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140

인생을 향유하는 능력

분당을 지나는 탄천 산책로를 저녁나절에 걸을 때가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위치 탓인지 늘 운동 나온 사람들이 많다. 넓은 공터에서는 함께 모여 에어로빅을 하는 팀도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힘찬 기합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린다. 그 소리만 들어도 절로 기운이 솟는다. 가까이 가서 보면 대부분이 아줌마들이다. 백 명은 넘어 보이는데 남자는 가뭄에 콩나물 나듯 서넛 정도 끼어 있을 뿐이다. 마음은 있어도 쑥스러워서 들어서지 못할 것 같다. 반면에 여자들은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리듬에 몸을 맡기고 땀을 흘린다. 무척 적극적이다. 누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남녀 성의 구분이 뚜렷이 나타난다. 노년이 되면 여자들이 훨씬 더 활동적이면서 다양한 관계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대신에 남자들은 퇴직하고 나서 움츠러든다..

참살이의꿈 2017.08.20

이런 노년도 가능하다

며칠 전 신문에 '일본의 100세 할머니 베스트셀러 저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요사이 일본에서는 100세를 전후한 할머니들이 낸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보도였다. 일본 출판계에서는 이런 책을 가리켜 '100세 전후'라는 뜻의 영어 'Around Hundred'를 줄여 '아라한' 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출간된 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93세의 할머니 작가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침없는 입담으로 풀어내 인기를 얻었다. 지금까지 1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그 외에도 많다. 지난해 9월 출판된 100세의 다카하시 사치에가 쓴 는 26만 부가 팔렸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대단한 말이 쓰여있지는 않지만 연륜의 무게로 공감을 얻는다고 한다..

참살이의꿈 2017.08.06

애착 줄이기

심란한 날이 있다. 그런 날 마음을 관찰해 보면 무언가에 애착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애착에서 괴로움이 생긴다. 집착을 없애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살아가면서 마음이 편한 것이 제일이다. 노년에는 더 그렇다. 구분하자면 집착은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밖에 있는 대상을 향한 집착이다. 돈, 명예, 자식 등이다. 늙으면 대체로 돈과 명예에는 초연해지지만 자식에 대한 애착은 더해진다. 자식에는 손주도 포함된다. 그러나 돈 욕심이 줄어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물욕에 찌든 노년만큼 추한 것도 없다. 다른 하나는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건강이나 오래 살고 싶은 욕심 등이다. 노쇠해지면 건강에 관심이 가는 건 어찌할 수 없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생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을 인위적으로 바..

참살이의꿈 2017.05.14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노년과 죽음 부분을 발췌한 선집이다. 몽테뉴 수상록은 대학생 때 문고판으로 읽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지금 기억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런데 수상록은 젊을 때보다는 흰머리 희끗희끗해질 때 읽어야 제맛이 나는 건 사실이다. 몽테뉴(1533~1592)는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선택된 교육을 받고 고등법관이 되었다. 그러나 공직에 대한 부담과 환멸로 37세의 나이에 사임하고 몽테뉴 성에 은둔하며 생의 후반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조용히 살면서 정신을 성숙하게 하고,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는 종교 전쟁이 한창인 때였고, 개인적으로도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접했다. 그런 점이 몽테뉴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

읽고본느낌 2017.01.04

지혜로운 노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80세 생일을 맞아 노숙자들을 초청해 아침 식사를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리고 미사에서는 "노년이 지혜롭고 평화로울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또한 "나이 드는 것이 두렵다"고도 고백했다. 아마 나이가 들어도 지혜로워지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이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쌓인 시기가 노년이다. 아는 것도 많고 세상 경험도 풍부하니 노년이 되면 자연스레 지혜로워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아니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지식과 경험이 족쇄가 되어 옹고집만 더 생긴다. 주변에 나이 든 사람을 떠올려보면 안다. 늙으면 몸만 아니라 정신도 굳어진다. 제 세계관에 갇혀 버리는 것, 이것이 노년에 제일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살아 있는 것은 말랑말랑하다. 버드..

참살이의꿈 2016.12.20

내가 왜 이러지

며칠 전 기원에서 바둑을 둘 때 어리둥절한 장면과 맞닥뜨렸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한 노인이 세면대에 소변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황당해서 고추가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확인을 했다. 그 노인은 옆에서 바둑을 두던 노신사라고 불러도 될 멀쩡한 사람이었다. 모르고 그러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상황이 전혀 분간되지 않았다. 그래도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여긴 세면댄데요, 라고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그러자 노인은, "어, 내가 왜 이러지?"라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바지를 추스르고 세면대를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늙으면 어쩔 수 없어"라는 말만 반복했다. 당사자는 얼마나 민망할까를 생각하니 차차 그 노인에게 연민이 생겨났다.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

길위의단상 2016.10.21

심심한 삶

은퇴한 이후 내 삶은 심심하게 되는 것이었다. 보통은 퇴직 이후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한다. 심심한 삶은 기피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일을 만들지 않고 얼마나 충분히 심심해지느냐가 내 목표였다. 그러니 퇴직 이후의 삶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하루 빈둥거리며 놀겠다는데 미래에 대한 염려도 없다. 다행히 연금이 나오니 먹고사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만큼 팔자 좋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심심함이란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삶이다. 관계에서 기쁨을 찾는 게 아니라 홀로 자족하는 즐거움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지루해 보이겠지만 심심한 삶은 그리 못된 게 아니다. 나름대로 은근한 행복이 있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나는 단순함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믿는다. 노인이 ..

참살이의꿈 2016.08.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되는 입구에서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 있다. 나이 든다고 절대 철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다. 더 철딱서니가 없어지고 옹졸하게 된다. 그런 내 꼬락서니를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서글픈 일이다. 몸이 쇠약해지는 건 차라리 괜찮다. 나이가 들면 원숙해지고 인격도 높아질 거라 생각한 건 젊었을 때의 착각이었다. 퇴직 이후의 삶을 연상하면 우선 여유가 떠올랐다. 시간의 여유와 함께 당연히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관용과 이해, 그리고 흘러가는 세상을 관조하는 힘은 노년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친구는 별로 없다. 늙으면서 가장 경계할 것이 자기중심적으로 되는 일이다. 인생의 경험이 옹고집으로 변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자기 세계에..

참살이의꿈 2016.08.03

가늘고 길게

굵게 사는 삶은 꿈꿔 보지 않았다. 거창한 꿈은 나와는 관계가 없었다. 초등학교 학적부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장래 희망은 내리 교사가 적혀 있었다. 부모 희망란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그런대로 했으니 의사나 판사를 시켜볼 만도 했건만 아버지는 오로지 교사 되기를 바라셨다. 대학생 때 고시 공부하던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시던 아버지셨다. 아버지도 나를 잘 파악하고 계셨다. 요사이는 교사 되기가 어렵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교사가 부족해서 단기 양성 과정도 있었다. 남자가 교사를 희망하면 졸장부 취급을 받던 때였다. 어릴 때부터 내 기본 마인드는 적게 먹고 적게 싸자 주의였다. 나는 햄릿형이다. 소심하다. 사상체질로는 소음인에 속한다. 가늘게 살 팔자다. 당연히 굵고 짧게 사는 걸 부러워하지 않는다. ..

참살이의꿈 2016.05.17

졸혼

일본에서는 노년층에서 '졸혼(卒婚)'이 유행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혼인 관계를 졸업한다'는 뜻이다. 졸혼은 이혼이나 별거와는 다르다. 사이가 나빠서 갈라서는 게 아니라, 부부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따로따로 각자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상대의 자유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 '해혼(解婚)'이 있다. 역시 '혼인 관계의 해제'라는 뜻이다. 인도 힌두교에서는 남자가 가장의 임무를 마친 뒤 구도의 삶을 원하면 해혼식을 하고 숲으로 들어간다. 간디는 삼십 대 후반에 아내와 해혼을 합의하고 인도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인도에는 전통적으로 해혼 문화가 존재한다. 졸혼은 장수 사회의 한 단면도다. 대개 60대 중반이 되면 자식을 짝지어 보내고 부부만 남는다. 옛날 같..

길위의단상 2016.05.15

아무래도 괜찮아

늙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 라고 젊었을 때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 들어보니 다른 세계가 열린다. 늙으면 늙은 대로 맛이 있다는 걸 젊은 시절에는 알아챌 수 없다. 인간은 적응력이 무척 뛰어난 동물이다. 몸이 아파도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이내 받아들인다. 나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체력이 떨어지고 다리 힘이 없어지면 가고 싶은데도 가지 못한다. 어디든 쏘다닐 수 있는 젊은이로서는 불쌍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면 다니고 싶은 의욕이 사라진다. 모든 것에 심드렁해지니 멀리 못 나가도 아무렇지 않다. 동정을 받을 이유가 없다. 대신에 다른 즐거움이 생긴다. 좋게 말하면 관조의 편안함이다. 몸은 늙어가는데 마음은 청춘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별로 내세울 게 아니다.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어..

참살이의꿈 2016.03.31

유스

젊었을 때는 젊다는 걸 잘 모른다. 젊음(Youth)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려는 걸까, 쇠락한 노년의 모습과 발랄한 젊음을 불편할 정도로 집요하게 대비시킨다. 그러면서도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여러 단편적인 장면들이 교직 되며 영화를 이끌어가는데 어떻게 느끼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쓸쓸한 영화다. 돈 많은 사람들이 요양 겸 휴식을 위해 찾는 풍광 좋은 스위스의 고급 호텔에 80대의 두 친구가 묵고 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작곡가며 지휘자로 현역에서 은퇴해서 욕심 없이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바쁘다. 아마 이 둘은 서로 다른 노년의 삶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한쪽은 완전히 ..

읽고본느낌 2016.01.22

퇴직하는 후배에게 주는 충고

퇴직 시즌이 다가왔다. 교육계는 학기제로 움직이므로 교사는 2월과 8월에 전근과 퇴직이 이루어진다. 내 주변에도 명퇴 신청을 한 사람이 몇 있다. 재수, 삼수까지 한 사람들인데 이번에는 무난히 커트라인 안에 들 것 같다. 정년 전에 그만두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자의로 나오지만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가 보다. 얼마 전에 만난 후배도 일 없이 어떻게 인생을 재미있게 보낼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뭔가를 열심히 배우고 동호회에도 가입해 바쁘게 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말한다. 지금껏 일에 매여 살았으니 이제는 나를 얽어매는 일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바쁘게 살았으니 게을러질 필요가 있다. 지금껏 재미있는 것만 찾..

참살이의꿈 2016.01.19

노화 현상입니다

몇 달 전에 머리에 작은 혹이 생기더니 점점 커져갔다. 영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대로 자란다면 내년쯤에는 도깨비 머리에 달린 뿔처럼 될지 몰랐다. 망설이다가 피부과에 찾아갔다. 피부암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레이저로 지지면 된다고 했다. 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누워 있었다. 왜 이런 게 생기느냐고 물었더니 의사 대답은 간단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초여름에는 눈에 멍울이 맺힌 걸 발견했다. 흰자위에 물방울처럼 생긴 게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색깔이 없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시력을 잃지 않는가 싶어 바로 다음 날 안과에 갔다. 불안한 내 마음과 달리 의사는 태평하게 말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보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그..

길위의단상 2015.11.23

65에서 75 사이

90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김형석 선생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5세에서 75세 사이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걸 보았다. 오래되어서 선생이 든 이유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 역시 선생의 생각에 찬성한다. 어제 어느 방송에서는 인생의 절정기로 20세와 69세를 들었다. 인생의 모든 시기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어느 때를 돌아보아도 그 나이로서의 빛나는 무엇이 있다. 그러나 빛만 아니라 그늘 또한 존재한다. 청년기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고민과 번뇌의 어두운 밤이 함께 하는 시기인 것이다. 젊었을 때는 노인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싶지만 노년은 또 그대로의 멋과 재미가 있다. 육체는 쇠락해가지만 정신은 익어가는 감처럼 완숙해지는 시기다. 삶의 경험이 잘 발..

길위의단상 2015.10.01

귀엽게 나이 들기

나이가 60이 넘어도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 건 어떨까? 얼마 전의 일이다.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나한테 귀엽다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어리벙벙했지만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그분은 형님뻘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전에 학교에 있을 때는 코흘리개 아이들한테서도 그런 소리를 가끔 들었다.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난감했다. '귀엽다'는 내 평생을 따라다니는 단어다. 어렸을 때는 은근히 자랑스러웠지만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뭔가 모자라고 덜 떨어진 인간이 된 듯하여 주눅 들기 일쑤였다. 하물며 어른이 되어서는 오죽하겠는가. '멋있다'거나 '남자답다'는 말은 나에게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런데 단 한 번 예외가 있었다. 한 친구로부터 살짝 그..

참살이의꿈 2015.09.11

삼관

노년 행복의 조건이 '삼관'이라고 한다. 삼관은 관절, 관계, 관심거리다. 즉, 튼튼한 관절, 원활한 대인관계, 즐거운 관심거리가 있어야 노년의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관절이 튼튼하다는 건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는 걸 뜻하니 넓게 말하면 건강하다는 뜻이다. 관절에 이상이 없어도 병석에 누워 있다면 아무 소용 없다. 어느 경우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즐거움의 반은 포기한 셈이다. 나는 특히 걷기와 산을 좋아하니 행복의 조건으로 관절을 드는 데 주저함이 없다. 가고 싶은 산을 다리 때문에 못 간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불행해질 것 같다. 그래서 미래를 위하여 산길을 걸을 때는 조심한다. 특히 내려갈 때는 발을 세게 디디지 않도록 한다. 스틱이 없더라도 주의만 한다면 크게 문제..

참살이의꿈 2015.08.29

쓴맛이 사는 맛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노인이 되면 대체로 고집불통의 꼰대가 된다. 노년의 문화라 부르는 것도 즉물적이고 쾌락적인 것에 만족하는 수준이다. 시대를 고뇌하며 진실된 삶을 추구하는 노인은 드물다. 작년 신문 보도를 통해 채현국 선생을 처음 알았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라는 제목의 젊은이에게 주는 일갈이 시원했다. 선생의 삶과 생각을 소개하는 이 책 을 읽으며 선생의 진면목을 다시 대하게 되었다. 참 독특한 분이라는 느낌이 신선했다. 선생을 수식하는 말들을 보면 선생이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거인, 기인, 거리의 철학자,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째 안에 들었던 거부, 탄광 사고가 난 뒤 사업을 정리해서 나누어준 사업가,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한 ..

읽고본느낌 2015.07.29

일흔 살의 인터뷰 / 천양희

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했을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

시읽는기쁨 2015.07.23

호기심

8개월 된 손자는 이제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게 아니고 작은 몸이 나아가는 목표가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의 눈이 꽂히는 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TV 리모컨 같은 전자기기라는 게 신기하다. 특히 리모컨만 보면 먹이를 발견한 매의 눈이 된다. 몸이 굳어지고 돌진한 태세를 갖춘다. 희한하다. 검은 직사각형 플라스틱 막대기의 무엇이 아기를 사로잡는지 모르겠다. 요사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 기기에 익숙해지는가 보다. 손주를 지켜보면서 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징이 호기심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일부 영장류의 새끼도 주변에 호기심을 가지지만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기의 눈은 세세하게 주위를 스캔하는 카메라 같다. 낯선 것..

참살이의꿈 2015.07.06

늙어가는 징조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베란다 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인다. 드문드문 사람이 오가고, 가끔 차들이 지나갈 뿐인 길이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되면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로 분주해진다.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놓으니 바깥의 소리가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생활 소음을 들으며 지켜보는 것도 재미난 구경거리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의 제일 조건은 절간처럼 조용해야 했다. 에어컨을 들여놓은 것도 더위보다는 소음 차단이 주목적이었다. 산과 마주한 옆 동에 사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너무 조용한 것이 싫다고, 밤이 되어 깜깜한 숲을 보는 게 무섭다고 한 그분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적막을 좋아했고 작은 소음에도 노이로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경험을 ..

참살이의꿈 2015.06.16

사람 꼴

늙어가니 마음이 더 옹졸해진다. 나이를 먹으면 원숙해지고 관대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나를 돌아보면 증명이 된다. 마음 꼬라지 하고는, 라며 혀를 찰 일이 잦다. 그중의 하나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일도 눈을 찌푸리게 된다. 사람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데, 라는 그물망이 더 촘촘해졌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휴대폰으로 통화하거나 소음을 내는 사람이 있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런 소음이 들리면 무척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도저히 견딜 수 없으면 한마디 한다. 최근에 그런 경우가 두 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적을 하고는 바로 후회를 한다. 떨떠..

참살이의꿈 2015.03.29

다 한때인 걸

내 나이 즈음이 되면 손주 키우는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자식을 출가시키면 홀가분해질 줄 알지만, 손주가 태어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요즈음은 대부분이 맞벌이라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자면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 사정 뻔히 아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공무원이면 육아 휴직을 3년까지 쓸 수 있지만 회사원은 다르다. 법적으로 보장되었다고는 하나 3개월 정도만 애기를 돌보라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눈치가 보여서 더 있을 수가 없게 한다. 출산율 저하를 걱정만 하지 말고 이런 걸 확실히 보장해 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여성 대통령이 당선돼서 기대했는데 나아진 것 하나 없다. 일본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충분한 육아 휴직이 보장되고, 지자체에서 돌보미를 지원해 주어 아기 기르기가 수월하다는 ..

길위의단상 2015.03.22

꼰대는 되지 말자

얼마 전에 굉장히 불편한 사람을 만났다. 벽창호를 대하듯 말이 안 통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전형적인 꼰대 타입이었다. 사전에서 꼰대는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 아버지, 늙은이를 가리키는 말'로 나와 있다. 옛날 우리 때는 잘 썼는데 요사이 아이들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다. 꼰대의 특징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1. 자기 세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 자기의 잣대로 세상과 사람을 판단한다. 자기 기준에 맞으면 옳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이다. 흑백 논리로 내 편, 네 편을 가른다. 2.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에 꼰대가 많다. 옛것과 자신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젊은 세대의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젊은이들한테서 고리타분하고 고집불통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3..

길위의단상 2015.02.12

한중(閑中) / 서거정

홍진에 묻혀 백발이 되도록 살아 왔는데 세상살이 가운데 어떤 즐거움이 한가로움만 같으리 한가로이 읊고, 한가로이 술 마시며, 한가로이 거닐고 한가로이 앉고, 한가로이 잠자며, 한가로이 산을 즐기네 白髮紅塵閱世間 世間何樂得如閑 閑吟閑酌仍閑步 閑坐閑眠閑愛山 - 閑中 / 徐居正 내 구미에 맞는 시지만 딴지를 걸어보련다. 유한계급의 한가한 삶이란 여러 하인과 노예의 희생이 있어 가능한 게 사실이다. 그들의 노동과 시중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불한당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한가롭게 살고 싶건만 한가롭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의 시간과 돈을 뺏은 특정 계층의 여가가 음풍농월을 낳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과거의 거대한 유적이나 건물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불편한 이유다. 지금 우리..

시읽는기쁨 2015.02.11

정신의 유연성

나이 들수록 경계해야 할 일이 생각이 굳어지는 것이다. 늙으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과신하게 되고 그것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이 자주 한 "그거 내가 해 본 건데"라는 식의 건방진 발언도 나온다. 다 생각이 굳어진 결과다. 반면에 젊다는 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다른 걸 배척하지 않는다. 아직 나와 외부를 가르는 벽이 완성되기 전이다. 사고방식이 경직되지 않았다. 어릴 때는 부드럽다가 늙으면 딱딱해지는 건 자연의 원리다. 두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 모임에 나가 보면 그 차이가 명확히 보인다. 큰소리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과신증을 앓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모른다. 젊은 때는 호기로나 보이지 늙어서는 ..

참살이의꿈 2015.01.29

감성에 물주기

늙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들라면, 건강한 무릎 연골과 살아 있는 감성이라고 답하겠다. 세상 사람들이 자주 꼽는 돈과 친구도 필요하지만, 나에게는 연골과 감성의 뒷순위다. 돈은 생존하기에 적당한 양만 있으면 되고, 친구가 없으면 혼자서도 잘 놀 줄 알면 된다. 중요한 건 세상을 늘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인 감성이다. 는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일상기록공작가'로 자처하는 공혜진 님이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비결 100가지를 보여준다.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우리 삶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커다랗게 나선형을 그리며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어제와 같은 패턴을 그리는 듯하지만, 어제 그려진 원과는 결코 만나지 않는 나선형이다. 그래서 오늘 ..

읽고본느낌 2014.09.29

철수와 영희 / 윤제림

철수와 영희가 손 붙잡고 간다 철수는 회색 모자를 썼고, 영희는 빨간 조끼를 입었다 바둑이는 보이지 않는다 분수대 앞에서 맨손체조를 하고 있는 창식이 앞을 지날 때 영희가 철수의 팔짱을 낀다 창식이는 철수가 부럽다 철수와 영희가 벤치에 앉아 가져온 김밥을 먹는다 철수가 자꾸 흘리니까 영희가 엄마처럼 철수의 입에 김밥을 넣어준다 공원 매점 파라솔 그늘 아래 우유를 마시던 숙자가 철수와 영희를 바라본다 숙자는 영희가 부럽다 일흔두엇쯤 됐을까 철수와 영희는 동갑내기일 것 같고 창식은 좀 아래로 보인다 물론, 철수와 영희는 부부다 - 철수와 영희 / 윤제림 세월은 모든 것을 낡고 시들게 한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나 철수와 영희로 되어 간다. 부럽게 바라보는 창식이와 숙자도 있다. 늙으면 다 어린이로 돌..

시읽는기쁨 2014.09.20

가장 짧은 시 / 서정홍

아랫집 현동 할아버지는 몇 해째 중풍으로 누워 계신 할머니를 혼자 돌보십니다. 밥도 떠먹여 드려야 하고, 똥오줌도 혼자 눌 수 없는 할머니를 힘들다 말 한 마디 하지 않으시고..... 요양원에 보내면 서로 편안할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이웃들이 물으면, 딱 한 말씀 하십니다. "누 보고 시집왔는데!" - 가장 짧은 시 / 서정홍 고향 마을에 계신 어르신들도 대부분 몸이 불편하시다. 중노동이 몸을 망가뜨린 것이다. 주변에 제일 많이 생기는 게 노인 요양원이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어쩔 수 없이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요양원에 들어간다. 자식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부가 같이 사는 집은 어느 한쪽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끝까지 버텨내는 걸 본다. 이 시에 나오는 현동 할아버지도 그렇다. 시(詩)가 멀리..

시읽는기쁨 2014.06.25

아흔 즈음에

백 세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아흔 살, 백 살을 사는 기분은 어떨까? 이 책은 인문학자인 김열규 선생이 아흔 가까이 된 인생의 끝자락에서 쓰신 귀한 글 모음이다. 나이 든다는 것과 죽음에 대하여, 옛 시절의 회상, 이웃과 자연에 대한 단상이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노년에 찾아오는 지루한 시간과 외로움을 선생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이백사십 시간 같다고, 아예 가지고 오지고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결같은 시간, 옴짝달싹 않는 시간의 웅덩이에 빠져들고 만 것 같다고 한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늙을수록 자주자주 외로움에 젖는다. 마음이 풀기 가신 갈잎 꼴로 버석대는 걸 바라본다. 나이가 드는 것과 고독을 타는 것은 정비례한다. 늙을수록 도시에서 친구들이 많은 데서 살아야 한다고 사람들..

읽고본느낌 201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