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27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지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무시할 수 없다. 내용을 알지 못해도 저자를 믿고 책을 사는 경우도 있다. 외국 작가야 정보가 없으니 오로지 책 내용에 집중할 수 있으나, 국내 작가는 단편적이나마 삶이 드러나 있으니 작품만 구분하여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이 있다.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사와 같은 면이 보이지만, 어떤 때는 속된 말로 싼티가 나기도 한다. 문제를 파고 드는 치열함이 있지만 동시에 경솔하고 가벼운 면이 있는 것이다. 내 느낌이 그렇다. 는 작년에 나온 공지영 작가의 산문집이다. 하동으로 내려가서 은거하며 살다가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떠나 다시 예수를 만난 신앙고백서라 할 수 있다. 여행사의 성지 순례 패키지 여행을 마친 뒤 예루살렘에 남아 며칠 더 ..

읽고본느낌 2024.07.03

그곳에 빛이 있었다

부제가 '과학자의 눈으로 본 죽음 너머의 세계'지만 '천주교인'의 눈으로 본 사후세계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지은이인 파트릭 델리에가 의사이긴 하지만 가톨릭의 기적 검증국에서 상주 의사로 일하는 독실한 신자이기 때문에 철저히 신앙의 관점에서 쓴 책이기 때문이다. 는 아내의 책상 위에 있던 책으로 호기심에 잠깐 훔쳐봤다. 사후세계의 존재 여부와 임사체험은 UFO와 함께 늘 관심을 끄는 주제다. 1980년대였던 것 같은데 무디 박사가 쓴 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 생생하다. 이 책은 임사체험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 뒤로 임사체험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는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해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사례를 중심으로 임..

읽고본느낌 2024.02.26

평창 생태마을에 다녀오다

평창에 있는 생태마을에 아내와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정식 명칭은 '성필립보 생태마을'이다.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운영하는 환경 생태 농원으로 황창연 신부님이 담당하고 계신다.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신자들을 위한 피정 시설도 있다. 아내가 생태마을 회원이어서 신청한 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생태마을은 예상했던 대로 규모가 상당했다. 생태마을의 주 생산품은 우리 콩으로 만드는 간장, 된장, 청국장 가루다. 참나무 장작으로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황토방에서 발효시킨다. 생태마을에는 300개의 장독이 있다. 생태마을 옆으로 평창강이 흐른다. 생태마을을 조성하기까지 애쓴 여러 분들의 노고를 생각한다. 휴식과 힐링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방은 두 명씩 사용한다. 이번에는 여덟 명이 참가했..

사진속일상 2023.04.27

다읽(14) - 회상

얼마 전에 영화 '사일런스'를 5년 만에 다시 감명 깊게 봤다. 이 영화와 함께 원작 소설인 엔도 슈사쿠의 도 종교 분야에서는 최고의 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본질 및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토록 심도 있게 그린 작품도 드물다.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를 새롭게 느꼈다. 어쩌면 곁가지일지도 모르겠지만, 첫째는 일본인의 잔혹성이다. 실화를 소재로 한 과 '사일런스'는 17세기 초에 일본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이야기다. 붙잡힌 천주교인을 고문하고 죽이는 방법이 너무 악랄하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는 일본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 수준이다. 서양인 신부는 죽이는 게 아니라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줘서 끝내 배교하게 만든다. 후미에를 한 페레이라와 로드리게스는 실존 인물이다. 우리나라..

읽고본느낌 2022.02.06

평화를 빕니다

처음 가톨릭 미사에 참예하였을 때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죄를 회개하면서 "내 탓이오"라고 오른손으로 왼편 가슴을 세 번 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미사 끝 부분에서 "평화를 빕니다"라고 신자들끼리 나누는 인사였다. 요사이는 성당 미사에 가뭄에 콩 나듯 나가면서 마지못해 앉아 있지만, 이 두 장면에서만은 여전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종교의 알짬이 이 둘 속에 스며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심(宗敎心)이란 내면적으로는 '내 탓'이라는 자기 반성이 핵심이다. 자기 성찰 없는 믿음은 위선이며 기만일 뿐이다. 바리사이인들이 예수한테서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비난을 받은 것은 그들의 믿음에 자기 성찰이 빠지고 오만과 독단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선을 안으로 수렴하고 겸손해지도록 가르치는 것이..

참살이의꿈 2021.06.15

흑산

김훈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1800년 전후 시기의 천주교 박해가 중심 이야기다. 당시의 부패한 정치와 피폐한 백성의 삶이 바탕에 깔려 있다. 무겁게 읽히는 책이다. 시대의 질곡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스려져 간 인간의 고통과 눈물이 김훈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그려져 있다. 이라는 제목만 보면 정약전이 주인공인 것 같은데, 이 책에는 뚜렷한 주인공이 없다. 정약전이 등장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정약전과 황사영을 중심으로 이들과 관계된 다수의 인물이 모두 주인공이다. 황사영의 부인인 정명련, 정약현 집 노비였던 김개동과 육손이, 마부 마노리, 아전 출신의 첩자 박차돌, 퇴물 상궁 길갈녀, 국밥집 주모 강사녀, 도망친 노비 아리 등의 이야기가 천주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일러두기에서 이 책은..

읽고본느낌 2020.02.23

두 교황

2005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한 뒤 열린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 교황이 선출되었을 때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베네딕토 교황은 학자 출신의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어서 천주교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변화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종교도 마찬가지다. 교황은 종신제다. 그런데 베네딕토 교황은 도중에 사임했다. 인기가 없었는 데다 측근의 비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임은 굉장히 의외의 결단이었다. 베네딕토 교황의 유일하게 훌륭한 업적은 사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영화 '두 교황'은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 전후에서 시작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 선출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첫 화면에는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두 교황은 가치관이나 성격 등 ..

읽고본느낌 2019.12.26

파티마의 은총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는 프랑스의 루르드, 멕시코의 과달루페와 함께 가톨릭의 3대 성지로 꼽힌다. 세 군데 모두 성모 발현지다. 1917년 5월 13일, 작은 마을 파티마에 살던 세 아이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셨다. 그 뒤로 10월까지 매월 13일에 여섯 차례나 발현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파티마 대성당을 비롯해 많은 기념 건물이 들어서 있는 천주교의 대표 성지다. 지난 6월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하면서 아내가 제일 가보고 싶어 한 곳이 파티마였다. 가톨릭 신자로서는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성지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묵었고, 파티마에 머문 시간도 다른 팀에 비해 길었다. 그래서 아내는 세 번이나 성지를 찾을 수 있었다. 가던 날 오후에는 가이드의 안내로 성지 전반에 대한 설..

길위의단상 2019.09.16

고야의 유령

스페인 여행 중에 가이드가 스페인 역사 이해를 위해 버스에서 틀어준 영화다. 화면이 작고 흔들려서 눈이 아파 그때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귀국하고 나서 올레 영화에서 다시 뽑아 보았다. 이 영화가 그리는 스페인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고야의 유령'은 18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친 스페인이 무대다. 궁정화가인 고야(Goya, 1746~1828)의 눈으로 바라본 시대의 혼란상과 인간의 사악함, 그중에서도 가톨릭의 부패와 음모를 잘 그려낸 수작이다. 당시 스페인을 지배하던 '유령'은 진리를 내세우면서 인간을 억압한 가톨릭이었다. 스페인 가톨릭계는 교리 수호를 위해 악명 높은 종교재판소를 다시 가동한다. 로렌조 신부의 마수에 이네스가 걸려들고, 저녁 식사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대교인으로 몰..

읽고본느낌 2019.07.12

정원사의 방울

위고의 2권에는 파리에 있는 봉쇄 수녀원 얘기가 나온다. 장발장이 자베르 형사를 피해 은신한 곳이다. 봉쇄 수녀원은 '봉쇄'라는 이름 그대로 외부와 단절된 곳이다. 더구나 남자는 절대 접근 금지 구역이다. 그래도 수녀원을 운영하자면 남자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 이 봉쇄 수녀원에는 정원사와 잡일을 겸하는 유일한 남자가 산다. 포슐르방이라는 노인으로 절름발이다. 장발장은 전에 포슐르방의 생명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에 피신할 수 있었다. 정원사 노인은 발목에 방울을 달고 있다. 그가 움직이면 방울 소리가 난다. 수녀들은 방울 소리가 나면 얼른 숨는다. 정원사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다. 남자와 만나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정원사의 방울은 '내가 여기 있으니 피하시오' ..

참살이의꿈 2019.01.31

사일런스

엔도 슈샤쿠의 을 읽은 것이 20년쯤 전이다. 아직도 소설 속 두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기독교인을 판별하기 위해 성화를 밟게 하는 장면이다. 일본말로 '후미에(踏繪)'라고 한다. 기발하면서 잔인한 방법이다. 또 하나는, 배교하지 않는 기독교인을 해변에 세운 십자가에 묶고 밀물이 되면서 물에 잠겨 익사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고통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전율했다. 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사일런스'을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이 장면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가 먼저 궁금했다. 상상과는 일부 차이가 났지만 두 상황의 처절함을 전하는 데는 화면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원작을 감동을 지켜낸 좋은 영화였다. 영화의 무대는 17세기 초 천주교 탄압이 극에 달하던 때의 일본이다. 일본에 파견되어 전교하던..

읽고본느낌 2017.05.21

죽산 성지

죽산(竹山) 성지는 경기도 안성에 있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부터 1871년 신미양요 때까지 스물네 명이 순교한 장소다. 처형지는 고려 때 몽고군이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진(夷陣)터라 불렸다. 당시 신자들 사이에서는 이진터에 끌려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잊은 터'라 했다고 한다. 거의 20년 만에 죽산 성지에 들러보다. 그때는 성지가 조성되기 초창기여서 잔디만 깔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여러 시설도 많이 들어섰고 조경도 잘 되어 있다. 성지의 중심은 순교자 묘역이다. 가운데 무명 순교자 묘가 있고, 좌우로 24기의 순교자 묘가 있다. 신앙면에서 나는 지금 냉담 중이다. 아내는 열심히 기도하지만 지켜보는 나는 냉랭하다. 성지에 와도 별다른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계속 무신..

사진속일상 2016.05.13

높고 푸른 사다리

가톨릭 수도원을 소재로 한 공지영의 장편소설이다. 난 이런 종교소설이 좋다. 홀딱 빠져서 이틀 밤새에 다 읽었다. 수도원이나 수녀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다. 흥미 있는 소재일 수밖에 없고, 영혼의 고뇌나 신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는 고금을 불문하고 소설의 주제로 알맞다. 소설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두 군데였다. 첫 번째는 토머스 수사가 죽음을 앞두고 요한 수사에게 유언처럼 전해주는 내용이다. 토머스 수사는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의 독일인으로 1941년에 한국으로 파견되었다. 원산 가까운 덕원에 소재한 수도원이었다. 선교와 봉사 활동을 하다가 해방을 맞고 탈출하지 못하고 공산당 치하에 남게 된다. 그리고 옥사덕 수용소에서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하며 신앙의 힘으로 버텨 낸다. 인간은 고난 앞에서 무릎 꿇..

읽고본느낌 2014.11.20

교황의 메시지

평화, 화해, 용서, 위안의 메시지를 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끝났다. 종교 지도자로서의 겸손하고 인자한 모습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가난하고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따스한 관심은 큰 위로가 되었고 동시에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4박5일 동안 머물며 한국 사회에 전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보여준 사랑은 더없이 값진 것이었다. 교황에 대한 열광은 사그라지더라도 그분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계속 간직해야 한다. 특별히 천주교 수도자, 신자, 정치 지도자에게는 가슴에 새겨 둘 내용이 있었다. 교회 지도자가 세속적 가치관과 타협하여 안주하는 현상,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천주교 신자들이 얼마나 이바지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

참살이의꿈 2014.08.19

우리 시대

아일랜드에 가 있는 친구가 한국이 왜 이리 어수선하냐며 메일을 보내왔다. 차라리 인터넷이 없었으면 싶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봤을 때는 거의 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나 보다. 신부가 강론 중에 한 시국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국가보안법으로 잡아들이려 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종북'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너무 답답하다. JTBC '뉴스9'에서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신부가 가난한 이에게 빵을 주면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지만, 그가 왜 가난한 것인지 사회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빨갱이라 비난을 듣게 된다."

길위의단상 2013.11.28

갈매못 성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는 마을 뒷산의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갈마연동(渴馬淵洞)이라 불렸던 곳이다. 갈매못은 그 갈마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866년 3월에 이곳 바닷가에서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를 비롯해 오메트로 오 베드로 신부, 우앵 민 루가 신부, 황석두 루가, 장주기 요셉 등 5명이 순교했다. 당시는 고종 국혼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때라 한양에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에 이롭지 못하다는 무당의 말에 따라 이곳 오천의 충청수영으로 보내어 군문효수하게 된 것이다. 여기는 1846년에 프랑스 함대가 3척의 군함을 끌고 왔던 외연도가 가까운 곳이다. 대원군이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이곳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에 김대..

사진속일상 2013.11.02

춤추는 평화

가톨릭 미사중에 신자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순서가 있다. 이때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하며 전후좌우 사람과 인사한다. 참 아름다운 인사다. 미사가 지루하더라도 이때가 되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경험을 한다. '당신에게 내재된 신성에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라는 네팔의 "나마스떼!" 인삿말과도 비교된다. 미사의 중심인 성체를 영하기 직전에 드리는 기도의 마지막도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이다. 가톨릭 언론기관 명칭도 '평화방송', '평화신문'이다. 천주교의 중심에는 평화가 있다. 평화는 개인의 심적인 혹은 영적인 평온함을 가리킬 뿐 아니라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구현되는 평화도 당연히 포함된다. 보통은 전자가 강조되어 신자들이 사회적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건 유감이다. '평화(平和)'를 파자해 보면 '고를 평'..

읽고본느낌 2013.08.11

우리나라 100대 명산

난 목표를 정하는 게 싫다. 그런 걸로 남이나 나를 다그치는 건 영 질색이다. 성인이 된 뒤로는 무엇이 되려고 끈질기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사이 들어 등산 목표를 하나 세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100대 명산 목록을 보고 나서부터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죽기 전에 100산 정도는 올라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음이 100대 명산 목록이다. 좁은 국토인데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여럿 있다. 내가 정상을 찍었던 산은 붉은색으로 표시해 보았다. 수도권 15 감악산, 관악산, 도봉산, 마니산, 명성산, 명지산, 백운산, 북한산, 소요산, 용문산, 운악산, 유명산, 천마산, 축령산, 화악산 강원권 22 가리산, 가리왕산, 계방산..

길위의단상 2013.06.24

분홍색 연기

지난 13일에 새 교황이 선출되었다. 전임 교황이 생존한 상태에서 사임한 것이 특이했는데 바티칸 내부의 권력 암투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구중궁궐 깊숙한 곳의 얘기라 어차피 추측성 기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새로 뽑힌 교황의 본명이 '프란치스코 1세'로 명명된 게 오히려 더 신기했다. 프란치스코(1181~1226)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중세 시대의 성인이다. 철저한 무소유 정신으로 예수의 정신에 가장 일치하게 살았던 분이었다. 프란치스코의 평화와 생명의 영성은 가톨릭의 빛나는 자산 중 하나다. 가톨릭 신자는 존경하는 성인의 이름을 따라 자신의 본명을 짓는다. 교황도 마찬가지다. 교황직을 수락하면서 옛 이름을 버리고 존경하는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을 골라서 본명을 새로 짓는다..

길위의단상 2013.03.27

핵발전 없는 세상을 위한 우리의 실천

천주교 창조보존연대에서 '창조 질서 거스르는 핵발전소, 이제 그만'이라는 제목으로 핵발전을 반대하는 팸플릿을 냈다. 만화로 재미있게 그려져 있는데 내용이 알차다. 마침 강론에서는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독일에 유학 중인 어느 신부님이 독일 교수로부터 한국 가톨릭 교회의 성장 배경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80, 90년대에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당시는 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던 시기였다. 가톨릭 교회는 국민의 열망에 호응하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런 가톨릭의 입장이 국민의 호감을 샀고, 많은 사람이 천주교에 입교한 이유였다는 게 신부님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독일 교수는 그게 정답이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정답이 ..

참살이의꿈 2012.09.24

신과 인간

1996년 3월 27일, 알제리에 있는 티베린 수도원에서 프랑스인 수사 일곱 명이 반군에게 납치되었다. 반군은 인질과의 교환 협상을 벌이다가 거부당하자 두 달 뒤 수사 전원을 살해했다. '신과 인간'은 이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반군은 사전에 수사들에게 알제리를 떠날 것을 경고한다. 정부 쪽도 같은 권고를 한다. 그러나 수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남기로 결정한다. 거듭된 생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을 하면서 신의 부름에 충실히 따른다. 영화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들의 고뇌와 의지를 그려 나간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기관총을 장착한 전투용 헬기가 굉음을 내며 수도원 바로 위에 떠서 협박한다. 그 소리에 맞서 수사들은 수도원 안에 함께 모여 찬송을..

읽고본느낌 2012.01.26

한강 가톨릭회에서 천진암에 가다

한강 가톨릭회에서 천진암에 갔다. 그동안 등산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천진암을 찾았지만 성지 순례로 함께 하기는 오랜만이었다. 천진암(天眞菴)은 일반적인 순교 성지와는 달리 한국 천주교가 태동한 의미 있는 장소다. 1700년대 후반에 광암 이벽(李檗)을 비롯한 학도들이 이곳에 모여 학문을 연마했다. 그중에는 서학(西學)이 포함되어 있었고, 중국에 들어왔던 천주교 교리도 자연스레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이 자생적인 신앙 단체로 발전했고 한국 천주교의 모태가 되었다. 당시 10대였던 정약용(丁若鏞) 선생도 이곳에서 공부했고, 이때 천주교를 처음 접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권철신, 이승훈, 정약전, 정약종, 권상학 등이다. 이들은 천진암 공동체에서 실학 연구와 강의 외에 천주학 연구, 공동 신앙생활 실천,..

사진속일상 2011.12.13

추기경의 궤변

"4대강 사업도 발전을 위한 개발이라면 무난하다." "발전을 위한 개발이냐, 파괴를 위한 개발이냐는 자연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다룰 문제이지 종교의 분야는 아니다." "정치와 경제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밤새면서 전력을 다하는 전문가들이 있고,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하느님 뜻을 헤아리는 데는 밤낮 생각하니까 하느님 뜻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다." 지난 8일의 추기경 발언이 이랬다. 어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제목으로 비판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령을 감안하고 막중한 직무를 존중하여 추기경에 대한 쓴 소리는 삼가고 삼갔다. 그런데 더 이상의 인내는..

길위의단상 2010.12.11

성당 체육대회

'예수 승천 대축일'에 성당 체육대회가 동작중학교에서 열리다. 세상은 겉으로는 변함없이 환하고, 사람들은 즐거이 춤추고 웃는다. 나 같은 날나리 신자는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다. 체육대회와 함께 진행된 시골 공소 돕기 바자회에서 파는 음식만 탐한다. 팥빙수에 커피에 도토리묵에 순대에다 막걸리를 옆에 두고 운동장 한 구석에서 홀짝이며 구경한다. 겨우 막걸리 두 잔에 얼큰해지며 괜히 슬퍼지는 날이다. 오후에는 가족이 다 함께 집안 대청소를 했다. 마음 청소는 이렇게 안 될까, 뭔가 새롭게 시작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진속일상 2009.05.24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어제 저녁에는 서울광장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들을 중심으로 시국미사가 열렸다. 수녀님들을 비롯한 성직자들과 많은 시민들이 기도를 올리며국민의 뜻을 알리었다. 말로는 국민과 소통을 한다면서 국민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정부에 천주교가 앞장을 서서 경고를 한 것이다. 민심을 읽지 못하는 현정부가 너무나 답답하다. 아니면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는지 모른다.이제 국민의 마음은 결코 쇠고기 문제 하나가 아니다.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국민의 자존감도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의 경제적 풍요 약속 뒤에 숨은 살벌한 세상살이의 허구에 대해 눈을 떠가고 있다. 이 정부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국민의 저항을 면하기는 어려우리라 본다. 몽둥이와 방패가 촛불을 잠재울 수 없..

사진속일상 2008.07.01

나의 종교관

나는 가톨릭 신자다. 10년 전에 영세를 받았고 지금도 매주일 미사에 참례하니 겉모습은 신자의 흉내를 내고 있다. 그러나 판공성사 같은 기본적인 가톨릭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니 전통적 입장에서 보면 사이비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의 기본 교리에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고, 개신교를 포함해 현재 한국 기독교의 모습에도 부정적이며 비판적이다. 그런데도 신자의 흉내를 내는 것은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것은 현재의 기독교 모습과 일부 종교 지도자들, 또는 믿는 자들의 이중성 때문이지 기독교의 가르침 자체는 아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점점 보수화해 가고 민중으로부터 멀어지는데 일조하고 있는 가톨릭 지도자들의 언행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

길위의단상 2006.08.10

기도 / 십자가의 성요한

보다 쉬운 것보다 보다 어려운 것을 보다 맛있는 것보다 보다 맛없는 것을 보다 즐거운 것보다 차라리 덜 즐거운 것을 쉬운 일보다도 고된 일을 위로되는 일보다도 위로 없는 일을 보다 큰 것보다도 보다 작은 것을 보다 높고 값진 것보다 보다 낮고 값없는 것을 무엇을 바라기보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기를 세상의 보다 나은 것을 찾기보다 보다 못한 것을 찾아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온전히 벗고, 비고, 없는 몸 되기를 바라라 모든 것을 맛보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맛보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을 얻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얻으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이 되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되려고 하지 말라 모든 것을 알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 맛보지 못한 것에 다다르려면, ..

시읽는기쁨 2006.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