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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과 목성의 데이트

초저녁 남서쪽 하늘에서는 금성과 목성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숨어서 밀회를 즐기던 둘은 해가 지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두 별은 지난 2일에 가장 접근을 했다는데 어제 저녁에는 약 4도 정도 떨여져 있었다. 왼쪽 밝은 별이 금성이고, 오른쪽에 있는 약간 어두운 별이 목성이다. 이 두 별은 워낙 밝아서 도심에서라도 고개를 하늘로 돌리면 수월하게 만날 수가 있다. 금성의 남쪽 아래로는 처녀자리의 스피카도 볼 수 있었는데 사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석양을 보러 왔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둘만이 남은 자리, 하늘에서는 두 별이 점점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하늘을 잊고 별을 잊고 사는 것이 당연시되는 요즈음인데,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별을 보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환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속일상 2005.09.06

사는게 그런 거지

형제간의 우애도 어릴 적 얘기인가 보다. 철 없던 시절에는 같이 웃고, 뒹굴고 싸우고, 그러다가 금방 화해하고 세상에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였지만 크고 나면 어떤 때는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서로간에 너무 기대가 커서일까,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준다. 특히 형제간에는 돈 문제로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돈 한 푼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의 정은 헌신짝처럼 버려지기 일쑤다. 웬수가 되는 것이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고이 키워놓아도 다 크고 나면 잘 난 것은 제 탓, 못 난 것은 부모 탓이다. 그래도 부모-자식 사이의 핏줄은 어짜할 수 없다고 아무리 애물단지지만 그래도 내 자식이 아파하랴 부모는 늘 노심초사다. 우리 집안만 그럴까 하고 심각하게 ..

길위의단상 2005.09.05

절두산 성지

절두산 성지에서 미사를 드리다. 이곳은 예전에 양화나루였던 곳으로 서울에서 양천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영조 이후에는 송파나루, 한강나루와 함께 서울의 삼대 나루로 상업적 기능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절두산은 양화나루 옆에 솟아있는 높이 약 20m 되는 암벽이다. 원이름은 누에가 머리를 들고 있는 모양 같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峯)이었는데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룻손들이 그늘을 찾던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140년 전에 수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수형을 당해서 그 이름이 절두산(切頭山)으로 바뀌었다는 비극의 현장이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나루까지 침입해 오자 대원군은 ‘..

사진속일상 2005.09.04

새들은 모이를 외면한다

마당과 밭에는 가끔씩 새들이 찾아옵니다. 특히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자주 볼 수 있는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밖에서 들리는 맑은 새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찾아오는 새는 대개 딱새와 박새, 산비둘기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클 때는 참새가 제일 많았는데 요사이는 참새를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새들은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부리로 무언가를 쪼아 먹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는지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즐겁게 놀기도 합니다. 오래된 쌀이 한 되 정도 남은게 있었는데 쌀벌레가 생기고 바게미(?)라고 부르는 날벌레들도 자꾸 생겨서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가 새들의 모이로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당 가운데 있는 나무토막 위에다 쌀을 뿌려놓아 봤습니다. 이놈들이 떼로 몰려와 기꺼이 모이를 먹는..

참살이의꿈 2005.09.03

우리들의 대통령 / 임보

수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비상등을 번쩍이며 리무진으로 대로를 질주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즐겨 오르내리는 맑은 명주 두루마기를 받쳐입고 낭랑히 연두교서를 읽기도 하고, 고운 마고자 차림으로 외국의 국빈들을 환하게 맞기도 하는 더러는 호텔이나 별장에 들었다가도 아무도 몰래 어느 소년 가장의 작은 골방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는 말많은 의회의 건물보다는 시민들의 문화관을 먼저 짓고, 우람한 경기장보다도 도서관을 더 크게 세우는 가난한 시인들의 시집도 즐겨 읽고, 가끔은 화랑에 나가 팔리지 않은 그림도 더러 사주는 발명으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좋은 상품으로 나라를 기름지게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서는 육자배기 한 가락쯤 신명나게 뽑아내기도 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

시읽는기쁨 2005.09.02

풍경(1)

인적 그쳐 한적한 바다에 가고 싶다. 키 큰 바다풀들이 바람에 날리고, 파도 소리 더욱 쓸쓸한 텅 빈 바닷가에 서고 싶다. 사는 건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호탕한 웃음과 화려한 몸짓으로 치장해보지만 세상 일은 여전히 힘겹고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은 무겁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한데 작은 조각배 한 척 흔들거리며 집 찾아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돌아갈 안식의 항구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피곤한 내 영혼이 쉴 한 평 따스한 자리가 거기엔 있을까? 거기선 내 고운 사람이 고운 옷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외로운 마음도, 쓸쓸해진 마음도, 좌절도, 낙담도 저 바다는 다 품어줄 것 같다. 아픔이 아픔으로 위로 받듯, 외로움은 더 큰 외로움으로 위안을 얻을 것이다. 오늘은 저 쓸쓸한 바다에 가고 싶다.

사진속일상 2005.09.01

무릇

이른 아침 오솔길에 무릇이 곱게 피어났다. 먼 산은 안개에 잠겨있는데 아침 이슬에 함초롬히 젖어있는 무릇은 마치 수줍게 웃고 있는 소녀 같다. 키가 늘씬한 청순한 소녀의 웃음은 맑고 깨끗하다. 무릇은 긴 꽃대를 따라 분홍색 작은 꽃들이 달리는 여러해살이 풀로, 늦여름이면 우리 산하 어디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 녹색의 풀들과 어울린 색깔이 무척 곱다. 봄에 나오는 무릇 잎은 나물로도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무릇일까? 세상살이가 고달플지라도 무릇 사람이란 희망을 잃지 말라고, 고운 꽃 한 송이씩 꼭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으라는 뜻이 그 이름 속에는 담겨있는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05.08.30

별난 급훈들

지난 달이었던가, 서울대 총장이라는 분이 교육의 중요한 기능이 학생을 솎아내는 것이라고 해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자유경쟁을 내세우는 대표적 엘리트주의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마치 날 선 칼처럼 으스스하게 느껴졌었다. 교육이 솎아내는 기능이 있을지언정 그것은 부차적으로 언급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곧잘 교육을 농사에 비유하는데 농작물을 가꿔본 사람이라면 농사짓기란 솎아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을 북돋워주며 함께 키워가는 과정임을 안다. 도리어 연약한 쪽에 더 신경을 써서 물 한 모금이라도 더 주며 골고루 자라게 도와주는 것이다. 현재 인문계 고등학교는 성적지상주의가 활개치는 무한경쟁의 터다. 소위 '좋은 학교'란 유명 대학에 학생을 많이 진학시키는 학교이다...

길위의단상 2005.08.29

배추와 호박

열흘 전에 감자를 캐낸 자리에 읍에서 사온 배추 모종 100 포기를 심었습니다. 그것이 이만큼 예쁘게 자랐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배추가 잘 자랐다고 한 마디씩 칭찬을 해 줍니다. 그러나 그 말이 정말 농사를 잘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던 도시 사람이 하는 노릇 치고는 그래도 봐줄 만 하다고 하는 뜻임을 압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어설프게 심었던 작년에도 그런대로 배추는 잘 되었습니다. 이웃에서는 약을 쳐도 벌레가 먹는다는데, 우리는 약 한 번 치지 않았으면서 별로 흠집 없는 배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웃에서 와서 보고 이 집은 물도 안 주고, 약도 안 치는데 어떻게 배추가 이렇게 잘 자랐느냐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아마도 새로 들여온산흙에서 키워서 병충해의 침입..

참살이의꿈 2005.08.28

그리운 강 / 도종환

사람들은 늘 바다로 나갈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버리거나 이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 척을 저어나가는 일이 한 번쯤 있었으면 하지만 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급하게 달려가는 사나운 물살이 아니라 여유 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

시읽는기쁨 2005.08.27

달항아리

비 오는 날, 고궁박물관으로 달항아리를 보러 갔다. 지난 15일에 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특별전으로 달항아리 9점을 전시하고 있다. 달항아리는 둥그런 몸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대형의 조선 백자 항아리를 일컫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백자 항아리의 희고 깨끗한 살결과 둥글둥글한 생김새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달항아리는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백 년 정도 되는 기간에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높이가 40cm 이상으로 지름과 높이가 거의 같은 비례를 이루는 큰 항아리로 워낙 크기 때문에 하나의 모양을 짓지 못하고, 위쪽과 아래쪽 부분을 따로 지어 접붙여 만들었다. 그래서 허리께에 이음 부분이 보이면서 조금씩 비뚤어져 있다. 그래서달항아리의 매력은 깔끔한 정형이 아니라 어딘가..

읽고본느낌 2005.08.26

접시꽃

벌써 20년이 되었다.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한 시인이 '접시꽃 당신'이라는 절절한 사부곡(思婦曲)을 내놓아 사람들을 감동시켰었다. 그때에 시집을 읽으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와 사별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시인은 재혼을 했다. 지금은 그때의 뭔지 모르게 씁쓸하고 허전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또 최근에 경험한 일이다. 터의 이웃에서 정답게 살아가던 부부가 있었는데, 몇 달 전에 아내가 갑작스런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40년 가까이 동고동락해 온 부부여서 남은 남편의 충격과 슬픔도 컸다. 그런데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새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고 있다. 같이 경운기를 타고 다닌다는 둥, 새 여자가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예쁘다며 웃는다는 둥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

꽃들의향기 2005.08.25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

“남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해야 하고, 자기 자신 속의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자신 안에 있는 동물성을 거부하고 자발적인 고통을 통해 인간 모두의 고통을 구원하려는 자유로운 의지인 것이다. 모든 성인은 자신을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정의롭지 않은 재물을 거부했다.” 이것은 시몬느 베이유가 고등중학교 시절 철학 시간에 쓴 작문의 한 구절이다. 시몬느 베이유는 1909년 2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유대인 의사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총명했으나 늘 질병에 시달렸다. 이런 시절에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녀에게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문제가 화두처럼 따라다녔다. 그 고통을 외면하지 ..

읽고본느낌 2005.08.24

서러운 날

오늘은 왜 이렇게 자꾸 서러운 마음이 일어날까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맥이 탁 풀립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오늘은 모두가 생기를 잃었습니다. 저 밝은 하늘 때문입니다. 시간이 나면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봅니다. 색깔이 어쩜 저리 선명할 수 있는지, 초록의 나무들과 파란 하늘의 조화에 넋을 잃습니다. 오늘은 하루 내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것도 더 이상 맑고 투명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로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의 하늘이 열렸습니다. 탁한 도시의 하늘도 이런 기적을 연출할 줄 아네요. 오늘은 정말 일 년 중에서 며칠밖에 볼 수 없는 날씨일 겁니다. 오후에는 일찍 일을 접고 나왔습니다. 어디로든 걷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활짝 펴고 걸을 수가 없..

참살이의꿈 2005.08.23

러브호텔 / 문정희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오늘, 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 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교회와 시인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는 것은 교회가 많고, 시인이 많은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 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 ..

시읽는기쁨 2005.08.23

태장리 느티나무

오래 된 동네 어귀에는 정자나무라고 불리는 고목이 있다. 대개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로 되어 있는 이런 나무들은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순흥을 지나다가 이 정자나무를 만났다. 국도 바로 옆에 있어서 쉽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3m에 달하는데 주민들의 휴식처이면서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적혀 있다. 그래서 음력 정월 보름이면 이 나무 아래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동제(洞祭)를 지낸다고 한다. 그 말대로 나무 아래에는 돌로 만든 제단이 놓여 있다. 그런데 지금 한여름의 오후 시간, 동네며 나무는 온통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고목에 매미 소리 들리고,..

천년의나무 2005.08.22

비 온 뒤 풍경

며칠간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쳤다. 서울 하늘을 무겁게 짓누르던 탁한 공기층이 사라지고 밝고맑은 새 하늘이 열렸다. 남한산성에 오르니 눈 가는데까지 시야가 트였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모두 겹겹이 드러났다.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이런 희귀한 전망에 감탄을 한다. 어떤 사람은 강화도 마니산, 개성 송악산도 보인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산 위에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며 멋진 노을을 기대해 봤지만 대기가 너무 맑은 탓인지 장관을 연출해 주지는 않는다. 잠깐 불 붓듯 타오르더니 아쉽게도 이내 식어 버린다. 해 진 뒤의 여운이 없어 아쉬웠다. 주위의 사람들은 작은 풍경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자리를 뜨지 않는다. 해가 지고 하늘의 조명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땅에서 꽃불이 피어났다. 멀..

사진속일상 2005.08.21

8월 장마

올 여름은 8월인데도 유난히 비가잦다. 장마였던 7월과 별로 구별이 되지 않아 이젠 7, 8월을 장마기간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예전의 8월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이 주로 계속되었는데 몇 년 전부터인가는 그런 특징이 사라져 버렸다. 지난 주에는 거의 한 주일 내내 흐리고 비만 내렸다. 겨울의 3한4온 현상이 흐릿해져 버린 것과 비숫한 경향이 아닌가 싶다. 통계적으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감각적으로 느끼는 기후는 확실히 옛날과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비가 내리는 모습도 세상을 닮아선지 영 종잡을 수가 없다. 그걸 게릴라성 집중호우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하늘마저화가 잔뜩 나있는지 여기저기 물벼락을 쏟아붓기 일쑤다. 가끔씩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요사이는 비가 내렸다 하면 늘 그렇다. 며칠..

길위의단상 2005.08.20

여름 하늘

여름은 하늘도 원색이다. 파란 배경에 흰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풍경은 대표적인 여름 하늘의 모습이다. 그러나 여름 하늘은 변덕쟁이다. 맑던 하늘이 어느 순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우르르쾅쾅 소나기가 지나간다. 그리고는 어느새 다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다. 밤이면 번개들이 장난치는 불꽃놀이도 감상할 수 있다. 며칠 전에는 두 시간 가까이 부드럽게, 어떨 때는 무섭게 효과음을 섞어가며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뒤이어 한 줄기 비가 쏟아지고 나면 밤하늘의 별들은 더욱 총총하다. 이런 것들은 여름만이 줄 수 있는 선물들이다. 하얀 솜사탕 뭉게구름 사이로 서치라이트 마냥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 마음도 하늘을 닮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사진속일상 2005.08.19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그냥 이대로 살고 싶어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지금이 좋아라. TV도 컴퓨터도 없지만 대신에 자동차 소리나 문명의 소음도 없는 여기가 좋아라. 저녁이면 촛불을 켜놓고 거실에 누워 남쪽 하늘을 흘러가는 반달을 바라보는 여유와 낭만이 좋아라. 촛불은 따스한 빛이다. 달빛과 촛불은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어루만진다. 그 빛과 어우러져 나신이 되어 한 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밤이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아라. 아무런 하는 일이 없어도 결코 심심하지 않아라. 아침, 저녁 두 시간 정도씩 바깥일을 한다. 한낮에는 뜨거워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온 몸 가득 땀을 흘리고 들어와 찬물로 샤워를 할 ..

참살이의꿈 2005.08.18

어처구니 / 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 밭에 덮어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 갑자기 손 끝이 후끈거려서 또 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 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 이를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 어처구니 / 이덕규 재미있는 시다. 돋아나는 새싹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신선하고 특이하다. 보통은 새싹에서 갓난아기와 같..

시읽는기쁨 2005.08.06

일의 의미

조기 퇴직을 하고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십중팔구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내려가서는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낼 계획인가요?” 그러나 아직껏 묻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할 일이 없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냥 텃밭이나 가꾸며 지내겠다는 말로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습니다.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직업으로서의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에 치여 못 살겠다고 불평을 합니다. 누구나 일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에 대한 집착은 그 이상으로 강해 보입니다. 꼭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일이 없으면 삶 자체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아 보입니..

참살이의꿈 2005.08.06

연꽃

고창에서 해리로 가다 보면 길옆에 작은 연못이 있다. 지금 이곳은 연꽃이 만개하고 있어서 무심코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하고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안쪽에는 정자도 있고, 더 들어가면 산 아래에는 농촌 마을이 있는데 이 연꽃 연못으로 인하여 마을은 다른 곳과 달리 뭔가 예술적인 분위기가 난다. 저 마을에는 연꽃의 운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교의 아름다운 설화인 염화시중(拈花示衆)의 이야기에 나오는 꽃은 아마 연꽃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들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또한 처염상정(處染常淨),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자라면서도 그 꽃만은 맑고 깨끗해서 번뇌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정신을 나타낸다. 그러나..

꽃들의향기 2005.08.05

악마의 구름

언젠가 우체국에서 겪은 일이다. 우체국 창구에는 고객들에게 주려고 사탕을 담아놓은 그릇이 있었다. 한 젊은 아가씨가 직원에게 이 사탕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래, 먹어도 되는 거야.”하고 직원에 앞서 말을 했다. 그러자 이 아가씨가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의아한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물으니 화가 난 아가씨가 “왜 반말을 하는 거예요?”하면서 따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손녀 같은 나이인데 반말하면 어떠냐고 하고,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왜 반말을 하느냐며 대들었다. 나중에는 서로 반말에 험한 욕까지 나오는 싸움판으로 변해 버렸다. 요사이 우리 사회를 보면 사람들은 전부 무엇엔가 화가 나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가진 사람이나 못 ..

참살이의꿈 2005.08.04

건축일지

경기도 여주에 땅을 마련한 것이 1999년 7월이었다. 농촌 마을 가운데 있는 대지와 전으로 된 470평의 직사각형 땅인데, 아내나 나나 처음 보는 순간에 반해 버려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사버렸다. 결국 나중에는 찬찬히 살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제대로 땅을 볼 눈이 없었다고 해야겠다. 그 뒤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주말마다 다니는 생활을 하다가 2002년부터 집 지을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는 직장을 여주로 옮긴 뒤에 집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학교를 옮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우선 집부터 짓기로 한 것이다. 얼마간 망설임의 시간을 겪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주에서의 생활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앞으로의 생활 기반이 되는 집이 필요했다. 그러자니 우선 어떤 ..

참살이의꿈 2005.08.04

300mm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전주에는 300mm 가까이 되는 비가 내렸다. 밤 내내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 때문에 여러 번 잠을 깨었다. 무슨 사고라도 날 것 같은 두려움도 들고, 괜히 천둥소리에 놀라기도 했다. 새벽이 되니 어디선가 계속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웃 주택가에서 침수가 시작되어 대피하라는 경고 사이렌 소리였다. 아침에 나가보니 골목은 온통 물로 가득했다. 자동차는 반 이상 물에 잠겨있고, 골목으로는 보트가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것도 물이 많이 빠진 게저 정도라니 새벽에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짐작이 된다. 저 골목 오른쪽에 처가쪽 큰집이 있는데 방으로 물이 들어와 지금 식구들이 옥상에 대피해 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가까이 가 볼수가 없다. 이곳은 저지대라 늘 ..

사진속일상 2005.08.03

기심(機心)

작년과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제 주변에 몇 가지의 기계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휴대폰을 장만해서 이젠 늘 이놈이 옆에 따라 다닙니다. 심심해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슨 소식이 없나 자주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놈에게 콜라를 엎어버려서 먹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걸 수리하느라 원주를 하루 내내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편리함이 좋긴 하지만 그것에 마음 앗김이 보통이 아닙니다. 또 묵직한 카메라 가방이 있습니다. 거금을 들여 산 카메라를 묵히기도 그렇고 어디에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닙니다. 놓고 가면 아쉽고 또 누가 들고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가지고 다니면 별로 쓰지도 않으면서 무겁기만 하고, 어떨 때는 애물단지가 딴게 아닙니다. 이래서 또 하나 제 마음을 앗아가는..

참살이의꿈 2005.08.01

도로 위의 청개구리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앞 유리창에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네 다리를 유리에 바짝 붙이고 납작 엎드려 있는 모양이 너무 애처로웠다. 순간 이놈을 어떻게 살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를 늦춰서 빨리 갓길로 가야 되는데 고속도로상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을수도 없고 어떡 할까 망설이는 동안에 개구리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아마 도로에 떨어져 뒤에 오는 차들 바퀴에 깔려버렸을 상상을 하니 마음이 무척 아팠다. 빨리 결단을 못내리고 우물쭈물하다가 한 생명을 애꿎게 죽여버린 것 같아 아직껏 자책이 된다. 그런데 이 청개구리가 어떻게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나타난 것일까? 추측컨대 터에서 시원한 그늘을 찾느라 차 밑으로 들어왔..

길위의단상 2005.08.01

잠들고 싶지 않은 밤

잠들고 싶지 않은 여름밤이 있습니다. 불을 끄고 거실에 누우면 밤의 적막이 서늘한 바람을 몰고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만이 잔잔히 들려오는 고요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방에 누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창문으로 작은 별 하나 반짝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우주의 끝에서 수십만 광년을 날아와 지금 내 눈동자를 간지리는 빛의 신비에 전율하게 되는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불꽃놀이처럼 번갯불이 번쩍이며 천둥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천군만마의 발자국 소리로 소나기가 몰려옵니다. 비릿한 흙내음을 풍기며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지나갑니다. 와르르작작 통쾌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존재의 충일함으로 행복한 여름밤입니다. 하는 일도없이, 별 생각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만으로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

참살이의꿈 2005.07.26

여름밤 / 이준관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 여름밤 / 이준관 도시에서는 결코 여름밤이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다. 달아오른 시멘트의 열기가 밤 늦게까지 사람을 괴..

시읽는기쁨 2005.07.23