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7631

3년

3년이라는 기간을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을 시작하고 그 맛에 빠져든다거나 또는 실망해서 포기해 버리기에는 충분한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심3일'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걸 큰 규모로 확대시키면 '작심3년'이라는 말도 성립될 것 같습니다. 3년 동안 어느 일에 젖다 보면 그 일에 대해 품었던 환상이 벗겨지면서 어느 정도 실상이 드러날 테니까 말입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리고 첫발을 내디딘 사람일지라도 계속 꿈을 이루어가는 가는 사람은 또 드뭅니다. 주변을 살펴 보면 대체로 3년이 지나면서부터 활력을 잃으면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기간이면 여러 가지 예기치 못했던 문제에 부딪쳐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경우 ..

참살이의꿈 2005.06.13

[펌] 돌밭에서 줄기세포를 생각하다

차일피일하다간 모종 심을 시기를 놓칠 것 같아서 재래시장에서 고구마와 고추 모종을 구했다. 마사토의 표면을 띠고 있었으나 밭에 손을 대는 순간, 땅 속에는 엄청난 돌이 박혀 있었다. 각오한 일이지만, 벌써 땡볕에 사흘째 엎드려 돌을 골라내도 끝이 안 보인다. 큰 돌은 작은 돌들을 뿌리처럼 거느리고 있었다. 이런 돌밭에서 곡괭이질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호미로 먼저 잔돌을 골라낸 뒤, 곡괭이질을 해야 큰 돌이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을 캐면서 최근 유례없는 감탄과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국보급 과학자’ 황우석 교수 생각이 났다. 왜 그가 떠올랐을까. 내색을 자제했지만 영 심기가 불편했나 보다. 혹은 그쪽 세계와 돌을 골라내고 고구마와 고추를 심으려는 내 돌밭의 현실과의 현격한 차이 때문이었을 것..

길위의단상 2005.06.11

집에 대하여 / 안도현

손에 흙 하나 묻히지 않고 집을 갖는다는 것은 저 제비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볏짚 한 오라기 엮어 얹지 않고 진흙 한 톨 물어다 바르지 않고 너나 없이 창문 큰 집을 원하는 것은 세상에 그만큼 훔치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인가 허구한 날 공중에 떠서 살아가다 보면 내 손으로 땅 위에 집을 한 채 초가삼간이라도 지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혹시 바람에 찢기도 무너진다 해도 훗날 내 자식새끼들이 자라면 꽁지깃을 펴고 실패하지 않는 집을 다시 지을 테니까 - 집에 대하여 / 안도현 남은 내 꿈의 중의 하나는 내손으로직접 내 집을 지어 보는 것이다. 언젠가 넥타이를 벗어 던지게 되는 날이 오면 그 꿈은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믿고 있다. 흙을 올리고, 나무를 세우며, 1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작은 집 한..

시읽는기쁨 2005.06.10

그리움

무엇이 그리운지 풀은 갈 수 없는 땅 위로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여기는 인간의 땅이야, 너희들은 오지 마. 너와 나의 경계를 가르는 백색의 선 - 그 너머도 예전에는 풀들의 고향이었다. 변방으로 내몰린 인디언들처럼 나중에는 풀들도 쫓겨나 야생풀 보호구역에서나 볼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리움에 몸을 흔들며 자꾸만 키가 크고픈 고요한 한낮.

사진속일상 2005.06.09

열대수련

터에 가는 길에 세미원(洗美苑)이 있어 가끔씩 들린다. 세미원은 온실 안과 바깥 연못에 여러 종류의 연꽃을 기르고 있는데, 세미원이라는 이름은 '觀水洗心 觀花美心'(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번에는 어리연꽃이 피었을까 기대를 했지만 수련 몇 송이만 피어 있어서 썰렁했다. 대신 산책로를 따라 붓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수련과에 속하는 연꽃과 수련은 물에 대한 꽃의 위치로 구분한다. 연꽃은 꽃이 크고 물 위로 높게 올라와서 꽃이 핀다. 반면에 수련은 꽃이 작으며 대개 수면에 붙어있다. 세미원의 온실 안에는 기온 탓인지 주로 열대수련을 기르고있다. 아무래도 색깔이 진해 연꽃의 분위기가 잘 전해오지 않는다. 마치 서양난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

꽃들의향기 2005.06.08

무지한 사람들

‘최근 송진이 몸에 좋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남산 소나무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무분별하게 소나무 껍질을 도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 남산을 오른다는 한 시민은 “얼마 전 한 부부가 칼로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있길래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송진향을 맡으면 건강에 좋다’고 대답해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난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럽기조차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이기성과 잔인하고 천박한 속성이 무섭습니다. 그놈의 어두운 기운은 분명 전 생명체를 파괴시키고 말 것 같습니다. 터에 내려가면 가끔씩 뒷산에 오릅니다. 외딴 시골에 ..

참살이의꿈 2005.06.07

수도자에게 보낸 편지

‘수도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소로우의 향기를 다시 맡는다. 소로우의 글은 탁한 세상에서 머리를 맑게 해주는 청량한 솔바람이다. 삶에 지치고 답답할 때 그의 글을 읽으면 새로운 생기가 돋는다. 그의 글은 살아있다. 내용을 떠나 아름다운 영혼의 옆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행복하다. 1847년 소로우의 나이 30세 때 그는 월든 호수에서의 오두막 실험 생활을 마치고 콩코드로 돌아온다. 그 1년 뒤부터 블레이크라는 친구와 13 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소로우가 블레이크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이 이 책이다. 블레이크가 세속적인 삶에 환멸을 느끼고 영적으로 굶주려 있을 때 더 진실하고 더 순수한 삶의 방법을 묻는 편지를 소로우에게 부치면서 두 사람의 편지는 시작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진리를..

읽고본느낌 2005.06.04

바위취

바위취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데번식력이 아주 좋다. 꽃잎 모양이 특이한데 위에 달린 석 장은 크기가 작고, 아래에 있는 두 장은 길게 뻗어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모양이 한자의 큰 대[大]자를 닮았다. 그래서 '대문자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위취를 보고 큰 대자를 모른다'는 속담도 생겨날 법 하다. 또 잎의 생김새에서 유래된 듯한 '범의귀'라는 이름도 있다. 터의 집 뒤에 수녀님이 주신 바위취를 10여 포기 심어 놓았는데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선지 아직은 처음 심은 그대로이다. 아마 내년이면 화사한 바위취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한다.

꽃들의향기 2005.06.03

존재하지 않는 세계

대림미술관에서 장 보드리야르 사진전을 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며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사상가가 사진전을 연다고 하는 것이 우선 흥미로웠다. 장 보드리야르는 지난달에 열린 서울국제문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독창적 이론인 ‘시뮬라시옹(Simualtion)'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시뮬라시옹은 실재가 가상실재로 전환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을 ’시뮬라크르(Simulacra)‘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가상실재의 세계, 즉 시뮬라크르의 환상 속인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걸프전이 한창일 때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

읽고본느낌 2005.06.02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결국은 나에게서 출발한다. 내가 아름다운 한송이 꽃이 될 때 세상은 이미 꽃밭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를 버려두고 너와 우리를탓한들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나 하나 만이라도'라는 마음이 많아질 때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아, 절망하지 말고 내 속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가꾸자. 온 우주를 대하듯 정성드려 예쁜 꽃 한 송이를 피워내자.

시읽는기쁨 2005.06.01

진보는 단순화입니다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달력이 숨 가쁘게 휙휙 넘어갑니다.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싶으면 어느덧 주말이 다가와 있고, 월초다 싶은데 어느 순간 월말이 되어 있음에 놀랍니다. 며칠째 계속되는 초여름 날씨가 그런 느낌을 더해줍니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탁상 달력에는 간디가 물레를 돌리고 있는 그림과 함께 신영복님의 ‘진보는 단순화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매일 이 글을 보며 한 달을 지냈습니다. 짧은 한 줄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한 때 진보와 보수의 논쟁이 시끄러웠습니다만,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정치판에서 서로 싸우는 모습은 비슷한 도토리들이 서로 자기 키가 더 크다고 다투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서울 시장이 대학 강연을 다니..

참살이의꿈 2005.05.31

경복궁 향원정

퇴근하며 옆의 동료와 경복궁에 들리다. 평일의 늦은 오후여서인지 고궁은 조용하다. 늘 단체 관람객들로 시끌벅적하던 경복궁이 인적이 그치니 제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문을 닫는 오후 6시가 가까워지니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고궁은 적막 속에 잠긴다. 경복궁의 뒤에 있는 향원정은 그래서 더욱 고즈넉하다. 1870년 대에 향원지라는 연못을 파면서 지었다는데 나무로 만든 저 다리가 향기에 취한다는 취향교(醉香橋)이다. 이곳은 왕실 전용 휴식공간으로 아마도 가장 은밀한 곳이었을 것이다. 향원정 둘레의 연못에는 노랑어리연꽃과 수련이 곱게 피어있다. 이 어리연꽃을 구경하러 찾아온 사람들이 연못 둘레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풍경이 평화롭다. 어느 분은 햇빛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연꽃의 색깔을 본다며 몇 시..

사진속일상 2005.05.30

비관적으로 바라보기

악마가 말했다. “자식이 있는 자는 자식 때문에 기뻐하고, 소가 있는 자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인간이 집착하는 것은 기쁨이다. 집착할 것이 없는 자는 기뻐할 일이 없다.” 붓다가 대답했다. “자식이 있는 자는 자식 때문에 근심하고, 소가 있는 자는 소로 인해 근심한다. 실로 인간의 근심은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데서 생겨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자는 근심할 일도 없다.” 같은 대상을 두고도 바라보는 관점은 서로 다르다.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악마는 소유물을 기뻐했지만, 붓다는 소유물에 대한 집착을 부정했다. 낙관적 세계관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며 우리 사회는 그런 가치관을 지향하도록 가르친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정신병자 보듯이 하기도 ..

길위의단상 2005.05.27

팔복 / 윤동주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 팔복 / 윤동주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의 슬픔의 무게는 얼마쯤 되었을까? 끝날 것 같지 않은 사무치는 슬픔에 잠겨있었을 시인의 여리고 순수한 심성이 안타까워서내 마음도 막막해진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라고 했지만, 슬픔은 뒤에 올 위로로 인하여 복된 것이 아니라, 슬픔 그 자체가 복되다고 시인은 말하는 것 같다. 시류에 편승하고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는 기쁨과 행복이라면 그것은 저주받은 기쁨이며 행복일 것이다. 이 시가 ..

시읽는기쁨 2005.05.26

천남성

요사이 산에 오르면 심심치 않게 천남성을 만날 수 있다. 천남성은 꽃이 특이하다. 색깔이나 모양이 보통의꽃과는 다르다. 생긴 모양이 꼭 코브라가 고개를 치켜들고 서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 그대로 천남성은 독성이 있다고 한다. 가을에 열리는 열매 또한 특이하다. 빨간 열매들이 뭉쳐있는 모양에서는 예쁘다기 보다는 뭔가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왜 이름이 천남성(天南星)일까? '하늘 남쪽의 별' - 그러나 아무리 바라보아도 별과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천남성은 나무 아래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데, 아무리 고개를 쳐들어도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별이 그리워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이름을 가르쳐주던 친구가 천남성을 '첫남성'으로 기억한다면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

꽃들의향기 2005.05.25

손맛

지난 주에 남대문에 나가서 니콘 D70을 샀다. 디카로 넘어오면서 그동안 소형의 자동 카메라를 사용했는데 휴대성이 좋고간편해서 마음에 들었지만내 의도대로 사진을 만들지 못하는 단점이 점점 크게 느껴졌다. 전에 SLR 필카를 썼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이번에 큰 마음 먹고 DSLR인 D70 바디를 산 것이다. 필카 때 쓰던 렌즈가있어서 그냥 이용할 수 있기에 선택에망설임은 없었다. 렌즈는 18-35mm, 80mm, 105mm 마크로, 180mm가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부족함이 없다. 아쉽다면 이 디카에서는 거의 1.5배 정도 망원쪽으로 편향이 되어 광각 효과가 약화된다는 사실이다. 낚시꾼들은 종종 손맛이라는 말을 쓴다. 오랜만에 손에 꽉 차는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어보니 똑딱이에서는 느낄 수 없..

사진속일상 2005.05.24

나무에 약을 치다

분무기를 매고 처음으로 농약을 뿌렸습니다. 약은 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경계수로 심어놓은 회양목이 고사 직전 상태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징그럽게 생긴 벌레는 떼어낼 수가 있다지만 새까맣게 붙어있는 알들은 어찌할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수 십 그루가 되는 회양목을 베어낼 수도 없었습니다. 회양목이 이렇게 벌레가 많이 끼는 나무인 줄 알았다면 심지 않았을 텐데 하고 지금은 후회를 합니다. 이왕 버린 몸이 되었다고 나머지 나무들에도 농약을 쳤습니다. 나무 중에서는 벚나무가 그 다음으로 벌레에 취약한 것 같습니다. 작년에 벚나무 한 그루에 연초록의 큼직한 벌레들이 달라붙어 나뭇잎을 갉아먹기에 모두 잡아주었더니 그 뒤로는 괜찮았습니다. 나무를 심고 길러보니 나무마다 성향이나 기질이 다 다름을 알 수 있..

참살이의꿈 2005.05.23

철새는 날아가고

‘천수만 지역 주민들이 관광단지 개발에 반대하는 평화적 시위를 했다. 정부는 이 지역에 복합레저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어제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농민이 대부분인 주민들은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도 거부하고 철새 도래지인 이곳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돈 보다는 환경이, 자연과의 공존이 더욱 중요함을 농민들은 보여 주었다.’ 이것은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본 신문 기사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천수만 지역 주민들이 철새들을 내쫓는다고 갈대밭에 불을 지르고 폭죽을 터뜨리는 충격적인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환경부에서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인 이곳을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모든 개발이 금지되기 때문에 관광도시와 웰빙특구를 추진 중인 천수만..

길위의단상 2005.05.21

모란

모란을 보면 중국이 연상된다. 원산지가 중국이기도 하거니와 꽃의 모양이나 색깔이 왠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옛부터 화중왕(花中王)이라고 꽃 중의 제일로 쳤다지만, 활짝 핀 모란은 그 풍성한 자태가 도리어 부담이 될 정도로 나로서는 예쁘다는 느낌은 별로 갖지 못했다. 선덕여왕이 아직 어렸을 때의 얘기다. 중국에서 얻어 온 모란꽃 그림을 보여주니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웃으며 물으니 "그림에 벌, 나비가 없으니 이는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종자를 심어보니 과연 말대로였다.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말해주는 일화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 얘기도 조금 비틀어보면 그림에 나비가 없다고 해서 향기가 없다고 단정..

꽃들의향기 2005.05.20

너무 많은 것들 / 긴스버그

너무 많은 공장들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맥주 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철학 너무 많은 주장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공간 너무나 부족한 나무 너무 많은 경찰 너무 많은 컴퓨터 너무 많은 가전제품 너무 많은 돼지고기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 아래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담배 연기 너무 많은 종교 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양복 너무 많은 서류 너무 많은 잡지 지하철에 탄 너무 많은 피곤한 얼굴들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나 부족한 잣나무 너무 많은 살인 너무 많은 학생 폭력 너무 많은 돈 너무 많은 가난 너무 많은 금속 물질 너무 많은 비만 너무 많은 헛소리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침묵 - 너무 많은 것들 / 알렌 긴스버그 현대 문명이 번성한 20세기는 동시에 파괴와 자학의 세기이기도 했다. 지..

시읽는기쁨 2005.05.18

건설공화국

대한민국은 건설공화국이다. 과거에는 시장의 별명이 '불도저'인 때도 있었다. 그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파괴한 청계천을 복원 시키느라고 다시 몇 년째 대공사를 벌이고 있다. 도시고 농촌이고 어디를 가나 허물고 파헤치느라 국토는 망신창이가 되었다. 특히 고속철도의 고가 구조물은 아무리 보아도 흉물스럽기만 하다. 특히 새만금 방조제, 지방 공항등 정치나 경제 논리에 의해 시행된 대규모 사업들의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본은 멀쩡한 아파트도 헐어 버린다. 말 그대로 '공사를 위한 공사'로 보이는 쓸데없는 짓거리들이 널려져 있다. 오직 고용 창출과 성장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벌어지는 것이다. 자연의 훼손과 생명 파괴는 안중에도 없다. 집 앞에서 대형 주상복합 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몇 ..

사진속일상 2005.05.17

작물 심기를 마치다

어제로 텃밭에 작물 심기를 대락 끝냈습니다. 그동안 한 달여에 걸쳐 심은 작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옥수수 300포기 - 수확 시기를 다르게 하기 위하여 두 주 간격으로 세 번에 걸쳐 심음(4/17, 5/1, 5/.15). 빨간 씨앗 옥수수와 강원도 옥수수 두 종류. 감자 100포기 - 강원도에서구해온 감자씨를 심음(4/17).현재 잘 자라고 있음. 콩 160포기 - 강낭콩, 노란콩, 검정콩, 완두콩, 서리태 등 구할 수 있는 콩은 다 심어 봄4/24-5/15). 덩굴을 타고 올라가는 완두콩에 기대가 큼. 고구마 60포기 - 집에서 낸 고구마 싹을 심었으나(5/1) 절반이 말라 죽음. 이번 주말에 모종을 사서 다시 심을 예정임. 호박 12포기 - 작년에 비해서 수량이 줄어듬. 4/17에 심었는데 이제 떡잎..

참살이의꿈 2005.05.16

한 장의 사진(2)

이 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9년 가을, 학교 운동장에서 찍은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닌 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였지만 가을 운동회는 거창하게 치렀다. 아마 그 때 포크댄스가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그 해 운동회 때는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포크댄스 경연을 했다. 뻣뻣한 남학생들이 포크댄스를 배우느라고 오후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연습에 몰두했다. 처음 접해보는 부드러운 리듬과 몸동작을 따라가지 못해 연신 웃음보를 터뜨리던 기억도 난다. 옆에 있는 여학교에서 파트너를 초대하자고 학교 측에 건의를 했지만 결국은 우리들 절반이 여장을 하고 대회를 열었다. 키 작고 곱상하게 생긴 아이들이 여자 파트너 역을 맡았다. 나는 친구의 누나 옷을 빌려서 입었는데 진짜 여자 같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이 사..

길위의단상 2005.05.14

피나물

우리 야생화가 좋아서 산으로 들로 꽃을 찾아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밖에만 나가면 처음 보는 꽃들을 몇 개씩 만나곤 했다. 도감을 찾아보며 이름을 확인하고, 예쁜 모습을 눈에 새길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손때 묻은 옛 도감을 펼쳐보니 피나물 설명이 나오는 페이지에 이렇게 적어놓은 것이 보인다. '1996/4/28 청평사', 그 날은 피나물을 처음 만난 날이다. 눈을 감으니 9년 전 그때의 정경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맑은 봄날이었다. 아내와 같이 멀리 춘천에 있는 청평사로 나들이를 떠났다. 봄나들이 겸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소양호를 배를 타고 건너서 청평사로 가는 길 옆에서 환하게 피어 있는 이 꽃을 처음 만났다. '와-' 하며 뛰어 가서 도감을 통해 피나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즐겁고..

꽃들의향기 2005.05.12

봄 / 조태일

봄이라는 계절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진한 향기가 나는 방대한 한 권의 책 이 책을 펼쳐보지 않으시렵니까? 잔설이 애처로이 새하얗게 반짝이고 냉잇국 향내 스며도는 그런 이야기들이 송사리떼 희살대는 실개울처럼 흐르기도 한다네요 아니 봄풀, 봄꽃들이 다투어 태어나 한바탕 어울어지는 봄빛 속을 봄바람이 불어대니 처녀애들 치맛자락 들치듯 한 장 한 장 책장이 저절로 넘겨집니다 그럴 때마다 봄향기 풀풀거리네요 봄 내내 집을 비우고 봄나들이 해도 집에서 쫓겨나지도 않을걸요 평생에 이런 봄 백 번쯤 온답디까? 그러니 봄이라는 책 속에 묻히지 않으시렵니까? 그런 봄기운에 그냥 몸을 맡기지 않으시렵니까? 그냥 봄잠에 취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눈을 감아도 그냥 보이는, 봄이란 책 속에 취하지 않으시렵니까? - 봄 / 조..

시읽는기쁨 2005.05.11

조계사 연등

퇴근길에 조계사에 들러 연등을 구경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빨강, 분홍, 초록, 노랑, 파랑의 무수한 연등들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조계사에서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저 연등 하나 하나에 깃들어 있는 사람들의 기원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부처님이 왕궁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분이 도달한 구경각(究竟覺)의 경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불교의 사상은 심오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특히 공(空)이라든가 무심(無心), 무소유(無所有)의 지향은 늘 내 가슴을 설레게한다. 비록 지금은 기복적인 경향이 커졌지만, 그러나 깨침에 이르려고 하는 불교의 기본 정신은..

사진속일상 2005.05.10

느리고 어수룩한

정화조가 고장난 것이 한 달여 전인데 기사분이 그저께야 찾아왔습니다. 수리 요청한지 6주 만에 응답을 한 것입니다.그동안 똑 같은 말이 저와시공자 사이에 오갔습니다. "이번 토요일에도 사람이 안 나왔어요."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다음 번에는 꼭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런 말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고서야 한 일이 끝난 것입니다. 저의 집을 지은Y건축회사 사장님은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늘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사업을 하시는 분 같지 않게 느릿느릿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이 좋다고 소문이 났는데, 단점이라면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화조 수리도 부탁한지 한 달이 지나서야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웃집의 경우는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해주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그래도 밉지가 않습니다. 웃는 얼굴..

참살이의꿈 2005.05.09

화살과 노래 / 롱펠로우

하늘을 향해 나는 화살을 쏘았네 화살은 땅에 떨어졌으나 간 곳을 몰랐네 너무도 빨리 날아가 버려 눈으로도 그 화살을 따를 수 없었네 하늘을 향해 나는 노래를 불렀네 노래는 땅에 떨어졌으나 간 곳을 몰랐네 눈이 제 아무리 예리하고 빠르다한들 날아가는 노래를 누가 볼 수 있으랴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느티나무에 부러지지 않고 박혀있는 화살을 나는 보았네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것을 나는 알았네 - 화살과 노래 / 롱펠로우 I shot an arrow into the air;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For, so swiftly it flew, the sight Could not follow it in its flight. I br..

시읽는기쁨 2005.05.07

비 오는 날의 공상

봄비가 내린다. 어제 저녁에 시작된 비가 밤새 내리더니 오늘 낮까지 이어진다. 지금은 이슬비로 변해서 멀리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안개에 잠긴 듯 희뿌옇다. 며칠간 계속되던 더위가 도망을 가 버렸다. 또한 농촌에는 고마운 단비가 될 것이다. 밭에 심은 모종들이 건조한 태양의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봄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공상에 잠긴다. 이런 날은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서 한적한 바닷가에 가고 싶다. 그리고 인적 드문 해안가를 쓸쓸히 걷고 싶다. 옆에는 사랑하는 그녀가 있다. 말이 없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반가운 사람이다. 바닷가 작은 카페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면 마음까지 따스해질 것이다. 넓은 유리창으로는 빗줄기가 사선을 그으며 낙..

길위의단상 2005.05.06

꽃사과나무

이사 온 이곳 동네에는 주변에 꽃사과나무가 많다. 둘레의 화단이나 인근 공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의 주종이 꽃사과나무이다. 가을에는 빨간 열매가 보기 좋더니, 봄이 되니 하얀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처음에는 분홍색 봉오리가 맺히더니 꽃이 피면서 하얀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온 나무가 하얗게 덮인다. 이름이 예쁜 꽃사과나무는 관상수로서 아주 좋을 것 같다. 또한 열매는 새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찾아오는 새들이 없어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데, 나무밑에 주차해 있는 차들이 떨어진 열매의 진액으로 지저분해진 것을 자주 보았다. 봄의 하얀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빨간 열매, 마당의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꽃사과나무 한 그루 쯤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꽃들의향기 2005.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