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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즐거움

작년과 달리 금년에는 운동을 자주 하고 있다. 업무에서 많은 부분 해방이 되어 올해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편이다. 주로 하는 운동은 테니스인데 동료들과 땀을 흘리며 공을 맞추다 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린다. 통쾌하게 웃고, 고함을 지르는 유일한 시간이 이 때이다. 하루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운동을 하지 못해서 몸무게가 4 kg이나 불어났다. 그러나 3, 4월 두 달간 열심히 땀을 흘린 덕분인지 2 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몸 컨디션이 아주 좋다. 몸은 정신에 비해 무척 단순하다는 것을 느낀다. 신경을 쓰고 다듬는 것만큼 그대로 반응한다. 비하여 정신세계는 아직 내적 법칙을 몰라서인지 난해하고 불가해하기만 하다.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를 않는다. 햐얀 길..

사진속일상 2005.05.04

두 스님의 대화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긴 기간의 단식을 마치고 이제 활동을 재개한 지율스님이 대원사로 도법스님을 찾아가 만났다고 한다. 도법스님은 생명평화를 위한 탁발 순례을 하고 있는 중이다. 두 분간에 나눈 대화가 마침 인터넷 신문에 실려서 일부를 옮겨 본다. 기자들이 간접적으로 전하는 기사보다는 이 대화를 통해두 분의 생각과 느낌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고뇌하고 흔들리는 솔직한 모습도 보인다. 대화 중에서 지율스님이 말씀하신 동화와 전설이 사라진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크다. 특히 환경운동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생명에 대한 영혼의 떨림이 없는 환경운동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은 머리 보다는 가슴, 이성 보다는 감성을 원한다. 사실은 이 시대가 동화와 전설을 쫓아내고 있다. ..

길위의단상 2005.05.03

새싹

콩, 고구마, 토마토, 그리고 다시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이곳 분들은 고구마를 꽂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감자도 놓는다고 하구요. 보통 우리는 나무고 작물이고 전부 심는다고 하지만 농민들에게는 종류에 따라 표현이 다른 게 재미있습니다. 사실 감자나 고구마를 심어 본 사람이라면 '감자를 놓는다' 그리고 '고구마를 꽂는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 고맙고도 재미있습니다. 산은 벌써 신록의 색깔을 입기 시작했지만, 밭에는 이제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두 주일 전에 심었던 옥수수는 5 cm 정도 키가 자랐고, 감자싹도 덮여있던 흙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옥수수는 얼마나 잘 자라는지 아침에 볼 때와 저녁에 볼 때가 다릅니다. 지금의..

참살이의꿈 2005.05.02

고마워, 내 사랑 / 원재훈

창문을 열자, 새소리가 들려온다 고마워, 내 사랑, 내 마음이 저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리게 해 주는 것은 오로지 너의 사랑뿐 소나무 가지 사이에 새 한 마리 휙 날아간다 고마워, 내 사랑, 저 날아가는 새들을 보여 주다니 들리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것은 오로지 너의 사랑뿐 들리고 보이는 모든 것들은 먼 곳에서 오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내 심장보다도 더 가까운 곳 내 눈물, 웃음보다 더욱 더 가까운 곳 그곳에 님이 있었다 고마워, 내 사랑 정말 고마워 - 고마워, 내 사랑 / 원재훈 시인이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고 하는 내 사랑은 누구일까? 사랑은, 창문 밖의 새소리를 볼 수 있게 해 주고,작은 풀꽃의 미소를 들을수 있게 해 준다. 그 사랑은 내 심장..

시읽는기쁨 2005.04.29

자주괴불주머니

괴불주머니는 현호색과 꽃 모양이 비슷하다. 대개 괴불주머니는 노란색이고 현호색은 자주색 비슷해서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자주괴불주머니는 색깔 마저 현호색과 같아서 멀리서 보면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크기나 꽃대에 꽃이 달린 모양을 보고 판단한다. 괴불주머니 쪽이 현호색 보다는 꽃이 크고 꽃대를 따라 총총이 달려있다. 사실 비슷한 종류 사이에는 잎의 모양으로 구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왠일인지 잎의 모양은 잘 입력이 되지 않는다. 주로 도감을 찾아보며 꽃의 이름을 익힌 터라 어떤 경우에는 착각이 생기기도 한다. 자주괴불주머니는 군락을 이루며 자라길 좋아하는 것 같다. 봄날 산기슭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자주괴불주머니 꽃밭은 봄 분위기를 한층 더 밝고 환하게 해 준다.

꽃들의향기 2005.04.28

M51

- 허블망원경이 찍은 나선은하 M51 (사진출처; hubblesite.org) 오늘 신문에 일제히 허블망원경이 찍은 아름다운 은하 사진이 실렸다. 특히 경향신문에는 1면에 M51 은하의 대형 사진이 실렸다. 최근에 허블이 찍은 것인데, 지금껏 인간이 촬영한 최고 해상도의 M51 사진이라고 한다. M51은 지구에서 37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로 지름이 10만광년 정도이며, 1천억 개의 항성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은하와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며, 나선은하 중 아름답기로 이름난 은하이다. 이제 허블망원경은 15년 간의 활동을 끝내고 곧 기능이 상실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름 240cm의 렌즈를 달고 지구 궤도를 돌면서 그동안 70만 장의 선명한 사진을 찍어서 우주의 경이를 우리들에게 전해 주었다. ..

사진속일상 2005.04.27

저 연초록 세상

지금 산야는 온통 연초록세상입니다. 겨울의 황량하던 풍경이 어느새 기적처럼 저렇게 변했습니다. 땅은 초록의 물감을 비밀스레 숨기고 있다가 어느 날 한 순간에 지상으로 쏟아낸 듯 합니다. 아직 신록에 들기 전이지요, 연두빛과 연초록이 뒤섞인저 찬란한 색깔의 향연에 초대받은 나는 행복합니다. 터에 오가는 길에 만나는 봄숲의 자태에 넋을 잃습니다. 저 빛은 병아리의 지저귐이고, 갓 태어난 송아지의 눈망울입니다. 갓난 아기의 해맑은 미소입니다. 누가 절망을 얘기하나요? 저 연초록 세상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혁명을 꿈꿀 수가 있습니다. 터에 들어가는 입구에 작은 고개가 있습니다.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감사와 외경의 마음으로 저 연초록 세상을 바라봅니다.

참살이의꿈 2005.04.25

본전 생각 / 최영철

파장 무렵 집 근처 노점에서 산 호박잎 스무장에 오백원이다 호박씨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씨를 키운 흙의 노고는 적게 잡아 오백원 해와 비와 바람의 노고도 적게 잡아 각각 오백원 호박잎을 거둔 농부의 노고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실어 나른 트럭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원 그것을 파느라 저녁도 굶고 있는 노점 할머니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원 그것을 씻고 다듬어 밥상에 올린 아내의 노고도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사들고 온 나의 노고도 오백원 그것을 입안에 다 넣으려고 호박쌈을 먹는 내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 본전 생각 / 최영철 산다는 건 무상의 은총이다. 내 입에 들어가는 호박잎 하나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가 마시는 공기, 물의 가치를 ..

시읽는기쁨 2005.04.23

나무, 그 품에 안기다

세종문화회관 앞 보도에서 '나무, 그 품에 안기다'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환경재단과 그린페스티발이 주관해서 매년 열고 있는 환경사진전인데, 올해는 나무와 숲을 주제로 해서 세계의 사진 작가 16명이 참여하여 84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 안타까움, 또 생명에 대한 깨우침을 주는 인상 깊은 사진들이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작품을 모아 보다. [미국 뉴욕시 점심시간 / Thomas Hoepker] 한 남자가 발가벗은 채 바닥에 누워 있다. 빨리 점심을 먹어치우고 다시 숨가쁘게 일에 매달려야 할 텐데, 남자는 바쁜 세상을 잠시 접어두고 한가롭게 오후의 휴식에 빠져 있다. 나무와 남자가 이 거대한 문명의 도시에서 알몸으로 마주한다. 서로간에 대화는 없지만, 미풍의 달콤함을 맛..

읽고본느낌 2005.04.22

미선나무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지가 발견된 우리의 특산식물이다. 개나리의 친척뻘 되는 나무로 이른 봄에 하얀 꽃을 피운다. 그래서 '흰개나리'로 불리기도 한다. 꽃은 한 자리에 서너개씩 포개서 달리는데 화사하고 아름다우면서 품격이 높게 보이고 향기도 진해 관상용으로는 최고의 꽃이기도 하다. 미선나무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지금은 멸종위기식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한 때는 자생지에 사람들이 몰려와 마구잡이로 남획하는 바람에 멸종의 위기까지 갔으나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번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젠 묘목상에서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니 말이다. 교정의 화단에 미선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다. 키는 1 m 안팎으로 아직 어린 나무들이지만 이른 봄에 피어난 순백의 하얀 꽃은 봄의..

꽃들의향기 2005.04.21

황사가 찾아오다

전국에 황사주의보가 내려졌다. 올들어 우리나라에 찾아온 다섯 번째 황사라는데 주의보가 발령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사는 아무래도 봄의 불청객이다. 몇 가지 유익한 점도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1시간 정도 시내에 나가 있었는데 눈이 따갑고 목도 칼칼하다. 테크노마트 9층에서 바라본 한강과 강남 지역이 온통 뿌연 먼지로 덮여 있다. 보통날 같으면 멀리 관악산까지도 보이는데 오늘은 강 건너에 있는 빌딩들만 겨우 보인다. 그리고 바람까지 세차서 절로 호흡이 가빠진다. 우리나라가 이런데 황사의 발원지인 중국의 사막지대는 과연 어떠할까? 중국 내륙 지방의 사막화가 점점 심화된다고 하는데 앞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점점 더 심하게 치러야 될 것 같다. 나에게는 저 바람과 먼지가 자연의경고..

사진속일상 2005.04.20

대화

지난 15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리영희 선생님의 신간인 ‘대화’ 출판을 기념한 독자와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가까이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참석했었는데, 100여 명이 모여서 몸이 불편한 선생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나타내었다. 넓은 홀의 자리는 많이 비었지만 대중성 없는 이런 모임에 그래도 이만한 인원이 참석했다는 결코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선생님과 무슨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젊은 시절에 선생님의 글을 읽고 감명을 받은 바도 없지만, 독재에 저항한 올곧은 한 길의 삶이 멀리서 늘 외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현실에 야합하고 변절하는 사람이 원로 행세를 하며 큰소리치는 지금의 세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5년 전에 선생님은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되시어 예의 꼬장꼬..

길위의단상 2005.04.20

작은 풀꽃

교정에 있는 나무 중에서는 가장 먼저 산수유와 목련이 꽃을 피웠다. 매화나무도 한 그루 있지만 이곳 기후에 적응을 못해선지 꽃을 제대로 피워내지 못한다. 목련도 자라는 위치에 따라 피는 순서가 다르다. 양지 쪽에 있는 것은 벌써 꽃이 떨어졌는데 음지 쪽에서 자라는 것은 이제야 꽃잎을 열었다. 지금은 진달래, 개나리가 한창이다. 그 사이에서 하얀 앵두나무 꽃도 화사하고 명자나무도 바알간 색깔로 물들고 있다. 살구나무는 이미 꽃이 졌다. 한창일 때는 살구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피어난 살구꽃은 모든 사람들의 눈을 홀리게 할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풀꽃들이다. 늘 손질을 하는 탓에 꽃이 자라날 여건이 되지 못하지만 ..

꽃들의향기 2005.04.19

감자를 심다

밭에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옥수수는 몇 해째 심어 왔지만 감자는 처음입니다. 동생이 강원도 씨감자를 구해 주었고, 전주에서도 붉은 감자를 줘서 두 종류를네골에 심었습니다. 옥수수도 네 골 심었습니다. 경운기로 골을 만드는 것을 로타리를 친다고 하지요. 이 말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괭이로 골을 만들고 있는데 이웃집에서 보시고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경운기를 몰고 와서 이렇게 훤하게 일을 해 주셨습니다. 기계의 힘이란 역시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하루 종일 할 일을 30분 만에 마칠 수 있었으니까요. 하얀 싹이 나오기 시작하는 감자 눈을 따내서 그걸 흙에다 심는 작업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흙을 만지는 자체가 즐거운 일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생명을 기르는 의미가 곁..

참살이의꿈 2005.04.18

똥 누고 가는 새 / 임길택

물들어가는 앞산바라기 하며 마루에 앉아 있노라니 날아가던 새 한 마리 마당에 똥을 싸며 지나갔다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나 처음엔 웃고 말았는데 허허 웃고만 말았는데 여기저기 구르는 돌을 주워 쌓아 울타리 된 곳을 이제껏 당신 마당이라 여겼건만 오늘에야 다시 보니 산언덕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았다 떠나가는 곳 미처 물을 틈도 없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지워버리고 가버린 새 금 그을 줄 모르고 사는 그 새 - 똥 누고 가는 새 / 임길택 독도 문제로 나라가 소란하더니, 이젠 동아시아 3국이 비슷한 열기에 휩싸여 있다. 그에 편승해 다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하나인 땅에다 금을 그어 놓고는 내 것, 네 것을 따지며 싸움박질을 하는 인간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민중을 부추기며 ..

시읽는기쁨 2005.04.15

수선화

두 조각의 빵을 가진 자는 그 하나는 수선화와 바꾸라. 빵은 육체의 양식이나, 수선화는 마음의 양식이다. 수선화를 바라볼 때면 마호메트가 했다는이 말이 늘 연상된다. 이슬람교의 창시자가 사랑한 꽃이라는데, 그래선지 이 꽃에서는 탈속적이고 종교적인 향기가 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미소년 나르시스가 죽어서 변한 꽃이라고 한다. 어느 날 밖에 나간 나르시스는 목이 말라 샘물을 마시다가 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그 모습에 사랑을 느낀다. 마침내는 너무나 연모하게 되어 물에 빠져 죽게 되는데,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고 한다. 아마 나르시스는 지금 식으로 얘기하면 꽃미남이었는가 보다. 왕자병에 걸린 꽃미남을 말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 같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 사랑' 또는 '자아 도취'..

꽃들의향기 2005.04.14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1 성적을 비관한 과학고 학생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일 오전 1시50분쯤 서울 노원구 J아파트 주차장 인도에서 이 아파트 7층에 사는 S과학고 학생회장 이모(18. 3학년)군이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 이모(63)씨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조사한 결과 이군이 이날 자정께 주방 식탁에서 공부하던 중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자 한 시간 뒤 친구 3~4명에게 '먼저 간다. 잘 지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베란다 창문을 열고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때 학급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우등생이었던 이군은 과학고에 진학한 뒤에도 수학과 지구과학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또 평소 '..

길위의단상 2005.04.13

값싼 은혜

며칠 전 개신교계의 지도적 목회자들이 모여서 참회 기도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날 여의도에 있는 한 대형 교회의 목사는 이런 내용의 고백과 다짐을 했다고 한다. "47년 목회 활동을 했다. 목회 활동을 하면서 70에 이르니 회한이 많다. 그동안 값싼 은혜를 가지고 살아왔다. 옳은 것을 옳다 말 못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지적 못하며 사회악에 침묵했다.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자연과 우주 모두를 위해서 십자가를 들었지만, 나는 사람만 사랑했다. 지금이라도 사회악을 교정하고, 진실된 은혜를 실천하며 살아가겠다." 원로 목사님의 이런 모습은 아름답고 신선하다. 이런 일을통해 한국 교회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는 참회가 행동으로 이어질지에 ..

읽고본느낌 2005.04.12

행복한 나무 심기

나무를 심는 일은 행복합니다. 일년생 작물을 심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과 보람이 거기에는 있습니다. 십 년 앞을 내다보고 세운 계획을 십년지계(十年之計)라고 하는데 이는 곧 나무를 심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이렇듯 나무심기는 당장의 이익이 아닌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일입니다. 꿈을 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은 멀리를 내다보는 마음이고, 눈 앞의 이(利)를 탐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봄을 맞아 터에다 나무를 심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매년 조금씩 심어나가자고 작정한 대로 올해도 읍내의 나무 시장에 가서 눈에 드는 것들을 사왔습니다. 땅을 파니 오랜만에 맡는 흙의 향기가 좋습니다. 부드러운 촉감도 새롭습니다. 봄비를 맞아가며 이번에 심은 나무는..

참살이의꿈 2005.04.11

꽃길

선운사 주위의 산길은 가볍게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절집도 좋지만 나무와 계곡이 있는 이 산책로를 나는 사랑한다. 선운사에 갈 때는 절을 지나 선운산으로 난 이 길을 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선운산을 오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선운산 정상은 두 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이 산길에 지금 현호색이 한창이어서 꽃길을 이루고 있다. 길 가운데에도 꽃이 피어있어 발을 디디기가 조심스럽다. 산수유, 매화, 벚꽃 등 눈을 화려하게 하는 봄꽃의 향연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몰려 다지지만, 이렇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발밑에서도 작은 꽃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현호색 외에도 댓잎현호색, 제비꽃, 양지꽃, 산자고, 자주괴불주머니, 개불알풀, 개별꽃, 냉이꽃, 꽃다지 등이 눈에..

사진속일상 2005.04.10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엇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 박용재 사랑이 없다면 꽃은 더 이상 예쁜 색깔로 피지 않으리. 벌도 더 이상 꿀을 모으지 않으리. 사랑이 없다면 산속의 새들은 노래..

시읽는기쁨 2005.04.08

산수유

산수유는 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꽃나무이다. 남쪽 지방으로부터는 매화의 개화 소식이 가장 먼저 들려오지만, 중부 지방에서 매화는 흔하게 볼 수 있지 않고 산수유가 그나마 가장 먼저 만나는 꽃나무가 아닌가 싶다. 산수유에 이어서는 목련이 화사한 꽃을 피운다. 산수유는 좁쌀만한 노란 꽃들이 둥글게 모여 있다.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수술이 솟아있다. 대부분의 꽃들이 그러하듯 멀리서 보다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그 아름다움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산수유는 이른 봄의 꽃뿐만 아니라 가을의 빨간 열매도 보기에 좋다. 겨울이 되면 색깔이 퇴색되고 쪼글쪼글해지지만,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산수유 열매는 멋진 가을 풍경을 만들어 준다. 산수유로 유명한 곳은 경남 산동에 있다는 산수유 마을이다. 아직 한 번도 가보..

꽃들의향기 2005.04.07

고향집

고향집에 자주 들러야 하건만 그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늘 무언가에 빚 진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자식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다른 데에 아무리 신경 쓴들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이번에 내려가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사는 게 지옥 같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내가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악화된 상황이 몇 년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지만 어떨 때는 야속하기도 하다.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밖과 일에만 매달리는 어머니가 충분히 이해된다. 한식을 맞아 허물어진 산소를 손보다. 밭에다 만든 산소라서 땅이 단단하지 못해 비만 오면 비탈이 무너진다. 석축을 쌓아야 ..

사진속일상 2005.04.06

출산 장려 운동

딸이 쓴 글이 오늘자 한겨레신문 독자칼럼에 실렸다. 출산 장려 운동에 대한 의견을 신문사로 보낸 모양인데, 그저께 신문사에서 사진을 보내 달라는 연락이 와서 게재될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신문에 사진, 이름과 함께 실린 글을 보니 마음이 무척 뿌듯하고 딸이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항상 어린애 같이만 보였는데 이렇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것을 보니 이미 성인이 다 된 것 같다. 딸에게는 앞으로도 사회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넓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사회에 순응하는 잘 길들여진 사람이 아니라,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적 인간이 되길 부탁한다. 딸이 말한 대로 제발 이제는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무슨 운동이나 캠페인 좀 ..

길위의단상 2005.04.04

고구마 싹

손이 덜 가면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 무엇일까? 이웃에서 제일 많이 추천하는 것이 고구마였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터에다 고구마를 심을 생각으로 작은 스티로폼 상자를 구해 흙을 깔고 고구마 몇 개를 묻어 두었지요. 일부나마 내 집에서 싹을 낸 고구마를 키워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겨울에 따뜻한 방안에 둔 것 외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싹이 나오더니 하루가 다르게 줄기가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너무 웃자라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고구마 싹을 심자면 아직 한 달도 더 지나야 할 것 같은데 저것을 그대로 두고 기다려야 하나, 어쩌나요? 아내는 초록 잎이 좋다고 상자를 통째로 거실로 옮겨놓았습니다. 모종으로 사용하려던 것이 어느새 집안의 장식용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가만히..

참살이의꿈 2005.04.03

바퀴벌레는 진화중 / 김기택

믿을 수 없다, 저것들도 먼지와 수분으로 된 사람 같은 생물이란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시멘트와 살충제 속에서만 살면서도 저렇게 비대해질 수 있단 말인가. 살덩이를 녹이는 살충제를 어떻게 가는 혈관으로 흘려보내며 딱딱하고 거친 시멘트를 똥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입을 벌릴 수밖엔 없다, 쇳덩이의 근육에서나 보이는 저 고감도의 민첩성과 기동력 앞에서는. 사람들이 최초로 시멘트를 만들고 집을 짓고 살기 전, 많은 벌레들을 씨까지 일시에 죽이는 독약을 만들어 뿌리기 전, 저것들은 어디에 살고 있었을까. 흙과 나무, 내와 강, 그 어디에 숨어서 흙이 시멘트가 되고 다시 집이 되기를, 물이 살충제가 되고 다시 먹이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빙하기, 그 세월의 두꺼운 얼음 속 어디에 수만 년 썩지 않을..

시읽는기쁨 2005.04.01

복수초

복수초는 봄의 전령사이다. 제주도에서는 2월 초순이면 눈 사이에서 피어나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알려 준다. 그러나 서울 지방에서는 3월 하순이 되어야 산에서 피어나는 이 꽃을 볼 수 있다. 처음 이 꽃 이름을 들었을 때는 '복수'를 앙갚음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 꽃 이름에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 뒤에 한자로는 福壽草라고 쓰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이 꽃은 복과 장수를 상징한다.꽃말도 '영원한 행복' 또는 '봄의 미소'라고 한다. 이른 봄이 되면 신문에는 의례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 사진이 실린다. 그래서사람들에게는 눈 속에서 피는 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내 경우는 불운하게도 눈 속에서 핀 복수초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키가 작은..

꽃들의향기 2005.03.31

너는 누구니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 사는 열네 살짜리 소녀 소피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온다. 거기에는 단지 이렇게 적혀 있다. ‘너는 누구니?’ ‘소피의 세계’는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너는 누구니?’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받고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질문은 이 물음표 하나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온갖 지식 중에서 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에 열병을 앓으면 천착했던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의문도 ‘너는 누구니’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근원에 관한 질문들이다. 개인적으로는 40대 중반에 다시 한 번 이런 질문의 회오리에 말려 들어갔고, 그래서 인생관의 대전환이 생겼다. 옳다고 믿었던 것에 고개를 ..

읽고본느낌 2005.03.30

맑고 따스한

지난 겨울에 언 수도관이 아직 녹지 않았습니다. 수도 펌프에 전원을 넣으니 해소병 환자의 가래 끓는 소리가 납니다. 중간 어딘가에 관이 막혀 있어 물이 소통되지 못하니 펌프도 힘이 드는가 봅니다. 누런 황토물이 펌프의 이음새 사이로 줄줄 새나옵니다. 이것도 이젠 연례 행사가 되어 그런가 보다 싶습니다. 그러나 내주까지 이 지경이 될까 걱정입니다. 생활하는 것은 둘째치고 내주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물이 없으면 일에 지장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옆의 동료와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지만 정말 '무자식이 상팔자'입니다.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터를 통해 실감하고 있습니다. 동료도 지리산 자락에 터가 있는데 이번 겨울에 상수도관이 터져서 그로 인한 누수로 수도비가 20..

참살이의꿈 200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