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145

거꾸로 가는 생 / 김선우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나이 서른에 나는 이미 너무 늙었고 혹은 그렇게 느끼고 나이 마흔에 누이는 가을 낙엽 바스락대는 소리만 들어도 갈래머리 여고생처럼 후르륵 가슴을 쓸어 내리고 예순 넘은 엄마는 병들어 누웠어도 춘삼월만 오면 꽃 질라 아까워라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 일곱 살배기 아이처럼 졸라대고 여든에 죽은 할머니는 기저귀 차고 아들 등에 업혀 침 흘리며 잠 들곤 했네 말 배우는 아기처럼 배냇니도 없이 옹알이를 하였네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머리를 거꾸로 처박으며 아기들은 자꾸 태어나고 골목길 걷다 우연히 넘본 키작은 담장 안에선 머리가 하얀 부부가 소꿉을 놀 듯 이렇게 고운 동백을 마당에 심었으니 저 영감 평생 여색이 분분하지 구기자 덩굴 만지작거리며 영감님 흠흠, 웃기만 하고 애증이랄지 ..

시읽는기쁨 2008.03.11

조롱 속의 행복

새장의 새나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볼 때마다 고개를 드는 의문이 있다. 저 새나 물고기는 과연 행복할까? 날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헤엄을 치지도 못하는 상태는 야생의 본능을 가진 그들에게 분명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이 동물원의 동물을 우리가 측은하게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대신 먹이를 구하는 어려움도, 적으로부터 받는 위협도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 평화와 안온함을 누릴지도 모른다. 그런 갇힌 우리 속의 편안함이과연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롱 속의 행복이 참다운 의미의 행복이 되는가? 사람이 사는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들 말한다. 행복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누구나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조롱 속의 행복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의심을 하는 사람은 적다. 문자적 정의로서의 행복은 ..

참살이의꿈 2008.01.22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행복 / 유치환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네 종류로 ..

시읽는기쁨 2008.01.08

힘든 오늘은 행복입니다

'실패는 행복입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헤어짐은 행복입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슬럼프는 행복입니다 천천히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힘든 오늘은 행복입니다 행복한 내일이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요사이는 기업 광고도 무척 세련되었다. 위의 글은 잡지에서 본 어느 대기업 광고 문안인데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다시 읽어보아도 참 좋은 내용이다. 힘든 오늘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어깨에 진 짐이 크든 작든 다들 무겁게 느끼는 법이다. 당신 짐은 작으니 힘들지 않을 거라고 속단하지 말자. 짐의 크기는 달라도 사람이 느끼는 무게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그 ..

참살이의꿈 2007.09.29

부탄의 행복 실험

부탄이라는 나라를 처음 접한 것은 재작년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제목의 부탄 여행기를 읽었을 때였습니다. 책을 통해 아름다운 풍광과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에 반했었는데 비록 단편적이지만 그 뒤에 알게된 부탄의 모습은 저에게는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알다시피 부탄은 1인당 연간소득이 1200달러에 불과한 빈국입니다. 인구도 70만 정도에 불과한데 가끔씩 발표되는 행복지수를 보면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나라입니다. 정치 형태로는 왕권국가로 불교가 생활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군주의 왕권이 아니라 국민 중심의 왕권이라는 것은 "국민의 행복이 왕보다 더 중요하다"는 국왕의 선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이 도입한 GNH[Gross National Happ..

참살이의꿈 2007.03.28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지?

초심을 지키고 사는 이들은 드물다. 일에 파묻히면 잊어 버린다.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도 까먹는다. 잊고 살다보면 가려던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불행한 이들이 많다. 그때부터 스스로 최면을 건다. 내가 젊어서, 철이 없어서, 세상을 몰라서 그랬어. 지금 가는이 길이 옳아. 저기 봐.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가잖아. 그런데,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지?

참살이의꿈 2007.03.14

참행복

얼마 전에 세계의 10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도를 비교한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북구에 있는 도시의행복도는 높았고, 서울은 꼴찌였다.국가별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도 우리나라는 늘 뒤쪽에 처져 있다. 대한민국과 행복은 아직까지는 영 인연이 없는가 보다. 참고로 작년에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178개국 중 1위를 차지한 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이 2900달러에 불과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였다.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는 국민소득으로만 따지만 전세계 233개국에서 207위로 거의 꼴찌에 가까운 나라다. 행복도를 조사하는 기관에 따라 순위는 들쑥날쑥하지만 공통적으로 빈곤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조사에서 10위까지의 순서는 바..

참살이의꿈 2007.02.01

행복한 이기주의자

이 시대의 화두 중 하나가 ‘행복’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제 얼마큼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먹고살만해지니까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도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며칠 전에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욕심 많은 사람들의 물질 추구를 통해 느끼는 만족도 행복의 범주에 들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동료들은 그것도 행복이라 할 수 있다고 했고, 나는 계속 갈증을 느끼게 되는 그런 심적 상태는 행복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행복이란 기본적으로 존재론적인 깨달음과 연관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읽었다. 요즈음 쏟아져 나오는 행복을 주제로 하는 책 중의 하나로 내용도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

읽고본느낌 2006.10.23

[펌] 행복은 이미 충분하다

어떤 한 경계에서 가슴 시린 쓰라린 아픔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성공만을 바라고 바라는 대로 잘 되어지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겠지만, 사실 늘상 성공만 하고 바라는 바대로 이루기만 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내면의 뜰은 공허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실패 속에서 또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그 속에서 더 강인해 질 수 있을 것이고, 바라는 바가 좌절되어지는 그 속에서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지혜로움이 생겨나며, 세상을 얕보지 않을 수 있고 좀 더 겸손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가를 가르치는 분이라거나 몸 다스리는 법에 대해 강의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 분들 비슷한 공통점이 어렸을 때 죽고 싶을 만큼 몸이 너무 ..

길위의단상 2006.09.26

400 : 15

웃음을 연구한 사람에 따르면 다섯 살 정도 되는 어린이는 하루에 평균 400 번을 웃는데, 성인은 고작 15 번밖에 웃지 않는다고 한다. 이 통계를 보면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웃음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불행하다. 나 자신을 돌아보니 아무리 잘 봐 주어도 성인의 평균이라는 하루에 15 번 정도도 웃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도 대부분이 미소의 형태이고 얼굴 근육을 사용하는 파안대소는 거의 없다. 여성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것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웃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모인 곳에서는 대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신에 수다 소리를 참아야 하는 불편도 있지만 깔깔 하고 웃는 여성의 웃음소리를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기분 좋게 만든다. 여..

길위의단상 2006.04.19

우리도 쿠바의 새들처럼 / 서정홍

쿠바에는 새들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더라 쿠바에는 개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더라 해치지 않을 줄 알기 때문이다 길가에 서 있는 옥수수도 골목마다 핀 노란 해바라기도 잔디밭에 누워서 까닭 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학생들도 훤한 대낮,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애인을 안고 있는 젊은 경찰도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이더라 '저렇게 살갗이 검을 수가 있을까' 싶은 아가씨와 '저렇게 살갗이 하얄 수가 있을까' 싶은 사내가 팔짱을 끼고 걸어가더라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허름한 집을 보고 그들이 입고 다니는 낡은 옷을 보고 가난하다고 말한다. 못 산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않았는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

시읽는기쁨 2005.12.01

행복 / 박세현

오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뉴스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초창기 일화다 나는 그 시대에 감히 행복이란 말을 적어넣는다 - 행복 / 박세현 정말 이런 시절이 있었을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만큼이나 지금은 황당하게 들린다. 그러나 요사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뉴스의 내용이란 걸 살펴보면 왜 시인이 그 시대를 행복이라고 말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시는 노장사상의 '무위(無爲)'를 떠올린다. 세상은 점점 유위(有爲)로넘쳐나고, 그 속에서 무위의 삶이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결코 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행복은 사회 체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뉴스가 없는 세상은 불가능할까? 뉴스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사..

시읽는기쁨 2005.11.04

잠들고 싶지 않은 밤

잠들고 싶지 않은 여름밤이 있습니다. 불을 끄고 거실에 누우면 밤의 적막이 서늘한 바람을 몰고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만이 잔잔히 들려오는 고요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방에 누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창문으로 작은 별 하나 반짝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우주의 끝에서 수십만 광년을 날아와 지금 내 눈동자를 간지리는 빛의 신비에 전율하게 되는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불꽃놀이처럼 번갯불이 번쩍이며 천둥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천군만마의 발자국 소리로 소나기가 몰려옵니다. 비릿한 흙내음을 풍기며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지나갑니다. 와르르작작 통쾌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존재의 충일함으로 행복한 여름밤입니다. 하는 일도없이, 별 생각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만으로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

참살이의꿈 2005.07.26

행복에 관한 단상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르만 헤세의 시처럼 행복은 인간 삶의 으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결국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도 미래의 행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만약 그런 희망이 없다면 삶은 끔찍하게 잔인할 것이다.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하게 되기 위한 객관적 조건이 있는 것인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행복만큼 주관적이며 추상적인 것도 없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면,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불행에 젖어있는 사람도 있다. 행복은 단순한 자기만족 같기도 하고, 좀더 깊고 ..

길위의단상 2005.07.13

감사의 식탁

텃밭에서 먹을거리를 따와 애호박으로 부침개를 부쳐 막거리를 한 잔 합니다. 비가 오니 이렇게 여유가 있습니다. 날씨가 좋다면 무슨 일거리든 찾아서 땀을 흘리고 있을 텐데 오늘은 하늘이 말리는 모양입니다. 밖에서 리드미컬하게 들려오는 낙수물 소리와 텁텁한 막걸리 맛이 어우러져 선경이 따로 없습니다. '꾸뻬씨의 행복 여행'이란 책에 보면행복이란작은 집과 텃밭을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이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물론 더 이상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만 하겠지요. 다른 데에 한 눈을 파는 순간 분명 내 처지는 초라해 보일 것이고, 나는 다시 비교와 소유의 갈증에 허덕일 것입니다. 밭에서 금방 따가지고 온 것입니다. 완두콩, 꽈리고추, 고추, 피망, 가지, 오이, 토마토, 방울토마토......

참살이의꿈 2005.07.03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KBS2 TV의 ‘인간극장’입니다. 지난 주 인간극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제목으로 산골에서 살고 있는 젊은 부부의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명문대 출신의 30대 초반의 부부가 1년 전에 무주 산골로 내려갔습니다. 도시에서 잘 나가던 그들이 산 속 오지로 들어간 것은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화려한 도시 생활이 결코 내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과감히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문명의 혜택이나 욕망을 따르는 삶을 거부하고 그들은 산 속에서 지금 두 번째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도시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생활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떨 때는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참살이의꿈 2005.01.12

꾸뻬 씨의 행복 여행

꾸뻬 씨는 파리 한복판에 진료실을 갖고 있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의 진료실은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그는 의사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꾸뻬 씨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긴다. 마음의 병을 안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점점 더 피곤해졌고, 마침내는 자신 역시 불행해져 간 것이다.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다른 모든 지역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였다. 마침내 꾸뻬 씨는 진료실 문을 닫고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행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여행..

읽고본느낌 2004.09.19

[펌] 행복의 차이

# 1 아논드는 꿈 많은 여덟살. 가난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방글라데시의 소년. 아논드는 방글라데시어로 '희망'이란 뜻이란다. 가진 것은 없어도 두 눈에 가득 찬 푸른 하늘에 티 없는 마음을 싣고 훨훨 날 줄 아는 녀석이다. 공책과 연필도 없는 거적때기 위 수업시간 '단어'로 문장을 만들라는 선생님 말씀에 "단어야, 너는 발도 없는데 어쩜 그렇게 많은 사람 만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니." 읊조리는 녀석이다. # 2 서울의 K는 벌써 대입 고민에 빠진 여덟살. '팰리스'에 살지만 세상에서 제일 고달프다는 대한민국의 소년. K는 부모님이 "부자 돼라"며 어느 재벌 이름 따 지어주신 것이란다. PDA와 전자사전이 갖춰진 에어컨 빵빵한 학원에서 "사슴이ООО 봅니다"에 알맞은 단어를 채워 넣으라는 선생..

길위의단상 2004.08.23

莊子의 행복론

莊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옆의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패자(敗者)의 철학이야." 그리고 부연 설명을 했다. 사회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이 정신적으로 위안을 찾는 도피처일 뿐이라고. 사실이 그러하든 아니든 莊子는 내가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시절 나를 구원해준 책이었다. 아직도 수박 겉핥기식 莊子 읽기에 그치고 있고,莊子가 담고 있는 거대한 지혜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멍해지지만그래도 지금껏 莊子는 내 삶을 지탱해주는 큰 기둥이 되고 있다. 莊子 철학의 특징은 현세 너머를 가리키는 초월성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신비적 경향이 가미된 종교적 색채를 띄기도 한다. 중국의 토양에서 자라난 사상으로는 독특하지 않나 싶다. 莊子는사회적 관습에 따라 생활하고, 아무 비판없이 세속의 전제 조건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길위의단상 2004.02.20

행복한 사람

설을 지내면서 가장 많이 주고받은 인사말은 아마 `건강하세요`와 `복 많이 받으세요`였을 것이다. 세배를 다니면서 윗 어른들에게는 주로 건강을 묻게 된다. 시골 어르신들 대부분이 몸에 질병 한 두 가지는 달고 사시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복잡하고 오염된 환경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과도한 육체적 노동이 몸을 망가뜨리는 주범이 되고 있다. 현실은 도시나 농촌 모두 건강의 조건인 조화로운 삶에서 일탈되어 있다. 서로 건강을 기원하지만 사실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는 한 건강한 삶으로 가는 길은 멀어 보인다. 현대 사회의 특징이 병 주고 약 주는 사회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건강은 최고의 관심사가 될 것이고, 의료 산업은 번창할 것이다. 그래서 머리 좋은 학생..

길위의단상 2004.01.24

일희일비 않기

`살아보니까 내 인생에 즐거운 날은 몇 날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날들은 그 즐거운 하루를 즐긴데 대한 빚을 갚는 날이었다.` 어느 분의 글에서 본 구절인데 무척 공감이 되었다. 다만 즐거운 날이 몇 날 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살면서 우리가 겪는 사건들을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궂은 일도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짧은 인생이지만 우리는 많은 굴곡을 경험한다. 행복과 즐거움은 모든 사람이 원하지만 결코 삶은 뜻대로 되어 주지 않는다. 내리막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이 나타나고 평탄한 길이 지나면 가시덤불 우거진 숲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어떨 때는 늪을 통과해야 한다. 거기에는 맹수가 살고 있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한다. ..

참살이의꿈 2003.12.09

행복한 시간

자전거를 세워 놓고 강변에 앉아 석양을 본다. 퇴근할 때 자주 만나는 저녁 풍경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 한낮의 분주함과 소란함이 서서히 잦아들고 모든 사물이 무채색 속으로 스며드는 안식과 평화의 시간, 비록 하찮은 하루였을지라도 상처 입고, 상처를 주며 아쉽기만 한 하루였을지라도 어쩐지 모든 걸 다 사랑하고 용서할 것 같은 넉넉한 마음이 되는시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비록 도시의 한가운데지만 이런 저녁 무렵이 나는 가장 좋다.

사진속일상 2003.11.14

가을엔 편지를 띄우세요

가을비가 내린다. 도시의 아스팔트 길도, 노랗게 물들어가는은행나무 가로수도 비에젖고 있다. 내 마음도 비에 젖는다. 아침부터 분주하던 마음이 가을비에 젖어 차분해진다. 이러다가는 너무 가라앉을까 봐서 걱정이다. 또 우울증이 찾아 오면 어떡하나..... 그러나 적당한 우울과 쓸쓸함은 정신의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자연과 차단된 여기 사무실 가운데서도 빗소리는 나를 가을의 스산한 늪 속으로 빠지게 한다. [반가운 분이 보내준 갈대 사진 중 하나] 한참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분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 아름다운 가을에... 행복하세요.....` 짧은 내용이었으나 따스했다. 그리고 서정 가득한 가을 풍경 사진 여러 장을 같이 보내 주었다. 나도 오늘은 뜸했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띄어야겠다. 오해로 소원해진 여러 사..

사진속일상 2003.10.21

행복의 조건

나는 지금 행복한가? 글쎄다.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다. 약간은 어정쩡한 상태이지만 행복한 상태는 아니다. 때에 따라 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지금의 나는 불안하고 욕구 불만에 차 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크게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나의 바램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은 나의 개인적 성취일 뿐,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한 끼 끼니를 걱정하는 이웃이 있는데 혼자서호의호식하는 것이 참된 기쁨이고 행복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또어려운 형제를 못 본 척해 놓고 내가 어찌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게 다 그렇겠지 뭐 하는 소..

길위의단상 2003.10.18

그만큼 행복한 날이 / 심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심 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 메고 살금 살금 잠자리 쫒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 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아무 것도 먹을 것 없던 그 때가 어떻게 행복했을까?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워지기 때문일까? 그 때는 모두들 가난했지만 가난했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마음의 배고픔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허기에 져 있다. 조사에 따르면 세계의 빈국들에서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고 있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의 행복은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도가 지나친 풍족과 욕심은 공허와 권태라는 또 다른 선물을 가져다 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또 문명의 발전이라는 것은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

시읽는기쁨 2003.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