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터와의 만남은 마을 안에 있는 S 수녀원에 피정을 온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일들이 우연이기보다는 필연적인 무엇이 있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증명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심정적인 느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운명론적으로 기울게 되는 탓인지도 모른다. 침묵 피정에 들어오며 가방 속에는 몇 개의 옷가지, 일용품들과 함께 책으로는 '성서'와 '겨울 부채'가 들어있었다. '겨울 부채'는 일본의 진종불교(眞宗佛敎) 승려인 키요자와 만시(1863-1903)의 짧은 종교 에세이 9편이 들어있는 소책자이다. 번역은 이현주 목사님이 했다. 불교 승려가 쓰고 개신교 목사가 번역한 책을 천주교 수녀원에 피정을 들어와서 탐독을 한 것이 별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은 내 신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