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140

장수 지옥, 마지막 사진 한 장

의술이 발달하고 생활 환경이 개선되면서 평균 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여성의 평균 수명은 거의 90세에 가깝다. 일본은 2007년에 이미 노인 인구가 21%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2017년에 노인 인구 비율이 14.8%로 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일본이 겪는 문제를 우리 역시 뒤따르며 경험해야 한다. 노년과 죽음 문제를 다루는 책 두 권을 읽었다. 과 이다. 옛날에는 장수가 축복이었고 노인이 존경을 받았다. 노인이 드물었던 시대의 이야기다. 오래 사는 대가는 쇠약, 고통, 질병에 시달리며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동반한 채 몇 년씩 버텨야 한다. '죽지 못해 산다'라는 말이 결코 노인의 엄살이 아니다. 은 제목이 쇼킹하다. 마쓰바라 준코라는 일본 작가가 썼다..

읽고본느낌 2019.12.30

어른의 의무

일본의 만화가인 야마다 레이지가 쓴 책이다. 지은이는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인터뷰하며 존경받는 어른이 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자신이 찾아낸 내용을 중심으로 노년이 될수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지은이는 이를 '어른의 3가지 의무'라 이름 붙였다. 첫째, 불평하지 않는다. 둘째, 잘난 척하지 않는다. 셋째,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멋지게 나이 드는 비결은 간단하다. 이 세 가지만 실천하면 된다. 반대를 생각해 보면 확실해진다. 매사에 불평만 하고, 잘난 척하며, 무엇엔가 화가 나 있는 노인을 상상해 보라. 누구도 옆에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책의 부제가 '어른의 노력이 모든 것을 바꾼다'이다. 주변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

읽고본느낌 2019.10.04

너무 예민해

나는 소리에 예민해서 탈이다. 다른 데는 둔한 편인데 유독 소음에는 까다롭다. 그래서 사는 데 피곤하다. 도시에 살면서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디를 가나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소음 공해라는 말도 있다. 소음에 오래 노출되면 대개 무감각해지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나 같은 경우는 반대로 점점 예민해진다. 소음에 대한 면역이 약하다. (시골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조용한 곳을 찾아 시골살이할 때 옆집 개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많았다. 시골 마을의 개 짖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바깥에서 여러 명이 만나는 모임이 꺼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왁자지껄한 분위기 때문이다. 술이라도 몇 순배 돌면 각자 목소리가 커지고 시장 바닥처럼 변한다. 대화의 소재가 무엇이든 이 정도 되면 골치가 지끈거린다. 언제 ..

길위의단상 2019.09.22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

얼마 전에 갤럽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발표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60세로 세계 평균인 55세에 비해 높았다. 몇 나라별 평균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70세 한국 60세 영국 56세 미국 52세 독일 50세 일본 47세 중국 44세 대체로 유럽 국가가 높고 아시아 국가는 낮았는데, 한국은 예외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일본과 중국은 밑에 처져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40대 중반에 벌써 늙었다고 생각하는 건 의외다. 늙었다고 느끼는 나이도 몇 개의 단계가 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으면 누구나 늙어가는 걸 느낀다. 그러나 그때는 의욕이 팔팔할 때다. 늙어가는 과정이지 늙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늙어간다는 ..

길위의단상 2019.06.03

로망

먼 남의 얘기가 아니다. 당장 내 얘기일 수 있다. 아주 가까이는 아흔 살이 다가오는 양가의 어머니가 계시고, 우리에게 지금 바로 이런 일이 닥친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화 '로망'은 함께 치매에 걸린 70대 부부의 슬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같이 살던 아들 부부는 부모를 감당하지 못해서 독립해 나갔고, 집에는 부부 둘만 남았다. 동반 치매에 걸린 두 사람의 생활이 오죽하겠는가. 둘은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이순재 씨와 정영숙 씨가 부부 역을 맡아서 애틋한 인생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로망'이 작품성 있는 영화는 아니다. 마치 한 편의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집,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성이 있기 때문에 공감을 준다. 치매에서 자유로운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 제목이..

읽고본느낌 2019.05.29

언제까지 운전할 수 있을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운전이다. 운전대를 잡으면 기분이 고양되면서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종일 운전해도 피곤하거나 질리지 않는다. 무엇이건 즐기면 힘든 줄을 모른다. 나는 즐기면서 운전을 한다. 젊었을 때는 드라이브가 취미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었다. 속력을 높여 고속도로를 달리면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렸다. 국도는 국도대로 달리는 맛이 있었다. 집 벽에는 대형 우리나라 전도가 걸려 있었는데, 내가 운전한 길은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우리나라 전체를 빨간색으로 덮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안 간 길을 찾아 일부러 빙 돌아가는 일이 흔했다. 운전을 직업을 선택했다면 훨씬 더 인생을 즐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캐나다를 동서로 횡단하는 트럭 기사 스토리를 TV로 보았다. ..

길위의단상 2019.05.16

인생 후르츠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얼마 전에 타계한 키키 키린의 이런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인생 후루츠'는 90세의 슈이치 할아버지와 87세의 히데코 할머니가 전원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다. 예쁘고 맛있게 열매가 영글듯 두 분 노년의 삶이 아름답다. 마냥 부럽기만 하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건축가다. 젊었을 때는 국가의 신도시 프로젝트 일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효율성을 앞세우는 신도시 개발이 자연과 공존하는 건축을 지향하는 슈이치와는 마찰을 일으킨다. 히데코 할머니는 얌전하고 차분한 성격에 할아버지와 철학이 맞는다. 두 분은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그들만의 자연주의 삶을 실천한다. 꽤 ..

읽고본느낌 2019.04.17

열심히 안 살아 다행이다

아흔이 가까워지면서 어머니는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말을 자주 하신다. 죽을 둥 살 둥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았더니 다 헛것이었다. 너희들은 나같이 바보로 살지 마라. 좋은 데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건강을 챙겨라. 늙고 아프면 모든 게 쓸데없다. 인생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식으로서는 마음이 아프다. 잘 못 해 드리는 게 있지 않나 싶어서다. 어머니는 그래도 둘째네와 살고 있지만, 고향의 다른 노인은 독거로 지내시는 분이 많다. 자식이 많지만 전부 외지에 나가 있다. 한밤중에 잠이 깨면 외로워서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병과 외로움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에 부딪히는 실존의 문제다. 따져보면 인생은 어차피 혼자이고, 생로병사는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나만 특별할 수가 없다...

참살이의꿈 2019.04.09

지공거사가 되다

지공거사(地空居士,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65세 이상 되는 노인)가 된 지 두 달이 지났다. 학교 동기들보다 이태나 늦다. 학교를 한 해 빨리 들어간 데다, 호적마저 일 년 늦은 결과다. 그래서 제일 끄트머리로 지공거사에 편입했다. 아직 경로카드는 발급받지 못했다. 서울에 살지 않으니 지하철 무료 이용 카드가 그다지 소용이 없다. 다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 된다. 그동안 몇 번의 전시회와 시설 입장료에서 할인을 받았다. 막상 요금 할인을 받아보니 그 재미가 쏠쏠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말이 있듯이 돈 앞에서는 나이 든 사실을 자랑할 만도 하다. 이젠 대중교통 경로석에도 떳떳하게 앉을 수 있다. 전에도 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가 백발이라 나를 칠십대로 보..

참살이의꿈 2019.03.17

노인본색 여덟 가지

친구가 관심이 가는 글을 보내줬다. 제목이 '노인본색 8가지'다. 노인이 되면 나타나는 특징을 추려낸 글인데, 나를 돌아보며 경계로 삼을 만한 내용이다. 1. 얼굴이 무표정해진다. 마음이 완고해지는 탓일까, 늙어지면 얼굴도 굳어지고 무표정해진다. 어린아이의 말랑말랑한 마음과 비교해 보라.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해도 미소나 웃음은 나이를 잊게 만드는 효력이 있다. 2. 불만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심해진다.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나 젊은이의 행동 등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못 본 척 하더라도 속에서는 짜증이 생긴다. 쌓이면 불만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단지, 우리와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3.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낸다. 화를 잘 내는 것도 노화 현상의 하..

참살이의꿈 2019.03.02

둔해지면 좋겠다

첫째, 위와 장이 둔해지면 좋겠다. 나는 위와 장이 너무 예민하다. 우선, 찬 것과는 상극이다. 냉 음료는 아예 못 마신다. 한여름에도 냉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바로 배탈이 난다. 먹는 것만 아니라 복부에 냉기만 닿아도 반응이 온다. 에어컨을 켤 때는 배를 담요로 감싸야 한다. 이런 위장이니 정신적 스트레스에 약할 수밖에 없다.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 병원에서는 과민성 대장 증상이란다. 젊을 때부터 나를 괴롭힌 병이다. 사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위와 장도 좀 둔해지면 좋겠다. 둘째, 소음에 둔해지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리에 민감해진다.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하지만 퇴직하고 난 뒤부터 더 심해졌다. 조용히 ..

참살이의꿈 2019.02.10

손주 돌보기

어제 모임에 나갔더니 세 명이 손주를 봐줘야 한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전체가 아홉 명이니 삼 분의 일이 손주에게 발목이 잡힌 셈이다. 우리 나이대에서는 흔한 모습이다. 자식과 손주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별로 없다. 자식이 결혼하고 손주를 낳게 되면 손주 봐주는 데 묶이게 되는 것이 한국 부모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다. 요사이는 대부분이 맞벌이라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부모가 제일 만만하다. 어찌 된 풍조인지 부모나 자식 모두 당연한 일인 줄 안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만 해도 여자가 결혼하면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는 직접 키웠다. 출산 후 몸조리를 위해 잠시 부모의 도움을 받았지만 내내 신세를 지는 일은 없었다. 내 부모님이나 처가의 장인, 장모님도 각각 다섯 형제를 두었고 손주만 스무 명이지만 손..

길위의단상 2018.12.28

별침을 권함

자식과 같이 살았을 때는 방의 여유가 없어 부부는 한방을 써야 했다. 남편이 코를 골아도, 아내가 잠꼬대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젊었을 때는 쉽게 잠이 드니 별문제가 안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잠귀가 밝아지고 예민해진다. 마침 그때쯤이면 자식이 출가하게 되고 빈방이 생기니 부부는 서로 편하게 딴 방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아마 많은 가정이 그럴 것이다. 부부는 마땅히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고 초지일관 고집을 부리는 친구가 있지만 별 호응을 얻지는 못한다. 우리 부부도 각방을 쓰기 시작한 게 3년 정도 되었다. 잠을 잘 못 드는 아내는 전에도 거실이나 빈방에서 혼자 자는 경우가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자식이 결혼하고 자연스레 방이 비면서 방 하나는 아내의 침실이 되었..

길위의단상 2018.10.27

인구로 본 남은 수명

어제는 '노인의 날'이었다. 나라에서는 100세가 된 노인에게 청려장을 증정하며 기념식을 열었다. 올해 100세가 된 노인이 1,343명(남 235, 여 1,108)이다. 고령사회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100세 이상은 18,505명이나 된다. 통계청에 들어가서 우리나라 연령별 인구 분포를 찾아보았다. 2018년 8월 기준인 최신 자료다. 5세 단위의 노인 수는 이렇다. 65세 -- 525,134명 70세 -- 442,372명 75세 -- 363,389명 80세 -- 246,302명 85세 -- 129,958명 90세 -- 52,061명 95세 -- 16,933명 100세 -- 1,343명 이것으로 남은 수명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오차가 있겠지만 표본이 많으니 무시해도 괜찮을 듯하다. 현재..

길위의단상 2018.10.03

꼰대 김철수

나이가 들면서 경계하는 일 중 하나가 꼰대 소리를 듣지 않기다. 대부분의 꼰대는 제가 꼰대인 줄 모른다. 그래서 무섭다. '꼰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늙은이나 선생님을 가리켜 청소년이 사용하는 은어'라고 나와 있는데,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으로 주로 쓰인다. 노인 중에 꼰대가 많은 건 당연하다. 꼰대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다. 자기 경험과 사고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혼자 무엇을 믿든 상관할 바 아니나, 남에게 지적질하고 훈계하니 문제다. 간섭, 지적, 조언, 충고, 호통 등이 꼰대 짓의 모습이다. 여기에 권위가 더해지면 그 폐해가 심각하다. 꼰대는 정신 질병이다. 이 책 는 꼰대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읽으면서 뜨끔한 부분이 많다. 꼰대란 고정관념을 진리로 ..

읽고본느낌 2018.09.27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 복효근

6월 저녁 해 어스름 어둠이 사물의 경계를 지워나갈 때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어두워지는 일이 이리 좋은 것인 줄 이제 알게 되네 흐릿해져서 흐릿해져서 산도 나무도 무엇보다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싸웠던 일들도 흐릿 흐릿해져서 개망초 떼로 피어선 저것들이 안개꽃이댜 찔레꽃이댜 안개꽃이면 어떻고 찔레꽃이면 어뗘 개망초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뗘 꽃다워서 좋더니만 이제 꽃답지 아니해서 좋네 이녁 화장을 해서 좋더니 화장하지 않아서 좋을 때가 이렇게 왔네 저녁 이맘때의 공기 속엔 누가 진정제라도 뿌려놓은 듯 내 안에 날뛰던 짐승도 순하게 엎드리네 이녁이라고 어디 다를라고 뭐 죽도록 억울하지는 않아서 세상 다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듯 어둠 속에 둥글어진 어깨를 보네 이대로 한 이십 년 한꺼번에 더 늙어지면 더..

시읽는기쁨 2018.09.12

저만 모른다

고등학교 동기 밴드에 쓴웃음을 짓게 하는 유머 글이 하나 올라왔다. 동네 치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던 중 의사의 치과대학 졸업장을 봤다. 의사의 이름은 반세기 전 고등학교 시절의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이름과 같았다. 그는 키도 크고 멋진 친구였는데 혹시 이 사람이 그 당시 나와 친했던 그 친구인가, 하고 있는데 의사를 본 순간 그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대머리에다 몇 낱 안 남은 흰 머리카락, 그리고 주름살이 깊게 파인 얼굴이 내 동급생이기엔 너무 늙어 보였기 때문이다. 진료가 끝난 후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00고등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까?" "네, 다녔습니다. 그때 좀 우쭐댔었지요"라고 말하며 치과의사는 활짝 웃었다. "언제 졸업했습니까?"하고 다시 물었다. "1967년입..

길위의단상 2018.08.22

체력과 열정

"체력과 열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살짝 미쳐야 하고, 득실을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 이 말을 한 조유성 할머니는 여든셋인데 동남아의 밀림을 찾아다니며 곤충 사진을 찍고 있다. 벌써 9년째다. 사진을 배우고 나서 야생화와 곤충의 세계에 빠졌고, 2천년대 후반부터는 열대지방 동식물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밀림 안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인도네시아 프로볼링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 할머니가 멋있다고 여기면서 나는 왜 안 될까를 생각한다. 이것저것 재고 있기 때문이지만, 실은 바라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살짝 미치는 게 두려운 이유도 있다. 부러운 것과 실천은 별개다. 나이가 들면 체력과 열정이 시드는 게 당연하다. 일부는 젊은..

참살이의꿈 2018.08.13

안락사를 부탁합니다

'오싱'을 쓴 하시다 스가코 작가는 1925년에 태어났으니 금년이 93세다. 지금도 수영을 하고 매년 몇 달간은 크루즈로 세계 여행을 즐기며 글을 쓰고 있다. 아흔이 넘어도 총기를 잃지 않고 여행을 한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 책 는 재작년에 나왔으니 91세에 썼다. 부제가 '후련하게 깨끗이 떠나는 10가지 종활 이야기'다. 종활(終活)이란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이다. 어느 시기가 되면 종활이 필요하다. 작가는 원고를 정리하고, 집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사후에 부탁할 일은 '종활 노트'에 적어둔다. 동시에 이 세상을 떠날 마음의 준비도 한다. 작가의 마음가짐은 '없도록 애쓴다!'이다. 깨끗하고 후련하게 떠나기 위해서는 미련이 없어야 한다. 쓸데없는 기대도 하지 않는 '없는' 삶을 살아..

읽고본느낌 2018.08.04

늙은이가 읊다 / 김삿갓

오복 가운데 수(壽)가 으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래 사는 것도 욕(辱)이라 한 요임금 말이 귀신 같네 옛 친구들은 모두 다 황천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낯설어 세상과 멀어졌네 근력이 다 떨어져 앓는 소리만 나오고 위장이 허해져 맛있는 것만 생각나는데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五福誰云一曰壽 堯言多辱知如神 舊交皆是歸山客 新少無端隔世人 筋力衰耗聲似痛 胃腸虛乏味思珍 內情不識看兒苦 謂我浪遊抱送頻 - 老吟 / 金笠 유교에서 말하는 오복(五福)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그중 으뜸이 수(壽)다. 그러나 오래 살아서 복이 되기보다 욕이 되는 경우를 더 자주 본다. 현대 의학은 인간의 평균수명을 잔뜩 올려놓았지만, 심신의 ..

시읽는기쁨 2018.07.27

축복 받은 삶

노년층에게 롤모델이 되면서 부러움을 받는 두 분이 있다. 송해와 김형석 선생이다. 송해 선생은 92세로 KBS의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높다. 90세가 넘어서도 바깥 활동을 하며 돈을 벌어 오니 남편으로는 최고일 것이다. 철학 박사인 김형석 선생은 지식층 사이에 화제다. 올해 99세니 백수(白壽)를 맞았다. 그런데도 저술과 강연으로 젊은이보다 더 바쁘게 지내신다. 재작년에 나온 책 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래 살면서 건강할 뿐 아니라 인간적 성숙의 표본이 된다는 점에서 선생은 존경을 받고 있다.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하나둘씩 무릎을 꿇는다. 질병이 찾아오고 정신은 쇠해진다. 두 분은 특별한 ..

참살이의꿈 2018.07.12

나는 행복합니다

내 산 게 억울하다. 왜 그리 미련하게 일만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래 살았어도 자식한테 효도 받지도 못한다. 요새 젊은 사람들 재미나게 사는 것 보면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고향에 내려갔을 때 하신 어머니의 직설적인 말이다. 이런 내색을 안 하셨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작년에 동생이 낙향해서 어머니를 곁에서 모시고 있으니 지내시는 환경은 좋아졌다. 어머니는 동생이 내려간 뒤로 평생을 하시던 농사일을 그만두셨다. 밭에 나가는 대신 마을회관에서 종일 노신다. 예전 같이 식사 준비도 걱정 안 하시고, 혼자서 드시는 일도 없다. 그런데 전에는 듣지 못했던 말씀을 하신다. 어머니는 여장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억척스레 농사일을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모든 것이 당신의 책임이었고 몫..

참살이의꿈 2018.07.04

적응하기

딩동! "누구세요?" "실내 소독하러 왔습니다." 낮에 집에 있으면 현관 벨 소리에 응대해야 할 일이 가끔 있다. 방문자를 잘 파악해서 문을 열어줄지 말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벨을 누른다고 다 문을 열어줄 수는 없다. 정기 소독이야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지만, 무슨 말인지 분명치 않은 사람은 십중팔구 귀찮게 하는 사람이다. 대면하면 뿌리치기 쉽지 않다. 이번에 소독하러 온 아줌마는 50대 중반쯤 되었다. 배수구에 분무기로 소독액을 뿌리는 간단한 작업이다. "다 됐습니다. 아버님, 여기 사인 좀 해 주세요." 헐! 아버님이라고? 내가 80대쯤으로 보인 모양이다. 내 여동생보다도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한테서 듣는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너무 생경했다. 제일 황당했던 건 전철을 탔을 때였다. 경로석 앞..

길위의단상 2018.05.26

노욕은 추하다

인간이 제 몫을 챙기고 재산을 소유하게 된 건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수렵채취시대에는 모아둘 물량이 적었을뿐더러 이동 생활에서 보관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탐욕도 농사와 함께 따라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부터는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움박질이 시작되었다. 사탕이 있으면 아이들도 다툰다. 그러나 아이들의 욕심에는 한계가 있다. 한두 개면 만족하지 수십 개의 사탕을 혼자 독점하려고는 안 한다. 많이 가지고 있다면 다른 아이에게 나누어줄 줄 안다. 동물도 제가 배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 사자가 수십 마리의 얼룩말을 사냥해서 제 창고에 보관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젊은이의 욕망도 현실적인 이득이 아닌 미래의 꿈과 관련되어 있다. 젊은이의 야망은..

참살이의꿈 2018.04.30

어떤 대화

A : 형, UN 기준으로 형은 만 나이로는 아직 청년이십니다^^. 축하해요~ * UN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 UN에서 전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에 대한 측정 결과, 연령 분류의 표준에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며 사람의 평생 연령을 5단계로 나누어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 0세 ~ 17세까지는 미성년자 * 18세 ~ 65세까지는 청년 * 66세 ~ 79세까지는 중년 * 80세 ~ 99세까지는 노년 *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 B : 내 육체와 정신 상태를 냉정히 판단하면 누가 뭐래도 지금은 노년의 초입이 맞아요. 굳이 다운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나요? A : ㅎㅎ, UN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형은 아직 왕성하게 트레킹 하시고 기억력 판단력 똑 부러지시니 청년이 맞아요. ㅋㅋ B : 트레킹은..

참살이의꿈 2018.04.15

그럴 수도 있겠지

늙어가면서 제일 경계해야 할 일이 제 생각에 갇히는 일이다. 제 생각에 갇히면 현상을 두루 보지 못하고 옹졸해진다. 최근에 그걸 절감하는 일이 있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왜 그렇게 자잘하냐"는 핀잔을 들었다. 의견 충돌로 말다툼을 하고 난 뒤였다. 본인은 자신을 잘 모른다. 스스로 꼰대라고 인정하는 꼰대는 없다. 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비친 나를 봐야 한다. 가까운 배우자나 자식도 나의 좋은 거울이다. 설마 내가 그럴까, 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변명하고 부정하기 바쁘다. 내가 그렇다. 흔쾌히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소리를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늘어 지혜로워지는 게 순리일 것 같다.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말이다. 그러나 현실..

참살이의꿈 2018.01.17

오래된 농담 / 천양희

회화나무 그늘 몇 평 받으려고 언덕길을 오르던 늙은 아내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합환수 가지 끝을 보다 신혼의 첫밤을 기억해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 그늘보다 몇 평이나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굵은 주름이 나이테보다 깊어 보였다 굴참나무 열매 몇 되 얻으려고 언덕길을 오르던 늙은 남편이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열매 가득한 나무 끝을 보다 자식농사 풍성하던 그날을 기억해낸 늙은 아내가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 열매보다 몇 알이나 작아져선 나, 생각보다 가볍지? 한다 머리는 비었지 허파엔 바람 들어갔지 양심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밖에 두 눈이 바람 잘 날 없는 가지처럼 더 흔들..

시읽는기쁨 2017.12.11

죽여주는 여자

작년에 나온 영화인데 늦게서야 보았다. 우리 시대 노인의 성과 가난, 소외 계층의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자극적이거나 웅변조가 아니고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 '죽여주는 여자'는 윤여정 1인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의 유명도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만한 무게감이 있다. 윤여정이 연기한 소영은 파고다공원에서 노인을 상대로 몸을 팔아가며 살아간다. 일명 박카스 아줌마로 '죽여주는 여자'라는 별명으로 통하면서 다른 아줌마의 질시를 받는다.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은 소영은 진짜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죽는 사람보다는 소영의 심적 고통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소영은 일찍 보내주는 것이 그를 도와주는 것..

읽고본느낌 2017.12.01

500원

500원 줄서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모 종교 단체에서 주는 500원을 받기 위해 모여드는 노인들로 긴 줄이 생긴다는 것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려고 어떤 노인은 새벽에 집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도 생기고 싫은 소리도 나오는 모양이다. 500원 때문에.... 500원 주기는 IMF 때 시작했다는데 찾아오는 노인들이 줄지 않으니 중단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고작 500원을,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든다. 몇 년 전 보도에서는 꼭 돈이 궁해서 줄 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밝혔다. 무료해서 놀이 삼아 나온다는 노인도 있었다. 사연도 여러 가지겠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66~75세의 빈곤율은 43%, 76..

참살이의꿈 2017.11.19

잠 못 드는 조부모 가설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든다. 불면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들도 많다. 잠이 들기도 어렵거니와 새벽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도 힘들다고 한다. 늙으면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어 생기는 현상이라고 의학에서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멜라토닌 분비를 늘리는 처방을 하면 될 것 같은데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노인이 되면 잠자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은데 실상은 반대다. 여기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인류가 동굴 생활을 할 때 적이나 맹수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밤에도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했다. 모두가 깊이 잠들어 있으면 습격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 역할을 맡은 것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낮에 활동을 많이 해야 하므로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노인이 되면 잠이 없어지는 ..

길위의단상 2017.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