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85

한 장의 사진(28)

귀향(歸鄕)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고, 귀성(歸省)은 '부모를 뵙기 위하여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다. 귀성에는 '살필 성(省)'이 들어 있듯이 물리적인 거리 이동만 아니라 부모를 뵙는다는 뜻이 있다. 사람들이 설날이나 추석에 고향을 찾는 행동에는 귀성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오늘이 설날인데 귀성을 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성인이 된 뒤로 50년이 흘렀는데 설 명절은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추석은 몇 차례 못 내려간 적이 있지만, 설날 당일에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는 일은 철칙처럼 지켰다. 그런데 올해부터 달라졌다. 이젠 교통 정체를 견디며 이동하기도 힘들고, 형제가 명절에 모인다 한들 서먹하니 따스한 귀성의 의미가 별로 없다. 얼마 전에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께 ..

길위의단상 2022.02.01

그 겨울의 선물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통로에 서 있는 사람이 빽빽할 정도로 승객이 많았다. 다행히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내 맞은편에는 한 아가씨가 책에다 시선을 묻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나는 마주보기를 애써 피하며 창 밖만 내다봤다. 대학 1학년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는 중이었다. 대학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1년은 어영부영 지나갔다.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내서 낙제한 과목은 방학 때 보충수업을 들어야 했다. 2학기를 마쳤을 때 세 개 과목인가가 성적 미달이 되어 윈터 스쿨을 듣고 늦게서야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기차는 원주역을 지나면서 한산해졌다. 셋씩 비좁게 앉았던 자리도 두 사람으로 줄어들며 여유로워졌다. 그제서야 앞에 앉은 아가씨와 말문을 트게 되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지만 계란 같..

길위의단상 2021.12.19

소원수리 / 권순진

내 생이 꼬이기 시작한 건 오밤중 담 너머로 쌀 가마니 세 개를 넘기라는 선임하사의 명령을 받들지 못하고부터다 불의에 수발을 들기 싫어서가 아니라 간이 작아서다 그 일을 보조하기 위해 방위 둘을 대기시키라는 지시도 듣지 않았다 우리 부대는 후방 헌병대였고 쌀은 남아돌았다 수감자들에겐 정량이 제공되지 않았으며 헌병들은 외식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다음날 워커발로 조인트를 여러 차례 까였다 동료 사병들도 내가 포크 창에 찍힌 노란 단무지 같은 신세인 걸 다 알고 있다 그들의 비겁 위에 물구나무 선 연민은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찍힌 건 나 말고도 더 있다 소원수리 때 '황소무사통과탕'에 대한 진실을 까발렸다가 필적감정으로 들통 난 K상병이다 나도 종이 앞에서 딸막딸막한 적은 있으나 다른 병사처럼 '현재 생활 만..

시읽는기쁨 2021.12.14

사람을 쬐다 / 유홍준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바닥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 사람을 쬐다 / 유홍준 밤골에서 살 때 비어 있던 옆집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이 찾지도 않았다. 어떤 사연으로 산골로 들어왔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동네..

시읽는기쁨 2021.12.05

사진첩 / 쉼보르스카

가족 중에서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한때 일어난 일은 그저 그뿐, 신화로 남겨질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로미오는 결핵으로 사망했고, 줄리엣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늙어빠진 노년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남았다. 눈물로 얼룩진 편지에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승을 등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 장미 꽃다발을 든 평범한 이웃 남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남편이 갑자기 돌아와 고풍스러운 옷장 안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없다! 구두끈과 만틸라, 스커프의 주름 장식이 사진에 나오는 데 방해가 되는 일도 없다. 아무도 영혼 속에 보스의 지옥을 품고 있지 않다! 아무도 권총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진 않는다! (어떤 이들은 두개골에 총알이 박혀 죽기도 ..

시읽는기쁨 2021.12.01

뽑기 해 먹기 / 김창완

준비물 설탕 소다 국자 불 뚜껑을 열면 연탄 냄새 콧구멍 수세미질을 한다 코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다 날름거리는 불꽃 위에 설탕 담은 국자를 갖다 대면 꿀이 된다 젓가락으로 소다를 찍어 녹은 설탕물을 저으면 부풀어 오르면서 뽑기가 된다 황홀하게 달콤하고 위험하게 고소하다 국자 색깔은 새카맣다 이제 얻어맞는 일만 남았다 - 뽑기 해 먹기 / 김창완 '오징어 게임' 때문에 다시 뽑기가 유행하는가 보다. 그것도 우리나라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는 열풍이다. 드라마에서는 '달고나'라고 하는데, 이걸 만드는 달고나 만들기 세트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종류가 엄청 많다. 대략 1만 원 정도 하는데 워낙 인기가 있어서 처음보다 두 배나 값이 올랐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자취방이 바..

시읽는기쁨 2021.10.14

40년 기념 속초 여행

4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묵직하다. 그때는 이만큼 오래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너무 아득해서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꿈을 꾸면서 문득 꿈임을 알아채게 되는, 인생의 매듭을 통과할 때마다 드는 씁쓸함이다. 결혼 40주년을 맞아 아내와 속초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저녁은 대포항 어시장에서 회(방어, 광어, 오징어)를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오붓이 즐겼다. 푹 끓인 매운탕이 특별히 맛있었다. 예식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갔는데 황망 중에 주민등록증을 챙겨 오지 않아서 신혼여행이 펑크 나는 줄 알고 무척 당황했었다. 안절부절못하다가 공항에 파견 나온 중앙정보부 사무실에 가서 확인서를 발급받고 겨우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때 직원이 신혼부부라 특..

사진속일상 2021.09.11

보신탕 한 그릇

염제(炎帝)의 위력이 대단하다. 매일 에어컨 신세를 지는 게 어느덧 두 주째다. 무더위 속에서 무리할 일은 없지만 활동량이 적으니 몸의 기력이 떨어지는 게 확연하다. 에너지 보충을 위해 아내와 보신탕 집을 찾았다. 근년에는 보신탕 먹을 기회가 한 해에 한두 번밖에 안 된다. 전에 비해 확 줄었다. 대신 추어탕을 주로 한다. 그래도 한여름이 되면 가끔 보신탕에 구미가 당긴다. 아내가 뇌 수술을 받은 뒤에 조리를 하면서 보신탕을 참 많이 먹었다. 의사도 기력 회복과 상처가 빨리 아무는 데 도움이 된다고 권했다. 거의 한 달은 상식을 했을 것이다. 나는 퇴근하면서 보신탕을 사 가지고 가는 게 일과였다. 아내가 회복하는 데 보신탕의 도움이 컸다고 확신한다. 어느 신부님이 하는 말을 들었다. 오래전 신학교에 다닐..

사진속일상 2021.07.30

한 장의 사진(27)

40년 전쯤 여름방학 때 반 아이들을 데리고 도담삼봉으로 캠핑을 갔을 때의 사진이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 시절로 학교에도 교복 자율화 등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군사 정권은 교과목 외에 학생들의 야외 활동을 장려했다. 그때 내가 근무했던 중학교의 G 교장 선생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분은 내가 만난 교장 중 가장 특이하고 개성이 있었다. 고시 출신으로 문교부에서 행정 관료로 지내다가 중학교 교장으로 발령받았는데, 상관과 의견 충돌로 좌천되어 내려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만큼 고집 세고 자기 소신이 강했다. 학교 점검차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하는 일이 있다. 학교에서는 대청소를 하며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게 보통이다. 수업 참관도 하기 때문에 학생이나 교사나 귀찮고 긴장이 된다. 맨손 수업..

길위의단상 2021.07.21

아침이슬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이 1971년에 나왔으니 올해로 50년이 된다. '아침이슬'은 긴 세월 동안 국민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대표곡 중 하나다. 반정부 집회에서 많이 불려진 탓인지 70년대 중반에는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노래를 만든 김민기가 부르는 '아침이슬'이 좋다. '아침이슬'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두 번째 학교에 근무할 때 만난 후배 P 여선생이다. P는 출근하는 첫날부터 남달랐다. 다른 신임교사들은 일찍 나와 교무회의에서 인사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P만 보이지 않았다. 교감이 신임교사 소개를 하려는 찰나 교무실 문이 꽈당 열리며 등산복에 배낭을 멘 젊은 여자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P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

길위의단상 2021.06.25

50년 전

* SNS의 고등학교 동창방에 대학 원서 쓰던 때의 얘기가 여럿 올라오고 있다. 나도 거기에 한 마디를 보탠다. 대학 원서 마감 사흘 전에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지원 대학을 결정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둘 사이에서 고민했다. 하나는 서강대 공대였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 사대였다. 당시에 이과생들에게 제일 인기 있던 학과는 공대 전자공학과였다. 나는 서울대 공대 갈 실력은 안 되고 차선책으로 서강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 실력으로 서강대 공대 전자공학과는 넉넉히 들어갈 수 있었다. 반면에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생일 때부터 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생활기록부의 학부모 희망사항란에는 초, 중, 고 모두 초지일관 '교사'라고 적혀 있다. 나 역시 교직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니었다. ..

길위의단상 2021.05.08

시인의 사랑

어제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틀째 이어진다. 미열도 있다. 그저께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 서울에 다녀온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소주 한 병이 좀 과했던 게 아닌가도 여겨진다. 때가 때인지라 혹 코로나가 아닌가 은근슬쩍 걱정도 된다. 침대에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슈만의 연가곡인 '시인의 사랑'이 흘러나온다. 문득 50여 년 전의 고등학생 시절로 되돌아간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은 성악가였는데 특이한 면이 있었다. 외모는 레슬러처럼 우락부락했고, 성격이 시원시원하면서도 괴팍한 면이 있었다. 좋게 보면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했다. 목소리가 엄청 컸는데 한 번 화를 내면 천둥 백 개가 몰아치는 듯 했다. 이 음악 선생님이 음반을 냈는데 타이틀이 바로 '시인의 사랑'이었다. 슈만은 어렵게 클..

길위의단상 2021.04.19

진공묘유(眞空妙有)

30대 후반에 붓글씨를 배운 적이 있다. 동네 서예학원에 다니다가 좀 더 이름 있는 선생한테 배운다고 모 신문사 문화센터에 들어갔다. 가르치던 선생은 국전 특선 등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는 분이었다. 이 분은 서예 외에도 역사적 사건에 얽힌 배경을 설명하고 수강생의 관상을 봐주는 등 강의를 재미있게 진행했다. 날 보고는 젊을 때는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50이 넘으면 빛을 본다고 잔뜩 희망 섞인 덕담을 했다. 결과적으로 빛 본 것 하나 없지만 들을 때는 기분 좋은 말이었다. 하여튼 이 분은 언행을 통해 자신이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드는 특출한 재주가 있었다. 수강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던 강의였다. 몇 달 다니지 않아서였다. 서예 전시회를 한다고 하나씩 작품을 만들라고 했다. 초보인데 벌써 무슨 작품이냐고 손..

길위의단상 2021.04.14

3월 2일

등교하는 아이들을 오랜만에 본다. 오늘이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마스크를 쓴 채 느릿느릿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에는 주로 재가 학습을 했으니 교실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일이 낯설지 모른다. 3월 2일이 스트레스인 건 교사였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설레임보다 또 어떻게 일 년을 티격태격하며 보낼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부담이었다. 나의 3월 2일은 늘 그렇게 납덩이처럼 무거운 심정으로 시작했다. "그래, 다섯 달만 버티면 방학이야."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30년 넘게 교직에 있었지만 내 체질에는 맞지 않았다. 가르치는 일이 늘 사람과 접촉해야 해서 나 같이 사람과 부딪치는 게 서툰 입장에서는 가혹한 직업..

길위의단상 2021.03.02

구들목 / 박남규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 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

시읽는기쁨 2021.02.28

설날과 세배

코로나로 이번 설은 형제들과 따로따로 지내기로 했다. 설날에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아침에 첫째가 찾아와서 셋이 오붓하게 보내는 설날 아침이다. 오가는 고속도로의 정체 걱정도 없고, 다른 신경 쓸 일도 없다. 사람들과 접촉 없이 지내는 조용한 명절이 좋긴 하나 마음 한편이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설날은 아이들의 잔칫날이었다. 설날 준비로 며칠 전부터 집안은 부산했고, 섣달 그믐날 저녁은 왁자지껄한 명절의 전야제였다. 잠을 안 자려고 버텼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은 없었다. 설날에 일어나면 먼저 차례를 지냈다. 좁은 방에서 열 명 남짓이 차례상 앞에 모이면 바싹 붙어있어야 했다. 절을 하면 아버지 엉덩이가 바로 얼굴에 닿을 정도였다. 그게 우스워 킥킥거리다가 항상 주의..

길위의단상 2021.02.12

2021년 첫 뒷산

소한 추위가 찾아왔다. 낮 기온도 영하 5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쌀쌀하다. 하지만 바람 없고 햇빛 쨍한 날이라 중무장을 하고 밖에 나섰다. 올해 들어 첫 외출이면서 첫 뒷산이다. 부지런히 걷다 보면 땀이 배다가 잠깐 머뭇거리면 싸늘해져 다시 모자를 푹 눌러 쓴다. 겨울 산길 위로 나무 그림자가 열을 맞춰 가지런하다. 정상 아래 나의 쉼터는 남향으로 양지바른 곳이다. 오래 앉아 있어도 추위를 잊을 정도로 따스하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포근함이 더해진다. 한 번 앉으면 일어서기가 싫다. 코로나 탓인지 산길 옆에 있는 골프장은 적막강산이다. 처음으로 필드에 들어가 본다. 골프 선수나 되는 듯 가상의 공을 향해 빈 팔을 휘두른다. 와- 하는 갤러리의 환성이 들리는 것 같다. 현직에 있을 때 수능 검토위원으로 ..

사진속일상 2021.01.07

내 어릴 적 겨울에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젊은 부부가 많이 산다. 같은 층에 사는 네 가구만 봐도 노인은 우리뿐이고 다른 세 집은 3, 40대 부부 가정이다.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아이들도 여섯 명이나 된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 안에서 아이들 보기는 힘들다. 등교할 때 잠깐 북적이지만 다른 시간에는 조용하다. 다들 어디로 숨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이전에도 다르지 않았다. 제일 넓은 공터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도 운동하기 위해 나온 어른들이 많지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손주를 봐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집에서 엄마와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 친구와 노는 시간은 태권도학원에 나가서다. 요사이 아이들은 제멋대로 뛰어노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화된 틀에 따라 움직인다. 그걸 보면 붕어..

길위의단상 2021.01.03

음치는 서러워

전 직장 동료 다섯이 모이는 작은 모임이 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봄에 한 번 만난 뒤로는 대면 모임을 갖지 못했다. 대신 단톡방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며칠 전에 A가 55년 전 중학생 때 일화를 하나 올렸다. 그때 기말고사 음악 시험은 실기평가로 한 사람씩 선생님 앞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지정곡은 홍난파의 '고향 생각'이었다. 반 전체의 평가를 마친 후 음악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음악 점수 '양'을 줄 수는 없다. 70점이 안 되는 학생은 다시 한번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그러면서 재시험 볼 학생 이름을 불렀는데 일고여덟 명 속에 A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만큼 노래에는 자신이 없었다. A는 다시 노래를 불렀고 가까스로 음악 점수 '미'를 받았다는 얘기..

길위의단상 2020.12.26

스카이 캐슬

'스카이 캐슬'이 방영되던 2년 전에 친구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다룬 내용이라면서 꼭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때는 TV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이 커서 코웃음 치며 흘려넘겼다. 이번에는 넷플릭스에 들어갔다가 이 드라마를 보고 몰아보기를 했다. 예상외로 흡인력이 강하고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드라마에 빠지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한때 이 드라마의 무대가 된 강남의 어느 명문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 학교에 간지 이태째 되던 해에 어쩌다 담임을 맡았다가 정말로 죽을 고생을 했다. 강남 학부모와 아이들의 생태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경험을 했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내가 있을 때 그 학교에서 암에 걸린 교사가 여럿 나왔고, 친한 동료는 몇 달 ..

읽고본느낌 2020.12.19

쥐 / 요사노 아키코

나의 집 천장에 쥐가 사느니라. 빠작빠작 소리남은 끌 잡고 상을 새기는 사람 밤에도 자지 않음과 같으니라. 또 그의 아내와 춤을 추면서 빙 돌아가는 울림은 경마가 달리는 모습. 내 글 쓰는 종이 위에 천장 위 모래며 먼지들 펄펄 날려옴도 그들이 어찌 알 것인가? 그러나 나는 생각하느니 나는 쥐들과 함께 살고 있노라. 그들에게 먹을 것이 있으랴. 천장에 구멍이라도 뚫어서 때때로 나를 엿보라. - 쥐 / 요사노 아키코 이웃간에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가끔 뉴스에 나온다. 며칠 전에는 윗집 현관문에 인분을 뿌린 사건이 있었다. 댓글에는 누리꾼의 설왕설래가 무성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층간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행히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한 중재로 윗집 사람을 만나고 나서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층간..

시읽는기쁨 2020.12.03

다정도 병인 양하여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드는 밤이 있다. 주로 윗집의 층간소음 탓이다. 그런데 어젯밤은 아니었다.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뵙고 온 날은 심란하여 잠이 안 온다. 어머니가 편찮으시거나 큰 걱정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낡게 하고 허물어버리는 잔인한 엔트로피의 법칙을 고향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요사이 같은 늦가을에는 고향을 찾을 일이 아니다. 빨리 내려와서 가을걷이를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연락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흔 연세에도 온갖 농작물을 기르고 거두신다. 그리고 가을이면 수확해서 자식에게 주는 재미로 사신다. 배추, 무, 사과, 깨, 생강, 시래기, 당근, 파, 호박 등 이번에도 차 뒤의 트렁크 하나 가득하였다. 그러나 마냥 기쁘지는 않다. 고맙게 받아오고 잘 먹어주는 게 효도의 하나라고 ..

참살이의꿈 2020.11.24

두 에피소드

아침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는데 출연자들이 얼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중 한 사람이 자신이 젊을 때는 동안(童顔)이라는 소리를 늘 들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반대로 다른 사람보다 빨리 노안(老顔)이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나도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언뜻 그에 얽힌 두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 1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나선 게 스물 세 살이었다. 만으로는 스물둘에 선생을 시작했다. 또래보다 한 해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군대도 가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나 역시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해 겨울에 예비고사 감독관을 나가게 되었다. 시험 전날에 수험생 예비 소집을 했는데, 고사장 운동장에서 출석 확인을 하는 게 감독관의 임무였다. 마이크로 전체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동안..

길위의단상 2020.11.16

한 장의 사진(26)

학교에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남은 술과 안주를 미리 숙직실에 챙겨 두었다. 내가 숙직하는 날이었고, 술꾼들은 자연스레 숙직실로 모였다. 그때는 남교사가 돌아가며 학교를 지키는 숙직을 했다. 여교사가 많은 학교에서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씩 차례가 돌아왔다.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야간 순찰은 학교에서 고용한 아저씨가 돌기 때문에 전화나 받고 자리만 지키는 정도였다. 결혼한 사람은 불편하게 여겼지만, 총각은 오히려 숙직을 좋아했다. 집에 갔다 왔다 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자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숙직을 하면 술판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했다. 밖에서 한잔 걸치고는 술을 사 가지고 숙직실로 쳐들어가기도 했다. 취해서 흥이 나면 교무실에 들어가 앰프함을 열고 회의할 때 사용하는 마이크로 노래자랑도 했다. 원조..

길위의단상 2020.11.10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M 중학교에 근무할 때였으니 1980년대 초반이었다. 일과가 끝나고 퇴근하는 길에는 그냥 집으로 가는 날이 드물었다. 학교 앞에 있는 동그랑땡 집에서 소주를 적당히 마신 뒤, 대개 입가심으로 한 잔 더 하자면서 호프집으로 가는 게 정해진 코스였다. 호프집 안주는 보통 노가리와 마른안주였다. 그날은 교감이 동행했고 역시 순서대로 이차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교감은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해서 M 중학교에 부임해 왔다. 교감과 함께 있으면 술자리의 화제는 자연히 일본 얘기가 많았다. 교감은 일본으로부터는 배울 게 많다는 걸 늘 강조하는 지일파였고, 일본에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그날은 일본 문화 얘기를 하다가 흥이 났는지 일본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일제 강점기 때 학교에서 배웠던 노래로 ..

길위의단상 2020.09.18

금란교회의 추억

금란교회 하면 개신교 신자든 비신자든 한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등록된 교인 수가 14만 명이 되는 감리교회 중에서는 세계 최대의 교회다. 또, 워낙 유명세를 탄 김홍도 목사가 시무한 교회로 보수 반공 이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지난 2일에 김홍도 목사가 별세했는데, 전광훈을 길러낸 스승이었다는 보도가 지면에 실렸다. 나도 금란교회와 김홍도 목사와의 짧은 인연이 있으므로, 그분의 부고에 잠시 숙연해지며 거의 50년 전 옛일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나는 1970년대 초중반에 금란교회 신자였다. 1972년, 대학교 2학년생일 때 금란교회에 처음 나갔다. 같은 과 친구가 소개해 주면서 담임목사의 영적 능력이 굉장하다고 말했다. 그때는 김홍도 목사가 금란교회에 막 부임했을 때였다. 처음 교회를 나가..

길위의단상 2020.09.06

소의 무심

지난달에는 긴 장마와 폭우로 비 피해가 컸다. 그때 떠내려간 소가 20일 만에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뒷산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 올라가 보니 멀리 합천에서 기르던 소였다고 한다. 어떤 소는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바다 가운데 무인도에서 찾아낸 소도 있었다. 소는 몸 구조상 부력이 커서 물에 잘 뜬다고 한다. 그리고 성질이 공격적이지 않아 물살에 순응하며 떠내려가기 때문에 오래 생존할 수 있는 반면, 말은 물살을 거슬려 오르려 발버둥치다가 힘이 빠져 빨리 죽는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제 성질을 못 이겨 수명을 재촉한다. 소의 생존 비결에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소를 한 마리씩 키웠다. 농기계가 없던 때라 농사를 짓기 위..

참살이의꿈 2020.09.03

책 읽는 소리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유별난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에 일흔이 되어서 첫 손자를 봤으니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오죽했겠는가.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버릇없이 자랐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이랴 이랴" 하면, 할아버지는 엉금엉금 기면서 내가 끄는 대로 따라다니셨다. 수염이 뽑혀도 그저 좋아라 하시며, 손자를 위해서라면 어떤 악역이라도 마다치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이 희한한 구경거리가 났다고 모여들었다 한다. 사랑방에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자주 놀러 오셨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깨우쳤을 때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으로 나를 부르시고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또래보다 앞서 글자를 익힌 손자를 자랑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동갑내기보다 나는 먼저 학교에..

길위의단상 2020.07.30

해 뜨는 집

고등학교에 다닐 때 토요일 4교시는 HR이었다. HR은 'Home Room'의 약자로 글자 뜻과는 상관없이 학급 회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면서 회의 절차는 따랐으나 거의 형식적이었다. 회의 내용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아이가 없었다. 발언도 거의 농담 따먹기 식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회의를 시작하는 것만 보다가 교무실로 내려가셨다. 그러면 반장은 적당히 회의를 마무리하고 칠판에 'Home Room' 대신 큼지막하게 'Happy Recreation'이라 바꿔 적곤 했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2학년 때 반장이었던 Y는 오락부장을 겸했는데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자는 주의였으므로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었다. 'Home Room'에서 'Happy Recreation'으로..

길위의단상 2020.06.23

프로레슬링은 쑈다 / 유하

박통 시절, 박통터지게 재미있었던 프로레슬링 김일의 미사일 박치기에 온국민이 들이받쳐서 박통터지게 티브이 앞에 몰려들던 프로레슬링 흡혈귀 브라쉬 인간산맥 압둘라 부처 전화번호부 찢기가 전매특허인 에이껭 하루까 필살의 십육문 킥 자이안트 바바 빽드롭의 명수 안토니오 이노끼 그 세계적인 레슬러들을 로프 반동 튕겨져 나오는 걸 박치기! 당수! 또는 코브라 트위스트, 혼줄을 내주던 김일 천규덕의 극동 태그매치 조 저녁 여덟시면 나를 어김없이 만화가게에 붙잡아 놓던 그 흥미진진한 프로레슬링이 어느 순간 시들해진 건 무슨 이유일까 왜 모두들 외면했던 것일까 프로레슬링 유혈 낭자극을 유난히 좋아했던 박통이 죽어서? 김일 같은 스타 레슬러가 안 나와서? 항간에 떠도는 루머 중 가장 유력한 설은 국내파 레슬러 장영철이 ..

시읽는기쁨 202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