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37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대학생 때 다니던 교회 청년회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명씩 신앙의 선조들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다. 루터, 칼뱅, 웨슬리 등을 다루었는데 칼뱅에 대해서는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는 이미지가 그때 새겨졌고 오래 유지되었다. 뛰어난 개신교 이론가였던 칼뱅은 제네바를 신이 다스리는 도시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칼뱅이 저지른 오류에 대해서 그때는 알지 못했다. 분명 칼뱅의 선한 의도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쓴 자료만 제공받았을 것이다. 악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수긍했을 수도 있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칼뱅도 마찬가지다.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는 칼뱅의 종교적 독단에 반대하며 관용의 정신을..

읽고본느낌 2024.09.03

사람들은 왜 사이비에 빠질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인 '나는 신이다'가 연일 화제다. 종교를 내세운 집단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동시에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사악한 교주나 교리에 끌려 신도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도 자연스레 들게 된다. 먼저 이단과 사이비는 구별해야 한다. 이단은 경전을 정통 교단의 가르침과 다르게 해석하는 집단이다. 지금의 기독도교 초창기에는 이단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초기 기독교회는 유대교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스데반은 유대인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은 최초의 순교자였다. 개신교가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가톨릭계로부터 이단시되었다. 그러므로 이단이라는 표현보다는 비주류라고 불러야 ..

길위의단상 2023.03.19

나는 신이다

MBC가 만들어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사이비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총 8부작으로 JMS를 비롯해 네 집단을 다루고 있다. - JMS, 신의 신부들 - 오대양, 32구의 변사체와 신 - 아가동산, 낙원을 찾아서 - 만민중앙교회, 만민의 신이 된 남자 이미 공개되었던 내용들이라 새로운 것은 없지만 공중파에서 담지 못한 수위가 높은 장면 때문에 사람들에게 준 충격이 큰 것 같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한 효과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아한 것은 범죄를 저지른 교주들이 처벌을 받았거나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도들이 따르고 떵떵거리며 산다는 점이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에 비해 뒤처리는 너무 약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단이냐 아니냐는 기존의 정통 교리..

읽고본느낌 2023.03.12

엔드 오브 타임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두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하나는 엄밀한 과학 법칙의 지배를 받는 우주의 맹목성에서 오는 무의미함과 공허다.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 우주의 미래는 열역학적 죽음으로 귀결한다. 결국은 모든 것이 암흑의 차가움 속에 사라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가냘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경이와 기쁨이다.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참으로 하찮은 존재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지적 능력은 우주의 태초부터 미래까지를 그려 보일 수 있다. 우주와 함께 인간 자체도 경외롭다. 은 부제가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이다. 지은이인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은 초끈이론을 대표하는 물리학자면서 저서와 방송을 통해 과학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인물이..

읽고본느낌 2022.12.30

콜로니아: 사악한 믿음의 마을

종교에 빠지는 인간의 심리에 관심이 많다. 한 번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이성이 마비되고 너무나 쉽게 맹신의 늪에 떨어진다. 사악한 종교 지도자는 이런 인간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취한다. 유사 이래 종교의 탈을 쓴 이런 집단은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인간의 마을을 파괴해 왔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현재진행형일지 모른다. '콜로니아: 사악한 믿음의 마을'은 최근에 넷플렉스에 올라온 다큐멘터리 드라마다. 1961년 칠레에 독일인들 수백 명이 이주해 와서 신앙 공동체(콜로니아 디그니다드)를 만든다. 우두머리는 파울 셰퍼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출신이다. 전후의 황폐한 시기에 기독교 리더로 등장해 활동하다가 소아 추행에 관련되어 추방 당하자 추종자를 이끌고 칠레에 정착한 것이다. 콜로니아 디그니다..

읽고본느낌 2021.10.18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다. 요사이는 책 읽기가 힘들다. 습관적으로 책을 펴지만 활자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영상을 자주 본다. 그것도 보통 때와 달리 스릴러물을 찾게 된다. 요사이 내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의 배경은 1950년대 미국의 한 시골 마을이다. 참혹한 2차대전의 트라우마를 안고 귀향하는 청년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마을 분위기는 어둡고 황량하다. 주민들은 폭력과 광신에 노출되어 있다. 순박한 정신과 삶은 악마의 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인간과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악마는 다른 게 아니다. 타인을 내 욕망 충족의 도구로 여기는 자가 악마다..

읽고본느낌 2021.10.05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9/11 테러가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다. 며칠 전에 그라운드 제로에서 추도식이 열리는 뉴스를 봤다.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발생한 이 미증유의 테러로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여객기가 무역센터에 충돌하고 이어서 건물이 붕괴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모골이 송연하다. 최근에 넷플릭스에 나온 다큐멘터리 드라마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Turning Point: 9/11 and the War on Terror)'은 테러가 일어난 배경과 미국의 보복 과정을 복기하듯 보여준다. 사건에 관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9/11과 이후 경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실성 높은 다큐멘터리다. 발단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미국은 반..

읽고본느낌 2021.09.16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1980년대 후반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오쇼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내 책장에도 그때 사서 읽었던 오쇼 책이 10여 권 꽂혀 있다. 기성 종교나 체제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던 사람들이 오쇼에 심취했다.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넘나들며 펼치는 그의 화려한 필체에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는 넷플릭스에서 만든 6부작 다큐멘터리다. 1981년에 오쇼는 인도 아쉬람을 정리하고 미국 오리건주 앤털로프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오쇼의 비서였던 쉴라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공동체 실험의 시작부터, 주민과의 갈등으로 실패해서 1985년에 철수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쉴라를 비롯해서 그때의 운동에 함..

읽고본느낌 2021.07.15

메시아

10부작의 미국 드라마다. 2천 년 전의 역사적 예수가 현대에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라는 관점에서 흥미 있게 보았다. 드라마에서는 갑자기 등장한 이 사람이 메시아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아마 당시 예수도 그런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이 사람 이름은 알마시히다. 이란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전쟁의 포화 속에 휩싸인 시리아에 나타나 모래폭풍을 일으켜 IS를 격퇴한다. 이슬람과 기독교를 아우르는 구세주인 셈이다. 미국 CIA에서는 이 독특한 인물을 추적하며 정체를 밝히려 한다. 알마시히는 돌연 미국으로 가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워낙 화제를 모으다 보니 미국 대통령과도 면담하게 된다. 알마시히는 여러 기적을 행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워싱턴에서 물 위를 걷는 기적이다. 많은 사람 앞에..

읽고본느낌 2020.08.10

신의 진화

종교와 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해 왔는지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 책이다. 생물체가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듯이, 신 개념도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다. 신은 고정된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변화하는 개념임을 아브라함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이 책 는 미국의 저술가인 로버트 라이트가 썼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과학자답게 종교 역시 그런 틀로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방대한 내용이면서 종교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데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미신적인 신앙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원시인들은 두려움에서 신을 찾았을 것이다.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을 거쳐 고대 국가가 들어서면서 종교도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

읽고본느낌 2020.07.25

금강경[19]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이 십억이나 되는 가없는 세계에 일곱 가지 보배를 가득 채워 이 보배를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면 이 사람은 이와 같은 인연으로 많은 복을 얻겠습니까?" "그렇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이 사람은 그와 같은 인연으로 참으로 많은 복을 얻겠습니다." "수보리여, 만일 저 복과 덕이 참으로 '나'가 있는 복과 덕이라면 여래는 '복과 덕을 많이 받는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복과 덕은 결코 '나'가 있는 복과 덕이 아니기에 여래는 '복과 덕이 많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금강경 19(법계와 하나 된 삶, 法界通化分) 도올 선생은 21세기 인류의 과제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가 자연과 인간의 슬기로운 공존, 둘째가 모든 종교와 이념간의 배타의 해소, 셋..

삶의나침반 2020.04.22

정원사의 방울

위고의 2권에는 파리에 있는 봉쇄 수녀원 얘기가 나온다. 장발장이 자베르 형사를 피해 은신한 곳이다. 봉쇄 수녀원은 '봉쇄'라는 이름 그대로 외부와 단절된 곳이다. 더구나 남자는 절대 접근 금지 구역이다. 그래도 수녀원을 운영하자면 남자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 이 봉쇄 수녀원에는 정원사와 잡일을 겸하는 유일한 남자가 산다. 포슐르방이라는 노인으로 절름발이다. 장발장은 전에 포슐르방의 생명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에 피신할 수 있었다. 정원사 노인은 발목에 방울을 달고 있다. 그가 움직이면 방울 소리가 난다. 수녀들은 방울 소리가 나면 얼른 숨는다. 정원사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다. 남자와 만나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정원사의 방울은 '내가 여기 있으니 피하시오' ..

참살이의꿈 2019.01.31

사월 초파일 칠보사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칠보사(七寶寺)가 있다. 사월 초파일 오후에 연등 구경을 하고 싶어 칠보사로 향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절이 꽤 분주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오전 행사 뒤 대부분이 돌아가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연등은 기대보다 초라했다. 대웅전 앞에는 운동회가 열리듯 만국기가 펄럭였다. 스님은 평일인 듯 한가하게 산책하고 계셨다. 조계사 같은 큰 절의 화려한 연등이 너무 머릿속에 박혀 있었나 보다. 사실은 이런 작은 절이 정상인지 모른다. 시주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대형 절의 연등은 보기에는 장관일지 몰라도 너무 뻐기는 폼이 부담스럽다. 내 복을 기원하는 게 자랑일 수 없다. 만약 설법이나 설교, 강론에서 복을 바라는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교는 부처가..

사진속일상 2016.05.14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천주교 세례를 받았지만 천주교 신자냐고 물으면 확신이 없다. 성경에서 서술하는 하느님을 믿지 못한다. 미사 시간에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는 입이 다물어진다. 역시 글자 그대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우주에 존재하는 신성(神性)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내 안의 종교심도 부정할 수 없다. 전통적인 신앙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종교인이라는 말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어정쩡한 상태다. 그래서 사서 읽은 책이 다. 알랭 드 보통이 썼다. 저자는 무신론자다. 그렇다고 종교가 가진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제다. 종교의 관념과 실천 가운데 일부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읽고본느낌 2015.06.20

종교 단상

신앙에서 속물성은 초월성이 강조될수록 두드러진다.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가 진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근본주의일수록 속물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절대 권력이 부패하듯 절대 진리에 대한 맹신은 인간을 속물화하고 타락시킨다. 집단화되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기독교의 근본주의, 이슬람의 IS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극단은 극단과 통한다. 종교에서도 아예 세상을 버리거나, 아니면 세상에 더 집착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우상이 된다. 맘몬 숭배가 종교의식을 빌려 성행하는 세상이다.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믿음이 좋다'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경계를 하게 된다. 대단히 속물화되어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은 자신의 속물성에 면죄부를 주는 도구다. 한국 교회는 경제 성장과 쌍두..

참살이의꿈 2015.03.15

함석헌 읽기(15) - 퀘이커 300년

이 책은 함석헌 선생의 번역서다. 퀘이커 운동이 시작된지 300돌을 맞으면서 퀘이커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하워드 브린턴(Howard Brinton)이 쓴 가 원저다. 퀘이커 신앙은 독특한 데가 있다. 개신교의 일파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톨릭에 더 가깝다. 챙이 넓은 모자에 수수한 검은 옷을 입고 문명을 거부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퀘이커는 예수의 복음에 가장 근접한 삶을 살지 않나 싶다.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다. 선생도 해방 후에 퀘이커를 접하고 모임에 나가면서 친우회원이 되었다. 퀘이커를 알기 위해 여러 차례 해외여행을 하기도 했다. 퀘이커가 매력적인 건 '침묵의 예배'다. 고정된 전례나 목회자가 없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임하심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묵상 중에 떠오른 영감을 나눈다...

읽고본느낌 2013.10.14

희망

랍비 아키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나귀와 개와 작은 램프를 갖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기 시작하자 아키바는 헛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램프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와 램프가 꺼져 버려 그는 하는 수 없이 잠을 자야만 했다. 그날 밤 여우가 와서 그의 개를 죽여 버렸고, 사자가 와서 당나귀를 죽여 버렸다. 아침이 되자 그는 램프를 갖고 혼자서 터벅터벅 출발했다. 어떤 마을 근처에 다다랐는데,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날 밤 도둑이 습격하여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몰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램프가 바람에 꺼지지 않았더라면 그도 도둑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또 개가 살아 있었더..

참살이의꿈 2013.04.03

타력

일본 불교 중 하나인 정토진종(淨土眞宗)을 처음 접한 건 10여 년 전 키요자와 만시가 쓴 라는 소책자를 통해서였다. 불교지만 타력신앙을 강조하는 점에서 기독교 신앙과 닮은 데가 많아서 놀랐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 같은 것이다. "사람은 무한자(無限者, The Infinite) 또는 절대자(絶對者, The Absolute)와 만남을 통해서만 든든한 토대 위에 설 수가 있다." "인간을 초월하는 힘[他力]을 의존함으로써 얻게 되는 내적 평안이 신심(信心)이다." "종교는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따라가야 하는 그런 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너머로 가서 닿는 길이다." "나는 내 지력(知力)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래(如來)를 믿고 의지한다." 정토진종을 창시한 사람은 신란(親鸞..

읽고본느낌 2013.04.02

분홍색 연기

지난 13일에 새 교황이 선출되었다. 전임 교황이 생존한 상태에서 사임한 것이 특이했는데 바티칸 내부의 권력 암투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구중궁궐 깊숙한 곳의 얘기라 어차피 추측성 기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새로 뽑힌 교황의 본명이 '프란치스코 1세'로 명명된 게 오히려 더 신기했다. 프란치스코(1181~1226)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중세 시대의 성인이다. 철저한 무소유 정신으로 예수의 정신에 가장 일치하게 살았던 분이었다. 프란치스코의 평화와 생명의 영성은 가톨릭의 빛나는 자산 중 하나다. 가톨릭 신자는 존경하는 성인의 이름을 따라 자신의 본명을 짓는다. 교황도 마찬가지다. 교황직을 수락하면서 옛 이름을 버리고 존경하는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을 골라서 본명을 새로 짓는다..

길위의단상 2013.03.27

종교는 행(行)이다

어느 스님의 법문에서 불교를 행(行)의 종교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이때까지 불교를 마음의 종교, 깨달음의 종교라 알고 있었다. 깨달음을 통해 윤회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열반의 세계에 드는 것이 불교를 믿는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깨달음과 행이 분리된 게 아니었다. 하루하루의 행이 쌓여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정진하는 힘이 된다. 알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믿음이란 행이며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는 자비행, 보살행, 신수봉행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신수봉행(信受奉行)이란 믿고 받아서 받들어 행한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불교만이 아니..

참살이의꿈 2012.07.03

술이 종교보다 좋은 여덟 가지 이유

요네하라 마리의 글을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보았다. '술이 종교보다 좋은 여덟 가지 이유'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사람은 아직 없다. 2. 다른 술을 마신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이 일어난 경우는 없다. 3. 판단력이 없는 미성년자에게 음주를 강요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4. 마시는 술의 상표를 바꿨다는 이유로 배신자 취급을 당하지는 않는다. 5.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화형이나 투석형에 처해진 사람은 없다. 6. 다음 술을 주문하기 위해 2,000년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다. 7. 술을 많이 팔기 위해 속임수를 쓰면 법에 따라 확실히 처벌받는다. 8. 술을 실제로 마시고 있다는 것은 간단히 증명할 수 있다.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 있는 어..

길위의단상 2012.06.08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

은 현경 선생(유니언 신학대학 교수)이 이슬람 국가 17개국을 일 년 동안 다니며 무슬림을 만나 대화를 나눈 순례기다. 2001년의 9. 11 사건에 충격을 받은 지은이는 이슬람의 이해와 종교간 평화를 위해서 이슬람 국가를 찾는다. 서구의 시각이 아닌 아랍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9. 11 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퍼부었다. 종교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던 현경은 이런 사태를 관망만 할 수는 없었다.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서방세계 사이에 평화를 다리를 높고 싶었던 선생은 두 가지의 질문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이슬람이 원하는 평화는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이슬람 여성들이 삶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였다. 선생은 12..

읽고본느낌 2012.05.21

잊혀진 질문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기 직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보냈던 종교적 질문이 공개되었다. 1987년, 죽음을 앞두고 신과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을 24개의 질문으로 물었다. 당시 정의채 신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직접 만날 예정이었으나, 이 회장의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한다. 묻혀 있던 질문이 차동엽 신부를 통해 이번에 알려졌다. 이 질문을 접하면서 우리나라 제일의 부자이기 이전에 죽음 앞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이만큼 정리하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상당한 관심과 진리에 대한 갈증이 있었을 것이다. 이병철 회장의 또 다른 모습이다. 다음이 이 회장의 24가지 질문이다. 1. 신(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

참살이의꿈 2012.02.04

신과 인간

1996년 3월 27일, 알제리에 있는 티베린 수도원에서 프랑스인 수사 일곱 명이 반군에게 납치되었다. 반군은 인질과의 교환 협상을 벌이다가 거부당하자 두 달 뒤 수사 전원을 살해했다. '신과 인간'은 이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반군은 사전에 수사들에게 알제리를 떠날 것을 경고한다. 정부 쪽도 같은 권고를 한다. 그러나 수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남기로 결정한다. 거듭된 생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을 하면서 신의 부름에 충실히 따른다. 영화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들의 고뇌와 의지를 그려 나간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기관총을 장착한 전투용 헬기가 굉음을 내며 수도원 바로 위에 떠서 협박한다. 그 소리에 맞서 수사들은 수도원 안에 함께 모여 찬송을..

읽고본느낌 2012.01.26

축의 시대

[The Great Transformation]에는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종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저작이다.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Axial Age)라 부른 시기는 BC 900년에서 BC 200년 사이다. 이때에 세계의 네 지역에서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지혜가 태어났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축의 시대는 역사상 지적, 심리적, 철학적, 종교적 변화가 가장 생산적으로 이루어졌고, 인류 의식이 한 단계 성숙해진 창조의 시기였다. 우리는 영적 천재들이 살았던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저자는 ..

읽고본느낌 2011.09.26

[펌] 당신들의 하나님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등 한국의 보수대형교회 목사들을 내세운 우파 성향의 기독교 정당 결성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반공·친미를 표방하고 있으며, 기독교 정당 결성을 위한 준비단계로 포럼을 주도한 청교도영성훈련원장 전광훈 목사의 발언을 보면 그 단체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종북좌파들과 반기독교 세력들에 의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조용기 목사와 김홍도 목사 등 원로들이 기독교를 표방해 정당을 준비하려는 이들에 대해 사전 정지작업을 해주면 내가 나서기로 했다." 교회국민운동본부가 배포한 포럼 홍보물에는 '종북좌파들의 국가 부정과 적화 통일, 수쿠크법과 이슬람의 비정상적 포교, 북한의 인권문제, 동..

길위의단상 2011.08.29

신을 위한 변론

서구에서는 지금 무신론이 유행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을 쓴 리처드 도킨스나 를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이 있다. 이런 종류의 저서들은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나도 그중 몇 권을 읽어 보았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지나치게 편파적이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깊이가 부족한 것도 흠이었다. 그런 면에서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은 객관성을 갖추고 있고 학문적 깊이도 상당하다. 원제는 이다. 저자는 수녀로 살다가 환속해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학자다. 그리고 종교간의 화해와 협력을 이끌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종교와 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종교와 사상사를 관통하면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읽고본느낌 2011.06.02

신은 위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히친스(C. Hitchens)는 스스로를 물질주의자라 부른 대로 신과 종교에 대해 극단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요사이 반종교적인, 구체적으로는 반기독교적인 책이 유행하는데 히친스가 쓴 도 그런 계열의 책이다. 내가 읽어본 중에서는 상당히 과격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도킨슨의 과 비슷하지만 종교를 비판하는 관점은 약간 다르다. 저자가 종교를 비판하는 근거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책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인류의 광기와 악행들로 가득 차 있다. 저자가 보기에 종교는 아편이며 독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과 죄악의 사례는 산더미보다 많다. 책을 읽다보면 인류는 종교라는 형식을 빌려 내면의 악을 배설해내는 것 같다. 그러나 너무 유물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어 편향된 시각이라는 ..

읽고본느낌 2010.06.19

서울의 예수 / 정호승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

시읽는기쁨 2009.11.09

두 여인

1 옛날에 가난한 홀어미가 있었습니다. 그 홀어미는 부처님께 연등공양을 올려야겠는데 너무 가난해서 기름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못해 간신히 동전 한 닢을 빌어 밥그릇에 동전 한 닢어치 기름을 사가지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저잣거리 뒷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기름에 불을 붙인 다음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홀어미는 아무런 비라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빌고 싶은 바람이야 마땅히 누구보다도 많았지만 공양이 너무 초라해서 부끄러운 홀어미는 그저 부처님께 몸 둘 바를 모르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바람이 거세어졌습니다. 높다랗게 매달려 눈부시게 타오르던 수천수만 점 등불들이 모두 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뒷골목 어디선가 가느다란 한 점 불빛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 제자 한분이 달..

길위의단상 2008.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