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사진 한 점 생각 한 줌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80이 되기 전에 책을 한 권 내보고 싶은 꿈이다. 그동안 찍어둔 사진에 글을 덧붙인 형식으로 하고 싶다. 요사이 유행하는 포토포엠(디카시)으로 할지, 아니면 사진 에세이로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자료함에 수천 장의 사진이 있으니 책을 낼 바탕은 충분하다. 중요한 건 사진과 관련된 스토리일 것이다. 막상 출판을 생각하니 능력 부족을 느낀다. 내용이 부실할 것 같으면 아예 접는 게 좋다. 은 그런 목적하에서 찾아본 책이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김동준 작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사진에 얽힌 이야기 및 단상을 적었다. 각 사진과 글을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로 구분하여 정리한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계기로 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런 책을 보면 역시 사람의..

읽고본느낌 2024.08.30

경안천에 나가다

추석 연휴 닷새 동안 내내 집안에서만 머물렀다. 그렇게 된 제일 큰 원흉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게임이었다. 경기 중계에 빠지면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특히 배드민턴, 탁구, 바둑 중계에 홀렸다. 이 셋은 평소에도 관심이 있는 종목이어서 대회가 열리면 늘 챙겨보곤 했다. 배드민턴의 안세영과 탁구의 신유빈 선수 경기는 빼놓지 않고 봐 왔다. 둘은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안세영은 세계 랭킹 1위, 신유빈은 세계 랭킹 8위)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줘서 기뻤다. 안세영은 배드민턴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신유빈은 전지희와 짝을 이룬 복식에서 금메달을 땄다. 두 종목 모두 20여 년만의 금메달이었다. 스포츠에서 승부는 각..

사진속일상 2023.10.04

이런 삶의 대학 하나 세우는 꿈 / 김예슬

우리 대학은 입학시험이 없다. 우리는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다. 당연히 교수도 캠퍼스도 없다. 입학시험은 없지만 진정한 자신을 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필요하다. 졸업장과 자격증은 없지만 일생을 함께할 자신감과 좋은 벗들이 주어진다. 교수는 없지만 숨은 현자와 장인과 토박이 지성들이 우리의 교수다. 캠퍼스는 없지만 온 국토와 지구마을과 삶의 현장이 우리의 캠퍼스다. 교과목은 다음과 같다. 발목이 시리도록 대지를 딛고 계절의 길을 거닐며 야생자연을 탐험한다. 자기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건강법을 익힌다. 지감각을 되살리고 민감한 감성으로 절정체험의 순간을 느낀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가꾸며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사는 법을 익힌다. 우정과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슬픔과 고통을 다루는 ..

시읽는기쁨 2023.07.31

내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거의 매일 밤 꿈을 꾼다. 그런데 꿈이 영 마뜩잖다. 열에 아홉은 사람들과 다투고 마찰을 겪는 내용이다. 악몽까지는 아니어도 괴롭고 답답한 꿈이다. 잠을 깨고 반추해 보면서 늘 기분이 씁쓸하다. 오늘 새벽 꿈도 그랬다. 옛 직장 동료들과 무슨 발표를 하게 되어 있었다. 나누어준 프린트 자료가 있었는데 집에다 두고 나왔다. 내 발표는 두 번째였다. 뒤에 발표하게 되어 있는 동료에게 자료를 빌려달라 했는데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끼던 물건(큰 수정 구슬인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음)은 마당에서 뒹굴고, 대드는 동생과 티격태격하며 손찌검까지 했다. 너무 화가 난 상태에서 잠이 깼다. 싸우고 지지고볶고 꾸는 꿈마다 패턴이 비슷하다. 인간관계의..

참살이의꿈 2023.02.28

어제 꾼 꿈

어젯밤에는 평상시와 다른 꿈을 꿨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핵전쟁을 위협해서인지 꿈에 핵전쟁이 벌어지고 세상의 종말이 오는 광경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과 통신이 끊어지고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파트에 갇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는 전략폭격기들이 거대한 몸집을 끌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근방에서는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공기가 몰려온다는 소문에 창문을 꼭 닫는 방법 외에는 대처할 수가 없었다. 공포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다가 꿈이 끝났다. 이어서 꾼 꿈은 앞의 것과 반대였다. 화창한 봄날 온갖 꽃이 만발한 어느 전원 가운데였다. 탐조를 온 외국인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필드스코프를 건네며 산 꼭대기에 있는 새들을 보라고 했다. 둥..

길위의단상 2022.05.05

무거운 밤

어설프게 술을 마신 뒤에는 잠을 설친다. 비몽사몽 상태에서 온갖 꿈이 난무한다. 꿈은 대체로 어둡고 무겁다. 가위눌릴 정도는 아니어도 영 기분이 씁쓸하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어제는 직장과 군대 꿈에 시달렸다. 둘 모두에서 나는 불성실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나온다. 직장은 학교 교무실과 교실이 주무대다. 늘 나는 수업에 들어가는 게 늦거나 교실을 찾지 못해 허둥댄다. 시간표를 착각해서 아예 수업을 빼먹기도 한다. 교실에 들어가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서툴다. 수업 준비를 안 해서 무엇을 가르칠지 몰라 진땀을 흘린다. 나는 교무실 동료나 교실의 아이들한테서나 왕따 신세다. 35년 동안 한 선생 노릇이다. 어떤 강박관념이 있길래 퇴직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이따위 꿈에 계속 시달리는지 모르겠다. 교직이 적..

참살이의꿈 2021.09.04

살아나는 꿈

아내는 텃밭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동안 몇 차례 텃밭을 한 적이 있었지만, 올해처럼 몰두하는 것은 처음 본다. 수확해서 먹는 것은 둘째고, 작물을 심고 기르는 즐거움이 우선인 것 같다. 텃밭과 채소 얘기를 할 때는 얼굴에 생기가 돈다. 텃밭과 사랑에 빠진 게 틀림없다. 이번에 얻은 텃밭은 집 옆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텃밭에 나간 것이다. 돌아올 때는 큰 비닐봉지에 뭔가가 한가득 들어 있다. 아내의 얼굴 표정도 밝고 환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얼굴이 부은 채 방에서 나왔을 터였다. 아내의 건강에도 텃밭이 일조를 하고 있다. 내년에도 계속 텃밭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텃밭을 포함한 주변 땅에 아파트 공사가 예정되..

참살이의꿈 2021.08.18

후배의 독서당

후배 H가 북한강변에 독서당(讀書堂)을 마련해서 조용히 책 읽고 글 쓰며 살고 있다는 얘기는 연전에 들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마침 통화가 되었고, 몇 번 약속이 어긋나다가 마침내 어제 찾아가 보게 되었다. H는 교직에 있으면서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니고 박사 학위를 딴 학구적인 후배다. 퇴직을 하고 책을 원 없이 읽고 싶다며 남양주에 거처를 마련했다고 한다. 강변에 자리 잡은 전원주택의 2층에 세를 들어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상상한 소박한 오두막과 달리 넓고 럭셔리했다. "언제 이렇게 부르주아로 변신한 거야?"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내가 주는 선물인 거죠."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후배가 대견하고 부러웠다. 나도 세컨드 하우스 개념의 이런 공간 하나 빌리고 싶은 것..

참살이의꿈 2021.06.22

'나라' 없는 나라 / 이시영

어디 남태평양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섬은 없을까. 국경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리하여 군대나 경찰은 더욱 없는. 낮에는 바다에 뛰어들어 솟구치는 물고기를 잡고 야자수 아래 통통한 아랫배를 드러내고 낮잠을 자며 이웃 섬에서 닭이 울어도 개의치 않고 제국의 상선들이 다가와도 꿈쩍하지 않을 거야. 그 대신 밤이면 주먹만 한 별들이 떠서 참치들이 흰 배를 뒤집으며 뛰는 고독한 수평선을 오래 비춰줄 거야. 아, 그런 '나라' 없는 나라가 있다면! - '나라' 없는 나라 / 이시영 선거법과 공수처법 처리를 두고 국회가 시끄럽다. 무한한 권력욕과 제 이익 챙기기밖에 모르는 정치꾼들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언제 아니 그런 적 있었느냐고 나를 달래면서, 시인처럼 '나라' 없는 나라를 꿈꾼다. 쇠붙이와 껍데기의 ..

시읽는기쁨 2019.12.29

새벽꿈

산속에서 혼자 사는 초등 동기 S에게 놀러 갔다(실제로 S는 소백산 깊은 곳에 살고 있다). 황토로 직접 지은 단칸방의 집인데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되었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가 귀곡산장처럼 으스스했다.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억지로 잠을 청하는데 밖에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부르며 찾으시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외면했지만 너무 간절하게 부르셔서 문을 열고 나갔다. 하얀 소복을 입은 외할머니가, 여기는 위험하니 빨리 도망가자고 하셨다. 안 그래도 꺼림칙하던 차에 외할머니를 따라가리라 마음먹고, 방으로 들어가 S에게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S는 정색하며 밖으로 나가더니 문을 모두 잠가버렸다. 졸지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밖에서는 S가 외할머니를 해치는 소리가 들리고..

길위의단상 2019.04.10

반복되는 꿈

꿈에서는 늘 학교가 등장한다. 우중충하고 복잡한 구조의 건물이다. 볼일이 급한데 화장실이 없다. 겨우 찾아내도 너무 더러워 들어갈 수가 없다. 전부 재래식 화장실인데 어디나 대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리저리 헤매기만 한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유형의 꿈을 연속으로 꾸고 있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힘들게 화장실을 찾았는데 내부는 겨우 볼일을 볼 정도의 여유만 있었다. 난감해하다가 잠을 깼다. 꿈에 학교가 나오면 늘 악몽이다. 퇴직한 다음에는 교실을 못 찾아 허둥대는 꿈이 계속 나왔다. 시간표를 착각해서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다. 진땀을 흘렸다. 몇 년간 그러더니 이젠 똥 꿈으로 변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한다. 더구나 같은 꿈을 연속으로 꾼다는 것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메시지로 해석해도 무리..

길위의단상 2018.05.06

먼지가 되겠다 / 송선미

당신을 만나서 선생님이나 변호사, 검사나 약사, 의사나 화가 엄마나 아빠, 또는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먼지가 되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 아주 오랜 꿈은 먼지가 되는 것 아무도 모르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폴폴 어딜 가야 한다는 무엇 되어야 한다는 그런 것 없이 그냥 이러저리 떠다니다가 빗자루에 휙 쓸려 쓰레기통에 담겨 버려지기도 하는 또는 운 좋게 어느 집 방구석에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십 년이고 가만히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필요도 없는 나는 먼지가 되고 싶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어요 - 먼지가 되겠다 / 송선미 시골에 내려가 소식 끊고 지내는 동기가 셋이나 된다. 가끔 그들의 소식이 궁금해지는 건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생 후반기에는 복잡한 인간관..

시읽는기쁨 2017.12.05

꿈에서 아버지를 뵙다

새벽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났다. 한적한 다리 위였다. 갑자기 한 사람이 옆에 다가왔다. 얼굴을 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지예? 아버지가 맞지예?" 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띠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아버지 품에 안겨 울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살아계실 때 다정하게 말 한마디 해 드리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따뜻하게 나를 껴안아 줄 뿐이었다. 나는 반가워서 계속 흐느꼈다. 아버지는 흰색의 깔끔한 여름옷을 입고 계셨다. 얼굴은 살이 찌시고, 표정은 없었지만 밝았다. 오래전 꿈에서는 항상 병약한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마음이 아팠었다. 고맙고 안심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잠이 깼다. 무척 생생한 꿈이었다.

길위의단상 2016.07.02

야호! / 이종문

내 방금 낮 꿈에서 작은 청개구리 되어 연잎에 폴짝 뛰어 팔을 베고 누웠더니 바람도 살랑 바람에 호사도 좋을시고, 후두두두 다다다다 소낙비 냅다 때려 얼씨구 절씨구나 어절씨구 춤을 추다, 연잎이 왕창 꺾어져 기절초풍했죠, 야호! - 야호! / 이종문 요즈음은 우째 꿈조차 사납고 지저분한지 모르겠다. 나이 들수록 속에는 쓰레기로 가득 차는가 보다. 각박한 현실에서 예쁜 꿈으로나마 위로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시인처럼 작은 청개구리가 되어 연잎에 누웠다가 냅다 때리는 소낙비 맞으며 어절씨구 춤을 춘다면 얼마나 신나랴. 절로 "야호"가 나올 것 같다. 오래전이지만 신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마음이 조종하는대로 내 몸은 창공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 ..

시읽는기쁨 2015.06.29

시인 공화국 / 박두진

가을 하늘 트이듯 그곳에도 저렇게 얼마든지 짙푸르게 하늘이 높아 있고 따사롭고 싱그러이 소리내어 사락사락 햇볕이 쏟아지고 능금들이 자꾸 익고 꽃목들 흔들리고 벌이 와서 작업하고 바람결 슬슬 슬슬 금빛 바람 와서 불면 우리들이 이룩하는 시의 공화국 우리들의 영토는 어디라도 좋다. 우리들의 하늘을 우리들의 하늘로 스스로의 하늘을 스스로가 이게 하면 진실로 그것 눈부시게 찬란한 시인의 나라 우리들의 영토는 어디에라도 좋다. 새푸르고 싱싱한 그 바다.... 지즐대는 파도소리 파도로써 돌리운 먼 또는 가까운 알맞은 어디쯤의 시인들의 나라 공화국의 시민들은 시인들이다. 아 시인들의 마음은 시인들이 안다. 진실로 오늘도 또 내일도 어제도 시인들의 마음은 시인들만이 있다. 가난하고 수줍은 수정처럼 고독한 갈대처럼 무력..

시읽는기쁨 2014.11.26

첫 꿈 / 빌리 콜린스

황량한 바람이 유령처럼 불어오는 밤 잠의 문전에 기대어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꿈을 꾸었던 사람을, 첫 꿈에서 깨어난 날 아침 그는 얼마나 고요해 보였을까 자음이 생겨나기도 오래전 짐승의 표피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모닥불 곁에 모여 서서 모음으로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는 아마도 슬며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깊은 곳을 내려다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떻게 가지 않고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단 말인가, 홀로 생각에 잠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돌로 쳐 죽인 뒤에만 만질 수 있었던 짐승의 목에 어떻게 팔을 두를 수 있었던 것일까, 살아 있는 짐승의 숨결을 어찌하여 그리 생생하게 목덜미에 느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 한 ..

시읽는기쁨 2014.11.13

초망한 소원 / 이경학

울 엄니 한 번 업어봤으면.... 출세해서 이층집 짓는 욕심은 예전에 부질없는 것인 줄 깨달았고 통일되어 아버지 모시고 고향가는 꿈은 엊그제 신문에서 미적미적 멀어졌으나 이 새벽 닥친 추위에 이불자락 끌어당기며 끝까지 놓치지 않은 하나 남은 소원은, 울 엄니 한 번 업어드려 봤으면.... 휠체어 박차고 일어나 두 발로 떳떳이 서서 울 엄니 따스한 배를 내 등허리에 얹어봤으면.... 저 작은 여인네 손주 안아보시겠다고 연세 많이 드셔서도 끝내 균형을 잃지 않고 계시니, 천성이 명랑한 아낙네 아들 사람 되는 꼴 보시겠다고 그 모진 세월에도 걸음걸이 빠르고 반듯하시니.... 달랑 업고 동네 한 바퀴 돌아봤으면.... 오래 사시겠다고 다짐하시는 뜻이 나 일어설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시겠다는 것이니 그 의지를 믿고..

시읽는기쁨 2014.08.30

통일은 대박

지난 연말부터 통일에 대한 발언이 무성하다. 국정원장이 2015년의 통일을 위해 헌신하자고 직원들에게 훈시한 내용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그 자리에서는 독립군가를 부르면서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통일을 언급하며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다. 그 뒤에도 통일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유망한 투자처며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외국 학자들의 발언이 연신 소개되고 있다. 늦어도 2020년까지는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동시에 TV에서는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방송하고 있다. 갑자기 통일 풍년이 되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 민족의 비원인 통일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통일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국민의 통일..

길위의단상 2014.01.23

어떤 꿈을 꿈

꿈과 야망은 다르다. 꿈이 속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바람이라면, 야망은 되어야 하는 욕구다. 꿈이 이타성에 바탕을 둔다면, 야망은 나 중심의 에고에서 출발한다. 꿈꾸는 사람은 평화롭지만, 야망을 가진 사람은 칼처럼 날카롭다. 꿈은 기쁨과 여유를 주지만, 야망은 불안하고 조급하다. 꿈은 성취 여부와 상관없이 꿈 자체로 행복하다. 킹 목사가 외친 "I have a Dream"이 바로 꿈이다. 어떤 꿈을 꾸느냐에 그 사람됨이 있다. 홍순관 님이 자신의 이력을 꿈 중심으로 소개한 걸 보았다. 독특하고 재미있어 여기에 옮긴다. 1962년 지구에 태어남 1963년 유모차를 타고 깊은 꿈을 꿈 1964년 장난감방에서 하루 종일 놀면서, 노는 꿈을 꿈 1965년 집에 있던 포도나무에 호기심을 보임, 앵두나무에도 호기심을 ..

참살이의꿈 2013.08.21

우리나라 100대 명산

난 목표를 정하는 게 싫다. 그런 걸로 남이나 나를 다그치는 건 영 질색이다. 성인이 된 뒤로는 무엇이 되려고 끈질기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사이 들어 등산 목표를 하나 세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100대 명산 목록을 보고 나서부터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죽기 전에 100산 정도는 올라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음이 100대 명산 목록이다. 좁은 국토인데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여럿 있다. 내가 정상을 찍었던 산은 붉은색으로 표시해 보았다. 수도권 15 감악산, 관악산, 도봉산, 마니산, 명성산, 명지산, 백운산, 북한산, 소요산, 용문산, 운악산, 유명산, 천마산, 축령산, 화악산 강원권 22 가리산, 가리왕산, 계방산..

길위의단상 2013.06.24

일장춘몽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 성화는 부려서 무엇하나 / 인생 일장춘몽인데...." 어렸을 때 집에 유성기가 있었다. 저녁이 되면 동네 할머니들이 찾아들고 나는 태엽을 돌리며 유성기를 틀었다. 할머니들은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 노래도 그중의 하나다. 이제는 그 하얗던 할머니들도, 유성기도, 마당의 감나무도 사라지고 없다. 요사이 내 입에서도 무심결에 이 노래가 중얼거려진다. 그러면 옛날의 그 호롱불이 희미하던 방 풍경이 떠오른다. 본 노래보다는 잡음이 더 많았던, 북한 사람의 음성처럼 간드러지던 유성기 소리도 들린다. 인생 일장춘몽인데, 애면글면 헛된 마음을 쓰면서 힘들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에 있나 싶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 아니던가. 에라, 이기려 하지 말고 져 주자..

참살이의꿈 2013.06.11

사는 기쁨 / 황동규

1 오디오 둘러메고 한강 남북으로 이사 다니며 개나 고양이 곁에 두지 않고 칠십대 중반까지 과히 외롭지 않게 살았으니 그간 소홀했던 옛 음악이나 몰아 들으며 결리는 허리엔 파스 붙이고 수박씨처럼 붉은 외로움 속에 박혀 살자, 라고 마음먹고 남은 삶을 달랠 수는 없을까? 2 사는 건물을 바꾸지 않고는 바꿀 수 없는 바램이 있다. 40년 가까이 아파트만 몇 차례 옮겨 다니며 '나의 집'으로 가는 징검다리거니 생각했다. 마지막 디딤돌에서 발을 떼면 마련한 집의 담을 헐고 마당 절반엔 꽃을 심자. 야생화 밟지 마라 표지 세워논 현충원 산책길엔 도통 없는 노루뒤 돌단풍 은방울꽃 그래, 몰운대(沒雲臺)에서 눈 크게 뜨고 만난 은방울꽃 카잔차키스 묘소에 열심히 살고 있던 부겐벨리아 루비보다 더 예쁜 루비들을 키우는 ..

시읽는기쁨 2013.05.24

다시 꿈꾸기

여기로 이사 오면서사오년 정도는 살 예정이었다. 도시와 산골의 중간 단계에 필요한 휴식 시기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자꾸 탈출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전원병(田園病)이 도진 것이다.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는 전원과 시골살이에 관련된 사이트가 수십 개 등록되어 있다. 아내는 전에 뜨거운 맛을 봤으면 됐지 또 혼나려고 하느냐며 걱정이 크다. 내 앞에는 네 갈래의 길이 있다. 첫째, 조용한 시골 마을에 터를 구해 조그만 흙집을 직접 짓는다. 터는 동네에서 떨어진 곳에, 넓이는 200평 내외면 좋겠다. 위치는 이곳에서 1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어야 한다. 충청북도쯤이 적당할 것 같다. 가까울수록 좋지만 경기도는 땅값이 너무 비싸다. 집은 10평 정도면 된다. 방은 반드시 온돌이어야 한다. 이미 ..

참살이의꿈 2012.03.21

군대와 학교

친구들과 군대 얘기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입대하게 되는 악몽을 공통으로 꾼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붙잡아가려는 당국과 도망가려는 나 사이의 갈등이 군대 꿈의 기본 틀이다. 꿈을 깨고 나면 식은땀이 흐르기도 한다. 군대가 체질인 사람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대부분 남자들에게는 군대 경험이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공통적인 꿈 경험이 대변해 준다. 나에게는교직 생활 역시좋지 않은 꿈으로나타난다. 퇴직한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학교가 꿈에 나오면 영 기분이 언짢다. 수업하러 들어가는데 교실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꿈이 제일 잦다. 미로 같이 얽힌 학교 건물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수업 시간이 끝나 버린다. 또, ..

길위의단상 2011.11.05

어렸을 적에는,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이 제일 곤혹스러웠다. 되고 싶은 게 없었으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판검사를 좋아하는 걸 알고는 판사나 검사라고 답할 때도 있었지만 외교적 수사였을 뿐이다. 아버지는 이런 내 성격을 아셨는지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셨다. 초등학교 때 통지표에 나오는 부모 희망란에는 항상 교사라고 적혀 있었다. 교수가 아니고 교사라는 것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덩달아 내 희망도 교사가 되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교사가 인기가 없었다. 교사가 되길 바라는 건 창피한 일이었고 그건 청소년기에 가져야 할 야망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별다른 꿈이 없었던 건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청소년기에 가졌던 꿈에 대해서 자신 있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도 부럽다. 나는 그런 ..

참살이의꿈 2011.05.22

[펌] 이런 마을을 꿈꾼다

이런 마을을 꿈꾼다. 뒷산은 그렇게 높진 않지만 위엄이 있고, 개울이 흘러 저 멀리 강이 보이는, 서남향이라 햇볕이 오래 오래 머무는, 감나무에는 홍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온갖 새의 먹잇감이 되어주는 그런 마을. 사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여울목에는 구름 한 자락 떠 있는, 동네 가운데쯤 디딜방아가 다소곳한, 키 큰 시누대가 휘파람을 부는 그런 동네를 그려본다. 처마 낮은 집집마다, 그 주인 닮은 개들이 꼬리만 흔들 뿐, 짖지 않는 동네, 견성한 개들이 탁발 나온 스님들과 막걸리 잔을 돌리는 주막이 있는 동구 밖, 두 사람 이상만 모여도 서로의 눈망울 속에서 산새 소리, 바람 소리, 개울물 소리를 읽을 수 있는 동네. 따스한 햇볕을 닮아, 뜨내기가 마당에 어슬렁대도 누구 하나 큰소리치지 않는 수더분한..

참살이의꿈 2011.02.16

꽃기름주유소 / 고경숙

얼었다 녹은 봄날 산벼랑 백설기처럼 푸슬거리는 산옆구리를 쥐고 달린다 포장을 마다하고 일부러 견고하지 않은 길은 덜컹이며 바람을 타다 오르막에서 멈춘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온지 한참, 고갯마루 작은 주유소엔 대형 탱크로리에서 꽃무더기를 옮겨 담고 있다 고객님 얼마나 넣어 드릴까요? 나는 L당 가격표를 보는 대신 꽃향기를 맡아본다 들꽃유로 가득이요 서둘러 주유기를 꽂고 뒤차로 간다 내 뒤 봉고는 콩기름을 주문한다 주유원이 탁탁 엉덩이를 치면 꽃향기를 내뿜으며 부릉거린다 카드전표로 가져온 꽝꽝나뭇가지에 손도장 꾹 눌러주고 출발! 손님, 내리막길은 무동력이구요, 봄은 비과세입니다. - 꽃기름주유소 / 고경숙 4대강 삽질 현장을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차일피일 뒤로 미루기만 한다. 많이 아프고 화가 날 것 같지만 ..

시읽는기쁨 2010.06.11

육십이 되면 / 김승희

육십이 되면 나는 떠나리라 정든 땅 정든 집을 그대로 두고 장농과 식기와 냄비들을 그대로 두고 육십이 되면 나는 떠나리라 갠지스 강가로 딸아, 안녕히, 그동안 난 너를 예배처럼 섬겼으니, 남편이여, 그대도 안녕, 그동안 그렸던 희비의 쌍곡선을 모두 잊어주게 축하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것, 그대의 축하를 받으며 난 이승의 가장 먼 뱃길에 오르리 생명의 일을 모두 마친 사람들이 갠지스 강가에 누워 태양의 괴멸작용을 기다린다는 곳, 환시인 듯 허공 중에 만다라花가 꽃피며, 성스러운 재와 오줌이 혼합된 더러운 갠지스 물을 마시며 이승의 정죄와 저승의 빛을 구한다는 더러운 순결의 나라로 해골의 분말이 물 위에 둥둥 뜨면 해와 달과 별이 그려진 거대한 수레바퀴가 반짝반짝 혼령을 실어나르고 미쳐도 오직 신령으로 미친..

시읽는기쁨 2010.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