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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굴레

아침 일찍 산에 오른다. 숲은 한 밤의 정적이 아직 남아있어 신비감이 든다. 가끔씩 부지런한 새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나무 줄기 사이로 사선으로 비쳐드는 햇빛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져 숲을 뚫고 들어온다. 아직 사람의 발자국이 묻지 않은 산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 올라간다. 길 옆의 야생화도 잠에서 깨어나 이슬로 세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꽃들은 아직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이른 아침의 꽃들은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훨씬 더 순수하고 청순해 보인다. 신발과 바지 밑자락은 축축해질지라도 꽃들과 첫 인사를 나누는 기쁨이 더 크다. 둥굴레가 이슬에 함빡 젖은 채 수줍은듯 잎사이에 숨어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는 꽃이다. 그러나 몸을 낮추고 ..

꽃들의향기 2004.05.05

서울 광장

서울에 살지만 도심에 나가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 지하철로 이동하기 때문에 지상의 풍경을 보기란 무척 드물다. 그래서 가끔씩 마주치는 서울의 모습이 낯설 때가 많다. 뭐가 그리 쉽게 자주 변하는지 서울 시민이지만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며칠 전에 개장했다는 서울 광장을 보고 싶어서 작심하고 시청 앞으로 나가 보았다. 초록 잔디가 시원하게 깔려 있어서 우선 시각적으로 밝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전체 모양은 타원형이라지만 잔디 위에 있으면 너무 넓어서인지 그 윤곽이 들어오지 않는다. 잔디 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한가로운 평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유와 평화가 느껴진다. 그리고 온통 빌딩으로 둘러싸인 사방과 대조되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나 벤치같은 ..

사진속일상 2004.05.04

제비가 오지 않는 땅

제비꽃은 피었는데 제비는 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제비를 못 본지가 몇 년이 된 것 같다. 옛날이었으면 아마 지금쯤 강남에서 찾아온 제비들이 논밭 위를 날렵하게 날아다니고 마당의 빨래줄 위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지배배 지저귀는 소리가 시작될 때이다. 시골에서 자란 중년의 연배라면 제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사실 제비는 참새나 까치보다도 더 우리와 친근한 새였다. 그것은 사람과 동거하는 습성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면 흥부전을 통해서 은혜 갚는 새로 우리 머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비는 시골 초가집의 서까래와 벽 사이에 집을 지었다. 대부분의 새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건만 제비는 사람 집에 일부러 찾아들어 온다. 그런데 하필 집 짓는 곳이 사람들이 들고나는 문 위일 경우..

길위의단상 2004.05.03

마가리의 선물

마가리에서 만난친구가있다. 만난지는 채 3년이 못되지만 지금은 어떤 사람보다도 더욱 소중한 친구이다. 만나게 된 계기도 재미있는데 하여튼 이 친구는 마가리가 나에게 준 귀한 선물 중의 하나이다. 그동안 메일을 많이도 주고 받았다. 지금은 뜸하지만 그간 오고간 메일이 4백통 가까이 되니 적은 양은 아니다. 그렇게 서로 통하는 얘기가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이 메일이 나에게는 좋은 추억이며 자랑이다. 지금도 클릭해서 읽어보면 옛 생각이 나면서 힘을 얻게 된다. 이 친구는 나와는 성격이 정반대이다. 나는 내성적이지만 친구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이며 늘 에너지로 넘친다. 그의 곁에 있으면 내면에서 분출하는 기라고 할까 에너지라고 할까 뭔가가 꿈틀거리는 생기로 가득해진다. 의기소침해 있다가도 ..

참살이의꿈 2004.05.02

후손들에게 / 브레히트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 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 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찍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 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 (나의 행운이다 하면, 나도 끝장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

시읽는기쁨 2004.05.01

외롭고 힘들 때

삶이 외롭고 힘들 때 찾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장소가 있나요? 어제 오후에는 서해안의 외진 곳, 신두리 사구(沙丘)를 찾아갔다. 신두리 사구는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보존된 유일한 모래 언덕이라고 하는데, 약 1만년여에 걸쳐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해안가를 따라 사람 키 높이 정도의 모래 언덕이 바다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사구 위에는 여러 종류의 키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는데 동식물이 관련된 생태적으로도 소중한 장소라고 한다. 저녁 무렵, 이 인적 드문 사구에서 바다를 마주보고 앉아 있으면 주변의 황량한 풍경과 어울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어떤 마음의 아픈 상처라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쓸쓸한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그리..

사진속일상 2004.04.30

생명

작년 가을에 이웃에서 꽃잔디 몇 줄기를 꺾어다 집 주위에 심었다. 그 당시 상황이 무척 힘들었을 때라서 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도 못했는데 겨울이 되니 새까맣게 말라 버려서 죽었는가 보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봄이 되니 어느 날 갑자기 한 무더기의 꽃을 피어 올렸다. 이걸 보니 작은 풀꽃에 불과할지라도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꽃을 보면 희망을 떠올린다. 또 고맙고 미안하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나 작은 풀꽃에 들어있는 이런 생명력을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그것은 인간 속에도 내재하는 생명력과도 동일하며 서로 통하고 있다고 본다. 이 우주는 생명의 바다이다. 어느 책에서 한 스님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태백산 깊은 암자에서 수행하시던 분인데, 늘 새들이..

사진속일상 2004.04.28

현호색

비 내리는 월요일이다. 사람의 마음도 날씨따라 가라앉고 우울해진다. 이런 날은 기분 전환을 위해 깔깔 웃는 꽃인 현호색을 불러내 본다.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8년전 어느 날 봄, 꽃을 좋아하는 분의 권유로 축령산으로 난생 처음 야생화를 보러 따라 나섰다. 그 날 맨 처음 만난 몇 가지 꽃들 중에 현호색이 있었다. 너무 작아서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고 말보라색의 귀여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대개 앞만 바라보고 걷지만, 발 밑에도 이렇게 예쁜 보물이 있다는 걸 처음 깨우쳐준 꽃이었다. 그 뒤로 현호색에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는 걸 알았고, 많은 군락지들을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봄이면 주위에 엄청나게 많이 피어났다. 이렇게 많은 꽃을 그동안 전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의아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많은 사..

꽃들의향기 2004.04.26

길 떠난 사람들

우리는 모두 길 위의 사람들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이젠 잊어버린 고향 집을 떠나 와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 나그네들이고 순례자들이다. 내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인가? 길 위에 올라섰으니 무작정 걷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언가의 꿈을 쫓아 아니면 신기루에 희망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어느 길 모퉁이에서 남은 여정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헤어진 신발에 다리를 절뚝이며 자꾸만 뒤쳐지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런데 여기, 생명평화를 위한 탁발순례의 길에 나선 분들이 있다. 지난 3월에 지리산을 출발하여 3년 계획으로 전국을 순례하며 생명평화의 기운을 일으키려는 도법과 수경, 두 분의 스님이시다. 그리고 이분들 뜻에 동참하는 여러 사람들도 동행하..

길위의단상 2004.04.23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 이해인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작년에 대학로에서 이해인 수녀님을 만난 적이 있다. 친구의 소개로 잠깐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지만아직 소녀같은 얼굴과 편안하게 느껴지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마음 비우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채우기보다는 비우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런 원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시읽는기쁨 2004.04.21

새 식구

터에 새 식구가 많이 늘어났다. 4월 들어서 주말마다 터에 내려가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심은 나무는 다음과 같다. 배롱나무 1, 살구나무 1, 라일락 1, 산수유 1, 사철나무 40 모과나무 1, 자작나무 10, 회양목 50 벚나무 1, 단풍나무 2, 오가피 10, 회양목 10, 연산홍 30 그런데 나무를 고르는 데서부터 어설프게 보였는가 보다. 나무를 배달해 온 분이 나무 모양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찬다. 수목전시장에서는 잘 몰랐는데 심어놓고 보니 몇 주는 수형이 마음에 안 든다. 특히 배롱나무가 심하다. 원줄기에서 갈라진 가지가 완전히 불균형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선택했어야 할 나무라는 생각이 드니 우리 마당에서나마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

참살이의꿈 2004.04.20

춘색(春色)

터에 다녀오는 길은 봄으로 가득했다. 사계절이 모두 나름대로의 특징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일년 중 지금 이 때만큼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취하게 하는 때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터의 집 앞에 앉아서, 또는 오고가는 길에서 봄의 향기에 취하고 또 취했다. 몇 장의 사진을 남겼지만 마음의 감흥을 어찌 다 옮길 수 있을까? 세상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무척 아름답다.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지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 또 낙엽송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즘의 섶, 밤, 버들 또는 임간(林間)에 있는 이름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

사진속일상 2004.04.18

제비꽃

오전에 투표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다. 나에게는 고마운 휴일이다. 숨 둘릴 사이도 없이 바쁜 나날 가운데에 이런 쉼표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만 하다. 앨범을 들춰보니 제비꽃 사진이 몇 장 눈에 띈다. 제비꽃은봄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냥 제비꽃으로 부르지만 그 종류는 무척 많다. 김태정 님이 지은 이라는 도감에 보면 우리 나라에서 자라는 제비꽃 종류가 무려 37종이나 나온다. 삼색제비꽃, 남산제비꽃, 단풍잎제비꽃, 화엄제비꽃, 태백제비꽃, 둥근털제비꽃, 잔털제비꽃, 서울제비꽃, 아욱제비꽃, 고깔제비꽃, 흰제비꽃, 제비꽃, 호제비꽃, 광릉제비꽃, 갑산제비꽃, 털제비꽃, 이시도야제비꽃, 금강제비꽃, 왜제비꽃, 흰젖제비꽃, 얇은제비꽃, 흰털제비꽃, 각시제비꽃, 알록제비꽃, 뫼제..

꽃들의향기 2004.04.15

선거 이틀 전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분위기가 전에 비해 차분해진 것 같다. 신문이나 TV를 통해서만 선거일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생활에서 체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던 사람도 정치 얘기 한 두 마디는 거들 정도는 되었다. 역시 선거는 바람을 잘 타야하는 건지 무슨 풍, 무슨 풍에 민심이 왔다갔다해서 종잡을 수가 없다. 한 때는 구태의연한 썩은 정치판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이대로는 안 된다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도 했다. 특히 탄핵 사태의 충격이 그런 바람에 불을 지펴서 그 열기는 전국을 휩쓸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고개를 드는 지역주의 앞에서 촛불의 빛도, 변화의 바람도 슬그머니 사그라지는 느낌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국민의 의식 수준을 넘을 수 없다..

길위의단상 2004.04.13

봄 강가에서

여주, 양평을 지나는 남한강과 춘천, 청평을 지나는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난다. 흔히 두물머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여기에서부터 한강이 되어 서울을 지나 서해로 흘러간다. 이 강들을 따라 나있는 도로는 사람들의 생활로이면서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특히 지금과 같은 때이면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강과 야산의 어우러짐 속에 온갖 봄꽃들이 눈부시고, 갓 돋아난 새 잎들의 연초록 색깔은 사람의 넋을 빼어 놓는다. 눈길 가는 어디든 그림이나 사진의 소재가 되지 않을 곳이 없다. 천변만화하는 풍경이며 산색(山色)이지만 나는일년 중 이 때를 가장 좋아한다. 나무에서 갓 생겨난 이파리들이 만드는 색깔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냥 멍하니 앉아 몇 시간이고 바라보곤 했다. 오늘은 남한강변을 따라 올라오..

사진속일상 2004.04.11

그랬다지요 /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꽃이 피고 지고, 새들이 울고, 그러면서 봄날은 간다. 꽃이 피고 지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새들이 우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는게 아니다. 인간의 눈을 위해 봄꽃이 화려하게 대지를 덮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귀를 위해 새들이 우는 것도 아니다. 하늘의 구름 모양에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내 마음의 상상일 뿐, 구름은 그냥 구름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의미를 물으며 산다. 아무 대답이 없을지라도 그래도 의미를 묻는 사람은 행복하다. 존재의 이유를, 행위의 의..

시읽는기쁨 2004.04.09

진달래

산의 꽃 진달래 산마다 피는 꽃 우리 나란 산의 나라 진달래 피는 나라 봄이면 남북 강산에 이어 피는 진달래 저 산에 접동새 우네 접동새 우면 진달래 피네 바위 틈 모래흙이 거칠어도 매말라도 웃으며 봄 앞장서서 먼저 피는 진달래 진달래 꽃잎 따다 전 지지고 시도 짓고 목동들 나무꾼들 입에 물고 등에 꽂고 마을로 봄바람 따라 내려오는 진달래 - 이은상 진달래는 우리 나라의 꽃이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한국의 봄을 연상할 때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이 진달래와 개나리가 아닐까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뒷산에는 분홍빛 진달래꽃이 피고, 마을길을 따라서는 노란 개나리가 환하게 피어난 시골 마을의 정경이 한국의 전형적인 봄 풍경일..

꽃들의향기 2004.04.07

나무를 심다

산림조합에서 직영하는 나무 전시장에 다시 들러 보았다. 3월 중순에갔을 때보다구경나온 사람들이 훨씬 적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무 심기를 마친 것 같았다. 그리고 작은 읍내의 길거리에서 임시로 열렸던 나무 시장도 벌써 사라졌다. 오늘이 식목일이건만 실제 나무 심는 시기는더 빨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벌써 대부분의 묘목이나 나무들이 잎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담당자 말로는 4월 중순까지는 괜찮다고 하지만 늦어질수록 나무의 몸살은 더 커질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당에 심을 나무의 구체적인 밑그림도 없이 갔기에 이 나무 저 나무 구경하다가 눈에 띄는 것으로 몇 그루를 구입했다. 울타리 대용으로 쓸 사철나무 40주. 베롱나무, 살구나무, 라일락, 산수유 각 1주. 울타리로는 쥐똥나무를 예상했었지만 막상 가서..

참살이의꿈 2004.04.05

개나리 산

서울 가운데에 개나리 산이 있다. 성동구에 속해 있는데 정식 명칭은 응봉산이다. 보통 때는 그냥 지나치는 작은 야산이지만 봄만 되면 이 산은 서울 시민들의 시선을 끈다. 온 산이 오직 개나리 나무로만 되어있어 봄이 되어 샛노란 단장을 하면 그 화사한 색깔로 여러 사람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 산을 찾았다. 지하철 응봉역에서 내려 약 10분 정도 걸으면 이 산에 오를 수 있다. 높이래야 얼마 되지 않는 작은 산이지만 지금 이 때는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서울 시내의 조망도 좋다. 개나리를 만끽하며 봄의 정취를 즐기는 장소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이 산 옆으로는 한강과 청계천이 흐르고 있다. 사진은 한강과 합류하기 직전의 청계천이다.보기와는 달리 가까이 가면 ..

꽃들의향기 2004.04.03

산다는게 뭔지

"산다는게 뭔지....."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나갔을 때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사는 분이 계셨다.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언제나 넋두리 비슷한 독백으로 말하곤 했다. 그 어투가 특이하고 재미있어서 모두들 그 말을 들으면 빙긋이 웃었다. 그래서 그 분의 별명이 곧 `산다는게 뭔지`였다. 똑 같은 말을 계속 들으면 식상하기도 하련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듣는 소리인데도 그 분의 독백에는 어떤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경박하지 않은 진지한 그 분의 태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할 때 그 분의 주름진 얼굴에는쓸쓸함이랄까 우울함이랄까 뭔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번져 나왔다. 그말에 누구도 결코 농담으로 대꾸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독백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같기..

길위의단상 2004.04.01

그래도 노래하고 춤추자

꿈이 사라질 수 있을까? 무엇을 잃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손에 잡고 있던 풍선을 놓치고 어린 아이는 운다. 풍선은 푸른 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가버렸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빈 손바닥만 남았다. 어린 아이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빈 손을 보고 서러워 운다. 빈 손...... 그것은 나에게겨울 찬바람이었고, 점점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빛은 사라지고 별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이었다. 절망과 회한과 무기력,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음이었다. ................................. 박이문 님의 글 한 편을 읽는다. 살을 씻는 겨울 찬바람이 몰아쳐 와도, 두 볼에 부서지는 그 한파는 시원하다. 길을 덮어 갈 길을 막아도 산새들처럼 떼지어 날아오는 하얀 함박눈은 아무리 차도 우아..

참살이의꿈 2004.03.30

경주의 봄

경주에 출장을 다녀왔다. 남녘 지방이라 역시 봄이 한 발 앞서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길섶에서는 현호색, 꽃다지, 민들레, 괴불주머니 같은 꽃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안압지의 진달래도 환하게 피어났다. 진달래를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고향에서는 이 꽃을 참꽃이라고 불렀다. 봄이 되면 마을 뒷산이 붉게 물들었다. 지금처럼 나무가 우거지지 않아서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산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배 고프면 진달래를따 먹었다. 그러면 손가락에도 발간 물이 들고 입술은 새까매졌다. 진달래는 가장 어린 시절을 추억케 하는 꽃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보문단지의 벚꽃길은 아직 개화 전이었다. 나무들이 볼그스름하게 꽃망울을 달고 있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 곧 터져 나올 듯 보였다. 그 때가 되면 어..

사진속일상 2004.03.28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은 시원하게 뻗은 꽃잎과 순백의 색깔이 특징이다. 아기자기한 다른 바람꽃들과는 달리 생김새부터가 시원시원하다. 그래서 꿩의바람꽃이 피어나면 숲이 환해진다. 어느 해의 맑은 봄날이었다. 광덕산을 찾은 날, 꿩의바람꽃이 햇빛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래쪽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따라서 흔들렸다. 이 사진을 보면 그 날의 따스한 햇살과 고요한 숲의 평화가 그대로 전해진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느낌은 당사자에게는 유달히 각별할 수가 있다. 꽃과 나누던 눈짓, 설레던 마음까지도 이 사진에 함께 찍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절로 미소가 인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그 날의 기억이 도심의 사무실에 있는 내 마음을 여전히 설레게 한다.

꽃들의향기 2004.03.23

살다 보면

살다 보면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흐린 날이 더 많다. 바람 불고 비 내리고 어느 때는 폭풍우를 만나기도 한다. 우산도 준비하지 않아 궂은 비를 흠뻑 맞기도 한다. 인생길이 탄탄대로이지는 않다. 도리어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자갈길일 경우가 많다. 어느 때는 튀어 나온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정갱이에서는 피가 날지도 모른다. 앞에 가로놓인 벽이 너무 단단하고 높아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인생살이가 어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랴마는 그래도 이건 아닌데 하며 운명이 야속해질 때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분명 불평등이다. 어느 하루살이는 맑은 날 이 세상에 나와 창공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제 몫을 다하지만, 어느 하루살이는 장마철에 이 세상에 나와 비에 젖은 날개는 찢어지고 무너져 ..

길위의단상 2004.03.21

春望 / 杜甫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천淚 恨別鳥驚心 峰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나라는 깨져도 산하는 남고 옛성에 봄이 오니 초목은 우거졌네 시세를 설워하여 꽃에도 눈물짓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놀라네 봉화 석 달이나 끊이지 않아 만금같이 어려운 가족의 글월 긁자니 또 다시 짧아진 머리 이제는 비녀조차 못 꽂을래라 세상은 어지러워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온다. 작금의 정치적 사태를 보면 역사와 인간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쓰레기통에나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이젠 어느 누구든지 또는 어느 집단이든지 비난할 의욕도 없다. 다만 내 스스로가 슬프고 자괴감만 들 뿐이다. 이 시는 756년, 그의 나이 46세 때 杜甫가 안녹산의 반란군에 점령당한 장안에 남아 있으면서 지은 노래이다. 國..

시읽는기쁨 2004.03.14

너도바람꽃

매년 첫 꽃을 보기 위해 천마산을 찾는다. 학생 수련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조금 더 올라가면 내가 `꽃의 계곡`이라 부르는곳이 나온다. 봄이면 다양하고 많은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언제 가 보아도꽃을 보러 온 사람들과 꽃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 너도바람꽃이다. 작년에 갔을 때 마침 너도바람꽃이 만개해 있었다. 군데 군데 얼음이 남아 있고 아직바람이 차가운데, 그리고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때에마른 낙엽들 사이로 이 꽃은 하얗게 피어난다. 저렇게 작고 여린 꽃이 찬 기운을 뚫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모습은 경이롭기만 하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래도 이 꽃과 만나지 못 할 것 같다. 너무 바쁘고 무거운 ..

꽃들의향기 2004.03.08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다락방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

시읽는기쁨 2004.03.07

春來不似春

그저께 저녁부터 내린 눈이 폭설이 되어 중부 지방을 마비시켰다. 3월에 내린 눈으로서는 기상 관측이래 최대라고 한다. 고속도로에 갇힌 사람들에게 헬리콥터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모습이꼭 전쟁터 같다. 오늘은 눈이 많이 녹았는데도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스산하다. 바람마저 차서 정말 春來不似春이다. 어찌된 일인지 비나 눈이나 바람이 왔다 하면 기록을 갈아치운다. 쇼킹한 뉴스도 흔해지면 시큰둥해져 버리듯 기상 이변도 이젠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걸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어제 저녁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이런 눈은 시집 와서 처음이라면서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처마까지 눈이 쌓여 겨우 길 내고 옆 집에 다닌다고 하셨다. 세상이 시끄러우니 날씨마저..

사진속일상 2004.03.06

바쁘고 힘들다

바쁘고 힘들다. 하루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일과를 끝내고 나면 지쳐 녹초가 된다. 잠시나마 블로그에 들러 보기도 어렵다. 익숙했던 생활부터의 결별이 이렇게 힘드는구나. 정말 인생에는 공짜가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너무 편하게 지냈지. 그 편한 날들의 보상을 하라고 이렇게 힘들고 무거운 업무를 맡겨주는가 보다. 어느 분의 말을 신문에서 보았다. `인생의 길엔 과 이 있다. 가기 위한 길엔 목표가 있지만 걷기 위한 길엔 목표가 없다. 나는 한번도 목표를 정하고 살지 않았다. 산보하듯 걷기만 했고, 매 순간 충실했을 뿐이다. 남들이 원하는 영예의 자리는 정말 부산물에 불과하다.` 산보하듯 걸었고, 매 순간 충실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럽다. 범인들이야 생각은 있어도 그런 마음자리..

길위의단상 2004.03.04

3년 전

만약 운명이 있다면 그는 무척 짓궂은 장난꾸러기일 것 같다. 神은 밋밋한 인생을 재미없다고 본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하는 식으로 우리 인생길에다 이곳 저곳 지뢰를 묻어 두었다. 춤추며 가던 인생길에서 지뢰를 밟아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상처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 나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동안 롤러 코스터를 탄것 마냥 구름 위에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또끝없는 아찔한 추락을 경험한다. 인생은 시소타기다. 5년마다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탓에 이번에 직장을 옮겼다. 그런데 새로 옮긴 직장의 여건이 내가 기대한 조건과는 많이 어긋난다. 여유있는 삶, 느릿 느릿 걸어가고 싶은 삶을 추구하면 할 수록 그에 비례하여 내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는 장난꾸러기의 훼방에 속이 탄다. 세월이 흐..

참살이의꿈 200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