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7620

마르코복음[80]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무덤에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주간 첫날 이른 새벽, 해가 떠오를 무렵에 그들은 무덤으로 갔다. 그들이 "누가 우리를 위해 무덤 입구에서 돌을 굴려내어 줄까요?" 하면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 돌은 매우 컸다. 무덤으로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흰 예복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몹시 놀랐다. 젊은이가 말했다. "너무 놀라지 마시오. 여러분은 십자가에 처형되신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분은 부활하여 여기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분을 안장했던 곳이오. 그분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여러분에 앞서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뵙게 될 것입니다..

삶의나침반 2023.06.04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역사학자 김영수 선생이 사마천의 삶을 재조명한 책으로 총 세 권 중 첫째 권이다. 제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쉽게 읽히면서도 고증에 충실한 내용이 탄탄하다. 선생은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면서 문헌 속에서만이 아닌 현장의 생생한 사마천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마천의 일생에는 두 번의 변혁기가 있다. 첫 번째는 20세 때부터 시작한 역사 탐방 여행이다. 사마천은 20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역사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1차 여행은 2년 동안 12,000km를 이동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한다(讀萬券書 行萬里路)'를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두 번째는 49세 때 이릉의 화로 당하게 된 궁형이다. 사마천은 BC 99년에 흉노족에 투항한 장군인 이릉을 변호했다가 한..

읽고본느낌 2023.06.03

족제비싸리

물가나 숲 언저리에서 자주 봤지만 그동안 이름을 특정하지는 못했다. 잎이 아까시를 닮아서 아까시의 다른 종류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꽃이 아까시와는 영 딴판이다. 색깔이나 모양이 가까이하기엔 꺼려진다. 꽃에서 이런 인상을 받는 건 드문 일이다. 이 식물의 이름은 족제비싸리다. 꽃 색깔이 족제비와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족제비싸리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사방공사를 할 때 경사면에 심는다. 아까시나 싸리와 용도가 비슷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녀석이니 이제는 제대로 이름을 불러줘야겠다.

꽃들의향기 2023.06.02

노루발풀

요사이는 꽃을 찾아다니지 않으니 새로운 꽃을 볼 기회가 없다. 어쩌다가 처음 보는 꽃을 만나게 되면 운이 좋은 때다. 며칠 전 산길을 걸을 때 만난 이 노루발풀이 그랬다. 앞서 가던 몇 사람이 뭔가를 유심히 들여다보기에 인연이 닿은 것이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쳤으리라. 노루발풀은 꽃 생김새가 노루발굽을 닮아 붙은 명칭이다. 산속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노루발풀은 항균작용이 있어서 약초로 쓰인다. 초여름의 숲에서 귀엽고 올망졸망하게 피어 있는 노루발풀 꽃이다.

꽃들의향기 2023.06.02

한평생 / 반칠환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고 지음도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구나. 그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 한평생 / 반칠환 본디 짧고 긴 것이란 없다. 짧다고 보면 짧은 것..

시읽는기쁨 2023.06.01

한강회의 영주 나들이

한강회 네 명이 1년 만에 만나서 영주 나들이에 나섰다. 부석사와 무섬마을에 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향이랍시고 내가 안내하는 꼴이 되었다. 9시에 곤지암역에서 합류하여 소머리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먼저 무섬마을로 향했다. 나로서는 영주댐이 완공되고 나서는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댐이 영향이 어떤지 궁금했다. 모래사장은 변함이 없었으나 물은 많이 탁해 보였다. 사람들이 무섬마을을 찾는 이유는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보기 위해서다. 외나무다리는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일깨워준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무섬마을은 이 외나무다리를 이용해 외부와 연결되었다. 내성천 모래사장은 정말 아름답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풍경이다.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

사진속일상 2023.05.31

지주를 세우고 잡초를 뽑다

이틀간 넉넉하게 비가 내려 텃밭 작물이 생기를 찾았다. 미루어 온 지주 세우기와 잡초 제거 작업을 했다. 상추, 겨자 등 야채는 두 주 전부터 식탁에 올라 입맛을 돋우고 있다. 고추, 오이 등도 작은 열매가 맺힌다. 아내는 나중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처음 나오는 오이는 따내 버린다. 올해 제일 풍성한 건 콩이다. 이것도 일이랍시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콩 고랑을 멜 때 한 노랫가사가 생각났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감히 투덜대거나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지 못하겠다. 허리가 아파도 가능하면 오래 버티려 했다. 옛 아낙네에 비하면 내 동작은 일이 아니라 유희인 것이다. 어쨌든 땀을 흘리고 나니 말끔해진 텃밭만큼 마음도 개운해졌다. 내 몸 조금..

사진속일상 2023.05.29

다육이(7)

이곳으로 이사를 온 초기에는 다육이를 사 모으고 정성들여 키웠다. 대여섯 해 반짝했을까, 그 뒤로는 거의 방치 상태가 되었다. 물을 주는 것도 늘 때가 늦어서 쭈글쭈글해질 정도가 되어야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물통을 든다. 다행히 다육이는 물이 부족해도 잘 버텨냈다. 반면에 풍란은 반 이상이 말라죽었다. 시간이 흐르면 관심은 멀어지고 열정은 시든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한 번 맺은 인연이 무서워 야박하게 내치지 못한다. 상대를 향한 미안하고 안스러운 마음이 고운 정 미운 정이 아닐까. 십 년 넘게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다육이들이다. 창 밖 낙숫물 소리에 더욱 배가 고플 너희들을 위해 오늘은 시원하게 목을 축여주려무나!

꽃들의향기 2023.05.28

끼리끼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특성이 오늘의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었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계발되면서 두뇌가 발달하고 문명의 건설이 가능하게 되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공동체에는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이루어진 모임도 많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 인간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결국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 대하기가 편하다. 이해의 폭이 넓은 탓이다. 예를 들어, 내향성인..

참살이의꿈 2023.05.27

타인의 마음

내가 내 맘을 모르는데 타인의 마음을 어찌 알리요, 책을 읽으며 내내 든 생각이었다. 그러함에도 타인의 마음이 궁금하긴 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까, 의아하게 여기게 되는 경우가 수시로 생긴다. 도무지 이해 못하는 반응을 해서 나를 힘들게 한다. 작은 궁금증이나마 풀 수 있을까 싶어 읽은 책이다. 은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선생이 썼다. 실생활에서 생기는 경험을 중심으로 인간의 마음을 쉽게 풀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타인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것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입만 열면 남과 비교하는 사람, SNS를 하면서 내 연락에는 답을 안 하는 사람, 나를 기운 빠지게 하는 비관적인 사람, 한..

읽고본느낌 2023.05.26

몰라서 못 먹는다

집에는 냉장고가 세 대 있다. 두 노인이 사는 집 치고 과하지만 전에 자식들과 같이 살 때 쓰던 냉장고가 고장 없이 작동하고 있으니 계속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아내에게 한 대를 없애자고 제안했지만 다 쓸모가 있다고 한다. 부엌 살림살이는 아내 소관이니 어찌할 수가 없다. 세 대의 냉장고는 어디를 열어봐도 빈틈없이 뭔가가 가득 들어 있다. 둘이 사는 살림에 무슨 먹을거리가 이토록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내조차도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을 파악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뭘 찾자면 이 냉장고 저 냉장고로 왔다갔다 한다. 냉장고만 아니라 옷장도 마찬가지다. 십 분의 일로 줄여도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냉장고 문을 열면서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부쩍 늘어난 말이다. "이런 게 있..

참살이의꿈 2023.05.25

물빛공원 장미(2023)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장미의 달이기도 하다. 온갖 품종의 장미가 서로 자태를 뽐내며 화려하게 꽃피는 때가 지금이다. 전국에서는 장미 축제가 열린다. 서울에서는 올림픽공원, 서울대공원, 중랑천 장미가 규모가 크면서 유명하다. 이름이 나면 당연히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고 번잡하다. 우리 동네 물빛공원에 있는 작은 장미 터널이다. 아담한 소규모여서 한적하니 좋다. 대단한 볼거리가 아니니 일부러 찾는 사람은 드물다. 공원을 걷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5월이 주는 선물이다. 나에게는 요란한 행사장보다 이런 소박한 장소가 더 낫다. 살펴보면 사는 곳이 어디든지 나름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내 주변의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가는 재미도 쏠쏠한 것이다.

꽃들의향기 2023.05.24

장어로 보신하고 공원을 걷다

아내가 몸살(?)을 앓은 뒤끝이라 몸보신을 하러 장어집에 갔다. 큰 것과 중간 것, 두 마리를 시켜서 한껏 먹었다(8만 원). 오랜만의 장어 기름이 속에 부담이 되었는지 저녁에 같이 설사가 나와서 실소를 했다. 이래서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는가 보다. 봄에 들면서 식사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겨울은 입맛이 없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위에 부담이 돼서 소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식 소동(小食 小動)'의 생활이었다. 다행히 봄이 되면서 입맛이 돌아오고 위장도 괜찮아졌다. 덕분에 좀 더 활기차졌다. 식사 후 물빛공원을 찾아서 두 바퀴를 돌았다. 황사가 끼었지만 산책하기에는 무난한 낮이었다. 풍성하진 않아도 아담한 장미 터널이 있고, 물빛버즘도 공작 날개처럼 초록잎을 펼치고 있었다. 이즈음의 나..

사진속일상 2023.05.23

마르코복음[79]

그날은 준비하는 날, 곧 안식일 전날이었다. 날이 저물어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왔는데,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그 역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용기를 내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청했다. 빌라도는 벌써 죽었느냐며 놀라서, 백부장을 불러 숨진 지 한참 되었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백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요셉에게 시신을 내주었다. 요셉은 삼베를 사다가 시신을 내려서 싼 다음, 바위에 뚫린 무덤에 안장하고는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놓았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께서 어디에 안장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마르코 15,42-47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안장한 사람은 의회 의원인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었다. 전날 밤 의회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

삶의나침반 2023.05.22

짧은 죽음 / 유자효

영화 '쿼바디스'에서 보았다 고대 로마 원형 경기장 사자 무리에 맞서 공포에 떠는 기독교도들에게 나이 든 여성이 달래는 말 "두려워 마요. 금방 끝날 거예요" 이때의 죽음은 자비 빨리 끝내주는 것이 은혜가 되는, 절망적인 병과 마주 섰을 때 고통과 공포에 떠는 환자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를 가장 사랑하는 이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 서야 할 시간에 연약한 영혼을 달래주는 것은 최후의 은총 짧은 죽음 - 짧은 죽음 / 유자효 품위 있는 죽음이라거나 웰 다잉 같은 말을 이제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노화와 죽음이 어떻게 한 인간을 허물어뜨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멀쩡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치매가 찾아와서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고 인간관계가 불가능해진다. 존경받던 선배 한 분은 이태째 정신줄을..

시읽는기쁨 2023.05.21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일장을 치르면서 조문객들을 통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아버지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아버지에 얽힌 사연이 가벼우면서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어 묵직한 주제인 이데올로기 문제가 깔려 있지만 부담 없이 읽힌다. 신안 여행을 할 때 책을 가져가서 이틀 저녁 동안에 다 읽었다. 정지아 작가의 전작인 이 부모의 구술을 받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정리한 것이라면, 이번 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결연한 비장미를 풍긴다면, 이 책은 경쾌한 댄스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미소와 함께 가슴 뭉클한 장면도 많다. 자신의 신조였던 사회주의와 평등사상을 삶으로 실천하신 아버지의 모습은 존경심이 든다. 이념은..

읽고본느낌 2023.05.20

우전리 팽나무

분재처럼 완벽한 수형을 갖춘 팽나무다. 그러나 줄기를 들여다보면 역시 팽나무의 자유분방한 특징이 드러난다. 여러 개의 줄기가 얽히고설키면서 재미있는 형상을 만들고 있다. 잘 찾아보면 남근 모양도 보인다. 수령이 500년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팽나무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나무 높이는 12m, 줄기 둘레는 4.3m다. 신안군 증도면 우전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23.05.19

지도읍사무소 팽나무

신안군 지도읍사무소 안에 있는 팽나무다. 사무소가 있는 자리는 과거에는 지도군 관아가 있던 곳이다. 그래선지 오래된 팽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이 팽나무는 수령이 300년 정도로 가족 중 제일 맏형이다. 고목이 된 팽나무 줄기는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 팽나무도 예외가 아니다. 우락부락한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나무는 남향으로 4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나무 높이는 17m, 줄기 둘레는 4m에 이른다.

천년의나무 2023.05.19

신안 여행(3)

셋째 날, 볼일이 있는 처제네는 아침 식사 후 장모님을 모시고 일찍 집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퍼플섬을 구경하고 올라가기로 했다. 먼저 숙소 가까이 있는 '천사섬 분재공원'에 들렀다. 이 공원은 압해도 송공산 남쪽 기슭 5만 평 부지에 조성되어 있다. 명품 분재와 수목, 조각상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공원의 중심은 애기동백숲이다. 겨울에 애기동백이 필 때 와야 공원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온실에서는 이 주목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물경 1,500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자태가 웅장하다. 그러면서 잎이 달린 가지는 싱싱하고 균형 잡혀 있다. 옆 온실에는 2,000살 된 주목도 있는데 개방을 하지 않아 멀리서 흐릿하게만 봤다. 이어서 퍼플섬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안좌도로 갔다. ..

사진속일상 2023.05.18

신안 여행(2)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가만히 숙소 앞 바닷가에 나갔다. 하루도 안 지났지만 벌써 이런 풍경에 익숙해져 있다.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느릿느릿 걸었다. 이곳 신안 압해도 송공리 바다는 김 양식과 낙지잡이가 주업인 것 같다. 갯벌 낙지 맨손 어업이 국가 중요 어업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압해도(壓海島)는 신안에서 제일 큰 섬이라는데 무식하게도 신안 여행을 계획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바닷가에는 압해도를 사랑한 노향림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은 가난한 유년기를 보낼 때 목포에서 건너다 보이는 압해도가 무한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시인은 수십 편의 압해도 연작시를 지었다. 섬진강을 지나 영산강 지나서 가자 친구여 서해 바다 그 푸른 꿈 지나 언제나 그리..

사진속일상 2023.05.18

신안 여행(1)

처제 부부와 함께 장모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이 일이 꼬이는 바람에 계획과 어긋났다.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긴 했으나 엉뚱하게 두 팀으로 나누어 따로 다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변수가 생길 수 있고, 상황에 맞게 적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신안에 들어가는 길에 목포에 들러 해상케이블카를 탔다. 북항승강장에서 탑승하여 유달산을 지나 고하도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다.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2019년에 개통되었고 길이는 3.2km다. 케이블카에서 보니 고하도 둘레로 해상데크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섬 가운데 있는 것은 전망대인 것 같다. 다음에 시간 여유를 가지고 목포에 온다면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 유달산승강장에서 내리면 유달산 정상에도 다녀올 수 있다. 30분 정도 일등봉까지 오가는 산길을..

사진속일상 2023.05.18

백모란 한 송이

가는 줄기에 딱 한 송이만 피었다. 아마 이 세상에 나와서 첫 꽃을 피웠는지 모른다. 길을 가다가 눈길을 끈 모란이다. 나는 모란이 애호하는 꽃이 아니어서 그저 일별하고 지나가는 정도지만 이 모란에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만히 바라보니 순백의 색깔이 순결하면서 고귀하게 느껴진다. 그래, 붉다 못해 검기까지한 색깔보다는 훨씬 낫다. 모란이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때는 기록에 남아 있다. 신라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모란 그림과 꽃씨를 보내왔다. 뒤에 선덕여왕이 된 공주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걸 보고 이 꽃에는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꽃씨를 심어보니 향기 없는 꽃이 피었다고 한다. 선덕여왕이 어릴 때부터 영민한 소녀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코를 대보니 전하는 이야기와는 달리 향기가 진하다. ..

꽃들의향기 2023.05.14

숨결이 바람 될 때

부제가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다. 이 책을 쓴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는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나서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다. 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보인 그는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자 예일 의과대학원에 입학해 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걸었다. 의사로서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던 중 암이 찾아왔다. 투병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다가 2015년에 사망했다. 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쓴 책이다.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진솔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짧지만 뜨겁게 살다 간 아름다운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

읽고본느낌 2023.05.14

당구 배우는 재미

쓰리 쿠션 당구를 배우는 재미에 빠져 있다. 유튜브를 통해 시스템을 공부하고 당구장에서 배치를 놓고 연습하면서 익히고 있다. 감각으로만 칠 때와 달리 공이 진행하는 원리를 알게 되니 당구가 훨씬 흥미롭다. 30대 때 당구를 시작했는데 그때 다니던 직장 분위기는 술을 마시고 나면 2차 또는 3차는 당구장에서 노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큐대를 잡게 되었지만 취중에 흉내낸 당구라 기본이 안 된 채 엉망이었다. 맨정신으로 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 십 년을 쳐도 4구 100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 50대 때는 당구와 멀어졌다가 다시 재개한 것은 퇴직 후였다. 대학 동기 당구 모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 달에 두 번씩 모이다가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난다. 대여섯 명이 고정 멤버이고 나는 출석률..

길위의단상 2023.05.12

단양휴게소 은방울꽃

내가 좋아하는 봄꽃 삼총사는 노루귀, 은방울꽃, 앵초다. 그중에서도 아침 숲길에서 이슬을 송골송골 매달고 부끄러운 듯 숨어 피어 있는 순백의 은방울꽃을 보면 쪼그린 무릎이 펴지지를 않는다. 맑은 종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탓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야생의 은방울꽃을 만나지 못한 지 꽤 되었다.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 뒤편에 넓은 꽃밭이 있다. 고향에 내려갈 때면 들러서 눈요기를 하는 곳이다. 이번에는 화단 한편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은방울꽃이 있었다. 고맙다, 이렇게라도 널 만나는 올봄이구나. 고개 들어 하늘 보니 아련한 어느 봄날이 떠올라 따스해진다.

꽃들의향기 2023.05.11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찾아뵙다

어버이날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어버이날이면 동네에서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어졌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봉사를 할 중년층이 사라진 탓일 게다. 이미 마을 주민의 9할 이상이 70대가 되어 있다. 저녁 식사를 하고 해 질 즈음에 마을 주변 산책에 나섰다. 매직 아워의 전원 풍경이 평화로웠다. 다음날은 밭에 나가 잠시나마 어머니 일손을 도와 드렸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밭일이 아니면 생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시는 것 같다. 삶을 지배하는 관성의 무서움이다. 힘들다 하면서도 밭은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다. 나도 꼼꼼한 편이지만 어머니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여러 해 전부터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올해 역시 깨 농사를 시작했다...

사진속일상 2023.05.10

조만간 죽는다

"조만간 죽는다." 생략된 주어는 당연히 '나는'이다.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도 짧은 지상의 삶을 누리다가 반드시 죽는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은 외면하려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애써 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죽음에 대한 의식은 불안을 동반한다. 살아 있는 인간은 죽음이라는 완전 소멸을 감당하기 힘들다. 공자마저 죽음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며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철학은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을 직시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불안과 부조리가 죽음이라는 숙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는 것이 병이다. 죽음을 예견하지 못..

참살이의꿈 2023.05.08

더 크라운 & 더 퀸 & 스펜서

어제 찰스 3세가 영국 국왕에 오르는 대관식 행사가 있었다. 70대의 찰스 3세는 전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워낙 장수하는 바람에 왕세자에 오른 지 65년 만에 왕위에 올랐다. 말썽 많았던 커밀라도 왕비가 되었다. 찰스 3세는 1981년에 다이애나와 결혼했으나 커밀라와의 불륜 관계로 이혼했고, 그 뒤 다이애나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 영국 왕실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 중에서 셋이 떠오른다. '더 크라운', '더 퀸', '스펜서'다. 본 지 꽤 되었지만 기억을 되살려본다. 1. 더 크라운 영국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다. 2016년에 시즌 1을 시작으로 작년에 시즌 5가 나왔다. 총 50부작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이 드라마를 보는 데 나는 3년이 걸렸다. 엘리자베스 2세는 2..

읽고본느낌 2023.05.07

고추와 토마토를 심다

연 이틀 반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남부 지방에는 100mm가 넘는 강수량으로 가뭄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중부 지방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농사에 큰 도움이 되는 비다. 어제는 잠시 비가 가늘어진 사이에 텃밭에 나가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를 심었다. 지난달에 심은 감자, 콩, 상추, 호박에 이어 두 번째로 심은 작물이다. 고구마 모종은 늦게 구하는 통에 오후에 비가 그치면 심으려 한다. 텃밭도 몇 해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고 처음보다는 수월한 편이다. 내가 심은 작물이 자라나는 걸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면 일부러 걸음을 해서 찾아보곤 한다. 농부와 작물 사이에 정서적 교감이 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베란다에서 기르는 화초든 텃밭의 작물이든 반려식물이라고..

사진속일상 2023.05.06

동네 등꽃

차로 30분 정도 가야 하는 곳에 등꽃 명소가 있다. 차려입고 나가야 하는 게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러다가 등꽃이 지면 아쉬워할 게다. 다른 인생사와 마찬가지다. 집 가까이서도 등꽃을 볼 수 있다. 동네 산책 중에 만나지만 볼 때마다 감탄한다. 여기는 야생 상태로 자라는 등나무다. 이 나무 앞에 서면 봄은 보라색이다. 그런데 올해는 색깔이 좀 시무룩하다. 등나무는 다른 나무를 감고 오르는 덩굴식물이다. 등나무가 얼마나 힘이 세고 질긴지 잘못 등나무와 인연을 맺으면 자리를 내준 나무는 죽을 지경이 된다. 사람 세상에서도 이런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식물 세계든 인간 세계든 마음 편하게 살자면 우선 이웃을 잘 만나야 하는 법이다. 세상살이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등꽃을 ..

꽃들의향기 2023.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