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 31

전라감영 회화나무

전라감영(全羅監營)은 조선시대 전라도의 행정, 사법을 담당하던 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이다. 조선왕조 초부터 전주에 설치되어 약 500년간 존속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북도청이 들어섰다가 2011년에 효자동으로 옮기면서 감영의 옛 모습을 복원중이다. 수령이 150년 정도인 이 회화나무는 남아 있는 감영의 유일한 흔적이다. 구 도청사 건물 철거 전에는 이 회화나무가 의회동 건물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복원된 선화당(宣化堂)은 전라감사가 집무를 보던 곳이다. '선화(宣化)'는 임금의 높은 덕을 받들어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1894년에는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군이 이곳에 지휘본부를 설치했다. 이 회화나무는 역사의 격변 과정을 모두 지켜봤을 것이다.

천년의나무 2022.04.30

사도세자 회화나무

영조 38년(1762년) 5월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8일 동안이나 뒤주 속에 가둬 죽게 했다.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뜰에서였다. 그때 비극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있다. 그중 하나는 줄기가 뒤틀리는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도세자의 비명을 들은 나무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이런 모양을 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일명 '사도세자 회화나무'다. 이 나무는 문정전에서 100여m 쯤 떨어진 선인문 앞 금천 옆에 있다. 실제로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는 문정전에서 이곳으로 옮겨졌고, 사도세자는 이 나무 부근에서 절명했다고 한다. 문정전에 더 가까이 있는 또 다른 회화나무 역시 온전한 모양은 아니다. 둘 다 궁궐에서 자라는 나무의 형태로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사도세자의 비..

천년의나무 2022.04.09

왕곡동 은행나무, 회화나무

중종반정 공신인 김우증(金友曾)이 임금한테서 하사 받은 땅이 의왕시 왕곡동 일대다. 백운산, 오봉산, 모락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김우증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고, 자연스레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마을이 형성된 초기에 심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김우증의 행적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수령은 500여 년이고, 나무 높이는 30m, 줄기 둘레는 6.9m다. 은행나무 옆에는 회화나무 보호수도 한 그루 있다. 수령은 120년, 나무 높이는 17m, 줄기 둘레는 4m다.

천년의나무 2020.08.19

백석리 상수리나무와 회화나무

충남 당진시 순성면 백석리에 있는 상수리나무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백석보건진료소에 들어갔다. 마침 소장님께서 이 나무를 기억하고 계시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한쪽 가지가 잘려서 균형을 잃었지만 나무는 전체적으로 훤칠한 멋쟁이다. 상수리나무는 참나무 형제들 중 하나다. 흔한 나무 중 하나지만 이렇게 독야청청 장수하고 있으니 특별하다. 수령은 230년이지만 줄기는 윤기가 날 정도로 싱싱하다. 나무 높이는 25m, 줄기 둘레는 3m다. 상수리나무와 가까운 곳에 회화나무가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어귀에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다. 나무 옆에 정자가 있지만 마을 주민이 자주 이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나무의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하고, 나무 높이는 18m, 줄기 둘레는 4.1m이다.

천년의나무 2020.06.22

관훈동 회화나무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에 있는 회화나무다. 나무 높이는 20m, 수령은 400년 정도로 추정한다. 이곳은 율곡 이이 선생이 살았던 집터라고 한다. 지금은 사방으로 빼곡하게 빌딩이 들어서 있고, 회사원들이 휴식시간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쉼터다. 나무를 보호한다고 돌로 울타리를 쳤지만, 나무의 생육 환경으로는 최악의 조건이다. 안내문에는 이곳 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에 이 일대가 '독녀혈(獨女穴)'로 묘사되어 있는데, 과부가 많이 생기는 좋지 않은 땅이라고 한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방법 중 하나로 큰 나무를 심었는데, 이 회화나무도 그런 의미로 봐야 한다는 해설이다. 큰 인물이 살거나 높은 건물이 들어서는 것도 효과가 있다. 지기(地氣)가 나쁜 땅이라도 대응 여하에 따라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 풍..

천년의나무 2019.05.09

남사마을의 오래된 나무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남사마을은 고가가 잘 보존되어 있는 전통 마을이다. 옛 담이 아름다워 '예담촌'이라고도 한다. 마을을 둘러볼 때 전통 가옥과 함께 오래된 나무를 만나보는 즐거움이 크다. 제일 유명한 나무는 '원당매'지만, 다른 오래된 나무도 여러 그루 있다. 1. 남호정사 매화나무(이씨매) 백매(白梅)로 희고 맑은 꽃이 핀다. 은은한 향기와 품격 있는 모습으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며 사랑을 받는 매화나무다. 수령은 150년 되었다. 2. 하씨고가 감나무 고려말 원정공 하즙(河楫)의 손자 하연이 어릴 때 심은 나무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수령이 600년이 넘는다. 안내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라 적혀 있다.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3. 선명당 매화나무(정씨매) 남사마을에서 가..

천년의나무 2019.03.22

죽헌동 회화나무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회화나무다. 수령이 60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나무 상태는 썩 좋지 못하다. 자라는 터도 옹색하다. 여기저기 가지가 잘려나가 나무 체통이 말이 아니다. '산림청 선정 100 보호수'에 이 나무가 선정되어 있다. 전설이나 설화가 전해지는 나무들이다. 이 나무는 율곡 선생이나 신사임당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나무의 연륜으로 볼 때 율곡 선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나무는 있었다. 소싯적에는 이 회화나무 아래서 놀았을 수도 있다. 오죽헌 주차장 옆에 있는 회화나무다.

천년의나무 2019.02.15

큰 회화나무 꽃 떨어진 무늬 / 한영옥

무더운 어느 하루라도 큰 회화나무에서 떨어진 꽃무늬는 참 좋다 줍고 싶을 만큼 태가 흐르는 것도 아니고 쓸어버려야 할 만큼 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제 그늘 안쪽으로 살풋하게 내려앉은, 흰빛에서 연둣빛 사이를 오가며 엮은 수수한 돗자리처럼 보이는 심심한 무늬가 두어 평 남짓 안에서 고요하다 수수한 자리에 슬며시 들어서서 몹시 우는 매미를 열심히 받아주노라면 이해 불가능에서 이해 가능으로 길이 꺾이고, 꺾이자마자 길은 곳곳이 맘 좋은 초록이다 몇 송이 꽃잎을 더 내려 앉혀주며 여름은 편하게 제 깊이를 다 펴고 한숨 잔다 고요한 그 사람의 속 깊은 염려 속인가, 생각수레 덜컹거리지 않아 악의(惡意)도 잘 잔다 꺾인 길섶으로 한참은 더 초록이 좋으리 큰 회화나무 꽃 떨어진 무늬는 좋기도 하지. - 큰 회화나무 ..

시읽는기쁨 2013.09.17

해미읍성 회화나무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박해의 상흔이 남아 있다.이 회화나무도 그중 하나다.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철삿줄로 머리채를 감고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하고 죽였다. 1790~1880년대에 일어난 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적어도 1천 명은 될 거로 추정한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붙잡혀온 신자 수가 너무 많아그냥 구덩이에 밀어 넣고 생매장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수령 300년 정도인 이 회화나무는 자신의 몸에 매달린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또한 얼마나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을 들었을 것인가. 그래선지 나무는 기력이 많이 상해 있다. 나무도 속울음을 슬피 울었으리라. 가톨릭에서는 이 나무를 순교목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해미성지 안에 있는 기념관..

천년의나무 2012.04.27

구월동 회화나무

이 나무가 있는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낮은 지역은 옛날에는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약 500년 전 이곳을 왕래하던 배에서 흘러들어온 씨앗이 자라 지금의 회화나무로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바다에서 왔다고 '해(海)나무'로 부른다. 회화나무는 작은 언덕에 있다. 전설대로라면 옛날에는 바다를 굽어보며 있었을 것이다.지금은 밭이지만 그때는 나무 주위에 동네가 있지 않았을까. 500년이라는 세월이 이곳을 어촌에서 농촌으로, 그리고 도시 지역으로 변모시켰다. 수령이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회화나무는 높이가 30m, 줄기 둘레가 6m 정도 되는 크기다.

천년의나무 2011.12.26

석촌동 회화나무

줄기는 대부분 인공수피로 매워져 있다. 가지도 몇 개 남아있지 않다. 사지가 절단된 채 중환자실에서 겨우 연명하는 환자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 나무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백제초기적석총 안에 있다.지금은 유적지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지만 전에는 민가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이 회화나무는 사람들의 시달림을 너무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대로 뒀다면 이미 생을 마쳤을 것이다. 나무 높이는 12 m, 줄기 둘레는 2.3 m이다. 수령은 250 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정도 나이면 회화나무로서는 한창 장년으로 멋진 수형을 자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파의 고통이 너무 컸다. 남아 있는 몸이나마 잘 건사해서 이곳의 맏형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주길 바란다.

천년의나무 2011.07.14

경운궁터 회화나무

서울시 중구 정동 도심 한복판에 넓은 공터가 있다. 옛 경운궁(慶運宮)이 있던 자리다. 1919년에 고종이 승하하면서 궁역이 축소되고 이 자리에 경기여고가 들어섰다. 1988년에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빈 터로 되었는데 지나다닐 때마다 늘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미국 대사관이 이곳으로 옮긴다는 말이 있었다. 빈 터 한복판에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들어가보고 싶지만 문이 닫혀 있고, 미국 땅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적혀 있어 멀리서만 바라볼 뿐이었다. 다행히 이번에 지나갈 때는 문이 열려 있어 몇 걸음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나무는 45도 정도 기울어진 채 지지대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다. 몇 년 전에 방화로 큰 손상을 입었다는데 끝내 회복되지..

천년의나무 2011.02.23

과천관아터 회화나무

현재 과천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과천시 중앙동 일대가 조선시대 때 관아터였다고 한다. 지금은 남아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 복원한 '온온사'도 자료가 없어 다른 곳의 객사를 모델로 하여 새로 지었다. 다만 군데군데 고목이 산재해 있어 이곳이 옛 관공서 터였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과천초등학교 옆에 있는이 회화나무는 아파트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이곳도 분명히 옛 관아터였을 것이다. 아무 데나 회화나무를 심을 수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수령이 5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키가 크고 늘씬하다. 500년 이상된 회화나무가 흔하지 않을 걸 고려하면 역사적이나 생태적으로 가치가 상당해 보인다. 아파트에서는 이 나무를 중심으로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아파트의 자랑이면서 동시에 과천의 자랑이 되는 멋..

천년의나무 2010.12.03

삼강주막 회화나무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삼강주막(三江酒幕)은 옛 삼강나루 자리에 있다. 이곳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수상 교통의 요지였다. 또한 영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강을 건너야 했다. 아마 보부상들이나 과객들로 북적거렸던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강에 둑이 놓이고 강을 가로지는 삼강교가 생겨 옛 나루터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우리 시대 마지막 주막이라는 삼강주막만이 남아 있다. 이 주막을 지키는 400여 년이 된 회화나무가 있다. 그나마 이 나무가 있어서 주막은 외롭지 않다.회화나무의 상징성으로 볼 때 이 나무는 옛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이곳에 들린 어느 선비가 심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무와 작은 주막이 아주 잘 어울린다. 만약 나무가 없다면 주막은 한없이 ..

천년의나무 2010.02.16

가곡리 회화나무

안동시 풍산면 가곡리는 남천고택 등 옛집들이 여럿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어서 마을의 연륜을 대변해준다. 이 나무는 수령은 300 년 가량 되었고, 높이는 11 m 정도다. 이 나무의 특이한 점은 보형재로 채운 줄기에 용이 승천하는 그림을 그려놓았다는 것이다. 여러 나무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총천연색 그림을 그린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별로 좋은 아이디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무는 자연 상태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것은 처음에는 눈길을 끌지만 곧 싫증이 나고 어색해진다. 나무 옆에는 이 마을 출신인 항일지사 권오설(權五卨) 선생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선생은 사회주의로 민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썼고, 1926년 6. 10 만세운동의 주동..

천년의나무 2010.02.08

달성공원 회화나무

대구 달성공원에 있는 이 회화나무에는 '서침나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서침(徐沈)은 조선 세종 때 문신으로 달성 서씨의 거주지였던 달성이 대구관아 부지로 정해지자 기꺼이 땅을 국가에 헌납했다고 한다. 세종은 뜻을 가상히 여겨 상을 내리려 했지만 서침은 개인적인 포상 대신 대구부민의 환곡 이자를 감해줄 것을 건의해서 성사시켰다는 얘기가 전한다. 북구 산격동에는 그를 기리는 구암서원(龜巖書院)이 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부민의 생활을 먼저 걱정한 뜻을 기려 달성공원에 있는 이 나무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이 회화나무는 높이가 16 m에 줄기 둘레는 2.8 m 정도다. 수령은 약 30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달성공원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0.01.16

신현동 회화나무

인천 시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가 있다. 서구 신현동에 있는데 나이는 500살이 넘었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어 집들이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지만 터가 넓어서 여유가 있고 관리도 잘 되고 있는 편이다.도시에 있는 대개의 나무들처럼 옹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무는 생육 상태가 좋아보이며 풍채가 당당하고 위엄이 있다. 키는 22 m, 줄기 둘레는 5.6 m에 이른다. 잎이 떨어진 회화나무는 가지의 실루엣이 멋있다. 마치 파마를 한 듯 고불고불하게 굽은 잔가지들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미인이 옷을 벗으면 더 아름답듯 나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겨울나무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이 나무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나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나무를 그리는 최적의 앵..

천년의나무 2009.12.23

송산면 회화나무

당진군 송산면 삼월리에 있는 이 나무는 조선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행(李荇, 1478-1534)이 이곳에 정착하며 심은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새로 집을 지으며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심었다고 한다. 회화나무를 학자수라고 부르듯 이 나무를 심으면 집안에 선비들이 많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이 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뻗은 균형 잡힌 모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화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에 찾아갔을 때는 여러 개의 가지가 잘려나간 상태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아직 싱싱한 상태였으나 일부 가지는 말라죽는 것 같았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계신 한 아주머니로부터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크고 당당한 모습만은 변함 없었다. 이 나무의 키는 2..

천년의나무 2009.07.30

호원동 회화나무

1호선 전철 회룡역에서 사패산을 오르는 길목에 이 회화나무가 있다. 행정지명으로는 의정부시 호원동이다. 의정부나 회룡이라는 지명은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왕위에 오른 이방원과 함께 할 수 없다며 이성계는 한양을 떠난다. 함흥으로 갔던 이성계는 마음이 풀어졌는지 태종 2년(1402)에 한양 가까운 곳으로 오는데 조정대신들이 정무를 논의하기 위해 자주 들렀다 해서의정부(議政府)라고 했다는 것이다. 회룡(回龍)도 마찬가지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니 회룡이라는 지명도 분명 이성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호원동 바로 위쪽에는 회룡사(回龍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도 이성계에 관계된 전설이 전하고 있다. 회룡사 입구에 있는 이 회화나무는 수령이 약 400여 년이 되었다. 높이는 ..

천년의나무 2009.07.10

동패리 회화나무

궁궐이나 향교 또는 한양의 양반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회화나무 고목을 시골 마을의 정자나무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설마 회화나무일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옛부터 회화나무는 선비[士]를 상징하는 나무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집에서는 기념으로회화나무를 심기도 했다. 회화나무가 왜 선비를 상징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나무의 생김새가 단정하고 가지가 시원하게 뻗어있어 학자의 자유로운 기상을 나타내기에 적당해서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잘 생긴 나무도 많으니 외모만 가지고 설명할 일도 아닌 것 같다. 파주를 지나다가 교하읍 동패3리에 있는 이 나무를 우연히 만났다. 나무는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무 높이는20 m이고 줄기둘레는4 m이며, 수령은 2..

천년의나무 2009.06.18

화동 회화나무

지금은 정독도서관이 있지만 예전에는 여기에 경기고등학교가 있었다. 행정명으로는 서울시 종로구 화동이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얕은 경사의 오르막길 옆에 이 회화나무가 있다. 보호수라는 입간판이 있지만 주변 환경은 나무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서있는 땅도 옹색하기 그지 없는데 마치 쓸데없는 물건이 괜한 땅을 차지하고 있다는 듯 천덕꾸러기취급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선지 나무도 그 크기에 따르는 위용이 느껴지지 않는다.지금은 주변이 무슨 공사중인지 더욱 어수선하다. 이 나무는 높이가 17 m, 줄기 둘레는 2.9 m이고, 나이는 약 200여 년이 되었다. 이왕 공사가 시작되었으니 나무 주위도 잘 단장해줬으면 좋겠다.

천년의나무 2009.01.05

충정로 회화나무

조선의 궁궐들이 몰려 있는 서울 종로구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많다. 옛 사람들이 회화나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아마 고목의 회화나무 밀도로는 이곳이 전국에서 최고일 것이다. 종로구 충정로 농협중앙회 앞 뜰에도 오래된 회화나무가 한 그루 있다. 수령은 약 500 년으로 추정되는데 노쇠한 흔적이 역역하다. 줄기의 대부분은 썩어서 보형재로 채워져 있다. 가지도 죽어서 그랬는지 여러 개가 잘려나갔다. 겨울이어선지 더욱 앙상해 보여안쓰럽게 느껴졌다. 이 나무는 중국 사신이 와서 기념으로 심은 것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이곳은 조선시대 때에는 어느 관청의 마당이었을지 모른다.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나무만 홀로 남았다. 그러나 나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나그네 역..

천년의나무 2008.12.22

읍내리 회화나무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 옛 동헌 건물 옆에 이 회화나무가 있다. 지금은 울타리 밖이지만 옛날에는 관아 건물들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회화나무와 관청은 잘 어울리는데, 예부터 선비들이 좋아했던 나무였기 때문이다. 이 회화나무는 숙종 29년(1703)에 생원과 진사에 급제한 사람들이 친목과 행정 자문, 그리고 학문을 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동헌 옆에 심었다고 한다. 그러니 수령은 300여 년 쯤 되는 셈이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6 m, 줄기 둘레는 3.8 m이다. 줄기는 두 갈래로 갈라져서 방사상으로 퍼져 있다.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주변은 어수선하다. 천연기념물에 올리는 것도 고려중이라는데 좀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08.10.17

덕수궁 회화나무

고궁에서는 어디서나 오래된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그것은 회화나무가 선비나 학자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옛날 주나라 봉건시대 때는 신분에 따라 무덤 주위에 심는 나무 종류도 달랐다. 천자는 소나무, 제후는 측백나무, 선비의 경우에는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회화나무는 중국에서 학자수 또는 선비나무로 불리었는데, 당연히우리나라에도 그렇게 전해져서 회화나무는 선비나 학식을 상징하는 나무로 되었다. 덕수궁에도 여러 그루의 회화나무 고목이 있다. 대략 300여 년이 된 나무들이다. 특히 이 회화나무에는 줄기에 큰 옹두리가 달려 있다. 옹두리는 나무 줄기가 상한 자리에 결이 맺혀 혹처럼 불퉁해진 것을 가리키는데 회화나무에 잘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회화나무를 중국에서는 괴(槐)라고 부른다. 중..

천년의나무 2008.04.22

정독도서관 회화나무

1970 년대에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 자리가 정독도서관으로 바뀌었다. 반가운 것은 지금까지 옛 교정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특히 오래된 본관 건물이나 강당 등을 그대로 도서관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옛 건물의 고풍스럽고 편안한 느낌이 도서관으로는 아주 제격이다. 운동장 한 켠에 수령이 300 년 정도인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마 70 년대 이전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분이라면 누구나 학창시절의 추억 속에 이 나무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에 시달렸는지 나무는 가지가 많이 잘라졌고 줄기마저 쇠 버팀대에 의지한채 불안하게 서 있다. 그 모습이 족쇄를 찬 죄수 같아 보기에 민망하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도 교문을 지나면 왼편으로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 쉬는..

천년의나무 2008.04.05

우정총국 회화나무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는 옛 우정총국(郵征總局) 건물이 한 채 남아 있다. 이곳은 근대식 우편 사무를 취급하기 위해 고종 21년(1884)에 설치한 관청이었다. 이 우정총국 건물이 완공되어 축하 연회를 여는 것을 기회로 삼아 김옥균 등의 개화파는 집권 사대당을 제거하고 신정부를 조직하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비록 3일 천하로 끝났지만 여기가 바로 그 역사적 현장인 셈이다. 옛 우정총국 마당 한가운데에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이가 들기도 했지만 나무는 굉장히 허약해 보이고 상처 투성이다. 줄기는 반 이상이 패여 보형물로 채워져 있다. 더구나 줄기는 휘어져 기둥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마치 꼬부랑 할머니와 같다. 이 나무는 갑신정변의 현장을 비롯해 우리의 근대 역사를 바로 옆에서 지켜 보았을 것이다. 그래..

천년의나무 2008.04.01

조계사 회화나무

오랜만에 들린 조계사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의 대대적인 정비로 깔끔해졌지만옛 모습에 익숙해서인지 왠지 낯설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경내에는 아직 마무리 공사가 진행중이다. 조계사 대웅전 마당 한가운데에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다. 나이는 450 살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26 m, 둘레는 4 m에 이른다. 예전에 여기는 조계사를 중심으로 회화나무 숲이 있었다는데, 그래서 이곳이 회화나무 우물골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언젠가 4 월 초파일에 조계사를 찾았을 때, 이 나무 줄기에서 방사상으로 뻗어나간 오색의 연등 물결이 무척 아름다웠었다. 물론 당시에는 나무에는 관심이 없었고, 이 나무가 회화나무인지도 몰랐다. 경복궁과 같은 궁궐이 많은 이쪽 동네에는 특히 오래된 회화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회화나무는..

천년의나무 2008.03.27

정동 회화나무

서울에 있는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꼽으라면 정동의 덕수궁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길은 덕수궁 대한문에서 서대문 쪽 경향신문사까지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곡선의 길인데 문화와 역사가 서려있는 무척 분위기 있는 길이다.이 길을 한 번 걸어보면 서울에도 이런 길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이 길에 오래 된 회화나무가 있다. 바로 앞에는 이번에 신축한 캐나다 대사관이 있는데 이 나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건물을 뒤로 물러서 건축했다고 한다. 공관 착공 당시에 이 나무는 고사 직전이었다는데 나무를 살리기 위해 애를 많이 썼고, 그리고 건물도 뿌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로 물러 짓는 등 많은 노력 끝에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이런 공로로 이번에 환경재단이 ..

천년의나무 2008.01.02

궁정동 회화나무

궁궐이나 그 주변에서는 오래된 회화나무를 자주 볼 수 있다. 회화(懷花)나무를 중국에서는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부른다는데 주나라 때부터 궁내에 심었다고 한다. 나무 자체가 단정하고 품위가 있으니사대부들이 좋아했을 것은 당연하다. 이 회화나무는 서울시 보호수로 청와대와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예전에 안가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무궁화공원으로 변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 아마 이 회화나무는 안가의 담장 안에서 그때의 비극적 장면을 생생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작은 안내문에는 수령이 3백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무 가까이에는 접근할 수가 없다. 바로 옆이 청와대라 경비원들이 일반인의 왕래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찍기 위해 조망이 좋은 길 건너편에가..

천년의나무 2007.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