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26

열정의 습관

“섹스를 잘하는 남자와 하는 섹스죠. 여자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남자. 지식과 경험과 전술과 창조성이 풍부한 남자. 터부가 없는, 아주 자유롭고 성적 재능이 있고 대담하고 감각적인 남자와 하고 싶어요. 그에게도 성감대가 아주 풍부하다면 더욱 화려하겠죠.” “남자가 나를 함부로 대했으면 좋겠어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엉덩이를 때리고 몸을 묶은 뒤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체위를 구사하기를 바래요.” “한없이 오래 해보고 싶어요. 두 시간이나 세 시간쯤 계속. 어떤 상상의 힘도 빌리지 않고 완벽하고 감미로운 단계를 지나 오르가슴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그를 잊지 않고 의식하는 섹스. 그러니까 난 끝까지 사정하지 않는 남자를 기다려요.” “낯선 남자에게 반쯤, 거의 부드럽게 강간을 당하는 섹스를 원해요. ..

읽고본느낌 2009.12.28

정상적인 삶의 목록

‘슈퍼클래스’는 위너 중의 위너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함께 가지고 있다. 코엘료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무대 위에서 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 결정하는 사람,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기에 외모 따위엔 신경 쓸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의 특권을 누리고 만인의 선망을 받고 있다고 믿는 꼭두각시들의 줄을 당기는 사람, 그 줄을 어느 날 싹둑 잘라버려 꼭두각시들이 생명과 힘을 잃고 굴러 떨어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코엘료의 신작 소설 ‘승자는 혼자다’[The Winner Stands Alone]는 그런 슈퍼클래스들과 슈퍼클래스의 명성과 권력을 얻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치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을 찾듯 그들은 오직 성공만을 위해..

읽고본느낌 2009.11.25

인생

최근에 중국 소설 세 권을 읽었다. 다이호우잉의 , 그리고 위화(余華)의 와 이었다. 다이호이잉이 문화대혁명이 지식인에게 준 상처를 그렸다면, 위화는 역사에 짓밟힌 민중의 아픔을 그렸다. 그 중에서도 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을 읽는 동안 여러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소설은 푸구이라는 노인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역정을 들려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푸구이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가난뱅이가 된다. 고난의 삶은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마저도 모두 앗아간다. 착하기만 한 아내 자전과 두 자녀 유칭과 펑샤, 사위인 얼시와 손자 쿠건이 각자 기막힌 사연들로 차례로 죽고 노인은 혼자 남는다. 푸구이의 삶은 국공내전과 대약진운동, 문화혁명을 거치며 거친 역사의 물..

읽고본느낌 2008.10.21

현의 노래, 칼의 노래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와 '칼의 노래'를 읽었다. 미려한 문체로 소문난김훈의 글을 그동안은접하지를 못했는데, 이는 김훈에 대한 선입견도 한 원인이었다. 그분의 인터뷰를 기사나 TV로 보았을 때 지나치다 싶은 솔직성과 현실주의가 왠지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해석하는 그분의 견해가 옳다고 느껴지는 일면이 있지만 나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두 소설을 읽어보면서 김훈 특유의 글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바탕에 깔린 사상이랄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그것을 어떤 사람은 탐미적 허무주의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삶의 비극이랄까 눈물겨움 같은 것,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애상이 두 편의 소설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었다.낭만과 서정의 포장을..

읽고본느낌 2007.06.12

눈먼 자들의 도시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먼다. 병원에 찾아가지만 그를 진료한 의사도 눈이 멀고, 눈 앞이 하얗게 변하는 백색실명증은 이렇게 도미노처럼 전 도시로 퍼져 나간다. 정부 당국은눈먼 사람들을 모아 수용소에 격리시킨다. 장님들만으로 살아야 하는 수용소 안은 식량 약탈이나 강간 등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드러나는 지옥으로 변한다. 힘 센 깡패 무리까지 생겨나 식량을 미끼로 금품을 착취하고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아내가 있다. 남편을 돌보기 위해눈이 먼 것으로 위장하고들어와서 이 모든 현상들을 지켜보며 눈먼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수용소를 탈출하게 되는데 바깥 세상 또한 마찬가지로 변해 있었다. 모든 사람..

읽고본느낌 2005.12.18

소립자

오랜만에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미셀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소립자(Les Particules)'라는 책이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물리적 내용을 소재로 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20세기 서구 사회의 변화와 그 와중에 희생된 개인의 일생과 문명의 전환을 다룬 스케일이 큰 소설이다. 특이한 점은 포르노 수준의 적나라한 성 묘사가 가득해서 읽는 사람을 나른하고 어둡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나니 ‘소립자’라는 제목이 전혀 엉뚱한 것만도 아니었다.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각 개인은 마치 소립자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소립자는 외부의 물리적 장(場)에 의해 영향을 받고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하는 독립적인 존재이다. 이 책..

읽고본느낌 200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