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147

노욕은 추하다

인간이 제 몫을 챙기고 재산을 소유하게 된 건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수렵채취시대에는 모아둘 물량이 적었을뿐더러 이동 생활에서 보관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탐욕도 농사와 함께 따라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부터는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움박질이 시작되었다. 사탕이 있으면 아이들도 다툰다. 그러나 아이들의 욕심에는 한계가 있다. 한두 개면 만족하지 수십 개의 사탕을 혼자 독점하려고는 안 한다. 많이 가지고 있다면 다른 아이에게 나누어줄 줄 안다. 동물도 제가 배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 사자가 수십 마리의 얼룩말을 사냥해서 제 창고에 보관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젊은이의 욕망도 현실적인 이득이 아닌 미래의 꿈과 관련되어 있다. 젊은이의 야망은..

참살이의꿈 2018.04.30

어떤 대화

A : 형, UN 기준으로 형은 만 나이로는 아직 청년이십니다^^. 축하해요~ * UN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 UN에서 전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에 대한 측정 결과, 연령 분류의 표준에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며 사람의 평생 연령을 5단계로 나누어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 0세 ~ 17세까지는 미성년자 * 18세 ~ 65세까지는 청년 * 66세 ~ 79세까지는 중년 * 80세 ~ 99세까지는 노년 *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 B : 내 육체와 정신 상태를 냉정히 판단하면 누가 뭐래도 지금은 노년의 초입이 맞아요. 굳이 다운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나요? A : ㅎㅎ, UN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형은 아직 왕성하게 트레킹 하시고 기억력 판단력 똑 부러지시니 청년이 맞아요. ㅋㅋ B : 트레킹은..

참살이의꿈 2018.04.15

그럴 수도 있겠지

늙어가면서 제일 경계해야 할 일이 제 생각에 갇히는 일이다. 제 생각에 갇히면 현상을 두루 보지 못하고 옹졸해진다. 최근에 그걸 절감하는 일이 있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왜 그렇게 자잘하냐"는 핀잔을 들었다. 의견 충돌로 말다툼을 하고 난 뒤였다. 본인은 자신을 잘 모른다. 스스로 꼰대라고 인정하는 꼰대는 없다. 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비친 나를 봐야 한다. 가까운 배우자나 자식도 나의 좋은 거울이다. 설마 내가 그럴까, 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변명하고 부정하기 바쁘다. 내가 그렇다. 흔쾌히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소리를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늘어 지혜로워지는 게 순리일 것 같다.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말이다. 그러나 현실..

참살이의꿈 2018.01.17

오래된 농담 / 천양희

회화나무 그늘 몇 평 받으려고 언덕길을 오르던 늙은 아내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합환수 가지 끝을 보다 신혼의 첫밤을 기억해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 그늘보다 몇 평이나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굵은 주름이 나이테보다 깊어 보였다 굴참나무 열매 몇 되 얻으려고 언덕길을 오르던 늙은 남편이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열매 가득한 나무 끝을 보다 자식농사 풍성하던 그날을 기억해낸 늙은 아내가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 열매보다 몇 알이나 작아져선 나, 생각보다 가볍지? 한다 머리는 비었지 허파엔 바람 들어갔지 양심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밖에 두 눈이 바람 잘 날 없는 가지처럼 더 흔들..

시읽는기쁨 2017.12.11

죽여주는 여자

작년에 나온 영화인데 늦게서야 보았다. 우리 시대 노인의 성과 가난, 소외 계층의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자극적이거나 웅변조가 아니고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 '죽여주는 여자'는 윤여정 1인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의 유명도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만한 무게감이 있다. 윤여정이 연기한 소영은 파고다공원에서 노인을 상대로 몸을 팔아가며 살아간다. 일명 박카스 아줌마로 '죽여주는 여자'라는 별명으로 통하면서 다른 아줌마의 질시를 받는다.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은 소영은 진짜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죽는 사람보다는 소영의 심적 고통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소영은 일찍 보내주는 것이 그를 도와주는 것..

읽고본느낌 2017.12.01

500원

500원 줄서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모 종교 단체에서 주는 500원을 받기 위해 모여드는 노인들로 긴 줄이 생긴다는 것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려고 어떤 노인은 새벽에 집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도 생기고 싫은 소리도 나오는 모양이다. 500원 때문에.... 500원 주기는 IMF 때 시작했다는데 찾아오는 노인들이 줄지 않으니 중단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고작 500원을,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든다. 몇 년 전 보도에서는 꼭 돈이 궁해서 줄 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밝혔다. 무료해서 놀이 삼아 나온다는 노인도 있었다. 사연도 여러 가지겠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66~75세의 빈곤율은 43%, 76..

참살이의꿈 2017.11.19

잠 못 드는 조부모 가설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든다. 불면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들도 많다. 잠이 들기도 어렵거니와 새벽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도 힘들다고 한다. 늙으면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어 생기는 현상이라고 의학에서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멜라토닌 분비를 늘리는 처방을 하면 될 것 같은데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노인이 되면 잠자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은데 실상은 반대다. 여기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인류가 동굴 생활을 할 때 적이나 맹수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밤에도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했다. 모두가 깊이 잠들어 있으면 습격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 역할을 맡은 것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낮에 활동을 많이 해야 하므로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노인이 되면 잠이 없어지는 ..

길위의단상 2017.09.21

인생을 향유하는 능력

분당을 지나는 탄천 산책로를 저녁나절에 걸을 때가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위치 탓인지 늘 운동 나온 사람들이 많다. 넓은 공터에서는 함께 모여 에어로빅을 하는 팀도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힘찬 기합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린다. 그 소리만 들어도 절로 기운이 솟는다. 가까이 가서 보면 대부분이 아줌마들이다. 백 명은 넘어 보이는데 남자는 가뭄에 콩나물 나듯 서넛 정도 끼어 있을 뿐이다. 마음은 있어도 쑥스러워서 들어서지 못할 것 같다. 반면에 여자들은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리듬에 몸을 맡기고 땀을 흘린다. 무척 적극적이다. 누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남녀 성의 구분이 뚜렷이 나타난다. 노년이 되면 여자들이 훨씬 더 활동적이면서 다양한 관계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대신에 남자들은 퇴직하고 나서 움츠러든다..

참살이의꿈 2017.08.20

이런 노년도 가능하다

며칠 전 신문에 '일본의 100세 할머니 베스트셀러 저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요사이 일본에서는 100세를 전후한 할머니들이 낸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보도였다. 일본 출판계에서는 이런 책을 가리켜 '100세 전후'라는 뜻의 영어 'Around Hundred'를 줄여 '아라한' 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출간된 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93세의 할머니 작가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침없는 입담으로 풀어내 인기를 얻었다. 지금까지 1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그 외에도 많다. 지난해 9월 출판된 100세의 다카하시 사치에가 쓴 는 26만 부가 팔렸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대단한 말이 쓰여있지는 않지만 연륜의 무게로 공감을 얻는다고 한다..

참살이의꿈 2017.08.06

애착 줄이기

심란한 날이 있다. 그런 날 마음을 관찰해 보면 무언가에 애착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애착에서 괴로움이 생긴다. 집착을 없애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살아가면서 마음이 편한 것이 제일이다. 노년에는 더 그렇다. 구분하자면 집착은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밖에 있는 대상을 향한 집착이다. 돈, 명예, 자식 등이다. 늙으면 대체로 돈과 명예에는 초연해지지만 자식에 대한 애착은 더해진다. 자식에는 손주도 포함된다. 그러나 돈 욕심이 줄어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물욕에 찌든 노년만큼 추한 것도 없다. 다른 하나는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건강이나 오래 살고 싶은 욕심 등이다. 노쇠해지면 건강에 관심이 가는 건 어찌할 수 없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생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을 인위적으로 바..

참살이의꿈 2017.05.14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노년과 죽음 부분을 발췌한 선집이다. 몽테뉴 수상록은 대학생 때 문고판으로 읽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지금 기억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런데 수상록은 젊을 때보다는 흰머리 희끗희끗해질 때 읽어야 제맛이 나는 건 사실이다. 몽테뉴(1533~1592)는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선택된 교육을 받고 고등법관이 되었다. 그러나 공직에 대한 부담과 환멸로 37세의 나이에 사임하고 몽테뉴 성에 은둔하며 생의 후반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조용히 살면서 정신을 성숙하게 하고,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는 종교 전쟁이 한창인 때였고, 개인적으로도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접했다. 그런 점이 몽테뉴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

읽고본느낌 2017.01.04

지혜로운 노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80세 생일을 맞아 노숙자들을 초청해 아침 식사를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리고 미사에서는 "노년이 지혜롭고 평화로울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또한 "나이 드는 것이 두렵다"고도 고백했다. 아마 나이가 들어도 지혜로워지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이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쌓인 시기가 노년이다. 아는 것도 많고 세상 경험도 풍부하니 노년이 되면 자연스레 지혜로워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아니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지식과 경험이 족쇄가 되어 옹고집만 더 생긴다. 주변에 나이 든 사람을 떠올려보면 안다. 늙으면 몸만 아니라 정신도 굳어진다. 제 세계관에 갇혀 버리는 것, 이것이 노년에 제일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살아 있는 것은 말랑말랑하다. 버드..

참살이의꿈 2016.12.20

내가 왜 이러지

며칠 전 기원에서 바둑을 둘 때 어리둥절한 장면과 맞닥뜨렸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한 노인이 세면대에 소변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황당해서 고추가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확인을 했다. 그 노인은 옆에서 바둑을 두던 노신사라고 불러도 될 멀쩡한 사람이었다. 모르고 그러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상황이 전혀 분간되지 않았다. 그래도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여긴 세면댄데요, 라고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그러자 노인은, "어, 내가 왜 이러지?"라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바지를 추스르고 세면대를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늙으면 어쩔 수 없어"라는 말만 반복했다. 당사자는 얼마나 민망할까를 생각하니 차차 그 노인에게 연민이 생겨났다.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

길위의단상 2016.10.21

심심한 삶

은퇴한 이후 내 삶은 심심하게 되는 것이었다. 보통은 퇴직 이후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한다. 심심한 삶은 기피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일을 만들지 않고 얼마나 충분히 심심해지느냐가 내 목표였다. 그러니 퇴직 이후의 삶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하루 빈둥거리며 놀겠다는데 미래에 대한 염려도 없다. 다행히 연금이 나오니 먹고사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만큼 팔자 좋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심심함이란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삶이다. 관계에서 기쁨을 찾는 게 아니라 홀로 자족하는 즐거움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지루해 보이겠지만 심심한 삶은 그리 못된 게 아니다. 나름대로 은근한 행복이 있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나는 단순함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믿는다. 노인이 ..

참살이의꿈 2016.08.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되는 입구에서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 있다. 나이 든다고 절대 철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다. 더 철딱서니가 없어지고 옹졸하게 된다. 그런 내 꼬락서니를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서글픈 일이다. 몸이 쇠약해지는 건 차라리 괜찮다. 나이가 들면 원숙해지고 인격도 높아질 거라 생각한 건 젊었을 때의 착각이었다. 퇴직 이후의 삶을 연상하면 우선 여유가 떠올랐다. 시간의 여유와 함께 당연히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관용과 이해, 그리고 흘러가는 세상을 관조하는 힘은 노년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친구는 별로 없다. 늙으면서 가장 경계할 것이 자기중심적으로 되는 일이다. 인생의 경험이 옹고집으로 변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자기 세계에..

참살이의꿈 2016.08.03

가늘고 길게

굵게 사는 삶은 꿈꿔 보지 않았다. 거창한 꿈은 나와는 관계가 없었다. 초등학교 학적부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장래 희망은 내리 교사가 적혀 있었다. 부모 희망란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그런대로 했으니 의사나 판사를 시켜볼 만도 했건만 아버지는 오로지 교사 되기를 바라셨다. 대학생 때 고시 공부하던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시던 아버지셨다. 아버지도 나를 잘 파악하고 계셨다. 요사이는 교사 되기가 어렵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교사가 부족해서 단기 양성 과정도 있었다. 남자가 교사를 희망하면 졸장부 취급을 받던 때였다. 어릴 때부터 내 기본 마인드는 적게 먹고 적게 싸자 주의였다. 나는 햄릿형이다. 소심하다. 사상체질로는 소음인에 속한다. 가늘게 살 팔자다. 당연히 굵고 짧게 사는 걸 부러워하지 않는다. ..

참살이의꿈 2016.05.17

졸혼

일본에서는 노년층에서 '졸혼(卒婚)'이 유행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혼인 관계를 졸업한다'는 뜻이다. 졸혼은 이혼이나 별거와는 다르다. 사이가 나빠서 갈라서는 게 아니라, 부부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따로따로 각자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상대의 자유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 '해혼(解婚)'이 있다. 역시 '혼인 관계의 해제'라는 뜻이다. 인도 힌두교에서는 남자가 가장의 임무를 마친 뒤 구도의 삶을 원하면 해혼식을 하고 숲으로 들어간다. 간디는 삼십 대 후반에 아내와 해혼을 합의하고 인도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인도에는 전통적으로 해혼 문화가 존재한다. 졸혼은 장수 사회의 한 단면도다. 대개 60대 중반이 되면 자식을 짝지어 보내고 부부만 남는다. 옛날 같..

길위의단상 2016.05.15

아무래도 괜찮아

늙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 라고 젊었을 때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 들어보니 다른 세계가 열린다. 늙으면 늙은 대로 맛이 있다는 걸 젊은 시절에는 알아챌 수 없다. 인간은 적응력이 무척 뛰어난 동물이다. 몸이 아파도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이내 받아들인다. 나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체력이 떨어지고 다리 힘이 없어지면 가고 싶은데도 가지 못한다. 어디든 쏘다닐 수 있는 젊은이로서는 불쌍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면 다니고 싶은 의욕이 사라진다. 모든 것에 심드렁해지니 멀리 못 나가도 아무렇지 않다. 동정을 받을 이유가 없다. 대신에 다른 즐거움이 생긴다. 좋게 말하면 관조의 편안함이다. 몸은 늙어가는데 마음은 청춘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별로 내세울 게 아니다.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어..

참살이의꿈 2016.03.31

유스

젊었을 때는 젊다는 걸 잘 모른다. 젊음(Youth)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려는 걸까, 쇠락한 노년의 모습과 발랄한 젊음을 불편할 정도로 집요하게 대비시킨다. 그러면서도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여러 단편적인 장면들이 교직 되며 영화를 이끌어가는데 어떻게 느끼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쓸쓸한 영화다. 돈 많은 사람들이 요양 겸 휴식을 위해 찾는 풍광 좋은 스위스의 고급 호텔에 80대의 두 친구가 묵고 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작곡가며 지휘자로 현역에서 은퇴해서 욕심 없이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바쁘다. 아마 이 둘은 서로 다른 노년의 삶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한쪽은 완전히 ..

읽고본느낌 2016.01.22

퇴직하는 후배에게 주는 충고

퇴직 시즌이 다가왔다. 교육계는 학기제로 움직이므로 교사는 2월과 8월에 전근과 퇴직이 이루어진다. 내 주변에도 명퇴 신청을 한 사람이 몇 있다. 재수, 삼수까지 한 사람들인데 이번에는 무난히 커트라인 안에 들 것 같다. 정년 전에 그만두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자의로 나오지만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가 보다. 얼마 전에 만난 후배도 일 없이 어떻게 인생을 재미있게 보낼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뭔가를 열심히 배우고 동호회에도 가입해 바쁘게 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말한다. 지금껏 일에 매여 살았으니 이제는 나를 얽어매는 일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바쁘게 살았으니 게을러질 필요가 있다. 지금껏 재미있는 것만 찾..

참살이의꿈 2016.01.19

노화 현상입니다

몇 달 전에 머리에 작은 혹이 생기더니 점점 커져갔다. 영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대로 자란다면 내년쯤에는 도깨비 머리에 달린 뿔처럼 될지 몰랐다. 망설이다가 피부과에 찾아갔다. 피부암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레이저로 지지면 된다고 했다. 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누워 있었다. 왜 이런 게 생기느냐고 물었더니 의사 대답은 간단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초여름에는 눈에 멍울이 맺힌 걸 발견했다. 흰자위에 물방울처럼 생긴 게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색깔이 없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시력을 잃지 않는가 싶어 바로 다음 날 안과에 갔다. 불안한 내 마음과 달리 의사는 태평하게 말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보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그..

길위의단상 2015.11.23

65에서 75 사이

90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김형석 선생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5세에서 75세 사이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걸 보았다. 오래되어서 선생이 든 이유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 역시 선생의 생각에 찬성한다. 어제 어느 방송에서는 인생의 절정기로 20세와 69세를 들었다. 인생의 모든 시기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어느 때를 돌아보아도 그 나이로서의 빛나는 무엇이 있다. 그러나 빛만 아니라 그늘 또한 존재한다. 청년기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고민과 번뇌의 어두운 밤이 함께 하는 시기인 것이다. 젊었을 때는 노인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싶지만 노년은 또 그대로의 멋과 재미가 있다. 육체는 쇠락해가지만 정신은 익어가는 감처럼 완숙해지는 시기다. 삶의 경험이 잘 발..

길위의단상 2015.10.01

귀엽게 나이 들기

나이가 60이 넘어도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 건 어떨까? 얼마 전의 일이다.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나한테 귀엽다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어리벙벙했지만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그분은 형님뻘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전에 학교에 있을 때는 코흘리개 아이들한테서도 그런 소리를 가끔 들었다.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난감했다. '귀엽다'는 내 평생을 따라다니는 단어다. 어렸을 때는 은근히 자랑스러웠지만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뭔가 모자라고 덜 떨어진 인간이 된 듯하여 주눅 들기 일쑤였다. 하물며 어른이 되어서는 오죽하겠는가. '멋있다'거나 '남자답다'는 말은 나에게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런데 단 한 번 예외가 있었다. 한 친구로부터 살짝 그..

참살이의꿈 2015.09.11

삼관

노년 행복의 조건이 '삼관'이라고 한다. 삼관은 관절, 관계, 관심거리다. 즉, 튼튼한 관절, 원활한 대인관계, 즐거운 관심거리가 있어야 노년의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관절이 튼튼하다는 건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는 걸 뜻하니 넓게 말하면 건강하다는 뜻이다. 관절에 이상이 없어도 병석에 누워 있다면 아무 소용 없다. 어느 경우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즐거움의 반은 포기한 셈이다. 나는 특히 걷기와 산을 좋아하니 행복의 조건으로 관절을 드는 데 주저함이 없다. 가고 싶은 산을 다리 때문에 못 간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불행해질 것 같다. 그래서 미래를 위하여 산길을 걸을 때는 조심한다. 특히 내려갈 때는 발을 세게 디디지 않도록 한다. 스틱이 없더라도 주의만 한다면 크게 문제..

참살이의꿈 2015.08.29

쓴맛이 사는 맛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노인이 되면 대체로 고집불통의 꼰대가 된다. 노년의 문화라 부르는 것도 즉물적이고 쾌락적인 것에 만족하는 수준이다. 시대를 고뇌하며 진실된 삶을 추구하는 노인은 드물다. 작년 신문 보도를 통해 채현국 선생을 처음 알았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라는 제목의 젊은이에게 주는 일갈이 시원했다. 선생의 삶과 생각을 소개하는 이 책 을 읽으며 선생의 진면목을 다시 대하게 되었다. 참 독특한 분이라는 느낌이 신선했다. 선생을 수식하는 말들을 보면 선생이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거인, 기인, 거리의 철학자,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째 안에 들었던 거부, 탄광 사고가 난 뒤 사업을 정리해서 나누어준 사업가,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한 ..

읽고본느낌 2015.07.29

일흔 살의 인터뷰 / 천양희

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했을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

시읽는기쁨 2015.07.23

호기심

8개월 된 손자는 이제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게 아니고 작은 몸이 나아가는 목표가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의 눈이 꽂히는 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TV 리모컨 같은 전자기기라는 게 신기하다. 특히 리모컨만 보면 먹이를 발견한 매의 눈이 된다. 몸이 굳어지고 돌진한 태세를 갖춘다. 희한하다. 검은 직사각형 플라스틱 막대기의 무엇이 아기를 사로잡는지 모르겠다. 요사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 기기에 익숙해지는가 보다. 손주를 지켜보면서 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징이 호기심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일부 영장류의 새끼도 주변에 호기심을 가지지만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기의 눈은 세세하게 주위를 스캔하는 카메라 같다. 낯선 것..

참살이의꿈 2015.07.06

늙어가는 징조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베란다 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인다. 드문드문 사람이 오가고, 가끔 차들이 지나갈 뿐인 길이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되면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로 분주해진다.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놓으니 바깥의 소리가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생활 소음을 들으며 지켜보는 것도 재미난 구경거리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의 제일 조건은 절간처럼 조용해야 했다. 에어컨을 들여놓은 것도 더위보다는 소음 차단이 주목적이었다. 산과 마주한 옆 동에 사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너무 조용한 것이 싫다고, 밤이 되어 깜깜한 숲을 보는 게 무섭다고 한 그분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적막을 좋아했고 작은 소음에도 노이로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경험을 ..

참살이의꿈 2015.06.16

사람 꼴

늙어가니 마음이 더 옹졸해진다. 나이를 먹으면 원숙해지고 관대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나를 돌아보면 증명이 된다. 마음 꼬라지 하고는, 라며 혀를 찰 일이 잦다. 그중의 하나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일도 눈을 찌푸리게 된다. 사람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데, 라는 그물망이 더 촘촘해졌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휴대폰으로 통화하거나 소음을 내는 사람이 있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런 소음이 들리면 무척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도저히 견딜 수 없으면 한마디 한다. 최근에 그런 경우가 두 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적을 하고는 바로 후회를 한다. 떨떠..

참살이의꿈 2015.03.29

다 한때인 걸

내 나이 즈음이 되면 손주 키우는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자식을 출가시키면 홀가분해질 줄 알지만, 손주가 태어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요즈음은 대부분이 맞벌이라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자면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 사정 뻔히 아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공무원이면 육아 휴직을 3년까지 쓸 수 있지만 회사원은 다르다. 법적으로 보장되었다고는 하나 3개월 정도만 애기를 돌보라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눈치가 보여서 더 있을 수가 없게 한다. 출산율 저하를 걱정만 하지 말고 이런 걸 확실히 보장해 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여성 대통령이 당선돼서 기대했는데 나아진 것 하나 없다. 일본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충분한 육아 휴직이 보장되고, 지자체에서 돌보미를 지원해 주어 아기 기르기가 수월하다는 ..

길위의단상 2015.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