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35

뒷산 진달래(2024)

뒷산에도 진달래가 활짝 폈다. 진달래가 폈다는 것은 봄이 곁에까지 다가왔다는 신호다. 매화나 산수유가 봄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체감할 정도는 아니고, 진달래가 펴야 제대로 봄이 온 것 같다. 이제 다음 차례은 벚꽃이다. 벚꽃이 만개하면 농익은 봄이 기다린다. 햇살 좋은 일요일 오전에 진달래를 감상하며 뒷산길을 걸었다. 이른 봄철 뒷산에는 산길을 따라 진달래가 곱게 핀다. 아직 산은 겨울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분홍색 진달래는 나무들에게 어서 빨리 잠에서 깨어나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진달래를 보면 철없이 뛰놀던 소년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때 고향 뒷산에도 봄이 찾아오면 진달래가 피어났다. 온 산을 돌아다니다가 허기가 지면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다시 내달렸다. 진달래 앞에서 셀카를 찍었다. 이런 게 둔갑술..

꽃들의향기 2024.03.31

텃밭 가을걷이와 김장

텃밭의 가을걷이를 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어 서둘렀다. 조그만 땅뙈기에서 나오는 산물이라 규모가 아담했다. 배추 20 포기, 무 30여 개를 비롯해 고추, 가지, 파, 상추, 호박 등 여러 채소를 거두었다. 고추와 상추는 앞으로도 더 따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되돌아보면 올해만큼 텃밭 덕을 톡톡이 본 해도 없었다. 우리 식탁은 대부분 텃밭에서 나는 남새로 차려졌다. 덕분에 야채값이 너무 비싸졌다는 불평은 우리와는 무관했다. 텃밭의 효용이라면 기르는 재미를 제일로 봤는데, 건강하고 풍성한 먹을거리를 무한 공급해주는 현실적인 이득이 올해는 앞섰다. 땅을 기꺼이 빌려준 이웃분에게 감사한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김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빠른 셈이다. 나는 말없이 조수 역할에..

사진속일상 2023.11.08

텃밭 허수아비

이웃 텃밭에서 허수아비가 망을 보고 있다. 하늘을 보면서 싱긋 웃는 모습에서 노래하는 송창식이 떠오른다. '참새의 하루' 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바람이 부는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허수아비 뽐을 내며 깡통 소리 울려대겠지" 요사이 새들이 허수아비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친구로 여기지 않을까. 하도 별스런 일들이 자주 생기는 세상이니 허수아비와 새가 동무가 된다 한들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소년 시절의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곡식이 익어가는 철이 되면 아이들은 논으로 양철통을 들고 나갔다. 여무는 벼 낟알을 먹기 위해 몰려다니는 참새떼를 쫓기 위해서였다. 허수아비로는 참새를 막는데 역부족이었다. 양철통을 북처럼 두드리고 고함을 지르면 논에 내려앉았다가도 부리나케 도망갔다. 동네..

사진속일상 2023.08.04

텃밭의 선물

이즈음 텃밭이 주는 선물은 고추, 가지, 호박, 상추, 토마토 등이다. 아내는 매일 이른 아침에 텃밭에 나가서 무언가를 들고 온다. 덕분에 아침 식탁이 초록으로 싱싱하다. 그중에서도 제일 감사하며 먹는 것이 토마토다. 밭에서 바로 따온 토마토의 맛은 시장에서 사는 것과는 비교될 바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게 한 가지 있다. 토마토에 발간 색깔이 돌기 시작하면 새가 먼저 와서 시식한다. 농숙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익기 전에 미리 따 와서 하루 정도 집에 두어야 한다. 맛있는 걸 누가 먼저 먹나, 새와 시합하는 것 같다. 선조들은 날짐승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뒀다. 나도 토마토 한 포기 정도는 그들의 먹이로 제공할 생각이 있다. 그런데 새들은 무차별적으로 쪼아버린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협상을 할 수도 ..

사진속일상 2023.07.28

콩을 까다

텃밭에서 콩 일부를 수확해 왔다. 겉으로 봐서는 시원찮았는데 까 보니 열매는 그런대로 튼실했다. 앞으로 한참 동안 밥에 앉혀 먹을 수 있겠다. 콩을 까는 단순 작업도 재미있었다. 콩깍지를 살짝만 비틀어도 접시에 또로로 떨어지는 콩알들이 귀여웠다. 이 정도라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거리다. 요사이는 텃밭의 혜택을 담뿍 받고 있다. 아내는 잠에서 깨자마자 댓바람에 텃밭에 나가서 여러가지를 거두어 온다. 상추, 쑥갓, 오이, 고추는 단골 작물이다. 막 뜯어온 야채로 차려진 식탁은 싱싱하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텃밭이 주는 일상의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사진속일상 2023.07.02

지주를 세우고 잡초를 뽑다

이틀간 넉넉하게 비가 내려 텃밭 작물이 생기를 찾았다. 미루어 온 지주 세우기와 잡초 제거 작업을 했다. 상추, 겨자 등 야채는 두 주 전부터 식탁에 올라 입맛을 돋우고 있다. 고추, 오이 등도 작은 열매가 맺힌다. 아내는 나중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처음 나오는 오이는 따내 버린다. 올해 제일 풍성한 건 콩이다. 이것도 일이랍시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콩 고랑을 멜 때 한 노랫가사가 생각났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감히 투덜대거나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지 못하겠다. 허리가 아파도 가능하면 오래 버티려 했다. 옛 아낙네에 비하면 내 동작은 일이 아니라 유희인 것이다. 어쨌든 땀을 흘리고 나니 말끔해진 텃밭만큼 마음도 개운해졌다. 내 몸 조금..

사진속일상 2023.05.29

고추와 토마토를 심다

연 이틀 반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남부 지방에는 100mm가 넘는 강수량으로 가뭄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중부 지방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농사에 큰 도움이 되는 비다. 어제는 잠시 비가 가늘어진 사이에 텃밭에 나가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를 심었다. 지난달에 심은 감자, 콩, 상추, 호박에 이어 두 번째로 심은 작물이다. 고구마 모종은 늦게 구하는 통에 오후에 비가 그치면 심으려 한다. 텃밭도 몇 해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고 처음보다는 수월한 편이다. 내가 심은 작물이 자라나는 걸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면 일부러 걸음을 해서 찾아보곤 한다. 농부와 작물 사이에 정서적 교감이 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베란다에서 기르는 화초든 텃밭의 작물이든 반려식물이라고..

사진속일상 2023.05.06

새싹은 힘이 세다

텃밭에 심은 콩이 새싹을 내밀고 있다. 비교적 손쉽게 흙을 뚫고 나온 아이도 있지만 어떤 아이는 커다란 흙덩이에 짓눌려 고군분투 애쓰는 모양이 안타깝다. 이 아이는 고개가 꺾인 채 제 몸무게의 수천 배나 될 법한 흙덩이와 씨름하고 있다. 연약해 보이는 새싹이지만 생명의 의지는 더없이 강하다. 마음 같아서는 흙덩이를 치워주고 싶지만 자연 속 생명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아이는 언젠가는 장애물을 이겨내고 꿋꿋이 제 힘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수월하게 자란 아이보다 더 강한 모습으로 우뚝 서지 않겠는가. 나는 생명의 신비에 경탄하며 쪼그려 앉아 한참을 바라본다. 힘내라, 새싹!

사진속일상 2023.04.23

텃밭 농사를 준비하다

농사라고 부르기에 민망하지만 어쨌든 올해도 텃밭을 하기로 했다. 아내의 손가락 통증이 낫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이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아내는 작물을 가꾸고 수확하는 재미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 하러 나갈 때는 귀찮지만 마치고 나면 뿌듯하고, 흙을 만지는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있다. 세 이랑을 삽으로 일구고 퇴비 여섯 포대를 뿌려서 섞어주었다. 모레와 글피에 비가 온다니까 그 뒤에 비닐을 덮어줄 예정이다. 무엇을 심고 가꿀지는 아내가 결정한다. 작은 텃밭이지만 내가 간섭하기 시작하면 티격태격하기 십상이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힘을 써야 하는 노동이 필요할 때 등 나는 마나님 명령을 받드는 돌쇠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다.

사진속일상 2023.04.03

텃밭 고구마를 캐다

아내와 둘이서 텃밭의 고구마를 캤다. 작년에는 손주가 와서 체험을 했는데 올해는 다른 데 갈 일이 생겨 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겸하여 시들어가는 가지와 고추를 뽑고 밭 정리를 했다. 고구마는 18kg이 나왔다. 기대를 안 했는데 역시 수확량은 빈약했다. 올 텃밭 농사는 옥수수, 상추, 고구마, 감자는 흉작이고 호박, 토마토, 가지, 고추 등은 풍성했다. 일 하기는 귀찮았지만, 그래도 텃밭 덕분에 우리 식탁은 풍요로웠다. 오전에 텃밭에 나갔다가 오후에는 첫째네 집에 들렀다. 잠시 짬이 난 틈에 한 시간 정도 집 주변을 산책했다. 골목길 뒤로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자주 보였다. 송파동에는 빌라가 많아선지 깔끔한 서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골목길의 전신주와 이리저리 뒤엉킨..

사진속일상 2022.10.18

한강변 따라 드라이브

고향 마을 이웃분이 코로나로 돌아가셨다. 지병으로 쇠약한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어머니의 제일 가까운 친구였는데 어머니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전화기로 전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식사나 제대로 하시는지 모르겠다. 바람을 쐬면서 우울한 심사를 달랠 겸 아내와 드라이브를 나갔다. 집 부근에는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도로가 여럿 있다. 오늘은 한강변을 택했다. 달리다가 적당한 곳이 나오면 잠깐씩 쉬기로 했다. 퇴촌을 지나 342번 지방도를 탄다. 분원리에서 운심리까지 팔당호를 끼고 있는 이 길은 수도권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잠시 물안개공원에 들렀다. 전 같으면 공원을 한 바퀴 돌았겠지만 아내가 족저근막염 치료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수청리 나루터도 빼놓을 수..

사진속일상 2022.09.01

텃밭이 차려준 점심 식탁

태풍 송다가 올라오면서 오후부터 비를 뿌린다기에 오전에 텃밭에 나가 배추와 무를 심을 이랑 정리를 했다. 거름을 듬뿍 주고 흙과 고르게 섞어 주었다. 짙은 구름이 끼고 간간이 비가 뿌렸지만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일은 고돼도 기분은 상쾌했다. 아내는 상추, 아욱, 고추, 가지, 부추, 옥수수, 호박잎, 깻잎, 토마토 등 땅이 주는 선물을 거두었다. 덕분에 점심 식탁이 풍성해졌다. 돼기고기와 막걸리를 제외하면 모두가 우리 텃밭에서 나온 재료들이다. 어설픈 농사 흉내에 작물은 시원찮아도 밭에서 금방 따 온 싱싱함이 주는 맛은 역시 다르다. 땅을 빌려준 이웃에도 감사하고, 이런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신 자연에도 감사한다. 어제는 넷플릭스로 영화 '모리의 정원'을 봤다. 30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

사진속일상 2022.07.31

텃밭이 주는 선물

아침 식탁은 텃밭이 주는 선물로 가득하다. 일찍 일어난 아내가 - 그래도 7시가 넘어서지만 - 텃밭에 나가 푸성귀를 거둬 온다. 오늘은 고추, 가지, 호박, 호박잎, 토마토를 따 왔다. 미리 캔 감자와 아욱으로 끓인 국도 있다. 100% 텃밭에서 난 반찬이다. 바로 뜯어온 야채의 싱싱함이란 시장에서 사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입맛이 저절로 돋는다. 식탁에 올린 것은 싹 다 비운다. 남은 토마토와 감자는 오가면서 하나씩 집어먹으면 된다. 이런 게 소확행일 거다. 표현은 못 하지만 매일 한두 번씩은 꼭 텃밭에 들리는 아내에게 고맙다. 가꾸고 수확하는 재미를 나는 짐작만 할 뿐이다. 텃밭 일을 도와달라고 할 때 더는 투덜대지 말아야겠다.

사진속일상 2022.07.11

비 온 뒤 텃밭

그동안 가뭄이 길었다. 텃밭 작물의 잎 끝이 노랗게 변하면서 말라갔다. 페트병에 물을 담아 몇 차례 날랐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소꿉장난 텃밭이지만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에 내린 비는 말 그대로 단비였다. 한자로는 '감우(甘雨)', 영어로는 'welcome rain'이다. 밭은 생기가 확 살아난 듯했다. 아내와 밭에 나가 즐겁게 몸을 놀렸다. 내 몫은 고랑에 난 풀을 뽑아주는 일이다. 가물어서 수확물이 시원찮지만 그래도 몇 가지를 거두어 왔다. 감자와 콩은 한 끼 먹을 정도만 가져와 저녁 반찬으로 맛있게 먹었다. 아삭, 하고 씹히는 금방 따온 싱싱한 오이도 달았다. 저녁 식탁은 텃밭에서 얻은 푸성귀로만 차려졌다.

사진속일상 2022.06.17

풍성해지는 텃밭

열흘 전부터 텃밭에서 나는 상추와 부추를 먹고 있다. 먹고 싶을 때면 슬리퍼를 신은 채로 나가 뜯어올 수 있으니 너무나 고마운 텃밭이다. 시장에서 사 먹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다. 좀 더 지나면 이웃에 나누어주면서 먹어도 남는 풍성한 채소를 생산해 줄 것이다. 상추, 부추, 오이, 호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시금치, 토마토, 생강, 겨자, 참외, 애플수박, 대파, 고추 네 종류(일반, 청량, 가지, 당뇨), 강낭콩 세 종류. 올해 심은 작물이다. 이번에 나가서는 고추와 토마토에 지지대를 세워주고 고랑의 잡초를 뽑았다. 작년보다 내 노동량이 늘고 있다. 작년에는 아내에게 일임했지만 올해는 가능한 한 힘을 보태려 한다. 잡초를 뽑을 때는 땅이 말라선지 흙먼지가 일었다. 어릴 때 흙을 만지며 놀던 생각이..

사진속일상 2022.05.17

텃밭 울타리를 보수하다

아내는 텃밭 얘기를 할 때면 눈에 이채(異彩)가 돈다. 그만큼 텃밭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텃밭보다 더한 애정의 대상은 손주다. 손주한테서 전화가 오면 아내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는 더 올라간다. 텃밭 울타리를 보수했다. 전에는 대충 둘러쳐 놓아서 보기에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 밭 전체를 사람 키 높이로 둘러쌌다. 굳이 경계를 지을 필요가 있는지 물었지만, 사람들이 밭 안으로 들어와 밟고 다녀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볼 때 영역 표시는 동물의 기본 본능이 아닌가 싶다. 씨를 뿌린 땅에는 상추만 작은 초록잎을 내밀었을 뿐 아직 뚜렷한 소식이 없다. 파가 자라는 이랑에는 주인공보다 풀이 더 무성하다. 짐짓 모른 체 해찰하다가 곧 풀 뽑는 아내 일을 도와주었다. 지저분한 걸 못 보는 성미라 이러다가..

사진속일상 2022.04.15

새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다

옥수수를 심을 새 이랑을 만들었다. 돌밭이라 작년에는 놀리던 땅이었는데 올해는 울타리를 겸할 양으로 옥수수를 심으려고 아내는 욕심을 낸다. 머슴인 나야 마나님 하라는 대로 따를 뿐이다. 고민을 하지 않으니 심간이 편하긴 하다. 몸만 움직여주면 된다. 어설프긴 하나 비닐까지 다 씌웠다. 아내를 살펴보니 여자에게는 경작 본능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여자의 쇼핑 욕구도 경작 본능의 일부분이지 싶다. 경작 본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대인은 쇼핑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식물을 가꾸는 일이 자식을 키우는 것과 여러 모로 닮아 있다. 며칠 전에는 길을 가다가 밭 옆에서 두 할머니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밭일을 하는 게 너무 재미지다는 것이다. 나는 밭에 억지로 끌려 나가는 편이지만 할머니의 말에..

사진속일상 2022.04.01

봄비 내리고 텃밭을 다듬다

반가운 봄비가 내리고 땅이 촉촉해져서 텃밭에 나가 이랑을 다듬었다. 며칠 전에 사다 놓았던 거름을 뿌리고 흙과 잘 섞어주었다. 작년보다는 이랑이 제 모습을 갖추었다. 텃밭은 백 퍼센트 아내 몫이다. 나는 요청이 있을 때만 도와준다. 힘이 필요한 일이거나, 또는 두 사람의 손이 있어야 할 때다. 올해 무슨 작물을 심을지 아내 머릿속에는 있겠지만, 나는 알지 못한다. 텃밭 농사가 시작되니 아내는 설레는 기색이 여실하지만, 나는 무덤덤하다. 솔직히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좀 귀찮다. 그래도 약간의 땀을 흘린 뒤 정리된 텃밭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일을 마치니 다시 빗방울이 한둘씩 듣기 시작했다.

사진속일상 2022.03.14

손주와 고구마 캐기

텃밭에 심은 고구마를 캤다. 진작부터 고구마 캐기를 기다리고 있던 손주도 부리나케 달려왔다. 좁은 텃밭에 심은 고구마라야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도 고구마가 목적이 아니라 고구마순을 먹기 위해서였다. 대략 쉰 포기 정도를 심어 놓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작물에 비하면 홀대를 한 것이다. 그래서 고구마 수확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씨알이 굵었다. 손주의 고구마 캐기 체험에 더해 얻은 망외의 재미였다. 고구마는 심어놓기만 했지 거의 제 스스로 자라준 것이다. 거름도 주지 않았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무시했는데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일할 때 옆에 손주가 있으니 활기가 난다. 두 노인만이면 무슨 웃을거리가 있겠는가. 우리는 손주의 작은 손짓, 말짓 하나에도 추임새를 넣어주고 감탄사를 연발한..

사진속일상 2021.10.15

살아나는 꿈

아내는 텃밭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동안 몇 차례 텃밭을 한 적이 있었지만, 올해처럼 몰두하는 것은 처음 본다. 수확해서 먹는 것은 둘째고, 작물을 심고 기르는 즐거움이 우선인 것 같다. 텃밭과 채소 얘기를 할 때는 얼굴에 생기가 돈다. 텃밭과 사랑에 빠진 게 틀림없다. 이번에 얻은 텃밭은 집 옆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텃밭에 나간 것이다. 돌아올 때는 큰 비닐봉지에 뭔가가 한가득 들어 있다. 아내의 얼굴 표정도 밝고 환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얼굴이 부은 채 방에서 나왔을 터였다. 아내의 건강에도 텃밭이 일조를 하고 있다. 내년에도 계속 텃밭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텃밭을 포함한 주변 땅에 아파트 공사가 예정되..

참살이의꿈 2021.08.18

저녁 산책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열흘째 이어지고 있다. 더위 때문에 바깥출입도 뜸해졌다. 코로나 시대의 피서는 돌아다니기보다 집에 가만히 있기다. 덜 움직이고 뒹굴거리다 보면 더위도 잊는다. 며칠 전에 도쿄 올림픽이 개막해서 집안에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따가운 햇살이 힘을 잃을 저녁 무렵에 아내와 동네 산책을 나선다. 먼저 텃밭에 들린다. 텃밭에는 손주가 심은 수박이 있다. 하필 수박이 제일 비실거리며 줄기가 뻗질 못한다. 이러다간 수박 달리는 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주가 실망할까 봐 아내는 걱정이다. 둘이 페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가서 수박에 듬뿍 준다. 올해는 텃밭에서 나오는 야채 덕을 톡톡히 본다. 고추, 가지, 상추, 깻잎, 방울토마토 등 식탁에는 텃밭에서 나오는 싱싱한 야채가 매일 오른다. 아..

사진속일상 2021.07.26

텃밭 네 이랑

한 이랑으로 시작한 텃밭이 야금야금 넓어지더니 네 이랑으로 늘어났다. 작물을 가꾸다 보니 아내는 자꾸 욕심이 생기나 보다. 작은 텃밭이지만 자라는 채소가 12종이나 된다. 어제는 새로 만든 이랑에 거름을 넣고 비닐을 덮는 작업을 했다. 힘이 들어가는 일은 내가 도와주지만 대부분의 텃밭 관리는 아내의 몫이다. 억지로가 아니라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이다. 텃밭에 나가 흙을 만지면 잡념이 사라져서 좋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남자의 도움이 필요한 일 외에는 나는 관여하지 않기로 다짐을 받았다. 다행히 올해는 비가 자주 내려서 물 주는 수고도 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우리 식탁에는 상추, 겨자, 고추, 깻잎 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점심은 거의 쌈이다. 바로 따온 싱싱한 채소는 훨씬 더 맛이 있다...

사진속일상 2021.06.29

넓어지는 텃밭

처음에는 한 이랑만 만들었다. 재미 삼아 고추와 상추만 심는다고 했다. 그런데 흙을 만지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기나 보다. 옆으로 넓혀나가더니 어느새 세 이랑이 되었다. 고추, 상추 외에 가지, 고구마, 파, 호박이 추가되었다. 텃밭은 아내의 일로 정했으니 나는 지켜보기만 한다. 시내에 나가 퇴비를 사 오거나 무거운 것을 들 때 힘을 보탤 뿐이다. 어쨌든 아내는 텃밭 만드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나는 일은 안 해도 가끔 들러서 지켜보는 재미도 괜찮다. 앞으로 아내의 경작 욕구가 얼마나 더 뻗어나갈지 살짝 궁금해진다.

사진속일상 2021.05.03

텃밭 한 이랑

아파트 이웃의 밭을 빌려 텃밭 한 이랑을 만들었다. 그동안 고추나 야채를 얻어먹기만 했는데 조금이라도 자급자족을 해야겠다 싶어서였다. 욕심을 부리면 몇 이랑이고 더 만들 수 있지만, 우선 우리 수준에 맞는 소꿉장난을 해 보기로 했다. 흙에 거름을 섞어주고 이랑과 고랑을 대충 만들었다. 한때는 300평 농사를 지은 적이 있었는데, 삽으로 두둑을 만들 때는 그때 생각이 나서 먼 하늘을 바라봤다. 아련하고 아득했다. 여기에는 고추와 상추를 심을 예정이다. 난 흙장난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다른 무엇보다 아내의 작은 소망 하나를 도와줄 수 있어 기쁘다.

사진속일상 2021.04.15

베란다에서 말리는 시래기

텃밭에서 시래기를 거둬와 베란다에서 말리고 있다. 양구의 펀치볼 시래기 씨앗을 8월쯤에 뿌렸으니 두 달여 만에 거둔 셈이다. 사 먹으면 편리하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재미로 심어 본 것이다. 양도 얼마 되지 않아 모자라는 것은 어차피 사서 먹어야 한다. 옛날 시골에서는 잘라낸 무청을 새끼줄로 엮어 처마 밑에 달아매서 시래기를 만들었다. 푸짐하고 큼지막했는데 이번 경우는 시래기용 무우 품종이라 그런지 크기가 훨씬 작다. 대신 질기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직접 가꾸어서 만들어 본다는 데 의미를 둔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말라가는 시래기를 바라보면서 잠시 공상의 나래를 편다. 텃밭이 가까이 있는 마당 넓은 시골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상상이다. 말을 삼갈 뿐이지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

사진속일상 2020.11.15

프로의 솜씨

어머니가 농사일을 놓으신지 서너 해가 되었다. 지금은 집 앞 텃밭만 가꾸신다. 한창 농사를 지을 때 어머니 별명이 '농사 9단'이었다. 동네 사람들조차 어머니한테 와서 조언을 구했다. 어머니가 작물을 키우면 다른 집에 비해 소출이 월등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길 "똑같이 농사짓는데 저 집은 왜 다를까?"라는데, 내가 볼 때 특별한 비결이 있기보다는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고향 집에 갔더니 텃밭에 고추를 심어 놓으셨다. 일렬로 늘어선 고추가 해병대 줄보다 더 정확히 맞아 있었다. 줄을 긋고 심은 것도 아니고 대충 눈대중으로 했다는 게 이 정도다. 전에 산속에 있는 밭을 가꿀 때도 마찬가지였다. 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를 하셨다. 살림살이나 다른 면은 그렇지 않은데 ..

사진속일상 2020.05.04

게으름 연습 / 나태주

텃밭에 아무 것도 심지 않기로 했다 텃밭에 나가 땀흘려 수고하는 대신 낮잠이나 자 두기로 하고 흰 구름이나 보고 새소리나 듣기로 했다 내가 텃밭을 돌보지 않는 사이 이런 저런 풀들이 찾아와 살았다 각시풀, 쇠비름, 참비름, 강아지풀, 더러는 채송화 꽃 두어 송이 잡풀들 사이에 끼어 얼굴을 내밀었다 흥, 꽃들이 오히려 잡풀들 사이에 끼어 잡풀 행세를 하러드는군 어느 날 보니 텃밭에 통통통 뛰어노는 놈들이 있었다 메뚜기였다 연초록 빛 방아깨비, 콩메뚜기, 풀무치 어린 새끼들도 보였다 하, 이 녀석들은 어디서부터 찾아온 진객(珍客)들일까 내가 텃밭을 돌보지 않는 사이 하늘의 식솔들이 내려와 내 대신 이들을 돌보아 주신 모양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번갈아 이들을 받들어 가꾸어 주신 모양이다 아예 나는 텃밭을 하늘..

시읽는기쁨 2019.08.25

애첩 한고랑 / 김진완

- 느 아부지 요즘 첩이 생겼다 첩에 홀린 아버지 새벽이슬 밟는다 전철 두 번 갈아타고 30분을 걸어 만난 첩 연초록 치마 들춘다 - 히따야 요게 하는 재미! 주책이지! 침까지 흘린다 가족 소풍날, 아버지 상추 첩- 첩- 겹쳐 건넨다 아비 애첩은 손이 크고 인심도 푸져서 열 네 식구 배불리 먹이고도 성에 안 차 상추 한 보따리씩 안겨준다 - 요즘 느 아부지 팔자에 없는 첩 덕택으로 어깨에 힘 쫌 주니라 - 하모, 내 이래 뵈도 동네 삼아웃 쌈싸무기를 책임지고 있는 싸나이라! 그라니 어깨에 힘 안 주고 배기겠나! 봐라 상추가 얼매나 싱싱한지 펄펄 날라가라칸다 희안하지? 늙은 아비 혼을 빼먹어도 본처는 시샘이 안 나 첩 이름은 한고랑 변두리 주말농장 밭 한 고랑 - 애첩 한고랑 / 김진완 내일이 경칩이다. ..

시읽는기쁨 2018.03.05

친구 텃밭

상추를 뜯으러 남양주에 있는 친구 텃밭에 갔다. 서울시에서 시민에게 분양한 텃밭으로 5평 사용료가 3만 원이다. 서울에는 빈 땅이 없으니 경기도에까지 이런 농장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시민을 위한 이런 지원은 매우 바람직하다. 넓은 터에 온갖 작물이 자라고 있는데 주인의 정성에 따라 차이가 크다. 친구 텃밭은 그중에서도 A급에 속한다. 쌈채소 네댓 종류에 감자, 고구마, 아욱 등 다양하게 심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인간의 유전자는 수렵채집과 농경 시대의 생존 본능을 여전히 갖고 있다.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근대는 한순간에 불과하다. 진화적으로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래서 흙을 만지고 작물을 가꾸는 데서 느끼는 만족감은 생래적이다. 산업과 기술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사진속일상 2017.06.20

복숭아 봉지 씌우기

텃밭에 있는 우리 복숭아나무에 봉지 씌우는 작업을 했다. 노란색 봉지 130개가 들었다. 부모님께서 과수 농사는 하시지 않았기에 나도 봉지 씌우는 일은 처음 해봤다. 종이 끝에 핀이 달려 있어 마무리하기 쉽게 되어 있다. 일이 재미있고 신이 났다. 그러나 사다리가 없어 높은 곳은 손을 댈 수 없었다. 과일에는 왜 봉지를 씌울까? 자연스럽게 태양광을 받으면서 익어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봉지를 씌워야 색깔이 예쁘게 나오고 껍질이 얇으면서 맛도 좋아진다고 한다. 주인장 얘기로는 봉지를 안 씌우면 아마 못 먹을 거란다. 그렇다면 옛날 복숭아는 다 시원찮았다는 말인가? 봉지를 씌우는 건 너무 겉모양과 상품성을 중요하게 여긴 결과가 아닌가 싶다. 나중에 가을이 되면 서로 비교해봐야겠다.

사진속일상 2013.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