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364

논어[149]

선생님 말씀하시다. "삼으로 짠 제관이 구식인데, 요즈음은 순 실이라 검소하니 나도 남 하는 대로 따르겠다. 뜰 아래서 예를 드리는 것이 구식인데, 요즈음은 위에서 드리니 지나친 짓이라 남들과는 틀리더라도 나는 아래서 드리겠다." 子曰 麻冕禮也 今也純儉 吾從衆 拜下禮也 今拜乎上 泰也 雖違衆 吾從下 - 子罕 3 옛 관습을 수용하는 태도에 대한 공자의 입장이 나와 있다. 형식적인 모습이나 절차는 시류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 정신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제관을 무엇으로 짜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검소함을 따르는 게 옳다. 그러나 절을 위에서 하는 것은 예(禮)의 정신에 위배된다. 뜰 아래서 하는 게 옳다. 어느 것을 따르고 따르지 않을지는 본질의 의미가 훼손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판단할 ..

삶의나침반 2015.07.04

논어[148]

달항 고을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하시지. 공 선생은! 하도 아는 것이 많으시니, 특별한 이름을 붙일 수가 없어." 선생님이 이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해 볼까? 말달기기냐? 활쏘기냐? 말달리기나 해 보지." 達巷黨人曰 大哉 孔子 博學而無所成名 子聞之 謂門弟子曰 吾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 子罕 2 달항 고을 사람의 말에는 공자를 경시하는 듯한 태도가 보인다. 박학다식하지만 무엇 하나 특별한 게 없다는 뜻이다. 제자들이 이 말을 공자에게 전했는가 보다. 말달리기나 해 볼까, 라는 대답에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앞서지 못할 게 없다는 공자의 자부심이 읽힌다. 한 분야에 특출한 것이 인간의 완성은 아니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두루 아는 것보다 말달리기를 잘하는 게 삶에는 훨씬 유..

삶의나침반 2015.06.28

논어[147]

선생님은 좀처럼, 잇속이니, 천명이니, 사람 구실이 어떠하니 말하지 않았다. 子罕言 利與命與仁 - 子罕 1 잇속[利]이나 천명[命]은 그렇다 쳐도, 사람 구실[仁]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사람 구실에 대한 언급이 에 여러 차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 사변적인 논쟁을 뜻하는 것으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공자는 인(仁)을 구체적인 상황에 대응해서 말했지, 정의를 내리거나 철학적 논의를 하지는 않았다. 공자에게는 오직 실천적인 측면이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조선 시대의 이기론(理氣論) 같은 관념적인 논쟁은 공자의 본뜻과는 어긋난 것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공자에게는 절실했다.

삶의나침반 2015.06.21

논어[146]

선생님 말씀하시다. "순, 우는 덩실하게 천하를 차지했으나 아랑곳없는 양 하셨다." 子曰 외외乎 舜禹之有天下也 而不與焉 선생님 말씀하시다. "위대하지! 요의 임금 노릇은! 덩실한 양은 하늘만이 그처럼 크시므로 요는 오직 그를 본받았을 따름이요, 넓고도 아득한 모습에 백성들은 이름붙일 길조차 몰랐다. 덩실하지! 그가 마련한 일터는! 뚜렷하지! 그가 마련한 문화는!" 子曰 大哉 堯之爲君也 외외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 民無能名焉 외외乎 其有成功也 煥乎 其有文章 - 泰伯 15 공자 정치학의 이상적 모델인 요와 순, 우에 대한 찬양이다. 그분들이 왜 위대한 성인 정치가인지를 설명하는 공자의 말에는 노장사상의 일면이 보인다. 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린다는 무위지치(無爲之治)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임금이 ..

삶의나침반 2015.06.12

논어[145]

선생님 말씀하시다. "공부란 아직도 먼 양 하되 놓칠까봐 걱정도 되거든." 子曰 學如不及 猶恐失之 - 泰伯 14 공부에 대한 공자의 솔직한 심경 토로가 인간적이다. 예수나 부처처럼 "다 이루었다!"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매달려도 끝이 없는 길, 그 과정에서 나태하면 옆길로 샐지 모른다. 두려운 마음으로 정진하는 길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가 떠오른다. 이곳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 같다 그의 집은 마을에 있어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 내가 여기 멈춰서 있는 것을 모르리라 내 작은 말은 이상하게 여기리라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농가 하나 없는 곳에 이렇게 멈춰 서 있는 것을 말은 방울을 흔들어 본다 무슨 잘못이라도 있느냐는 듯 방울소리 외에는 ..

삶의나침반 2015.06.06

논어[144]

선생님 말씀하시다. "납신거리되 솔직하지 못하고, 무식하되 착실하지 못하고, 멍하면서 미덥지 못한 사람은 난들 어찌할 수 없거든." 子曰 狂而不直 통而不愿 공공而不信 吾不知之矣 - 泰伯 13 "저런 놈은 공자가 와도 어찌할 수 없을 거야." 평시에 자주 쓰는 이런 말대로 성인군자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 있다. 예전의 내 선생 시절을 돌아볼 때 말 안 듣는 아이들 때문에 어지간히 속을 썩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마음씀의 구 할이 내 욕심이었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진즉 알았더라면 선생 생활을 좀 더 가볍게 했을 것이다. 이건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자의 이 말을 접하니 과거의 내 노심초사가 어리석게 느껴진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

삶의나침반 2015.05.31

논어[143]

선생님 말씀하시다. "제 일도 아닌데 일 참견해서는 안 된다."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 泰伯 12 원문에 '정(政)'이라는 단어가 있는 거로 보아 정치적 사안에 관한 내용이겠지만 나는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 인생사의 괴로움 중 다수가 남의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는 데서 생긴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 부모도 자식이 성년이 되면 남으로 여겨야 한다.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돌보던 습(習)에 젖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도리어 자식에게 독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부모의 무지와 욕심 때문이다. 반대로 자식이 부모와의 관계에 연연하기도 한다. 올가미가 된 천륜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제 일도 아닌데 참견해서는 안 된다." 우리 실생활에 이 말씀을 적용하면 인..

삶의나침반 2015.05.25

논어[142]

선생님 말씀하시다. "굳은 신념으로 학문을 좋아하며, 죽기로서 도를 닦되, 찌우둥거리는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도 살지 말아야 한다. 정치 질서가 섰을 때는 나서야 하고, 질서가 깨지면 숨어야 하는데, 질서가 섰을 때 굶주리고 천한 것도 수치요, 질서 없을 때 영화를 누림도 부끄러운 일이다." 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 泰伯 11 '죽기로서 도를 닦는다[守死善道]'는 유학의 치열한 구도 정신을 말해주는 구절이다. 세상에 나아가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자기를 닦는 것이 우선이다. 수기(修己)는 평생을 두고 가야 할 학인(學人)의 길이다. 유학의 기본은 '내가 먼저 바른 인간으로 서는 것'에 있다. 뒤에 나오는..

삶의나침반 2015.05.22

논어[141]

선생님 말씀하시다. "삼 년 공부에 벼슬 뜻이 없는 사람은 손쉽게 찾아내기 어렵다." 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 - 泰伯 10 공자에게서 공부란 인간이 되는 수련을 뜻한다. 평생을 가야 할 길이다. 벼슬자리를 얻어 돈을 버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공자학당에 들어온 제자들이 조금 공부를 하고 나면 일자리를 찾아 나가려 한 모양이다. 삼 년 공부에 벼슬 뜻이 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공자는 넋두리한다. 너무 먹고사니즘에 매몰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리라. 안회는 가난하게 살지언정 세상이 주는 명예나 쓰임새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런 극단적인 삶을 실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부란 무엇인지 그 본령만은 잊지 않고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삶의나침반 2015.05.12

논어[140]

선생님 말씀하시다. "주공 같은 재주가 있다손 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면 다른 점은 더 보잘 것도 없단 말이야!"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 泰伯 9 재능보다는 사람됨이 우선이다. 공자의 초지일관된 인간관이다. 재주와 인격을 겸비하면 최상이겠지만, 재주만 있고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최악이다. 자기 이익과 욕심을 차리기 위해 사용되는 재주란 도리어 주변에 해악을 끼친다. 세상에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인품이 모자라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도, 총장도, 회장도 좋다. 먼저 인간이 되어라!

삶의나침반 2015.04.18

논어[139]

선생님 말씀하시다. "뚝뚝한 주제꼴에 가난뱅이가 싫으면 난리를 꾸민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 한다고 지나치게 미워해도 난리를 꾸민다." 子曰 好勇疾貧亂也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 - 泰伯 8 이는 지금의 우리에게 경계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식이 말썽을 부릴 때 나무라고 미워해서는 마음을 얻지 못한다. 반항심만 돋우는 역효과가 난다. 나라를 다스릴 때도 마찬가지다. 엄격한 원칙만 내세워서는 참된 리더가 되지 못한다. 세상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하물며 지도층이 불인(不仁)하니 더 말해 무엇할꼬.

삶의나침반 2015.04.11

논어[138]

선생님 말씀하시다. "백성이란 절로 따르게 할망정 깨우치도록 하기는 힘들다." 子曰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 泰伯 7 해석 여하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가 차별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생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의 신분이 어떠하든 진실을 알려주고 사실을 깨우쳐주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요사이도 자칭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조차 대놓고 민중을 무시하고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물며 대부분이 문맹이고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공자 시대에는 어떠했겠는가. 나는 이 구절을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한 공자의 답답함의 토로로 보고 싶다. 깨우쳐주기보다는 그냥 따르게 하는 게 쉬운 건 신분의 차이를 떠나 누구나 마찬가지다.

삶의나침반 2015.04.04

논어[137]

선생님 말씀하시다. "시로 정서를 일깨우고, 예로 행동을 바로잡고, 음악으로 인격을 완성하라."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 泰伯 6 지(知), 정(情), 의(意)가 잘 조화되어야 교양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공자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공자가 말한 시(詩), 악(樂), 예(禮)도 넓게 보면 같은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공자는 인간 교육에서 시와 악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을 편찬한 목적도 시를 통해 사람 마음을 순화시키려 함이었다. 시와 악은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정서가 일깨워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공자는 이를 인간 교육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그 시대와 지금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하더라도 시와 악이 현대 교육에서는 홀대받고 있다. 교육 과정에서는 그냥 구색 맞추기로 편..

삶의나침반 2015.03.28

논어[136]

증 선생이 말했다. "선비는 굳센 대목이 있어야 한다.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지. 사람 구실을 제 책임으로 여겨야 하니 무겁지 않을까! 죽어야만 끝이 나니 멀지 않은가!"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 - 泰伯 5 짧은 말이지만 묵직하다.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지[任重而道遠]"에서는 선비의 길을 가는 결연한 각오가 느껴진다. 죽어야만 끝이 나는 길이니 생전에는 결코 이루지 못할 목표다. 그저 묵묵히 가야만 한다. 수도승의 비장한 결의와 닮았다. 유학의 치열한 인간 완성의 길이 이런 점에서는 종교와 다를 바 없다. 유교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유학의 근본이 이런 것이었다. 를 읽는 사람아, 껍데기가 아니라 이 정신을 본받는 게 마땅하여라.

삶의나침반 2015.03.23

논어[135]

증 선생이 말했다. "재능이 있으면서도 무능한 이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도 별로 아는 것 없는 이에게 묻고, 있어도 없는 듯, 알이 찼어도 텅 빈 듯, 덤벼도 엉클어지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전에 내 친구 중에 있었지." 曾子曰 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 嘗從事於斯矣 - 泰伯 4 태백 편에는 증자가 자주 등장한다. 증자는 공자의 다른 제자들에 비해 과도하게 대접을 받는 듯하다. 이 대목은 증자가 안회를 추억하며 한 말로 보인다. 이 정도 칭찬을 듣는 제자는 안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금 느끼지만 안회의 행실에서는 도가(道家)의 향기가 풍긴다. 여기 나오는 '有若無 實若虛'는 의 한 구절 같다. 안회가 오래 살고 저작을 남겼다면 두 학파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

삶의나침반 2015.03.18

논어[134]

증 선생이 병석에 눕자 맹경자가 문병을 왔다. 증 선생은 말하기를 "새도 죽을 때는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도 죽을 때는 그 말이 옳습니다. 윗사람 노릇하는 데 중요한 일 세가지가 있습니다. 몸집을 간추릴 때는 무뚝뚝한 데가 없어야 하며, 얼굴빛이 발라야 믿음직스러울 것이요, 말솜씨는 지꺼분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사상 차리는 것쯤이야 맡아보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曾子有疾 孟敬子問之 曾子言曰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변豆之事 則有司存 - 泰伯 3 증자가 병에 걸려 죽을 때니 BC 435년의 일일 것이다. 문병차 찾아온 노나라 대부 맹경자에게 증자는 자신의 말이 진실되다는 것을 강조한 후 정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세 세 가..

삶의나침반 2015.03.11

논어[133]

선생님 말씀하시다. "공손하되 예절을 모르면 지치고, 조심하되 예절을 모르면 얼떨떨하고, 용감하되 예절을 모르면 거칠고, 꼿꼿하되 예절을 모르면 퉁명스럽다. 지위 있는 이들이 가까운 친족들께 후정을 베풀면 백성들도 본받아 사람 구실을 하게 되고, 예전 사람을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도 본받아 경박한 짓을 않을 것이다." 子曰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시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君子篤於親 則民興於仁 故舊不遺 則民不偸 - 泰伯 2 공손하고, 조심하고, 용감하고, 꼿꼿한 것은 미덕이지만 예(禮)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흔들리게 된다. 자기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예다. 여기서 예는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개인의 내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작용을 한다. 예를 정의하는 것도 단순하지 않다. 여기 나오는 '무례(無禮)'는 우리가 일상..

삶의나침반 2015.03.06

논어[132]

선생님 말씀하시다. "태백님은 실로 지극히 곧은 마음씨를 가진 분이었다. 천하를 세 번이나 사양하였으나 백성들은 칭송할 길조차 없었다." 子曰 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 泰伯 1 주나라 태백(泰伯)은 동생에게 왕 자리를 양보하고 사람들이 모르는 곳으로 피했다. 공자는 이를 '지극히 곧은 마음씨[至德]'의 본보기로 들고 있다. 맹자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을 예(禮)의 극치라 말했다. 북송의 범중엄(范仲淹)이 쓴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이런 글이 나온다. 유교의 정신이 이 문장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닐까.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천하의 근심은 누구보다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한 뒤에 즐긴다.

삶의나침반 2015.02.28

논어[131]

선생님은 부드럽지만 싸늘하고, 두려우나 사납지 않고, 공손하면서도 차분하다. 子 溫而려 威而不猛 恭而安 - 述而 33 학교에 나갔을 때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선생이 어떤 기분인지 아이들이 헷갈리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선생을 두려워하고 말을 잘 듣는다. 설마 공자도 그런 테크닉을 쓴 건 아니겠지. 제자들이 공자를 본 인상이 묘사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부드럽게, 어떤 사람은 싸늘하게 느꼈을 것이다.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는 않고, 공손하면서 차분한 모습이다. 각자의 근기에 따라 대하는 공자의 교육 방법과 일치한다. 부드러운 태도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싸늘하게 대해야 효과 있는 사람도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응하면 된다. 왼쪽으로 갈 때도 있고, 오른쪽으로 갈 때도 있다. 물론 중..

삶의나침반 2015.02.22

논어[130]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사람이 서근서근하고, 되잖은 것들은 언제나 찌뿌드드하다." 子曰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 述而 32 '탕탕(蕩蕩)'은 너그럽고 도량이 넓은 모습이고, '척척(戚戚)'은 걱정이 태산 같은 모습이라고 한다. 내 식대로 해석하면 군자는 걱정할 건 걱정하고, 걱정하지 않을 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걱정할 건 걱정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을 건 걱정한다. 공자의 군자와 소인을 비교하는 말을 접할 때마다 나는 여지없이 소인이구나, 하는 탄식이 나온다. 어쩜 그렇게 '되잖은 인간' 부류에 딱 들어맞는지.....

삶의나침반 2015.02.15

논어[129]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치스러우면 불손하고, 검박하면 딱딱하다. 불손한 것보다는 딱딱한 것이 낫다." 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 - 述而 31 현실적인 지적이다. 돈이 많다고 사치하면 건방지게 되고, 너무 아끼기만 하면 딱딱하고 인색해진다. 둘 다 돈을 올바로 사용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래도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인색한 편이 낫다는 것이다. 공자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의 과잉 소비를 염두에 둔 건 아니겠지만, 사치한다는 것은 자원의 낭비만이 아니라 못 가진 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검박함은 타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미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계층의 사치는 인간 공동체를 균열시키는 원인이 된다.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꾼 공자에게는 마땅찮은 행태였을 것이..

삶의나침반 2015.02.10

논어[128]

선생님의 병이 깊어지자 자로가 빌게 해달라고 청을 드렸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런 것이 있을까?"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비는 글에 '너를 천지 신명께 비노라' 하였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도 그런 기도를 드린지는 오래다." 子 疾病 子路 請禱 子曰 有諸 子路對曰 有之뇌 曰禱爾于上下神祈 子曰 丘之禱久矣 - 述而 30 스승의 병이 깊어지자 자로는 안절부절못했다. 자로의 성격으로 보건대 스승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로가 한 청은 무속적인 신앙에 근거한 기도 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공자는 인간의 일상사에 간섭하는 신적 존재를 믿지 않았다. 합리적인 공자가 그런 타력에 기댈 사람이 아니다. 공자는 추상적 관념의 세계보다 땅에 기반을 둔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삶의나침반 2015.02.06

논어[127]

선생님 말씀하시다. "성인이니 사람 구실이니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그저 배우기를 싫어 않고 깨우쳐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나 해 둘 정도지!" 공서화가 말했다. "그나마도 저희들은 본받을 수 없습니다."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 - 述而 29 공자의 솔직한 자기 평가다. 성(聖)과 인(仁)의 경지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건 공자의 겸손이 아니라 사실을 표현한 진솔한 말일 것이다. 완전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공자에게서 본다. 공자는 자신을 항상 '배우는 사람[學人]'으로 지칭했다. 이 정도 말도 대단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배우기를 싫어 않고 깨우쳐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만큼 공자를 잘 나타내는..

삶의나침반 2015.02.01

논어[126]

선생님 말씀하시다. "학문쯤이야 나도 왜 남만 못 할까마는 참된 사람 노릇을 함에 있어서는 나는 아직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 子曰 文莫吾猶人也 躬行君子 則吾未之有得 - 述而 28 자랑도 아니고 겸손도 아닌 공자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공부와 학문에 있어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인간적인 토로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치원에서 배울 정도의 삶의 기본조차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과정의 존재로서 인간은 제 능력껏 노력할 뿐이지 이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길 위의 작은 한 걸음이 사람의 차이를 만든다.

삶의나침반 2015.01.26

논어[125]

선생님은 남의 노래가 좋을 때는 꼭 되풀이하게 한 후 따라서 불렀다. 子與人歌而善 必使反之 而後和之 - 述而 27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공자를 만난다. 공자는 노래하는 자리를 즐겨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좋은 노래는 되풀이해서 들으며 따라서 배웠다. 곳곳에 이런 공자의 모습이 보인다. 풍류를 즐기고 유머러스하고 우락부락한 인상의 공자는 근엄하고 고지식한 유학자 타입은 아니었다. 를 읽으니 공자란 인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며 점점 더 호기심이 생긴다.

삶의나침반 2015.01.19

논어[124]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 구실하는 길이 먼 데 있을까! 내가 사람 구실하고자 하면 사람 노릇하는 길이 바로 나타나 준다."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 述而 26 인(仁)이 '사람 구실하는 길'로 번역되어 있다. 단순한 '어짊'보다는 훨씬 더 정확한 말인 것 같다. 사람 사이의 관계망에서 내 역할을 성실히 행할 때 얻어지는 어떤 경지가 인이라고 보는 게 맞다. 공자의 말에서 주목되는 단어는 욕(欲)과 지(至)다. 사람 구실하는 길을 바라면 거기에 이른다. 중요한 건 내 의지다. 유교는 타력 신앙과 대척점에 있다. 누구에게나 인에 이르는 길이 열려 있다고 공자는 말한다. 좋은 친구를 옆에 두고 싶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좋은 자식을 바란다면 내가 먼저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좋..

삶의나침반 2015.01.14

논어[123]

호향은 구두쇠만 사는 곳이다. 그곳 아이가 눈에 뜨이자, 제자들이 어리둥절한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아오면 만나주고, 물러가면 할 수 없지! 왜 그렇게 야단들이냐? 자신을 깨끗이 하고 나오면, 그 깨끗한 점을 알아주어야지, 지난 일을 캘 것은 없는 거다." 互鄕 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子曰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 人潔其以進 與其潔也 不保其往也 - 述而 25 호향(互鄕)은 어떤 마을을 가리키는 말일 텐데 '난여언(難與言)'을 굳이 구두쇠의 의미로 번역한 건 이상하다. 서로 말을 섞기 어려울 정도로 천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정도가 맞을 것 같다. 이 대목에서도 사람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를 볼 수 있다. 호향 아이가 보이자 제자들이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관습에 따라 접촉하기를 꺼렸을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5.01.09

논어[122]

선생님 말씀하시다. "대체 아는 것도 없이 꾸며대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러지 않는다. 이것저것 주워 듣고 그 중에서 좋은 것만 골라 그를 따른다. 이것저것 보는 대로 따 담는 것도 지식의 일부가 된다." 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 - 述而 24 공자의 공부는 옛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자는 현실 중심의 경험주의자임을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어쩌면 너무 지나치다 싶기도 하다. '기술하기만 할 뿐 창작하지는 않는다[述而不作]'가 결코 겸손의 말만은 아니다. 어느 분의 강연에서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말을 듣고 공자가 떠올랐다. 창조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창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창작이라는 말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공자..

삶의나침반 2015.01.03

논어[121]

선생님은 낚시질은 하되 그물질은 안 했고, 주살을 쏘되 잠든 새는 잡지 않았다. 子 釣而不網 익不射宿 - 述而 23 생태적 관점의 내용이 반갑다. 이렇게 인(仁)은 인간 너머 뭇 생명에로 확장된다. 절제와 중용의 가치가 이 말 속에 있다. 동물에게 이러할진대 사람을 대하는 자세 역시 넉넉히 짐작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많은 동물이 멸종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생명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는 존경받을 만하다. 개화된 현대인도 아직 이런 인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큰 스승님이시다.

삶의나침반 2014.12.26

논어[120]

선생님 말씀하시다. "착한 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꾸준한 사람을 만나기만 해도 좋지. 없어도 있는 체, 텅 비었어도 알 찬 채, 가진 것도 없이 넉넉한 체하면 꾸준하기가 어려운 거야!" 子曰 善人吾不得而見之矣 得見有恒者 斯可矣 亡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難乎有恒矣 - 述而 22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성인(聖人)이다. 공자가 생각한 성인은 요와 순, 주공이 아닐까 싶다. 그다음으로 군자(君子)가 있다. 여기 나오는 선인(善人)과 항자(恒者)는 군자의 한 모습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군자가 되는 길을 가르쳤다. 현실은 선인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고, 항자를 만나기만 해도 만족한다고 공자는 말한다. 항자, 즉 꾸준한 사람이란 가식으로 꾸미거나 위선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다..

삶의나침반 201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