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23

사라진 아이들

작년 여름에 콜롬비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마존 정글 지대에 경비행기가 추락했다. 배행기에는 세 명의 성인과 네 명의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하는 데 2주가 걸렸는데 파손된 비행기에는 아이들의 어머니를 비롯해 세 명의 성인 사체가 있었다. 아이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열세 살(여), 아홉 살(남), 네 살(남), 한 살(여)짜리 남매들이었다. 콜롬비아 군과 원주민을 중심으로 수색대가 조직되어 아이들의 생존 흔적을 발견하고 추적에 나섰다. 40일간의 수색 끝에 생존해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추락 지점에서 직선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아이들은 맹수, 독사, 독충이 우글거리는 열대밀림에서 40일을 견디어 냈다. 한 살짜리 막내도 살아 있었는데, 수색대는 막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

참살이의꿈 2024.11.23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독서란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일상에서는 절대 접촉하지 못할 사람을 책에서는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사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내 질문에 저자는 책의 어디선가에서 꼭 답을 해 준다. 물론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를 쓴 전범선 씨는 특이한 이력과 함께 별난 삶을 산다. 학력은 상위 0.1%라고 할 정도로 화려하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을 거쳐 컬럼비아 로스쿨까지 합격했다. 엘리트 계급에 진입하고도 남을 스펙이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밴드를 만들어 기타를 잡고 노래를 한다. 그뿐이 아니다. 폐점 위기에 몰린 인문학 서점을 인수해서 살리고, 해방촌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동물 보호와 기후 위기를 막는 운동에 앞장선다. '휘뚜루마뚜루 자유롭게 산다는 것..

읽고본느낌 2024.10.16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대학생 때 다니던 교회 청년회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명씩 신앙의 선조들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다. 루터, 칼뱅, 웨슬리 등을 다루었는데 칼뱅에 대해서는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는 이미지가 그때 새겨졌고 오래 유지되었다. 뛰어난 개신교 이론가였던 칼뱅은 제네바를 신이 다스리는 도시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칼뱅이 저지른 오류에 대해서 그때는 알지 못했다. 분명 칼뱅의 선한 의도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쓴 자료만 제공받았을 것이다. 악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수긍했을 수도 있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칼뱅도 마찬가지다.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는 칼뱅의 종교적 독단에 반대하며 관용의 정신을..

읽고본느낌 2024.09.03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이문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이문재 자유와 고독, 어떻게 보면 서로 대척점에 선 말 같다. 그렇다면 둘을 잘 조화시키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아도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고독만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가 아니..

시읽는기쁨 2022.03.05

나는 5.18을 왜곡한다 / 최진석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왜곡한다. 1980년 5월 18일에 다시 태어난 적이 있는 나는 지금 5.18을 그때 5.18의 슬픈 눈으로 왜곡하고 폄훼한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면서 그들에게 포획된 5.18을 나는 저주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 금남로, 전일빌딩, 전남도청, 카톨릭센터, 너릿재의 5.18은 죽었다. 자유의 5.18은 끝났다. 민주의 5.18은 길을 잃었다. 5.18이 전두환을 닮아갈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속았다. 3.1, 4.19, 6.10, 부마항쟁의 자유로운 님들께 동학교도들의 겸손한 님들께 천안함 형제들의 원한에 미안하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를 가둔 5.18을 저주한다. 그들만의 5.18을 폄훼한다. 갇힌 ..

시읽는기쁨 2020.12.25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 평과 까치집 세 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 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엔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려 내려와 밤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서 ..

시읽는기쁨 2017.11.24

희망

은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신 뒤인 2011년에 나온 산문 선집이다. 선생이 어떤 분이시고 사상의 바탕은 무엇인지 이 책 한 권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선생의 인간적 면모가 진솔하게 드러난 글이 많다. 선생은 글을 쉽게 쓴다. 학자인 체하는 어려운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중학생만 되어도 이 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이 글을 쓰는 목적은 오직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잠자는 민중을 깨우기 위해서는 누구나 알 수 있게 쉽게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선생이 존경하는 노신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의 선생은 노신의 글을 읽으면서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에 감동했다고 한다. 단순히 지식을 상품으로 파는 것에 안주하는 교수나 문예인이 아니라, 고난받는 이웃과 함께하려는..

읽고본느낌 2014.03.19

노예 12년

인류의 슬픈 역사를 증언하는 영화다. 불과 100여 년 전에 이런 비극의 역사가 있었다. 흑인은 소유물이었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노예 수입이 금지되어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된 1840년대 미국, 가족과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남부 루이지애나로 팔려간다. 나쁜 제도와 인간의 탐욕이 만날 때 얼마나 사악한 일이 벌어지는지 이 영화는 보여준다. '노예 12년'은 한 개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지만, 사회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누가 노예인가? 그렇다면 노예주는 자유인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노예주 또한 사회적 이데올로기나 고정관념의 노예일 뿐이다. 영화에 나오는 악명 높은 주인 역시 돈과 정욕의 노..

읽고본느낌 2014.03.11

조르바

이런 말을 남긴 조르바는 누구인가? "새끼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기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리쳐 잘라 버렸어요." "하느님요? 자비로우시고말고요. 하지만 여자가 잠자리로 꾀는데도 이거 거절하는 자는 용서하시지 않을걸요. 거절당한 여자는 풍차라도 돌릴 듯이 한숨을 쉴 테고, 그 한숨 소리가 하느님 귀에 들어가면, 그 자가 아무리 선행을 많이 쌓았대도 절대 용서하시지 않을 거라고요." "도 닦는 데 방해가 된다고 그걸 잘랐어? 이 병신아, 그건 장애물이 아니라 열쇠야, 열쇠."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길위의단상 2013.02.05

박새에게 세들다 / 복효근

감나무 뒤 가까운 담벼락 돌틈 사이 박새 부부 둥지를 틀었나 보다 3월도 중순 너머 그런가보다 하기로 했다 안방에 둥지를 트는 것도 아니어서 새소리 몇 가락으로 세를 받기로 하고 새끼 깔 그동안만 전세 내주지 담벼락 앞 감나무 사이 나무 하나 더 심으려 무심코 정말 무심코 오늘 구덩이 하나 파려는데 갑자기 박새 부부 내 앞을 달겨든다 네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기도 하다 점유권을 주장한다 아차차 그동안 몇 조각 새소리 미리 받아 들었던 게 죄로구나 엉겹결에 구덩이를 포기하고 나무 심기를 포기하고 이 봄을 저 박새 부부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저 부부 정말 전세 등기라도 한 모양 당당해서 아무 말 못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 나무란 나무 제 식탁으로 대숲 그늘은 제 주방으로 저 하늘 구름은 제 신혼이불로 내 안..

시읽는기쁨 2012.09.27

자유와 불안

얼마 전에 어느 보험회사에서 17개국을 대상으로 은퇴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항목 중에 은퇴라고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유라는 답이 가장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반 이상이 불안이라고 대답해 대조를 이루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들도 은퇴라고 하면 자유와 행복, 만족이 우선 연상되었다. 비단 우리나라만 은퇴를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과 지루함 등의 부정적인 개념들과 연결시키고 있었다. 은퇴를 불안과 연관시키는 건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훨씬 낮은 나라에서도 은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보면 꼭 경제적인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사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퇴..

참살이의꿈 2011.06.13

소유와 자유의 황금분할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으려 한다. 돈이 많으면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갖고 싶은 것도 무엇이든 살 수 있으며, 가고 싶은 곳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황홀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것이 자유의 전부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토록 원하던 돈을 조금이라도 만지기 시작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는 얻는 듯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는 박탈당하기 시작한다. 점점 가족들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사적인 휴식도 줄어만 간다.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있을 자유는 손톱만큼도 얻을 수 없게 된다. 무한한 자유를 얻으려고 했지만 사실 일할 자유 외에는 다른 어떤..

참살이의꿈 2011.02.09

알람을 끄다

아침 6시면 단잠을 깨우던 휴대폰의 알람을 OFF 시켰다. 드디어 오늘부터 알람이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밥벌이를 위해 살았던 시간표의 삶에서 떠났다. 아직 공식적으로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남은 기간은 미련 없이 휴가를 내고 쉬기로 했다. 알람을 끄고 넥타이를 벗어던질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날이 결국은 찾아왔다. 일상의 짐을 벗어버린 지금은 홀가분하다. 사람들은 십중팔구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묻는데, 너무 자주 들어 이젠 대꾸하기도 지쳤다. 그저 허허 웃기만 한다. 당분간은 아무 일 없이 지낼 것이다. 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걷고 싶을 때 걷는다. 책이 고프면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묻혀 지낸다. 그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짜증 가득한..

길위의단상 2010.12.20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 정현종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 정현종 아무개가 선사(禪師)를 찾아가 불법을 물었다. 선사가 말했다. “방하착(放下着)!”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아무 것도 가져온 게 없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다시 짊어지고 가거라!” 깨달음은 한 순간에 찾아왔다. 인간사 모든 문제는 내 마음에서 일어난다. 다들 자신이 만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낑낑거리며 힘들어한다. 돈, 명예, 성공, 체면, 과거의 아픈 기억 등 집착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스스로 차꼬를 차고 고생하고 있는 꼴이다.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나’라는 물건도 쉽게 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가벼워질 것인..

시읽는기쁨 2010.11.11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새는 날개로 허공을 받치고 떠오를 때 새다 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 반짝이는 눈으로 지상을 응시할 때 새다 버려진 먹이를 찾아 인가의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먹다 남은 먹이를 얻으려 육식동물의 곁을 어정거리는 놈들은 이미 새가 아니다 철원에 가서 겨울 독수리 떼를 보았는데 인간들이 던져둔 고기에 취해 검은 쉼표들처럼 빈 들판에 날개를 접고 있었다 상원사에 가서 고운 멧새들을 보았는데 방문객들의 손바닥에 올라 스스럼없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새가 아니라 가금(家禽) 언젠가는 닭처럼 날개를 잃게 되리라 간악한 인간의 손들이여 새의 날개를 꺾지 말고 그들을 맑은 날개 위에 올려라 -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지난 여름, 광릉수목원에서 기르던 늑대가 우리를 탈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살되..

시읽는기쁨 2009.10.14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보고 싶지 않은 신문, 조선일보를 요즈음 들어서는 가끔 들쳐보고 있다.'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이라는 연재물 때문이다. 오늘 신문에 실린 시가 이것인데, 일독했을 때 문득 정신이 번쩍 드..

시읽는기쁨 2008.03.28

염소와 풀밭 / 신현정

염소가 말뚝에 매여 원을 그리는 안쪽은 그의 것 발을 넣고 깨끗한 입을 넣고 몸을 넣고 줄에 매여 멀리 원을 그리는 안쪽은 그의 것 염소가 발을 넣고 뿔을 넣고 그리는 원을 따라 원을 그리는 하늘도 안쪽은 그의 것 그 안쪽을 지나가는 가슴 큰 구름이며, 새들이며 뜯어먹어도 또 자라는 풀은 그의 것, 그러하냐. - 염소와 풀밭 / 신현정 말뚝에 매인 것이 염소만은 아니다. 누구나 이 시를 읽으면 자신을 염소에 대입시키게 된다. 줄의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말뚝의 운명을 타고 났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사실을 비관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에게 주어진한정된 범위의 삶을 즐기고 자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 안의 풀이 나의 것이듯, 원의 안쪽을 지나가는 구름이며, 새들 또한 나의 즐거움이 ..

시읽는기쁨 2008.03.04

자유와 자유인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자유인이란 상식적 규범의 틀에서 벗어날 줄 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자유인을 꿈꾸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만, 우리를 옭아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틀을 직시하고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실제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사람들의 자유란 안온한 그 틀 안에서의 자유를 가리키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식의 자유란 사실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추종하는 무리를 우중(愚衆)이라고 불러도 괜찮다면, 우중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사니까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이다. 안 된 말이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있다. 그들에게는 상식의 틀을 깰 자의식도 용기..

참살이의꿈 2007.06.15

옹손지 / 김관식

해 뜨면 굴(窟) 속에서 기어나와 노닐고 매양 나물죽 한 보시기 씨래기 밥 두어 술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다 남루(襤褸)를 벗어 바위에 빨아 널고 발가벗은 채 쪼그리고 앉아서 등솔기에 햇살을 쪼이다 해지면 굴(窟) 안으로 기어들어 쉬나니 - 옹손지(饔飡志) / 김관식 인간에게는 자유 본능이 있다. 그것이 일상의 굴레에 매몰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렇지 않다면 노예에 다름 아닐 것이다. 세속적 명리를 추구하다가도 '이건 아닌데'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옹손지(饔飡志)란 아침, 저녁의 끼니를 뜻한다고 한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러나 먹고사니즘에서의 초탈을 꿈꾸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대한민국 시인 김관식은 보통 사람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았다. 어떻게 보면 그의 생은 짧고 불..

시읽는기쁨 2007.01.06

집오리는 새다 / 정일근

왜 집오리는 날지 않을까, 기러기목에 속하는 우아하고 튼튼한 날개를 접어 퇴화시키며 저 넓고 푸른 하늘의 자유를 포기한 채 일용할 하루의 양식을 위해 도시의 더러운 시궁창에 거룩한 황금색 부리는 묻는 날지 않는 새, 집오리 시립 도서관의 먼지 쌓인 서가처럼 TV 앞에 침묵하는 우리들처럼 스포츠에 거세당한 이 시대처럼 날지 않는 집오리여, 너는 새다 길들여진 관습과 타성의 질긴 그물을 찢으며 빈 발목을 죄는 불안한 시대의 불안한 생존 사육의 쇠사슬을 풀고, 혁명하라 날아라 집오리여, 새여 달 밝은 우리나라의 가을밤 기역 자 시옷 자로 무리지어 힘차게 날아가는 쇠기러기, 청둥오리떼를 따라 우리 다 함께 무서운 무리의 힘으로 힘차게 날개짓 하며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유의 하늘로 푸른 하늘로 - 집오리는 ..

시읽는기쁨 2006.10.21

언젠가는 / 제임스 카바노

언젠가는 떠나련다 자유로워지련다 무미건조한 것들을 지나 안전한 밋밋함을 떠나 연락처도 남기지 않으련다 황량한 광야를 가로질러 그곳에 세상을 떨구기 위해 아무런 근심 없이 떠돌련다 한가한 지도책처럼 - 언젠가는(Some Day)/ 제임스 카바노(James Kavanaugh) 새장 속에 새들이 있다. 그들은 새장 안에서 태어나 새장 안에서 죽는다. 그들은 새장 안 좁은 공간이 온세계라 알고 있다. 그중의 한 마리가 새장 밖의 세계를 꿈꾼다. 자유와 해방을 꿈꾼다. 항구에 정박한 배는 안전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를 만든 목적은 아니다.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를 헤치며 전진할 때 배는 살아있다. 이 시를 읽으면 또한 갈매기 조나단도 연상된다.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보다는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자주적 사..

시읽는기쁨 2006.09.28

에버렛 루에스

에버렛 루에스(Everett Ruess)는 1914년 미국 오클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재주가 뛰어났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을 들어가지만 거짓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에 환멸만을 느낍니다. ‘영원한 자유의 영혼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싶었던 내가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철창이 없는 감옥, 나는 이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주위엔 온통 길들여진 사람들뿐이다. 거짓말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뻔뻔스런 얼굴이다. 어쩌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도시가 싫다. 거짓말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는 문명 세계 대신에 자연의 품을 택합니다. 자연 속에서의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던 그는 결국 19..

읽고본느낌 2006.01.08

자유 / 김남주

자유 (김남주)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 흘려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이 시를 읽으면 두렵다. `위선자`라는 벼락 소리가 내 정수리 위로 쏟아질 것 같다. 인간은 철저히 이기적이다. 물론 나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난한 이웃, 고통받은 생명..

시읽는기쁨 2003.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