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27

말 없고 수줍은 아이

집에 손주가 찾아오면 조용하던 집안이 시끌벅적해진다. 뛰어다니고 재잘거리고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깔깔댄다. 손주를 지켜볼 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저 나이일 때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요사이 같으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남기지만 그때는 카메라가 너무 귀한 물건이었다. 내 10살 이전의 사진은 딱 한 장이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을 유추할 기록이 없으니 오로지 희미한 몇 개의 기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에피소드 하나. 여섯 살 무렵이었으리라. 할머니를 따라 오일장에 간 날이었다. 할머니는 머리에 이고 간 곡식을 팔고 필요한 물건을 샀다. 빗자루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값만 치르고 빗자루는 가게에 두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이상했지만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길위의단상 2024.01.10

좌통

'좌통(좌측통행)'은 내 어릴 적 별명이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직후였다. 처음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기본 생활 지도를 했을 테고, 그중에 좌측통행 교육이 있었다. 복도에서는 뛰지 말고 좌측으로 질서 있게 다니라는 담임선생님의 가르침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 아이들이니 말을 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좀 과하셨던 것 같다. 학교를 나가서도 길을 다닐 때는 좌측통행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 한들 철부지들에게 학교 밖에서까지 통할 리가 없었다. 신작로를 지나 논둑길을 걷고 개울과 철길을 건너야 하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등하교 길이었다. 교문을 나서면 개구쟁이가 되어 장난하느라 정신을 놓았을 것이다. 모범이 되어야 할 고학년의 형들은 좌측통행을 아예 무시했다. 그럼에도 예외가 있었..

참살이의꿈 2024.01.06

사람을 만나고 오면 쓸쓸해진다

연말이라 모임이 잦다. 이번 주도 두 차례 송년 모임이 있다. 뜸한 해도 있었는데 올해는 별스럽게 만남이 많다. 사람과의 교류가 적은 편인 내가 이럴진대 다른 분들은 어떨까 싶다. 모임을 다녀오면 피곤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정의 피로도가 크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나한테는 어렵고 힘이 든다. 대화에서는 억지로 박자를 맞춰주며 고개를 끄덕여줘야 한다. 그렇다고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가능하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지만 모든 관계를 끊을 수는 없는 일이다. 타인과 만나고 접촉해야 활력이 솟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사소한 갈등이야 문제 삼지 않는다. 사람이 북적이는 데가 좋고, 모여서 수다를 떨어야 생기가 돋는다고 하니 신기하다. 나는 혼자 있어야 편하다. 사람과..

참살이의꿈 2023.12.19

할아버지는 왜 화를 내요?

"할아버지는 왜 자꾸 화를 내요?" 어느 날 손주한테서 느닷없이 받은 질문이다. 뜨끔했다. 아내에게서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겠지만 손주는 달랐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 손주가 반문했다. "답답해서 그래요?" 맞았다. 조금 전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다. 질문이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화가 날 때 참을 수 없나요?" 나는 겨우 답했다. "열에 아홉은 참고 한 번 화를 내는 거야." 옆에 있던 아내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과 동시에 손주가 말했다. "내가 볼 때 열이면 두 번만 참고 여덟 번은 화내는 것 같아요." 옆에서 아내는 손뼉을 쳤다. 손주한테서까지 이런 말을 듣는 게 너무 창피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내가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

길위의단상 2022.10.07

쌓이면 터진다

지구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고 상당히 역동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오는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상세한 메커니즘은 알지 못한다. 지구 내부가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사는 터전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지구가 지각, 맨틀, 핵으로 되어 있듯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되어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추측 수준이지 거의 무지하다. 인간이 지각의 표면만 겨우 건드렸을 뿐 마음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무의식의 세계가 어떠한지는 지구의 내부처럼 신비에 싸여 있다. 지각 깊숙한 곳에서는 어떤 요인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고 암석이 녹는다. 아마 천 도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런 마그마가..

참살이의꿈 2022.08.19

콰이어트

사색적인, 지적인, 책벌레, 꾸밈없는, 섬세한, 사려 깊은, 진지한, 숙고하는, 미세한, 내성적인, 내면을 향하는, 부드러운, 차분한, 수수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수줍음 많은, 위험을 싫어하는, 얼굴이 두껍지 않은 - 이는 내향 성향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두세 명 중 한 명은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회식보다는 독서를 좋아한다. 혁신과 창조에는 열광하지만 자기 자랑은 싫어한다. 여럿이 일하기보단 혼자 어딘가에 콕 박힌 채 고독한 작업을 즐긴다. 이 책 는 내향성을 가진 사람의 숨겨진 힘에 초점을 맞추고 격려한다. 부제가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지은이인 수전 케인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내..

읽고본느낌 2022.05.29

어제 꾼 꿈

어젯밤에는 평상시와 다른 꿈을 꿨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핵전쟁을 위협해서인지 꿈에 핵전쟁이 벌어지고 세상의 종말이 오는 광경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과 통신이 끊어지고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파트에 갇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는 전략폭격기들이 거대한 몸집을 끌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근방에서는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공기가 몰려온다는 소문에 창문을 꼭 닫는 방법 외에는 대처할 수가 없었다. 공포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다가 꿈이 끝났다. 이어서 꾼 꿈은 앞의 것과 반대였다. 화창한 봄날 온갖 꽃이 만발한 어느 전원 가운데였다. 탐조를 온 외국인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필드스코프를 건네며 산 꼭대기에 있는 새들을 보라고 했다. 둥..

길위의단상 2022.05.05

웃으면서 비관

언젠가 밤에 차를 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선 고층 아파트의 창마다 켜 놓은 불빛이 환했다. 나는 저 집들마다 어떤 기구하고 아픈 사연들이 있을까, 라며 착잡한 마음으로 흘러가는 불빛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지인이 말했다. "와, 불빛이 꽃처럼 예쁘다. 창 너머 가족의 단란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똑같은 불빛을 보는 마음의 눈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면서 나는 지인의 옆얼굴을 부러워서 쳐다보았다. 반이 남아 있는 술잔을 보며 어떤 사람은 "반이나 남아 있다"라고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반밖에 없다"라고 슬퍼한다고 한다.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에 따라 현상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달라진다. 인간에게는 행복 유전자가 있고 개인에 따라 타고난 양이 다르다고 한다. 인간..

참살이의꿈 2022.01.17

독고다이 기질

독고다이 : 스스로 결정하여 홀로 일을 처리하거나 그런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는 독고다이의 뜻이다. 일본말이지만 엄연히 우리말 사전에 실려 있다. '특공대(特攻隊)'의 일본 발음이 독고다이다. 조직적인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서 홀로 임무를 수행하는 단독자가 독고다이다. 군대나 건달 세계를 떠나 범위를 넓히면 사회의 아웃사이더도 독고다이의 기질과 통한다고 하겠다. 어느 분의 글에서 독고다이를 재해석한 걸 보았다. 그분은 독고다이를 한자로 '獨固多異'라 옮겼다. '혼자만을 고집하면서 많은 이와는 다르다' 라는 뜻이다. 독고다이의 원뜻을 살린 재미있는 조어다. 아니면 독고를 '獨孤'라 써도 좋을 것 같다. 독고다이라는 어감에는 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이나 상식과 다르게 자기만의..

길위의단상 2021.10.28

넉 달만에 이발하다

오랜만에 이발을 했다. 지난해 추석 전에 이발한 뒤로 처음이니 넉 달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외부인과 접촉을 마다하다 보니 이발소도 발을 끊었다. 넉 달이 지나니 머리칼은 귀를 전부 가릴 정도다. 보기에는 거칠어도 바깥출입해서 타인을 만날 일이 없으니 앞으로 몇 달은 더 버틸 수가 있다. 그런데 이번 주말에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를 가야 했다. 그동안 이발소보다는 미용실을 자주 이용했다. 이발소는 면도해 주는 게 영 불편했다. 나는 내 몸을 누가 만지는 게 아주 싫다. 이발소에서는 머리를 깎고나면 여자 면도사가 꼭 면도를 해 준다. 정성껏 털을 밀어준다고 볼을 잡아당기고 입술을 비틀기도 한다. 신경이 쓰여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저는 면도를 ..

길위의단상 2021.01.13

게으름을 자랑한다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행동이 굼뜨다. 어려서부터 빠릿빠릿하지 못하다고 부모님이 걱정했는데, 학교생활이야 그럭저럭했지만 군대에 가서는 고생 좀 했다. 훈련받을 때 선착순에서는 맨날 꼴찌여서 기합은 도맡아 받았고, 자대에 가서도 고참한테 어지간히 잔소리를 들었다. 나 같은 졸병을 둔 고참도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다행히 행정병이라서 그나마 군대 3년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타고난 성격이 그렇다 보니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가만히 혼자 있는 게 특기다. 책 한 권만 던져주면 종일을 심심치 않게 보낸다. 바깥출입 없이 몇 달이라도 혼자서 재미나게 지낼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단점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남이 갖지 못한 장점이기도 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있다. ..

참살이의꿈 2020.09.09

호인보다는 까칠한 사람이 낫다

모든 이들과 두루 사이좋게 지내며 성격이 좋은 사람을 보통 호인(好人)이라고 부른다. 사전에서는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본바탕이나 됨됨이가 좋은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덩치가 있으면서, 서글서글하고 밝은 풍모를 가진 모습이 대체적인 호인의 이미지다. 무슨 일을 당해도 허허 웃으며 화를 내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저 사람은 호인이야."라고 말할 때는 상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는 그러한 호인의 긍정적인 평가에 딴지를 걸고 싶다. 우선, 호인의 특징은 무색무취하며 제 색깔이 없다. 그래서 무골호인(無骨好人)이란 말이 생겼다.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호인은 대체로 체제 지향적이며 보수적이다. 호인의 철학은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내가..

길위의단상 2019.11.26

가을바람의 유혹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해보고 후회하라는 말이 있다. 결혼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잘 쓰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해서 후회할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안 했다면 혼자만 후회하면 된다. 그러나 일을 저지르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세상을 위해서는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안 하는 게 차라리 공익이 될 수 있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할 꺼야? 이런 질문을 던지는 바보 같은 사람도 있다. 거짓이라도 좋으니 달콤한 말 듣기를 바라는 걸까. 만약 아내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결혼하지 않을 거야!" 현재의 결혼 생활이 불행해서가 아니다. 내가 결혼 생활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와 맞추고 어울려 살아갈 마음 바탕이 부족하..

참살이의꿈 2019.11.01

팔랑귀와 불신지옥

아내는 남의 말을 쉽게 믿는다. 방송에 나오는 내용도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TV는 온갖 건강과 의학 정보를 전한다. 몸에 좋은 약이나 음식이 있다고 하면 금방 솔깃해지는 모양이다. 아무 관심 없는 나까지 끌어들일 때가 많다. 내가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우리 집은 건강식품점을 차려도 될 것이다. 아내는 보이스 피싱에 걸려들기 쉬운 타입이다. 실제로 돈을 뺏기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2천만 원을 갖다 바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휴대폰 배터리 덕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사기범과 휴대폰 연결이 끊어졌다. 안절부절못하다가 아내는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한다. 나는 아내가 홈쇼핑 방송을 보는 게 제일 무섭다. 나도 유혹을 받을 때가 있는데 아내는 오죽하겠는가. 까짓..

길위의단상 2019.08.05

아내와 나

아내는 현미를 좋아하고 나는 백미를 좋아한다 아내는 성당 옆에 살기를 원하고 나는 산속 외딴집에 사는 걸 꿈꾼다 아내는 혈관 계통이 약하고 나는 소화 기능이 약하다 아내 뇌의 80%는 자식이 차지하고 내 뇌의 80%는 나 자신이 차지한다 아내는 식탁에서 몸무게를 걱정하고 나는 식탁에서 소화제를 걱정한다 아내는 눈이 건조해 눈물약을 항시 넣고 나는 눈물이 많아 휴지가 옆에 있어야 한다 아내는 손주에게 인기가 있지만 나는 마지못해 손주가 안긴다 아내는 몇 시간을 뒤척어야 잠이 들고 나는 눕자마자 코를 곤다 아내는 사나흘에 한 번 응아를 하지만 나는 하루에 서너 번 들락거린다 아내는 TV 연예 프로를 좋아하고 나는 스포츠 중계를 좋아한다 아내는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아내는 국..

길위의단상 2019.02.26

둔해지면 좋겠다

첫째, 위와 장이 둔해지면 좋겠다. 나는 위와 장이 너무 예민하다. 우선, 찬 것과는 상극이다. 냉 음료는 아예 못 마신다. 한여름에도 냉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바로 배탈이 난다. 먹는 것만 아니라 복부에 냉기만 닿아도 반응이 온다. 에어컨을 켤 때는 배를 담요로 감싸야 한다. 이런 위장이니 정신적 스트레스에 약할 수밖에 없다.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 병원에서는 과민성 대장 증상이란다. 젊을 때부터 나를 괴롭힌 병이다. 사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위와 장도 좀 둔해지면 좋겠다. 둘째, 소음에 둔해지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리에 민감해진다.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하지만 퇴직하고 난 뒤부터 더 심해졌다. 조용히 ..

참살이의꿈 2019.02.10

소음 노이로제

선생을 하면서 교실에서 제일 많이 한 소리가 "조용히 해!"였을 것이다. 어떤 경우는 수업을 시작하고 질서를 잡는데 10분 넘게 걸리기도 했다. 교사에게 수업을 방해하는 소곤대는 소리나 잡담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아예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을 달래고 꾸짖는 데 에너지의 과반이 들어간다. 그래선지 사람의 소음은 나한테 엄청난 노이로제를 유발한다. 직업병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선생을 했다고 다 그런 건 아니니 일차적으로는 내 성격 탓인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만성이 되어 시끄러운 환경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 반대다. 소음 노이로제는 퇴직을 하고 나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많으니 절간 같은 분위기에 길이 들었다. 어쩌다 시끄러운 환경에 노출되면 짜증부터 난다. 손..

길위의단상 2017.08.21

시간강박증

많은 사람이 날 느긋할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무척 화를 잘 내고 조급하다. 나이 들면서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가끔 불뚝 성질이 튀어나온다. 그중에 가장 큰 단점은 기다리질 못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음식점엘 갔다가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고 악을 썼더니 홀 안의 손님이 다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는 금방 후회한다. 아내는 부끄럽다고 질색이다. 조금만 더 참을 걸,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이다. 느긋이 기다려주지를 못하니 그런 사람과는 꼭 마찰이 생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잃었다. 아마 상대편에서는 뭐 저런 소갈머리가 있나, 하고 욕을 했을 것이다. 남에게 시간 지키기를 요구하..

길위의단상 2016.09.07

여유 있게 살기

젊었을 때는 내 못난 성격을 고치려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스트레스만 받았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타고난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주어진 대로 살자주의다. 못난 것도 나의 한 부분이고,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더라도 타인을 불편하게 하거나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성질대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마땅히 삼가야 할 게 있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이 성숙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므로 성격 개조까지는 아니더라도 날뛰는 성질을 조용히 시킬 필요는 있는 것이다. 여유 있게 사는 연습이라고 할까, 내가 일상에서 유념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져 주기다. 가끔 바둑을 두거나 당구를..

참살이의꿈 2014.12.04

성질머리하고는

참 묘하다. 나이가 들면 성격이 원만하고 부드러워질 것 같은데 안 그렇다. 도리어 까탈이 심하고 화를 잘 낸다. 나와 생각이 다른 걸 용납하지 못한다. 냇가의 돌도 세월이 흐르면 동글동글해지는 데 나는 반대다. 돌만도 못하니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내 단점은 참을성이 없고 욱하는 성질이다. 느긋하게 기다리지를 못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속에서 조바심이 나고 화가 치솟는다. 이것 때문에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싫은 소리도 자주 한다. 몇 분을 참지 못하고 금방 후회할 짓을 한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제는 정도가 심해진다는 데 있다. 마음 수양을 아무리 해도 안 된다. 소갈머리가 좁쌀만 하다. 아내는 말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도 닦는 흉내..

길위의단상 2014.09.11

화를 내라, 그러나 잘 내라

내 단점은 불뚝 성질이다.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밖에서는 얌전한데 집 식구에게 그런다. 전형적인 졸장부의 모습이다. 전에는 잘 참아주던 아내가 이젠 같이 맞받아친다. 부부싸움으로 확전이 되기도 한다. 말투 하나에서 시작하여 집안에 찬바람이 분다. 내 불뚝 성질은 아내의 가장 큰 스트레스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아내는 내 안에 무언가 억압을 받고 있는 게 있다고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속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싶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게 아니어서 괴롭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마음은 그렇지 않는 걸 아내도 알 것이다. 따뜻이 대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말은 반대로 나온다. 어제도 작은 폭풍이 지나갔다. 아내가 외출하고 ..

길위의단상 2012.11.22

혼자서도 잘 놀아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새 학년이 되면 담임 선생님께 가정환경조사서를 적어냈다. 그중에서 '취미', '특기', '장래 희망' 같은 걸 적을 때면 항상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특별한 게 없었던 나로서는 그날 기분에 따라 적당한 말로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취미'를 적을 때 제일 많은 써먹은 것은 '독서'였다. 그러나 학생으로서 독서가 취미가 될 수 있느냐는 담임 선생님의 핀잔을 들은 뒤로는 그마저도 마음 놓고 적을 수 없었다. '특기'와 '장래 희망'은 더욱 난감했다. 언젠가는 '특기'도 독서로 써넣고는 실소하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젠 분명히 답할 수 있다. 만약 특기를 묻는다면 '혼자서도 잘 놀기'라고 당당히 대답하겠다. 젊었을 때는 비사교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 싫었는데 나이가 들..

참살이의꿈 2012.04.04

좌측통행

"야, 저기 좌측통행이 간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별명은 '좌측통행'이었다. 입학해서 담임 선생님이 가르쳐 준것 중 하나가 좌측통행이었던 것 같다. 아마 선생님은 학교 복도에서만이 아니라 등하굣길에서도 좌측통행을 하라고 했을 것이다. 집과 학교는 걸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신작로와 마을 골목길을 지나는 동안 나는 선생님 말씀을 따라 왼쪽만 고집하며 걸었던 모양이다.그래서 어른들이 붙여준 별명이 '좌측통행'이었다. 당시 코흘리개들이 선생님 말씀을 하느님 말씀처럼 따랐을 테지만 개구쟁이들이 어디 그런가. 선생님 눈길을 벗어나면 천방지축이 되었을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나만 유독 왼쪽으로만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아이였다는 뜻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길위의단상 2010.02.17

내 마음의 감옥

나는 밴댕이 소갈머리를 닮아서 성질이 조급하고 여유가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를 잘 참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하나는 느긋하게 기다릴 줄 모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날 방해하는 소음에 너무 예민하다는 것이다. 창피한 일이지만 부부싸움의 원인 중 많은 부분이 조급한 내 못난 성질 때문에 생긴다. 사실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무척 부끄럽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소한 일에 목숨 걸 듯 화를 잘 낸다. 그러고는 금방 후회를 한다. 미안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 똑 같은 상황이 되면 역시 같은 반응을 한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술에서 깨어나서는 후회를 했다가 금방 다시 술을 찾듯, 나는 조급중독증에 걸려있는지 모른다. 워낙 기다리지를 못하니 이제 아내는 나와 함께 쇼핑가는 ..

길위의단상 2008.06.30

내 탓이오

나는 겉보기와는 달리 치밀하지 못하다. 일을 대충대충 해버리는 것이 단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무척 꼼꼼하고 자상한 성격일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에 터를 정리하면서 그런 나의 성격 때문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있다. 자신이 사서 형질 변경 시키고 수 년간 살았던 땅이 몇 필지인지도 모르고,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서류상의 오류를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터를 넘겨주면서 자기 땅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으니 할 말이 없다. 덕분에 처리기간도 늘어나고서류 준비나일의 양도 몇 배로 늘어났다. 경비가 많이 들어간 것도 물론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괜한 수고를 끼치는 폐를 입혔다. 삽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을 중장비가 동원되어야했던 것이다. 이것이 다 일을 얼렁뚱..

참살이의꿈 2007.04.18

무대공포증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떨리고 두렵다. 특히 부담이 되는 자리라던가, 시끌시끌한 오락성의 자리일수록 더한 편이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은 하얘져서 마음에 담은 얘기조차 제대로 전할 수 없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누구에게나 이런 경향은 있겠지만 나에게는 정도가 심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두 사람과는 서로 교감하며 대화 나누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도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괜히 무언가가 불편하고 스스로 의기소침해져 버린다. 내 유년과 소년 시절을 돌아보면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에 많이 시달렸던 것 같다. 나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일찍 학교에 가서 한글이나 깨우치라면서 초등학교에 가입학..

길위의단상 2006.08.28

소음인

지난 주에 한의사로부터 진맥과 문진을 통해 체질 감별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오랫동안 상담하던데 내 차례가 되어서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소음인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이제마와 사상의학, 그리고 사람을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이라는 4가지 체질로 나누어 병의 예방과 치료에 이용한다는 사실은 가끔 들었지만 크게 관심은 두지 않았다. 개인의 육체적이나 정신적 특징은 양 극단으로부터 연속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리라고 믿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사이에 어떤 경계를 두어 그룹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분명 그룹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성질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가 설명하며 건네준 유인물에 적힌 소음인의 특성을 보고는 내 자신과 일치하는 부분이 ..

길위의단상 200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