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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찾아오면 / 메리 올리버

죽음이가을의 허기진 곰처럼 찾아오면,죽음이 찾아와 그의 지갑에 든 반짝이는 동전을 모두 꺼내 나를 사고, 지갑을 닫아버리면,죽음이호환마마처럼 찾아오면, 죽음이양 어깨뼈 사이의 빙산처럼 찾아오면, 나는 호기심 가득 안고 그 문으로 들어서고 싶어,저 어둠의 오두막은 어떤 곳일까? 하면서. 그리하여 나 모든 것들을형제자매로 바라보지,시간을 한낱 관념으로만 보고,영원을 또 다른 가능성으로 여기지, 그리고 각각의 삶은 한 송이 꽃, 들판의데이지처럼 흔하면서도 유일한, 그리고 각각의 이름은 입안의 편안한 음악,모든 음악이 그러하듯, 침묵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각각의 몸은 용감한 사자, 그리고땅에게 소중한 것.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어, 평생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 삶..

시읽는기쁨 2025.05.27

사기[44]

노나라 왕이 사냥을 좋아하였으므로 재상 전숙은 언제나 왕을 모시고 사냥터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전숙에게 관사에서 쉬라고 했지만 전숙은 사냥터로 나와 항상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앉아 왕을 기다렸다. 왕은 자주 사람을 보내 그를 쉬게 했으나 끝까지 쉬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우리 왕이 사냥터에서 몸을 드러내 놓고 있는데, 내 어찌 혼자 관사에 가서 쉬겠소?"노나라 왕은 이 일로 하여 밖으로 나가 노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몇 년 뒤에 전숙이 임기 중에 세상을 떠나자 노나라 왕은 황금 100근을 주어 제사를 지내게 하려고 했으나, 작은아들 전인은 받지 않고 말했다."황금 100근 때문에 선친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 사기(史記) 44, 전숙열전(田叔列傳) 전숙(田叔)은 조나라 신하였는데 ..

삶의나침반 2025.05.26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

'낭만과 폭력의 한일 유신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유신을 키워드로 하여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역사를 보는 작가의 관점이 흥미롭다. 한국인이 누구인지를 탐구하는 홍대선 작가가 썼다. 이 책의 장점은 정통사관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는 신선함이다. 작가는 "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고 본류에서 벗어나지는 않고 살짝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는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움을 느낀다. 예를 들면, 근대 일본을 탄생시킨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에 대해 작가는 만들어진 영웅이라고 낮게 본다. 책에는 처음 접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간결하고 깔끔한 설명도 좋다. 작가는 유신을 하나의 사건을 넘어 인격체로 다룬다. 유신은 상상력이며 정념이다. 그 정신이 1868년의 ..

읽고본느낌 2025.05.25

층간소음에서 벗어나다

이곳에 산 지 15년째다. 그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줄곧 층간소음에 시달렸다. 이사 올 때 윗집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남매가 둘 있었다. 윗집은 생활 패턴이 특이했다. 밤 11시부터 다음날 2시까지가 제일 움직임이 많았다. 뛰어다니고 떠드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등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사정을 하고 관리사무소를 통해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한 가족의 생활 패턴이 쉬이 변할 수 없었다. 다시 집을 옮길 생각도 여러 차례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나도 소음과민증후군이 아닌가 싶어졌다. 그런 식으로 버티며 지낸 게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부터 뭔가 달라졌다. 한밤중 소음이 잦아든 것이다. 문을 쾅 닫는 소리에 깜짝..

길위의단상 2025.05.24

단순한 열정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이렇게 시작하는 은 프랑스 작가인 아니 에르노(Annie Ernaux)가 쓴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40대의 작가가 연하의 유부남과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그린 기록이다. 남자에 탐닉하는 여자의 심리가 냉철하면서도 절절하게 서술되어 있다. 작가의 사랑이 너무 열정적이고 뜨거워서 읽는 내내 부담스러웠고 당혹스러웠다. 20대의 젊음도 아닌 중년의 여인이 이 정도로 폭풍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하기까지 했다. 작가는 한 남자에게 몸과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그를 떠나서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든다. 광기에 가까운 너무나 지독하고 무서운 사랑이다. 다행..

읽고본느낌 2025.05.23

1408e(5)

이 몸누일 데는 있어도 이 마음쉴 데는 없어 (140824)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려.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도산서원 마당에서조르바를 생각하다 (140825) 가끔뒤집어서 바라봐 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야 (140826) 속울음을 삼키다 (140827) 너와 내가 만나서함께 가는 길 또는 맞잡은 두 손을 놓고 안녕, 하는 길 (140828)

포토앤포엠 2025.05.22

우리는 건강한가

지난주에 유니세프에서 OECD와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 어린이들의 웰빙지수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27위로 하위에 머물렀다. 전에도 늘 하위권에 속해 있었으니 특별한 소식이 아니었으나 씁쓸하긴 여전했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어린이의 정신 건강에서는 34위로 최하위권이었다는 사실이다. 육체 건강 역시 28위로 하위권이었지만 학업 능력이 4위를 기록한 덕분에 그나마 종합 순위 27위가 될 수 있었다. 이웃 나라 일본은 14위로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의 20% 정도가 불안, 우울 등의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강남 지역에서는 최근 5년 사이에 정신과를 찾은 어린이 환자가 세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는..

참살이의꿈 2025.05.21

승부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 대결을 소재로 한 바둑 영화다. 1990년부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본 바 있기 때문에 옛날을 생각하며 흥미롭게 영화를 봤다. 조훈현은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아들여 키우지만 몇 년이 되지 않아 제자의 도전을 받고 타이틀을 하나씩 빼앗긴다. 사제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영화는 잘 보여준다. 기록을 보면 둘은 300번이 넘는 사제 대결을 펼쳤다. 이창호의 승률이 60%를 넘었고 중요한 타이틀전에서는 70%대의 승률을 기록했다. 영화에서는 이창호가 처음으로 스승으로부터 타이틀을 뺏는 대국이 비중있게 나온다. 1990년의 최고위전으로 이창호가 3:2로 이기면서 우승했다. 그 뒤 조훈현은 이창호를 독립시켜 내보내고 제자를 이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바둑 한 판 둘 때마다 서너 갑씩 ..

읽고본느낌 2025.05.20

마북동 느티나무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느티나무다. 이 나무 외에 몇 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함께 모여 있다. 석불입상도 있는 걸로 보아 옛날에는 절이 있던 곳이 아닌가 싶다. 안내문에는 이 느티나무의 수령이 450년, 나무 높이가 10m, 줄기 둘레가 4m로 적혀 있다. 느티나무 가까이 있는 마북리 석불입상이다. 조성 연대는 조선 시대 후기라고 한다. 얼굴은 미륵불 느낌이 나면서 장승을 닮아 보인다. 여러 사념이 혼합된 민간 신앙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천년의나무 2025.05.19

용인 탄천을 걷다

손주를 보러갔다가 낮 시간을 이용해 용인을 관통해 흐르는 탄천을 걸었다. 상류 쪽 탄천은 처음이었다. 탄천(炭川, 숯내)은 용인시 청덕동 법화산에서 발원하여 용인, 성남을 지나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길이 36km의 하천이다. 오늘 걸음은 용인 구성역에서부터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폭이 점점 좁아지면서 작은 개울로 변했다. 흰뺨검둥오리 가족과 쇠백로가 유유히 노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한 시간 정도 걸어 자전거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왔다. 옆에 청덕성당이 있다. 지도에 보니 여기서 600m를 더 가면 탄천 발원지가 있다고 한다. 시간 여유가 없어서 발원지를 찾아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탄천을 중심으로 세 시간 정도 걸었다. ..

사진속일상 2025.05.19

절정 /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서릿발 칼날질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 절정(絶頂) / 이육사 6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이육사의 대표시로 '청포도'가 실렸다. 이 시는 그때 이육사를 배우면서 함께 외웠을 것이다. 이름의 '육사'가 시인이 감옥살이를 할 때 수인번호 '64'에서 따왔다는 설명을 듣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표현도 색다르게 느꼈다. 국어선생님이 이 표현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이 시를 지을 때의 시대 상황과 시인의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의미로 사용했을지 짐작은..

시읽는기쁨 2025.05.18

사기[43]

직불의(直不疑)는 남양 사람으로 낭관이 되어 문제를 섬겼다. 그와 같은 숙소를 쓰던 낭관 중에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간 자가 있었는데 실수로 같은 방을 쓰던 다른 낭관의 황금을 가지고 갔다. 얼마 후에 황금 주인은 황금이 없어진 것을 알고 함부로 직불의를 의심하였다. 직불의는 자기가 가져갔다며 용서를 빌고 황금을 사서 돌려주었다. 그 뒤 휴가를 얻어 집으로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황금을 돌려주자 황금을 잃어버렸던 낭관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이 일로 직불의는 장자(長者)라는 칭송을 받았다. 문제를 그를 뽑아 썼고, 직불의는 점점 승진하여 태중대부에 이르렀다. - 사기(史記) 43,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이 열전에는 만석(萬石), 위관(衛綰), 직불의(直不疑), 주인(周仁), 장숙(張叔)이 나온다. ..

삶의나침반 2025.05.17

폭싹 속았수다

한 달 전쯤 넥플릭스에서 몰아보기로 본 16부작 드라마다. 워낙 입소문을 탄 드라마라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다. 이런 류의 눈물에 호소하는 영상을 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아이유가 나온다고 해서 모니터 앞에 앉게 되었다. 아이유의 연기는 역시 눈을 사로잡았다. '나의 아저씨' 만큼은 못하지만. 너무 칭찬이 자자했던 드라마라 딴지를 걸자면 '폭싹 속았수다'는 21세기 신파극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가족애를 앞세워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형식이다.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드라마 전체에 넘쳐난다.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애착/집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마다 품안의 사랑에 너울거린다." 누구의 말인지는 잊었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이 대사가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본다. "내가 너..

읽고본느낌 2025.05.16

1408d(6)

날아가는 것은꼬리가 있다 새도혜성도비행기도 해님도 다르지 않아 내 꼬리를 보는 건아마 처음일 걸 (140818) 내 웃음 뒤슬픔을 보렴 내 고움 뒤그늘을 보렴 내 화려함 뒤간절함을 보렴 그래야 나를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니 (140819) 마음 안에 무슨 꽃 피었길래이리 온화하게 웃으실까 그 꽃우리에게도 피어나기를 합장하며 빙그레~ (140820) 타박타박산들바람이 부는 속도로 타박타박개울물이 흐르는 속도로 타박타박봄이 오는 속도로 타박타박유유히 (140821) "너무 슬퍼하지 마라.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미안해하지 마라.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 그날시청 앞 그분이 생각난다 (140822) 하늘과 땅을 잇는평화의 심벌이 누구에게는찌르는 칼이 되었..

포토앤포엠 2025.05.15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84세의 모리스 씨가 생의 마지막 날에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호텔 바에서 흑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했던 사람들을 추억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백 형식의 소설이다. 청자는 미국에 사는 아들 케빈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의 앤 그리핀(Anne Griffin)이다. 여성 작가가 80대 남성의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오히려 여성의 감성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장과 끝 장을 뺀 중간 장에 다섯 명의 인물이 나오면서 건배를 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첫번째 건배: 토니를 위하여(흑맥주)두번째 건배: 몰리를 위하여(부시밀스 21년 숙성 몰트위스키)세번째 건배: 노린을 위하여(흑맥주)네번째 건..

읽고본느낌 2025.05.14

고향에 다녀오다(5/9~12)

지난달에 이어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 왔다. "요사이는 자주 내려오네"라며 옆집 친구가 반겼다. 내려가는 날은 출발할 때부터 비가 내리더니 고향이 가까워지니 거센 비바람으로 변했다. 고속도로를 버리고 일부러 죽령 옛길을 탔는데 도로 위는 떨어진 나뭇잎과 잔가지로 어수선했다. 한 곳에서는 나무가 넘어져 도로를 가로막아 갓길로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 수십 년간 다닌 길이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바람을 동반한 비는 이틀 내내 내렸다. 고사리를 뜯으러 뒷밭에 갔다가 졸지에 잡초 제거 작업을 하게 되었다. 손을 안 본 밭은 망초가 무성했는데 비가 오고 난 뒤라 손쉽게 뽑히는 것이었다. 그 재미에 둘이서 한 마지기 밭을 정리했다. 세 시간 정도 걸렸는데 안 하던 노동이어선지 온몸이 뻐근..

사진속일상 2025.05.13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 / 곽재구

어릴 적에강 건너 산비탈 마을기차가 지나갈 때손 흔들었지창밖으로 모자를 흔들던 이가바람에 모자를 놓쳤을 때보기 좋았지 어른이 되어 기차를 타면창밖으로 모자를 흔들고 싶었지강 건너 앵두꽃 핀 마을아이들이 손을 흔들면창밖으로 하얀 모자를 흔들다명주바람에 놓아주고 싶었지 모자를 열 개쯤 준비해강마을의 아이가 손을 흔들 때하나씩 바람에 날리는 거야 KTX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지손을 흔드는 아이도 없지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사람이 기차고기차가 사람이야미친 듯 허겁지겁 사는 거 부끄러워 시속 삼십 킬로미터면 강마을아이들과 손 흔들 수 있어시속 이십 킬로미터 구간에선초록의 꽃들과 인사 나눌 수 있지시속 십 킬로미터면 초원의 소들에게안녕, 무슨 풀을 좋아해? 물을 수 있어 목포에..

시읽는기쁨 2025.05.09

아차산 둘레길을 걷다

용두회에서 아차산 둘레길을 걸었다. 여섯 명이 함께 했다. 3년 전만 해도 아차산 정상을 지나는 코스를 잡았을 텐데 이제는 힘들게 걷지 말자는 분위기다. 세월이 더 흐르면 이런 길마저 벅차게 다가올 거다. 산길을 걷는 친구들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다가왔다. 데크와 흙길로 된 둘레길은 우리 같은 나잇대가 걷기에 딱 적당했다. 조망이 열리는 곳에서는 서울 시내가 펼쳐져 보였다. 활짝 핀 이팝나무 꽃이 눈부셨다. 아까시 향기가 솔솔 풍겨오는 산길이었다. 걸은 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이었다. 긴고랑골에서 걷기를 마치고 마을버스를 타고 군자역으로 나와 해물탕으로 점심을 했다. 안주가 좋아서 소주가 빠질 수 없었다. 루틴대로 당구 한 게임을 하고 일정을 마쳤다. 요사이 당구는 연승 중이다. 스트로크에 신경..

사진속일상 2025.05.09

1408c(5)

되고 싶은 것도이루고 싶은 것도 없이홀가분하다 노년의 행복이이런 것이라고 조금씩배워가는 중 (140813) 혈기왕성 시절일식삼찬만으로뛰고 뒹굴며골짜기를 누볐는데 이 나이 되어일식오찬이라니 과분한 식탁이지 않은가 (140814) 바보의 넋두리 그 장단에 춤추는 어릿광대들 세상의 얼간이들에게 한 바탕 웃어나주자 (140815) 해님이 웃고시냇물이 노래하고나뭇잎이 춤을 춘다 세상이 환하다 네가 있어서 (140816) 노란 옷곱게 차려입고어디로 소풍 가시나 숲 속망태 가족오순도순 정겹다 (140817)

포토앤포엠 2025.05.08

백마산 등산

이틀 전 버스편이 연결되지 않아 못 간 백마산을 올랐다. 아침에 일어나니 봄햇살이 환하고 바람도 잦아들어 등산하기에 알맞은 날씨였다. 제대로 된 등산은 올 들어 처음이라 배낭을 꾸리는 손길이 설레었다. 백마산은 능선길이지만 나무가 빽빽해서 전망이 좋지 못하다. 오늘 등산로에서는 첫 쉼터인 이곳에서 유일하게 바깥 조망을 할 수 있다. 패러그라이딩 활공장이어서 나무를 정리해 놓은 때문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종합운동장은 골조가 세워지고 있다. 북능선을 타는 백마산 산길은 걷기에 좋다. 적당한 오르내림을 가진 부드러운 흙길이다. 정상에 오르자면 막바지에 500계단이 있다. 바위 위에 새 먹이로 쌀을 뿌려놓은 마음이 고마웠다. 될수록 천천히 걸었지만 오랜만의 등산이어선지 꽤 힘들었다. 높이가 500m도 안 ..

사진속일상 2025.05.07

사기[42]

장석지가 말했다."법이란 천자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법에 의하면 이와 같이 하면 되는데, 고쳐서 더 무거운 벌로 다스린다면 법이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황상께서 그 자리에서 그를 베어 버리라고 하셨으면 그만입니다만, 지금 그를 이미 정위에게 넘기셨습니다. 정위는 천하의 법을 공정하게 다스리는 자인데 한쪽으로 기울면 천하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다 제각기 법을 무겁게도 하고 가볍게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은 그들의 손과 발을 어느 곳에 두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살피시기 바랍니다."황제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정위의 판결이 옳소." - 사기(史記) 42,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장석지와 풍당은 한나라 문제(..

삶의나침반 2025.05.06

봄비 내린 뒷산

봄비가 촉촉이 내린 터라 산길 걷기가 최상일 터였다. 오랜만에 백마산 등산을 할 요량으로 김밥 도시락까지 챙겨 집을 나섰다. 그런데 버스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버스 안내 시스템에도 다음 버스 소식이 뜨지 않았다. 30분이 지나서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가까운 뒷산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정류장의 다른 사람들도 자리를 떴다. 최근에 읽은 에 보면 운명의 장난에 희롱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계획을 세운들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돌발 상황이 생겨 넘어지기도 한다. 마치 돌부리에 걸려 쓰러지듯이. 오늘 같은 경우는 일상의 사소한 해프닝이지만 인생의 행로가 바뀌는 터닝포인트도 있다. 인생은 어쩔 수 없음의 연속인 것 같다. 의도치 않게 접어든 길..

사진속일상 2025.05.05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2007년에 나온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읽어보니 제목만 봤을 때 예상되는 느낌과는 어긋났다. 읽기도 편치 않았다. 혼돈스럽다고 해야 할까, 소설의 분위기가 묘했다. 작가만의 글 쓰는 스타일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소설의 무대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운동이 막바지에 이르고 세계적으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혼돈의 시기다. 대학생인 주인공은 운동권 학생이다. 정민이라는 여학생과 사귀면서 학생 방북단의 예비대표로 비밀리에 독일에 가서 대기한다. 거기서 이길용을 만나는 데 그는 노동자였으나 분신자살하는 한기복 옆에 있다가 졸지에 민주투사로 대접받고, 뒤에는 안기부 프락치가 되어 있다. 주인공-정민-이길용은 우연히 만난 것으로 보이지만 선대부터 서로 연결..

읽고본느낌 2025.05.04

여주 출렁다리와 금은모래강변공원

여주 신륵사 앞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5월 1일 개통했다. 봄바람도 쐴 겸 개통 다음 날 아내와 다녀왔다. 마침 여주 도자기 축제도 열리고 있었다. 현수교인 이 출렁다리는 길이 515m, 높이 30m로 남한강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출렁다리라고 한다. 우리는 금은모래강변공원에 주차하고 강변을 따라 왕복 걸음을 했다. 걷기 위해서 일부러 먼 곳에 주차를 한 것이다. 출렁다리보다도 오가는 강변 풍경이 오히려 더 좋았다. 강 건너편에서 보는 신륵사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강변을 따라 '여강길'이 있다. 국토종단 자전거길도 지나간다. 금은모래강변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공원 가운데로 여강길 1코스가 통과한다. 공원은 넓은 면적임에도 관리가 잘 되고 있..

사진속일상 2025.05.03

백철쭉

다채롭고 화려한 색깔을 가진 철쭉 중에서도 백철쭉은 담백하다. 눈길을 끄는 요염한 색깔이라면 분홍이나 진홍색 철쭉이지만 빨리 질리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희고 순결한 백철쭉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여자로 치면 요조숙녀쯤 될까, 드러나지는 않지만 바라볼수록 매력이 넘친다. 흰색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백철쭉을 보면 달항아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우윳빛의 은은하면서 편안한 이 흰색을 나는 좋아한다.

꽃들의향기 2025.05.02

1408b(6)

봉우리를 넘어하늘 끝까지 이를 듯 온 산을 불태우며타오르는 그대 향한붉은 연심 (140807) 호수에 피어나는안개 꽃잎을 간질이는봄비 창문에 흔들리는대나무 그림자 마당에 사각사각 쌓이는새벽 눈 그리움... (140808) 오늘 이 숲에서잔치가 열리나 봐 향기가 진동하는 걸 보니음식도 푸짐히 장만하고 있겠지 축의금은 준비 안 해도 되고번거러운 축하 인사도 필요 없어 우리는그냥 구경만 하면 돼 이 멋진가을의 축제를 (140809) 너는 목 마른 이에게생수 한 잔을 주는 착한 그릇이 될 거야 (140810) "내비 둬라. 나중에는 하라고 해도 못 한다." 1000포기 넘던 고추 농사작년에 800포기로 줄더니올해는 400포기가 되었네 밭둑에서 쉬는 시간은자꾸 늘어나고 몰랐네 어머니의 '나중'이 ..

포토앤포엠 2025.05.01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착해지지 않다고 돼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대초원들과 깊은 숲들산들과 강들 너머까지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그 한가운데라고 -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위안이 되는 따스한 시다. 처음에 나오는 "착해지지 않아도 돼(You do not have to be good)..

시읽는기쁨 2025.04.30

초록 뒷산 한 바퀴

봄날씨에 끌려서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간식 담긴 배낭을 메고 스틱까지 준비해서 등산 흉내를 낸 산길 걷기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따사로운 봄 햇살이 환한 날이었다. 신록이 익어가는 산은 초록 세상이었다. 초록은 생명의 색깔이다. 숲은 아기자기한 생명의 약동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안의 생명 에너지가 공명을 일으켜서 엔돌핀이 샘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계절에 산길을 걸으면 존재 자체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자작나무 숲도 초록 새 잎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쉼터에서 바라본 풍경이 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새 아파트가 여럿 들어섰고 공사중인 곳도 있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앞산에 만들어지고 있는 중앙공원이다. 걷기 좋은 산책로와 다양한 편의 시설을 내년에는 만날 수 있..

사진속일상 2025.04.29

여수천 겹벚꽃

벚꽃이 지고 나면 겹벚꽃이 핀다. 나는 '겹'자가 들어가는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겹벚꽃도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는 꽃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작년에 문수사에서 본 아름다운 겹벚꽃 가로수 길이 생각난다. 자주 지나다니는 여수천에 겹벚꽃이 활짝 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나무인데 가지가 산책로를 터널처럼 덮고 있는데 분홍 솜사탕이 나무에 가득 매달려 있는 것 같다. 화사한 봄의 생명력과 풍요를 보여주는 겹벚꽃이다.

꽃들의향기 2025.04.28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에서는 극우 세력이 힘을 받아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겉으로나마 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던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개인이든 나라든 각자도생이라는 험난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작년에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이런 지구적 분위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전에는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로 표상되는 이데올로기/가치관을 주도해 나가는 국가가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없다. 그들도 제 코가 석 자인 상태다. 우리나라는 계엄 후 일차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한국 엘리트의 상당수가 파쇼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는 바탕이 튼실하지 못하면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연약한 구..

길위의단상 202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