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50

굶주리는 백성 / 정약용

1 우리 인생 풀과 나무와 같아 물과 흙으로 살아간다네. 힘써 일해 땅엣것을 먹고 사나니 콩과 조를 먹고 사는 게 옳건만 콩과 조가 보석처럼 귀하니 무슨 수로 혈기가 좋을쏘냐. 야윈 목은 고니처럼 구부러지고 병든 살은 닭 껍데기처럼 주름졌네. 우물이 있어도 새벽에 물 긷지 않고 땔감이 있어도 저녁에 밥 짓지 않네. 팔다리는 그럭저럭 놀리지만 마음대로 걷지는 못한다네. 너른 들판엔 늦가을 바람이 매서운데 저물녘 슬픈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고을 원님이 어진 정치를 하고 사재(私財)로 백성 구휼한다기에 관아 문으로 줄지어 가 끓인 죽 우러르며 앞으로 나서네. 개돼지도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것을 사람이 엿처럼 달게 먹는구나. 어진 정치는 기대도 않았고 사재 털기도 기대치 않았네. 관아의 재물은 꽁꽁 숨겼으니 ..

시읽는기쁨 2012.11.02

유배지의 여덟 취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를 읽고 있다. 7세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해 74세 되던 해에 아내와의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시가 마지막이었다니 선생의 일생은 시와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의 시를 통해 내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고상한 인품도 느껴볼 수 있어서 좋다. 유배지에서 쓴 시 중에 '유배지의 여덟 취미'라는 게 눈에 띈다.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선생만큼 아름답게 승화시킨 분도 없을 것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외에 선생은 유배지에서 어떤 취미를 가지고 살았을까? '유배지에서의 여덟 취미' - 바람에 읊조리기, 달구경, 구름 보기, 비 바라기, 산에 오르기, 물가에 가기, 꽃구경, 버드나무 완상하기 - 를 보며 선생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읽는다. 바람에 읊조리기 서풍은 집을 지나오고 동..

참살이의꿈 2012.11.01

추포가(秋浦歌) / 이백(李白)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 秋浦歌 / 李白 길고 길어 삼천장 흰 머리칼은 근심으로 올올이 길어졌구나 알 수 없네 거울 속 저 늙은이는 어디에서 가을 서리 얻어 왔는가 정치적 회오리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고 귀양을 가게 된 이백(李白)은 다행히 사면을 받고 추포(秋浦)에서 지낸다. 이때 그의 나이 59세였다고 한다. 병 들고 늙은 몸으로 낯선 땅에서 지내게 된 시인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백발삼천장'으로 유명한 이 시도 그 시기에 씌여졌다. 먼저 길 떠나는 친구를 보면서 인생 덧없음을 절절히 느끼는 계절이다. 살아보니 인생 별 것 아닌 것을.... 이백 선생! 백발이 삼천장이 되든 삼만장이 되든 무슨 대수겠소. 내일이면 한 줌 먼지로 사라지는 것을.... (사족 하나, '백발삼천장'은 ..

시읽는기쁨 2012.10.10

애절양 / 정약용

갈밭 젊은 아낙 오랫동안 울더니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는다 출정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있다 해도 사내가 제 자지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구나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다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다며 억울한 하소연 하려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간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다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는 형벌도 억울한데 민땅의 자식 거세도 진실로 슬픈 것이거늘 자식을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프거늘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

시읽는기쁨 2011.11.28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무슨 생각하나요 / 황진이

蕭寥月夜思何事 寢宵轉輾夢似樣 問君有時錄忘言 此世緣分果信良 悠悠憶君疑未盡 日日念我幾許量 忙中要顧煩惑喜 喧喧如雀情如常 - 蕭寥月夜思何事 / 黃眞伊 달 밝은 밤에 그대는무슨 생각하나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나요 붓을 들면 때로는 내 얘기도 쓰나요 이승에서의 우리 인연이 행복한가요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에 내 생각은 얼마만큼하나요 바쁠 때 나를 돌아보라 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 달 밝은 밤에 그대는무슨 생각하나요 / 황진이 황진이가 당대의 뛰어난 사대부들과 교류를 하고 풍류를 즐겼지만 진실로 사랑했던 사람은 소세양(蘇世讓)이었다고 한다. 소세양은 황진이가 절색이라는 풍문을 듣고는 자신은 한 달만 같이 살고미련없이 헤어질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황진이..

시읽는기쁨 2011.08.03

곡강이수 / 두보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줄어드는데 만점 꽃잎이 바람에 날리니 참으로 시름에 잠기네 봄을 마음껏 보려고 하나 꽃잎은 눈을 스치고 지나가니 어찌 몸이 상할까 두렵다고 술을 마시지 않으리 강가 작은 정자에는 비취새가 둥지를 틀었고 부용원 뜰가 높은 이들 무덤에 기린 석상도 뒹구는구나 세상이치를 따져 보건대 마땅히 즐거움을 따를지니 어찌 헛된 영화에 이 한 몸 얽맬 필요가 있으랴 조회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저당 잡혀 매일 곡강에서 만취하여 돌아오네 얼마 안 되는 술빚은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이지만 인생살이 칠십년 살기는 예부터 드문 일이라네 꽃 사이를 맴도는 호랑나비는 꽃 깊숙이 숨어 있고 강물 위를 스치는 물잠자리는 유유히 나는구나 전해오는 말로 아름다운 경치도 모두 흘러가는 거라 하니 잠시나마 서..

시읽는기쁨 2011.05.02

꽃 심는 즐거움 / 이규보

꽃 심으면 안 필까 걱정하고 꽃 피면 또 질까 걱정하네 피고 짐이 모두 시름겨우니 꽃 심는 즐거움 알지 못해라 - 꽃 심는 즐거움 / 이규보 種花愁未發 花發又愁落 開落摠愁人 未識種花樂 - 種花 / 李奎報 인생사 자질구레한 일들 탈도 많다. 뜻대로 되기보다는 일마다 어그러지기 일쑤다. 주룩주룩 비 오는 날에는 놀러갈 약속 생기고, 개었을 때는 대부분 할 일 없이 지낸다. 배불러 상 물리면 맛있는 고기 생기고, 목 헐어 못 마실 땐 술자리 벌어진다. 귀한 물건 싸게 팔자 물건 값이 올라가고, 오랜 병 낫고 나니 이웃에 의원 있다. 백운거사(白雲居士)는 다른 시에서 세상살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이렇게 한탄했다. 그의 시는 엄살기가 있다 하나 허세를 부리거나 현학적이지 않아서 좋다. 늑대를 피해서 도망간 것이 ..

시읽는기쁨 2011.04.25

팔죽시(八竹詩) / 부설거사(浮雪居士)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粥粥飯飯生此竹 是是非非看彼竹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 八竹詩 / 浮雪居士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 7 세기 신라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있었다. 그는 서라벌에서 출생해서 20세 때 출가를 했다. 수도를 위해 명산대천을 순례하던 중 김제에서 묘화(妙花)라는 아가씨를 만나 환속했다. 그리고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았다. 부설거사는 뒤에 내변산 쌍선봉 중턱에 월명암(月明庵)을 짓고 수도..

시읽는기쁨 2010.09.04

山居 / 徐敬德

花潭一草廬 瀟세類僊居 山簇開軒近 泉聲到枕虛 洞幽風淡蕩 境僻樹扶疎 中有逍遙子 淸朝好讀書 - 山居 / 徐敬德 화담의 한 칸 초가집은 신선이 사는 곳처럼 깨끗하네 창을 열면 늘어선 산들이 가깝고 베갯머리엔 시냇물 소리가 조용하네 골짜기 깊으니 바람이 시원하고 땅이 외지니 나무가 무성하네 그 속을 거니는 한 사람이 있어 맑은 아침 즐거이 독서를 하네 황진이(黃眞伊)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러 찾아간 곳이 이 시에 나오는 한 칸 초가집이었을지 모른다.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파계시키고 자신만만해진 황진이는 역시 명성높은 학자인 화담도 공략하려 한다. 요사이 말로 하면 황진이는 '펨므 파탈' 쯤 되는 여자인 것 같다. 그러나 화담을 유혹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도리어 그의 인품에 반해 버린다. 화담과..

시읽는기쁨 2008.12.06

위심(違心) / 이규보(李奎報)

人間細事亦參差 動輒違心莫適宜 盛世家貧妻常侮 殘年祿厚妓將追 雨읍多是出遊日 天霽皆吾閑坐時 腹飽輟飡逢美肉 喉瘡忌飮遇深모 儲珍賤末市高價 宿疾方광隣有醫 碎小不諧猶類此 揚州駕鶴況堪期 - 違心 / 李奎報 인간사 자질구레한 일 탈도 많아서 일마다 어그러져 뜻대로 되는 게 없어라 젊었을 땐 집 가난해 아내 늘 구박하고 말년에 봉급 많으니 기생들만 따르려 한다 주룩주룩 비 오는 날 놀러 갈 약속 있고 개었을 땐 대부분 할 일 없어 앉아 있다 배불러 상 물리면 맛있는 고기 생기고 목 헐어 못 마실 때 술자리 벌어지네 귀한 물건 싸게 팔자 물건 값이 올라가고 오랜 병 낫고 나니 이웃에 의원 있네 자질구레한 일 맞지 않음이 이와 같으니 양주에서 학 타는 신선 노릇 어찌 바랄까 인생사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도리어 사는 게 재미..

시읽는기쁨 2007.10.02

陋室銘 / 劉禹錫

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斯是陋室 惟吾德馨 苔痕上階綠 草色入廉靑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可以調素琴 閱金經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 南陽諸曷廬 西蜀子雲亭 孔子云 何陋之有 - 陋室銘 / 劉禹錫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이름난 산이요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신령한 물이라지 이곳은 비록 누추한 집이지만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네 이끼 낀 계단은 푸르고 풀빛은 발을 통해 더욱 파랗고 담소하는 선비가 있을 뿐 왕래하는 백성은 없도다 거문고를 타고 불경 뒤적이며 음악은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관청의 서류로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아 남양 제갈량의 초가집이나 서촉 양자운의 정자와 같으니 공자께서도 '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라고 하셨다 시에 담긴 옛 선비의 기개가 대단하다. 몸은 좌천되어 시골 말..

시읽는기쁨 2007.08.28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 / 이순신

水國秋光暮 警寒雁陳高 憂心轉輾夜 殘月照弓刀 - 閑山島夜吟 / 李舜臣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활과 칼 비추네 '영남의 여러 배에서 격군과 사부들이 거의 굶어 죽게 되었다. 참혹하여 들을 수가 없다.' '살을 에이듯이 추운 날이다. 옷 없는 병졸들이 움츠리고 앉아 추위에 떨고 있다. 군량은 바닥났다. 군량은 오지 않았다.' 이 시가 쓰여질 당시에 기록된 난중일기의 한 부분이다. 장군은 안팎으로 적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을 것이다. 백성과 병사들의 처지는 참혹했고, 나라로부터는 아무 지원도 못 받고 있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조정 역시 장군의 편이 아니었다. 전쟁에 이긴다고 해도 그분의 미래는 불확실했다. 그 당..

시읽는기쁨 2007.06.08

漁父 / 屈原

屈原旣放 遊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屈原曰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굴其泥 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飽其糟 而철其리 何故深思高擧 自見放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 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漁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 鼓설而去 乃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不復與言 - 漁父 / 屈原 굴원이 죄 없이 추방을 당해 강과 못 사이를 쏘다니고 연못가 거닐며 슬픈 노래 읊조리니 얼굴은 시름에 겨워 초췌해지고 형용은 비쩍 말라 야위었더라 어부가 이를 보고 물어 말하길 "그대는 삼려대부 아니신가요? 이런 곳엘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시읽는기쁨 2006.09.15

學道 / 李珥

學道卽無著 隨緣到處遊 暫辭靑鶴洞 來玩白鷗州 身世雲千里 乾坤海一頭 草堂聊寄宿 梅月是風流 - 學道 / 李珥 도를 배움은 곧 집착 없으매라 인연 따라 이른 곳에서 노닐 뿐이네 잠시 청학동을 하직하고 백구주에 와서 구경하노라 내 신세는 천리 구름 속에 있고 천지는 바다 한 모퉁이에 있네 초당에 하룻밤 묵어가는데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류로다 유학자였지만 유가의 경계를 넘어선 인물 - 율곡 이이. 율곡은 당시에는 이단에 가까웠던 노장사상을 연구하고 도덕경을 주석했으며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고, 해동공자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유학의 대가였지만 유, 불, 선이라는 벽에 걸림이 없이 도(道)를 따라 산 자유인이었다. 도의 세계는 종교의 구분이나 사상의 벽을 넘어서 있다. 이 시를 보면 율곡은 도의 비밀을 살짝 열어 ..

시읽는기쁨 2006.08.10

自歎 / 田萬種

聞古仁無敵 看今義亦嗤 富榮貪益顯 貧賤是爲非 天意豈能度 人精未易知 山深水綠處 早晩不如歸 - 自歎 / 田萬種 예부터 인자무적(仁者無敵) 들어왔건만 요즘 보니 의로워도 비웃음 당해 부유하고 영화로우면 탐욕 더욱 드러나고 가난하고 천하면 옳은 것도 그르게 되네 하늘의 뜻 어찌 헤아리랴마는 사람의 마음 쉽게 알기 어려워라 산 깊고 물 푸른 곳으로 조만간 돌아가는 게 낫겠네 예로부터 사람 마음을 일촌심(一寸心)이라고 불렀다. 한 치 작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한 치밖에 안되는 마음 알기가 천의(天意)를 터득하기만큼이나 어렵다. 마음 속 휘몰아치는 폭풍에 비틀대기도 하고, 음침한 기운에 질식 당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마음 속에서 돋아난 바늘이 나를 찌르고, 상대방을 향해 무수히 날아가기도 한다. 이럴 때는..

시읽는기쁨 2005.11.08

雜詩(二) / 陶淵明

白日淪西阿 素月出東嶺 遙遙萬理輝 蕩蕩空中景 風來入房戶 夜中枕席冷 氣變悟時易 不眠知夕永 欲言無予和 揮杯勸孤影 日月擲人去 有志不獲騁 念此懷悲悽 終曉不能靜 - 雜詩(二) / 陶淵明 밝은 해 서쪽 장강으로 떨어지고 하얀 달 동편 산봉우리로 나오네 달빛은 아득히 만리를 비추며 넓디넓게 공중에서 빛나네 바람은 방문으로 들어오고 밤중에 잠자리 서늘도 하여라 기후 변해 시절의 바뀜 깨닫고 잠 못 이뤄 밤 길어졌음을 안다네 말 나누려 하나 나와 화답할 이 없어 잔 들어 외로운 그림자에게 권하네 세월은 사람을 버려두고 가니 뜻이 있어도 펼치지 못한다오 이를 생각하다 마음은 구슬퍼 새벽 되도록 진정하지 못한다오 잡시(雜詩) 12수(首)는 도연명이 50세 즈음에 지은 시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낙향한지 10년, 그를..

시읽는기쁨 2004.12.16

春望 / 杜甫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천淚 恨別鳥驚心 峰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나라는 깨져도 산하는 남고 옛성에 봄이 오니 초목은 우거졌네 시세를 설워하여 꽃에도 눈물짓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놀라네 봉화 석 달이나 끊이지 않아 만금같이 어려운 가족의 글월 긁자니 또 다시 짧아진 머리 이제는 비녀조차 못 꽂을래라 세상은 어지러워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온다. 작금의 정치적 사태를 보면 역사와 인간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쓰레기통에나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이젠 어느 누구든지 또는 어느 집단이든지 비난할 의욕도 없다. 다만 내 스스로가 슬프고 자괴감만 들 뿐이다. 이 시는 756년, 그의 나이 46세 때 杜甫가 안녹산의 반란군에 점령당한 장안에 남아 있으면서 지은 노래이다. 國..

시읽는기쁨 2004.03.14

自祭文 / 陶淵明

바로크 시대라고 하는 유럽의 17세기에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대립되는 관점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기라)이고, 다른 하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였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이런 삶의 양면성 문제는 존재해 왔을 것이고, 어느 관점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특징이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관점을 택함에 따라 현실 중심적으로 되든지아니면 이상주의로 기울거나 종교적성향이 강해지기도 한다. 카르페 디엠은 삶을 긍정하지만 경박해지기 쉽고, 메멘토 모리는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좋으나 무겁고 음울해지기 쉽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는 오히려 메멘토 모리의 정신을 되살려야 하지 ..

시읽는기쁨 2004.01.27

寒山詩

昔日極貧苦 夜夜數他寶 今日審思量 自家須營造 掘得一寶藏 純是水晶珠 大有碧眼胡 密擬買將去 余卽報渠言 此珠無價數 예전엔 가난하고 비참하였다 매일 밤 남의 보물 헤아렸었지 그러나 이제 깊이 생각한 끝에 모름지기 내 집을 짓기로 했네 땅을 파다가 감추어진 보물을 찾았지 뭔가 수정처럼 맑디 맑은 진주라네 푸른 눈의 서역 장사치들이 앞다퉈 이 진주를 사려 하길래 내 그들에게 웃으며 말했지 이 진주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라고 寒山은 8세기 부근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설적인 隱者이다. 일설에는 형제들과 땅을 경작하며 살았으나, 모든 緣을 끊고 아내와 가족과도 헤어져 각처를 방랑하다가 寒山에 은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것을 발견하려는 신비적 충동에 이끌렸..

시읽는기쁨 2004.01.14

飮酒16 / 陶淵明

少年罕人事 어려서부터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遊好在六經 육경을 읽으며 친구를 삼았더니 行行向不惑 세월 흘러 나이 사십 바라보니 淹留遂無成 내가 이룬 일이 없구나 竟抱固窮節 비굴하지 않은 굳은 절개만을 품은 채 飢寒飽所更 추위와 굶주림만 지겹도록 겪었구나 弊廬交悲風 초라한 오두막엔 차가운 바람만 드나들고 荒草沒前庭 잡초는 집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었구나 披褐守長夜 낡은 옷 걸치고 지새우는 긴긴 밤 晨鷄不肯鳴 닭마저 새벽을 알리지 않는다 孟公不在玆 선비를 알아주는 맹공도 없으니 終以예吾情 끝내 내 가슴이 답답하구나 도연명 스스로가 선택한 가난과 빈한이었지만 그의 전원 생활은 고달픈 나날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낭만적 가난이 가능할까? `安貧`도 역시 가능할까? 먹을 양식도 떨어지고, 입을 옷조차 헤어져 찬 바..

시읽는기쁨 2003.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