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140

노인이 행복한 나라

얼마 전에 KBS TV에서 세계에서 노인 복지 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스웨덴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좋은 면만 보여준 건지는 모르지만, 스웨덴은 무척 부러운 시스템을 갖춘 나라였다. 교육이나 복지 제도에서 본받을 나라가 스웨덴인 것 같다. 스웨덴은 GDP의 34%를 복지에 쓰고, 그중에서 1/2이 노인복지 예산이다. 모든 노인이 월 140만 원 정도의 기초연금을 받으니 생활에 쪼들리는 사람은 없다. 여기에 직장 연금이나 개인연금이 보태지면 더 넉넉해진다. 더구나 스웨덴은 노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잘 준비되어 있어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며 삶을 즐길 수 있다. 또, 의료비 상한제가 있어 병원 치료를 걱정하지 않는다. 노년의 불안이 있을 수 없다. 선진국이란 단순히 잘 사는 나라가..

참살이의꿈 2014.02.19

연이은 착각

두 번의 연이은 착각을 했다. 지지난주에는 결혼식장에 갔더니 혼주가 엉뚱한 사람이 서 있었다. 청첩장을 꺼내 보니 축하해줘야 할 친지 결혼식은 다음날이었다. 날짜를 하루 착각한 것이다. 지난주 결혼식은 식장에 갔더니 이미 끝난 뒤였다. 시간을 두 시간이나 오해해 주인공을 보지도 못하는 실례를 했다. 깜빡하는 것은 가끔 있는 일이나 이렇게 연달아 실수하고 보니 내 정신이 녹슬어가는 게 실감 난다. 운전을 해보면 안다. 내비의 안내를 받지만 엉뚱한 길로 들어설 때가 잦다. 여러 갈래 길에서 정확한 결정을 못 내린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감각만으로도 길을 잘 찾아갔다. 이제는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고작 선택한 게 정답이 아니다. 총기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도로가 복잡해져서 그렇다고 자기 위안을 해 보지만 자..

길위의단상 2013.11.15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얼마 전 KBS TV '아침마당'에 이근후 선생 부부가 출연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름답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마침 선생이 펴낸 책이 있어 찾아 읽어 보았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이라는 부제가 붙은 라는 책이다. 선생은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이시다.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찾는 분이다. 이화여대 정신과 교수로 퇴직하신 뒤에도 네팔 의료봉사, 청소년 상담, 보육원 봉사, 석불 연구, 부모와 노인 교육, 연구 활동 등을 왕성하게 하신다. 특히,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 수석 졸업하기도 했다. 10년 전에 한쪽 눈을 실명한 것이나 당뇨, 고혈압, 통풍, 디스크 등 여러 가지 병도 장애가 되지 못한다. 선생의 장..

읽고본느낌 2013.06.12

늙을수록 사람들 속에서

오래전부터 내 꿈은 사람들과 세상에서 벗어나 적막강산에 들어가 사는 것이었다. 모든 욕심 내려놓고 산과 나무와 풀로만 친구하며 살고 싶었다. 사람 소리가 절절히 그리워지도록 철저히 홀로이고 싶었고 외로워지고 싶었다. 나름대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인간에게 너무 부대낀 게 원인이었지만 그것 역시 내 천성이 그러한 탓이었다. 퇴직을 하고 광주로 내려와서는 인간과의 마찰은 거의 사라졌다. 여기가 산골 초막은 아니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강원도 심심산골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침이면 새 소리가 잠을 깨우고, 봄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진동한다. 창문을 열면 맑은 공기에 풋풋한 시골 냄새가 풍긴다. 종일 있어도 사람 하나 만나지 않고 지나는 날이 많다. 그러다 보니 적막강산에 대한 꿈도 많이 시들해졌다. 굳이 파라다..

참살이의꿈 2013.05.26

똥꽃

이 책을 쓴 전희식 선생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를 모시고 산다. 시골 빈집을 구해서 어머니의 몸 상태에 맞게 직접 수리했다. 그리고 도시 아파트에서 형과 함께 살고 있던 노모를 모시고 왔다. 귀도 멀고 똥오줌도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도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만 지내면서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몰라도 여든여섯 노쇠한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으로 생각했다. 선생이 생각하는 모심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우선하는 직접 돌봄이다. 치매 노인이라도 품위와 존엄을 지켜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족과도 떨어져 어머니와 둘이서 지낸다. 똥오줌을 직접 받아내고, 진지를 해 드리고, 같이 놀아주고, 그러면서 농..

읽고본느낌 2013.04.30

노년에 필요한 것

노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자와 남자에게 물어보았단다. 여자; 돈, 건강, 친구, 딸 남자; 아내, 배우자, 집사람, 처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지만 요즈음 세태를 드러내 주는 말이다. 남자로서는 씁쓰름하다. 한 모임에서 이런 걸 소재로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 여자분이 "도대체 남자의 정체성이 뭐냐?"는 질문을 해서 당혹했던 적도 있었다. 대체로 보면 나이가 들수록 여자는 활발하고 독립적이 된다. 적극적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다. 그러나 남자는 늙은 수컷 사자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전에는 일이 모든 것을 덮어 주었다. 일과 돈을 매개로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이라는 보호막이 벗겨지면 발가벗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게 불안하니까 끝없이 일을 놓지 않으려 한다. 대우받았던 자신의 ..

참살이의꿈 2012.12.09

아흔 개의 봄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치매에 걸린 아흔 노모를 돌보고 있는 아들의 기록이다. 2007년 6월에 갑자기 쓰러진 선생의 모친은 병원과 요양원에서 지내는데, 선생은 집과 시설을 오가며 극진히 보살펴 드린다. 책에는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2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어머니의 상태를 전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잡지에 연재되면서 책으로까지 출판하게 되었다. 선생은 4남매 중 셋째 아들로 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만 편애한다고 생각했고, 어머니를 위선자라고 여기며 불화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지고 난 뒤부터 간병하는 과정을 통해 어머니와 화해하기 시작한다. 이 기록은 모자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 또 ..

읽고본느낌 2012.06.12

노인 십계명

황창연 신부님의 멋진 노년에 대한 강의을 듣다가 '노인 십계명'을 소개 받았다. 1. 당황해하거나 성급해하지 말고 뛰지 마라. 2. 자녀가 무엇을 해줄까를 기대하지 마라. 3. 고집부리지 마라. 4. 시샘하지 마라. 5. 공치사하지 마라. 6. 날마다 샤워해라. 7. 날마다 속옷을 갈아입어라. 8. 많이 듣고 조금만 말해라. 9. 많이 움직이고 많이 걸어라. 10. 욕심을 줄이고 나누어주어라. 인터넷을 찾아보니이런 십계명도 있다. 1. 늙는 데 저항하지 않고 순응한다(생로병사는 인생의 철칙이다. 평화로운 표정을 짓자). 2. 호기심과 관심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그건 알아 무엇해’ 이것이 늙어가는 징조다. 세상사를 알려는 노력이 화제와 교류를 낳는다). 3. 지나치게 바라지 않는다(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참살이의꿈 2012.06.06

아흔여섯의 나 / 시바타 도요

시바타 씨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도우미의 물음에 난처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잘못됐다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웃을 뿐이었습니다 - 아흔여섯의 나 / 시바타 도요 시바타 도요, 1911년에 태어났으니 백 세를 넘었다. 아흔이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해서 산케이 신문의 '아침의 시'에 입선되었다. 그리고 시집까지 내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에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백 세가 넘어서도 시를 쓸 수 있다는 건보통 축복이 아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싱그러운 감성이 유지된다는 게 기적처럼 보인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관심이 없으면 시는 나오지 않는다. TV에도 가끔 장수 노인이 나오지만 아흔이 넘은 나이에 시를 쓴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

시읽는기쁨 2011.11.06

크나큰 수의 / 김왕노

어머니 요양원에 계신다. 요양원에 가면 둘째 시인 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나 미안하지 말라고 병들고 늙으면 요양원에 있는 것이 어머니 편하고 자식들 다 편한 일이라며 누누이 말하지만 요양원이 현대식이라 위생적이고 넓고 의료시설 잘 갖춰진 곳이지만 집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안드리지 못하는 마음이 요양원에 면회 갔다 올 때마다 무릎이 세상 모서리에 부딪친 듯 생채기 하나 둘 늘어난다. 늙어도 어머니 욕심이 없을까? 어머니와 친한 할머니 자식이 비싸고 질 좋은 수의 미리 준비해 놓았다고 날마다 자랑이라고 해서 어머니가 죽으면 뭐 입고 자시고 알기나 아나, 그냥 구름이니 새벽이니 바람이니 햇살이니 다 크나큰 수의라고 여기며 그보다 더 큰 행복 없다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선소리처럼 앞세우..

시읽는기쁨 2011.07.04

풀나라 / 박태일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 젖쟁이 노랑쟁이 나생이 잔다꾸 사람 없고 사람 닮은 풀들만 파도밭을 담장으로 삼고 사는 나라 예순 아들이 여든 어머니 점심상을 차리고 예순 젊은이가 열 살 버릇대로 대소사 상다리 이고 지는 마을 사람만 봐도 개는 굼실 집 안으로 내빼 이름 잊혀진 채 그저 풀로만 불리는 강바랭이 씀바구 광대쟁이 독새기 이장 댁 한산 할배 마을 회관 마룻바닥에 소금 전 양 등줄 꺼지게 누운 마을 토광 옆 마늘 종다리는 무슨 힘으로 아침저녁 울컥벌컥 잘도 돋는데 한때 마흔 이제 스무 집 어른들 집집 다 버리고 마을 회관 두 방 문지방 내외하며 자고 먹는 풀나라 굴 양식 뜰것이 아침마다 허옇게 저승길 종이꽃처럼 피는 바다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 - 풀나라 / 박태일 추석 귀성 행렬이..

시읽는기쁨 2010.09.19

책과 함께

3월 3일(월) 오전 중에는 독서를 하다...... 귀가 후 독서. 3월 6일(목) 반나절을 독서에 몰두하다. 저녁이 되면서 기분이 마구 들뜬다. 오늘은 기원에서 바둑을 배우는 날이다..... 3월 7일(금)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내려갔다.... 밤늦도록 독서를 하다. 3월 8일(토) 오전 중에는 독서를 하다. 오후부터 파스텔화 수업이 있어 아틀리에 대신 사용하고 있는 맨션의 한 교실에서 열 명 정도의 동료들과 누드화를 그렸다..... 밤늦도록 독서를 하다. 3월 10일(월) 오전 10시부터 원장을 맡고 있는 A 예술학원의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사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귀가하다. 늦은 밤까지 독서하다. 3월 11일(화)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러 갔..

참살이의꿈 2010.07.12

말 삼가기

지셴린 선생이 쓴 이란 책에는 ‘노년에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지만, 특히 늙어서 조심해야 할 것으로 선생이 골라 놓은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말을 삼가자. 2. 나이로 유세 떨지 말자. 3. 사고가 경직되는 것을 막자. 4. 세월에 불복하자. 5. 할 일 없음을 걱정하자. 6. 무용담으로 허송세월하지 말자. 7. 세상과 벽을 쌓지 말자. 8. 늙음과 가난을 탄식하지 말자. 9. 죽음에 연연하지 말자. 10. 세상을 증오하지 말자. 선생의 아흔 인생 경험에서 나온 충고들인데 이 중에서 ‘말을 삼가자’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말을 삼가야 하는 것에 노소의 구별이 있으랴마는 특히 노인의 수다스러움은 누구에게나 참기 어려운..

길위의단상 2010.04.06

그랬으면 좋겠네 / 이시하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꽂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긁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농이나 던져주면 좋겠네 한세상 흐릿흐릿 늙어..

시읽는기쁨 2010.03.30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

시읽는기쁨 2008.08.08

삶을 이길 수는 없죠

'44 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한 부부 그랜트(고든 빈센트)와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아내 피오나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 피오나는 자진해서 요양원에 입원하고, 그랜트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피오나가 요양원에서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랜트는 피오나에게서 잊혀진다. 그는 둘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절망한다. 아무리 애써도 아내의 기억을 되살릴 수 없음을 알게된 그랜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 아내를 보내주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데....' 미로스페이스에서 영화 'Away from Her'를 보았다. 70대의 노부부 사랑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고난 느낌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산다는 것..

읽고본느낌 2008.04.02

거꾸로 가는 생 / 김선우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나이 서른에 나는 이미 너무 늙었고 혹은 그렇게 느끼고 나이 마흔에 누이는 가을 낙엽 바스락대는 소리만 들어도 갈래머리 여고생처럼 후르륵 가슴을 쓸어 내리고 예순 넘은 엄마는 병들어 누웠어도 춘삼월만 오면 꽃 질라 아까워라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 일곱 살배기 아이처럼 졸라대고 여든에 죽은 할머니는 기저귀 차고 아들 등에 업혀 침 흘리며 잠 들곤 했네 말 배우는 아기처럼 배냇니도 없이 옹알이를 하였네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머리를 거꾸로 처박으며 아기들은 자꾸 태어나고 골목길 걷다 우연히 넘본 키작은 담장 안에선 머리가 하얀 부부가 소꿉을 놀 듯 이렇게 고운 동백을 마당에 심었으니 저 영감 평생 여색이 분분하지 구기자 덩굴 만지작거리며 영감님 흠흠, 웃기만 하고 애증이랄지 ..

시읽는기쁨 2008.03.11

7 Up

테니스 대회를 마치고 뒷풀이 자리에서 C가 노년의 지혜라면서 '7 Up'에 대해 말해 주었다. C의 구수한 입담 때문이기도 했지만 들어보니 그럴 듯 했다. 내용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다음 날 메일로 보내 주었다. 1. clean up 나이 들수록 집과 환경을 깨끗이 해야 한다. 분기별로 주변을 정리 정돈하고,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과감히 덜어 내야 한다. 귀중품이나 패물은 유산으로 남기기보다는 살아생전에 선물로 주는 것이 효과적이고 받는 이의 고마움도 배가 된다. 2. dress up 항상 용모를 단정히 해 구질구질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젊은 시절에는 아무 옷이나 입어도 괜찮지만 나이가 들면 비싼 옷을 입어도 좀처럼 태가 나지 않는 법이다. 3. shut up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참살이의꿈 2007.10.31

아름답게 나이 들기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두 노인네 사이에 갑자기 육탄전이 벌어졌다. 내가 탔을 때는 경노석에 앉아 있던 두 사람 사이에 나이가 몇 살이나 처먹었느냐는 험한 말이 오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일흔 몇이라고 했고, 더 젊게 보이는 다른 사람은 그보다 몇 살을 더 보태 형님 행세를 했다. 서로 반말과 쌍욕이 오가더니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안경이 깨어지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화가 생길 뻔 했다. 들어보니 소동의 발단은 사소한 것이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발이 옆 사람을 건드린 것이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예의 없는 사람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이번 경우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서로간에 날이 선 말들이 오갔을 것이고, ..

참살이의꿈 2007.10.06

아름다운 노년

'우리의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 중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단계에 있는 사람은 노인들이다. 나이가 든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늙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어두운 계곡으로 내려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세계로 차츰 접근해 가는 것, 즉 지복(至福)의 산(山) 정상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느 보험 회사의 광고였던가, 노부부가 건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광고 사진을 보면서 저렇게 늙어갈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또한 그것이 젊은 시절에 상상했던 내 노년의 모습이기도 했다. 생활은 안정되고,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며 자유롭고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는데 혼돈의 젊은 시절 뒤에는 그런 평화스런 노년이 찾아오리..

길위의단상 200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