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85

금강경[22]

수보리 장로가 부처님께 여쭈었네. "행복하신 분이시여, 부처님께서 얻으신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이란 얻을 것이 없는 깨달음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더 나아가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은 어떤 작은 법조차 얻을 것이 없는 그런 깨달음입니다.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 금강경 22(얻을 진리가 없는 진리, 無法可得分) 사월초파일이면 동네 할머니들은 깨끗이 빨아 준비한 하얀 옷으로 단장하고 청계사로 갔다. 그 뒤를 아이들이 따랐다. 나도 외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외할머니 머리 위에서는 부처님께 드릴 곡식을 싼 보퉁이도 흔들리고 있었다. 청계사는 이웃 마을을 지나 야트막한 산을 넘으면 나왔다. 할머니들이 법당 안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절에서 주는 음식을 얻..

삶의나침반 2020.06.01

낮에 나온 반달

오후에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달이 떠 있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반원 모양의 달이 또렷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중학교에서 물상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태양과 달의 운동 단원이었던 것 같다. 한 아이가 질문했다. "선생님, 달은 낮에 볼 수 없나요?"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럼 볼 수 없지. 낮에 달이 떠 있어도 하늘이 너무 밝기 때문에 달은 안 보이는 거란다." 이 대답이 잘못되었다는 걸 몇 년이 지나서야 눈치챘다. 명색이 과학을 전공한 선생이 낮에 뜬 달을 본 적이 없었다니. 아니, 봤더라도 그러려니 했지 앎과 연결되지는 않았다. 낮에는 해, 밤에는 달이라는..

길위의단상 2020.05.31

시인의 마을

베를린으로 가는 버스는 세 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넓은 평원의 단조로운 풍경이 질리도록 펼쳐졌다. 다들 눈을 감은 채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한국에서 가져온 테이프를 운전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플레이어에 꽂았다. 정겨운 우리 가요의 멜로디가 독일 버스 안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독일에 연수를 온 지 두 주일째, 뒤에서 소곤거리며 잡담이 들리던 버스 안이 숙연해졌다. 몇 곡의 트로트가 지나가고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이 나왔을 때 내 가슴은 떨리기 시작했다. 노래 분위기와 당시 상황이 어쩜 그리 절묘하게 맞았는지 모르겠다. 어울리지 않게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누가 내게 다가와서 말 건네주리오 내 작은 손 잡아주리오 누가 내 마음의 위안 돼주리오 ..

참살이의꿈 2020.05.19

정릉의 추억

고3이 되면서 정릉으로 이사를 했다. 돈암동에서 살던 단칸방이 비좁은 데다 골목에 붙어 있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공부에 집중할 시기에 조용한 환경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친척의 도움을 받아 구한 방은 정릉에 있었다. 도봉산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로 가까이에 '청수장'이 있었고, 서울이지만 시골 분위기가 나는 마을이었다. 전에 살던 데에 비하면 이사한 집은 대궐이었다. 터가 엄청 넓었고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다. 집 뒤가 바로 도봉산 자락이었다. 외할머니와 내가 살 방은 별채로 되어 있어 주인집과 떨어져 있었다. 세를 주기 위해 최근에 지었다고 했다. 방이 넓었고 무엇보다 완벽하게 조용했다. 비록 셋방이었지만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다만 학교와의 거리가 멀어 버스를 30분 이상 타고 가야 했다. 다행히 ..

길위의단상 2020.03.21

어린이대공원 산책

서울의 친지 결혼식에 참석한 뒤 마침 가까이에 어린이대공원이 있어 잠시 산책하다. 거의 15년 만에 들어와 보다. 더 옛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주 놀러 왔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요사이는 갈 데가 많지만 그때는 어린이대공원이 놀이 시설과 동물원이 있는 대표적인 복합 나들이 장소였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옛 생각에 잠긴다. 둘이 유모차를 서로 타려고 싸우다가 언니가 혼이 나서 운 데가 여기였지. 저기쯤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고, 비스듬히 누워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코끼리 우리 앞에서 목말을 태워주면 엄청 좋아하던 아이들이었는데. 가볍게 번쩍 들어올리던, 얘들이 언제 클까 싶던, 그 시절이 좋았어. 놀이동산에서 청룡열차 타는 걸 좋아해서 긴 줄에 서 있곤 했지. 아이..

사진속일상 2020.01.12

온돌방 / 조향미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

시읽는기쁨 2020.01.04

스쿨서점의 추억

어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 마침 고향에 간 길에 어머니를 모시고 영주 시내에 있는 병원에 들렀다. 언제 봐도 지방 병원과 약국은 노인들로 만원이다.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신다. "병원과 약국은 늙은이가 먹여 살린다." 이번에도 두 시간 넘게 기다려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대기 시간을 이용해서 나는 영주 시내를 산책했다. 시내에 나가면 꼭 들러보는 곳이 있다. 스쿨서점이다. 간판에도 'Since 1954'라 적혀 있는데, 아무튼 무척 오래된 서점이다. 내가 초등과 중학교에 다닐 때 참고서는 이 서점에서 샀다. 50년도 더 된 옛날이다. 그때는 스쿨서점이 영주 시내에서 거의 유일한 서점이었고, 위치는 지금의 맞은편에 있었다. 스쿨서점에는 떠올리기 싫은 추억이 있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 것이다..

사진속일상 2019.12.11

7인의 신부

옛날 영화를 한 편 봤다. 1950년대에 제작한 '7인의 신부'다. 미국에서 뮤지컬 영화의 전성기에 나온 대표적인 영화다. 스토리는 아주 단순하다. 배경은 19세기 중반 애리조나주에 있는 어느 마을이다. 남자 7형제가 산골에서 농장을 하며 살아가는데 장남 아담은 마을에 내려왔다가 식당에서 일하던 밀러와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던 동생들도 마을 축제장에 갔다가 동네 아가씨들에게 반해 결혼을 꿈꾼다. 결국은 아가씨들을 납치해 오게 된다. 눈사태로 길이 끊기고 긴 겨울 동안 함께 지내면서 정이 들고 봄에 모두가 결혼하게 된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황당한 요소가 많다. 그러나 19세기라는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그리 무리한 설정도 아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보쌈'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남자들은 ..

읽고본느낌 2019.11.20

동문 바둑대회

동문의 날 행사가 고등학교 모교에서 열렸다. 오랜만에 학교 구경을 할 겸 나가 보았다. 바둑 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신청이 늦는 바람에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옛날 교사와 건물은 거의 다 없어지고 교정은 새로 싹 변했다. 50년이 흘렀으니 달라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까까머리 동기생도 이제는 중노인이 되어 바둑판 앞에 앉아 있다. 현관에 옛날 사진 한 장이 전시되어 있다. 1970년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다. 저 사진 어딘가에 나도 서 있을 것이다. 옛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이 반갑다. 그때는 강당이었는데 지금은 체육관으로 쓰고 있다. 정문을 지나 학교로 들어가던 오르막 길 흔적이 남아 있다. 등하교하던 유일한 길이었는데 지금은 학생들 통로가 바뀌었다. 이 길은 차량 출입로로 쓰..

사진속일상 2019.10.09

추억의 선유도

선유도 해수욕장이 개장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은 썰렁하다. 더구나 장마철이니 해수욕장에는 사람 하나 찾기 힘들다. 할 일 없는 구조요원들만 한데 모여 스마트폰을 보며 쉬고 있다. 장모님 모시고 선유도에 다녀오다. 새만금방조제와 선유교가 놓이면서 선유도가 성큼 가까워졌다. 배 탈 필요 없이 군산이나 부안에서 30분이면 닿는다. 친구와 처음 선유도에 놀러온 때가 46년 전이었다. 기차를 타고 장항까지, 배를 타고 군산으로, 군산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선유도에 왔으니 온종일이 걸렸다. 그 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방조제가 놓이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앞으로 이 지역이 또 어떻게 변모할지 예견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해수욕장 오른편의 저 바위산, 망주봉(望主峰)을 보니 그때가 어슴프레 떠오른다. ..

사진속일상 2019.07.20

어미의 마음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문득 스님이 된 고향 동무가 떠오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서로 떨어져 소식이 뜸했는데 어느 날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엉뚱하면서 진지한 면이 있긴 했지만 스님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해인사에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아 눈물바람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젠 자식이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라는 매몰찬 대답만 전해 들었다 한다. 에미 얼굴도 안 보려는 지독한 놈이라고 돌아와서도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한다.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그 뒤로도 풍문으로만 아들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아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동무와는 정말 우연히 군대에서 재회했다. 사단 사령부에 ..

참살이의꿈 2019.05.12

담배 피우는 여자 / 윤임수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여자, 오십이 훨씬 넘어 보이는 여자, 지난밤도 편치 않았던 것일까, 아파트 모서리 중국단풍 아래에서 연방 담배를 피워대는 여자, 채 달아나지 못한 연기 꼬리에 또 연기를 더하는 여자, 숨 가쁘게 살아온 날들을 모두 내려놓겠다는 듯 연방 연기를 토해내는 여자, 처음 볼 때는 거북했으나 날이 지나면서 연민으로 다가오는 여자, 어쩌다 보이지 않는 날이면, 웬일일까, 조금 걱정도 되는 여자, 걱정과 함께 담배 연기가 그 여자의 거친 날들을 모두 거두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여자, 아무것도 모르지만 마치 오래된 관성처럼, 이제는 중국단풍만 봐도 떠오르는 그 여자 - 담배 피우는 여자 / 윤임수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태도에서 여자와 남자는 차이가 난다. 당당한 남자에 비해 여자는 조심..

시읽는기쁨 2019.04.21

축구와 국민성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프로리그가 있다는 정도만 알 뿐, 무슨 팀이 있는지는 모른다. 축구 중계를 보는 일도 없다. 몸을 부딪치며 하는 경기는 대체로 싫다. 동료들이 축구를 하면 나는 벤치에서 구경하거나 주전자를 들고 다니는 역할만 맡았다. 직접 축구를 한 기억은 두 번이다. 대학생일 때 MT에 가서 어쩔 수 없이 운동장에 나간 적이 있다. 강촌에 있는 한 초등학교였는데 후반에 교체 멤버로 들어가서 10분 정도 뛰었다. 전원이 참가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이때 날아오는 공을 헤딩하다가 죽는 줄 알았다. 머리가 띵 해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축구 선수들이 어떻게 헤딩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저러다가 머리를 다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직장 생활을 할..

길위의단상 2019.02.02

트레커 10년

2008년 11월에 가입했으니 트레커와 함께 한지 10년이 넘었다. 일기장을 찾아 보니 그동안 함께 다닌 산과 길이 아련한 추억 속에 펼쳐진다. 10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많은 도움과 즐거움을 받았고, 그러면서 실망도 있었다. 10년 간의 산행 목록은 다음과 같다. 2008년 11월 강씨봉 12월 칼봉 2009년 1월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 2월 고대산 3월 가리산 6월 백덕산 7월 두타연 9월 소백산 2010년 3월 금학산 7월 비학산 11월 구봉상 12월 정암산 2011년 3월 아차산, 도봉산 11월 금강소나무숲길 2012년 1월 대금산 3월 아차산 4월 북바위산 5월 응복산 10월 갈기산 2013년 2월 금병산 3월 보리산 7월 중원산 10월 금오도 비렁길 2014년 1월 칠장산 7월 가은..

길위의단상 2019.01.22

35년 된 셔츠

특별한 옷이 하나 있다. 35년 된 셔츠다. 장롱에 보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도 입고 있다. 천에는 보푸라기가 생겼고 소매 끝은 헤져서 밖에 입고 나가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입기에는 아직 무난하다. 오래된 만큼 편안해서 좋다. 이젠 정이 들어서 조강지처처럼 버릴 수 없다. 이 옷에 얽힌 기억이 선명하다. 35년 전인 1984년 봄, 서울 변두리에 있는 M 중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새로 담임을 맡은 반의 한 학생의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오셨다. 그 학생은 몸이 가늘고 얼굴이 유난히 하얬다. 어머니 얘기로는 심장에 이상이 있어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담임이 잘 살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때 학생의 어머니가 선물한 옷이다. 셔츠 주머니에는 우산 모양의 상표가 붙어 있었다. 천의 감촉이 좋고 편해서 나들이..

길위의단상 2019.01.04

한 장의 사진(25)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외손녀는 두 주에 한 번씩 찾아와서 자고 간다. 이번에 와서는 엄마 옛날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한다. 두 딸이 시집을 갔지만 가족 앨범은 우리 집에 있다. 제 엄마와 같이 앨범을 펴놓고 엄마가 설명하는 얘기를 들으며 깔깔댄다. 그러더니 내 방에 와서 앨범에서 꺼낸 사진 한 장을 내민다. 30년쯤 전에 찍은 것이다. 어린 손주가 보기에 제 엄마와 외할아버지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나 보다. 엄마가 꼭 제 나이만 할 때 모습이다. 이때가 1987년이던가, 아니면 1988년이리라. 내 나이는 30대 중반, 품에 안긴 첫째는 예닐곱 되었으리라. 아마 겨울방학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가던 기차 안 모습 같다. 그때는 방학이 되면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서 열흘 정도 지냈다 왔다. 자가용이 없..

길위의단상 2018.12.06

충북선 / 정용기

다음 생에는 충북선 기찻길 가까운 산골짜기에 볕바른 집을 마련해야지. 3, 8일에 서는 제천 장날이면 조치원 오송 충주를 지나오는 기차를 타고 터키석 반지를 낀 고운 여자랑 제천 역전시장을 가야지. 무쇠 솥에서 끓여내는 국밥을 사 먹고 돌아다니다가 또 출출해지면 수수부꾸미를 사 먹어야지. 태백산맥을 넘어온 가자미를 살까 어떤 할미의 깐 도라지를 살까 기웃거리다가 꽃봉오리 맺힌 야래향 화분 하나 사고 귀가 쫑긋한 강아지도 한 마리 사서 안고 돌아오는 기차를 타야지. 손잡고 창 너머로 지는 저녁 해를 보다가 삼탄역이나 달천역쯤에 내려서 집으로 와야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산그늘로 숨어들어야지. 소쩍새 소리 아련한 밤이면 둘이 나란히 엎드려 시집을 읽을까,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을까. 어쨌거나 다음 생에..

시읽는기쁨 2018.04.22

얼굴 흉터

내 얼굴 왼쪽 눈 옆에는 100원짜리 동전만 한 불그스름한 흉터가 있다. 20년 전 K 고등학교에 근무했을 때 생긴 것이다. 그때는 내 교직 생활 중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다. 안 하던 담임을 맡았는데 아이들과 늘 엇박자였다. 교과목 가르치는 것도 벅찬데 반에서는 연신 사고가 터지고 뒷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나 학부모와 코드가 맞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반대로 그쪽에서는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K 고등학교는 교사들 사이에 근무 희망 경쟁이 벌어지는 A급 학교였다. 학교 내에서도 서로 담임을 하려고 지저분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눈치가 빨랐으면 애초부터 담임 신청을 말았어야 했다. 한번 해 보지 뭐, 하다가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

길위의단상 2018.04.08

한 장의 사진(24)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제대할 때는 누구나 한마디씩 한 말이 있었다. "제대하면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 군대 생활에 대한 혐오감이 그만큼 컸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군대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데 30년은 걸렸다. 반면에 '군대에 가야 사람 된다'는 말도 있다. 국민정신 교육장으로서 군대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의 말이다. 좋게 말하면 나라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온몸으로 배우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사람 된다'는 말이 권위적 체제와 이념에 대한 온순한 복종의 의미로 들린다. 외국에 나갔을 때 제일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이스라엘인이라는 얘기를 해외여행을 많이 한 사람에게서 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시끄럽고 안하무인이라는 것이다. 왜 하필 이스라엘인지 의아했는데 의무징병제와..

길위의단상 2017.12.07

다만 어리석을 뿐

매일 저녁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겨우 잠에 든다는 한 지인은 잠 못 드는 괴로움을 자주 토로한다. 사위가 고요한 한밤중에 깨어 있으면 과거에 자신이 잘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더 괴롭다고 한다. 아름다운 기억이야 즐겁게 반추할 수 있지만, 하필 후회스럽고 자책할 일만 생각나니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잠 잘 자는 나도 어쩌다 불면의 새벽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런저런 상념이 오가는데 옛 생각에 사로잡히는 건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인과 마찬가지로 자랑할 일보다는 후회되고 아쉬운 일들로 머리가 꽉 찬다. 어떤 때는 이불킥을 하기도 한다. 노인이 되면 추억으로 산다는 데, 노년에 되씹는 추억이 꼭 감미롭지만은 않다. 그중에 제일 가슴 아픈 것이 셋째를 낙태시킨 일이다. 딸 둘을 두고 수년이 지나 아..

참살이의꿈 2017.12.04

등대지기

한때 등대지기를 꿈꿔 본 적이 있었다. 나처럼 혼자 잘 노는 게 특기인 사람은 누구나 그런 소원을 품어봤을 것이다. 사실 훈장 길에 들어설 때부터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나마 무난할 듯하여 선생을 선택했으나 사범 교육을 받으면서 오산이라는 걸 알아챘다. 선생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했다. 은둔형은 할 직업이 아니었다. 교직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 심하기 때문이다. 첫 발령을 받기 전부터 다른 길을 생각했다. 첫 번째 시도가 신학이었다.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Y대 신학대학원인데 당당히 시험을 보고 합격한 것이다. 1년 정도 열심히 공부한 결과였다. 그러나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 하다가 결국은 접었다. 만약 그때 신학..

길위의단상 2017.11.10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백석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다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와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으로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망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 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다니는..

시읽는기쁨 2017.09.17

석유장수 / 심호택

6학년 때 추운 밤 과외공부 하는데 교실 뒤켠에서 무슨 소리 들립니다. 석유장수 기름 따르는 소리 비슷합니다.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하시며 누구여? 변소 가기 겁난 친구 일 보자고 대둣병에 집어넣은 것이 그만 통통해져 빠지지를 않습니다. 큰일입니다. 다가오신 선생님께 엉거주춤 알밤 두어 대 얻어터지니 그제서야 비로소 빠졌습니다. - 석유장수 / 심호택 빙그레 미소 짓다가 이내 옛날 추억 속에 잠긴다.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그때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봐야 했다. 입시 경쟁이 지금보다 더했다. 중학교가 둘밖에 없던 작은 읍에도 학교가 성적으로 나누어졌다. 공부 잘 하는 아이가 가는 A 중학교, 그리고 미달이 되기도 하는 B 중학교가 있었다. 똥통이라 불린 B 중학교는 장학금이 있어서 공부는 ..

시읽는기쁨 2017.08.31

한 장의 사진(23)

최근에 어느 육군 대장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사회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 있을 때 나도 1년 가까이 공관병 생활을 했다. 공관병이나 당번병은 점잖은 공식 용어이고, 군대에서는 '따까리'라고 불렀다. 자신을 하찮게 정의해 버리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자조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장교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군 관사에서 출퇴근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부인은 도시에 따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관급이 되면 사병이 나가서 뒷바라지를 한다. 우리 사무실은 장교 둘, 하사관 둘, 사병 세 명으로 구성되어 단출했다. 사병 중 한 명이 따까리로 나가면 남은 두 사람에게 업무가 과중..

길위의단상 2017.08.15

잡초 비빔밥 / 고진하

흔한 것이 귀하다. 그대들이 잡초라고 깔보는 풀들을 뜯어 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은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숱한 맛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 나는 논 밭두렁이나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풀들을 뜯어 거룩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느니. 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 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이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 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물 등 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힌 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 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시며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 위에 나부끼나니. -..

시읽는기쁨 2017.07.21

용소막성당 느티나무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중앙선 열차를 타고 고향을 오갔다. 서울로 갈 때 왼쪽 자리에 앉아 있으면 멀리 이 성당이 보였다. 나무가 있는 풍경이 평화스럽게 보여서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까지 오래 바라보곤 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대여섯 시간 동안 창밖을 스친 풍경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성당을 둘러싼 나무의 인상이 깊었다. 언젠가는 저 성당에 찾아가 봐야지, 하고 다짐도 했을 것이다. 그때로부터 50년 만에 용소막성당에 들렀다. 느티나무는 옛날의 느낌처럼 아름답고 단정했다. 오래된 성당 건물도 운치 있고 경건했다. 성당과 느티나무가 어울린 풍경이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켰다.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용소막성당은 시잘레 신부가 1915년에 완공하였으니 백 년이 넘었다. 전통적인 성당 건축의 ..

천년의나무 2017.07.20

대물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어쩌다 아버지 옆에서 잠자게 되면 숨소리조차 내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따라서 아버지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서워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들은 기억도 별로 없는데, 그냥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서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셨다. 동네 사람들도 아버지를 어려워했다고 뒤에 들었다. 아버지가 길을 가시면 미리 피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면장으로 계실 때 지역 국회의원이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국회의원이라고 내가 왜 마중 나가냐며 아버지는 면장실에서 그를 맞았다고 한다. 그만큼 꼿꼿하신 분이었다.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바가 한..

참살이의꿈 2017.07.05

굴뚝 / 윤동주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웨인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굴뚝 / 윤동주 동생은 새집을 지으며 군불을 때는 방을 만들었다. 한쪽 벽으로 아궁이와 굴뚝이 있다. 어머니를 위해서다. 마당에는 어머니가 해 놓으신 나뭇더미가 있다. 오래된 나무는 한쪽에서 삭아간다. 이젠 사라진 풍경이 되었지만 취사와 난방을 전부 땔감으로 하던 시절에는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뒷산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모았고, 어른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민둥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식 주택에서..

시읽는기쁨 2017.06.12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지은이인 이명현 선생은 전파천문학을 전공한 연세대 교수님이다. 이 책은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아주 쉽고 흥미롭게 우주를 소개하고 있다. 밤하늘을 사랑하는 선생의 열정이 글에 녹아 있다. 소개에 보면 선생은 어린 시절에 이미 별세계에 빠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외국의 천문잡지를 구독했고, 아마추어 천문가 모임의 주요 멤버였으며, 고등학교 때는 유리알을 직접 갈아 망원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동시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글도 꾸준히 썼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천문학도로 성장한 것이다. 선생은 칼 세이건을 존경한다는 데, 한국의 칼 세이건이 될 소질이 충분히 갖추어진 것 같다. 에 나오는 글을 봐도 그 실력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별에 꽂혔던 내 옛날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읽고본느낌 2016.09.17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

이상석 선생님의 교단일기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으면 자책이 많이 된다. 선생으로서의 내 행적이 너무 후회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차이는 사랑과 열정의 부족이다. 30년 넘게 선생 시늉을 하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껴안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좋은 선생의 조건은 아이들과의 소통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을 전하는 건 그 뒤의 일이다. 선생과 학생 사이에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교단에 설 때 아이들과의 사이에 늘 벽을 느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벽이었다. 그 벽을 깨뜨리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항력이었고 경력이 쌓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교육의 '교'자도 모른 채 선생 흉내를 낸 건 아닌가 싶다. 교사가 되자면 우선 ..

읽고본느낌 201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