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136

Fur

잘 나가는 패션잡지 사진사인 남편 '앨런'의 조수이자 헌신적인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디앤'은 평온하지만 왠지 갑갑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윗층에 기이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신비로운 남자 '라이오넬'이사를 오고 그에게 아찔한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게 된 '디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이웃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핑계로 윗층을 찾게 된다. 차츰 '라이오넬'과 그의 기이한 친구들과도 가까워진 '디앤'은 한없이 다정하고 독특하며 예술적인 '라이오넬'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라이오넬' 역시 자신을 특별한 한 남자이자 인간으로 대하는 '디앤'을 열혼으로부터 사랑하게 되지만 그는 선천적인 특이함으로 인해 호흡곤란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디앤..

읽고본느낌 2008.01.27

너를 사랑한다 / 강은교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을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

시읽는기쁨 2008.01.15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행복 / 유치환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네 종류로 ..

시읽는기쁨 2008.01.08

사랑은

사랑은 '思量'이다. 끝도 없이 그대가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것이다. 기쁘면 기뻐서 생각이 나고 슬프면 슬퍼서 또 그대가 떠오른다. 한가해서 자꾸만 생각하는 그대 잊으려 일을 꾸며보지만, 일 속에서도 그대는 나타난다. 그래서, 사랑은 그대 생각에 가슴이 저미는 것이다. 사랑은 늘 그대 옆에 있고 싶은 것, 그대를 만지고 싶은 것. 사랑은 한밤중에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길위의단상 2007.12.25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타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그리워한다는 것은..

시읽는기쁨 2007.12.18

사랑에 답하여 / 정일근

수선화 해를 따라 도는 꽃인 걸 마당에 노란 수선화 피어서 알았다 가녀린 꽃대에 크고 무거운 꽃을 달고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를 따라 간다 달마는 마음 따라 동쪽에서 왔다지만 땅 속에 마음 묻은 수선화의 해바라기는 갈 수 없는 사랑의 지독한 형벌이다, 고 나는 오래전부터 수선화 꽃 뒤에 놓여있는 낡은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나도 그런 아픈 사랑한 적이 있었다, 고 해를 기다리는 말없는 꽃이나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같은 앉음새 같은 가부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란 수선화 지면서 알았다 꽃은 마르면서도 해를 따라 가고 말라 바스라지면서도 저 수선화 뜨거운 해바라기는 멈추지 않았다 수선화 꽃 뒤에 놓아둔 의자도, 사실 누군가를 기다리겠다고 놓아두었지만 의자에 앉아 사람을 기다렸던 시간보다 비어두었던 시간 ..

시읽는기쁨 2007.12.09

인연설 / 한용운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있음에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치 말고 애처롭지만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람이라 지치지 말고 더 줄 수 없음에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그의 기쁨으로 여겨 함께 기뻐하고 이룰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인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 - 인연설 / 한용운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예기치 않는 새로운 인연들과 맺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만남의 연속이고, 인연의 연속이다. 그리고 만남을 우연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인연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의미있고 따뜻하다. 인연이..

시읽는기쁨 2007.05.23

위대한 이기성

옛날에 한 청년이 살았다. 청년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여인은 청년에게 별을 따다 달라고 말했다. 청년은 별을 따다 주었다. 여인은 청년에게 달을 따다 달라고 말했다. 청년은 달을 따다 주었다. 이제 청년이 더 이상 그녀에게 줄 것이 없게 되었을 때, 여인이 말했다. “네 부모님의 심장을 꺼내와!”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지만, 결국 청년은 부모님의 가슴속에서 심장을 꺼냈다. 청년은 부모님의 심장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오직 그녀와 함께 할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청년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청년의 손에서 심장이 빠져 나갔다. 언덕을 굴러 내려간 심장을 다시 주워 왔을 때, 흙투성이가 된 심장이 말했다. “얘야, 많이 다치지 않았니?”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길위의단상 2007.04.12

6000년의 사랑

최근에 이태리 고고학자들이 북부 지역 발다로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남녀가 서로 바라보며 포옹하고 있는 유골을 발견했다. 한 쌍의 젊은 남녀라는데 무언가 애틋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아 눈길을 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유골이 6000년이나 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유골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다는 것도놀랍지만 죽음을 초월한 듯한 두 남녀의 포옹하고 있는 듯한 자세에 자꾸만 눈길이 머문다. '발다로의 연인'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들을 사람들은 6000년 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유골을 조사한 결과 왼쪽 남자의 몸에는 화살을 맞은 흔적이 있고, 여자 옆에서도 화살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남성이 먼저 죽은 뒤 이 남성의 영혼의 동반자 역할을 하기 위해 ..

길위의단상 2007.02.09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사랑법 / 강은교 이 시의 깊고 고요한 울림처럼 살고 싶다. 분주하지 말고, 안달하지 말고, 부산떨지 말고, 그리고 무엇에도 매달리지 말고..... 내 안의 굳은 날개, 말라버린 강물, 잠든 별들을 그대로 있으라 놓아두고..... 서둘지..

시읽는기쁨 2006.07.15

아담을 기다리며

‘하버드의 수재 학생부부인 마사와 존 베크가 본의 아니게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들의 생활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 되었다. 머리 좋고 야심적인 젊은 엘리트로서 학문적, 사회적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거의 미치광이처럼 맹렬하게 학업 경쟁에 몰두하고 있던 이 박사학위 후보자들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재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임신 수개월 후 산과 검사 결과 뱃속의 아기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버드의 교수, 학생, 의사들은 한결같이 이들에게 장래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임신중절을 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경고하였다. 그러나 베크 부부는 그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 그들 자신 내부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태어나게 해야..

읽고본느낌 2006.06.13

짝사랑과 엑스레이

대학교 때 내가 짝사랑한 여학생이 있었다. 다른 과의 여학생이었는데 일주일에 몇 시간은 공통과목 강의를 같이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까이서 얘기 한 번 나누어볼 기회는 없었다. 어떤 계기로 그녀가 눈에 들어오고 끌리게 되었는지는 너무 오래 되어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어느 순간 사랑의 화살을 맞았다는 것이고, 그 화살이 그녀가 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별로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나는 늘 강의실 뒤쪽에 앉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강의실 앞문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항상 앞 줄 가운데에 앉았는데 긴 생머리의 뒷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했다. 몇 달 동안은 자나 깨나 눈에 아른거리며 상대를 못 잊는 사랑의 병을 앓았다. 불면의 밤이 나를 괴롭..

길위의단상 2005.11.10

고마워, 내 사랑 / 원재훈

창문을 열자, 새소리가 들려온다 고마워, 내 사랑, 내 마음이 저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리게 해 주는 것은 오로지 너의 사랑뿐 소나무 가지 사이에 새 한 마리 휙 날아간다 고마워, 내 사랑, 저 날아가는 새들을 보여 주다니 들리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것은 오로지 너의 사랑뿐 들리고 보이는 모든 것들은 먼 곳에서 오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내 심장보다도 더 가까운 곳 내 눈물, 웃음보다 더욱 더 가까운 곳 그곳에 님이 있었다 고마워, 내 사랑 정말 고마워 - 고마워, 내 사랑 / 원재훈 시인이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고 하는 내 사랑은 누구일까? 사랑은, 창문 밖의 새소리를 볼 수 있게 해 주고,작은 풀꽃의 미소를 들을수 있게 해 준다. 그 사랑은 내 심장..

시읽는기쁨 2005.04.29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엇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 박용재 사랑이 없다면 꽃은 더 이상 예쁜 색깔로 피지 않으리. 벌도 더 이상 꿀을 모으지 않으리. 사랑이 없다면 산속의 새들은 노래..

시읽는기쁨 2005.04.08

사랑의 찬가

하늘에서 한 천사가 추방되어 지상에 내려온다. 그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알아내야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그 후 구두장이인 세몬의 집에서 6년을 지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고 마지막에 잘 자란 쌍둥이 자매를보고나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쌍둥이 자매가 갓 태어났을 때 천사는 산모의 영혼을 거둬오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는데 산모의 불쌍한 처지를 보고그만명령을 어기게 된 것이었다. 결국 산모의 영혼을 빼앗았지만 그는 추방되었다. 그런데 부모없이도 이웃의 사랑에 의해 잘 자란 쌍둥이를 보고 천사는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확신하게 된다. 모든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일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속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

길위의단상 2004.02.01

마더 데레사 어록

貧者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오는 19일에 시복된다고 한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 그분의 사랑 앞에서는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바오로딸 홈페이지에서 그분의 말씀 몇 가지를 옮겨 보았다. 그런데 그분과 관계된 일화 중에서 감명깊게 들었던 것은 임종하는 사람들의 종교를 최대한 존중해 주며 각자가 원하는대로 종교 의식을 치러 주었다는 것이다. 임종 순간에 힌두신을 부르든, 하나님을 부르든, 알라를 부르든 개인이 믿어왔던 신앙의 절대자에게 평화롭게 안길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어쩌면 가장 보수적일 수도 있는 가톨릭의 수녀님이 이런 열린 마음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아래 글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분은 가장 가톨릭적인 분이시기에 더욱 그러하다. 주변에서 장례 의식 문제로 마찰이..

길위의단상 2003.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