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24

뜨거운 추석을 고향에서 보내다

추석을 전후한 연휴 기간 동안 30도가 넘는 기온이 이어졌다. 고향에서의 추석날은 34도까지 올라가서 여간 더운 게 아니었다. 이러다가는 '추석'이라는 명칭을 '하석(夏夕)'으로 바꿔야겠다. 올해는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추석을 보냈다. 차례는 지내지 않으므로 다른 형제들은 모이지 않은 단출한 명절이었다. 추석 전날은 어머니를 모시고 예천에 있는 외할머니 산소를 찾아보고 바람을 쐬러 무섬마을에 들렀다. 오랜만의 바깥 나들이에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어머니의 밭농사가 끝난 줄 알았다. 자식들이 극구 말리니 안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그런데 웬 걸, 산소 가는 길에 들러보니 500평 밭이 무성하게 자란 들깨로 빽빽했다. 올해도 자식들 몰래 가꾼 것이다. 아흔이 지난 지 한참이나 된 노인인데 집 부..

사진속일상 2024.09.19

그때가 좋은 거야

추석이 다가왔다. 고향에 노모가 계시니 명절이 되면 찾아뵙는 문제로 고민한다. 동생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니 명절이 되면 근심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다. 올 추석은 내가 내려가야 할까 보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 친구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찾아오는 자식들과 단출하게 추석을 보낸다. 연휴를 이용하여 가족이 함께 놀러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일순위가 어머니이니 자식들과의 만남은 뒤로 미루어진다. 지난 몇 차례는 동생이 어머니와 있어준 덕분에 예외가 있기는 했다. 어제 친구들 모임에서 추석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노모를 뵈러 고향에 내려가야 하는 경우는 나밖에 없었다. 언제 내려가고 언제 올라올지 교통 정체도 걱정이다. 이런저런 넋두리를 ..

참살이의꿈 2024.09.13

기차표 운동화 / 안현미

원주시민회관서 은행원에게 시집가던 날 언니는 스무 해 정성스레 가꾸던 뒤란 꽃밭의 다알리아처럼 눈이 부시게 고왔지요 서울로 돈 벌러 간 엄마 대신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함께 갔던 언니는 시민회관 창틀에 매달려 눈물을 떨구던 내게 가을 운동회 날 꼭 오마고 약속했지만 단풍이 흐드러지고 청군 백군 깃발 날려도 끝내, 다녀가지 못하고 인편에 보내준 기차표 운동화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토닥토닥 집으로 돌아온 가을 운동회날 언니 따라 시집가버린 뒤란 꽃밭엔 금방 울음을 토할 것 같은 고추들만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지요 - 기차표 운동화 / 안현미 조용히 추석이 지나갔다. 추석 귀성을 안 하게 된 지도 네 해째가 되었다. 가벼워지긴 했지만 뭔가 허전하다. 그 빈 구석을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 경기를 보며 채웠..

시읽는기쁨 2023.10.02

추석 만월 / 송진권

애탕글탕 홀아비 손으로 키워낸 외동딸이 배가 불러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네 각다귀 놈과 배가 맞아 야반도주한 뒤 한 이태 소식 끊긴 여식 더러는 부산에서 더러는 서울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걸 보았다는 소문만 듣고 속이 터져 어찌어찌 물어 찾아갔건만 코빼기도 볼 수 없던 딸년 생각에 막소주 나발이나 불던 즈음일 것이다 호박잎 그늘 자박자박 디디며 어린것을 포대기에 업고 그 뒤에 사위란 놈은 백화수복 들고 느물느물 들어오는 것 같은 것이다 흐느끼며 큰절이나 올리는 것이다 마음은 그 홀아비 살림살이만 같아 방바닥에 소주병만 구르고 퀴퀴하구나 만월이여 그 딸내미같이 세간을 한번 쓰윽 닦아다오 부엌에서 눈물 흘리며 조기를 굽고 저녁상을 볼 그 딸내미같이 - 추석 만월 / 송진권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다. 심..

시읽는기쁨 2022.09.12

늦은 추석 귀성

추석이 지나고 열흘 뒤에야 고향에 찾아가게 되었다.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 추석을 쇠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꼭 추석날이 아니라 각자 편리한 날짜에 방문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나 같은 경우는 조상님 뵙기에 면목이 없기는 하다. 명절이 즐거운 것은 어릴 때 얘기다. 어른이 되어 이런저런 사정이 중첩되면 눈치 볼 일도 많아지고 체면치레도 해야 하고 여간 복잡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고향에 계신 노모 걱정이 제일 크다. 이래저래 고향 내려가는 마음이 무겁다. 내려가는 길에 먼저 용소막성당에 들렀다. 성당 주변 느티나무는 여전히 늠름하고 아름다웠다. 경황없이 나오다 보니 카메라를 챙기지 못해 휴대폰으로 찍었다. 용소막성당에서 10여 분만 더 내려가면 배론성지다. 고향 가..

사진속일상 2021.10.02

추석날 동네 산책

추석이지만 연 이태째 고향에 못 내려갔다. 예전에 어느 정치인이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는데 지금 내 사정이 그러하다. 교통 정체를 안 겪고 번거로운 만남이 생략되니 몸은 편해도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쓸쓸한 추석 명절이다. 오전까지 비가 내리더니 오후가 되자 짙은 구름이 사라지고 밝은 가을 하늘이 열렸다. 비 내리다가 맑아지고, 맑다가 다시 흐려지고, 하는 것은 인생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시름을 잊으려 동네 산책길에 나섰다. 집 앞 공터에 이제서야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뜸 들인지 10년 만이다. 이 동네에 이사온 뒤로 아파트가 엄청 많이 들어서고 있다. 전에는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 아파트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 해제된 모양이다. 경기광주역 주변의 역세권 개발로..

사진속일상 2021.09.22

코로나 추석

코로나로 이번 추석은 고향에서 모이지 않고 각자 지내기로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추석 차례를 주관하며 지낸 게 40년이 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누구도 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걸 보니 코로나가 대단하기는 하다. 할 일이 없어진 추석날은 길 걷기에 나섰다. 문득 난설헌이 생각났고, 그곳을 목표 지점으로 정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난설헌 묘가 있다. 전날은 감정 낭비가 심했는데 황폐해진 속도 달랠 겸 느릿느릿 산천경개를 구경하며 걸어갔다. 난설헌과 두 자식의 묘를 내려다보며 오래 앉아 있었다. 난설헌의 가련한 생애가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자동차들의 굉음이 이어지던 중부고속도로는 얼마 되지 않아 상행선부터 정체가 시작됐다. 묘 옆에 있는 시비(詩碑)에는 난설헌 시..

사진속일상 2020.10.02

2019 추석

추석에 고향 내려가는 길이 굉장히 막혔다. 평소 두 시간이면 넉넉하던 길이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이번 추석에는 첫째가 동행했다. 며칠 전에 운을 떼었더니 기꺼이 내려가겠다고 했다. 내심 고마웠다. 조카 식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모이는 숫자가 단촐해졌다. 동생과 차례를 지내고 조상 산소를 찾아뵈었다. 엎드려 절 할 때에 조상님께 면구스럽기만 했다. 하늘에서 내려보신다면 형제, 친척간의 우애를 제일 바라실 게 아닌가. 이런 말이 있다. "효도하고 우애하지 않는 자는 있어도, 우애하는 자로서 효도하지 않는 자는 없다." 9월 13일이 추석이니 올 한가위는 무척 빠른 편이다. 들의 벼는 이제 익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계시니 명절에 고향을 찾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교통 정체에 시달리며 찾아갈 이유..

사진속일상 2019.09.14

추석 노을

저녁 노을이 고와 동구 밖에 나가다. 저녁 하늘은 지상의 어둠을 더 돋보이게 한다. 사는 게 다 그래, 라는 말로는 위안이 될 수 없는..... 고향 마을은 점점 공동화되어 간다. 사람이 적어서만이 아니다. 남은 사람이나 찾는 사람이나 황폐한 사막들끼리 만난다. 기쁨도 비탄도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인간의 넋두리와는 상관없이 보름 하루 전 달이 먹구름과 서로 희롱을 하며 놀고 있다. 만 년 전, 억 년 전에도 그러했듯.

사진속일상 2018.09.26

2017 추석

동생이 귀향하고 난 뒤 첫 추석이다. 전에는 내 집이었는데, 이제는 동생네 집에 차례를 지내러 간다. 주인에서 객으로 위치가 바뀐 것이다. 어머니 걱정을 덜었으니 더없이 고마우면서, 동시에 뭔가 쓸쓸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그것은 열에 하나 정도일 뿐이다. 이번처럼 가벼운 귀성은 없었다. 특히 명절을 지내고 돌아올 때, 어머니 홀로 남겨두고 떠날 때면 너무 울적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동생에게 감사하기 그지없다. 조카들이 와서 차례 준비를 한 덕에 시간 여유가 많았다. 아내와 동네 앞 하천의 산책로를 걷기도 했다. 너무 좋은 일만 바라지만 말자고, 일가정 일걱정이라고 우리를 달랬다. 저녁에는 동생과 바둑도 두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막내가 늦게 왔다. 어머니가 군불을 ..

사진속일상 2017.10.04

웃는 추석

오랜만에 삼 형제가 함께 모인 추석이었다. 손주 데리고 둘째도 다녀가서 시골집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날은 벌초한 뒤 성묘하고, 같이 차례 준비를 하는 손길이 가벼웠다.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저녁을 먹고 동생네와 넷이서 두 시간 가까이 산책을 했다. 걷는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를 제외하면 동생과 대면할 일이 거의 없다. 만약 어머니가 세상을 뜨시면 더욱 뜸해질지 모른다. 어디서 무엇으로 살든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 하나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기력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작년 추석과 올해가 다르다. 그래도 이만큼 정정하신 게 자식으로서는 너무나 큰 복이다. 어머니에게 삶의 활력은 땅에서 나온다. 어머니를 지켜볼 때 늙어서도 본..

사진속일상 2016.09.16

단출한 추석

올해는 동생네가 일이 생겨 못 오는 바람에 단출한 추석이 되었다. 처음으로 아내와 둘이서 차례를 지냈다. 시끌벅적해야 명절다운 분위기가 난다지만 요사이는 그렇지도 않다. 사람이 많으면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오랜만에 만난다고 꼭 반가운 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형제들 만날 일도 더 뜸해질 것 같다. 각자의 집에서 제 자식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명절에도 이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루 날을 정해 대이동을 하는 풍습도 앞으로는 개선될 것이다. 전통은 옛 그대로 지켜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어려운 게 형제들 사이의 우애다. 그런 삐걱거림이 있는 집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낀다. 어머니 얼굴을 뵐 때마다 면목이 안 선다. 어쩔 수 없이 감내해..

사진속일상 2015.09.28

추석 산행

집에 일이 생겨 추석인데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지난주에 미리 성묘하고 어머니에게도 다녀왔다. 추석 차례를 거른 건 20년 전에 독일 연수를 가 있을 때를 빼고는 처음이다. 한가윗날 아침 식탁에는 아이들이 출가하기 전처럼 넷이 오붓하게 앉았다. 그러나 밝게 웃을 수만은 없는 분위기였다. 아침을 먹고는 혼자 배낭을 꾸려 남한산성으로 갔다. 차는 은고개에 주차하고 남한산성 한봉을 돌아오는 라운드 산행이었는데, 쓸쓸하고 외로운 심정으로 걷는 산길이었다. 산객 서너 명 정도만 만났다. 한 분은 지나치며 "명절이라 전부 고향 찾아가고 사람이 없네요"라며 씁쓰레 웃었다. 갈림길 쉼터에서는 바람이 시원했고, 동쪽으로는 유난히 하늘이 파랬다. 비틀린 자세로 서 있는 서어나무가 멋있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

사진속일상 2014.09.08

2013 추석

동생네가 도착하기 전 셋이서 미리 송편을 빚었다. 모양새도 사람에 따라 세 가지로 나왔다. 나는 큼직하게 양손으로 눌러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러면 손가락 자국이 굵게 나온다. 어머니가 시집왔을 때 손가락 자국이 나는 건 상놈이 빚는 송편이라면서 절대 누르지 못하게 배웠다 하신다. 아내는 어릴 때 익힌 전라도 식이다. 송편소로는 콩, 깨, 밤 세 가지를 썼는데 내 몫은 콩이었다. 나중에 보니 콩을 너무 많이 넣어 송편인지 콩떡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송편을 찔 때 전에는 솔잎을 깔았는데 몇 해 전부터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송편이 '솔잎 떡'이라는 의미의 '송병(松餠)'에서 유래되었다는데 다음에는 번거롭더라도 뒷산에 다녀와야겠다. 아무래도 솔 향기가 배어야 제맛이 날 것 같다. 아무리 먹을 게 풍성하..

사진속일상 2013.09.20

2012 추석

1년 사이에 많이 변했다. 자식 둘은 출가를 했고, 조카며느리가 새로 들어왔다. 내 자식은 남의 집에 보내고, 그 반대로 새애기를 맞이하여 추석을 지냈다. 음식을 장만하면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동생네한테는 경사스런 일이 연이어 생겼다. 후손들이 두루두루 잘 되는 걸 지켜보는 건 기쁜 일이다. 집안 운세가 이 가을 하늘처럼 맑게 펴졌으면 한다. 그래서 짙게 드리운 먹구름도 차차 걷혀 나갔으면 좋겠다. 추석 전날, 차례 준비를 마치고 산소를 찾아 조상님께 미리 인사 드렸다. 황금색 가을 들녘이 넉넉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농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이 답답하고 서글프다. 마을에는 대문이 굳게 잠긴 집들이 많다. 옆집 친구 모친도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빈 집이 되고 매물로 나왔다. 아직은 ..

사진속일상 2012.10.01

비에 젖은 추석

비가 많은 해다. 고향에 내려가 있은 추석 연휴 동안에도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시골집에 내리는 빗소리는 요란하다. 야성의 소리다. 첫날 밤은 사나운 낙수 소리에 여러 차례 잠을 깼다. 백 년도 못되는 짧은 인생이지만 누구나 삶의 신산을 맛봐야 한다.큰 병만고통이 아니다. 손톱 밑의 가시가 도리어 당사자에겐 견디기 힘든 아픔이 될 수가 있다. 연민의 눈으로본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 나서 아름다운 일은 그대를 믿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송편 빚어 가마솥에서 찌는 풍경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과 동네는 썰렁하다.외지에 사는 자식들 휭 하니 왔다가 휭 하니 사라진다. 따스한 정을 나누기보다는 서로 스트레스 받고 상처를 주고받는 게 현실의 가족 관계가 아닌가...

사진속일상 2011.09.13

비틀거리는 추석

추석 귀성 전에 몸살이 찾아왔다. 재채기가 이상 신호였다. 이럴 때는 푹 쉬는 게 상책이다. 남자에게도 명절증후군이 있는지 만사가 귀찮아지고, 그래서 더 힘겨운 고향길이 되었다. 작년에는 더 했다. 아내는 아파 집에 남고 두 딸을 데리고 내려갔다.허리가 아플 때였다. 그 몸으로 동생이 집수리하는 걸 도와주는 흉내를 내다 몇 달간 심하게 고생했다. 어쩌다보니 추석때마다 비실거리는 꼴을 보이게 되었다. 이번에는 방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동생과도 얘기를 별로 나누지 못했다. 몸 핑계를 댔지만 마음이 아픈 탓이었는지 모른다. 고향에 가면 잊었던 상처가 덧난다. 추석날은 계속 비가 부슬거렸다. 전날 산소에 다녀온 게 다행이었다. 군대에서 제대한 조카도 3년 만에 내려왔다. 몸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장한 ..

사진속일상 2010.09.23

절뚝거린 추석

이번 추석은 온전치 않은 몸을 끌고 딸들과 함께 고향에 다녀왔다. 연휴가 사흘밖에 안돼 추석 전날 새벽에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차들로 가득해서 다시 국도로 나왔다. 길은 꼬불꼬불했지만 다행히 국도는 막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송편을 만드는 동안 자리에 누워 쉬었다. 오후에는 방 수리하는 동생 일을 도와주었다. 허리가 아프다고 못 본 척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심하며 무리하지 않으려 했지만 과했던 것 같다. 저녁 식사 후 아무 것도 못하고 바로 쓰러졌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다시 걷기가 힘들 정도로 되었다. 차례 지내는 것도 옆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겨우 산소에는 다녀왔지만 남은 작업을 하는 동생을 전혀 도와주지 못했다. 일 하는데 도리어 방해가 될 듯하여 예정보다 일찍 돌아올 수밖에 없었..

사진속일상 2009.10.04

쓸쓸한 추석

외할머니는 끊임없이 오지도 않는 사람을 찾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쇠락해 가는 것이 어디 고향집 뿐이랴. 내 마음 속 풍경은 한없이 황량하고 쓸쓸하다. 내 혼자도 감당하기 힘든데 고향에 오면 짐이 몇 갑절이나 무겁다. 그러나 어찌 하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을, 세상사가 그러한 것을...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빈 말이 아닐 것이다. 미래에는 뭔가 달라지리라는 희망에 속고 사는 게 인생인지 모른다. 힘든 현실을 감내하는 힘도 거기에서 나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무게는 점점 더 버거워지고 숨가쁘다.삶의 쓸쓸함 앞에서스산해지는 가을이다. 저녁에 길을 나섰다. 철 없어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뛰어다녔던 그 길이다. 차례를 지내면서 ..

사진속일상 2008.09.15

2007 추석

짐승은 모를는지 고향인지라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하던 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조상님의 뼈 가서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 - 김소월의 '고향' 중에서 우리에게는 두 개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소월이 읊은 마음 속의 고향이고, 다른 하나는 추루해진 현실로서의 고향이다. 귀성길의 정체를 뚫고 악착같이 찾아가는 고향은 이미 내 마음 속의 고향이 아니다. 많은 것이 변했고 사라졌고, 남아있는 것 그리고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은 너무나 낯설다. 어떤 면에서 고향길은 안타까움과 서러움을 확인하는 길이다. 그러나정말 변한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고향은 예대로의 같은 모습이건만이미 나는 어린 시절의 눈을 가지고 있지..

사진속일상 2007.09.26

2006 추석

올 추석은 8일 동안의 휴일이 주어졌다. 2일과 4일의 징검다리 근무일이 모두 재량휴업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주와 영주의 처가와 고향집을 모두 다녀올 수 있었다. 어머님을 찾아뵙고 형제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힘들어지는 것 또한 어찌할 수 없다. 긴 거리를 오랜 시간 움직여야하는 몸의 피곤보다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또 병약한 모습의 어른들을 뵙게 되는 정신적 피로함이 훨씬 더하다. 이번 길에도 처가 쪽에서는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 큰어머님과, 본가 쪽에서는 암투병중이신 이모부님을 병원으로 찾아뵈었다. 종이처럼 얇고 창백한 모습에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특히 치매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나고 병들고 죽는 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의 운명이..

사진속일상 2006.10.07

물방울 삼형제

차례상에 올릴 나물을 끓이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다른 집도 사는게 다 똑 같더라." 그리고는 옆집의 누구는 형수와 틀어졌고, 또 누구네 집은 형제간의 불화가 아직껏 계속돼 서로 남보듯 한다면서 지나가는 소리처럼 하셨다. 그러나 '다른 집도'에서 '도'를 강조하시는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에 내 마음도 슬퍼졌다. 이번 추석에는 찾아온다던 막내를 잊지 못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고, 어려운 자식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리라. 추석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반짝 나온 햇빛에 고향집 토란 잎 위 물방울 세 개가 보석처럼 빛났다.

사진속일상 2005.09.19

2004 추석

넷이서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다. 하나는 송편 빚는시범을 보여주는 어머님의 손이고, 하나는 딸 아이의 손이고, 나머지는 조카 둘의 손이다. 우리 집에서 송편 만들기는아이들 몫이다. 내 어린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추석 송편 만들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그런데 모양이 이쁘게 안 나온다고 몇 개 만들다가는 쫓겨나곤 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농작물을 말리는 계절이다. 마당에도 마루에도 방에도 정성스레 수확한 곡식들이 널려있다. 저 고추는 한낮의 햇살을 쬐다가 밤이 되면 군불을 땐 방으로 들어가 다시 몸을 말린다. 곡식을 가꾸는 것도 힘들지만 뒷 손질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걸 안다면 작은 곡식 한 알도 헤프게못 할 것 같다. 가을 하늘에 눈이 시리다. 집 마당에서 무심결에 쳐다본 하늘이 너무 파래서 ..

사진속일상 2004.09.29

어머니의 송편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어머니는 가마솥에서 떡을 찝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은 저의 몫이죠. 이내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구수한 떡 내음이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언제 느껴도 풍성하고 따스한 추석 풍경.....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떠나 보내고, 낡게 만들고, 지금은 어머니의 등마저 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머니가 쪄 주시는 송편 맛을 볼 수 있을런지... 정다운 것과 만나는 기쁨 속에는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진속일상 200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