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52

다이슨 스피어

뉴스에 우주 관련 기사가 나면 유심히 본다. 특히 외계 생명체나 문명에 대한 관심이 크다. 얼마 전에 '다이슨 스피어'가 설치됐을 가능성이 있는 별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이슨 스피어(Dyson Sphere)는 항성의 복사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 항성을 둘러싸는 구형의 초대형 구조물을 말한다. 이런 구조물이 가능하다면 에너지 문제는 일거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에너지 수요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우주 문명 2단계에 들어서면 행성의 부존 에너지만으로는 부족하고 항성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현재 지구가 태양으로 받는 에너지는 전체 태양 복사에너지의 22억 분의 1에 불과하다. 문명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다이슨 스피어로 태양 복사에너지를 활용할 구상을 하지 않을 수 ..

길위의단상 2024.07.06

신의 연주에 끼어들지 말라니까

"농담 하나 듣겠나. 아인슈타인이 죽고나서 눈을 떠보니 천국이었지. 자기 바이올린도 있었어. 그는 기뻤지. 바이올린을 사랑했거든. 물리학보다 여자보다 더. 천국에서 연주 실력은 어떨지 알아보고 싶었어. 바이올린을 조율하는데 천사들이 급히 그에게 왔어.- 뭐하는 건가?- 연주하려고요.- 관두게. 신께서 싫어하실 거야. 색소폰 연주자시거든.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멈췄어. 그런데 높은 곳에서 색소폰 연주가 들려와. 아인슈타인은 생각했지. 신과 함께 연주하겠어. 우리 합주는 근사할 거야. 그러고는 그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색소폰 연주가 멈추고 신이 나타났어. 신은 아인슈타인에게 다가와 사타구니를 뻥 찼어.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바이올린도 박살났지. 아인슈타인이 바닥에 누워 몸부림치는데 천사가 와서 말했지.- 우..

참살이의꿈 2024.05.26

전보가 사라진다

전보가 도입된 지 138년 만에 곧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보도를 봤다. 옛 시대의 상징이 또 하나 사라지는 것이다. 전보는 1885년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신 시설이 개통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선을 보였다. 사실 '전보(電報)'라는 말은 오랜만에 들었다. 길거리에서 공중전화박스를 만나는 야릇한 느낌이랄까, "아직 전보가 있었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돌아보면 1970년대 중반까지는 전보를 자주 이용했다. 가정에 전화가 보급되기 전이었으니 연락 수단은 편지나 전보였다. 급한 연락을 하자면 전보밖에 없었다. 우체국에 가서 보낼 말을 적어주면 당일로 전달이 되었다.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이 정해지니 문장은 가능한 한 짧게 압축해야 했다. 고등학생 때는 고향집에서 보낸 "어머니상경 5시청량리역" 같은 전보를 자..

길위의단상 2023.12.04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13년 전인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대자보가 하나 붙었다. 제목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로 경영학과 3학년생이던 김예슬이 쓴 것이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대학생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거부 선언이 찬반 논란을 불러왔고, 숨 죽이고 있던 목소리가 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블로그에 대자보 전문을 옮겼고 공감을 표하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은 없었다. 호수에 생긴 파문은 이내 가라앉아 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지배하는 강고한 시스템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김예슬 씨가 선언을 하게 된 배경과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소책자인데 선언을 한 그해에 ..

읽고본느낌 2023.07.30

산업사회와 그 미래

지난달에 '유나바머(UNABOMBER)'가 미국 교도소에서 81세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테어도르 카진스키(T. J. Kaczynski)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우편물 폭탄 테러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오래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보도가 되며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기억이 난다. 유나버머[UNABOMBER = University + Airline + Bomber]란 그가 주로 대학과 항공사에 소포로 포장된 폭탄을 보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여섯 차례에 걸친 폭탄 테로로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 유나바머는 IQ 167의 천재였다. 16세에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가서 수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가 되었다. 어떤 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20대 후반에 그는 갑자기 교..

읽고본느낌 2023.07.01

끼리끼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특성이 오늘의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었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계발되면서 두뇌가 발달하고 문명의 건설이 가능하게 되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공동체에는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이루어진 모임도 많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 인간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결국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 대하기가 편하다. 이해의 폭이 넓은 탓이다. 예를 들어, 내향성인..

참살이의꿈 2023.05.27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빛 공해를 다룬 책이다. 빛 공해란 인공적인 빛에 의해 밤이 밝아져서 생명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다. 건물의 과도한 조명, 낮보다 더 환한 쇼윈도, 자동차 전조등, 마당과 골목 구석구석을 밝힌 전등으로 도시를 말할 나위도 없고 농촌에서도 어둠을 몰아냈다. 문명은 환한 밤을 만들었다. 환한 밤은 동식물의 생태 변화로 나타났다. 철새들은 본래의 경로에서 이탈했고, 곤충 수십억 마리는 가로등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식물들은 계절 감각을 잃어버렸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빛은 전통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통찰과 계몽, 순수의 표상이다. 반면에 어둠은 공포, 범죄, 무지와 연결된다. 하지만 빛의 과잉은 여러 문제점을 낳는다. 이웃간의 분쟁의 소지도 된다. 내가 편리하기 위해 밝힌 빛이 다른..

읽고본느낌 2023.03.04

야생 속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촉망받던 한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는 날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방랑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알래스카의 야생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청년은 크리스 맥캔들리스다. 몇 년 전 영화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를 통해 크리스를 알게 되었지만 이번에 를 읽으며 크리스가 한 행동의 이면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확실히 영상보다는 활자가 논리적이면서 맥을 짚어내는 데는 더 뛰어난 것 같다. 다큐 작가인 크라카우어의 능력인지 모르지만. 책에는 크리스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소개한다. 무모한 이상주의자나 철부지 정도로 폄하하는 것 같다. 별 준비도 없이 알래스카의 거친 야생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오만으로 볼 수도 있다. ..

읽고본느낌 2022.06.05

너무 많은 비밀번호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났다. 이젠 열쇠를 보기 힘들다. 집이나 사무실에는 도어록이 되어 있어 비밀번호를 이용해 출입한다. 차 안에 지도가 사라진 것도 마찬가지다. 길을 찾아가자면 지도가 필수였는데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기억해야 할 비밀번호가 너무 많다. 일일이 구분하지 못하다 보니 비밀번호를 적어두는 장부까지 필요하게 되었다. 내 경우도 비밀번호 비망록이 따로 있다. 나는 도대체 몇 개의 비밀번호를 가지고 있을까. 현관, 휴대폰, 와이파이, 카드 2, 도서관, 포털 3, 통신사, 카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페이, 원드라이브, 삼성계정, 넷플릭스, 국립공원, 광릉수목원, 사진 2, 야생화 2, 걷기 3, 바둑 2, 모야모, 교직원공제회, 국민비서구삐..

참살이의꿈 2022.03.07

용서하세요 / 공재동

태평양 어느 섬에서 찍은 사진에는 비닐장갑과 플라스틱 컵이 마구 쌓여 있었다 파도에 떠밀려 온 죽은 고래 뱃속에서 꺼낸 2037개의 장갑과 3434개의 플라스틱 컵 하나님! 용서하세요 - 용서하세요 / 공재동 한 해에 전 세계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5억 t이 넘는다. 이중 10% 정도가 바다로 버려진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태평양 한가운데는 해류를 따라 모여든 플라스틱 조각들이 떠 있는 쓰레기 섬이 있다고 한다. 무려 한반도 면적의 5배라는데 작은 알갱이여서 육안에는 안 보인다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일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은 대형 해양생물 소식도 이젠 새롭지 않다. 조개나 물고기도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되고 있지만 정확한 실상은 모른다. 먹이사슬을 통해 당장 인간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

시읽는기쁨 2022.01.18

코로나와 마스크

며칠 전에 친구와 동네 당구장에 갔다가 과반이 마스크를 안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빈 테이블 하나가 있어서 자리를 잡았지만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쓰여 제대로 게임을 할 수 없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예의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울철 실내 당구장은 코로나가 전파하기 쉬우므로 조심하는 게 당연하고, 상호간 유일한 방벽은 마스크 착용이 아닌가 말이다. 부리나케 한 게임만 마치고 나오면서 주인에게 왜 이렇게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많으냐고, 쓰라고 강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아예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 가는가 보다. 위드 코로나가 경각심을 누그러뜨린 것 같지만 밖에 나가보면 그렇지 않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너무 잘..

참살이의꿈 2021.12.04

비가 오신다 / 이대흠

서울이나 광주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비가 온다는 말은 장흥이나 강진 그도 아니면 구강포쯤 가야 이해가 된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어떨 때 비는 싸우러 오는 병사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병사의 아내가 지아비를 전쟁터로 보내고 돌아서서 골목길을 걸어오는 그 터벅거림으로 온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 나무 입술이 보타 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 치마로 멀미나는 꽃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 비가 오신다 / 이대흠 농경사회에서는 자연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비나 바람에 대한 표현이 발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비 이름만 해도 수십 가지를 헤아린다. 실비 /..

시읽는기쁨 2020.06.25

코로나19를 보는 글 두 편

코로나19를 대하는 글 두 편을 옮긴다. 첫 번째는 지난달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종철 선생의 칼럼이다. 제목이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이다.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 / 김종철 인류가 소위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역병은 인간 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세계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때로는 국지적으로, 때로는 대륙 전체에 걸친 역병의 창궐과 그 후유증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인 요인은 생산력의 발전이나 계급투쟁 혹은 전쟁이 아니라, 감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표적인 예는 중세 말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일 것이다..

참살이의꿈 2020.05.17

사회적 거리 두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처음에는 생경했으나 이제는 익숙한 말이 되었다. 코로나19가 바꾼 현실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얼마 전에 TV에서 가게가 북적대는 모습을 보여주며 '보복 쇼핑'이라는 표현을 써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참았던 쇼핑을 마치 보복하듯 해댄다는 뜻이다. 전혀 변한 게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전과는 달라지리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나 변할지는 의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시적으로 물리적인 간격 두기에 불과하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세상이 변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들의 익숙한 사고나 습관과의 거리 두기로 연결되어야 한다. 억지로라도 달라질 세상..

참살이의꿈 2020.04.27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사진전을 관람하다. 32개국, 130여 명의 작가들이 3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선보인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인간이 만든 문명을 바라보면서, 우리 삶의 모습을 확인해 보는 사진전이다. 작품은 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벌집(Hive) 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 흐름(Flow) 설득(Persuasion) 통제(Control) 파열(Rupture) 탈출(Escape) 다음(Next) 다양한 사진이 모여 있어서 문명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또한 문명의 그늘에 어두워진다. 인간의 획일화나 탈개성화에 대한 경고를 자주 볼 수 있다. 자연 파괴를 고발하는 사진은 거의 안 보인다. 너무 디스..

사진속일상 2019.02.12

바다의 경고

인간종을 나타내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저 스스로 '지혜롭다'는 명칭을 부여했으니 이만저만 자가당착이 아니다. 까놓고 말해 '지혜롭다'고 하기보다는 '어리석다'라고 하는 게 더 옳다. 하는 짓을 보면 말이다. 일주일 전에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죽은 향유고래가 발견되었다.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배를 해부해 보니 몸속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슬리퍼를 포함해서 플라스틱 컵만 115개가 나왔고, 비닐봉지와 플라스틱병을 합하니 6kg이 넘었다. 사흘 전에는 우리나라 부안 앞바다에서 잡은 아귀 뱃속에서 500ml 페트병이 나왔다. 죽은 물고기를 찍은 두 사진은 끔찍했다. 공기와 물을 더럽히더니 이제는 바다까지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게 인간이다. 제 살아갈 터전을..

참살이의꿈 2018.11.27

스마트폰 멀리하기

스마트폰도 바이러스에 걸리는가, 얼마 전부터 스마트폰이 이상하다. 이전 화면으로 돌아가기를 하면 엉뚱한 데로 들어간다. '데일리 뉴스'라는 생판 처음 들어보는 사이트와 '11번가'라는 쇼핑 사이트가 뜬다. 때로는 먹통이 되기도 한다. 보통 짜증 나는 게 아니다. 재설정을 하고 의심스러운 앱을 지워도 봤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 내 실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열지 않는 것이다. 돌아보니 습관적으로 너무 자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카톡이나 밴드에 새로운 소식이 온 게 없나 하고 수시로 들어간다. 심심하면 이것저것 검색도 한다. 사실 대부분이 쓸데없는 짓거리들이다. 특히 단톡방으로 오는 내용은 읽지도 않고 삭제하는 게 많다. 퍼나르기 하는 것이라 어떤 때는 중복해서 받는다..

참살이의꿈 2018.01.10

나도 보험에 들었다 / 이상국

좌회전 금지 구역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택시기사가 핏대를 세우며 덤벼 들었지만 나도 보험에 들었다 문짝이 찌그러진 택시는 견인차에 끌려가고 조수석에 탔다가 이마를 다친 남자에게 나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법대로 하자고 했다 나도 보험에 들었다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나의 불행이나 죽음이 극적일수록 보험금은 높아질 것이고 아내는 기왕이면 좀더 큰 걸 들지 않은 걸 후회하며 그걸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가구를 바꾸며 이 세계와 연대할 것이다 나도 보험에 들었다 - 나도 보험에 들었다/ 이상국 아내가 공기 청정기를 사 왔다.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휴대폰으로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일이 아내의 일과가 된 지 오래였다. 빨간색이 파란색으로 바뀌는 걸 보..

시읽는기쁨 2017.03.25

30,000,000

전국을 휩쓴 조류인플루엔자(AI)로 한 달 사이에 닭과 오리가 3천만 마리 넘게 살처분 되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천만이라는 숫자에 현기증이 난다. TV 화면으로 보는 살처분 현장은 세기말적 풍경이다. 아우슈비츠가 연상되는 건 과민 반응인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인간도 무더기로 살처분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두렵다. 거의 매년 AI 소동을 겪으며 이런 난리를 치고 있다. 공장식 축산 산업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양계장을 보면 도저히 닭을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야만적이다. 저도 생명일진대 어떻게 저런 대우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수익을 내자면 어쩔 수 없는 받아들여야 하는 시스템에서 축산업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비극이다. 대규모 공장식 축산이 이런 ..

길위의단상 2017.01.05

모르고 지낼 권리

주민끼리 인사를 금지하는 규칙을 정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그것도 일본의 아파트 단지에서다. 처음에는 잘못 본 게 아닌가, 내 눈을 의심했다. 친절하며 인사성 밝기로 유명한 일본인이라 더욱 그랬다. 이 아파트 단지 주민을 대상으로 "이웃과 마주칠 때 인사를 나누고 있나?"라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매번 인사한다"고 답한 사람은 22%, "가끔 인사한다"는 50%, "거의 하지 않는다"는 28%로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마 더 심할 것이다. 엘리베이터와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는 가끔 목례를 하지만, 어른들이 길거리에서 인사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파트 생활의 장점으로 익명성을 든다. 서로를 알 필요가 없고, 각자의 생활에 간섭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참살이의꿈 2016.11.18

외로움이 필요한 시대

외로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하면 정신이 튼튼해지지 못한다. 내면이 허약한 사람이 밖에서 위안을 찾는다. 전철에 타 보면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을 들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심심한 걸 견디지 못한다. 아무 목적 없이 스마트폰을 연다. 기갈에 시달리는 사람들 같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허전해서 불안하다는 사람도 있다. 스마트폰은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을 빼앗아간다. 현대인이 혼자 있을 때 주로 무엇을 하는지 자신을 돌아보면 안다. 외로워야 할 권리를 스스로 반납하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놀 줄 모르는 무능력자가 되어 간다. 어른만 그런 게 아니다. 식당에 가 보면 어린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부모가 많다. 만화영화에 빠져서 얌전해지기 때문이다...

참살이의꿈 2016.05.09

시골 똥 서울 똥

두 달 전 일본 야쿠시마에 갔을 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그곳 산에서는 똥을 누면 비닐에 담아서 내려와야 했다. 화장실은 소변만 볼 수 있었다. 오염이 된다는 게 이유였지만 너무 깔끔을 떠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었는데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의 잿간 같은 방식을 활용하면 굳이 똥주머니를 배낭에 담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고 계시는 안철환 선생이 쓴 순환 농업에 관한 책이다. 선생은 쓰레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순환 농업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찾는다. 똥과 음식물 찌꺼기, 잡초와 농사 부산물 등으로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짓고, 사람은 거기서 소출된 것을 먹고 살며, 나머지는 다시 경작지로 돌아간다. 근대적 농법 이전에 수천, 수만 년 동안 우리 선조들이 해..

읽고본느낌 2015.10.06

석촌호수 산보

저놈은 뭐길래 저리 힘차게 솟아오를까. 딱딱하게 발기하는 거시기 같기도 하고, 오만한 정치꾼이 물고 있는 시거를 닮아도 보인다. 바람에 흔들릴 줄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물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제 키만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낮술을 식힐 겸 석촌호수를 산보했다. 조그마해진 사람들은 러닝머신에 선 것처럼 종종걸음을 쳤다. 별을 잊어버리고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쓸쓸해졌다. 밤에는 맹수에 쫓기는 꿈을 꿨다. 사자 우리에 갇혀서 도망 다니다가 결국은 먹잇감이 되었다. 비명을 지르다가 깼다. 그 뒤로 잠들지 못했다.

사진속일상 2015.03.24

아름다운 가난

"올해 초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는 아들과 딸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보아야 한다는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여행지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물 위에 산다는 수상촌을 방문했을 때였다. 수상촌에 가기 위한 배를 타기 전, 여행가이드는 그곳 마을 아이들에게 나줘 주기 위해서 일행들에게 과자를 몇 박스 사도록 했다. 우리는 당연히 마을의 학교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그 과자를 기부하는 것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배가 수상촌 초입에 들어갈 즈음 그 가이드는 일행에게 과자 박스를 뜯어서 한 봉지씩 던지도록 했다. 아이들은 줄지어 '강남스타일' 춤을 추고..

참살이의꿈 2015.02.26

왜 / 김순일

쥐 소 호랑이 토끼가 달려간다 용 뱀 말 양도 달려간다 식식거리며 잰나비 닭 개 돼지도 달려간다 허둥지둥 앞만 보고 달겨간다 죽을 둥 살 둥 벼랑 끝으로 가랑잎 같은 해가 지고 왜, 달려왔지?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잰나비닭개돼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두리번 두리번 - 왜 / 김순일 언젠가는 왜, 라고 물을 때가 올 것이다. 천지 분간 못하고 달려왔지만 언젠가는 벼랑 끝에 닿을 것이다. 이것은 실존적인 개인의 체험일 수도 있고, 인류 전체의 종말론적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시작되었고 해는 기울어가고 있다.

시읽는기쁨 2014.12.27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천규석 선생의 글은 강력한 생태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환경 근본주의자로 오해받게 생겼다. 시장과 함께 세금과 국가가 작아져야 하고 궁극에는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보는 점에서 선생은 아나키스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 문명의 병폐가 땜질 처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생각할 때 근본을 도려내는 외과수술을 해야 한다는 선생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선생의 비판에는 소위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도 예외가 없다. 한때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 제도정치권이나 시민운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사람들 대부분이 선생의 관점에서는 비판과 부정의 대상이다. 이 책 의 제1부 '꼴불견 세상'에서는 구체적으로 김지하, 박원순, 고은, 유홍준, 노무현 등이 거론된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이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 얼마 전에 ..

읽고본느낌 2014.11.17

도시에서 산다는 것

앞집이 이사 온 지 석 달이 넘었는데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다. 서로 현관문을 마주하고 있는데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벨을 누를 수도 없다. 현관 앞 복도에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가 있는 걸로 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집인 것 같다. 아파트에서의 삶이 너무 삭막하다. 서로 간섭 안 하는 익명성이 편리하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가 맞나 싶다. 우리 아파트는 한 층에 네 가구가 사는데 입주한 지 4년이 되어 가지만 어느 집과도 정식으로 인사하지 못했다. 어쩌다 마주치면 어색한 눈웃음만 지을 뿐이다. 그나마 윗집과는 몇 번 오갔는데 슬프게도 소음 문제 때문이었다. 그래도 얼굴이 익다고 이젠 밖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

참살이의꿈 2014.09.28

스마트폰 한 달

스마트폰으로 바꾼 지 한 달이 되었다. 재미난 노리개가 새로 생겼다. 이놈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늦바람이 무섭다.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라는 걸 사용해 보니 알겠다. 이름은 폰이지만 전화보다는 다른 기능을 더 많이 사용한다. 작지만 무서운 기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스마트폰으로 손이 간다. 누워서 뉴스를 읽고, 요사이는 월드컵이 열리니 관심 있는 경기는 중계도 본다. 일어나 거실로 나가 TV나 컴퓨터를 켤 필요가 없다. 외국에 나가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신기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저장해 놓고 심심할 때면 볼륨을 높인다. 작은 스피커가 아쉽긴 하지만 듣는 데는 지장이 없다. 폰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더욱 좋다. 팥알만 한 렌즈치고는..

참살이의꿈 2014.06.29

매뉴얼의 시대

새로 생긴 직업 목록을 보다가 '연애관리사'가 있는 걸 보고 실소했다. 이젠 연애마저도 코치 받고 관리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성의 심리, 대화 기법, 여러 상황에 따른 대처법, 관계를 이어나가는 흐름 등을 가르친다고 한다. 남자들 사이에 인기라는 '픽업 아티스트(pick up artist)'는 속되게 말하면 여자 꼬시는 테크닉을 전수해 준다. 돈을 주고 연애의 기술을 배우는 시대다. 연애가 좀 서툴면 어떤가, 사랑하는 과정에도 공식과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집 앞에 태권도 학원이 있는데 태권도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온갖 놀이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것도 학원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대로 하는 것 같다. 또래끼리 노는 능력은 퇴화되어 간다. 가끔 마을 뒷산에 오..

참살이의꿈 2014.06.03

어제를 향해 걷다

가고 싶은 해외여행지 일순위가 일본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야쿠시마[屋久島]라는 섬이다. 수천 년 된 나무들이 자라는 미야노우라 산에는 수령이 7,200년이나 되는 조몬 삼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찾아뵙고 경배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조몬 삼나무를 찾아가는 다큐영화 '시간의 숲'이 2년 전에 개봉되기도 했다. 그리고 야쿠시마는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 1938~2002]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마침 선생이 쓴 산문집 를 읽었다. 표지에는 선생에 대한 소개가 이렇게 적혀 있다. "시인이자 농부였고 철학자이기도 했던 야마오 산세이는 졸업장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며 와세다 대학 3학년 때 학업을 접고, 1960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대안 문화 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읽고본느낌 201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