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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 폐염전

외롭고 쓸쓸할 때는 쓸쓸한 풍경과 만나러 가자. 슬픔은 슬픔으로 위로받고, 쓸쓸함은 쓸쓸함으로 인하여 위안을 얻는다. 서해의 소래 포구 폐염전 - 한때는 하얀 소금의 산을 이루며 번성을 누리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갈대만 무성한 황폐한 들판이 되었다. 폐염전이야말로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가장 스산하고 쓸쓸한 풍경이다. 어디 그런 것이 소래 포구만이랴? 우리의 인생살이에서도 한 번의 영화가 지나면 쇠락의 쓸쓸함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다만 영광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더 이상 소금을 생산하지 않는 바닥에는 풀들이 무성하다. 처음에 염전 바닥은 흙으로 된 토판(土板)이었다. 그 뒤에 항아리 등 옹기 깨진 것으로 바닥을 깔았고, 나중에는 검은 타일을 사용함으로써 소금 채취 작업..

사진속일상 2005.01.24

지율 스님

지율 스님의 소식이 안타깝다. 80여일의 단식 중에 홀연히 잠적해서 가까운 사람들도 그 행방을 모른다고 한다. 지난 번 법원 판결 이후 스님이 내건 조건도 많이 완화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정부 측에서는 '법대로'를 외치며 무시해버리는 듯해서 더욱 우울하다. 스님의 단식에 대해 일부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천성산이라는 지역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스님이 말하는 대로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자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으로 보아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고 또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어 생존할 수도 없다. 그런데 현대 문명과 인간이 가진 힘은 이제 자연을 이용하는 정도를 넘어 자연을 훼손하고 뭇 생명을 파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젠 그런 예를..

길위의단상 2005.01.23

겨울나무

산꼭대기에서 눈꽃을 피우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았다. 기온은 영하 15도 가까이 떨어지고 바람도 거세 서 있기도 힘든 날씨였다. 나뭇가지에 핀 눈꽃도 바람에 쓸려 한쪽으로 피어있다. 동물은 굴속에 숨거나 겨울잠을 자며 이 계절을 견디지만, 나무는 자기 자리에서 한 발도 비켜서지 않은 채 혹한의 계절을 이겨낸다. 미리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몸 안의 물기를 빼낸 뒤 겨울나무는 홀로 서 있다. 철저한 자기 부정과 비움을 통해 차가운 칼바람과 맞서는 것이다. 아마도 겨울나무는 바깥 냉기보다 더 차가운 얼음덩어리 하나 기르고 있을 것이다. 스키장에 가는 동료들을 따라나선 길이었다. 처음 가본 스키장은 예상 외로 규모가 컸다. 스키장 진입로 수 km에 걸쳐 숙박업소, 음식점, 장비 대여업소, 일반 상점들이 빽빽하..

사진속일상 2005.01.22

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 가리라 한 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 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

시읽는기쁨 2005.01.17

갑곶리 탱자나무

집 울타리로 무슨 나무가 좋은지를 물어볼 때 탱자나무를 추천하는 사람은 대개 고향이 남쪽 지방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탱자나무에 얽힌 추억담 한 두 가지 정도는 들려준다. 탱자나무는 추위에 약하다. 내 고향만 해도 탱자나무를 보기는 힘들었다. 옆 마을의 어느 집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는데 가을에 달린 노란 탱자 열매가 겨우 기억나는 정도다. 며칠 전 강화도에 간 길에 갑곶돈대에 들러 천연기념물 78호인 이 탱자나무를 만났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서 자라는 탱자나무라고 한다.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산하는데 울타리로 본 키 작은 탱자나무만 연상하다가 만나서인지 이렇게 큰 탱자나무도 있나 싶게 거목이다. 물론 다른 나무가 400년이 되었다면 엄청나게 더 클테지만,극한 한계의 조건에서 긴 세월..

천년의나무 2005.01.16

서해 낙조를 보다

강화에 가서낙조를 보다. 연일 춥던 날씨가 좀 풀리고 양지 바른 곳에서 쬐는 햇볕은 봄햇살처럼 부드러운 날, 친구와 강화도를 나들이를 가다. 갑곶돈대에서는 갯펄에서 졸고 있는 오리들도 보고, 400년이 되었다는 탱자나무도 보고, 그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복고풍이 불었는지 길가 얼음판에는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도 덩달아 즐거워한다. 철사를 바닥에 깔고 창으로 찍어서 앞으로 가는 얼음썰매를 옛날에 우리는 '씨갯도'라고 불렀다. 그때는 스케이트를 타보근게 소원이었는데 이젠 인기 순위가 바뀌었다. 현대는 원시를 그리워하나 보다. 섬의 서쪽 해안가에는 '조단(照丹)'이라는 찻집이 있다. 저녁 무렵이면 손님이 많아지는 전망 좋은 찻집이다. 밖에서 보는 낙조도 아름답지..

사진속일상 2005.01.15

소의 전설

'작은 것이 아름답다' 1월호에서 옛 생각이 나게 하는 글 한 편을 만났다. 상주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오덕훈 님이 소에 관하여 쓴 '소의 전설'이라는 글이다. 40대 이상으로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에 얽힌 추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농기계가 보급되지 전의 농촌에서는 힘든 일에는 반드시 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지간한 집이라면 집집마다 일소가 있었고, 가족처럼 대접받았다. 우리 집에서는 덩치가 큰 황소를 길렀다. 많은 논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성질도 사나워 그 소를 부릴 수 있는사람은 우리 집 일을 주로 도와주던 손씨라는 사람 외에는 없었다. 그때는 온순한 암소를 기르는 집이 무척 부러웠다. 우리 소를 몰고 소띳기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한 번도 주어지지..

길위의단상 2005.01.13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KBS2 TV의 ‘인간극장’입니다. 지난 주 인간극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제목으로 산골에서 살고 있는 젊은 부부의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명문대 출신의 30대 초반의 부부가 1년 전에 무주 산골로 내려갔습니다. 도시에서 잘 나가던 그들이 산 속 오지로 들어간 것은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화려한 도시 생활이 결코 내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과감히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문명의 혜택이나 욕망을 따르는 삶을 거부하고 그들은 산 속에서 지금 두 번째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도시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생활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떨 때는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참살이의꿈 2005.01.12

마음 / 유안진

그릇아 세상을 담아낼 만치 커질 수도 있고 자살밖에 도리없어 작을 수도 있는 마음아 눈꼴시어 못 보겠던 남의 인생도 내 것처럼 우는 이와 같이 울고 웃는 이와 같이 웃자 대문에 이마에 앞가슴에 '헌 나는 없어졌음' 이런 문패 하나 내걸고 싶어 빈 그릇처럼 나머지가 없는 찌꺼기도 없는 - 마음 / 유안진 마음은 요술쟁이다. 전 우주를 품을 만큼 넉넉해지기도 하고,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만큼 옹졸해지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변덕을 겪는다. 점수(漸修) 뒤에 돈오(頓悟)는 과연 찾아오는 것일까?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과연 얼마 만큼의 영적인 진보를 할 수 있을까? 같은 돌부리에 반복해서 똑 같이 넘어지며 나는 늘 제자리 걸음만 하는 것 같다. 인생 학교에서 나는 우둔한 학생임을 고백하지..

시읽는기쁨 2005.01.10

감기와 복숭아

그저께 안산에 가서 바깥 찬바람을 오래 쐬었더니 코감기가 찾아왔다. 쉼 없이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약간의 미열을 제외하고는 오직 코에만 이상이 나타났다. 특이한 감기다. 그러니 오히려 짜증이 더 난다. 이틀간 나 죽었소 하며 침대에서만 버티었다. 어제 오후에는 겨우 내내 기다리던 눈이 살짝 내렸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어두운 방 안에서만 지냈다. 소식을 듣고 창문을 열어보니 눈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오늘은 저도 질렸는지 감기가 슬슬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이때 마지막 아듀의 순서는 복숭아 통조림이다. 감기와 복숭아 통조림과의 연결은 그 연원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나에게는 역사가 길다. 그것은 영양 보충제이면서 몸살의 특효약이다. 몸이 좋지 않으면 아내의 시장바구니에는 늘 복숭아 ..

사진속일상 2005.01.09

수련

기회가 된다면 수련을 키워보고 싶다. 작은 연못을 하나 만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입이 넓은 그릇에 물을 담고 수련을 띄워 거기에 작은 꽃이 피어난대도 좋겠다. 한여름의 물 위에 넓고도 여유롭게 떠있는 잎사귀는 거울처럼 윤기가 있고, 그 사이에 한두 송이 청초하게 피어있는 수련을 보면 온갖 마음의 시름이 다 잠들 것 같다. 그래선지 수련은 한자로 水蓮이 아니라 잠잘 수자로 된 睡蓮이다. 마음의 걱정과 시름을 잠재워 준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수련을 키워본 사람의 얘기로는 수련의 지는 모습이 무척 예쁘다고 한다. 처음 꽃봉우리였을 때처럼 꽃잎을 여미고 나서는 소리도 없이 물 밑으로 자취를 감추는데, 그 마지막 모습이 그렇게 단아하고 우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상으로만 그려 보는 것이지만 수련이..

꽃들의향기 2005.01.06

1단이 되다

휴게실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담배 연기 자욱한 속에서 바둑판 앞에 사람들이 늘 모여 있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개인별로 컴퓨터가 보급되고, 같이 모이기 보다는 각자 컴퓨터로 게임을 즐긴다. 그래서 휴게실에도 바둑판이 사라졌다. 바둑을 가끔씩 두는 편인데 아직 컴퓨터 바둑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대부분이 속기여서 생각할 여유가 없어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돌 놓는 소리, 사람들의 훈수하는 소리가 어우러진 바둑판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다. 컴퓨터 바둑에서 1단으로 올랐다. 처음에 2급으로 시작했는데 두 달만에 두 단계가 오른 셈이다. 실제 급수는5급 정도가 되는데 온라인 상에서는 급에 거품이 많이 끼여있는 것 같다. 한때 바둑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이젠 긴 시간 집중이되지 않는다. 수를 읽어내는 능력도..

사진속일상 2005.01.05

작고 단순하게

무료할 때는 무엇을 하시나요? 나는 백지 위에 낙서를 합니다. 특히 지리한 회의가 끝도 모르게 길어질 때면 나도 모르게 종이 위에 낙서를 하게 됩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회의에 열중하고 있다고 착각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귀로 몰려드는 소리들을 내쫓으며 하얀 백지의 유혹에 빠져듭니다. 그저 무의식중에 떠오르는 말들을 적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종이 위에는 의미 연결이 되지 않는 단어들이 가득 적혀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한 단어만을 계속 적기도 하지요. 언제고 제일 많이 적혀있는 단어는 날 비[飛]자입니다. 마지막 획을 길게 내리뻗어 한껏 멋을 부리며 이 글자를 쉼 없이 쓰고 있는 자신을 볼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종이 한 면이 이 한 글자로만 가득 채워져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내 무의식에는 ..

참살이의꿈 2005.01.04

쓰나미의 수수께끼

지난 연말에 남부 아시아 해안을 휩쓴 지진해일로 20만 명 가까운 인명이 희생되었다. 앞으로 사망자가 더 확인되면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의 대재앙이었다. 지진해일의 공식 명칭은 ‘쓰나미’(津波, Tsunami)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쓰나미의 무풍지대였기 때문에 이 용어에 생소한데, 쓰나미의 설명을 보면 여러 가지로 특이한 점이 많고 잘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다. 첫째, 쓰나미는 전파 속도가 무척 빠르다. 일반적으로 파동의 속도는 매질의 관성적 성질과 탄성적 성질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쓰나미의 경우,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바다 깊이라고 한다. 그래서 바다 깊이가 1000m 정도 되는 해저에서 지진이 일어나 쓰나미가 생겼다면 그 속도는 시속 350km나 된다는 것이다. 만약 바..

길위의단상 2005.01.03

두물머리 느티나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있는 느티나무이다. 수령은 약 400년이고, 높이는 26m로 경기도 지정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안내문에 보면 예전에 이곳이 두물머리 나루터였는데 한양과 왕래하는 짐을 싣고 온 말이나 소들이 이 느티나무 아래서 쉬었다고 한다. 지금은 하류에 팔당댐이 건설되어 그때와는 지형이 많이 변했을 것이다. 수량이 많아져서 느티나무 바로 옆에까지 강물이 들어와 있는데, 강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호수로 보인다. 나무 옆에 서서 그 옛날의 풍경을 연상해 보려 하지만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하여튼 이곳에서 보이는 경치는 아주 좋다. 강변을 따라 산책길이 길게 만들어져 있어 데이트 장소로도 최고일 것 같다. 어느 TV 드라마의 촬영 장소였기도 해서 찾는 이가 많다는데, 만약..

천년의나무 2005.01.02

새 아침의 기도 / 조창환

새 아침에 꽃씨 하나 받게 하소서 작고 단단한 꽃씨 어루만질 때 씨앗 한 점에 우주가 담긴 그 신비, 느끼게 하소서 꽃나무 모종 하나 가슴에 품고 새봄 맞게 하소서 꽃나무 모종 하나 뜨락에 심고 실비 내리는 새벽 바라보게 하소서 햇빛 이글거리는 날 뜨거운 바람 번득일 때 백일홍, 채송화, 과꽃, 접시꽃.... 사람의 마을에 붉은 꽃 가득 넘쳐 그 꽃밭에서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마침내 산그늘 홀로 무거워지고 사람의 마을에 가을이 오면 그늘 속에 맑은 열매 줍게 하소서 흐린 하늘과 차가운 바람 속에 저희가 너무 오래 떨었사오며 거친 말, 욕된 날, 무서운 밤을 저희가 너무 오래 겪었사오니 새 아침에 단단한 꽃씨 한 점 내려 주시어 거기서 실비 내리는 새벽과 이들거리는 사랑 보게 하시고 그늘 속에 맑은 열매 ..

시읽는기쁨 2005.01.01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가족과 함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다. 며칠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큰 아이가 표를 끊어온 것이다. 오래 전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나이였으니까 20년 전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만화 영화가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었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코난의 다음 편 때문에 일요일이 무척 기다려졌었다. 지금은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전쟁을 치르고 난 뒤의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였는데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진 자연과 동심의 순수함과 문명 비판 등이 어우려져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만화 영화하면 나에게는 코난이 제일 먼저 연상된다.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닌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읽고본느낌 2004.12.31

북한강의 아침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지는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12월 중순까지만 해도 너무 따스해서 걱정을 했건만, 연일 쉬지도 않고 이어지는 추위가 요놈들나 죽지 않았다는고함 소리처럼 매섭게 들린다. 아침에는 북한강변을 지나갔다. 수면 위로 수증기가 안개처럼 피어 오르고, 강변에 있는 나무에는수증기가 얼어붙어 하얀 얼음꽃을 만들었다. 자꾸만 옆으로 눈길이 가게 되는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남쪽 아시아 지방에서는 해일로 인해 1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인간만을 위해 자연이 존재하지는않을 것이다. 또한 자연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헛된 욕망임도 알게 된다. 어디에선가 본 글이 생각난다. '인간은 자연에 굉장히..

사진속일상 2004.12.30

12월 / 정호승

하모니카를 불며 지하철을 떠돌던 한 시각장애인이 종각역에 내려 흰색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며 길을 걷는다 조계사 앞길엔 젊은 스님들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분주히 행인들에게 팥죽을 나누어준다 교복을 입은 키 작은 한 여고생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냥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이끌고 팥죽을 얻어와 건넨다 나도 그 분 곁에 서서 팥죽 한 그릇 얻어 먹는다 곧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 - 12월 / 정호승 불교와 기독교가 만나고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만나고 너와 내가 가슴으로 만나서, 따스한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진다면..... 그냥 지나가는 이웃의 손을 이끌고, 같이 팥죽을 나누는 세상이 된다면.....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 기다려진다.

시읽는기쁨 2004.12.28

빈곤 사회

얼마 전에 두 가지 조사 결과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하나는 직장인들에게 가장 관심 있는 분야를 물었는데, 재테크가 1위를 차지했다. 두 번째가 건강이고, 세 번째가 가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자본주의 사회이니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성공의 기준이 돈이고,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그 구성원들의 선택이란 어쩔 수 없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두 번째 조사 결과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이었는데, 대상자의 60%가 돈 잘 버는 직업을 고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신숭배(物神崇拜)에 젖어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젠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돈이 최..

참살이의꿈 2004.12.27

조계사 백송

경복궁 둘레에는 오래 된 백송(白松)이 몇 그루 남아 있다. 관청이나 양반가에서 고이 길렀던 것으로 보이는데, 전국적으로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백송은 무척 귀하고 상서로운 나무로 대접을 받았을 것 같다. 그 중의 하나가 천연기념물 제 9호로 지정된 조계사 경내에 있는 이 백송이다. 조계사는 한양 도성 내에 있는 유일한 본사로 1395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표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터는 비좁고 볼 품이 없다. 조선조 시대에 불교에 대한 대접이 시원치 않았음을 한 눈에 짐작할 수 있다. 그나마 도성 내에 이런 사찰을 허락한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조계사 대웅전은 지금공사중이어서 경내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하다. 수령이 5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백송은 대웅전과 공사..

천년의나무 2004.12.26

작은 예수

작은 시골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드리다.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작은 예수'에 대해 잠시 묵상를 해 본다. 저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한없는 낮아짐이다. 구유 속의 아기 예수 모습은하느님 자신이 가난과 온유함을스스로 선택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들에 대한 요구이기도 할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낮아지고 작아지라는 가르침으로 들린다. 그러나 가난은 부요함을 정복하고,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 낮아짐으로써 높아지고,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역설의 진리를 아기 예수님은 보여주고 있다. 어느 단체에선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黨同伐異'(같은 사람끼리 무리지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를 골랐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은 여전히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싹 트고 있다. 큰 것 보다는 ..

사진속일상 2004.12.25

산타클로스의 물리학

산타클로스의 하룻밤 여행을 물리적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전 세계에서 산타클로스의 고객이 되는 어린이는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어린이를 제외하면 대략 4억 명 정도이다. 한 가정에 2.5명의 어린이가 있다고 볼 때 아마도 산타클로스는 지구에 있는 약 1억 6천만 가정을 방문해야 될 것이다. 산타클로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하룻밤뿐이라고 할 때, 지구 자전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선물을 나누어줄 경우 약 31시간 정도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31시간 동안에 1억 6천만 가구를 방문하려면 1초에 1434가구를 방문해야 한다. 다시 말해 0.0007초 만에 지붕에다 썰매를 주차시키고, 굴뚝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 선물을 놓고, 다시 나와 다른 집으로 이..

길위의단상 2004.12.24

바람만이 알고 있지 / 밥 딜런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갈매기는 사막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사람들은 자유로워질까? 얼마나 더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더 고개를 쳐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

시읽는기쁨 2004.12.23

줄이면 얻는다(少則得)

이사를 할 때면 집안에 쌓여있는 물건들에 놀라게 된다. 살면서 무슨 물건을 그렇게 많이 모아 두었는지, 100kg도 안되는 몸뚱어리 하나 살아가는데 꼭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지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장롱을 열어 보아도 들어있는 옷들이 엄청나게 많다.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니고, 무슨 사교클럽에 가입한 것도 아닌데 일상에서 입고 다니는 옷들만 해도 꺼내놓고 보면 장난이 아니다. 곁가지들 다 쳐내 버리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너무 많은 물건들을 보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좀더 간소하고 간단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 절로 일어난다. 올해는 그동안 당연시하며 사용해 오던 침대와 소파와 식탁을 없앴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 없이 불편해서 어떻..

참살이의꿈 2004.12.22

나그네로 살고 싶다

나그네는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나그네는 소유하지 않는다. 그의 짐은 작고, 발걸음은 가볍다. 나그네는 길 위의 사람이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를 사랑한다. 나그네는 겸손하고 너그럽다. 그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나그네는 조심스럽다. 그의 언행은 얇은 얼음판을 건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다. 나그네는 순례자다. 그의 걸음은 삶의 의미로 차있다. 나그네로 살고 싶다. 누구나 주인이 되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인류가 유목 생활을 떠나 땅에 정착하면서, 땅에다 금을 긋고 자기 소유물을 축적하면서 지금의 문화가 태어났다. 지금 우리가 건설해 놓은 사회는 이해관계와 경쟁과 투쟁으로 얽혀있다. 거기서는 모두가 서로에게..

길위의단상 2004.12.21

어린이대공원 산책

주일 미사를 드리고 아내와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다. 결혼 초 공원 가까이에 살 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놀러온 곳이다. 하나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나는 손을 잡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곳인데, 그때로부터 세월은 훌쩍 20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다 커서 각자 제 갈 길로 가고, 두 부부만이 옛날을 회상하며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무대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서 그만 또래의 아이들을 데리고 똑 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다. 긴 시간이 지난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아이들로부터 해방된 자유가 좋지만, 허전함 또한 없지 않다. 그것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을 골라 다녔지만, 이젠 둘이의 취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것이 고마운 일이다. 사람들의 ..

사진속일상 2004.12.19

2004 겨울 세종로

퇴근길에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세종로를 따라 걷다. 세상은 불경기로 아우성인데 여기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가로수마다 전구로 장식되어 불꽃나무로 변했고, 마침 ‘루미나리에’(빛의 축제) 행사도 열려 눈을 어지럽게 한다. 사람들은 주광성 생물이라도 되는 양 밝은 빛 아래로 모여들어 즐기고 있다. 잠시일지라도 세상 시름 잊어버릴 만하다. 그러나 빛의 축제장 옆에서는 기아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건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한다. 또 한 쪽에서는 보안법 폐지 촉구를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그 옆으로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 시끄럽고, 분주하고, 그리고 화려한 조명으로 번쩍이는 2004년 겨울, 서울의 모습이다.

사진속일상 2004.12.18

冬來不似冬

집 근처에 있는 둑길에 제비꽃이 피었다. 겨울에 개나리가 피는 것은 가끔씩 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제비꽃이 피어난 것은 처음 보는 일이다. 서울 지방이 이런데 남쪽은 어떨까? 지구의 기후 변화에 대해 이젠 별로 놀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올 겨울은 지나칠 정도로 특이하다. 12월 중순이 지나도록 영하로 내려간 날이 이틀에 불과했다. 그것도 고작 영하 1, 2도에 지나기 않았다. 제대로 된 첫 눈 소식도 없이, 밤에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며칠 전 인천에서는 17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 기상 관측 이래 겨울 기온으로는 최고라고 한다. 봄에 피어야 할 꽃이 한겨울에 눈앞에 나타났다. 따스한 겨울을 다행으로 생각하기에는 지구가 말하는 징후가 심상치 않다. 제비꽃 외에 민들레, 개망초, 개나리도 보인다. ..

사진속일상 2004.12.17

雜詩(二) / 陶淵明

白日淪西阿 素月出東嶺 遙遙萬理輝 蕩蕩空中景 風來入房戶 夜中枕席冷 氣變悟時易 不眠知夕永 欲言無予和 揮杯勸孤影 日月擲人去 有志不獲騁 念此懷悲悽 終曉不能靜 - 雜詩(二) / 陶淵明 밝은 해 서쪽 장강으로 떨어지고 하얀 달 동편 산봉우리로 나오네 달빛은 아득히 만리를 비추며 넓디넓게 공중에서 빛나네 바람은 방문으로 들어오고 밤중에 잠자리 서늘도 하여라 기후 변해 시절의 바뀜 깨닫고 잠 못 이뤄 밤 길어졌음을 안다네 말 나누려 하나 나와 화답할 이 없어 잔 들어 외로운 그림자에게 권하네 세월은 사람을 버려두고 가니 뜻이 있어도 펼치지 못한다오 이를 생각하다 마음은 구슬퍼 새벽 되도록 진정하지 못한다오 잡시(雜詩) 12수(首)는 도연명이 50세 즈음에 지은 시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낙향한지 10년, 그를..

시읽는기쁨 200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