는 나 사이의 갈등이 군대 꿈의 기본 틀이다. 꿈을 깨고 나면 식은땀이 흐르기도 한다. 군대가 체질인 사람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대부분 남자들에게는 군대 경험이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공통적인 꿈 경험이 대변해 준다. 나에게는교직 생활 역시좋지 않은 꿈으로나타난다. 퇴직한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학교가 꿈에 나오면 영 기분이 언짢다. 수업하러 들어가는데 교실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꿈이 제일 잦다. 미로 같이 얽힌 학교 건물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수업 시간이 끝나 버린다. 또, ..

길위의단상 2011.11.05

시험 감독을 한 어느 학부모의 소감

.... 일주일 전. 중간고사 시험 감독을 갔다. 3학년 한 줄, 1학년 한 줄 섞여 앉아 시험을 치렀다. 선생님은 교탁에, 그 대척점인 뒤 칠판 쪽에 내가 섰다. 종이 울리자 나란히 도열한 회색빛 등짝이 일제히 수그러진다. 푸코의 에 나오는 판옵티콘 구조, 일망감시체제에서 감시자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됐다. 환절기라서 아이들이 코를 킁킁 거리고 기침을 해댔다. 다리를 떨고 몸을 비트느라 의자의 삐그덕거리는 쇳소리가 울렸다. 매캐한 사내냄새 자욱한 공간에 왠지 불길한 기운을 자아내는 음향효과들... 맨 뒷자리 덩치 큰 녀석은 뒷모습부터 남달랐다. ‘학교 싫어 공부 싫어 시험 싫어’를 온몸으로 발산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문이 빼곡한 영어 시험지를 받더니 앞뒤로 김을 굽듯이 두어 차례 뒤집어 훑고는..

길위의단상 2011.10.14

당황과 황당

티뷰론을 타고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이며 달릴 때... 스쿠프가 추월을 하면 당황스럽지만 티코에게 추월당하면 황당하다. 맛있게 사과를 먹다가... 벌레 한 마리가 나오면 당황스럽지만 벌레 반쪽만 있으면 황당하다. 그이가 외박을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팬티를 뒤집어 입고 있으면 당황스럽지만 여자 팬티를 입고 있으면 황당하다. 여자가 트럭 뒤에서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데... 트럭이 앞으로 가버리면 당황스럽지만 뒤로 후진해 오면 황당하다. 남자가 트럭 옆에 서서 볼일을 보는데... 트럭이 앞으로 가버렸는데 상대편에서 남자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 당황스럽지만 여자가 쪼그려 앉아 있다면 황당하다. . . 그리고 최근에는 . . . .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로... 시장직은 목 매달아 놓고 무릎 꿇고 ..

길위의단상 2011.08.22

한 장의 사진(15)

내 교직생활 35년 동안 담임을 한 시기는 7년에 불과했다. 매우 특이한 경우다. 아마 교사들 대부분이 경력의 8할 정도는 담임을 맡으며 보냈을 것이다. 서른을 갓 넘겼을 때 학교에 과학주임이라는 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운 좋게(?)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당시는 한번 주임으로 임명되면 전근 갈 때에도 보직을 유지한 채로 이동했다. 그러니 이른 나이부터 담임을 안 하게 된 것이다. 40대에 들어 고등학교로 올라와서 보직을 벗었지만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담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남에 있는 소위 명문이라는 K 고등학교에 있었을 때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때는 서로 담임을 하려고 교사들 간에 경쟁이 붙었다. 특히 고3 담임을 하려면 교장한테 특별한 인정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도 아무리 무능한 ..

길위의단상 201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