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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다

산림조합에서 직영하는 나무 전시장에 다시 들러 보았다. 3월 중순에갔을 때보다구경나온 사람들이 훨씬 적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무 심기를 마친 것 같았다. 그리고 작은 읍내의 길거리에서 임시로 열렸던 나무 시장도 벌써 사라졌다. 오늘이 식목일이건만 실제 나무 심는 시기는더 빨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벌써 대부분의 묘목이나 나무들이 잎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담당자 말로는 4월 중순까지는 괜찮다고 하지만 늦어질수록 나무의 몸살은 더 커질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당에 심을 나무의 구체적인 밑그림도 없이 갔기에 이 나무 저 나무 구경하다가 눈에 띄는 것으로 몇 그루를 구입했다. 울타리 대용으로 쓸 사철나무 40주. 베롱나무, 살구나무, 라일락, 산수유 각 1주. 울타리로는 쥐똥나무를 예상했었지만 막상 가서..

참살이의꿈 2004.04.05

개나리 산

서울 가운데에 개나리 산이 있다. 성동구에 속해 있는데 정식 명칭은 응봉산이다. 보통 때는 그냥 지나치는 작은 야산이지만 봄만 되면 이 산은 서울 시민들의 시선을 끈다. 온 산이 오직 개나리 나무로만 되어있어 봄이 되어 샛노란 단장을 하면 그 화사한 색깔로 여러 사람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 산을 찾았다. 지하철 응봉역에서 내려 약 10분 정도 걸으면 이 산에 오를 수 있다. 높이래야 얼마 되지 않는 작은 산이지만 지금 이 때는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서울 시내의 조망도 좋다. 개나리를 만끽하며 봄의 정취를 즐기는 장소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이 산 옆으로는 한강과 청계천이 흐르고 있다. 사진은 한강과 합류하기 직전의 청계천이다.보기와는 달리 가까이 가면 ..

꽃들의향기 2004.04.03

산다는게 뭔지

"산다는게 뭔지....."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나갔을 때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사는 분이 계셨다.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언제나 넋두리 비슷한 독백으로 말하곤 했다. 그 어투가 특이하고 재미있어서 모두들 그 말을 들으면 빙긋이 웃었다. 그래서 그 분의 별명이 곧 `산다는게 뭔지`였다. 똑 같은 말을 계속 들으면 식상하기도 하련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듣는 소리인데도 그 분의 독백에는 어떤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경박하지 않은 진지한 그 분의 태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할 때 그 분의 주름진 얼굴에는쓸쓸함이랄까 우울함이랄까 뭔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번져 나왔다. 그말에 누구도 결코 농담으로 대꾸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독백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같기..

길위의단상 2004.04.01

그래도 노래하고 춤추자

꿈이 사라질 수 있을까? 무엇을 잃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손에 잡고 있던 풍선을 놓치고 어린 아이는 운다. 풍선은 푸른 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가버렸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빈 손바닥만 남았다. 어린 아이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빈 손을 보고 서러워 운다. 빈 손...... 그것은 나에게겨울 찬바람이었고, 점점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빛은 사라지고 별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이었다. 절망과 회한과 무기력,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음이었다. ................................. 박이문 님의 글 한 편을 읽는다. 살을 씻는 겨울 찬바람이 몰아쳐 와도, 두 볼에 부서지는 그 한파는 시원하다. 길을 덮어 갈 길을 막아도 산새들처럼 떼지어 날아오는 하얀 함박눈은 아무리 차도 우아..

참살이의꿈 2004.03.30

경주의 봄

경주에 출장을 다녀왔다. 남녘 지방이라 역시 봄이 한 발 앞서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길섶에서는 현호색, 꽃다지, 민들레, 괴불주머니 같은 꽃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안압지의 진달래도 환하게 피어났다. 진달래를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고향에서는 이 꽃을 참꽃이라고 불렀다. 봄이 되면 마을 뒷산이 붉게 물들었다. 지금처럼 나무가 우거지지 않아서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산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배 고프면 진달래를따 먹었다. 그러면 손가락에도 발간 물이 들고 입술은 새까매졌다. 진달래는 가장 어린 시절을 추억케 하는 꽃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보문단지의 벚꽃길은 아직 개화 전이었다. 나무들이 볼그스름하게 꽃망울을 달고 있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 곧 터져 나올 듯 보였다. 그 때가 되면 어..

사진속일상 2004.03.28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은 시원하게 뻗은 꽃잎과 순백의 색깔이 특징이다. 아기자기한 다른 바람꽃들과는 달리 생김새부터가 시원시원하다. 그래서 꿩의바람꽃이 피어나면 숲이 환해진다. 어느 해의 맑은 봄날이었다. 광덕산을 찾은 날, 꿩의바람꽃이 햇빛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래쪽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따라서 흔들렸다. 이 사진을 보면 그 날의 따스한 햇살과 고요한 숲의 평화가 그대로 전해진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느낌은 당사자에게는 유달히 각별할 수가 있다. 꽃과 나누던 눈짓, 설레던 마음까지도 이 사진에 함께 찍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절로 미소가 인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그 날의 기억이 도심의 사무실에 있는 내 마음을 여전히 설레게 한다.

꽃들의향기 2004.03.23

살다 보면

살다 보면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흐린 날이 더 많다. 바람 불고 비 내리고 어느 때는 폭풍우를 만나기도 한다. 우산도 준비하지 않아 궂은 비를 흠뻑 맞기도 한다. 인생길이 탄탄대로이지는 않다. 도리어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자갈길일 경우가 많다. 어느 때는 튀어 나온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정갱이에서는 피가 날지도 모른다. 앞에 가로놓인 벽이 너무 단단하고 높아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인생살이가 어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랴마는 그래도 이건 아닌데 하며 운명이 야속해질 때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분명 불평등이다. 어느 하루살이는 맑은 날 이 세상에 나와 창공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제 몫을 다하지만, 어느 하루살이는 장마철에 이 세상에 나와 비에 젖은 날개는 찢어지고 무너져 ..

길위의단상 2004.03.21

春望 / 杜甫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천淚 恨別鳥驚心 峰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나라는 깨져도 산하는 남고 옛성에 봄이 오니 초목은 우거졌네 시세를 설워하여 꽃에도 눈물짓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놀라네 봉화 석 달이나 끊이지 않아 만금같이 어려운 가족의 글월 긁자니 또 다시 짧아진 머리 이제는 비녀조차 못 꽂을래라 세상은 어지러워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온다. 작금의 정치적 사태를 보면 역사와 인간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쓰레기통에나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이젠 어느 누구든지 또는 어느 집단이든지 비난할 의욕도 없다. 다만 내 스스로가 슬프고 자괴감만 들 뿐이다. 이 시는 756년, 그의 나이 46세 때 杜甫가 안녹산의 반란군에 점령당한 장안에 남아 있으면서 지은 노래이다. 國..

시읽는기쁨 2004.03.14

너도바람꽃

매년 첫 꽃을 보기 위해 천마산을 찾는다. 학생 수련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조금 더 올라가면 내가 `꽃의 계곡`이라 부르는곳이 나온다. 봄이면 다양하고 많은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언제 가 보아도꽃을 보러 온 사람들과 꽃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 너도바람꽃이다. 작년에 갔을 때 마침 너도바람꽃이 만개해 있었다. 군데 군데 얼음이 남아 있고 아직바람이 차가운데, 그리고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때에마른 낙엽들 사이로 이 꽃은 하얗게 피어난다. 저렇게 작고 여린 꽃이 찬 기운을 뚫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모습은 경이롭기만 하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래도 이 꽃과 만나지 못 할 것 같다. 너무 바쁘고 무거운 ..

꽃들의향기 2004.03.08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다락방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

시읽는기쁨 2004.03.07

春來不似春

그저께 저녁부터 내린 눈이 폭설이 되어 중부 지방을 마비시켰다. 3월에 내린 눈으로서는 기상 관측이래 최대라고 한다. 고속도로에 갇힌 사람들에게 헬리콥터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모습이꼭 전쟁터 같다. 오늘은 눈이 많이 녹았는데도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스산하다. 바람마저 차서 정말 春來不似春이다. 어찌된 일인지 비나 눈이나 바람이 왔다 하면 기록을 갈아치운다. 쇼킹한 뉴스도 흔해지면 시큰둥해져 버리듯 기상 이변도 이젠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걸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어제 저녁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이런 눈은 시집 와서 처음이라면서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처마까지 눈이 쌓여 겨우 길 내고 옆 집에 다닌다고 하셨다. 세상이 시끄러우니 날씨마저..

사진속일상 2004.03.06

바쁘고 힘들다

바쁘고 힘들다. 하루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일과를 끝내고 나면 지쳐 녹초가 된다. 잠시나마 블로그에 들러 보기도 어렵다. 익숙했던 생활부터의 결별이 이렇게 힘드는구나. 정말 인생에는 공짜가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너무 편하게 지냈지. 그 편한 날들의 보상을 하라고 이렇게 힘들고 무거운 업무를 맡겨주는가 보다. 어느 분의 말을 신문에서 보았다. `인생의 길엔 과 이 있다. 가기 위한 길엔 목표가 있지만 걷기 위한 길엔 목표가 없다. 나는 한번도 목표를 정하고 살지 않았다. 산보하듯 걷기만 했고, 매 순간 충실했을 뿐이다. 남들이 원하는 영예의 자리는 정말 부산물에 불과하다.` 산보하듯 걸었고, 매 순간 충실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럽다. 범인들이야 생각은 있어도 그런 마음자리..

길위의단상 2004.03.04

3년 전

만약 운명이 있다면 그는 무척 짓궂은 장난꾸러기일 것 같다. 神은 밋밋한 인생을 재미없다고 본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하는 식으로 우리 인생길에다 이곳 저곳 지뢰를 묻어 두었다. 춤추며 가던 인생길에서 지뢰를 밟아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상처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 나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동안 롤러 코스터를 탄것 마냥 구름 위에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또끝없는 아찔한 추락을 경험한다. 인생은 시소타기다. 5년마다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탓에 이번에 직장을 옮겼다. 그런데 새로 옮긴 직장의 여건이 내가 기대한 조건과는 많이 어긋난다. 여유있는 삶, 느릿 느릿 걸어가고 싶은 삶을 추구하면 할 수록 그에 비례하여 내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는 장난꾸러기의 훼방에 속이 탄다. 세월이 흐..

참살이의꿈 2004.02.29

동생네 집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동해 바다로 갔다. 3시간여를 달려간 곳은 낙산 해수욕장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더니 아침이 되니 고요해 졌다. 가지 가지 사연을 안고선 사람들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어제 밤에는 해안가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돌아보니 아내와의 여행도 근 5년 만이다. 자주 여행을 다닌 편이었는데 터에 미친 뒤로는 발길이 뚝 끊어졌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잃게 되는 터였다.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이 어느 때가 되면 하찮은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리고 반대로 하찮게 여겼던 것의 가치가 새롭게 살아나기도 한다. 내 주위를 스쳐가는 만상들은 상대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그 중 어느 하나에 집착함이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나는 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고 가볍게 살기가 힘..

사진속일상 2004.02.28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 네루다

어디에서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사는 것일까 어디에서 소금은 그 투명한 모습을 얻는 것일까 어디에서 석탄은 잠들었다가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 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 소나무는 언제 자신이 향을 퍼뜨리기로 결심했을까 오렌지는 언제 태양과 같은 믿음을 배웠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뿌리들은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왜 나뭇잎은초록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 우리..

시읽는기쁨 2004.02.26

원판 불변의 법칙

첫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분을 25년 만에 처음 만났다. 이런 만남에서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이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물론 그간의 세월 흔적은 얼굴과 몸에 눈에 띄게 드러나 있었다. 머리는 이미 반백이 넘어섰고 이마와 목에는 겹쳐진 주름살이 그 동안에 흘러간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말투나 웃는 모습, 또 그 뒤에 숨어있는 그 분의 성품이나 분위기는 25년 전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똑 같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대화를 계속하다보면 다음 말이 어떻게 나올지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분이 세상을 보는 눈이나 가치관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가끔씩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옛 학교 동창들에서도 늘 똑 같은 사실을..

길위의단상 2004.02.25

봄이 오는 소리

자전거를 타고 집 옆에 있는 공원을 찾다. 며칠 전에 비가 내린 후 기온은 다시 내려갔지만 대기 중에는 이미 봄기운이 완연하다.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나 표정에서도 봄이 오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간지럼 같이 속삭임 같이 봄의 숨결이 잠자고 있던 생명체를 깨우고 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보인다. 관음(觀音)이라고 불리는 부처가 있다는데 `소리를 본다`는 의미를 요즈음 같으면 나같이 아둔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버드나무에도 어느덧 초록의 물이 들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마흔 번 넘게 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축복이라고 한 어느 분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이 손님을 지금 몇 번째나 맞고 있는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 기적의 잔치를 다시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 외에 더..

사진속일상 2004.02.24

할미꽃

어린 시절 고향 동네 뒷산에는 봄이 되면 할미꽃과 진달래가 만개했다. 할미꽃은 양지 바른 산소에 특히 많이 피었다. 산과 들이 놀이터였던 그 시절, 뒷산에 올라 할미꽃을 한 웅큼씩 꺾어서 놀던 기억이 난다. 뭘 하느라고 그렇게 꽃을 꺾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따도 할미꽃은 부족함없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지금도 가끔씩 들에서 만나는 할미꽃을 보면 유별나게 옛날 생각이 난다. 그만큼 향수를 일깨워주는 꽃인 것 같다. 하얀 솜털로 덮여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꽃. 그러나 꽃잎을 열고 속을 들여다보면 꽃잎 안쪽의빨간 색깔에 놀라게 된다. 빨갛다 못해 검붉은 색이다. 가운데에 있는노란 꽃밥이 그와 대조되어 선명하다. 이 세상의 한과 정열을 남 몰래 속에 감추고 있는 듯하다. 겉보고 늙었다 마오, 마음 속 붉..

꽃들의향기 2004.02.23

청빈(淸貧)

내가 존경하는 사람중에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평화주의자, 사회주의자, 채식주의자라고 불렀는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따라 아름다운 일생을 산 용기있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미국 사회의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 문명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준 분이다. 니어링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제국주의라는 정치 체제를 혐오했는데 이것에 대한 저항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이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세상과의 타협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따라 일관되게 행동한 분이다. 그것은 결국 부의 포기와 단순 소박한 생활로 나타나게 된다. 그 분이 부를 보는 관점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부는 타락했다..

참살이의꿈 2004.02.22

莊子의 행복론

莊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옆의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패자(敗者)의 철학이야." 그리고 부연 설명을 했다. 사회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이 정신적으로 위안을 찾는 도피처일 뿐이라고. 사실이 그러하든 아니든 莊子는 내가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시절 나를 구원해준 책이었다. 아직도 수박 겉핥기식 莊子 읽기에 그치고 있고,莊子가 담고 있는 거대한 지혜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멍해지지만그래도 지금껏 莊子는 내 삶을 지탱해주는 큰 기둥이 되고 있다. 莊子 철학의 특징은 현세 너머를 가리키는 초월성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신비적 경향이 가미된 종교적 색채를 띄기도 한다. 중국의 토양에서 자라난 사상으로는 독특하지 않나 싶다. 莊子는사회적 관습에 따라 생활하고, 아무 비판없이 세속의 전제 조건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길위의단상 2004.02.20

올들어 처음 만난 꽃

올해 들어서 처음 만난 꽃이다. 어제 친척 장례식으로 고창에 내려갔을 때 산소 아래쪽의 양지바른 밭둑에 이 꽃이 피어 있었다. 개불알풀. 겨울의 막바지에서 봄날처럼 날씨가 따스하더니 때 이르게 잎을 내고 꽃을 피웠는가 보다. 그래도 아침 저녁의 싸늘한 냉기에 꽃잎은 활짝 피지 못하고 약간 웅크러든 모습이다. 한쪽에서는 죽은 이를 땅에 묻는데 바로 옆에서는 이렇게 새 생명이 태어난다. 이것이 탄생과 소멸을 되풀이하며 늘 새롭게 되는 대자연의 원리이리라.

꽃들의향기 2004.02.19

내 노동으로 / 신동문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그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 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최근에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고`라는 책을 읽었다. 전희..

시읽는기쁨 2004.02.16

바람꽃

봄의 광덕산은 야생화들의 꽃밭이 된다. 봄이 오면두 시간 이상씩 북쪽으로 자동차를 달려 이 산을 찾곤 했다. 광덕고개 정상에 차를 세우고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환상적인 야생화의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특히 바람꽃 종류가 많았다. 쌍둥이바람꽃, 홀아비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너도바람꽃, 회리바람꽃...... 꽃 속에 파묻혀 도감과 비교하며 이름을 익히고 사진을 찍고했던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그 자리에는또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올 봄에는그 옛 자리로꼭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꽃들의향기 2004.02.15

미친 세상

시장을 지나가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검은 돈 안 먹은 놈이 어디 있냐?" "나는 안 먹었다. 왜?" "넌 임마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야." 요사이는 9시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난다. 그런데 안 봐야지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TV 앞에 앉게 된다. 하긴 언제 편하게 뉴스를 볼 때가 없었지. 무슨 대규모 스포츠 행사나 하면서 국민들 넋을 뻬놓고 열광시키기 전에는.... 어제는 일부러 MBC 뉴스를 보면서 보도 제목들을 적어 보았다. 삼성이 한나라에 준 불법 자금 170억 추가 확인 --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 --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 -- 땅 투기자 7만명 적발 -- 한국인 해외서 잇단 실종 -- 손자를 버린 비정한 할머니 -- 외출이 불안하다 -- 돈 뺏으러 살인 ..

길위의단상 2004.02.13

뮤지컬 `넌센스`를 보다

어제는 연강홀에서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를 보았다. `넌센스 잼보리`는 91년부터 시작된 `넌센스` 시리즈의 세 번째 버전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싫어하는 터라 극장이나 공연장은 거의 가지 않는데, 어제는 어쩔 수없이 아내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러니 뮤지컬을 직접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사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내용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역동적인 무대의 열기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도 인상적이었고, 특히 출연진들의 끼와 재능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방면에는 문외한인지라 잘 모르긴 하지만 춤, 노래, 연기 실력을 어쩌면 그렇게 고루 갖추고 있는지 부럽기만 했다. 로버트 앤 수녀역을 한 노현희는 SBS의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서 볼 때와 달리 그녀의 다재다능한새로운 ..

읽고본느낌 2004.02.12

그 느티나무 아래로 가자 / 최옥

그랬지... 그곳엔 세월 가도 바래지 않을 풀빛 추억이 지금도 뛰어다니고 있는 걸 가위바위보에 터지던 웃음 소리 공기놀이에 지지 않던 해가 아직도 비추고 있는 걸 그랬지... 그 나무 아래서 먼 훗날 우리의 날들이 나무 그늘 밖의 저 햇살이길 소원하거나 꿈꾸지는 않았지만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두고 왔는 걸 한 방울 눈물없이 아름다웠던 내 여덟 살이 거기 있는 걸 다래끼집 몰래 지어두고 지켜볼 때 내 작은 몸을 온전히 숨겨주던 내 전부를 기대고 섰던 나무 한 그루 거기 있는 걸 밤 하늘에 토끼풀같던 별들이 만발해지면 그 때 그 아이들 하얀 풀꽃 따다 만든 꽃다발 오늘 밤도 내 목에 걸어주는 걸 유난히 날 좋아했던 첫 사랑 그 아이의 커다란 눈이 아직도 날 바라보고 있는 걸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의..

시읽는기쁨 2004.02.11

좋은 친구

어제 저녁 인사동에 친구를 만나러 나간 길에 선(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 전시회에 들렀다. ※ 매그넘 Magnum; 50여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고의 보도사진 작가 그룹. 한 장의 사진으로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류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전쟁 고발, 문명 비판이 주조를 이루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도 밝은 면보다는 억압받고 고난에 찬 내용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었다. 주제가 묵직해서 여러 가지로 깊은 생각에 젖게 되었고, 서구 문명의 팽창이나 경제 성장의 이면에 숨어 있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전시회였다. 그런데 어제 만난 친구는 나에게는 특별하면서 참 좋은친구이다. 만난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얘기를 나누면 많은 부분에서 서로 공감을 하게 되고 또한..

읽고본느낌 2004.02.10

무릉도원은 어디에

`소백산의 어느 계곡에서 봄꽃을 구경하다가 길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안개까지 끼기 시작해 동서남북의 방향도 헷갈리면서 헤매게 되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진동하는 곳에 절벽이 나타났고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동굴이있었다. 그 동굴을 지나가니 시야가 훤하게 트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에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기름진 논밭이며 아름다운 호수, 뽕나무나 대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개와 닭소리도 한가로이 들리고 사람들은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평화롭고 이국적이었다. 장식은 없었지만 깨끗하고 소박한 흰 옷을 입은사람들은 한결같이 즐겁고 만족스런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 크게 놀라 어디서 왔느냐며 물었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더..

참살이의꿈 2004.02.09

애기똥풀

어느 해 봄 나들이를 나갔을 때였다. 길 옆에 핀 이 꽃을 보고 아내가 무척 반가와했다. "와, 애기똥풀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식욕이 없을 때면 어머니가 이 풀을 삶아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 운동장 둘레에많이 피어있던 이 풀을 꺾어서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며 옛날 이야기를 했다. 나도 그 때 이 풀 이름을 처음 알았다. 잎이나 꽃은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요사이 유행하는 얼짱이나 몸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별 주목을 받지도 못한다. 그러나 바라보면 볼수록 정겹기만 하다.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액의 색깔이 마치 애기똥색과 비슷하다고 해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꽃만 보면 안도현님의 다음 시가 떠오른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

꽃들의향기 2004.02.08

도시락의 추억

지난 설날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홍천의 작은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에게서 산골 학교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학교라 그런지아이들과 선생님이 가족같이 지내는 모습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여러가지아기자기한풍경 중에서 겨울이면 교실 난로에 도시락을 데워 먹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직 이런 분위기의 학교가 있다는게 신기했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몇 년 전부터는 학교 급식이 시작되었으니 이젠 도시락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도시락 세대라고 할 정도로 도시락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중년의 세대에게 도시락은 단순한 밥 그릇이 아니라 가족의 정이 담긴 따스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누구에게나 남아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난과 배고픔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나의 경우도 ..

길위의단상 200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